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86화 (287/485)

286. 게이머의 수호자

“좋습니다. 우선, 몇 가지 짚고 넘어가죠.”

윌의 자조 섞인 말을 들은 크리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몇 년 전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경고했던 것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전 한국에 가서, 그때는 ‘PTW VR’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고 있던 딥 다이버의 프로토 타입을 체험해보았고, 그것이 엄청난 물건이라고 말씀드렸었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지금, PTW는 언제나 자신들이 했던 것처럼 그들이 개발하던 것과는 안드로메다만큼 떨어진 물건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기존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VR 성능과 AR 성능에 더불어, 모션 인식 센서와 스트리밍 방송 지원 기능, 시야 공유 기능과 기기에 연동되는 게이밍 체어까지 들고 나왔죠.

그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하게 벗어난 물건입니다.”

“예상되는 데미지는?”

“글쎄요. 일단 기기 구조상 센서가 딥 다이버 본체에 달려있으니 전신 인식은 안 될 겁니다.

단순히 기기 앞쪽으로 손을 뻗어서 움직이는 팔이나 손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게 전부겠죠.

그러나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기기 자체가 가진 포텐셜 자체가 어마어마합니다.

지금 전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체감형 기기도 딥 다이버가 제공하는 현실감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겠죠.”

“VR기기라면 페이즈 북에서 인수한 오쿨러스 리프트도 있지 않습니까?”

“하, 오쿨러스 리프트요?”

다른 임원의 지적에 크리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저희와 마찬가지로 가장 절망하고 있는 사람이 아마 페이즈 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일겁니다.

아마도 지금 쯤 23억 달러를 주고 쓰레기를 사 왔다고 하면서 절규하고 있겠죠.”

“크리스.”

그때, 윌이 크리스의 이름을 부르자 크리스가 한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벽의 거대한 화이트 보드 앞에 서며 말했다.

“원래는 제가 알고 있는 기존의 스펙을 기반으로 준비한 자료가 있었습니다만, 지금 공개된 행사 내용을 보니 그건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군요.

그냥 보드에 적으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공개된 내용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딥 다이버의 기능에 대해 짚고 넘어갑시다.”

그렇게 말한 크리스는 화이트 보드에 일련의 목록을 적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개된 행사 영상을 통해 파악 가능한 딥 다이버에 대한 정보에 관한 목록이었다.

▶ 주변기기임에도 8세대 콘솔이 제공하는 게이밍 성능을 아득히 초월하는 스펙.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쓰는 것에 전혀 부담이 없게 느껴지는 완벽한 무게 밸런스.

▶ 핸드 트래커를 이용한 코넥트의 성능에 준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손 동작 인식 수준.

▶ 안에 있는 센서를 이용하여 주변 공간을 인식, 집 안을 가상의 공간으로 바꿔주는 기능.

▶ 정해진 형태의 악세서리가 있다면 그것을 인 게임의 조작 체계와 동기화 시켜 게임 컨트롤러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능.

▶ 게이머가 보고 있는 시야를 스트리머 방송으로 송출하는 기능.

▶ 동시에 시청자의 채팅을 게임 도중에도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바로 볼 수 있는 기능.

▶ 현실에 존재하는 오브젝트에 3D이미지를 씌워 만질 수 있는 가상 공간을 만들어내는 기능.

▶ 유저의 손가락 위치를 파악하여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된 UI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하는 기능.

▶ 연결된 게임기의 성능을 부스트하여 기존 게임을 더 고해상도의 고 프레임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기능.

▶ 좁은 방 안에서 게임을 하더라도 75인치 이상의 가상 화면을 갖춘 ‘가상 TV’를 사용하여 좀 더 나은 게이밍 경험을 제공하는 기능.

“발열이나 배터리 지속시간에 대해서는 지금 영상으로 확인하긴 불가능하므로 언급하긴 어렵습니다만, 아마도 그것도 만족스러운 수준이겠죠.

PTW의 CCO 이상혁의 성격을 생각하면, 게이머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면 절대 출시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자 X-BOX의 하드웨어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CTO 오토 버크스가 손을 들어 크리스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러니까 크리스 씨의 말은, PTW의 저 새로운 장비가 그 무거운 8세대 콘솔보다 더 뛰어난 처리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무선으로 동작할 만큼 전력 소모가 적고, 해상도는 8세대 콘솔보다 더 높다는 이야기입니까?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잊으셨습니까? 그들에게는 STC가 있습니다.”

크리스가 말했다.

“지금은 2세대까지 발표된 갤럭틱 M 폰 시리즈를 보세요.

갤럭틱 M에서 돌아가는 안드로이드는, 다른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안드로이드와 본질적으로 다른 물건으로 취급됩니다.

그만큼 손바닥 안의 작은 휴대폰에서 돌아가는 운영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죠.

그건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레벨의 단계까지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최적화 해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최적화 된 코드를 돌리기 위한 칩셋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포진한 스컹크 웍스에서 설계하죠.

PTW의 CTO. 김민준은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류는 이미 지금 가지고 있는 컴퓨팅 성능의 절반도 안 되는 컴퓨터를 가지고 사람을 달에 보냈다고요.

그리고 1994년 발매된 ‘라스트 판타지 6’는, 3MB밖에 안 되는 롬 카트리지 용량으로 100시간이 넘는 플레이 데이터를 모두 담았고요.

요즘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슈퍼 뫄리오 1편의 스크린 샷을 찍은 사진 파일 용량이 슈퍼 뫄리오 본편보다 용량이 더 크죠.

STC라는 건 그렇게, 사양이 올라가면서 편의성이란 이름으로 낭비되는 모든 요소들을 전부 최적화해버리는 물건입니다.

아예 그 프로그램만을 위해서 기계어 레벨까지 최적화를 해주는 물건이죠.

그건 인간인 프로그래머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그 작업을 랜더링 센터의 도움을 받아 해내고 있죠.

그러니까 예. 아마도 지금 공개된 모든 게임들은, STC의 도움을 받아 최적화가 된 프로그램들일 겁니다.

그러니 저 정도 퍼포먼스가 가능한 것일 테고요.”

“그럼 다른 개발사에서 딥 다이버용 게임을 개발하려고 한다면, 무조건 STC를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겠군요?

STC를 사용하려면 무조건 PTW에 소스코드를 넘겨야 하지 않나요?

지금 저 5회사가 전부 그 조건에 동의했다는 말입니까?”

일반적으로 게임의 소스코드 역시 개발사의 자산이기 때문에, 오토는 그런 부담을 5개 개발사가 전부 감수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오토의 질문을 받은 크리스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비꼬듯이 말했다.

“소스 코드요? 오토 씨. PTW의 스컹크 웍스엔 그 김민준 외에도 존 스킷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노하우 유출이나 보안을 위해 소스 코드를 감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넌센스에요.

그건 마치 방금 입사한 신입 사원이 리드 프로그래머에게 자신의 노하우가 유출될 수 있으니 작업한 코드를 넘기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오토 씨는 그 신입사원에게 뭐라고 하겠어요?”

“지랄하지 말라고 하겠죠.”

“바로 그겁니다.

애당초 이번에 참여한 어떤 업체도 PTW의 기술력을 능가하는 업체가 없고, 그 어떤 업체도 PTW에게 이득이 될 만한 카드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냥 그들은 PTW가 제공한 달콤한 꿀을 받아먹었을 뿐이고요.

엉터리인 코드를 짜서 가져가도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버그를 잡고, 코드를 수정해서 STC에 넣고 돌려서 돌려줬겠죠.

그리고 그 결과물은 현존하는 컴퓨팅 능력으로는 도저히 구현 불가능해 보이는 최적화된 게임이 되었을 거고요.”

오토가 입을 다물자, 크리스는 다시 입을 열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적에 대해 알았으니, 남은 것은 대응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저는 한국에서 딥 다이버의 프로토 타입을 체험하고 MS에 돌아와서, 그동안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에 대해 여러 가지 대응책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타입의 하드웨어 개발로, PTW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죠.

뭣보다 STC같은 최적화 프로그램이 없으면, 저 딥 다이버란 물건은 존재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이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지금까지 택한 전략은, 최대한 많은 게임회사에 인수제안을 넣는 것이었습니다.

하드웨어로 주는 경험에서 밀린다면, 남은 건 소프트웨어로 밀어붙이는 것뿐이니까요.

적어도 조금 전까지는, 저는 그게 유효한 전략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PTW가 아무리 개발력이 뛰어난 회사라 하더라도, 그들이 새 하드웨어를 위해 낼 수 있는 게임은 기껏해야 3개 타이틀 정도일 테고, 그 모든 게임이 새로운 IP일 것을 감안하면 기존의 유명 IP를 저희가 확보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리고는 덤덤한 말투로 자신이 실패를 인정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크리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혁이 공개한 카드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제가 예상했던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도, PTW가 다른 개발사를 끌어들이는 시나리오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게임을 만들지, 다른 게임 개발사랑 협력해서 뭔가를 추진하는 업체는 아니었으니까.

아니, 상식적으로 그건 게임회사의 상식을 벗어난 행위입니다.

뭣 하러 자신들이 가진 노하우와 기술력, 그리고 노동력까지 제공하면서 다른 회사의 게임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겠습니까?

그건 진짜 말이 안 되는 거죠.”

이어지는 말은 크리스가 아닌 윌이 꺼낸 말이었다.

윌은 덤덤한 목소리로, 크리스에게 그것이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PTW가 그런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뭐, 그 슈퍼볼 광고가 나오기 전에는 정말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건 크리스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이 사태로 인해 저희가 받을 데미지가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느냐죠.

크리스 씨. X-BOX의 게임 사업을 총괄하는 사업부장의 COO(Chief Operation Officer: 최고 관리 책임자)로서, 당신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시나리오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그 대응책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런 윌의 질문에 대해, 크리스는 상당히 암울한 답변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 앞에 놓여있는 미래가, 지금으로써는 너무나 어두웠기 때문에.

“절망적입니다.”

크리스가 말했다.

“코넥트는, 물론 좋은 장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변기기’의 역할에 충실한 장비였죠.

그건 단순히 컨트롤의 종류를 패드에서 모션인식으로 변화시켜주는 장비에 불과합니다.

물론 발매된 시기를 감안하면 엄청나게 말도 안되는 오파츠이긴 하지만,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장비죠.

하지만 딥 다이버는 말 그대로 게임 업계에 한 획을 그을 장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산업계나 우리들의 삶에도 영향을 크게 끼치는 장비가 되겠죠.

당장 PS의 콘솔 시장 점유율이 거의 폭발적인 수준으로 늘어날 겁니다.

SANY에서 딥 다이버의 초도 물량을 얼마나 준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수량이 얼마든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겠죠.

전 세계의 게이머가 딥 다이버를 구매하길 원할 겁니다.

저런 멋진 게임들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딥 다이버를 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구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PS를 구매하겠죠.

저는 지금의 점유율이 역전되는데 3달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3달?”

“그것도 PS 본체의 점유율이 증가하는 시기만 감안한 겁니다.

딥 다이버란 물건의 대단함은, 코넥트가 가지고 있는 포텐셜보다 훨씬 크니까요.”

“그 이후엔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우선 지금부터 저희가 퍼스트 파티 인수에 들이는 금액이 크게 증가할 겁니다.

그 어떤 게임 개발사도 가장 많이 팔리는 콘솔에서 게임을 내고 싶어 하지, 밀리는 콘솔에서 게임을 내고 싶어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9세대 콘솔은······. 말하기도 싫지만 무조건 PS 진영이 압승할 겁니다.

코넥트 때 그러했듯이, 저 딥 다이버란 물건도 충분히 10세대 콘솔의 성능까지 커버할 수 있는 장비로 개발되었을 테니까.

재무적으로 보면 SANY는 한동안 고생하겠죠.

저희가 코넥트 발매 초기에 그랬듯이, 딥 다이버도 분명 게이밍 용은 적자를 SANY에서 감수하고 발매하는 물건이 될 테니까.

그 비용도 엄청날 겁니다.

일단 기기 성능을 볼 때 최소 대당 100달러 이상은 SANY에서 적자를 본다고 봐야겠죠.

발매 이후 SANY가 시장에 3달 동안 2천만 대 정도를 공급한다고 생각하면 SANY가 감수할 적자 폭은 최소 이번 분기에 20억 달러 이상이죠.

저희가 노려야 할 부분은, 바로 그 부분입니다.”

“SANY의 적자를 노린다?”

“그렇습니다. 게이트 대표님. SANY와 협상을 진행하셔야 합니다.

그 모든 적자를 저희가 감수하는 조건을 걸더라도, 무조건 딥 다이버를 X-BOX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협상을.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저희 게임기는 100%, 확실하게 망한다고 저는 확언할 수 있습니다.”

“잠깐, 그 조건을 걸어도 SANY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MS가 코넥트의 독점 사용을 통해서 SANY가 겪어야 했던 손해를 생각해보세요.

그들로서는 버티기만 하면 수백조 원의 이득이 확실한 장사인데, 그걸 단순히 현재의 적자 몇 푼 때문에 포기한다고요?

SANY 경영진은 절대 그 정도로 바보가 아닙니다.”

한 임원이 크리스의 말에 테클을 걸었다.

애당초 자신이 SANY의 경영진이라 하더라도, 이토록 노다지인 사업을 단돈 몇조 원에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게다가 그들이 감수해야 하는 적자 폭이 얼마이며 매출 감소가 얼마이든 간에, SANY의 주가는 오늘 이후로 폭등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막대한 적자 폭도 언젠가 돌아올 미래의 이득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어마존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준비하며 투자한 수십조 원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주가는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사실은 크리스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SANY의 임원이라도, MS가 어떤 제안을 하던 듣지도 않고 무조건 거절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는 자신들이 넣을 제안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 승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공은, 딥 다이버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SANY가 아닌, 그것을 설계하고 개발한 PTW였기 때문에.

그리고 크리스는 SANY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이나, PTW란 회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괴상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속에서 가장 확실한 일관성을 지키고 있는 회사가 PTW라는 사실을.

“물론 맷 씨의 말대로, SANY에서는 저희가 수백억 달러를 제시하더라도 꿈쩍도 하지 않겠죠.

지금 이 상황을 유지만 해도, 언젠가 그들은 엄청난 돈을 벌고 우리 MS를 무덤으로 보내버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PTW는 그런 사태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거란 말이죠.”

“지금 농담하십니까?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PTW인데도요?”

“그건 PTW의 문제가 아닌, 저희 쪽 문제였습니다.

8세대 콘솔을 개발하며 콘솔 부스팅 기능 탑재에 대해 협의할 때, PTW는 저희에게 제안했죠.

슬슬 코넥트의 독점 사용을 풀고, PS유저들도 코넥트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 제안을 저희는 거부했고, 그덕에 PS 진영보다 두 배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8세대 콘솔 전쟁에서 승기를 차지했습니다.

그러자 PTW는, ‘상대적 약자’인 SANY와 손을 잡고 저희에게 반격의 카드를 날렸죠.

물론 그게 코넥트보다 20배는 아픈 펀치라 문제지만, 어찌 되었건 PTW가 원하는 것은 양대 콘솔이 균형 잡히게 성장하는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기존에 관계를 잘 쌓아온 저희와의 협력을 포기하고 SANY와 손잡을 이유가 없겠죠.”

“PTW가 무슨 콘솔 게임 업계를 조종하는 균형의 수호자라도 된다는 겁니까? 억측이 심하군요.”

“아뇨, 그들은 균형의 수호자가 아닙니다.

균형의 수호자는 균형 그 자체에 목적을 두죠.

하지만 PTW가 하는 모든 행동은 단 하나의 논리를 가지고 결정됩니다. 그게 게이머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인가, 아니면 아닌가로요.

그건 균형의 수호자라기보다는···.”

그러자 크리스의 말을 윌이 이어나갔다.

“게이머의 수호자에 가깝겠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왜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콘솔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들이, 이토록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혁 CCO와 PTW는 SANY와 MS가 균형을 이루고 경쟁하는 콘솔 시장이 게이머에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는 거겠죠.

그게 사실이라면, 저희에게도 승산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이상혁이라면, 분명 저 정도의 핵폭탄급 물건을 만들면서, SANY가 모든 권한을 쥘 수 있도록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 말씀은···.”

“SANY에 연락하세요. 내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직접 가십니까?”

“가야죠. 저는 한평생을 MS의 기기들이 한 가정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기기들을 통합하는 것을 꿈꿔왔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홈 엔터테인먼트’가 실현되는 것을 말이죠. 그러나 그런 저의 꿈에 가장 가까운 물건을 만든 것은, 제가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어 만든 X-BOX가 아니라 한국의 작은 게임회사였네요.

딥 다이버는 말 그대로 제가 꿈꾸던 이상에 가장 가까운 물건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SANY가 독점하게 만들 수 없어요. 이번 협상은 제가 직접 나가겠습니다. SANY측에 미팅 제안을 넣고, 어떻게 되는지 두고 봅시다.”

“무엇을 확인하시려는 겁니까?”

“크리스 씨가 말한 대로 PTW가 진정으로 콘솔업계의 균형을 원하고 있다면, 애당초 SANY가 모든 것을 쥐고 있을 수 있는 계약을 하지 않았겠죠.

만약 저희가 SANY와 딥 다이버의 사용권에 대한 미팅을 제안했을 때, 회의 자리에 저희가 요청하지 않은 PTW의 임원이 참가한다면, 저희 생각이 맞을 겁니다.

그건 애당초 저희가 SANY에 제안을 넣을 것까지 고려해서, 이 모든 일을 PTW에서 진행한 것이라는 이야기겠죠.”

“PTW의 임원이 미팅에 참여하지 않는다면요?”

“그럼 그땐 인정해야죠.”

크리스의 질문에 게이트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린 진짜로 X 된 거라고.”

***

그렇게 암울한 분위기속에서 MS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반대로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이번 3차 NE 컨벤션으로 인해 전 세계 게이머들의 주목을 한눈에 받고 있는 SANY의 임원들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번 3차 NE 컨벤션은, 그 존재 자체가 SANY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는 행사였기 때문에.

그러나 그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행사가, 자신들이 전 세계 게이머들이 ‘저것은 반드시 사야 한다’라고 결심하게 만들수록, 같은 생각을 MS에서도 하고 있을 확률이 올라가니까.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을 곤란하게 만들 것이었다.

“젠장, 행사 반응이 너무 좋은 게 오히려 초조하게 만드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PTW에 연락해서 지금이라도 계약 조건을 조정하면 안 될까?”

SANY의 CEO, 히라이 카즈오가 초조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의 옆에 있던 임원이 대답했다.

“절대 안 받아줄 겁니다. 애당초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니까요.”

“상혁 씨가 말한 대로 MS에서 연락을 취해오지 않을 확률은?”

“행사를 보셨지 않습니까? MS 임원들의 머릿속에 뇌가 있다면, 저걸 보고 연락 안 해올 순 없겠죠.”

“젠장, 그럼 눈뜨고 독점을 빼앗겨야 하는 건가?”

“저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제발 MS의 임원들이 자신들의 가장 큰 경쟁사에 무릎 꿇는 것을 거북해할 만큼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는 거겠죠.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딥 다이버’는 온전히 저희의 독점 기기가 될 테니까.”

“제길, 부자는 자존심이 높다는데,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하지만 자존심을 세우기엔 딥 다이버가 너무 물건이긴 하죠.”

“젠장, 만일 진짜로 이상혁이 언급한 대로 MS에서 미팅 요청이 온다면, 난 정신이 나가버릴지도 몰라.

무슨 제갈량이냐고.

대체 일개 개발자가 그 모든 걸 어떻게 알고 설계하는 거야?”

“글쎄요. 알 수 없죠. 확실한 건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도 인간이잖아요. 그리고 MS는 저희 최대의 경쟁사고.

상식적으로 이쪽에서 아무리 강력한 주변기기를 발표했다 하더라도 경쟁사에서 그 과실을 나누어달라고 비는 거 자체가 비정상이죠.

그러니 전 MS에서 연락을 해오지 않는다는 쪽에 걸겠습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순간, 그의 휴대폰으로 메일이 도착했다는 워크 패스트 알람이 울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확인한 카즈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에게 도착한 메일은, 그가 지금 가장 받고 싶지 않았던 메일이었기 때문에.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그는 MS에서 연락을 취해올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이토록 빠르게 미팅 제안이 올 줄 몰랐을 뿐.

그러나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애당초 PTW가 자신에게 딥 다이버란 물건의 개발을 제안한 시점부터, 상혁은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한숨을 쉬며 자신과 대화하던 임원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젠장, 이상혁은 진짜로 제갈량 같은 인간이 맞나 보군.”

“어쩌죠?”

“어쩌긴 어째. 상혁에게 연락해야지. 그가 말했던 미팅 제안이 들어왔다고.”

“차라리 숨기는 건?”

“숨겨? PTW를 상대로? 그랬다 걸렸을 때의 뒷감당을 자네는 할 수 있나?”

“못하죠.”

“그럼 연락이나 해.”

자조 섞인 카즈오의 목소리.

일본 굴지의 대기업을 이끄는 그의 목소리에 담긴 아쉬움은, 이미 PTW라는 회사의 존재가 콘솔 게임 업계에 있어 ‘절대 갑’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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