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 되팔렘의 회상
전 세계 PTW 팬들에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그 후기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되팔렘이다.]
그렇게 조금은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된 글은, 본문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연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이번 컨벤션의 티겟을, 순수히 남에게 되팔아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구매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전에 게이머용 코넥트도 몇 번 되팔이 했었고, PTW의 물건은 그것이 게임이든 행사 티켓이든 언제나 돈이 되니까.
게다가 이번 행사는 처음으로 한국에서도 진행한다고 했기에, 난 미친 듯이 새로 고침을 눌러 결국 2만장의 티켓 중 한 개의 티켓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들 알다시피, NE 컨벤션의 티켓 가격은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편이다.
행사 전에는 첫날 티켓의 가격이 가장 높았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행사 내용이 공개되고, 행사장에 방문한 모든 관객에게 딥 다이버의 한정판이 판매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티켓 가격이 말 그대로 치솟기 시작했으니까.
2만 원에 구매한 티켓이 순식간에 수백만 원, 심지어 천만 원 단위로 거래가 성사되는 것을 지켜보며, 내 심장은 몇 달 치, 혹은 일 년 치 생활비가 될지도 모를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티켓을 중고 거래 카페에 올리고,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도대체 겨우 게임일 뿐인 이 행사에 왜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행사를 왜 2만 원짜리 티켓에 몇백만 원을 내면서 행사를 가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차피 기다리면 손에 들어올 주변기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지금 이대로 티켓을 팔면 난 그 마음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난 중고나라에 올린 거래 글을 취소하고, 구매자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티켓으로 갈 수 있는, NE 컨벤션의 한국 이벤트 마지막 날 행사에 참가했다.
남들처럼 PTW의 팬이라서도 아니고, 딥 다이버란 게임기용 주변기기를 하루라도 먼저 손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에서.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다.]
사실 PTW팬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되팔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 세계 게이머 팬덤 중에, 가장 되팔이들에게 고통을 많이 받았던 팬덤이 바로 PTW의 팬덤이었으니까.
애당초 게임이야 PTW에서 항상 물량을 무지막지하게 퍼부으면서 공급에 힘쓰고 있다고 해도, PTW가 직접 생산하지 않는 하드웨어 부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기에 PTW의 게임은 항상 ‘게임은 가지고 있지만, 게임기가 없어서 하지 못 하는’ 기묘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코넥트의 경우 유저가 만족할 수준의 보급률이 갖춰지는데 거의 7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면서 심지어 코넥트를 이미 가지고 있는 유저들도 인터넷 샵에 코넥트가 올라오면 무조건 구매한 뒤 프리미엄을 붙여 다시 되팔거나 지인에게 정가에 판매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가 될 정도였다.
거기에 나온 지 5년 이 지날 때까지 MYOM과 코넥트가 포함 된 X-BOX 360 ‘소서러 에디션(Sorcerer's Edition)’은 매년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 1위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며 MS가 8세대 콘솔 발매 이후에도 오로지 MYOM 때문에 7세대 콘솔을 계속 발매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지금은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어느 집이나 대형 TV 위에 코넥트가 올려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2009년 11월 15일, 역사적인 1차 NE 컨벤션에서 코넥트가 발표된 이후로 한동안 코넥트는 정말 구하기 힘든 머신이었다.
하고 싶은 게임을, 심지어 그 게임을 구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기기를 구하지 못해서 하지 못하는 기분은, 게이머에게 분노를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처음엔 코넥트의 생산과 보급을 담당한 MS에게로, 이후엔 아예 게이밍용 코넥트를 싸다는 이유로 산업 현장으로 끌고 간 기업들에게로 향했다.
가계에 보안용으로 설치된 게이밍용 코넥트를 게이머가 발로 차서 박살내거나 뜯어서 가져갔다는 뉴스가 연일 신문에 나올 정도로, 코넥트의 보급 관련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게이머들의 그런 분노가 도착한 종작첨이, 바로 되팔렘들이었다.
‘NE 컨벤션 티켓을 암표로 팔 때는 주의하라. 티켓을 구매하러 온 팬이 당신을 피떡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라는 경고가 암표상들 사이에 돌아다닐 정도로, PTW팬들의 되팔렘에 대한 분노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2만 원짜리 티켓을 800만원에 사야 하는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을 인간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러나 자신을 되팔렘이라고 고백한 그 유저는, 팬들이 되팔렘들에게 가지는 분노가 단순히 티켓값에 붙은 프리미엄이 비싸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내 글을 보고 있는 PTW의 팬들은, 내가 되팔렘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당연히 자신들에게 2만원이라는 가격에 돌아갔어야 할 티켓을 가로채 수백만 원의 이익을 남기려고 했다는 이유로 날 비난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는 것 뿐이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데 물건이 부족하다면, 가격이 오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그러나 난 되팔렘 짓을 오래 해오면서 이토록 극단적으로 되팔이를 혐오하는 집단은 본적이 없었다.
중고 거래 게시판에 티켓 판매글을 올리거나 코넥트를 판다는 글을 올리기만 해도, 사고 싶다는 문자가 1개 올 때 거의 자살 충동이 느껴질 정도의 비난 문자가 수십 개씩 오는 것이 PTW관련 제품들이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는가?
확실한 건 내가 1996년에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 티켓을 되팔이 했을 때도 이 정도로 욕먹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되팔이를 하면서, 난 고객에게 감사 인사를 받은 적도 꽤 있었다.
원래 대로라면 바빠서, 혹은 요령이 없어서 구매할 수 없었을 물건을 우리 덕분에 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왜 PTW팬들은 그토록 되팔이를 혐오할까?
난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수백만원이 될지 모를 이윤을 포기하고 3차 NE 컨벤션에 참가했다.
어째서 PTW의 팬들이 PTW가 제공하는 것에 되팔이들이 끼어드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지.
그리고 어째서 그렇게 혐오하는 되팔이들에게 수백만 원의 웃돈을 얹어서라도 행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하는지.
그리고 어째서 행사 입장 인원을 꼴랑 하루 2만 명으로 제한한 PTW는 비난하지 않는 건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행사장에 들어간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내 손에 쥐어진 묵직한 핸드백.
그 안에 들어있는 각종 굿즈와 딥 다이버용 악세서리.
굿즈 중에는 심지어 방송이나 휴대폰으로 현장을 촬영하다 배터리가 방전 날 유저들을 위해 PTW에서 준비한 멋진 디자인의 보조 배터리도 있었다.
그것도 완전히 충전된 상태의.
난 그 가방의 가격만 해도, 이미 2만 원을 가볍게 넘어간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행사가 끝나고 관객들에게 유료로 판매한 딥 다이버 본체를 제외 하더라도.
행사장 자체는?
이미 수많은 팬들이 딥 다이버의 시야 공유를 통해 방송된 화면을 보아서 알겠지만, 그 현란한 세트는, 외계 기술 수준의 AR 보정을 받았음을 고려하더라도 절대 싸구려 세트는 아니었다.
대체 PTW가 이 행사를 위해 1인 당 얼마를 퍼부은 것인지.
난 그 비용이 절대 백만원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쇼케이스.
일본을 제외하면 시간대가 전부 다른 전 세계의 5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무리수가, 오로지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 프랑스 르 사르트 서킷의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이 회사가 진심으로 팬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피부로, 그리고 두 눈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내가 숨 쉬고 있는 공기.
내가 보고 있는 모든 풍경.
가방에 담겨있는 보조 배터리와 음료수까지.
그건 일개 게임 회사가 전세계 수천만의 게이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우리는 너희를 사랑한다고.
난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PTW의 팬들이 그토록 우리 같은 되팔이들을 혐오하는지.
우리가 그들에게 가로챈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린 PTW라는 회사가 팬들에게 바치는 ‘사랑’ 그 자체를 가로챈 것이었다.
인당 수백만 원의 적자를 감수하고, 몇십조가 될 수 있는 환상적인 제품의 이윤을 포기하면서, 어떻게든 게이머가 행복할 수 있는 가격대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VR기기를 만질 수 있게 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우리가 가로챈 것이다.
코넥트 때도 그랬다.
그건 절대 그 시대에 그 가격으로 나올 수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원래 그건 ‘산업용 코넥트’정도의 가격으로 팔렸어야 하는 물건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PTW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타사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수단까지 써 가면서 게이머들에게 최대한 싼 가격에 코넥트를 제공하려 애썼다.
그리고 지금은?
딥 다이버는 코넥트보다 3배, 아니 수십 배는 심한 격차가 있는 물건이다.
난 아직도 앞으로 20년 이상은 이것보다 좋은 VR기기가 나올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딥 다이버가 내게 보여준 장면과 체험은, 그 정도로 환상적인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걸 겨우 콘솔 게임기 가격에 판매한다고?
거기서부터는 이윤이 아니라 한 대 팔때마다 수십만원의 적자를 감수해야하는 영역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한다.
왜?
게이머를 사랑하니까.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필사적으로 만들어낸 ‘적정 가격’에 게임기를 구매해서, 그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게임을 즐겁게 게이머들이 플레이하는 것.
오직 그것뿐이니까.
내가 NE 컨벤션에서 체험하고,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도 플레이하고 있던 PTW의 게임은, 단순히 재미만을 주는 게임이 아니었다.
그들의 게임은, 그들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플레이하는 사람이 계속 한가지 감정을 떠올리게 만드니까.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세상에 자신의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를 행복하기 위해서, 이 정도로 노력하는 존재가 있구나.라고.
심지어 PTW가 직접 만든 게임이 아닌 게임에서도, 그런 PTW의 향기가 사방에서 묻어나온다.
구란트리스모 7을 할 때도, 원래대로라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게임의 퀄리티나 만듦새에서 PTW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페이드 컴뱃을 할 때도, 마치 옆에서 속삭이듯이 게임을 하는 내내 PTW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PTW의 우주 전함 게임을 할 때 가장 강하게 들린다.
되팔이를 위해 구매한 택배 박스들로 가득한 내 방이, 우주 전함의 멋진 상황실로 변한 모습을 보면서, 난 PTW가 내게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게임을 하는 내내 거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들의 질문이 명확하게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내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어때요, 이 게임을 하면서 행복하시죠?’라고.
내가 뭐라고 대답했을까?
난 욕을 했다.
누가 실제로 나에게 질문한 것도 아닌데,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너무나도 잘 만든 이 게임이, 오로지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 게임이, 날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X발. 우리 엄마도 날 이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았다고. X친 새끼들. 존나 행복하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 난 되팔이를 관두지는 않을거다.
그건 내 돈벌이고, 내 직업이니까.
하지만 난 적어도 PTW의 제품에 대해서는 더 이상 되팔이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사랑을, 중간에서 가로챌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거니까.
그건 보이지 않는 손 할애비가 와도 그러면 안 되는 거다.
그러니까 다른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네가 양심이 있다면, 적어도 PTW 관련 제품에서는 되팔이를 하지 말라고.
그리고 되팔이 할 여유가 있으면 니가 직접 그 팔려는 물건을 플레이해보라고.
그럼 분명 나랑 같은 기분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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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번역 언어 12개.
번역된 게시글의 추천수를 합쳐 총 추천수 9523만개를 기록한 이 게시물의 댓글은, 그의 말에 동감하는 수많은 팬들의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다.
↳ 하 X발 3번 봤는데 아직도 눈물 남. 이놈 글 개 잘 씀.
↳ 미친. 그렇지. 우리가 화내는 이유는 그거라고. PTW가 우리를 위해서 싸게 파는 물건에 손가락 얹지 말라는 거야.
↳ 난 차라리 PTW에서 가격을 더 올려받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되팔이가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차라리 그 돈이 PTW에게 가면 다음 게임은 더 멋지게 나올 거고 다음 NE 컨벤션은 진짜로 끝내줄 테니까.
↳ 이번 행사는 진짜 레전드였음.
그거 들음? 딥 다이버 한정판 패키지 매뉴얼에 적힌 거?
‘이번 게이밍 용 딥 다이버엔 커스텀 워크 패스트 어플리케이션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 그게 무슨 의미야?
↳ PTW가 AR 시연에서 보여주었던 수많은 기능들을, 게이밍 용 딥 다이버로는 산업현장에서 쓸 수 없다는 이야기지.
회사에서 그걸 쓰려면 자사 용도에 맞는 워크 패스트 용 애드온을 제작해서 얹어야 하는데, 게임용 딥 다이버는 그게 안 된다는 말이야.
게임 챗 같은 정해진 워크 패스트 에드온만 쓸 수 있고, 게임만 돌릴 수 있다는 의미지.
↳ ㅇㅇ 나도 그 메시지 보고 엄청 놀람. 솔직히 이번에도 코넥트처럼 산업 현장에 다 끌려갈 줄 알았는데.
↳ 그래봤자 소용 없음. 이거 100% 무조건 SANY에서 적자보고 파는 물건인데, 걔네가 그럼 산업용을 우선적으로 만들지 게임용 딥 다이버를 우선으로 만들 리가 없잖아.
예전에 MS가 그랬던 것처럼, 우린 당분간 구경도 못 할걸?
↳ 뭔 소리냐 오늘 아침에 한우리 매장 가니까 딥 다이버 패키지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던데.
그나마도 순식간에 전부 매진됐지만.
그래도 코넥트 때랑은 지금 보급 물량이 비교가 안 됨.
SANY가 작정하고 물량 투입 중임.
↳ 나 SANY 코리아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그거 PTW에서 SANY측에 게임용 딥 다이버 5천만 대 출하할 때까지 산업용 딥 다이버 출하 못 하게 막았다더라.
↳ 미친, 그거 진짜임?
↳ 99% 확실함. 하지만 5천만 대가 많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X-BOX에서도 딥 다이버 지원하면서 이제 경쟁자가 2배 이상 늘었으니까.
아마 5천만 대 전부 보급된 이후에도 물량 계속 달릴걸?
↳하 씨, 오늘부터 매일 게임 한우리 매장 들른다.
↳ 그거 한우리 안 들러도 됨. 딥 다이버는 전 매장 가격 통일임. 더 싸게 못 삼.
그리고 거기에 매장에서 추가 마진 붙여 팔다 걸리면 물량 공급 안 해준다고 못 박았음.
딥 다이버 뿐만 아니라, 앞으로 PTW의 모든 제품 공급 계약 파기한다고.
그래서 지금 용팔이들 눈물 줄줄 흘리는 중.
↳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네. 이게 진짜 K-게임사가 맞습니까?
***
상혁은 기본적으로 주요 게시물에 달린 댓글도 꼼꼼하게 체크하는 편이었지만, 이번엔 모든 댓글을 읽는 것을 포기했다.
인간적으로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러나 대충 눈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전반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의 노력이, 게이머들에게 얼마나 통했는지도.
“기분 좋네. 팬들이 엄청 좋아하네.”
그러자 상혁의 옆에 있던 서연이 커피를 홀짝이다 상혁에게 말했다.
“뭐, 누구라도 그런 걸 눈앞에서 보았으면, 우리 회사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죠. 뒤에서 지켜보던 저도 울 뻔 했는데.”
“그 정도였어?”
“다음 행사가 부담될 정도로요.”
그렇게 말하며 서연이 한숨을 쉬는 이유를, 상혁은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서연이 맡은 프로젝트.
‘프로젝트 히어로’가 넘어야 할 거대한 벽이, 바로 3차 NE 컨벤션이 되었기 때문에.
매번 전설을 써 내려간다는 것의 의미는 그러했다.
점점 더 부담이 심해진다는 것.
그리고 매번 자신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상혁은 그것도 자신이, 그리고 서연을 포함한 PTW가 함께 넘어야 할 벽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리고 상혁은 그것에 대한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
“너무 부담은 느끼지 마. 결국 이번 3차 NE 컨벤션의 모든 것은, 프로젝트 히어로를 위한 밑작업 같은 거였으니까.”
“그래요?”
“그렇지. 그 게임이 전 세계 모든 유저를 깜짝 놀라게 만들만한 ‘완벽한’ 게임이 되기 위해서, 우린 돈을 벌어야 했거든.”
“하지만 딥 다이버 판매로는 한푼도 못 벌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기기 보급 예상량이 최소 5천만이야.
그리고 우리 게임은 전체 게임 중에 딥 다이버의 공간 인식 기술을 완벽하게 적용한 유일한 게임이지.
그러니까 딥 다이버를 100% 즐기려면, 다른 게임보다는 우리 게임이 유리한 거야.
굳이 게이밍 체어가 없어도 100% 체감형 게임으로 즐길 수 있는 게 이번 신작의 컨셉이었으니까.”
상혁의 말대로 PTW의 신작은 ‘우주선 함장’이라는 컨셉에 맞게 컨트롤러 없이 대화만으로 모든 플레이가 가능하게 개발된 게임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의 MYOM이 코넥트를 구매할 때 반드시 구매해야할 필수 타이틀이 된 것처럼 이번 신작도 딥 다이버를 구매한 유저라면 무조건 구매해야 하는 필구 타이틀이라는 의미이기도 했고.
상혁은 그 부분에서 막대한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였다.
“딥 다이버가 5천만 개 팔린다면, 우리 신작도 5천만 개 팔릴 거라고 나는 생각해.
정확히 그 정도는 아니어도 근사치엔 접근하겠지. 그리고 그건 게임 3개를 만들어서 합산으로 5천만 카피를 만드는 것보단 이윤이 많이 남는 법이고.
그리고 우린, 당분간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은···.”
“맞아.”
상혁이 말했다.
“이제 탄환이 생겼으니, PTW가 가진 전 화력을 프로젝트 히어로에 투입하겠다는 말이지.”
이미 ‘전설을 넘어선 전설’로 취급받는 3차 NE 컨벤션.
그러나 유저들이 모두 ‘이 이상의 발표는 없다’라고 감탄하고 있을 때, 상혁은 이미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게임이 공개된 순간, 앞에서 PTW가 만든 모든 게임들을 오징어처럼 보이게 만들 멋진 게임을 만들 계획을 세우며.
그런 야심찬 상혁의 표정을 본 서연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저 사람의 머릿속에는, 애당초 부담감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다 문득 서연의 머릿속에 질문 한 가지가 떠올랐다.
“오빠?”
“어.”
“그런데 프로젝트 히어로가 만약에 오빠가 말한대로 3차 NE 컨벤션에 나온 게임들을 압살할 게임이라고 치면, 그 이후엔 어쩌실거에요?”
“그 이후라면?”
“그 이후에도 저흰 게임을 계속 만들 거 아니에요.
만약 저희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완벽한 게임을 완성한다면, 그 이후엔 어떻게 하시겠냐는 말이죠.”
“글쎄.”
잠시 고민하던 상혁이 말했다.
“아마 ‘아 젠장! 과거의 나! 대체 이걸 어떻게 넘어서라고 이따위 게임을 만든 거야? 이런 빌어먹을 놈!’이라고 투덜대면서 그걸 넘으려고 노력하겠지.”
“풉. 오빠 답네요.”
“PTW다운거지.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건 그래요.”
그렇게 말한 서연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헐리웃 슈퍼 히어로 영화를 능가하는, 멋진 디자인의 슈트를 입은 수많은 커스텀 히어로들의 컨셉 아트가 놓여 있었다.
상혁은 서연의 옆으로 다가와 그 컨셉아트들을 함께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연에게 말했다.
“너 그냥 지금 당장 머블 코믹스 취직한다고 해도 받아주겠는데?”
“왜 더 좋은 회사에서 안 좋은 회사로 가야 하는데요?”
“머블이면 나쁘지 않지 않나?”
“지금의 PTW 보다는 아니죠.”
“진심이야?”
“적어도 저에게는 그래요.”
“다행이네. 만약 서연이 네가 머블 코믹스에 간다고 하면 머블 본사를 날려버려야 했을 테니까.”
“어머, 오빠한테는 제가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직원이었어요?”
“그럼, 세상에 너처럼 매 게임마다 그 게임 컨셉에 딱 맞춰서 성장하는 원화가가 어디 있다고. 넌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그렇게 말한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이제 슬슬 미국으로 가야겠네.”
“엥? 또 출장? MS때문에요?”
“아니, 법원.”
“법원이요? 이번엔 뭐에요? 특허권 분쟁? 아니면 반독점 소송?”
“아니, 소송 받은 쪽은 우리가 아니야. MS지.”
상혁이 말했다.
“이번에 MS가 딥 다이버 지원 발표하면서 주가가 폭등했잖아.
그것 때문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에서 MS에 소송을 걸었거든.
딥 다이버는 내가 이런 사태를 고려해서 이미 출시 시점부터 X-BOX를 지원하게 개발되어 있었지.
그냥 꽂으면 돌아가게. 근데 그게 문제가 된 거야.
미리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정보를 숨겨서 주식 시장을 교란했다고, 윌 게이트 대표가 소환당했다네.
난 증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거고.”
“헐, 그럼 SEC랑 싸우는 거예요?”
“아니. SEC는 그냥 칼잡이지, 뒤에서 지시한 세력은 따로 있을 걸?”
“누구요?”
“누구긴 누구야. 이번에 MS에 풋옵션 걸었다가 조 단위로 손실 난 헤지펀드들이지.”
“월가의 거물들이군요.”
“응.”
보통의 사람이라면 두려움을 느낄만한 사항이었지만, 서연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대가 월가의 거물들이라 하더라도, 그 앞에서 싸우는 것은 상혁이었으니까.
“이기고 오실 거죠?”
서연의 질문을 받으며, 상혁은 양복의 단추를 잠갔다.
회사에서 평소에 입는 캐쥬얼과는 다른, 깔끔하게 보이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서.
그리고는 서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박살 내고 올게.”
뒤에서 해지펀드의 지시를 받아 이뤄진 SEC의 MS 조사.
그리고 그로써 발생한 PTW의 참전.
그것은 이후에 PTW가 미국 금융계에서 ‘월가의 악몽’이라 불리게 되는 계기가 된 거대한 소송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