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80화 (281/485)

280. 로망의 깊이

아라키 시게루는 미칠듯한 흥분을 억누르며 딥 다이브를 붙잡고 위로 올렸다.

지금 이대로 딥 다이브가 보여주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어서는 도저히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고글을 벗은 그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진짜 미쳤나? 이 자식들이 뭘 만든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고글을 벗고 본 현실 세계는 그가 기대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버튼 사이로 화려하게 빛나던 LED도, 이전까지 자신이 탑승한 기체를 거쳐 간 조종사들의 손때 묻은 흔적도 현실의 장비에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고무와 강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투박한 느낌의 각종 컨트롤 패널이었다.

말 그대로 ‘조작감’만을 전달하기 위한 기능에 충실한 형태의 디자인을 지닌, 여러 가지 스위치의 모음들.

그것은 마치 다이소에서나 살 수 있을 법한 외형의 퀄리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현실에서의 투박함’이 아라키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장비가 허접하다는 사실은, 다른 의미로 말하면 딥 다이브가 그 허접한 현실의 도구들을 실재하는 가상 공간의 컨트롤 패널로 바꿔서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였기에.

아라키는 다시 고글을 뒤집어쓰고 조금 전까지 그가 보고 있던 허접한 스위치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딥 다이버는 다시 한번 지금이라도 스위치만 누르면 로봇이 움직일 것 같은 멋진 조작 패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딥 다이버의 놀라운 성능은, 한편으로 아라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아머드 코아는 안 그래도 PS의 컨트롤러인 ‘듀얼 쇼크’의 버튼을 거의 모두 활용해야 하는 조작법 때문에, ‘아머드 코아 그립’같은 해괴한 밈까지 만들었던 게임이니까.

버튼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는, 안그래도 복잡했던 게임이 더 복잡해졌다는 의미일 수 있었다.

물론 오로지 이 게임을 보기 위해 일본에서 호주까지 날아와 행사에 참여한 자신 같은 아머드 코아 덕후에게 그것은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행복한 경험이겠지만, 일반 유저에게는 그것이 진입장벽이 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아머드 코아’시리즈에는 그 복잡한 조작법 외에도 해당 시리즈를 팬들이 가장 사랑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자, 게임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원흉이 되는 시스템이 하나 더 있었다.

‘ASSEMBLY-SYSTEM.’

자신이 탑승할 로봇의 파츠를 변경하고, 무장의 종류를 바꾸며 기체의 무게 한계와 출력 한계 안에서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은 아머드 코아의 상징과도 같은 시스템 중 하나였지만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원흉이기도 했다.

부품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게임 플레이 자체가 달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FCS(화기 관제 장치)를 바꾸면 미사일의 록온 거리나 최대 록온 횟수가 변경되고, 레이더를 바꾸면 화면에 출력되는 레이더의 모양이나 정보의 종류가 바뀌며, 다리를 바꾸면 한계 중량과 이동속도가 변하고 부스터를 바꾸면 쓸 수 있는 부스트 기술의 종류가 달라진다.

아머드 코아의 어셈블리 시스템은 부스터 출력에 따라 체공 시간도 달라지고 점프 높이도 달라지는 데다 무장을 변경했을 때 변하는 기체 중량이 이동속도나 체공 시간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로봇을 자신이 만들고 싶다는 유저들의 욕구를 철저하게 반영하며 점점 복잡해져 왔지만, 반면에 ‘어떤 세팅이 올바른 세팅인가’를 알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었기에, 아라키는 속으로 걱정되는 마음과 흥분되는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각 파츠를 컨트롤 하는 버튼의 숫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게임이 더 하드코어 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실제로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자신 같은 아머드 코어의 골수팬이 아니라면, 아예 손대기도 무서울 정도의 복잡한 느낌을 하고 있었기에 그의 우려는 어느 정도 타당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월드 오브 전쟁크래프트’를 하고자 하는 유저에게, 애드온으로 가득한 레이드 화면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플레이하는 유저는 익숙하기에 느끼지 못하지만, 처음 보는 유저는 화면만 보고도 기겁을 하게 만드는 종류의.

그러나 아라키의 그런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어지는 어셈블리 시스템의 연출이 그런 아라키의 우려를 한 방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멋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뭐야 이건!?”

계기판 위의 공간에 떠 있는, 로봇의 외형을 보여주는 홀로그램 도면.

그것은 기존의 아머드 코어 팬들도 그것이 자신들에게 익숙하던 ‘어셈블리 시스템’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모양은 기존에 자신들이 보던 ‘게임 화면’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게임의 UI라기보다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어?! 이거 ‘아이론 맨’이다!”

“이거 분명 아이론 맨 1편에서 나온 슈트 디자인 화면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놀란 목소리.

하지만 관객들은 헤드셋을 끼고 있었기에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어도, 아라키는 그들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의 모습이, 누가 보아도 무조건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론 맨.’

가장 유명한 슈퍼 히어로 영화라 할 수 있는 시리즈의 1편에서, 주인공인 토디 스타크는 자신의 집 에 있는 연구실에서 공중에 떠 있는 홀로그램을 맨손으로 조작하며 자신이 동굴에서 탈출하기 위해 설계한 슈트의 설계도를 개조했었다.

그리고 지금 관객들의 눈앞에 떠 있는 로봇의 홀로그램 역시, 자연스레 그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중앙에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로봇의 홀로그램 옆에 주르륵 나열된 ‘부품들’

그리고 그 모습은 자연스레 수십만의 관객들이 같은 동작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허공에 손을 뻗어 홀로그램을 만지려 시도하지 않을 게이머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레프트 암 웨폰 디바이스 파츠가 선택되었습니다.

현재 장착된 기본 파츠를 다른 파츠로 교환하시려면 오른쪽에 있는 암 파츠를 골라 장착할 위치에 가져다 놓으시면 됩니다.]

아라키가 허공에 손을 뻗어 홀로그램 로봇의 팔을 붙잡자,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아라키의 귓가에 들려왔다.

처음에 VR 환경을 세팅할 때 그가 선택했던 언어인 일본어로.

그러자 아라키는 손으로 잡고 있던 홀로그램 로봇팔을 저멀리 던져버리고는 오른쪽에 나열되어있는 로봇의 팔을 잡아 그 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마치 ‘아이론 맨’의 토디 스타크가 영화 속에서 했던 것처럼.

그리고 어셈블리 시스템은, 마치 원래 그런 의도로 만든 시스템이었던 것처럼 아라키의 동작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아라키가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해서 다뤄보았던 어셈블리 시스템이었지만 단순히 표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었다.

세팅이 만들어낼 결과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냥 세팅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낄 정도로.

그것은 마치 자신이 로봇의 설계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혁신적인 UI라 할 수 있었다.

‘패드가 아니라 직접 손으로 조작하는 것만으로도 시스템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네.’

아라키는 확신했다.

이 화면을 보고 있는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지금 미친 듯이 자신이 하는 행동을 똑같이 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아라키의 예상대로 행사를 보고 있는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중계 방에서 미친 듯이 채팅을 올리고 있었다.

-미친 X발 변신하는 의자에 이어서 이번엔 아이언맨 UI냐? 진짜 로봇 느낌 제대로 내 주는데?-

-게임 안하고 종일 저것만 만져도 재미있겠다.-

-저런 거라면 아무리 복잡해도 하고 싶을 듯.-

-ㄹㅇ 지금도 하고 싶어서 미칠 거 같은데···. 아 미친 저길 내가 갔어야 하는데!!!-

-일단 플레이는 지금까지 공개된 게임 중에 제일 흥미로워 보인다!-

2만 명의 관객들이 손을 허우적거리며 눈앞의 홀로그램을 잡아끌거나 허공에 집어 던지고, 조심스레 어딘가에 가져다 대거나 양손 가락을 벌려 확대 축소를 하는 모습을 보며, 미야자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방식의 UI로 어셈블리 시스템을 개조하자고 제안했던 상혁의 말을 떠올리면서.

그것은 게임의 가장 핵심 시스템이지만 게임의 가장 높은 진입장벽인 어셈블리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미야자키가 상혁에게 털어놓을 때 나왔던 아이디어였다.

“딜레마라···.”

미야자키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상혁은 그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상혁 역시 아머드 코아 시리즈의 오랜 팬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자유도가 높지만, 복잡한 시스템이긴 하죠.”

“그래서 고민입니다. 신규 유저에겐 높은 진입장벽이 될 테니까요.”

“그렇겠죠.”

“아예 삭제해버리거나 가볍게 만들어버릴까요?”

“아뇨, 그럼 아머드 코아가 아니겠죠. 가장 핵심인 시스템 중 하나니까.”

“하아, 저희 게임도 PTW 게임처럼 직관적이고 알기 쉬운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야자키가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라? 저희 게임이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아닌가요? 매번 새 게임을 내면서도, 그 수많은 신규 유저들이 쉽게 적응하는 게 PTW의 게임이 가진 특징 아닙니까?”

“신규 유저들이 적응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저희 게임이 알기 쉬워서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깊이로 따지면 PTW의 게임들은 무지막지하게 하드코어한 편이에요.

거의 매번 다 회차 플레이를 전제로 개발하는 데다 파고들기 요소도 많고, 노가다도 심한 데다 학습량도 장난이 아니죠.

사실 하드코어함으로 따지면 아머드 코아 시리즈에 밀리지 않을 겁니다. 저희 게임들은.”

“어라? 그게 정말입니까?”

실제로 미야자키도 다른 대부분의 콘솔 게임 개발자들처럼 PTW의 게임을 자주 플레이하는 편이었지만,

지금까지 PTW의 게임이 어렵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상혁의 말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상혁은 그런 미야자키를 보며 PTW의 게임이 가진 ‘하드코어함’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 회사를 글로벌 대표 콘솔 개발사 자리에 올려놓은 MYOM같은 경우는 기반이 되는 마법 이론 체계를 아예 이론 물리학 교수님이 참여해서 만들어놓았죠.

발매된 지 10년 가까이 된 지금도 간간이 새 주문이 나오고 있고요.

게다가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를 표방하는 TAW도, 수술 파트 자체는 리듬 게임처럼 보이지만 거기 나오는 수술 과정은 천하대 의대 교수님들이 검수를 받아 만든 게임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고인물 플레이어들은 ‘지식 레벨’에 들어가는 포인트를 아끼려고 실제 수술 영상이나 의학 사전을 통째로 외워서 수술 노트를 공부하기도 하고요.

그건 저희의 첫 작품인 익스트림 발리볼때부터 이어져온 전통입니다.

익스트림 발리볼 역시 디스켓 한 장에 들어가는 가벼운 용량의 게임이지만 캐릭터의 육성이나 스킬 커스터마이징 등으로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 친구의 캐릭터와 싸우는 복잡함을 지닌 게임이었어요.

정치, 로비, 암살, 경영, 치세, 복지, 협잡 등의 궁중 암투를 그린 마리의 눈물도 당시로써는 꽤 복잡한 게임이었죠.

저희 게임은 전부 그런 게임성을 추구합니다.

게임을 하면서 유저가 공부한 지식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힘이 되는 류의 게임성을요.”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유저는 거의 못 봤는데요? 실제로 MYOM은 마법 이론이 복잡하다고 해도 초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으로 꼽히기도 했고요. 그럼 그 비결은 뭡니까?”

미야자키의 질문에 상혁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미야자키에게 대답했다.

“로망이죠.”

“로망이요?”

“예를 들어 미야자키 씨가 자발적으로 피아노를 배운다고 칩시다.

그럼 ‘떳다 떳다 비행기’를 치려고 배우는 거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복잡한 곡을 멋지게 치고 싶어서 배우는 거겠습니까?”

“후자겠죠.”

“그렇죠. 어떤 일이든, 잘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런 학습의 과정이 수반되게 마련입니다.

물론 그걸 현금으로 스킵하게 하는 게 요즘 게임의 트렌드지만, 저희는 그런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니 논외로 치고, 어쨌든 미야자키 씨가 목표로 하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바이엘부터 시작해서 체르니를 통과하는 과정을 거쳐야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은, 그 공부의 과정 너머에 자신이 하고 싶은 멋진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MYOM에 입문한 모든 유저들의 꿈이, 팔다리를 수없이 휘적거리며 만든 고 서클 마법을 펑펑 날리는 멋진 자신인 것처럼요.”

“고난을 감수할 만큼의 로망을 제공할 수 있다면, 유저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란 말입니까?”

“제가 아는 유저들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미야자키 씨의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도 그렇겠죠. 패드를 세워서 플레이하다 손가락에서 쥐가 날것같은 AC그립을 해서라도, 멋진 로봇 컨트롤을 하고 싶어하는 게 아머드코아 팬들이지 않습니까?

라이트 소울 역시 그 엄청난 난이도로 유명하지만, 그것 너머에 있는 ‘이 어려운 게임을 깬 나’가 있으니까 힘을 낼 수 있는 거고요.”

“하지만 그런 유저는 일부입니다. 상당히 많은 유저가, 그 벽을 넘지 못하고 포기하고 있고요.”

“보통 그럴 때는 한 가지만 고민하면 됩니다.”

“그게 뭡니까?”

미야자키의 질문에 상혁이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그 답은, 지금도 미야자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혹시 로망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고뇌하는 미야자키에게, 상혁이 고민해보라고 말한 것은, 바로 ‘로망’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답이 이거였지. 누가 봐도 만지고 싶고,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플레이.’

자신이 탈 로봇을 직접 설계한다는, 세팅 그 자체로도 미친 듯이 복잡한 시스템을 미야자키는 미칠 듯이 해보고 싶은 멋진 UI로 재탄생 시켰다.

그리고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멋진 연출을 통해서, 콕핏에 타는 파일럿의 느낌 자체를 멋지게 연출했고.

그것은 지금까지 ‘게임성’만 추구하던 프룸 소프트웨어의 방향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라 할 수 있었다.

그 깊이 있는 게임성에 대한 집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복잡함을 감수할 정도의 ‘로망’을 게임에 부여한 것이었기에.

결과는?

개발 과정에서 지금까지 수도 없이 게임을 플레이한 자신도 시간만 나면 딥 다이버를 끼고 의자에 앉게 만드는 멋진 게임이었다.

‘이게 PTW 매직···.’

아마 PTW가 아니었다면, 상혁이 컨소시엄에 프룸소프트웨어를 초대하고, 원래는 죽을 운명이었던 아머드 코아 시리즈를 무덤에서 끌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공동 QA라는 이름으로 아낌없는 개발지원을 각 회사들에게 해주지 않았더라면······.

미야자키는 만약 그랬더라면 아마도 자신이 죽기 전까지,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이토록 아머드 코아라는 게임에 열광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PTW는 프룸 소프트웨어를 컨소시엄에 초대하고, 아머드 코아를 다시 개발해달라고 부탁하며, 딥 다이버라는 신 장비의 포텐셜을 100%끌어 낼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 부어주었다.

그로 인해 자신들이 얻는 수익이 제로인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들을 위해 행사에 참여한 게이머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PTW 직원들의 모습은 미야자키로 하여금 만일 게임에 목숨을 거는 개발자가 있다면, 바로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니까 PTW라는 회사가 이토록 팬들에게 사랑받는 거겠지.’

게임을 시작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계속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어셈블리 시스템’을 즐기고 있는 관객들을 보며, 미야자키는 생각했다.

이번에 받은 은혜를, 언젠가 갚아주겠노라고.

그리고 앞으로 자신들이 만들 게임도 매번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게임을 만들겠다고.

속으로 각오를 다진 미야자키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신호를 보냈다.

토디 스타크의 기분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아쉬운 순간이겠지만, 어찌됐건 자신의 뒤에도 순번을 기다리는 발표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전투’에 대해 보여주어야 할 차례였다.

물론 미야자키에게는 이미 앞서 보여준 콕핏 연출과 어셈블리 시스템의 시연만으로도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필수 구매 리스트에 ‘아머드 코아’의 신작을 올려뒀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 당장 시연을 종료하더라도, 아마 백만 단위 판매량은 우습게 나올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미야자키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 이번 아머드 코아의 신작은 ‘백만’ 단위 타이틀이 아닌, ‘천만’ 단위를 향해 달려갈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새로운 아머드 코어의 ‘배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관객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이미 앞서 보여준 두 개의 연출만으로도 ‘갓겜’소리를 듣기에 충분했지만, 이 게임의 ‘진짜’는 ‘전장’에 있었으니까.

‘또 한 번 유저들을 놀라게 만들어줘야지. 이번엔 진짜로 실신하는 팬이 나올지도 모르겠네.’

미야자키는 상혁이 회장에 미리 배치해둔 의료 요원들이 있는 방향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관제실로 신호를 보냈다.

이제 어셈블리 시스템의 체험을 종료하고, 미션의 플레이 파트로 들어가라고.

그러자 그 순간, 전 세계 10만의 관객이 보고 있는 화면에서 동시에 같은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 친절하게 각 부품의 특징에 관해 설명하고 있던, 오퍼레이터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경고. 경고.

현재 기체 세팅 중인 신규 레이븐 요원에게 알려드립니다.

임무 지역에서의 전투 상황이 변경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작전 유형을 일반 작전에서 긴급 작전으로 변경합니다.

모든 레이븐 요원들은 기체 세팅을 서둘러 마무리해주시기 바랍니다.

긴급 임무 투입까지 남은 시간은 1분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모든 레이븐 요원들은 기체 세팅을 서둘러 마무리해주시기 바랍니다.]

다급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

거기엔 유저들에게 그들이 곧 새로운 ‘아머드 코어’가 보여줄 전장에 투입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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