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압도적인 체험감
모든 PTW 팬들의 가슴속에 인상 깊은 메시지를 전해주었던 슈퍼볼 광고 이후로, PTW 팬들은 ‘과연 3차 NE컨벤션은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연일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매번 3개의 게임을 동시 공개하고, 거기 맞게 3개의 세션으로 이벤트 존을 나누어서 공개하던 이전의 형태와는 다르게, 이번엔 총 5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이루어 참여하는 행사가 되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의견은 아마도 이벤트 지역을 5개 세션으로 나누어 게임 1개씩을 공개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었다.
5회사가 각자 한군데씩 행사를 맡아서 진행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동시에 진행되는 이벤트 일정상 특정 국가에서 열리는 컨벤션에 참여한 유저가 타국에서 볼 수 있는 이벤트를 놓칠 수밖에 없으므로 유저들은 전 세계 공통으로 진행되는 이벤트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컨소시엄에 참여한 개발팀의 대표들도, 당연히 상혁이 그런 형태로 이벤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희의 이번 NE 컨벤션은 개발팀별로 한 개 국가씩 맡아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슈퍼볼 광고가 있기 몇 개월 전, 상혁이 모두를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기 전 까지는.
“5개 국가에서 동시에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주최팀은 서로 다 다르다고요?”
현재 컨소시엄에서 ‘구란트리스모’의 개발을 맡은 폴리포디 디지털의 미야자키가 묻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진행되는 국가도 5개, 그리고 개발팀도 5개. 딱 맞잖아요?”
“지금 숫자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쇼 케이스도 나눠서 하게 될 텐데, LA에서 아머드 코아의 신작 발표가 진행될 때 파리에서 구란트리스모 발표를 진행한다고요?”
“일단 계획은 그렇습니다.”
“뭐 그런···.”
물론 지금까지 함께 작업을 진행하면서 쌓인 신뢰가 있기에, 미야자키는 속으로 ‘이 X끼가 돌았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미야자키는, 눈빛으로 설명을 요구했고 상혁은 그런 미야자키를 보더니 자신이 이런 형태로 이벤트를 진행하려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상혁의 논리는,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전 어중간한 규모의 부스를 5개씩 만들어서 5개 국가에 25개를 만드느니, 국가별로 발표하는 게임에 맞는 테마를 갖춘 이벤트를 진행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미야자키 씨 말대로, 만약 파리에서 구란트리스모의 PTW VR버전 발표를 하게 된다면, 이벤트 존 전체를 레이스 서킷 테마로 꾸미고, 일본에서 간담 VR을 발표하는 이벤트 존은 간담 테마로 꾸미는 거죠.
이벤트 존 전체가 해당 게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심볼이 되는 겁니다.
참고로 저희 PTW 부스는 우주 전함을 테마로 한 테마파크를 만들 생각이고요. 어차피 임대한 부지 전체를 세트로 다 채우는 비용은 비슷비슷합니다. 작은 에리어 25개를 만들던, 큰 에리어 5개를 만들던 총비용은 비슷하다는 거죠.
오히려 그 넓은 부지를 한가지 게임의 테마로 가득 채운다면 작은 부스에서는 할 수 없는 디테일을 제공할 수 있겠죠. 그럼 차라리 국가별로 완벽하게 해당 국가에서 발표할 게임의 테마에 집중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갈 텐데요?”
“어차피 5개 국가에서 컨벤션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한 시점에서 나갈 돈은 이미 확정되었어요. 남은 건 어차피 써야 할 그 돈을 어떻게 쓰냐는 문제죠. 어느 국가에서 참여하든 복사 붙여넣기 한 것 같은 똑같은 행사장보다는, 회장에 들어가는 순간
‘와! 엄청나! 여기가 이 정도면 다른 데는 얼마나 멋지다는 거야?!’
라고 생각되는 이벤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동시 진행 문제도 딱히 문제될 건 없습니다. 어차피 타국에서 발표되는 내용은 전 세계에서 온라인으로 생중계될 테니까요
한국의 NE 컨벤션에 참가한다고 해서 프랑스의 NE 컨벤션에서 발표된 내용을 아예 파악하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거군요.”
미야자키는 잠시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오로지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게임을 발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의 레이스 서킷 수준의 부스들을.
그 안에서 레이스 스텝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상상은, 개발자로서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것이었다.
“확실히, 멋지긴 할 것 같네요.”
“그렇죠?”
“하지만 비용이 좀 걸립니다. 이번 개발 과정에서 드는 개발비 전액을 SANY에서 지원한다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더 달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로 개발비를 많이 뜯어내서 이벤트 비용까지 달라고는 도저히 못 할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저희 회사에 행사 한번에 그 정도 비용을 지급할 여유도 없고요.”
“그건 저희도···.”
“번다이 남코 내부에선 저희는 힘이 별로 없는 부서라···.”
프룸 소프트웨어의 카츠노리와 번다이 남코의 칸베가 이야기하자, 마지막으로 스페이드 컴뱃의 개발팀인 코토 역시 손을 들어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다.
“저, 저희는 전투기가 배경이라 세트에 전투기 하나 놓으려면 비용이···.”
애당초 게임 회사 중에서 PTW처럼 자체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업체는 손에 꼽기에, 상혁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NE 컨벤션 관련 비용은 저희가 부담하니까.”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물론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부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눈속임을 동원하면 하루 정도만 방문하는 사용자들에겐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선사할 수 있을 겁니다.”
“눈속임이라 하심은?”
“저희가 1차 컨벤션 때 MYOM을 시연하면서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모션 인식기기를 사용한 게임이란 것을 몸으로 바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MYOM의 소개 부스는, 아직도 전설의 게임 쇼케이스 취급받는 기발한 기믹으로 유명했다.
어트렉션 곳곳에 보이지 않게 배치한 코넥트를 사용해서, 유저가 끼고 있는 핸드 트래커의 동작을 인식하여 움직이는 다양한 장치들.
마치 마법사라도 된 것처럼, 참가자들은 MYOM의 이벤트 세션에서 손을 휘두르거나 포즈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문을 열고, 멀리 떨어진 의자를 잡아당기고, 물줄기를 조작하거나 불꽃을 허공에 쏘아 올리는 등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어도 체험을 하며 즐거워하는 유저들의 모습은 영상으로 보았기에, 미야자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체험이 가능하다면, 분명 즐거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상혁은 그런 미야자키를 보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구체적으로 이번 행사의 목적은 저희 PTW와 SANY가 공동으로 개발한 주변기기가 가진 포텐셜을 유저들에게 소개하는 겁니다.
컨벤션에 참가하게 될 30만 명에 가까운 유저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기기를 구매하고 주변에 그 기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한 달 내내 떠들 정도로 흥분하게 하는거죠.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PTW VR은 더 이상의 마케팅비를 쓰지 않아도 충분한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로 써보고 ‘즐겁다’라고 말하는 유저들의 입소문이 가진 힘은, 그 어떤 TV광고보다 강력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MS에서도 따로 코넥트의 TV광고를 진행한 적은 없었네요.”
“할 필요가 없었죠. 누군가 코넥트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리기만 해도, 한번 해보고 싶어서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처음 나오는 기기는, 반드시 그 사용법을 알려줄 필요가 있는 법입니다.
아직까지 VR기기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아요. 굳이 모니터나 TV로도 충분히 즐겁게 할 게임이 넘치는데, 굳이 비싼 돈을 주고 VR기기를 사야 하는 가를 고민하는 단계죠.”
“하지만 PTW VR은 아예 성능의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AR기능도 있고요.”
“그건 어디까지나 실제로 머리에 뒤집어쓰고 눈으로 봐야 대단한 게 체감이 되는 장비입니다.
단순히 좌 우 따로 영상을 보여줘서 입체감을 준다는 게 얼마나 몰입감을 늘려주는지, 그건 써보지 못한 유저들은 상상으로 알 수 없는 영역이죠.
하지만 그걸 쓰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고 그걸 사용하면서 감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게 만들 겁니다.
‘와, 저건 대체 얼마나 끝내주길래 저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지을까?’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어떤 식의 행사가 되는 건가요?”
“그건···.”
상혁은 멤버들에게 자신의 계획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후 이어지는 내용은, 당일까지 절대 유출해서는 안된다는 확답을 받고.
그리고 상혁이 그들에게 말한 계획은, 어째서 이미 비밀 유지 서약을 한 멤버들에게 다시 한번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충분히 납득이 가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
“···그렇게 회의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프랑스에 있는 사르트 주에 위치한 Le Mans 라는 이름의 도시.
사람들은 그 도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도,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레이스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었다.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불리는 모나코 그랑프리, 인디애나 폴리스 500마일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자동차 내구 레이스인 르망 24시 레이스가 바로 그 도시에서 열리기 때문에.
그리고 그 레이스가 열리는 서킷인 라 사르트 서킷(Circuit de La Sarthe)이, 바로 이번 3차 NE 컨벤션의 프랑스 지역 행사가 열리는 이벤트 지역이었다.
“기왕 각 개발사 별로 행사 테마를 잡는 김에, 저희는 저희 쪽 게임인 구란트리스모에 어울리는 어트렉션 위주로 구성했으면 합니다.”
각 개발팀의 희망 사항을 요청받는 자리에서, 미야자키는 구란트리스모의 신작 이벤트라면 되도록 레이싱 느낌을 살릴 수 있는 형태의 이벤트 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자신부터 모터스포츠의 광 팬이기도 했고, ‘구란트리스모’를 사랑하는 팬들이 실제 서킷처럼 구현된 세트를 보면서, 나중에 게임을 할 때 자신이 보았던 서킷을 떠올렸으면 해서였다.
“그랜드 스탠드 (Grand Stand : 서킷의 메인 관람석)가 중앙에 있으면 좋겠고, 피트 (Pit)도 실제랑 똑같이 재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실제 레이스에 쓰이는 타이어나 자동차도 있으면 더 좋을 것 같고요.”
말하다 보니 자꾸 욕심이 나서 이것저것 추가하게 된 미야자키는 만일 자신이 참가자라면 이런 이벤트 존이 좋겠다는 생각에 한참을 떠들고 있었다.
이것도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저것도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떠들고 나서야 자신이 말한 걸 다 구현하려면 얼마가 드는지를 깨닫고는 조심스레 상혁을 보며 말했다.
“가장 이상적인 이벤트 존이라면 그런 형태가 아닐까 싶지만, 단발성이고 한 번만 할 이벤트니까요. 굳이 전부가 필요하지는 않겠죠.”
상혁은, 그런 미야자키의 요구사항을 듣고 미간을 좁힌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그냥 서킷을 통째로 빌립시다.”
‘서킷 같은’ 세트를 만드는 것보단, 실제 서킷을 빌리는 게 더 싸게 먹힐 거라고, 상혁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정도 맞는 말이었다.
미야자키가 원하는 ‘이상적인 공개 이벤트’에 어울리는 장비나 세트들이, 그곳엔 이미 다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 진짜로 라 사르트 서킷을 통째로 빌릴 줄이야.”
물론 빌린 장소는 어디까지나 레이싱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지 게임 소개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행사를 위해서는 꽤 많은 부분을 뜯어고쳐야 했다.
우선 그랜드 스탠드 쪽에 달려있는 대형 스크린도 게임 쇼에 맞게 고 해상도의 신형으로 바꿔야 하고, 2만 명의 유저들이 편하게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존도 만들어야 했으며, 음식부터 스텝의 교육, 레이싱걸의 배치와 인테리어로 쓰일 자동차까지, 모든 것을 하나하나 손대야 했다.
실제 레이스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이라면 참가하는 업체들이 알아서 다 했겠지만, 지금은 실제로 레이스가 벌어지는 것이 아닌, 레이스가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부분도 기존에 서킷을 운영하던 운영진과 협의하여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냥 비수기라 쉬고 있는 레이싱 스탭을 임시로 고용해서 쓰는 것으로.
그래서 현재 피트에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대부분의 현장 요원들은 그란투리스모를 개발 한 폴리포디 직원들이 아닌, 평소에 이곳에서 레이스가 열리면 현장에서 일하는 현장 직원들이었다.
‘하긴, 게임사 직원들에게 프랑스어를 배우라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이곳 진행요원들에게 행사에 대해 가르치는 게 더 빠르긴 하지.’
생소한 기분이었다.
물론 레이싱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의 대표로이자 모터스포츠 광으로써, 그 역시 많은 서킷을 돌아다니며 레이스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예 피트로 내려와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본 적은 없었다.
“이게 상혁 씨가 말하던 ‘현장감’이라는 건가···.”
묘한 기분이었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석과 피트는 공기의 무게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 느낌을 최대한 현실에 근접하게 유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면, 그게 바로 PTW VR이겠지···.’
미야모토는 그제야 상혁이 어째서 5개 국가의 행사 테마를 전부 다르게 하면서도 각 행사의 디테일에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노력까지 하면서 이렇게 자신들의 게임을 위한 이벤트 준비에 여념이 없는 PTW에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피부로 느껴지는 묘한 감각을 느끼며, 미야자키는 핸드폰을 들어 지금은 한국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구란트리스모의 개발팀에게 전화했다.
“어. 접니다. 미야자키. 지금 직원들 다 모여있죠? 일본에 남아있는 개발팀도 전부 한국 PTW본사로 소집해주세요.
저도 지금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무슨 일이냐고요?”
직원의 질문에 미야자키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지금 개발 중인 버전에서 좀 수정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벤트의 준비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 아직 개발 버전을 수정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말 그대로 ‘실제 서킷’을 빌려 만든 컨벤션 회장의 분위기를, 유저가 집에 돌아가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을 수정할 시간이.
그리고 미야자키가 그렇게 프랑스에서 각오를 다지던 날,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칸베는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본에서 발표하기로 한 ‘간담 VR’의 공개를 위한 이벤트 행사.
그것을 위한 준비 장소에 펼쳐진 모습이, 그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일본 행사 준비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칸베를 따라온 상혁이,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칸베가 보는 방향을 나란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마치 지금의 준비가 매우 잘 되고 있다는 느낌으로.
그런 상혁에게, 칸베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상혁 씨?”
“예. 칸베 씨.”
“저는 일본 이벤트에선 간담 VR을 발표한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그래서 지금 준비 중이잖아요?”
“이거 간담이랑 상관있어요?”
칸베가 생각한 것은, 실물 크기의 간담을 중심으로 체험 부스가 나열된 형태의 이벤트 존이었다.
그러나 상혁의 준비는, 그런 칸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저는 좀 더 화스트 베이스라던가 아니면 실물 크기 간담이 배치된 그런 행사장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요.”
“도저히 자신이 없다고, 무조건 저희한테 맡긴다고 하신 건 칸베 씨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그래도 간담 게임의 공개 행사인데 간담이 없는 건···.”
“뭐, 그것도 방법이긴 했죠. 사실 번다이에서 실물 크기 간담을 먼저 안 만들었으면, 저희도 하려고 했어요.
근데 이미 해버렸으니, 저희가 실제로 움직이는 간담을 만들어서 보여준다고 해도 별로 임펙트가 없겠죠. 그래서 일본 이벤트의 테마는 좀 다르게 잡아 봤습니다.”
“구체적으론 어떤 테마죠?”
“혹시 아나하임 일렉트로닉스(Anaheim Electronics) 아시나요?”
“간담에 나오는 무기 개발 사 아닙니까? 뉴 간담을 만들었던···.”
“맞아요.”
“아! 이제 알겠네요! 이거 혹시···.”
“맞습니다. 일본 NE 컨벤션의 테마는 간담의 개발현장을 테마로 하고 있어요.”
칸베는 그제야 세트의 형태가 왜 이런 형태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번다이가 실물 크기로 간담을 만들면서 겉만 멀쩡하고 속은 원작과는 전혀 관계없는 ‘움직이는 껍데기’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PTW에서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각 파츠로 나누어진 간담의 내부 부속이었다.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진짜 간담이 존재한다면 내부 부속은 저런 느낌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있는 느낌으로.
그리고 그것은 거대 로봇의 아래 서서 사진찍는 것 외에는 별다른 용도가 없는 실물 크기 간담보다는 확실히 멋진 아이디어였다.
적어도 이건 가까이 가서 만져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의 계획은, 단순히 디테일하게 재현된 간담의 부속을 관람객이 만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준비 중이긴 하지만, 실제로 오픈할 때는 마치 유저가 시제기의 예비 파일럿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우주 비행사처럼 중력 부하 훈련도 받을 수 있고, 거대 수조에서 무중력 체험도 할 수 있게요.
간담에 탑승 시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서라던가, 파일럿 복장에 달린 다양한 기능에 대한 교육도 받을 수 있을 거고요.
예를 들면 메인 카메라가 당했을 때 어떻게 적과 싸울 것인가를 배우는 거죠.”
“오! ···오오오오!! 그건! 엄청나게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간담 팬이라면 흥분할 수밖에 없는 시츄에이션에 칸베가 소리를 지르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아직 놀라기는 이른데요?”
“그렇습니까!? 지금 설명만 들어도 충분히 즐거울 것 같은데요?”
“단순히 그렇게 어트렉션을 체험만 하는 거라면, NE 컨벤션이 그토록 유명하지는 않았겠죠. 이번 행사의 백미는 따로 있어요. 그리고 그건 5개 국가에서 펼쳐지는 이벤트 모두에 적용될 거고요.”
“그게 뭐죠?”
“AR입니다.”
상혁이 말했다.
“PTW VR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4K해상도 120프레임을 무리 없이 돌릴 수 있는 오파츠 같은 성능도, 내장된 센서를 이용해서 주변 사물을 인식하는 기능도 아닙니다.
PTW VR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바로 VR 과 AR 사이의 전환이 자유롭다는 거죠.
그래서 이번 이벤트를 위해, SANY에서 이벤트 참가자 전체가 착용 가능한 수량인 30만대의 PTW VR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유저들이 입구부터 PTW VR을 착용한 상태로 회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VR 체험과 AR체험을 넘나들며 완전한 ‘가상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있게요.”
칸베는 상혁이 말하는 ‘VR과 AR을 넘나드는 체험’이라는 단어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째서 상혁이 그것이 PTW VR의 가장 강력한 기능이라고 했는지도.
그러자 상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칸베를 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 상상이 안 되세요?”
“어떤 형태가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직접 해보는 게 빠르겠죠. 저기 저쪽에 빔 라이플 개발 셈플 놓여 있는 곳 보이시죠?”
상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실물 사이즈로 구현한 빔 라이플의 개발 모델이 놓여 있었다.
아직 개발 중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외장이 없이 내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태로.
칸베는 잠시 그쪽 방향을 바라보다 상혁에게 답했다.
“예. 보입니다.”
“그럼 이번엔 이걸 쓰고 한번 보세요.”
상혁이 건네준 것은, PTW VR의 양산품 셈플이었다.
그것은 현재 개발을 위해 개발팀에서 쓰고 있는 개발 킷에 포함된 VR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사용자를 인식했습니다. PTW VR의 전원이 켜졌습니다.
현재 장소에서 진행 중인 AR 이벤트 데이터를 확인. 사용자 시야에 출력합니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전원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칸베는 평소에 개발하던 도중에는 듣지 못했던 멘트를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상혁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방향을 바라보자마자 입을 떡하고 벌렸다.
“아······암후로?!”
간담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익숙한 얼굴의 인물이, 거대한 빔 라이플의 옆에서 흰 가운을 입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칸베를 진정으로 놀라게 만든 것은, 분명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장소에 자신이 아는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상혁이 구현하려는 AR의 규모는, 그 정도가 아니었기에.
‘이게 아너하임의 본사···. 뉴 간담이 태어난 곳···.’
현실의 세트와 합성된 모델링을 합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거대한 공간.
칸베가 바라보고 있는 눈앞의 광경은, 더 이상 한참 행사 준비로 바쁜 건설 현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칸베의 눈에 펼쳐진 것은 완전히 완성되어있는, 마치 애니메이션을 현실로 불러온 듯한 거대 로봇의 개발현장이었다.
분명 바깥의 주차장이 보여야 할 유리창에 별들이 반짝이고, 아직 마감이 되지 않아 나무 합판으로 되어있는 복도에 LED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아마 마감이 끝나고 나면, 완전히 우주 시대의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은 느낌으로.
누가 보아도 그 스케일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의 거대한 세계의 한 가운데, 칸베는 서 있었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의 세계에 들어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칸베는 머릿속으로 ‘압도적’이라는 단어 외에는 아무런 단어도 떠올릴 수 없었다.
PTW VR이라는 장비를 통해서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압도적’인 감각을 전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히 ‘가상 현실 게임기’라고 생각했던 PTW VR이란 기기의 포텐셜이 어디까지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시연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