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73화 (274/485)

273. 파격적인 개막

“젠장, 아무리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서라지만, 그래도 밤 11시에 오픈하는 건 좀 심한 거 같은데···.”

미국에서 진행되는 미국 NE 컨벤션에 참여하기 위해 LA 근처에 구한 호텔에서 깨어난 드와이트 슈르트는 어두컴컴한 창밖의 모습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밤에 열리는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낮에 억지로 잠을 청해야 했던 그의 투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뭐, 하지만 의도는 이해가 되니까 말이지. 지극히 PTW스러운 결정이기도 했고.”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의 타당한 이유를, PTW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미리 행사가 오픈된 국가의 참가자가 타국가 이벤트 참여자에게 행사 내용을 스포일러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번 3차 NE 컨벤션은 5개 국가에서 동시에 오픈하여 진행하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구는 구형이며, 매일 한 바퀴씩 자전한다.

그 말은 곧 대한민국이 오전 8시일 때, LA는 오후 4시, 파리는 새벽 1시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이유로,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스포일러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느 한 국가를 기준으로 시간을 잡는 순간, 다른 국가는 시차 때문에 강제로 스포일러를 감수하게 되기 때문에.

지구 전체에 퍼져 있는 5개 도시에서 동시에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3차 NE 컨벤션이 열리기 전 유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대체 어느 국가에서 가장 먼저 NE 컨벤션이 열릴 것인가’가 되었다.

그것은 어느 국가에서 진행되는 이벤트에 참여해야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고, PTW의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린 ‘충격적인 경험’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였기에, 이번에 발표된 5개 국가의 콘솔 게이머들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날카롭게 자신들의 국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일부 정보가 유출되긴 했어도 항상 ‘예상외의 무언가’를 더 보여주는 PTW라는 회사의 특성상, 어느 한 국가에서 먼저 이벤트가 열리게 된다면 나머지 국가의 행사 참가자들은 자연스레 스포일러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LA 표준시를 기본으로 오픈해야지. 이제까지 NE 컨벤션은 항상 미국에서 진행됐었고, PTW의 가장 큰 팬덤도 미국에 있다고.

만일 다른 국가에서 행사를 먼저 진행한다고 하면, 그건 미국에 있는 수많은 PTW 팬들을 배신하는 거야.]

↳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멋진 콘솔 게임 이벤트를 두 번이나 처먹어놓고 3번째도 욕심부리냐? 그리고 미국 기준으로 8월 15일에 행사가 시작되면 다른 국가는 무조건 8월 16일을 넘겨서 시작하게 된다고.

미국 하나 때문에 얼마나 손해 보라는 거야?

↳ 윗 녀석 말에 동감한다. 두 번이나 편하게 먹었으면 이번엔 양보해라.

↳ 그런 의미에서 같은 타임라인을 공유하는 일본 표준시는 어떻습니까?

그럼 한국하고도 같은 시간에 맞출 수 있을 텐데.

↳ 유럽 전체 콘솔 유저들의 니즈를 맞춰야 하는 프랑스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유럽의 콘솔 팬들아! 내 의견을 지지해줘!

↳ 닥쳐라. 난 영국이 선정 안된 것만으로도 열 받으니까. 차라리 미국을 지지하고 말지.

↳ 독일의 콘솔 팬들은 PTW본사가 있는 서울 표준시에 행사가 진행되는 것을 지지하겠습니다.

그러니 다음 NE 컨벤션 유럽지역 이벤트는 독일에서 진행 부탁드립니다.

↳ 이 정 없는 독일놈들···..

그렇게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는, 당연히 행사 정보를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던 상혁도 이미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상혁은 그것에 대한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무슨 결정을 내리던 간에, 해당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 팬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팬들의 비난보다는, 가장 기대하던 이벤트를 스포일러 당하게 되는 팬들의 마음이었다.

결국 상혁은 그 문제를 두고 무려 한 달을 고민하다 이벤트를 두 달 앞두고 진행된 입장권 온라인 판매 직전에, 최종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보아도 매우 파격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어느 한 국가에서 먼저 진행하는 것이 아닌, 아예 전 세계에서 동시에 같은 시간에 맞춰서 컨벤션을 오픈하는 것.

예를 들어 한국과 도쿄에서 아침 8시에 컨벤션 입장을 시작하면, 프랑스에서는 새벽 1시에 입장을 시키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처음 그 공지를 본 유저들은 PTW의 황당한 공지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전 세계의 어느 행사도, 그런 식으로 진행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PTW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동영상에서 상혁이 설명한 이유는 그런 황당함을 감수할 만한 충분한 설득력을 담고 있었다.

[당연히 전 세계 5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이벤트이니 만큼, 일반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면 절대로 스포일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건 저희가 참가자들에게 엠바고를 걸어도 마찬가지겠죠.

그리고 이번 이벤트에서, 저희 PTW는 협력사들과 함께 행사에 참가할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모든 노력과 유저분들의 기대감.

그것이 단순히 먼저 진행된 국가에서의 참가자가 인터넷에 가볍게 올린 스포일러로 망가지는 것은 절대 전체 유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미국에서만 진행하는 것도 전 세계에 있는 팬들을 위한 결정은 아닌 게 될 거고요.

저는 모두를 위해서, 이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내가 스포일러를 당하면 기분 나쁜 만큼, 남도 스포일러를 당하면 기분 나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이벤트에서, 행사 내용이 가져다주는 경험을 남의 입으로 듣는 것은 절대 즐거운 경험이 되지 못한다.

상혁이 결정한 3차 NE 컨벤션의 전 세계 동시 진행은, 그런 지극히 단순한 이유에 기반하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저희는 행사 기준 시각을 파리의 표준시로 맞추기로 했습니다.

행사는 파리 시각으로 2017년 8월 15일 오전 9시에 시작된 것이며, 서울과 도쿄는 오후 4시, LA는 오전 0시. 그리고 시드니는 오후 6시가 행사 개시 시간이 됩니다.

그 시각에 맞춰서, 전 세계에 준비된 NE 컨벤션 행사장이 동시에 오픈되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글로벌 쇼 케이스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물론 저 역시 어느 국가를 기준 시각으로 잡는 것이 옳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개최지로 선정된 두 개 국가가 같은 표준시를 사용하는 한국 표준시를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혹은 이제까지 NE 컨벤션이 진행되었던 미국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에 대한 논란 말이죠.

하지만 저희가 파리의 NE 컨벤션 오픈 시간을 기준으로 글로벌 쇼케이스를 잡은 이유는 그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 NE 컨벤션은 국가별로 공개되는 게임이 전부 다르고, 그에 따라 행사의 테마도 전부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NE 컨벤션은, 라 사르트 서킷(Circuit de La Sarthe)이 있는 도시 ‘르망’에서 열리게 됩니다.

그곳은 저희가 준비 중인 5개 행사장 중에 유일하게 야외 행사로 준비되고 있기에, 행사를 낮에 진행해야 참가자분들께 최적의 경험을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국가의 이벤트들은, 임시로 건축된 실내 세트에서 진행되기에 낮에 진행되건 밤에 진행되건 받는 경험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죠.

물론 15일 자정에 이벤트가 오픈되는 LA 참가자들의 경우는 많이 피곤하시긴 하겠지만···]

영상속의 상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 피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재미를 전달해드리겠다고, 저희 PTW가 약속드리겠습니다.]

‘모두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하여 모두 같은 시각에 행사를 오픈하고, 그 기준 시각을 프랑스로 잡았다는 상혁의 설명은 게이머 스스로가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합리성을 담고 있었다.

그 덕에 LA의 컨벤션에 참여하기 위해 저녁 10시에 일어나야 했던 게이머 드와이트도, 조금 투덜거리면서도 즐거운 기분으로 행사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고.

“그래. 어쩌면 이 한밤중에 이벤트가 열린다는 게 오히려 기억에 더 남을 수도 있지. 그리고···.”

행사에 가기 위해 신발을 신으며, 드와이트가 중얼거렸다.

“인터넷으로 스포일러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나을 테니까.”

‘Next Experience’라는 행사의 슬로건 대로, PTW가 제공하는 ‘시대를 앞선 경험’을 전 세계 최초로 직접 볼 기회는, 비록 그것을 위해서 밤 12시에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드와이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시각.

NE 컨벤션이 오픈되는 오후 4시를 1시간 앞두고 있는 한국의 콘솔 게이머들도, 드와이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여러분, 이걸 보세요. 이게 진짜로 한국 게임 개발사가 진행하는 게임 쇼가 맞는 것 같습니까? 입장도 하기 전인데 벌써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처럼 실시간 방송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네요.

익숙한 얼굴도 꽤 있고요.”

인터넷에서 콘솔 게임 방송을 주로 진행하는 BJ 박형진은 이번에 큰맘 먹고 거액을 들여 한국의 NE 컨벤션 참가권을 구했다.

행사 중간에 방송 송출이 금지되었던 이전의 NE 컨벤션과는 다르게, 상혁이 이번 3차 컨벤션에서는 스트리머들의 실시간 방송을 허용한다고 공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스트리머들에게 노다지나 다름없는 상황처럼 보였다.

‘시청자 수 미쳤네.’

현재 스트리밍 사이트인 트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OGC라 할 수 있었다.

OGC는 딱히 합방을 진행하지 않아도 AI와 자연스레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들며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고, 게다가 기존에 가장 인기있던 게임 중 하나인 ‘광산 크래프트’가 통째로 게임 안에 탑재되어 있기도 했기에.

그러나 그런 인기와는 대조적으로 각 채널의 평균 시청자 수는 그리 높지 않았는데, 워낙 많은 스트리머들이 OGC를 메인 방송 컨텐츠로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형진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OGC 방송을 진행할 때 그의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 수는 대략 300명 정도.

그러나 오늘 NE 컨벤션의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고 예고하고 시작한 그의 방송은, 방송을 시작한 지 3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벌써 9천명의 시청자를 넘어서고 있었다.

-I'm curious about other national events, but I'll have to watch the Korean event with PTW's new game.(타 국가 이벤트도 궁금하지만 역시 PTW의 신작이 제일 궁금하긴 하지.)-

-I like this BJ's voice, but I can't understand what he's saying.(이 BJ의 목소리는 마음에 들지만, 뭐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Are there any Korean TV shows hosted by Americans?(혹시 미국인이 진행하는 한국 방송은 없나?-

전 세계의 수많은 PTW팬들이, 자신의 언어권에서 개최되는 이벤트의 관람을 포기하고 한국의 BJ들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을 보기 위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오는 영문 채팅들은, 비록 형진이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그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부푼 마음을 담아서, 형진은 자신의 방송을 보고 있는 한국인 시청자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채팅창 보고 계십니까? 한국인 시청자들보다 외국인 시청자들이 더 많아요.

평소에 시청자 수 세자리인 제 방송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와 있습니다. 그리고 뭐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거겠죠.

전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이번 NE컨벤션에서, 자기네 나라의 행사를 보는걸 포기하고 한국 방송을 보러왔다고요. 영어는 모르지만,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여기, 한국의 서울에서 진행되는 NE컨벤션에서, PTW의 신작이 공개되기 때문이죠.

그거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크으으!!주모오오오!! 여기 국뽕 두 사발 말아주이소!-

-ㅋㅋㅋ 형진이 오늘은 국뽕 코인 빨려고 작정했나?-

-솔직히 말해봐. 오늘 표 구하는 데 얼마 씀? 나 중고나라에서 327만 원에 올라온 거 봤는데 이미 팔렸던데?-

“돈이 문제겠습니까? 평생의 추억이 생기는 건데.

예전에 1차 NE 컨벤션 갔었던 한국 콘솔 게이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기는 묘비에 이렇게 새겨달라고 말할 거라고.

‘한국인. 콘솔 게이머. 그리고 첫 번째 NE 컨벤션에 참여함.’

그 정도로 참가한 사람마다 전설로 꼽는 행사가 바로 이 NE 컨벤션이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턴 저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제가 죽으면 묘비에 이렇게 새겨달라고요.

‘한국인. 콘솔 게이머. 3차 NE 컨벤션에 참가함.’”

-국뽕이 아니라 PTW 뽕이었나. ㅋㅋㅋ-

-티켓값으로만 수백만 원 썼을 텐데 저 정도는 인정-

-아, 내가 저기 있었어야 했는데.

예약만 성공했어도···.-

-그래도 이렇게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게 어디임?

예전 이벤트 때는 행사 끝나고 홈페이지에 이벤트 영상 올라올 때까지 진짜 목이 빠지게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진짜 좋아진 거라고.

난 진짜 일본에서 행사 진행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한국에서도 해줄 줄 몰랐다.

한국에서 OGC 팔린 거 매출 다 합쳐도 이번 이벤트에 들어간 비용 못 건질 듯?-

그러자 채팅을 본 형진이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 역시, 방금 채팅을 올린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PTW의 덕에 콘솔 게이머가 정말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한국에서 생기는 매출은 진짜로 다른 나라 매출에 비하면 보잘것없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글로벌 기업인 PTW가 한국 게이머들을 위해서 이렇게 아낌없이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습니다.

물론 푯값에 327만 원이나 쓰긴 했지만, 원래 제대로 예매에 성공했더라면 겨우 2만 원짜리 출전자격이었을 테니까요.

2만 원짜리 행사에 이 정도 규모의 이벤트다?

이건 그냥 팬서비스죠.”

-ㅋㅋㅋㅋ 윗놈이 말한 중고나라 티켓 산 게 너였냨ㅋㅋㅋㅋ-

-형진아 PTW가 글로벌 기업인 건 맞는데 그 전에 한국 회사임. 매번 뉴스에서 MS나 SANY같은 글로벌 대기업이랑 얽혀서 외국회사같이 느껴지는 거지 본사는 한국에 있다곸ㅋㅋㅋㅋ-

“아! 여러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지금부터 저도 인파를 따라 행사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끝까지 저와 함께 해 주세요!

1차 때의 코넥트 발표! 그리고 2차 때의 커뮤니케이션 엔진 발표에 이어서!

오늘은 분명 ‘게임계의 역사가 바뀌는’, 그런 대단한 날이 될 테니까!”

그렇게 소리친 형진은 방송 중계를 위해 들고 있는 카메라를 들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국 시간으로 2017년 8월 15일 오후 3시 45분. 전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3차 NE 컨벤션에 참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10만 명의 게이머들과 함께.

그것은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넘어,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동시에 움직이게 만든 거대한 이벤트의 시작이었다.

***

“오오오!! 입구부터 뭔가 엄청나! SF 컨셉인가봐요! 여러분! PTW의 신작은 SF컨셉의 게임인가 봅니다!”

PTW는 이번 이벤트를 이주용의 소개로 삼정 중공업과 함께 준비해왔다.

단순히 상상으로 구현한 우주 전함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함선 건조에 필요한 제반 지식들이 적용된 리얼한 세트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렇기에 한국에 준비된 3차 NE 컨벤션이 세트들은, 말 그대로 진짜 전함의 설비같은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거기에 천하대 로봇 공학과 교수 김기열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동작 기믹이 적용되자, 그것은 진짜 SF 속에 나오는 전함의 입구처럼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형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채팅도 무시한 채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의 영상으로 이벤트의 모습을 보는 것과, 그 현장에 직접 가서 ‘실제로’ 체험하는 것은 그 무게감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진짜 말로만 들었지만 겨우 3일 개최되는 이벤트에 이 정도로 정성을 들이다니.

매번 행사 때마다 수백 수천억 가까이 적자를 감수한다고 하는데 왜 그 정도 비용이 드는지 입구만 봐도 완벽하게 이해가 가네요!

아, 이제 제 차례입니다! 여러분! 드디어 행사장 안으로 들어갑니다아아아아!!! ···어라?”

잔뜩 흥분된 상태로 안에 들어간 형준의 말이 멈췄다.

그리고 형준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통해 행사장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채팅도 잠시 멈춰버렸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뭐야, 입구는 그렇게 화려하더니 내부는 시원찮은데?-

-마감이 덜 된건가? 아니면 컨셉인가?-

형진의 카메라를 통해 비춰지는 광경은 밖에서 보았던 SF 컨셉의 입구와는 다르게 매우 단순한 느낌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뭔가를 만들려다가 마감이 덜된 상태로 마무리 된 것 같은, 있어야할 곳에 있어야할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황한 형진은 급하게 시청자들에게 어찌된 일인지 경위를 파악하겠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요. 저기 안내요원이 있으니 물어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안쪽에 있는 안내원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다가갔다.

“이거 지금 완성된 세트 맞죠?”

형진의 질문은 돌려 말하면 ‘왜 이렇게 허접스럽게 생겼냐’라는 의미였지만, 안내원은 그런 형진의 질문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친절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아뇨, 이게 완성된 세

트입니다.”

“겉으로 보는 거랑 너무 다른데요?”

“그렇죠? 그게 이번 행사의 굉장한 점이거든요.”

“예?!”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에 알게 되실 겁니다. 아, 지금 1차 입장 인원이 다 찼네요.”

입장한 인원 카운트가 1000명이 되자, 진행자들이 잠시 관객의 입장을 멈췄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거대한 카트를 가져와 산더미처럼 쌓인 쇼핑백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지금 나눠드리는 쇼핑백은 이번 행사의 참가 기념품과, 행사 진행을 위해 필요한 PTW의 신형 주변기기가 들어있습니다.

이후에 행사가 끝날 때, 지금 나눠드린 주변기기는 주최측에서 회수 예정입니다만, 그렇다고 너무 조심스럽게 다루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져보면 아시겠지만 꽤 튼튼하게 만들어진 장비라서요.”

그렇게 말한 진행 요원이 머리에 고글 형태의 장비를 쓰며 말했다.

“쇼핑백 안에 있는 헤드 바이저 형태의 장비를 착용해주세요.”

형진은 쇼핑백 안을 카메라로 비췄다.

거기엔 행사 기념품으로 배포되는 다양한 굿즈들과 함께, 커다란 고글이 달린 헬맷 형태의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대체 용도가 뭔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괴상한 무언가가.

“여러분, 이게 뭘까요?”

형진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우주 전함의 승무원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하려고 만들어진, 일종의 코스튬 악세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용도의 장비치고는 무게가 지나치게 무겁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장비라면, 단순히 플라스틱으로 모양만 구현하면 될 문제였기 때문에 형진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전원 켜봐.-

-뭐지?-

-저기 디스플레이만 달려있으면 딱 VR 장비인데?-

-그 중요한 디스플레이가 없잖아. 저게 대체 뭐냐고.-

-전원 켜보라고!-

“전원 버튼이 안 보여요.”

형진이 채팅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바이저를 집어 들었다.

“일단 시키는 대로 머리에 쓰겠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형진은 바이저를 썼지만 두꺼운 유리가 눈 앞을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야 확보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자 형진은 잠시 다음 안내를 기다리며 착용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착용감은 되게 좋습니다. 무게 중심이 정수리에 있어서 목에 부담도 안가는 느낌이고, 귀 쪽도 쾌적한 게 땀도 안 찰 것 같은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장시간 착용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닐까 싶네요.

문제는 대체 이 장비를 가지고 게이머가 장시간 동안 뭘 하게 만들려는지가 전혀 예상이 안 간다는 겁니다.”

그때, 내부에 입장한 천 명의 관객 모두가 장비 착용을 완료한 것을 확인한 진행요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다들 착용하셨나요?”

그러자 진행요원의 뒤에 있는 스크린에서 각국 언어로 번역된 대사가 함께 떠올랐다.

그것은 아마도 타 국가에서 참여한 참가자에 대한 배려인 듯 했다.

“예!!!!”

모두가 힘차게 대답을 하자 진행요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잠시 후, 여기 모인 1000명의 사람의 표정에 떠오를 경악스러운 표정이 기대되었기 때문에.

그는 관객과 똑같이 바이저를 찬 상태로,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입장 로비 안의 넓은 공간에 울려 퍼지도록, 손가락을 ‘타악!’ 소리 나게 퉁겼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입구의 화려한 장식과는 반대로, 뭔가 실망스러운 분위기를 전달해주던 입장 로비의 단조로운 인테리어가, 보는이를 경악하게 만들 정도로 디테일하게 구현된 ‘우주 전함의 내부’.

그 자체로 바뀐 순간이.

“헉!?!? 뭐야 시발 이거!?!?!”

형진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는 어떤 수식어로도,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의 급작스런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진행요원이 손가락을 튕기는 타이밍에 맞춰 동시에 켜진 신형 장비의 AR 기능.

망막의 정확한 위치에 화상신호를 직접 쏘아냄으로써 ‘투명한 디스플레이’를 구현한 PTW의 신기술은 원래 대로라면 금속 빛의 칙칙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야 할 내부 공간을 공중을 날아다니는 승무원들과 번쩍이는 LED, 사방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부속들로 가득한 ‘가상 현실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있었다.

마치 ‘세트장’에서 ‘실제 우주 전함 내부’로 텔레포트라도 한 것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그 말도 안나오는 광경을 보면서 형진은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X되었다고.

자신이 빈약한 어휘력으로, 방금 자신이 느낀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형진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5천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내 방송을 보고 있으니까.’

형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여러분.

제가 뭐라고 설명하든 간에, 여러분은 방금 제가 느낀 경이로움의 1%도 느끼실 수 없을 겁니다.

방금 저 사람이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대체 무슨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는지도요.

그건 인간의 언어로는 전할 수 없는 감각일 테니까.

제 조악한 표현력으론 이 정도밖에 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진짜 아쉬울 따름이네요. 그래도 컨벤션에 참여하지 못하고 계신 여러분들을 위해, 제 최선을 다해서 지금의 감정을 전달해야겠죠.

그러니 제가 드릴 말씀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 이건 진짜로 미쳤습니다.”

게이머가 상상할 수 있는 상상의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기술.

그것 앞에서 형진이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그것뿐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같은 시각, 이번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전 세계 수만 명의 게이머 역시, 형진과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로 미쳤다.’라고.

그리고 그것은, 이제 그들이 겪게 될 거대한 ‘컬쳐 쇼크’의 작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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