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82화 (283/485)

282. IP의 정체성

이번 3차 NE컨벤션에서 공개된 5개의 게임 중에, 커뮤니케이션 엔진 2.0이 탑재된 게임은 단 한 개였다.

바로 조금 전 공개된 아머드 코어 6 –Return of Raven- 이 그것.

그 외의 게임에 상혁은 커뮤니케이션 엔진 2.0의 탑재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대화 주체가 많아지면 상호작용의 종류 때문에 성능을 올리는 데 들어가는 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실제로 1.0 버전이 탑재된 게임 중 가장 유명한 게임인 OGC는 50개의 성격이 서로 대화하는 느낌을 구현하기 위하여 역대 게임 사상 최대 수준의 스크립트인 2천만 개 이상의 대사 스크립트가 들어갔었다.

게다가 그 수량은 외국어 버전에 탑재되는 AI성격을 분리하면서 다시 천만 개 이상이 추가된 상태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대화에 있어서 유저의 대화 주제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1.0 버전이 가진 한계였다.

안에 탑재된 게임만 4개에, 그 수많은 성격들의 상호작용 대사를 전부 추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PTW에서는 그 이유로 지금도 계속 대사 추가 패치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완벽한 인공지능까지는 아득히 먼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민준이 만든 2.0은 그럼 한계를 넘기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진화형’이었다.

이전의 1.0버전이 최대한 많은 대화 라이브러리에서 유저의 말에 가장 적합한 대답을 고르는 엔진이었다면, 2.0은 특정 카테고리 안에서 유저의 언어를 ‘이해’하고 자신의 대답을 ‘생각’하여 대답할 수 있게 만든 버전이었다.

그렇기에 2.0 버전부터는 실제로 스크립트에 없는 대사 패턴도 엔진이 생성하여 이야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2.0 버전은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단순히 상황에 따른 적절한 스크립트 번호를 찾는 형태의 1.0버전에 비해 사용되는 시스템 자원이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민준과 스컹크 웍스는 STC의 지원을 받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실패 했다.

“대화 주체의 숫자가 늘어나면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져.”

“몇 명까지 가능한데?”

“지금은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최대 2명. 그것도 1:1 대화보다는 퀄리티가 체감될 정도로 차이가 나고.”

“그래?”

“1.0은 대화를 처리하는 모듈 1개가 각 성격에 맞춰서 맞는 스크립트를 찾아서 띄우는 단순한 방식이었으니까.

2.0은 AI 1개당 병렬로 돌아가는 AI 모듈이 1개씩 할당되어야 해.

언젠간 개선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1:1이 최선이지.”

“플레이어 단 한 명과만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엔진이라···”

“그래도 유저와 1:1 대화를 하는 데는 현존하는 대화형 AI 엔진 중에서 최고의 성능을 보여줄 거야.

단순히 사람의 대화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엔진 자체가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유저가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듣고, 자신이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그런 AI니까.”

안타깝게도 이번에 공개한 5게임 중 1:1 대화에 딱 맞는 플레이를 가진 게임은, 오직 ‘아머드 코아’가 유일했고 그것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커뮤니케이션 엔진 2.0을 탑재한 게임이 아머드 코아의 신작뿐인 이유가 되었다.

간담 IP로 새 게임을 개발 중인 칸베는, 그 부분을 가장 아쉬웠했다.

자신도 5개의 신작을 모두 플레이 해 보았지만, 아머드 코아라는 게임과 새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궁합이 끌어내는 게임성은 진짜로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AI가 플레이어의 전투 스타일에 맞춰서 진화한다.

돌격을 자주 하는 플레이어라면 거기 맞게 정보를 취합하여 최적의 작전을 제안하고, 원거리 사격을 주로 하는 플레이어라면 가장 사격하기 좋은 지형이나 포지션을 잡는 것을 판단의 우선순위로 둔다.

아머드 코아 6는, 결국 그런 시스템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AI와 궁극의 유대감을 쌓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함께 미션을 수행하면서, 함께 실수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장하는 AI.

그것은 칸베로 하여금 아예 자신이 개발 중인 간담 게임에 가상의 AI 설정을 추가하여 세계관을 억지로 끼워 맞출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지만, 상혁은 그런 칸베의 의견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칸베 씨, 그건 간담이 아니에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번 컨소시엄에 있어서, 상혁이 각 개발팀에 제안한 것은 회사에 따라 전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존에 ‘수집’과 ‘드라이브’에 집중하던 게임이었던 구란트리스모 신작에는 ‘스토리’를 요구했고.

자체 세계관에 집착하던 스페이드 컴뱃에는 대중성을 요구했다.

그리고 ‘하드코어 함’을 추구하던 아머드 코아 개발팀에는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가이드’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칸베에게는?

상혁은 단 하나에만 집중하라고 알려줬을 뿐이었다.

“간담은 세계 최고의 IP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가진 IP가 가진 정체성에 집중하세요.

분명 그것을 해낼 수 있다면, 간담이란 IP는 IP의 힘만으로도 그 아머드 코아의 신작을 이길 힘이 있으니까.”

칸베는 그 말을 믿었다.

세계 10대 개발자 중 한명이라 불리는 상혁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실제로 그렇기 때문일 테니까.

그런 칸베에게 상혁은 단호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아직 간담 IP로 진짜 멋진 ‘갓겜’이 등장하지 못한 이유는, 단지 누구도 간담이란 IP의 활용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칸베는 상혁이 말한 ‘간담’이란 IP가 가진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의 게임은, 그런 그의 노력이 집대성된 결과였고.

칸베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이 만든 게임을 평가했다.

‘솔직히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만든 게임이, 조금 전 공개된 아머드 코아를 이길 수 있을까?’

확신은 들지 않는다.

애당초 같은 로봇게임이라도,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까.

하지만 칸베는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조금 전 아머드 코아의 신작이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엄청난 임펙트를 안겨주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간담이란 IP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자신의 게임을 아머드 코아보다 좋아해 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그가 바라는 전부였다.

“결과는 상관없겠지. 이건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간담 게임이니까.”

칸베는 관객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리며, 마이크를 들어 외쳤다.

“관객 여러분. 숨 고르기도 할 겸 잠시 행사장을 둘러볼까요?”

칸베의 말에 관객들이 고개를 돌려 행사장 곳곳을 바라보았다.

간담 팬이라면 자연스레 흥분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엠블렘과 기체의 부속들, 그리고 강철의 프레임이 갖춰진 거대한 로비를.

거기엔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AE라는 거대한 대문자가 박힌, 애나하임 일렉트로닉스(간담에 등장하는 모빌 슈츠 개발회사)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그렇게 잠시 간담의 팬들이 감격에 젖어 있는 사이, 칸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멋지죠?”

이제 안정을 찾았는지, 그 목소리엔 더 이상 두려움의 감정은 실려있지 않았다.

그 대신 칸베의 목소리에는, 조금씩 솟아오르기 시작한, 개발자의 자신감이 담기기 시작했다.

PTW에서 심혈을 위해 준비하고, 일본 전국의 장인들이 작업한 일본 행사장의 세트는, 개발자에게 없던 자신감도 불러일으킬 정도로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행사장은 간담 원작에 나오는 MS개발사, ‘애나하임 일렉트로닉스’를 그대로 구현한 AR 세트입니다.

아마도 전 세계 유저들이 사랑하는 ‘간담’이란 로봇은, 이렇게 생긴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출시 되었겠죠.”

칸베의 말을 들은 간담 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보고 있는 세트의 설비들.

그것은 번다이에서 이따금 프라모델의 악세서리로 출시한 ‘간담 베이스’의 부속들과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세트는 적어도 간담 팬들에게는 처음 보는 것이면서도 익숙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애니메이션 안의 세계에 그대로 들어온 것처럼.

“저희는 세트 디자인을 결정하기 전에 화스트 베이스의 격납고, 알 카이람의 내부, 가상의 코로니 내부와 디온 공국의 연설회장까지 다양한 장소 중에 고민했습니다.

어느 장소가 지금까지의 모든 간담의 역사를 어우르는 좋은 이벤트 장소가 될 것인가를 놓고요.

그리고 이런 결론에 도달했죠.

결국 ‘간담’의 주인공은, 로봇인 ‘간담’이라는 결론에요.

그래서 저희는 간담이 최초로 개발되고 양산되었을 가상의 회사, 애나하임 일렉트로닉스의 공장을 행사장으로 결정했습니다.

쇼케이스 이후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실제 이 내부 공간에는 딥 다이버를 통해 볼 수 있는 실물 크기의 다양한 간담들이 전시되어있죠.

1년 전쟁부터 간담 세계관의 수많은 전쟁의 역사를 바꾸어버린, 그 멋진 기체들이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칸베의 말이 멈췄다.

미리 준비한 대본이 아닌,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래서 칸베는 잠시 마이크를 끄고 상혁에게 이어폰을 통해 이야기했다.

-상혁 씨.-

-예?-

-혹시 대본에 없던 대화를 해도 될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5개국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언어는 전부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이번 행사는 모두가 같은 행사를 보면서도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된 대사를 PTW가 보유한 텍스트 더빙 시스템인 TTS엔진을 사용하여 각국 언어로 더빙해 송출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대본에 없던 대사를 진행자가 하게 되면, 그 대사는 당연히 번역되지 않은 상태로 송출되게 되어 있었다.

“번역팀 돌려요.”

그러나 상혁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실시간으로 미리 준비한 번역팀에게 지시를 내려 칸베의 말을 번역하게 했다.

그가 일본어로 이야기하더라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려고.

그렇기에 칸베의 말은 약간의 딜레이를 품게 되긴 했지만, 번역팀이 재빠르게 실시간으로 입력한 텍스트를 TTS엔진으로 더빙한 상태로 전 세계에 송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편하신대로 말씀하세요. 약간 딜레이가 생기긴 하겠지만,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송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를 표한 칸베는 다시 마이크의 전원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관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간담’은 로봇이 나오는 고전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시작된 IP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게임으로 만든다면, 필연적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게임이 될 수밖에 없죠.

물론 SD 간담 G 제네레이션 시리즈처럼 SRPG로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단순히 조작법이 다를 뿐 간담을 조작한다는 행위 자체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게 프라모델을 조작하는 것이든, SD 가챠폰을 조작하는 것이든. 간담은 언제나 ‘로봇’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이니까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칸베의 말에 관객들이 의아한 기분을 느낄때쯤, 칸베는 어째서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털어놓았다.

원래 정해진 대본과는 다른, 자신의 속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그러니 솔직히 AC를 조작하여 전장에서 싸우는 아머드 코아와, 간담이란 로봇을 조작하여 싸우는 저희 간담은 필연적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간담은 아머드 코아와는 다르게 멋대로 장비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어셈블리 시스템도 달려 있지 않죠.

원작에서 지정된 장비를 가지고, 원작에서 나온 전장에 들어가 원작에서 나온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간담 게임의 숙명입니다.

원작을 아예 무시하지 않는다면.

게다가 간담에는 방금 보신 것 같은 멋진 AI도 존재하지 않고요.

하로가 있긴 한데, 하로랑 대화하는 게 전투에 글라디스 처럼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군요.”

대놓고 앞서 나온 게임에 비해 자신의 IP가 떨어지는 부분을 언급하는 칸베의 말은 새 게임을 기다리던 관객들을 당황하게 했다.

‘기대감이 너무 부담돼서 기대치를 낮추려는 건가?’

관객들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그러나 이어지는 칸베의 말은, 그런 관객들의 생각을 한번에 깨부수고 있었다.

“그래서요?”

단숨에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을 느끼며, 칸베가 말했다.

두려움이 아닌,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지상의 전장에서, 아크로바틱한 기동을 하면서, AI와 호흡을 맞추며, 로봇을 조종하는 용병의 삶을 사는 것은 물론 멋지겠죠.

하지만 그건 아머드 코아의 매력이지 간담의 매력은 아니지 않습니까?

간담은, 간담 그 자체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 모든 것이 없어도, 간담은 간담이기 때문에 멋질 수 있는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칸베는, 앞서 발표를 했던 발표자들과 같은 포즈를 취했다.

오른손을 올려, 손가락을 튕기려는 듯한 자세를.

그리고는 다른 손에 쥔 마이크를 향해 힘차게 외쳤다.

“그리고 이것이 저희가 생각하는 ‘간담’입니다.”

칸베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함께, 회장에 울려 퍼지는 ‘딱’ 소리.

그것을 시작으로, 칸베가 생각하는 ‘간담’의 공개가 시작되었다.

조금 전 아머드 코아의 시연 때처럼, 다시 한번 관객들이 앉아있는 의자를 변형시키며.

‘같은 연출인가? 아니? 달라.’

그러나 이번에 나온 컨트롤 패널은 조금 전 아머드 코아의 시연 때 보였던 것 같은 투박하고 손때묻은 형태의 악세서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비싸 보이는, 그리고 마감 처리가 완벽하게 되어있는 ‘간담 조종석’의 형태를 한 조작 패널이었다.

마치 사방에서 거대한 스크린이 튀어나와 온몸을 감싸는 연출과 함께, 관객들은 밝은 회장의 내부가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렸을 때, 관객들은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칸베가 그들을 이동시킨 공간이, 아머드 코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우주’ 한복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모종의 비밀 수송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수송 장비의 운전수라는 것을.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스토리 전달은 필요 없었다.

관객의 눈앞에 대놓고, 작업을 위한 기계 팔과 ‘Top Secret’이라는 문장이 적힌 거대한 컨테이너가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시연은, 아무런 영상도 설명도 없이, 관객들을 우주 공간 한가운데 던져놓는 것으로 그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

“정체성이라···.”

상혁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칸베는 그것에 대해 쉽게 감을 잡지 못했다.

어떻게 개발을 한다 하더라도, 개발 중인 아머드 코아에 비하면 로봇의 화려한 움직임이나 전투의 긴박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성의 차이 때문이기도 했다.

아머드 코아의 전투가 ‘어수선한 리얼함’을 추구하고 있다면, 간담의 전투는 조금 더 ‘정제된 아름다움’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미 리얼로봇을 넘어 밀리터리 수준에 도달한 스타일의 게임을 어떻게 넘어서지?’

칸베의 고민은 오로지 그쪽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칸베가 만든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고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아, 이 속도감은 간담의 전투 스타일이 아닌데요?”

“그, 그렇습니까?”

“대놓고 아머드 코아 팀을 의식하는 게 보입니다.”

“의식 안 할 수가 없죠. 같은 장르니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간담은 간담다운 게 제일이라니까요?”

“그 간담답다는 게 뭡니까? 대체?”

“흠···.”

갑갑함에 불만을 토로하는 칸베를 보며, 상혁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매우 근원적인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칸베 씨.”

“예.”

“칸베 씨가 생각하는 간담이란 뭔가요?”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인간형 병기를 말하는 거 아닌가요?”

“그럼 쟈쿠도 간담입니까?”

“아니죠.”

“짐은요?”

“MS이긴 하지만 간담이라고 보기엔 좀···.”

“뭐가 다른가요?”

“간담은 주로 주역기체니까요. 모노 아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샤자비를 자쿠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기본적으로 간담이라는 단어 자체가 RX-78을 만들 때 쓰였던 간다리움 합금에서 따온 말이기도 하고요.”

“그쵸. 전황을 바꿀 수 있는, 승리로 가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어깨에 메고 있는 결전 병기.

어쩌면 저는 그게 간담의 정체성이라고 봅니다.

아머드 코아의 AC는 일종의 전투 병기이자 소모품 개념이죠. 병기 회사에서 양산해서 뿌린 수많은 장비를 조합해서 만든 자신의 커스텀 장비 같은 느낌이고.

그에 반해 간담은 그런 식으로 마구 파츠를 교환하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그렇죠.”

“그러니 저는 굳이 말하면 AC는 커스터마이징이 자유로운 개조차 같은 거고, 간담은 레이싱 승리를 위해 메이커에서 만들어낸 F1카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나 타고 싸울 수 있는 머신이 아니라, 전쟁의 운명을 짊어진 특별한 주인공이 타기 위한 머신.

그리고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전장의 분위기 자체를 반전시킬 수 있는 머신.

‘결전 병기’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로봇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간담이겠죠.”

상혁이 말한 ‘결전 병기’라는 말이 칸베의 가슴을 울렸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고민하고 있던 간담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단어였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그런 칸베의 표정을 보며 자신이 더 이상의 조언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칸베의 표정이, 아이디어로 넘쳐나는 개발자의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

[어때. 앉은 느낌은?]

[좋은 느낌입니다.]

[손을 움직여봐.]

간담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익숙한 목소리가 플레이어의 귀를 통해 머신의 조정을 돕고 있었다.

암후로 레이.

연방의 하얀 유성이자 하얀 악마라고 불리는 전설의 MS 파일럿.

그런 그가 신뢰감이 담깃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은, 간담 팬으로서는 두근댈 수밖에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조정을 돕고 있는 머신이 그 유명한 ‘뉴 간담’의 쌍둥이 머신이라는 것도, 게이머를 흥분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안에 들어와서, 완전히 그 안의 중요 인물이 된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런 유저의 귓가에 암후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머신을 왜 플레이어가 타게 되었는지, 그리고 플레이어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서.

[아까도 말했지만 디온은 지구에 소행성을 낙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우린 그것을 막기 위해 핵 미사일을 준비해야 해.

그리고 그 핵무기는, 디온이 지키고 있는 무기고에서 탈취해와야 하고.

나는 전투에 참여해야 해서 너와 같이 갈 수 없지만, 대신 내가 탄 것과 같은 간담을 너에게 맡기는 거야.

네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우리에게 필요한 핵 미사일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암후로의 말은 당신을 믿는다는 이야기에요. 떠돌이 파일럿 씨.]

[믿는다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뉴 타입이란 건가요?]

[아니, 동료 MS 파일럿으로써의 신뢰지.]

[혹시 ‘그’가 막으러 오지는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걸 막기 위해서, 내가 전장에 모습을 비추는 거니까.]

[연방의 하얀 사신이 미끼 역할이라.

어지간히 신뢰를 받고 있네요.

애인으로서는 조금 질투가 나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여성은 암후로와 교제하고 있던 여성 파일럿인 쉔 아기였다.

그리고 그녀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현재 유저들이 플레이하고 있는 이야기의 배경이 간담의 가장 유명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역습의 쟈아’라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간담의 주요 이벤트를 보여주고 있었다.

때로는 퍼스트 간담의 이야기를, 때로는 역습의 쟈아의 이야기를, 때로는 유니콘 간담의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그것은 우주 세기를 관통하는 플레이어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슬라이드 쇼 같은 연출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보고 있는 간담의 팬들은 점점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마치 우주 세기를 전부 아우르는 인물의 연대기를 만들어가려는 듯한 그 연출이, 어떤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간담의 세계에, 내가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다루는 ‘앞 이야기’의 뒤편에 존재하는, 한 뉴타입 파일럿의 이야기.

기존의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던 공백을 절묘하게 이용한 스토리는 플레이어에게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져 있었다.

암후로의 곁에, 쟈아의 건너편에, 까미유의 저편에, 쥬도의 어깨너머에, 플레이어가 있었다고.

그리고 그렇게 세계관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 속에서, 플레이어는 아머드 코아를 플레이할 때와는 전혀 다른 전투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타고 있는 로봇이, 바로 ‘간담’이라는 느낌을.

라이벌 기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게임이 쉽게 느껴질 정도로 설정된 압도적인 강함.

플레이어의 기체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빠지는 적들의 반응.

그리고 적 양산기의 공격을 가볍게 씹어버리는 압도적인 성능.

‘게임이 쉽다고? 쉬워야지. 플레이어가 타고 있는 건 간담이니까.’

이전의 아머드 코아에서의 전투가 플레이어에게 ‘AI와 함께 넘어야 할 벽’을 제시하는 게임성 가지고 있었다면, 칸베가 만든 새로운 간담 게임은 ‘압도적인 기체를 탄 감각’을 전달하는 것을 방향성으로 잡고 있었다.

단순히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도 저 기체를 타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싶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그것은 이전의 ‘간담’ 게임들이 추구하던 게임성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구에서 기다리겠어.]

세계관 속의 인물들이 플레이어를 인정하는 기분을, 게임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X발, 이러면 게임성이 어쨌든 간담 팬은 살 수밖에 없겠는데···.”

시연의 한 중간.

암후로의 대사를 들은 한 팬이 중얼거리며 뱉은 탄성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모든 간담 팬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자신들도,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역대 시리즈의 한계를 넘어 최고의 게임성을 가지고 돌아온 아머드 코아.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칸베가 선택한 카드는,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드디어 게이머가 ‘간담’을 탔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간담이라는 IP가 전할 수 있는 쾌감의 정점에 도달한 게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