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62화 (263/485)

262. 점입가경

노무라 히로는 SANY 내부에서도 나름 얼리어답터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책상에는 늘 해외에서 배송되어온 뜯지 않은 택배 상자들이 여기저기 훑어져 있었고, 모니터에는 항상 영문으로 된 외신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최근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던 뉴스는, 역시나 VR기기에 관련된 뉴스였다.

게임업계에서는 이미 오파츠 취급 당하고 있는 전설의 주변기기, ‘코넥트’를 개발한 PTW와, 자신이 일하고 있는 SANY가 함께 VR기기를 개발한다는 이야기는 SANY 내부에서도 꽤 핫한 주제였기 때문에.

그러나 노무라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딱히 커다란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가 아는 VR 기기란, 아직 한참은 세대를 더 건너뛰어야 쓸만한 물건이 나올만한 과도기의 물건이었기 때문에.

가장 기대를 받는 물건인 ‘오퀼러스 VR’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저렴한 가격에 VR기기의 대중화를 끌어내겠다며 야심 차게 출발한 기기이긴 했지만, 그것도 기존의 HMD 디바이스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눈앞에 디스플레이를 배치해야 하는 VR기기의 근본적인 구조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고개가 앞으로 꺾일 정도의 무거운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제외하고도 현재 발표된 개발자 킷은 격자무늬 현상이나 해상도 저하, 지나치게 높은 PC 사양을 요구하는 등의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노무라가 아는 상식 안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였다.

어찌 되었건 사람의 눈앞에 화면을 보여주려면, 눈앞에 보여주고 싶은 해상도를 가진 디스플레이를 배치해야 하는 게 원칙이니까.

그러나 테스트 룸에 놓인 PTW VR의 외형은, 그런 노무라의 상식을 가볍게 깨부수고 있었다.

“이거 진짜로 동작하는 거 맞나?”

기기를 들어본 노무라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디스플레이가 있어야 할 위치에, 탁 트인 시야가 제공되는 두꺼운 유리판만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무라는 기계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혹시 접혀있는 디스플레이를 펼치는 방식으로 화면이 뜨게 만드는 것인가 싶어서.

그러나 기기의 어딜 보아도 눈이 있는 위치에 디스플레이를 뽑아낼 수 있는 홈 같은 건 보이지 않았기에, 노무라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차보자.’

노무라는 만일 이 투명한 유리막에 반투명한 형태의 화면을 띄워놓고 ‘VR 기기’라는 이름을 붙인 거라면 매우 실망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 방식은 미래지향적인 느낌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제대로된 몰입감을 전달해줄 수는 없을거니까.

그리고 만약 그런 방식으로 구동되는 기기라면 VR기기라는 이름보다는 AR기기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기기의 외형을 보면, 아무리 봐도 VR기기보다는 홀로그램 형태나 반투명한 HUD를 눈앞의 글래스에 띄우는 AR기기에 더 가까웠기에, 노무라는 실망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기를 머리에 썼다.

제발, 자신의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다들 너희를 마법 같은 회사라고 부르고 있잖아. 기적을 일으키는 회사라고.

제발 나에게 기적을 보여줘!’

그리고 그 순간, 노무라의 착용을 자동으로 인식한 PTW VR이 노무라에게 그가 바라던 ‘기적’을, PTW가 어떻게 구현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게이머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만한, SF스러운 멋진 기술력으로.

***

“직원들의 사기가 최상입니다. PTW에서 보내준 개발 킷을 내부 직원들에게 먼저 공개한 게 효과가 크네요.”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한 SANY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SIE) 본사 회의실.

그 안에 모인 직원들은 SANY에서 PS 시리즈의 개발과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 직원들이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X-BOX와 비교하여 형편없는 수준을 기록한 2015년도 PS4의 판매량 그래프를 보면서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직원들의 표정은, PTW에서 보내준 VR기기의 개발 버전을 테스트하고 나서 매우 밝은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PTW에서 보내준 VR기기의 성능이, 그들이 예상하던 모든 결과물의 형태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향후 20년은 시장을 지배할 제품.’

‘VR기기 시장을 혼자서 쓸어버릴 괴물.’

‘오로지 이 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PS를 구매하기에 충분한 장비.’

내부 테스트에서 나온 평가들은 그런 그들의 표정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회의를 소집한 SIE의 타무라 료헤이 COO(Chief operating officer : 최고 업무 책임자)는 각 부서 담당자들을 모아 SANY의 새 중점 사업이 될 이 새로운 기기에 대한 평가를 듣고자 했다.

각 담당자 별로 기기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 다르니, 좀 더 객관적으로 정보를 모아 PTW의 새 기기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각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이 새 기기에 대한 부서별 평가를 보고해 주십시오.”

그의 말을 들은 직원들은 잠시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것인가에 대해 서로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타무라 COO의 왼쪽부터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디자인 팀입니다. 저희는 주로 외형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를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해당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집 안에서 해당 제품이 얼마나 다른 제품들과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그리고 디자인만으로 구매욕구를 일으킬 수 있는지, 마지막으로 디자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당 제품의 기능과 성능이 자연스럽게 전달이 되는지를 중점적으로 판단했습니다만….

먼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는, 흠잡을 데가 없는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희가 판매 중인 PS4의 디자인은 물론이고, 향후 발매될 게임기가 어떤 형태이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기에 딱히 수정 없이 지금 PTW에서 제안한 디자인 그대로 양산을 진행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PTW와의 협의로 SANY 로고나 PS 로고를 어디에 박을지는 고민을 좀 해봐야 하겠지만요.”

“다음은?”

“품질 관리팀입니다. 저희는 PTW VR의 착용감과 착용 시 신체의 부담에 대해 집중해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만점입니다. 전면에 디스플레이를 배치해야 하기에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있는 다른 VR기기와는 다르게, 오랜 시간 착용해도 안정적인 무게 중심 덕에 전혀 피로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신체에 무게가 가해지는 파트는 부드러운 천 재질의 망사를 사용하여 땀이 차지 않도록 잘 설계된 제품이더군요.

프로토타입의 경우는 2시간 이상 사용하면 시신경 손상이 있는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그 부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20시간 이상 테스트를 수행한 테스터도 잔상이나 눈부심 현상 없이 편안하게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고 보고 했습니다.”

“기술팀의 스즈키입니다. 저희는 조금 보고 드릴 게 많습니다만….”

“할 말이 있으면 모두 하게. 다들 기술 파트에서 할 말이 많을 거라는 건 예상하였으니까.”

타무라의 말을 들은 직원은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는 기술팀에서 파악한 PTW VR이란 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기기의 명칭에 대해서인데, PTW VR이라는 명칭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것은 이 기기의 진정한 강점이, VR이 아니라 AR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스즈키가 중앙 테이블에 놓인 PTW VR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PTW VR의 다른 VR기기와 가장 차별화된 부속인 ‘프리즘 글라스’ 파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안구 속의 망막에 화상 신호를 쏘아주는 프리즘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사용자의 시야를 가리지 않게 설계된 특수 안경입니다.

그리고 PTW에서는 망막에 쏘아지는 화상 신호의 강도를 조정함으로써 해당 장비가 VR과 AR의 영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이 제품을 설계했습니다.

VR을 사용 중에도 터치 한 번이면 바로 AR 상태로 전환되어 주변 사물들을 볼 수 있게 되어있죠.

게다가 완전히 AR 모드인 상태로 들어가면 주변에 있는 사물 위에 홀로그램 형태로 이미지를 씌울 수도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놀랍다는 건가?”

“그런 의미만은 아닙니다. 사실 진정으로 놀라운 점은, 애당초 이 장비 자체가 단순히 게임을 위해 설계된 장비가 아니라는 거죠.”

“무슨 의미지?”

“혹시 전 세계에 보급된 산업용 코넥트와 게임용 코넥트의 비율을 알고 계십니까?”

“대충 산업용이 더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네.”

“정확히는 산업용 코넥트가 가격이 5배 이상 비쌈에도 불구하고 가정용 코넥트보다 5배 이상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그 정도인가?”

“현존하는 모션 인식 장치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진 장비니까요. 특히 산업용 코넥트는 가정용보다 성능이 더 좋기도 하고요.

실제로 MS는 가정용 코넥트를 원가 이하로 판매하면서 생긴 손해를 산업용 코넥트의 판매 이윤으로 모두 메꿔버렸습니다.

아니, 오히려 돈을 긁어모았죠.

PTW의 새 VR기기 역시, 그런 코넥트와 기본적으로 같은 전략을 위해 만들어진 장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첫째로 저희에게 제공된 시제품에, PTW VR전용의 자체 OS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가정용 콘솔의 보조 장비로 쓰일 거라면, 굳이 전용 OS가 필요하진 않았겠죠.

뒤쪽에 보시면 마이크로 SD 카드가 들어갈 수 있는 슬롯도 있는데, 아마도 이건 산업 현장에서 해당 현장에 필요한 데이터를 SD카드에 담아 설치해서 쓰라고 만든 슬롯일 겁니다.

운영 체제의 일부가 잠겨 있어서 전부 테스트하진 못했지만, 아마도 워크 패스트와 연동하는 기능도 있겠죠.”

“VR을 산업 현장에서 어디에 쓴다고?”

“VR이 아니라 AR의 활용 가능성이 큽니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는데 눈앞에 조립 메뉴얼을 띄워놓고 조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또는 제품 검수 라인에서 이 장비를 쓰고 제품을 보고 있는데 자동으로 카메라가 잘못 인쇄된 제품을 찾아내어 눈앞에 표시해 줄 수도 있을 겁니다.

굳이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현장을 보면서 각 파이프의 계기압 상태나 온도를 점검할 수도 있고,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문제의 해결책을 바로 찾아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시야 공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화면을 제가 보는 것처럼 볼 수도 있겠죠.

그건 산업계에 완전히 새로운 혁명을 가져오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가능성은, PTW에서 의도적으로 이 기기에서 구현되도록 만든 것이겠죠.”

“의도라면?”

“코넥트 때와 같은 조건일 겁니다. 이 기기를 원가 이하로 싸게 게이머들에게 공급하는 대신, 산업용 장비를 팔아서 수익을 챙겨라.”

“원가 이하라….”

잠시 고민하던 타무라가 말했다.

“이거, 양산하면 개당 단가가 얼마 정도 나오겠습니까?”

“PTW에서 보낸 구체적인 사양서를 기준으로 기술팀에서 뽑은 견적으로 보면, 아마도 이 장비의 최소 생산가는 4만 8천 엔 정도일 겁니다.”

“4만 8천 엔!?!”

“예. 그것도 생산 라인에 들어간 설비비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부품값이랑 인건비만 그 정도 들어갈 겁니다.”

주변기기 주제에 해당 장비를 돌릴 콘솔 게임기의 판매 가격보다 높은 생산 원가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타무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두려움을 담아 스즈키에게 물었다.

“PTW에서 제안한 제품 판매가는?”

“3만 2천 엔입니다.”

“개당 1만 6천 엔씩 손해 보라는 건가? PTW는 제정신인가? 코넥트도 그 정도로 손해를 감수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PTW VR이 가진 활용도나 성능이 코넥트보다 더 높죠. 이건 말 그대로 진짜로 유저를 미래로 보낼 수 있는 장비니까요.”

스즈키의 말을 들은 타무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반적으로 콘솔 게임기가 출시될 때도, 제작사는 어느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한다.

해당 기기를 널리 보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게임사에 유통 라이선스를 받는 이윤으로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당 1만 6천 엔의 손실액은 일반적으로 콘솔 게임기를 판매할 때 감수해야 하는 손실액을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었다.

‘공격적인 투자’같은 단어로는, 도저히 커버할 수 없는 범위 수준으로.

하지만 타무라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만약 이 제안을 거부한다면, 이 기기의 생산은 MS가 맡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이 기회를 잡을 것이다.

타무라는 그런 상황은 죽어도 볼 수 없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타무라가 말했다.

“아무래도 히라이 CEO를 만나봐야겠어.”

본사에서 승인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건에 대해서는 SANY 본사 차원에서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타무라는 생각하고 있었다.

***

한편, 8개의 시제품을 SANY에 보냄으로써 SIE를 뒤집어 놓은 장본인인 상혁은, 민준과 새 VR 기기를 위한 게임 개발 인력의 편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현재의 PTW상황을 고려하면, Project Hero에서 개발 인원을 뽑아오던가, 아니면 새로 고용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민준은 PTW의 직원 전원의 리스트를 보며 신작 개발에 필수적인 스킬을 가진 인원에 대해 고민하는 상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쪽에서 던진 ‘폭탄’에 대해, SANY가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SANY가 어떻게 나올 것 같아?”

“아마 SIE 단에서는 판단하기 어려울 거야. 생산 라인 갖추는 데만도 돈이 조 단위로 들어갈 테니까. 본사쪽에서 승인을 받아서 진행하겠지.”

“내가 물어본 건 그 본사에서 승인이 날지를 물어본 건데.”

민준의 질문에 상혁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민준을 보며 말했다.

“아마 할 걸?”

“개당 16만원씩 손해보면서?”

“우선, 코넥트 때 증명됐듯이 IT제품의 단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져.

보통은 그런 식으로 이윤이 늘어나지만, 이쪽은 손해를 줄이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뿐이고.

둘째로 어차피 이번에 양산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PTW VR은 MS 측으로 넘어가게 될 거라는 건 JANY 측에서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애당초 우리가 개발하던 기기에 그쪽은 거의 숟가락만 얹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기술에 대한 권리도 크게는 요청 못 할 거고.”

“SANY 카메라 팀이 시신경 손상 문제를 해결해줬잖아?”

“그것도 기초 기술은 전부 우리 거였어. 그쪽은 우리가 구현하려는데 만들지 못하고 있던 부분에 대한 도움만 준거고. 말하자면 레시피는 우리 거였지만 칼 다루는 솜씨가 딸려서 못 만들던 걸 그쪽에서 대신 만들어준 거지.

그것 때문에 관련 특허도 죄다 우리 걸로 등록되어 있고.”

“그런 거였군.”

“어차피 PTW VR은 PC 지원도 되는 장비이기 때문에 판매량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어.

게다가 삼정의 파운드리 공정으로 메인 칩셋을 생산하게 될 테니 그쪽 관련한 설비 투자는 안 해도 될 거고.

개당 16만 원은 TSMC에 수주하면 그 정도 가격이 나온다는 계산이고, 삼정은 지금 일감이 급한 만큼 좀 더 후려칠 수 있으니 단가는 더 내릴 수 있지.”

“그래도 손해인 건 맞잖아?”

“그렇지. 아무리 줄여도 10만원 이상은 줄이기 힘들 거야. 그 이상의 원가 절감은 우리 쪽에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도 받아들일 거다?”

“MS에 넘기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산업용 AR장비로 팔면 거기서 이윤이 엄청나게 남을 테니까. 지금 문제는 SANY가 아니야. 너무 커져 버린 MS가 문제지.”

상혁의 말대로, 회귀 전과는 다르게 PS4는 X-BOX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양사의 콘솔 게임기의 스펙이 회귀 전과 그다지 다를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이런 상황에서 PTW VR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카드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두 개의 대기업이 서로 견제하며, 그 안에서 개발자들과 게이머들이 이득을 취하는 것이 상혁이 바라는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그 그림이 상당히 망가진 상태라 할 수 있었다.

“뭐, 네 말대로 잘 되면 좋겠지만, 어찌 됐건 이전에 손해를 감수하며 코넥트를 싸게 발매해준 건 MS잖아. 그쪽에선 배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리고 만약 우리가 같은 제안을 MS에 했으면, 그쪽에서는 고민도 안하고 바로 받아들였을 걸?”

“그렇게 고민도 안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게, 경쟁사의 존재인 거지.

만약 SANY가 콘솔 업계에서 철수해서 MS와 넌텐도만 남아있었다면, 우리가 MS에 손해 보고 신형 장비를 양산하라는 제안을 했을 때 거기서 순순히 받아들일까? 이미 시장을 독점한 상태에서?”

상혁의 말에 민준이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겠지. 만약 SANY에서 우리 제안을 받는다고 해도, 그건 경쟁사인 MS에 대응하기 위한 결정일 테니까.”

“그런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그 상대가 지금은 천사같이 보이는 존재라도, 독점은 무조건 막아야 해. 그래야 게이머들이 최대한 손해를 안 보게 되니까.”

“여전히 게이머 바라기네.”

“애당초 그런 마인드가 아니면 이런 괴팍한 회사를 왜 굴리고 있겠어?”

“하지만 우리 의도가 어떻든, MS에서 알면 화를 낼 만한 상황이긴 하지.”

민준의 말에도, 상혁은 여유를 보였다.

적어도 보안에 있어서는, 상혁은 PTW의 직원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안 걸리면 장땡이지.”

상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상혁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상혁이 민준과 회의를 하고 있던 그 주에, 미국의 MS 본사에서 PTW VR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정보는, 상혁이 철저하게 믿고 있던 PTW에서 흘러나온 정보가 아니라, MS의 경쟁사인 SANY에서 흘러나온 정보였다.

블라인드 스팟(Blindspot).

거의 유전자 레벨에서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도록 학습당한 PTW의 직원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정보 보안에 느슨한 태도를 지닌 협력사에서 발생한 정보 유출은, 미국에 있는 한 남자를 매우 분노하게 했다.

“Shit!!!! Fuck!!!!!!”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남자의 정체는 지금까지 PTW를 도와 MS와 PTW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던 MS의 담당자, 크리스였다.

“이 빌어먹을 배신자들!”

그의 사무실에서 터진 고성이 플로어 전체에 울려 퍼졌다.

마치 이후에 다가올, 피 튀기는 전쟁을 암시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가 쏟아내는 분노의 욕설은, 지금까지 MS의 가장 든든한 파트너였던 PTW가, MS의 가장 큰 경쟁사인 SANY와 손을 잡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