292. 전시효과
Make Your Own Magic.
줄여서 MYOM이라 불리는 게임은 PTW에서 코넥트를 발매할 때 함께 발표한 전설의 모션 인식 게임이었다.
당시 전용 콘솔이었던 X-BOX 360의 기기 성능을 가볍게 상회하는 환상적인 그래픽과, 모션 인식에 최적화된 조작법, 그리고 별도의 UI를 호출하지 않아도 물약이나 스크롤 등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UI등은 게이머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발매된 해의 GOTY를 휩쓸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지금은?
‘코넥트가 1대 팔리면 MYOM도 1개 팔린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MYOM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모션 인식이란 기술의 바닥까지 끌어모아 만든 게임이란 느낌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MYOM이었기 때문에.
그 MYOM이, 기존에도 7세대 콘솔의 그래픽을 넘어 8세대 성능에 근접한 그래픽을 보여주었던 그 게임이 새롭게 진화하여 8세대 콘솔인 X-BOX ONE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MS가 딥 다이버를 사용한 주가 조작 소송에 휘말렸다는 부정적인 이슈를 한 방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MYOM은 오로지 X-BOX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었으니까.
“설마 MYOM이란 카드를 준비 중이실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마 저들도 그랬겠죠.”
마치 로켓처럼 치솟아 오르는 주가 차트를 보며, MS의 CEO 윌 게이트가 상혁에게 말하자, 상혁이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사실 MYOM에 가장 최적화된 플랫폼이 딥 다이버니까요.
애당초 MYOM을 개발할 때도 저희는 계속 VR로 개발하고 싶었지만, 당시엔 기술적으로 그걸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덕분에 원래는 진짜로 마법사가 된 기분을 느꼈어야 할 게임이 반쪽짜리가 되어버렸지만, 당시로써는 그 정도도 충분하다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딥 다이버란 물건이 있죠. MYOM을 VR로 즐기면 얼마나 환상적일지 상상해보세요.
내 두 눈을 통해 보이는 캐릭터의 손바닥과 몸에 마나가 휘돌아 오르고, 그 거대한 마탑을 360도로 돌아보면서, 실제로 눈 앞에 보이는 병이나 스크롤을 잡고 마법 연구를 한다고.
그건 진짜 환상적이겠죠. 그러니 딱히 이번 사태가 아니었어도 MYOM의 지원 패치는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MYOM이란 게임은, 코넥트와 딥 다이버 양쪽의 지원을 받아야 100% 그 재미를 전달받을 수 있는 게임이니까요.”
“하지만 코넥트만 가지고도 그해 GOTY는 다 휩쓸지 않았습니까? 상혁 씨 말은 지금 반쪽짜리 게임 가지고 그해 다른 게임을 다 뭉개 버렸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요.”
“그렇게 들리는 게 정상입니다. 그게 사실이니까.”
상혁이 웃으며 말하자, 윌도 미소 지었다.
상대의 말을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딥 다이버를 통해 즐기는 MYOM이 환상적인 것 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뭐, 중요한 건 저희가 주가 하락을 훌륭하게 방어해냈다는 거죠.
상혁 씨의 아이디어 덕분에. 아니, 사실 방어 수준이 아니라 로켓처럼 치솟아 오르고 있지만. 상대는 똥줄이 타겠군요.”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클래시가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원래 회사가 소송전에 휘말렸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리고 그 상대가 SEC라면 주가가 떨어지는 게 정상일 거로 생각했을 테니까.
사실, 상대가 쓴 카드도 나쁜 카드는 아니었어요.
수조 원을 들여서 개발한 신제품이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미국 시장에서 판매 정지를 당한 데다, SEC에서 주가 조작 혐의를 뒤집어씌웠다는 소문까지 들리면 그 어떤 회사라도 주가가 내려가는 게 정상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은, 그들이 싸우고 있는 상대가 그런데 넘어갈 수준의 적이 아니라는 거죠.”
“불난데 기름을 부은 겪이 되었군요. 하지만 저희가 MYOM의 X-BOX지원이라는 뉴스로 덮어버린 소송 이슈는 금새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겁니다.
그리고 유저들도 바로 알 수 있게 되겠죠. 바로 이것처럼.”
그렇게 말하며, 클래시는 신문을 하나 내밀었다.
거기엔 MYOM의 X-BOX지원을 대서특필한 다른 신문과는 다르게, 딥 다이버의 미국 내 판매 중지에 관한 내용을 다룬 1면 기사가 실려 있었다.
[도대체 그 많던 딥 다이버는 누가 가져갔는가?]
그것은 상혁이 판매 중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지기도 전에 미국 전역의 게임 마켓에 통보한 딥 다이버의 회수 처분에 대한 기사였다.
***
“아빠, 신문 봤죠? 이제 딥 다이버로 MYOM도 할 수 있대요!”
미국 오하이오에 사는 켈시 그래머는 스르로를 ‘기계치’라고 부를 만큼 IT기기와 친하지 않은 남자였다.
TV를 제외하면, 지금은 대중적이 되 스마트폰 조차도 사용하지 않는 남자가 바로 그였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그가 자발적으로 게임기 앞에 서게 만든 게임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MYOM이었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니?”
딸의 8번째 생일 선물로 그가 사준 게임기를 가지고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 게임에 흥미를 가졌다.
손을 휘두르며 마나를 다루고, 상대의 주문을 파훼하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임 플레이는 마치 진짜 마법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쇼파에 앉아 딸의 귀여운 손 동작을 지켜보던 그는 딸의 권유로 MYOM을 시작했고, 지금은 꽤 게임에 익숙해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그 부녀는, MYOM이란 게임을 통해 특별한 관계를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아빠, 말했잖아요. 상대가 전뇌계열 마법을 쓸 땐 금속성 소환물을 땅에 박아서 피뢰침처럼 쓰라고요.”
“자꾸만 까먹게 된단 말이지.”
“연습해요, 연습. 아빠가 운전할 때 모든 걸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상황에 따라 몸이 자연스럽게 주문을 시전할 수 있게 연습하는 것만이 고수가 되는 지름길이라고요.”
서로가 좋아하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며 연습하게 만드는 MYOM 특유의 플레이는, 전 세계의 수많은 가정에서 특유의 유대감을 낳아주고 있었다.
그것은 게임 자체의 재미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게임 내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게임 실력의 핵심이 되는 메커니즘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해를 거치며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아니라 마법사와 마법사의 관계로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며 쌓인 유대감은, 절대로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발표된 MYOM의 딥 다이버 지원.
그 뉴스가 게임으로 묶인 두 부녀의 유대감을 다시 한번 자극하고 있었다.
“난 TV로 3차 NE 컨벤션을 보는 순간 생각했지. ‘와, 저걸로 MYOM을 하면 진짜 끝내주는 기분이겠다.’라고. 근데 그걸 진짜로 해주다니. 역시 PTW구나.”
“그렇죠? 아빠,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뭐지?”
“저희 집엔 X-BOX 360밖에 없잖아요. 물론 두 대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족이 MYOM을 함께 즐기는 표준 세팅은, TV 2대와 X-BOX 2대, 그리고 코넥트 2대를 연결해놓고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이었기에, 켈시의 집도 그런 세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X-BOX ONE이 발매되었을 때, 켈시는 집에 있는 콘솔을 8세대 콘솔로 업그레이드 하지 않았었다.
MYOM을 즐기는 데는 360이 필요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켈시의 집에 있는 것은 두 대의 대형 TV와 코넥트 2대, 그리고 X-BOX 360 2대가 전부였다.
그 말은, 이번에 딸과 게임을 하려면 게임기 2대를 사야 한다는 의미이였다.
그리고 딥 다이버도 2대가 필요하다는 의미였고.
“흠, 일단 MYOM의 딥 다이버 버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볼까?”
그런 켈시의 의견에, 그의 딸인 멜리사 그래머는 반대 의견을 표했다.
그녀는 이전에 코넥트를 2대 구하기 위하여,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빠, 우리가 코넥트 2대를 구매하는데도 얼마나 애먹었는지 기억 안 나세요?”
운 좋게 1대를 구해 딸에게 선물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2대째의 코넥트는 정말 구하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켈시는 2대째의 코넥트를 구매하기로 한 이후로 거의 1년 동안을 딸과 교대로 게임을 플레이해야 했었고.
그것은 참 악몽 같은 기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네. 네 말이 맞는다. 구하려면 2대를, 그것도 지금 구하는 게 가장 좋겠지.”
“그렇죠? 지금은 그래도 물량이 넉넉하다고 하니까요.”
“그래?”
“제 친구들은 전부 구매했어요. PS4랑 같이요.”
“하지만 MYOM은 X-BOX에서만 돌아가잖니.”
“저는 PS까지는 필요 없어요. 아빠. 아빠랑 같이 MYOM이 하고 싶은거니까.”
켈시는 눈에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빠랑 같이 게임만 할 수 있으면 된다.’라고 말하는 딸의 말을 듣고 감동하지 않을 아버지는 없었으니까.
“멜리사. 아빠가 약속하마. 이번엔 반드시 딥 다이버 2대를 한번에 사 올 거라고.”
“하지만 엄마는 제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아빠가 딥 다이버를 사지 못하게 할 거라고 하셨는데요?”
“뭐, 그건 우리 마법사끼리의 비밀로 하자고.”
그렇게 말하며, 켈시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자신의 딸에게 가볍게 윙크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가 사는 목장에서 멀리 떨어진 시내의 게임 샵에서, 켈시는 점원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 저녁에 이루어진, 아버지와 딸의 비밀스런 계약에 관해서.
“···.그랬단 말이지.”
“···.그랬던 것이군요.”
“그래서 어제 내가 자네한테 연락을 했었던 거고.”
“그래서 연락을 하셨던 거군요.”
“그래. 그리고 그때 자네는 분명 이렇게 말했어.
‘당장 가게에 재고는 없지만, 지금 SANY에서는 매장에서 요청한 만큼 딥 다이버를 미친 듯이 밀어주고 있으니까 오늘 오시면 구매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고.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그리고 오늘 입고되는 양이 250대라고 했었어. 그것도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내가 나를 위해 2대를 빼놓아달라고 했던 것도 기억하고?”
“그것도 기억나네요.”
“그래. 다 좋아. 그 좋은 자네의 기억력도 다 좋고 저기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딥 다이버 박스도 마음에 들어.
그런데 말이지! 그걸 팔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 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군.
어!째!서!”
켈시의 고함이 매장 안에 울려 퍼졌지만, 점원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오늘 그에게 이런 반응을 보인 손님은 켈시 외에도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미치겠군. 대체 저렇게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물건을 왜 안 판다는 거야? 돈이야? 웃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건가?”
“PTW는 정해진 가격에 매장에서 1센트라도 더 붙여서 팔면 그 매장에 물건 공급을 끊어버려요.
전국의 게임샵 중에 PTW랑 거래 끊고 장사하려는 미친놈은 없을걸요?”
“그럼 왜 안 판다는 건데!?”
“뉴스 안 보셨어요? SEC에서 딥 다이버 판매 중지해달라고 소송 걸었다잖아요.”
“SEC가 뭐 하는 개뼉다구인데 남이 게임기 사는 걸 막아?!”
“뭐 증권 어쩌고 하는 국가 기관이라는데 저도 잘 몰라요.
어찌 되었건 저 산더미 같이 쌓인 딥 다이버를 회수하러 SANY직원이 곧 올 거라는 사실만 알죠.”
“2개만 몰래 팔아. 전화 받기 전에 팔아서 몰랐다고 해.”
“절대 팔지 말라는 전화를 받고 물건이 왔어요.”
“젠장!!! 그럼 팔지도 못하게 할 거면서 왜 보내는 건데!?”
“저도 모르죠. 아마 배송 쪽이랑 엇갈렸는지도.”
“그런 설명은 지금 나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정부에 따져요. 지금 울고 싶은건 저희도 마찬가지니까.
전 이번에 딥 다이버가 너무 잘 팔려서 차도 사려고 결심했었다고요.”
“젠장, 이거 풀리기는 하는거야? 지금은 못사더라도, 나중엔 살 수 있는거지?”
“아마 힘들 걸요?”
“그건 또 왜?”
“켈시. 제발 뉴스 좀 봐요. 애당초 지금 딥 다이버의 물량이 남아 튀는 건, PTW가 SANY에 기술을 넘기는 조건으로 5천만 대를 시장에 선공급 하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에요.
5천만 대를 게이머들에게 제공하고 나서야, SANY에서는 산업용 딥 다이버를 만들 수 있고요.
그러니 SANY 입장에서는 최대한 빠르게 5천만 대를 팔고 싶겠죠.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팔 수 없게 되었으니 아마 이 물량은 전부 아시아나 유럽으로 갈 겁니다.
그리고 이 판매 중지가 풀릴 무렵에는, 이미 미국 빼고 전 세계에 5천만 대 판매가 끝난 상태겠죠.
그럼 그 이후엔 어떻게 되겠어요?”
“그 이후엔 물량이 부족하게 될 거라고?”
“그러니 포기하세요.
여기서 한 대라도 모자라면, PTW와 다시는 계약할 수 없으니까, 저희는 절대 팔 수 없다고요.”
그렇게 말한 점원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그의 ‘현금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젠장, 자동차 딜러한테 예약을 취소한다고 이야기해야겠네. 진짜 오랜만에 대박 한번 터지나 했더니···.”
“젠장, 알았어.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한 켈시는 순순히 점원의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쌓여있는 딥 다이버를 바라보고는, 이를 악물며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는 자신의 딸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를 고민하면서.
그리고 이런 상황이, 전국의 게임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대놓고 눈앞에 쌓여있는 딥 다이버를 ‘가져가지 못하게’하는, 게이머에겐 최악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상혁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그림’이었다.
“물량은 공급하되, 판매는 하지 않을 겁니다.”
상혁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처음 내었을 때, 클래시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자 상혁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자신을 바라보는 클래시를 보며 입을 열었다.
“클래시 씨.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게 뭔지 아세요?”
“글쎄요? 이유도 말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꺼내놓는 거요?”
클래시의 가벼운 농담에 상혁은 웃으며 자신이 어째서 그렇게 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화나게 하는 방법은, 뭔가를 주었다 뺐는 겁니다.
일종의 전시효과죠.
아예 매장에 물건이 없는 상태에서 ‘판매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라는 통보를 받는 것과, 지금 당장이라도 구매할 수 있을 것처럼 산더미처럼 물건이 쌓여있는데 같은 통보를 받는 것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아, 그러니까 ‘없어서 못사는’ 느낌이 아니라 ‘있는데도 못사는’ 느낌을 주려는 거군요?”
“그렇죠.”
“그렇게 되면 모든 게이머들이 ‘왜 물건이 있는데 사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될거고요? 자연스레 SEC의 이번 판매 중지 요청에 대한 뉴스를 찾아보겠군요.”
“그게 제 의도입니다.”
“기발하네요. 제가 게이머라도 열받겠어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것만 할 건 아닙니다. 그 정도로는, 게이머들이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하기엔 약하니까.”
“그럼 뭘 더 하시려는 거죠?”
“이걸 쓸 겁니다.”
상혁이 내민 것은, 딥 다이버의 제품 박스와 비슷한 크기로 인쇄된 한 장의 스티커였다.
거기엔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일본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이 제품은 미 정부의 판매 중지 요청에 의해 반송되어 일본에서 판매될 예정입니다.]
라고 쓰여진, 대놓고 미국 게이머를 빡치게 만드는 문장과 함께.
“이 스티커를 미국 전역의 게임 매장 직원들이 직접 게이머들 눈앞에서 박스에 붙이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희는 전국의 게임 매장에 안내문을 돌렸죠.
PTW와 SANY는 이번 딥 다이버의 유통과 관련하여 물량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지만, SEC의 판매 중지 요청으로 인해 해당 물량을 부득이하게 유럽과 아시아로 돌린다고요.
그리고 5천만대의 정해진 판매량이 소진된 이후에는 지금처럼 원활한 공급이 힘들 것이라는 예고도 함께 전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스티커는, 원래 미국인의 것이 되어야 했던 딥 다이버가 미 정부에 의해 다른 국가로 가버리게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거죠.”
상혁의 말을 들은 클래시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상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oh shit, 그건 진짜로 전쟁 나겠는데요?”
“그게 저희가 바라는 겁니다.
자신들은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으면서, 남이 열심히 만든 물건에 공매도로 숟가락 얹으려다 실패하니까 본인들 손해를 메꾸려고 SEC를 뒤에서 조작한 더러운 헤지펀드 세력에게 엿을 먹이는 거죠.”
“게이머의 손을 빌려서요?”
“그렇죠. 그리고 저희는 승리할 겁니다.”
“왜 그렇게 확신하시죠?”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니까.”
상혁이 말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이 아닙니다. 바로 유권자가 가진 표죠.”
“미국 게이머들에게 애도를 표해야겠군요.”
“뭐 실제로는 스티커는 퍼포먼스지 물량을 돌려서 해외에서 팔지는 않을 겁니다.
사태가 해결되면, 바로 시장에 공급을 재개해야 하니까요.”
“어디까지나 보여주기 용이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클래시 씨에게 부탁할 게 있습니다.”
“뭐든지 말씀하시죠.”
“지금 미국 시장에 들어와 있는 미 판매된 딥 다이버 800만대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숨길 수 있는 창고와 수송 체계를 준비 부탁드립니다.
공항을 거쳐서, 미국을 떠난 것처럼 보인 딥 다이버가 누구도 모르게 미국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요.”
“어려운 주문이군요.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느니 차라리 그냥 계획대로 해외로 돌려서 파는 게 낫지 않아요?
아마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팔릴텐데요.”
“그럼 ‘정말로’ 게이머들이 피해를 보게 되지 않습니까?
전 그걸 원하지 않아요.
사태가 해결되면, 저희의 편에 서 준 미국 게이머들은 바로 딥 다이버를 손에 쥘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저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일 테고요. 뭐, 작은 게 하나 더 있긴 하지만.”
“그게 뭐죠?”
상혁은 설명하는 대신, 회의실 중앙에 놓여있는 딥 다이버를 클래시에게 내밀었다.
“그걸 쓰고 스티커가 있는 쪽을 바라보세요.”
그러자 상혁의 말을 들은 클래시가 그의 말대로 딥 다이버를 머리에 쓴 채 스티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씩 웃으며 딥 다이버를 벗고 상혁에게 말했다.
“이건 진짜 기발하네요.”
“그렇죠? 모든 전투가 끝나면, 이 스티커는 그들에게 좋은 보상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 싸움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겠죠.
좋습니다. 저희 로펌의 능력을 총동원해서 절대 들키지 않을 보관 및 수송 체계를 만들어드리죠.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는 게 기대되는군요.”
“정보가 늦으시군요. 반격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네? 아직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게다가 게이머들이 결집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할 테고요.”
“이번 전쟁에서, 반격을 게시하는 건 게이머가 아닙니다. 저희도 아니고요.”
“그럼 어디죠? 거대 헤지펀드 5개가 달려든 문제에 쉽사리 손을 뻗을 투자자는 별로 없을 텐데요?”
“정상적이라면 그렇겠죠. 기본적으로 월가 양복쟁이들은 경쟁하는 듯 보여도 어차피 한통속이니까.
하지만 정상적인 집단이 아니라면 어때요?
수치보다는 감성에 집중하고, 상대가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겁먹지 않는 투자자 집단이 있다면요.
그리고 무엇보다, 헤지펀드의 존재를 지옥의 악마보다 증오하는 존재들이 있다면?”
“그런 존재들이 있습니까?”
클래시의 질문을 들은 상혁이 미소 지었다.
그도 회귀 전의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 집단의 존재 자체를 몰랐었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용히 음지에서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 세력이, 이번 공매도를 주도한 헤지펀드 세력에 치명타를 날릴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임을.
“클래시 씨.”
상혁이 말했다.
“혹시 월 스트리트 배트 (wallstreetbets)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상혁이 말한 이름.
그것은 미국의 ‘주식 갤러리’로 불리는 웹 게시판의 이름이자, 상혁이 회귀하기 전에 초유의 공매도 관련 사건을 일으킨 거대 투자자 집단이 사용하는 서브 레딧(Subreddit)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