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 더욱 코어하게
시리즈마다 판매량이 오르락내리락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레이싱 게임은 메이저 장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전에 PS3시절의 ‘구란트리스모3’가 1400만장 가까이 팔린 것을 포함해서, 지금은 왕좌를 빼앗은 포르샤 시리즈도 매번 1000만장 가까이는 우습게 파는 게임이었기에.
그것도 시리즈 총합계가 아니라 단일 제품으로.
그것은 그만큼 탄탄하고 넓은 유저 층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반대로 아무리 잘 만들어도 유저 층의 확대가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는 사람만 하는 장르.
그것이 레이싱 게임이란 장르의 특징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 유저도 천만 명 이상이 존재한다는 시점에서 확실한 성공을 보장하는 시장이 또한 레이싱 게임 시장이였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은 카츠노리에게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레이싱 게임에 흥미가 없는 유저라도, 레이싱 게임에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상혁은 천만 명의 유저를 가진 시장을, 2천만, 3천만의 유저가 있는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들어간 것이 2K 시리즈에 들어간 것과 비슷한 느낌의 ‘커리어 모드’였다.
그러나 상혁은,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해 기존 팬들이 좋아하는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도 이야기했다.
기존 팬들이 이 프랜차이즈에 바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구현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면서.
그래서 결정된 것이 지금의 2부 형식으로 구성된 게임 쇼케이스였다.
1부는 한편의 스포츠 드라마같은 연출을 통해 유저가 게임을 하며 겪을 ‘스토리’에 대해 보여주고, 2부에서는 폴리포디가 개발력의 한계를 넘어 구현해 낸 레이싱 게임의 이상향에 대해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번 구란트리스모7의 쇼케이스 방식이었다.
[역대 사상 최다 차량인 1257대의 차량 라이선스.]
[GOS(Guardian of Steel)의 애니메이션 버젼에 사용된 물리 및 환경 엔진을 구란트리스모에 맞춰 적용.]
[장갑, 헬멧, 슈트, 핸들, 차량 내부 장식까지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시스템]
[피트에서 레이스를 지원하는 스텝들의 모든 모션을 모션 캡쳐로 리얼하게 구현.]
[기본 PS4부터 부스트 성능에 따라 가변으로 적용되는 다양한 그래픽 옵션.]
[재능에 대한 고민, 지나친 성공에 의한 자만 등, 유저의 레이스 성적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커리어 모드 스토리.]
[모든 서킷의 피트와 팀 설비는 해당 레이스 팀과의 라이선스를 통해 실제와 동일하게 구현.]
[VR모드에서 유저의 커맨드에 따라 다이나믹하게 캐릭터의 드라이빙 모션이 실시간으로 변화.]
[클래식 카의 경우 복원을 담당한 개러지(Garage)의 특성에 따라 성능과 외형, 가격이 미묘하게 변화.
폐차장에서 망가진 차체를 사들여 복원 의뢰를 통해 차량을 입수하는 것도 가능.]
‘구란트리스모7’의 2부 영상.
그것은 마치 개발자가 유저에게 ‘우리가 이 정도까지 구현했어요’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한 내용으로 가득 있었다.
레이싱 게임을 잘 아는 팬이라면 열광할 만한 요소들이 가득했지만, 그렇지 않은 팬들에게는 자칫 어려운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는 내용으로.
그러나 영상은 레이싱 장르의 팬에게나 그렇지 않은 팬에게나 전혀 지루한 느낌은 아니었다.
온갖 정보로 가득한 영상의 중간중간에, ‘이것도 넣었어?’싶을 만한 깨알 같은 요소들이 적당히 긴장을 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차량 충돌로 리타이어시 충돌 차량의 드라이버를 두들겨 팰 수 있는 서킷 파이트 시스템 적용]
특히 하이바를 집어던지며 도망치는 상대 레이서를 쫓아가는 영상은 관객들이 긴장을 풀고 웃게 만드는 좋은 타이밍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보면서, 관객들은 이번 신작이 특정한 하나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레이서가 된 기분을 그대로 체험하게 해 주는 것.’
이번에 발표된 구란트리스모7은, 단순히 좋은 그래픽에서 리얼한 느낌으로 차량을 몰아 승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킷의 밖에 있는 현장감까지 충실하게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레이싱 게임을 플레이했던 골수 장르 팬들도, 흥미를 가지고 한 번쯤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그러나 이 게임이 가진 강점이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단순히 커리어 모드의 몰입감과 향상된 그래픽만으로 밀어붙이는 그런 게임이었다면, 카츠노리는 게임의 서브타이틀을 ‘완벽’이라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유저에게 어필하는 것 외에도, 기존의 장르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강렬한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그야말로 ‘완벽’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게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x바. 지린다···. 진짜 대박이네.-
-레이싱 게임 팬도 아닌데 저 게임은 해보고 싶다.-
-레이싱 게임 팬이 보기에도 해보고 싶은 요소로 가득하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추구한 느낌의 시스템처럼 보인다.-
-계속 높아지던 시스템의 벽을 이렇게 돌파했구나.-
한국에서 VR로 프랑스의 이벤트를 지켜보고 있던 형진은, 채팅창에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대화를 보고 이따금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도 하며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단순히 PTW에서 준비한 영상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만이라면, 굳이 자신의 방송을 보는 것이 아니라 PTW 홈페이지의 공식 영상을 보아도 되었을 테니까.
각 행사장에 모인 2만 명의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이번 이벤트를 주최하는 개발사의 역할이라면, 현재 스트리밍 방송을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수만명의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스트리머인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형진은 생각하고 있었다.
“구란트리스모의 전체 시리즈와 PTW에서 나온 게임을 구작까지 대부분 플레이한 제 경험으로 보았을 때는, 대체적으로 이번 행사에 함께 참여한 업체들에게 PTW가 무엇을 요구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형진의 말에 시청자들은 흥미를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기존의 구란트리스모 시리즈가 추구하던 방향과, 이번에 PTW가 개발에 개입하면서 변한 방향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죠.
굳이 말하면, 지금 공개된 게임은 구란트리스모이면서 구란트리스모가 아닌 게임이니까요.”
-하긴, 확실히 기존 구란트리스모가 지향하는 아이덴티티는 지키면서, 새로운 것을 더해서 더 완벽하게 만든 느낌이긴 하네.-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시청자의 채팅을 본 형진은 자신감을 받아 말을 이어갔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원래 시리즈가 반복될수록, 기존 유저들에게 똑같은 시스템은 너무 쉽게 느껴지게 마련이죠.
보통 그래서 기존 팬들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시리즈의 후속작은 좀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고요.
그렇게 코어 해지던 게임이 대중성 확보를 위해서 캐쥬얼하게 바뀌면, 이번엔 기존 팬들이 게임이 너무 가볍다고 불평하게 돼요.
그건 시리즈물이 가지는 일종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죠.
지금 공개되고 있는 구란트리스모7은, 그런 시리즈물의 딜레마에 대해 폴리포디가 내린 나름의 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난 구란트리스모를 안 해봤는데, 어느 부분이 그렇다는 거야?-
“우선 1부에서 공개된 내용을 보면, 대체로 레이싱 게임의 코어 팬이 아닌 일반 팬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죠.
애당초 레이싱 게임에 환장한 인간들에게 스토리모드라던가 멘토란 존재는 그냥 싱글 플레이를 즐겁게 즐기게 만드는 양념 같은 존재일 뿐이니까.
집중하는 포커스가 달라요.
구란트리스모의 코어팬들이 신경 쓰는 건, 전작 대비 얼마나 많은 차량이 나오냐, 내가 제패할 수 있는 코스가 얼마나 나오냐, 조작감은 어떻게 개선되었나, 8세대 콘솔의 성능과 부스팅 기능을 풀로 지원했을 때 얼마나 리얼한 드라이빙이 가능한가.
뭐 이런 기준인 거죠.
결과적으로 기존 팬들은 스토리 보다는 게임성을 봅니다.
철권 팬들이 신작에서 싱글 플레이 이야기보다는 캐릭터 밸런스에 더 신경 쓰는 거랑 비슷한 겁니다.
그런데 이미 1부에서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이미 1천만 장 이상 판매는 확실히 보장된 컨셉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폴리포디는 2부 편성을 통해서 기존 팬들이 신경 쓰는 부분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내용은, 생각보다 이 게임이 깊이가 있을 거라 예고하고 있고요.”
그러자 한 시청자가 채팅창을 통해 형진에게 말했다.
게임에 깊이가 있다는 말은,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게임이 어렵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기에.
그리고 지금 공개되고 있는 2부의 내용을 보면, 그것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었다.
-깊이가 있다는 말은 어렵다는 이야기 아니야?-
그리고 형진은, 그런 시청자의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다른 PTW게임들도 마찬가지잖아요?”
매번 기존의 시리즈 팬들을 우한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만 개발하는 PTW였지만 팬들에게 있어서 PTW의 게임들은 한번 사면 몇 년이고 플레이 가능한 깊이 있는 게임플레이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컨셉트로 끌어들여 깊이로 사로잡는다’가 PTW의 게임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거기에 기본적으로 MYOM이나 OGC같이 리셋을 하지 않는 게임을 제외하면 언제나 다 회차 플레이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을 지원하기 때문에 몇 번의 엔딩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게임이 PTW의 게임이었다.
그러나 그런 ‘깊이’와 ‘하드코어함’을 지닌 PTW의 게임에 대해서 그것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유저는 한 명도 없었다.
언제나 잘 짜인 싱글 플레이에 푹 빠져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라이트 유저가 하드코어 유저가 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 PTW의 개발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형진은 지금 공개되고 있는 구란트리스모에서 그런 PTW의 향기를 찐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마 지금 2부에서 공개되고 있는 수없이 복잡한 요소들을, 유저들은 아무런 부담없이 싱글 플레이에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겁니다.
적어도 그렇게 유저가 게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게임을 설계하는 부분에서, PTW는 거의 독보적인 경지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혹시 시청자분들 중에 레이싱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뭐?! 노면 상태나 타이어의 마모 상태에 따라서 주행감이 다 달라지고 차량 무게나 부품의 관리 상태에 따른 변화도 전부 적용된다고?
너무 복잡한 거 아니냐?’라고요.
하지만 제가 확신을 담아 말하건대, 그런 걱정은 없을 겁니다.
지금 이 행사에서 공개된 모든 게임은 PTW에서 개발에 참여한 게임들이고, PTW의 게임들은 절대 초보 유저가 멍하니 서서 ‘자, 튜토리얼은 끝났는데,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라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만일 카츠노리가 형진의 말을 들었다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실제로 신형 커리어 모드의 개발과정에서, PTW가 가장 신경 써서 지원한 부분이 그 부분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상혁이 ‘유저층의 확대’라는 이야기를 꺼내었을 때, 카츠노리는 당연하게 그것이 게임을 캐쥬얼하게 개선하라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였었다.
기존의 구란트리스모 팬 층이 아닌, 일반 게이머들도 쉽고 편하게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러나 그런 카츠노리의 의견에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반대라고 말해주었다.
오히려 이번 신작은, 역대 시리즈 사상 가장 복잡하고 깊이 있는 물리 엔진을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레이싱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유저가 전부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깊이를 지닐 수 있도록.
“유저층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게임을 더 하드코어하게 만들라는 건 모순 아닙니까?”
카츠노리가 묻자, 상혁은 그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 추가되는 커리어 모드 전체가,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들어가는 거니까.”
그렇게 추가된 커리어 모드는, 상혁이 호언장담한 대로 유저가 게임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장치들로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진짜로 표현하기 나름이었어.’
만일 단순히 노면의 상태나 그날의 날씨에 따라 주행감이 변한다는 시스템만 딸랑 들어가 있었다면, 그것은 유저에게 ‘번거로운 복잡함’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같은 시스템이라도, 그것이 실제 레이서가 매번 체크하는 중요한 스테이터스라는 부분을 강조하면서 멘토가 새벽에 유저를 끌고 나와 스토리 안에 들어간 대사로 자연스럽게 그 요소를 어필한다면, 그것은 게임의 깊이처럼 보이게 된다.
그와 동시에, 상혁은 그런 복잡함을 유저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장치들을 게임안에 삽입할 것을 권했다.
일반적으로는 큰 역할을 끼치지 않는, 게임 내의 ‘NPC’를 통해서.
“사실 마리의 눈물은 고전 게임이긴 하지만 엄청나게 복잡한 게임이었어요.
유저가 모든 것을 신경 쓰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게임 시스템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죠.”
“저는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그거야 그 복잡함을 감당하기 위해서 들어간 ‘측근 시스템’이 있으니까요.”
상혁의 말대로, 마리의 눈물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최종 컨텐츠는, 측근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고 본인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1인 플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엔딩을 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고.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고용한 측근들이 대부분의 문제를 다 해결해주게 되어 있었지만, 그런 측근을 한명도 고용하지 않게 된다면 그 모든 업무 부담이 플레이어에게 전가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게임 스타일은, PTW에서 만든 다른 게임들에도 적용되어 있었다.
이 세계 의사 시뮬레이터를 표방하는 TAW에서도 NPC 동료를 구하여 병원 운영 과정에서의 잡무를 떠넘길 수 있었고, EOD에서도 부대 편성을 통해 NPC에게 자신이 하기 귀찮은 부분들을 맡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 시스템이 있어야, 크루(Crew)들의 팀 내 역할에 대한 비중이 커질 수 있겠죠.
카츠노리 씨. 게임의 깊이는 좋은 요소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귀찮게 느껴지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선택의 권한을 줄 수 있어야죠.
어디까지 NPC에게 맡기고, 어디까지 자신이 직접 할지.”
그것은 지금까지 PTW가 게임의 깊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진입장벽을 낮게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개발 철학에서 나온 노하우였다.
‘그리고 정말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았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엄청나게 복잡한 게임 시스템 소개를 보면서, 카츠노리는 생각했다.
자신과 폴리포디 디지털이 기존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요소들로 게임을 가득 채웠다면, PTW에서는 그것을 신규 유저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이드’를 만들어 주었다고.
그것은 1200대가 넘는 차량의 라이선스를 추가할 수 있게 지원해 준 SANY의 금전적 지원보다, 자신에게는 훨씬 큰 도움이 되는 지원이라 할 수 있었다.
‘PTW···.’
특이한 회사다.
물론 자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장인 정신없이 게임을 만든 적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PTW라는 회사의 직원들이 게임에 쏟아붓는 노력은 그에게 있어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처럼 보였다.
무슨 좋은 게임을 못만들어서 한맺힌 인간들만 모아놓으면 이런 회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
그리고 그런 그들의 집착은 그 게임이 자신들의 회사에서 만든 게임이든, 남의 회사에서 만드는 게임이든 전혀 상관없이 온갖 곳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단순히 공동 QA의 차원을 넘어서, 아예 ‘공동 개발’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을 수준으로.
그리고 카츠노리는 그것이 부러웠다.
‘뭐, 그래도 우리 직원들도 거기에 물든 것 같기도 하고.’
상념에 잠겨 있던 카츠노리는 어느새 시스템 소개가 메인인 2부의 영상이 마무리 될 타이밍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관객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무언가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멍하니 고글 저편의 허공을 바라보는 2만 명의 얼굴을.
그들이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들만한 게임을 자신과 자신이 다니는 개발팀이 만들었다는 것.
그것은 게임 개발자로 평생을 살아온 카츠노리가 보았던 수많은 경험중에 가장 짜릿한 경험이라 할 수 있었다.
‘진짜로, 최고네. 이런 이벤트는.
게임 개발자에게 있어서도, 팬들에게 있어서도.’
점점 간절해지는 유저들의 표정을 보면서, 카츠노리는 생각했다.
그들이 지금 가장 듣고 싶어하는 단어가 무엇일지, 잘 알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아마 당장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겠지. 나라도 그럴 테니까.’
카츠노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멋진 게임의 발매일이 바로 오늘이라는 점이었다.
만약 자신이 게이머라면, 이렇게 멋진 게임을 보여주고 나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대사가 ‘coming soon’일 테니.
‘그리고 우린 알지.’
유저들이 가장 기다리던 대사를, 가장 간절히 원하고 있는 타이밍에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번 ‘구란트리스모 7’의 공개의 라스트 피날레를 장식하는 한 줄의 문장이었다.
[Now Playable]
영상의 끝에 나온 한 줄의 문장.
그것은 유저들이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었다.
“Yeeeeeeeeeeeeeeeeeeeeeahh!!”
-그래 저걸 기다렸어!!!-
“This is f○cking crazy!!!”
-커밍 순 같은 대사가 나왔으면 기다리느라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고!!-
“I love you PTW!!”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어, 수천만의 유저를 동시에 흥분시킨 한줄의 문장.
‘넌 레이서가 될 수 있어’라는 메시지로 구성된 1부의 체감형 영상과, ‘그리고 그 과정은 이렇게 끝내줄 거야’라는 메시지로 구성된 2부의 영상을 마치는 피날레로, 그것보다 유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단어는 없었다.
“Hell the f○cking yeeeeahh!!”
“F○ck!!F○ck!!F○ck!!F○ck!!!!!!”
사방에서 f워드가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카츠노리는 조용히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구란트리스모 7은. 레이싱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로서 지금이 제 커리어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게임입니다.
그리고 저는, 게임 개발자로 여러분께 그런 멋진 게임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그건 끝장나게 멋졌어요!!!”
누군가 감정을 참지 못해 소리치는 것을 들은 카츠노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도 압니다. 저희가 봐도 이번 구란트리스모 7은, 레이싱 게임 팬이라면 실신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게임이니까요.
하지만 여러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전 세계 모든 게이머들을 ‘행복사’시키기 위한 이번 NE컨벤션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카츠노리는 조금 전 본 게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아직 3개의 게임이 더 남아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는 그들의 기대감을 부추기는 말을 꺼냈다.
“믿으십시오. 이번 컨소시엄에서, 저희 개발팀은 모든 개발 과정을 서로에게 오픈했으니까요.
당연히 저는 나머지 게임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조금 자존심 상하는 말이지만, 저희 게임에 절대 밀리지 않는 게임들입니다.
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여러분은 지금 NE 컨벤션에 와 있으니까요.”
NE 컨벤션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
그것은 이미 콘솔 게임 업계에서는, 아니 전 세계 게이머들 사이에 믿음과 신뢰의 아이콘처럼 통하는 단어였기에, 단순히 그 단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기대감은 급하게 에스컬레이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츠노리는, 이제 자신이 다음 주자에게 바턴을 넘길 차례임을 깨달았다.
지금이 바로, 이 극도로 흥분한 10만 명의 불타는 시선을, 미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페이드 컴뱃’의 코토 카즈노키에게 넘길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물론 그 기대감을 채워야 하는 코토의 입장에선, 토할 만큼 부담감이 느껴지겠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었다.
이쪽은 무려 PTW의 바로 뒷 순서였으니까.
지옥이라면 이쪽이 더 지옥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카츠노리는 마이크를 향해 외쳤다.
“그럼 저도 이제부터 잠시 여러분과 함께 미국에 있는 스페이드 컴뱃의 신작 쇼 케이스를 구경하도록 하죠.”
그리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기대감을 가득 품고서 말이죠.”
천천히 올라가는 카츠노리의 손가락을 보며, 미국에서 딥 다이버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코토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카츠노리의 손가락이 의미하는 것.
그것은 유저들의 미칠듯한 기대감을 놓고 5개 개발사가 참여한 이 ‘죽음의 레이스’에서, 이제 자신이 개발한 신작이 공개될 타이밍이라는 의미였으니까.
‘아 씨, 아직 마음의 준비가···.’
-딱-
그런 코토의 부담감을 무시한 채, 카츠노리가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코토가 쓰고 있는 헤드셋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코토는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방금까지 이곳 미국에서 프랑스의 이벤트를 관람하고 있던 2만 명의 관객의 눈동자가, 지금 바로 자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하···. 하하···.”
코토의 허탈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프랑스에 있던 카츠노리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인지도가 높다고 나보고 PTW바로 뒤에 발표하라고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인 게 코토 당신이었지.
어디 한번 X 돼봐라.’
그것은 순서 선정을 할 때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PTW의 바로 뒷 순서를 맡게 된 카츠노리가 코토를 위해 준비한, 아주 작은 복수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