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 6번째 쇼케이스
“어? 저건···?”
상혁은 당황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5번째 쇼케이스를 끝낸 칸베가 ‘그럼 지금부터 게이머 최대의 축제를 온몸으로 즐겨주십시오!’라는 멘트로 쇼케이스를 마무리 한 뒤 본격적인 행사 진행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참가자가 어디에 있든 간에, 컨소시엄에 참여한 협력사들이 다 같이 준비한, 5개의 게임 중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골라서.
물론 그것은 딥 다이버의 VR 기능만을 이용한 체험이기 때문에 직접 행사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AR이벤트보다는 몰입감이 조금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행사장의 위치와 상관없이 원하는 게임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였고, 실제로 그렇게 체험한 경험은 이후에 유저가 집에서 플레이할 때와 완전히 동일한 경험이라 할 수 있었기에 상혁은 행사 구성을 그런 식으로 잡았었다.
약 한 시간 정도에 걸친 5회의 게임 공개로, 전 세계에 흩어진 10만 명의 관객들에게 각자의 게임을 최대한 어필하고, 관객들이 직접 자신이 행사장에서 체험할 게임을 고르게 하는 것.
그것이 이번 3차 NE 컨벤션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칸베는 지금 자신이 모르는 6번째 쇼케이스에 대해 언급하고는, 그것을 진행하려 하고 있었다.
행사 전체의 내용을 총괄하는 상혁에겐 전혀 알리지 않은 내용의 쇼케이스를.
‘민준이겠군.’
상혁은 생각했다.
저들이 뭔가 자신 모르게 무언가를 진행하려 한다면, 그것에 대해 결정권을 내릴 만한 사람은 민준 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상혁의 그런 생각대로, 민준은 행사를 지켜보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민준아?-
-어.-
-넌 이거 알고 있었지?-
-뭐, 그렇지.-
-적어도 NE 컨벤션에 관한 내용이라면, 나한테 사전에 협의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상혁의 투덜거림을 들은 민준이 웃으며 답했다.
이 ‘6번째 쇼케이스’만큼은, 그렇게 하면 원래의 의미가 없었으니까.
-애당초 개발팀 대표들이 찾아와서 널 놀라게 하려고 싶다고 이야기 했으니까 말을 하지 않은 거야.
그리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어.-
-뭐, 그럼 괜찮겠네.-
사실 그것은 행사의 총 책임자인 자신의 권한을 패싱하는 행동이나 다름없었지만, 상혁은 신경쓰지 않았다.
개발자들이 재미를 위한 믿음으로 진행하는 무언가는, 언제나 좋은 결과를 끌어낸다는 것이 평소 상혁의 지론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상혁은 즐거운 기분으로 6번째 쇼케이스를 지켜보기로 했다.
자신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로 준비한 것이라면, 놀라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이 준비한 게 뭘까? 무료 DLC? 아니면 깜짝 콜라보?’
그렇게 어느 쪽이든 재미있는 방향일 것이라며 기대감에 부푼 상혁의 눈에 펼쳐진 것은, 상혁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것이 지금 등장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영상이었다.
“카메라? 좀 뜬금없는데요?”
자신에게 비추는 카메라를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상혁에게 칸베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신경 쓰지 마세요. 전체적인 회의 과정이나 개발 과정을 촬영해서, 나중에 코멘터리 디스크라도 만들까 싶어서요.”
“오, 그건 좋은 아이디어네요.”
상혁은 그 대화가 언제 이루어진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두 번의 공동 QA 미팅을 끝내고 이루어진 3번째 QA회의에서, 칸베가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했던 대화가 바로 저것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은 그것이 진짜로 일종의 ‘코멘터리 영상’을 촬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 영상이 지금의 6번째 쇼케이스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상의 내용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편집되어 나올지도, 현재의 상혁은 예상할 수 없었다.
‘대체 뭘 보여주려는 거지?’
그렇게 수많은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상은 ‘개발자 시점’의 PTW를 생생하게 비추어주고 있었다.
‘개발자’로서, PTW의 직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지, 그들이 이번 행사 준비를 위해 ‘다른 회사’의 게임에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것은 게임이 아닌, 컨소시엄부터 시작해서 이번 3차 NE 컨벤션 행사 전체를 아우르는, 이번 ‘행사’에 대한 메이킹 필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조금 전 공개된 ‘간담’의 IF모드에 대한 상혁의 조력에 대한 회의 내용도 들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칸베 씨가 고민하는 건, 간담의 전체 IP를 다루는 IF모드를 개발하고 싶지만 번다이 측에서 그 수많은 라이선스를 한 개의 게임에 허가할지 의문이라는 거죠?]
[의문이 아니라, 이미 제안서를 올렸는데 반려 당했습니다.]
[우주세기만으로도 충분히 간담 팬들은 좋아할 텐데요?]
[제가 원하는 건 충분한 게임이 아니라 완벽한 게임이니까요.]
칸베의 말을 들은 상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번다이 임원진을 설득하도록 하죠.]
[예?! 그래주시겠습니까?]
[그래야죠.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임이, 게이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바로 다음 컷에서, 영상은 상혁이 칸베의 휴대폰으로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from 상혁: 이제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이든, 전부 하셔도 좋습니다.]
영상은 상혁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행사를 위해 노력한 것은, 상혁 혼자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어지는 영상에서는, 아머드 코아 개발팀에 리소스 지원을 했던 PTW의 모델러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영상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투박한 금속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 텍스쳐 전체를 손 보았고, 고급 기동시에 미세하게 보이는 부속들의 움직임도 손봤어요.
아, 물론 모든 텍스쳐에 현실감을 줄 수 있도록 웨더링 작업도 해 놨고요.
이제부터는 진짜 실재하는 군용 병기가 움직이는 느낌으로 동작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애니메이션을 재생하자, 모델링 툴에서 실감나게 움직이는 로봇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작업물이었다.
그녀는 그런 결과물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카메라를 향해 물었다.
[어때요?]
[솔직히 말하면, 저희 직원들이 작업한 것보다 낫네요.]
[당연하죠. 전 GOS 애니메이션에서 DP-045의 모델링 작업에 참여했던 개발자니까.]
[뭐 하나 물어도 됩니까?]
[예.]
[이거 작업하는데, 얼마나 걸리셨나요?]
[한 3일 정도 철야한 것 같은데요.]
그녀의 눈 밑에 끼인 짙은 다크서클은 그녀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자 카메라를 든 미야자키가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카일라 씨는 이번 작업에서 모델링 지원으로 저희 게임에 참여하시는 거죠?]
[그렇죠.]
[그럼 어째서 이렇게 공들여 작업하는 건가요? 잘 하면 보너스라도 나옵니까?]
[글쎄요? 임원들이 챙겨주려는 마음이 있으면, 뭐 아마 챙겨주긴 하겠지만, 저희 게임에서 작업하는 수준의 보너스는 기대하기 어렵겠죠.
애당초 아머드 코아가 몇천만 카피가 팔린다고 해서 PTW가 돈을 버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 승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저희 PTW의 직급 체계는 황당할 정도로 단순하죠.
현재 저는 파다완급 직원이고 제가 마스터 직급에 가려면 제 분야에서 월드 탑 클래스임을 증명해야 해요.
제가 어떤 게임이나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는 승진 심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그럼 어째서 이렇게까지 목숨걸고 하는 것처럼 작업하시죠? 함께 발표하는 게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게임인 작업에?]
미야자키의 질문은 이번 컨소시엄에 참여한 대부분의 외부 개발팀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이었다.
그들이 본 PTW직원들은, 거의 비이성적인 수준으로 자신들의 작업 퀄리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것이 아닌 작업에 대해 그 정도 노력을 들이기를 원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애니메이터가 자신이 만든 결과물의 퀄리티를 깎지 않기 위해 당당하게 프로그래머에게 ‘어떻게든 이게 돌아가면서 프레임은 안 떨어지게 해줘.’라고 어거지를 부리기도 하고, 프로그래머는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아니면서도 주저 없이 의견을 제시한다.
상식적으로 다른 게임 회사에서 보기 힘든 황당한 개발 과정이, 그들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보였기에, 미야자키는 그것에 대해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이제까지, 그런 식으로 게임을 개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미야자키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도 심플한 것이었다.
[당연하죠. 저는 PTW의 개발자니까요.]
[그게 무슨 의미죠?]
[그건 당신이 게임 개발자로써 자신의 모든 작업물에 자부심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제 손을 거친 물건은 반드시 유저의 탄성을 자아낼 수 있어야 하고, 유저를 즐겁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유저에게 그것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하더라도, 그건 나중에 더 큰 즐거움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어야 하고요.
PTW의 직원이라면, 게임을 개발할 때 항상 그런 마인드로 개발에 임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 100명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도 같은 대답을 할 거고요.]
[그것은 장인 정신 같은 걸 의미합니까?]
[장인 정신이요? 설마요.]
미야자키의 질문에 카일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장인 정신 같은 개념으로, 단순히 내가 만든 결과물에 취하고 싶어서 작업하는 PTW 직원들은 없어요.
저흰 뭐랄까,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임 같은 거거든요]
[이기적이요?]
[예. 이기적이요.]
그녀가 말했다.
[PTW의 게임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안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죠.
그리고 저희는 시리즈가 아니라 매번 새로운 게임을 내면서도 그런 평가를 유지해왔고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콘솔 게임 제작사에 다닌다는 것의 의미는, 저 역시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콘솔 게임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거기서 느껴지는 감각을 부담감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다른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뭔가요?]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이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으로, 카일라가 말했다.
어쩌면 3일 넘게 철야를 이어오면서 약간 멍한 기분이 되어서 그럴지는 몰라도, 지금의 그녀는 꽤나 감성적인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만든 무언가에 대해서 누군가가 열렬히 환호하고 좋아하는 것.
그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 같은 쾌감이라 할 수 있어요.
그건 제가 락스타가 아니지만, 락스타의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주인공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죠.
저희가 하는 작업들은, 일종의 공연 퍼포먼스 같은 겁니다.
제가 지금 3일을 철야해서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그건 마치 가수가 팬들에게 마이크를 내미는 것 같은 거예요.
‘어때! 이거 진짜 멋지지!?’하고 소리치면서요.
그럼 관객들이, 게이머들이 그것을 보고 대답하죠.
‘예!!!!’하고.
세상 어느 게임 개발자가 그 감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자는 그런 느낌을 제대로 느끼지 않는데요?]
[그 개발자들은 PTW에 다니고 있지 않으니까요.]
카일라가 말했다.
[팬들이 자진해서 감사 영상을 만들어서 개발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언제나 떼로 몰려다니면서 다른 게임의 게시판에서 ‘PTW 게임이 최고다!’라고 외치고 다니고, 매년 GOTY 투표 때만 되면 떼로 몰려와서 저희 게임에 몰표를 주고 있지 않나요?
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팬덤이 저희 PTW의 팬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런 팬들의 기대를 절대 저버리고 싶지 않은 거죠.
저희가 목숨 걸고 게임을 개발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그것 때문일 겁니다.]
이어지는 영상은 다른 개발자들의 대답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전 세계 5곳의 행사장을 가득 메운 10만 명의 팬들.
수백만 원의 웃돈을 내서라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한 그 사람들을, PTW의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였다.
[저희 게임인지 다른 회사의 게임인지는 상관없죠. 팬들은 NE컨벤션의 이름과 PTW라는 이름을 믿고 행사의 티켓을 구매한 거고, 저희는 그런 팬들의 기대를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니까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NE 컨벤션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게임들은 무조건 ‘갓겜’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저희 PTW 직원들이 NE 컨벤션이란 이름에 걸고 있는 자부심이니까.]
[전 오히려 이번 행사가 더 기대됩니다.
팬들이 게임을 해보고 ‘젠장, 이제는 PTW의 게임이 아니어도 개쩌는 퀄리티의 게임이 나온다고?! 이건 미쳤어!’라고 외친다면, 그건 진짜로 멋진 일이지 않겠어요?
그걸 위해서 야근을 해야 한다면, 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연봉이나 월급은 넘쳐나게 많이 받고 있으니까.]
‘팬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렇게 진심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넣으며 팬들을 기쁘게 하려는 것은, 절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멋진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 멋진 게임들의 배후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조력한 PTW의 직원들이었다는 것은,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게임에 보인 애정.
그리고 PTW에 대해 보여준 애정이, 말 그대로 고스란히 보답 받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컨소시엄에 참여한 4개 회사가 이번 협업을 진행하면서 만든 ‘최고의 팬 서비스’ 영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말을 이루지 못하고 조용히 영상을 보고 있을 때, 가장 감성에 젖어 있던 인물은 팬들이 아니었다.
이제는 입을 틀어막고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팬들의 앞에서, 가장 큰 감정의 격류를 겪고 있는 상혁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이게 내가 바라던 게임 개발사···.’
지금까지 상혁은 직원들에게 단 한 번도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개발에 임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작업을 대하는 개인의 사고방식은, 각자의 선택에 달린 것이었으니까.
누군가에겐 그것이 돈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커리어가 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겐 멋진 게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보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상혁에게 가장 큰 보람은, 그리고 상혁을 가장 기쁘게 만드는 것은, 회귀 이후 자신의 행보로 인해 변해가는 게이머들의 인생이었다.
게이머의 삶을 기쁨으로 가득하게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상혁에게 가장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게이머들이 매일같이 PTW의 게임을 플레이하고, PTW의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PTW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잠을 못 이루는 세상이, 지금의 상혁이 살아가는 지구였기에.
하지만 상혁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 해서 직원들에게 그런 마인드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에 나온 직원들의 인터뷰는, 상혁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게임 개발자의 마인드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어지는 직원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PTW는 딱히 직원들에게 마인드 교육 같은 걸 진행하지는 않죠? 개발자의 마음가짐이라던가.]
[그렇죠.
그 시간에 차라리 자기 개발을 하거나 하다못해 잠이라도 더 자라고 하는 게 저희 회사니까.]
[그런데 어째서 다들 생각하는 게 비슷한가요?
다들 하나같이 극단적으로 작업 퀄리티에 집착하고, 유저 반응을 신경 쓰고, 멋진 게임을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 않잖아요?]
그 질문을 한 것은, 폴리포디의 대표인 카츠노리였다.
그것은 그 역시 한 회사의 대표로써, PTW의 직원들이 게임에 대해 가지는 마인드가 매우 부러웠기 때문에 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질문에, 질문을 받은 직원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아마도 저희 임원진 때문일 겁니다.]
[임원진이요?]
[예. 이상혁 CCO를 포함해서, 저희 CEO인 현주 씨도 있고, 아트 디렉터인 서연 씨라던가 CTO인 민준 씨도 있고요.]
[임원진 때문에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하게 되었다고요?]
[그렇죠. 생각해보세요. 저희 임원진, 특히 이상혁 CCO는, 뭐랄까 굉장히 특이한 변태입니다.
보통 기획자가 작업을 요청할 때, 판단의 기준은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결과물에 잘 반영되었느냐를 보죠.
하지만 상혁 씨는 달라요. 상혁 씨는 결과물을 평가할 때 그 뒤에 있는 직원의 진심을 보려 합니다.
자신이 요청한 것과 180도 다른 결과물을 가져와도, 그 변경의 이유가 게이머를 위한 것이라면 상혁 씨는 미친 듯이 기뻐하죠.
그 사람은 천상 게이머에게 최고의 게임을 제공하기 위해 진화한 변태 개발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마 잘은 모르겠지만 매일 집에 가서 PTW의 게임 패키지를 혀로 핥으며 흥분하고 있을 걸요?
‘하아하아, 이 게임을 하고 있을 유저들이 날 너무 흥분시켜’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며, 카츠노리는 상혁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자신이 아는 이상혁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부정의 말을 꺼냈다.
아무리 상혁이 게임 개발에 미친 변태라도, 그 정도는 아닐 테니까.
[설마요,]
[물론 농담이지만, 그분이 게임에 가지는 애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이렇게 생각하게 되죠.
‘아니, 저게 뭐가 그렇게 즐겁길래 저렇게 집착하는 거야?’
PTW에 다니다 보면, 처음엔 호기심에서, 그리고 나중엔 마치 전염병에 걸리듯 그 집착에 감염됩니다.
임원진뿐만 아니라, 그 임원들에게 감염된 마스터 클래스 직원들, 그리고 선임 개발자들의 분위기 자체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죠.]
[회사의 분위기 자체가, 게임 개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거군요?]
[그렇죠. 이 특이한 회사에서는, 그런 데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들이 정상인이고, 승진이나 돈을 추구하는 개발자들이 외계인 취급 받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만든 가장 큰 원인은, 저희 게임을 사랑하는 팬분들이죠.
흔히들 말합니다. PTW의 게임은, 게이머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들어져 있다고.
저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게임을 사랑하는 게이머들이, 저희가 그런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고요.]
세상의 어떤 게이머도, 그런 개발자의 인터뷰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1998년에 시작되어 2017년의 현재까지, 19년의 세월 동안 게이머와 PTW라는 회사 사이에 쌓여온 ‘유대감’의 증거였으니까.
최선을 다해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의 모습들.
그리고 그들이 게임 개발에 대해 가진 마음 가짐.
그 모든 것을 보여주며, 카츠노리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PTW와 함께 일하며, 저희는 세상에 이런 개발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유저가 즐거움을 느끼는 데 흥분하는 변태들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저는 그들의 그런 마음이, 지금의 3차 NE 컨벤션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전 세계에 있는 NE 컨벤션의 이벤트 세트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런 멋진 행사를 열 수 있었고.]
그리고는 앞서 공개된 5개의 게임을 짧게 보여주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런 멋진 게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카메라가 행사장에 모여있는 2만 명의 관객을 비추었다.
마치 지금까지 보여준 그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해 준비된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죠. (And all of this is for you.)]
그리고 영상은 마무리 되었다.
이제 모든 쇼케이스가 끝나고, 5개 회사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모든 것들을 즐길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Enjoy your game.(당신의 게임을 즐기세요.)]
“Yeeeeeeeeeeeeeeeeeaaaahhhhh!!!!!”
“P!T!W! P!T!W! P!T!W! P!T!W!!”
“I love you so much!!!”
“내 평생 가장 잘한 게 있다면 이번 행사에 참여한 거라고!!!”
그때까지 상혁은 수만 명이 동시에 ‘울면서 소리 지르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는 잘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잘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2만명의 관객들이, 말 그대로 ‘울면서’ 소리 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관객들의 시선을 보며 일본에 있는 칸베가 VR의 카메라를 한국 행사장으로 돌렸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이 쇼케이스의 마무리를, 나보고 하라는 의미겠지.’
여기서부터는 대본도 없었지만, 상혁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상혁은 마이크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10만 명의 관객을 향해 외쳤다.
“이 행사를 위해, ‘갓겜’을 만들어주신 협력사 분들과 PTW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는 관객들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도록 저희 게임을 사랑해주신 게이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저희가 오늘을 위해 준비한 모든 것!
그것은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즐거운 게이머들의 축제를! 지금부터! 마음껏 즐겨주세요!”
그러자 그때까지 터진 수많은 환호성 중 가장 큰 소리가 회장을 가득 메웠다.
너무 큰 소리에 세트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그렇게 고막이 멀어버릴 듯한 환호성 속에서, 상혁은 양팔을 활짝 펼쳐 온몸으로 그 환호성을 받아들였다.
전 세계 팬덤 중에 가장 멋진 팬덤을 꼽으라면, 자신은 주저없이 PTW의 팬들이라고 대답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은 3차 NE 컨벤션이 단순히 ‘게이머의 축제’가 아니라, ‘진짜 개발자들과 게이머의 축제’로 진화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