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79화 (280/485)

279. 당장 합시다

이번 3차 NE 컨벤션에서 공개될 예정인 게임 중에서, 앞서 공개된 3개의 게임은 소위 말하는 ‘메이저’에 속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PTW에서 공개한 ‘우주 전함 함장 VR 게임’은 장르적으로 메이저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거긴 개발사가 PTW였으니까.

애당초 ‘PTW 게임은 안 보고도 산다.’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의 팬층이 수천만인 회사에서 나온 게임이니, 이번에도 게임의 장르와는 상관없이 개발사의 이름만으로 메이저 진입이 확정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란투리스모는?

중간 다리로 나오는 외전을 제외하면 정식 넘버링 작품의 판매량이 천만 장을 우습게 넘기는 게임이다.

그 뒤로 공개된 스페이드 컴뱃 역시, 외전을 제외하면 정식 넘버링은 항상 밀리언 셀러를 꾸준히 기록하는 타이틀이었고.

그에 반해 미야자키가 지금 공개하려 하는 아머드 코아는 가장 많이 팔린 정식 넘버링 타이틀의 판매량이 30만을 넘기지 못한 게임이었다.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

‘팬이 아니면 관심도 없는 게임.’

아머드 코아란 타이틀 자체가 극도의 충성도 높은 팬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낮은 판매량에 머물러 있는 것은, 게임이 가진 특유의 진입장벽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범용성 높은 전투 병기로서의 로봇’이라는 컨셉을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컨트롤 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마지막 넘버링 작품이었던 ‘V’에 이르러서는 부스터 버튼만 4개를 사용하면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엄지, 검지, 중지로는 손가락이 모자란다며 PS 패드를 세워서 플레이하는 ‘AC 그립’이라는 해괴한 조작법까지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2013년에 X-BOX 360으로 마지막 작품인 ‘버딕트 데이’가 발매되고 나서, 시리즈에 관한 관심도 식어버린 상황.

그 상황에서 상혁의 권유로 프랜차이즈를 무덤에서 끌어 올려야 했던 미야자키는 심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IP 자체가 엄청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간담’과는 다르게, 이쪽은 많이 잡아도 30만 명 정도의 기존 팬층을 제외하면 아예 인지도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게다가 기존의 팬층도 대부분 일본에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게임의 후속작을, 수천만 명이 보는 NE 컨벤션에서 공개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개발자라도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뭘 어떻게 공개해야 하지?’

미야자키는 아머드 코어 시리즈의 트레일러를 제작할 때, 철저하게 기존 팬을 타겟으로 제작하고 있었다.

이전 시리즈와 비교해서, 시스템이 얼마나 더 현실적으로 변했는지, 게임 안의 로봇인 ‘AC(ARMORED CORE)’가 얼마나 더 디테일해졌는지를 볼 수 있는 형태의 트레일러로.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트레일러에서 AC가 동작하는 모습만 모아도 대략적인 게임의 시스템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상혁은 이번에 만들어지는 아머드 코어의 신작이 대중성을 가진 작품이 되기를 바랐고, 그것은 미야자키도 동의하는 바였다.

수천만이 바라보는 가운데서 공개된 자신의 게임을 보고, 수천만의 시청자가 동시에 그 게임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하던 그에게 힌트가 된 것은 상혁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개발자들을 모아놓고 시연한 테크 데모였다.

갑자기 일본에 있는 대표들에게 ‘재미있는 것을 보여줄 테니 한국으로 와달라.’라고 이야기한 상혁은, 한국에 모인 개발자들에게 딥 다이버의 개발자 킷을 씌워준 뒤 미리 준비한 방으로 데려갔다.

게이머가 사는 거실을 가정해서 꾸민 듯한, 생활감 있는 방을.

갑자기 회사 안에 있는 가정집 거실을 보고 어리둥절해 있는 개발자들을 보며, 상혁이 말했다.

“보시다시피, 이건 그냥 평범한 집의 거실입니다. 앞에 TV 수신 장비와 TV가 있고, PS4 콘솔과 쇼파, 그리고 화분과 식탁 같은 것이 있는 아주 평범한 가정집 거실이죠.”

“그렇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저희가 개발한 VR기기는 AR기기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그리고 적외선을 이용한 코넥트의 모션 인식 특허를 우회하기 위해 장착한 LIDAR 센서와 서브 카메라 의 이미지 인식으로 동작하는 모션 인식 장치도 들어있죠.

그 기능은 VR 게임 중에 컨트롤러 없이도 플레이어의 손동작을 인식하거나, 게이머가 근처의 사물과 충돌하려 할 때 잠시 VR 기능을 해제하고 AR 모드로 변환됨으로써 주변 사물을 인식하게 하는 데 사용되기 위해 들어간 기능입니다.

하지만 그 기능을 잘 활용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죠.”

그렇게 말한 상혁이 신호를 보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분명 가정집 거실이었던 방 내부의 풍경이, 순식간에 우주선의 함장실로 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VR 모드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이 보고 있는 공간의 변화가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그들이 이토록 매우 놀라지 않았을 테니까.

‘이건···. 실내 공간의 가구를 스캔해서 그 위에 이미지를 씌운 건가?’

조금 전까지 TV가 있던 자리에 SF 스타일의 멋진 상황판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흰색 벽지로 되어 있던 방 안의 공간은, 유리로 된 가림막으로 바뀌어 공간 너머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방안의 가구들이 있는 자리에 3D 오브젝트를 덧씌워 놓은 느낌이었다.

“이건···”

미야자키는 놀란 표정으로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벽을 만져보고는 놀라움의 탄성을 터트렸다.

분명 자신이 눈으로 보고 만지고 있는 것은 유리벽인데, 손에서 느껴지는 것은 거칠거칠한 벽지의 감각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사람이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한 오브젝트라는 것이었다.

그 특이한 이질감에 당황하는 미야자키의 귀로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VR의 문제는, 실제 보여주는 공간은 넓게 뚫려있는데 현실의 공간엔 벽이 존재한다는 거죠.

반대로 현실에서는 뚫려있는데 가상공간에서는 벽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이건 그 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딥 다이버에 탑재된 거리 센서로 각 오브젝트의 크기와 성질을 파악하고 거기 맞는 3D 오브젝트를 배치하는 기능입니다.

말 그대로, 유저가 있는 공간을 그대로 게임 공간과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이죠. 유저가 있는 현실 공간에 탁자가 있으면, 가상공간에도 탁자를 배치하고, 유저가 있는 현실 공간에 벽이 있으면, 가상공간에도 벽을 배치해주는 기술입니다.”

“이 기능의 이름은 뭡니까?”

“딥 스튜디오(Deep Studio)입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미야자키는, 그때까지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공개 행사의 내용을 깨끗이 날려버렸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미야자키는 자신이 정리한 아이디어를 상혁에게 보여주면서도, 상혁이 그것에 동의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아이디어 단계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터무니없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걸 해줄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PTW 밖에 없다.’

게임에 대한 개발비는 SANY에서 지원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이것은 NE 컨벤션 전용의 기획이었고, 그렇기에 그 비용은 PTW에서 지불한다는 것을 미야자키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단순히 돈의 문제라면 미야자키는 프룸 소프트웨어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한이 있어도 구현을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의 실행을 막는 것은 자금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황당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누가 보유하고 있느냐의 문제였지.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상혁은 그런 미야자키의 기획안을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미야자키 씨.”

“예.”

“이거 그러니까, 전에 보여드린 딥 스튜디오 기반의 기술인 거죠? 그걸 가지고 시연을 하고 싶다는 거고요.”

“맞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게 저희보고 행사에서‘만’ 쓰일 전용 컨트롤러를 개발해달라고 하시는 거 맞죠?”

“예.”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상혁이 말에 미야자키가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말하면?”

“지금 공개 예정인 5게임 중에, 아머드 코아의 인지도가 가장 떨어집니다.”

“그렇죠.”

“그 말은 저희가 시리즈의 역사를 집대성한 트레일러를 만들어도, 대부분의 유저들은 그걸 보고 ‘그래서, 저게 뭔데?’라고 생각할 거라는 거죠.”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저희 게임은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게임이고, 한눈에 보기에도 쉽사리 조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죠.

상혁 씨가 알려주신 계획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딥 다이버의 VR기능을 활용해서 전 세계의 참가자가 동시에 같은 화면을 보게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예.”

“그리고 쇼케이스가 끝난 이후에는, 그 10만명의 관객들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게임을 골라서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고요.

일본에서 간담 행사에 참가 중인 플레이어도 VR 기능으로 프랑스의 구란트리스모 데모를 플레이할 수 있는 식으로.”

“그렇게 말씀드렸죠.”

“그래서입니다. 쇼케이스가 끝나면, 대부분의 유저들은 분명 메이저한 다른 게임을 플레이하려고 하지, 저희가 어떤 것을 보여주더라도 저희 게임을 플레이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예 10만 명이 동시에 강제로 지켜보게 되는 쇼케이스 시간에 ‘데모 플레이’를 시키겠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10만명에게 단순히 저희가 준비한 아머드 코어의 새로운 시스템을 보여준다고 해서 유저들을 사로잡을 수는 없겠죠.

그래서 지금 말씀드린 기능이 필요합니다. 그거라면 확실하게 유저들이 쇼케이스가 끝난 이후에도 저희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은 기분이 들 테니까.”

미야자키의 말에 상혁은 눈을 반짝이며 다시 기획서를 보았다.

“맛을 봐야 알 수 있는 요리이기 때문에 강제로 목구녕에 쑤셔넣겠다니···.”

그리고는 미야자키를 향해 말했다.

“그것참 미친 아이디어네요.”

상혁의 말을 들은 미야자키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을 하는 상혁의 눈이,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눈처럼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그 반짝이는 눈으로 미야자키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장 합시다.”

그리고 상혁이 미야자키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데려온 사람이, 바로 천하대 로봇 공학과 교수인 김기열 교수였다.

***

일본에 거주하는 아라키 시게루는 오로지 이 순간을 보기 위해 이 먼 호주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물론 자신이 사는 일본에서도 NE컨벤션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호주 행사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게임인 ‘아머드 코아’의 신작이 공개된다는 소식이 그를 이곳에 오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시드니에 있는 NE 컨벤션 회장에 들어선 순간, 그는 기쁨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테리어가, 그가 기대하고 있던 게임이 바로 이곳에서 발표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SF와 밀리터리 스타일을 적절히 조합한 듯한 인테리어.

오직 실용성만을 추구하여 만들어진 것 같은 세트 디자인.

사방에서 풍겨오는 강철의 냄새와 아머드 코아 시리즈 특유의 투박하고 각진 형태의 무기들이 사방에서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다른 행사를 놓친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세트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어디야?’

물론 그가 보고 있는 풍경이 전부 실체를 가지고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1:1 스케일의 로봇 모형을 수십 대씩 세트장에 설치할 정도로, PTW가 예산을 미친 듯이 퍼부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신 PTW는 로봇이 들어갈 ‘대기 공간’과 관객들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 등을 사실적으로 구현해내는 데 집중했다.

실제로 유저가 만지고, 걸어 다니는 공간의 구현에 집중하고, 멀리서 눈으로 보게 되어있는 부분은 죄다 AR 이미지로 처리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머드 코아의 팬이라면 행사장에 들어오자마자 실신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한두대가 아닌 수십 대의 각자 다른 디자인을 가진 강철의 거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

하늘에서 늘어진 사슬에 매달려있는 육중한 웨폰 파츠들.

그것은 지금이라도 행사장 벽면을 뚫고 나가 전쟁을 시작할 것 같은 멋진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아라키는 이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오랫동안 부었던 적금까지 깨버렸지만, 그 돈이 한 푼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이 현장감은, PTW 같이 정신 나간 회사가 아니라면 그 어떤 게임회사도 절대 구현하려 시도하지 않을 것이었기에.

그리고 이어지는 이벤트의 내용은, 그런 그를 말 그대로 ‘행복사’시키기에 충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전체 행사를 다 볼 수 있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되는 다른 행사장의 쇼케이스를 전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아라키는 흥분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렇게 공개된 게임들의 내용이, 지금까지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에.

현장의 세트와 완벽히 조화된 형태로 AR로 가능한 연출의 극한을 보여주었던 PTW의 신작 공개와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해주었던 폴리포디의 구란트리스모 7 쇼케이스.

그리고 공중전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누구라도 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로망’을 보여주었던 스페이드 컴뱃의 쇼케이스까지.

앞서 공개된 3개의 게임이 보여준 연출은 ‘딥 다이버’라는 신형 장비의 성능에 맞춰 차세대의 게임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드디어 호주의 순서가 왔을 때, 오로지 아머드 코아의 신작을 보기 위해 일본에서 호주까지 날아온 아라키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질 쇼케이스에 대한 기대감을 품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앉아있는 의자만 해도, 그에게 마치 ‘이번 아머드 코아는 정말 미친 듯이 멋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눈동자를 아래로 돌려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 의자는 마치 로봇 파일럿의 콕핏을 연상케 하는, ‘아머드 코아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곳의 파일럿은 이런 의자에 앉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만약 팔기만 해 준다면, 그 가격이 얼마이든 간에 무조건 사서 일본으로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이 의자에서 보는 쇼케이스는 진짜 장난 아니게 멋지겠지? 대체 뭘 준비했을까?’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던 아라키는 발표자인 미야자키가 입으로 마이크를 가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쿵쾅대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며, 미야자키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지금까지 다른 회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대 시리즈 최고의 작품’을 공개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그러나 그토록 그를 기대하게 했던 미야자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그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이번에 저희 프룸 소프트웨어에서는 앞서 공개된 다른 회사처럼 멋진 쇼케이스 영상을 준비하지는 못했습니다.”

미야자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기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앞서 공개된 3개의 게임은, 전부 발매 날짜가 오늘인 게임들입니다.

이 행사가 끝나고 여러분께서 딥 다이버를 구매하실 때, 함께 구매해서 당장 오늘부터 플레이 가능한 게임들이죠.

그러니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태에서 행사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된 쇼케이스 영상을 만들 여유가 있었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공개될 게임들은,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개발 중’인 게임들이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발매일이 오늘이 아니라는 미야자키의 발언은 오늘 행사를 위해 호주까지 날아온 아라키에게 깊은 실망감을 남겼다.

그리고 아머드 코어의 신작 공개에 참여하기 위해 호주까지 날아온, 다른 게이머들의 마음에도.

하지만 이어지는 미야자키의 말은, 그런 그들의 기대감을 다시 치솟아 오르게 했다.

그가 앞서 공개된 게임의 발표자들과 똑같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방금 저는 쇼케이스 영상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지, 여러분께 보여드릴 것을 준비 안 했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요.

단지 앞서 발표된 게임들이 ‘영상’의 형태를 가진 쇼케이스를 준비했다면, 저희는 실제로 여러분이 할 ‘게임’을 통째로 준비했을 뿐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가 준비한 것을 보여드리죠. PTW의 기술력과 저희 프룸 소프트웨어의 개발력이 합쳐져 완성되어가고 있는, ‘세계 최고의 로봇 액션’ 게임을.”

그렇게 말한 야마자키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들어 올린 오른손의 손가락을 세차게 튕겼다.

-딱-

넓은 회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

그가 손가락을 퉁기는 순간, 2만 명이 앉아있는 객석에서 동시에 탄성이 들려 왔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세상 그 어떤 게이머라도,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가 마치 트랜○포머의 로봇처럼 변신하는 걸 보면서 환호성을 참을 수 있지는 않을 테니까.

“WTF!?!?”

“凄い!(굉장해!)”

“Is this transforming now?(이거 지금 변신하는 거 맞아?)”

변화는 역동적이었다.

왼쪽 팔걸이가 뒤집히면서 버튼이 여러 개 달린 조작판이 나오기도 하고, 뚜껑이 열리면서 적당한 위치에 조작 레버가 달린 팔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등.

그러나 단순히 의자에서 조작 계통의 부품이 튀어나오는 것이 전부였다면, 그토록 놀랍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아무리 잘 만들려고 한다고 해도, 의자 정도의 부속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조작 장치의 퀄리티나 숫자엔 한계가 있으니까.

아마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멋지긴 하지만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변신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딥 다이버’가 지원하는 AR 기능의 서포트를 받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미친 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건가?”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가 변신하면서, 아라키는 마치 행사 공간에서 로봇의 콕핏 안으로 던져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옆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로봇의 조종석의 패널이 내려오듯 자신의 시야에 펼쳐지면서, 자신의 주위 전체에서 조작패널이 튀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어디까지가 현실의 물건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의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만져진다.’

3D 이미지라고 생각했던 버튼이 실제로 만져지는 것을 보면서, 아라키는 속으로 당황했다.

그에겐 지금까지 공개된 게임 중에서, 지금의 시연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미야자키가 의도한 바로 그 느낌이었다.

‘공간’ 자체를 활용하여 AR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었던 PTW의 쇼케이스.

그리고 ‘스토리’를 활용하여 마치 영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구란트리스모와 스페이드 컴뱃의 쇼케이스.

그에 이은 프룸 소프트웨어의 쇼케이스는 실제로 만질 수 있는 현실의 물체와 가상의 이미지를 합쳐서 만들어낸, 궁극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쇼케이스라 할 수 있었다.

미야자키는 입을 헤 벌린 채로 열심히 조작패널을 만지고 있는 2만 명의 관객을 보면서,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지금 그를 흥분하게 하는 것은 김기열 교수가 준비한 트랜○포머를 연상하게 하는 멋진 변신 시퀀스도,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2만 명의 관객뿐만 아니라,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 10만 명의 유저가 앉은 의자가 일제히 변신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그를 진정으로 흥분하게 만들고 있는 사실은, 이미 게이머를 실신하기 직전으로 몰아놓은 이 연출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 뒤에 그가 준비한 ‘플레이 데모’는, 로봇 팬이라면 정말로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것이었기에.

그리고 지금, 미야자키가 준비한 로봇 게임의 ‘정점’이, 관객들의 정면에 있는 거대한 가상 스크린에 녹색의 텍스트를 띄웠다.

[▶WELCOME◀to A.C ASSEMBLE-SYSTEM]

[System connected]

[Armored CORE: SaAC#6sf SPITE^]

그것은 2013년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사라질 운명이었던 ‘아머드 코아’시리즈가, PTW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낸 화려한 복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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