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 오파츠급 기기 탄생
연구동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미 기본적인 기능 개발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PTW의 새 VR 장비였다.
그리고 현주는, 멋진 유리 진열장 안에 들어있는 그 기기의 모습을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그것의 디자인이, 그녀가 알고 있던 VR기기의 일반적인 디자인과는 꽤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오! 진짜 멋지다! 이게 시제품이야?”
그렇게 말하며, 현주는 상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진열장으로 달려가 시제품의 디자인을 살폈다.
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는 PTW VR의 시제품은 이전에 상혁이 테스트를 위해 사용했던 프로토타입과 비교해 거의 대격변 수준의 변화를 겪은 상태였다.
“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출력부에서 나온 화상 신호를 망막에 적절한 각도로 쏘아주기 위해 양쪽에 6개씩 있던 프리즘 파츠가 없어진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이전 버전의 기기는 마치 양 눈에 아크 원자로 같이 생긴 안경을 쓰고 있는 느낌을 주었지만, 지금 현주가 보고 있는 시제품은 하나의 매끈한 유리가 마치 보안경 같은 느낌으로 달려있었다.
현주는 케이스의 뚜껑을 열어 시제품을 꺼내 머리에 써 보았다.
그리고는 전원 버튼을 눌러 뭔가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며 상혁에게 물었다.
“이거 왜 안돼?”
“그야 그건 무게와 디자인 테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목 업(Mock-up:실 제품을 만들어 보기 전, 디자인의 검토를 위해 실물과 비슷하게 만든 시제품)이니까요. 실제 제품하고 무게와 형태만 같고 안은 비어있어요.”
“아, 그래?”
“구동 가능한 프로토 타입은 저쪽에 있고요.”
상혁의 말에 현주는 상혁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목 업 제품과 이전에 개발 중이던 프로토타입에서 중간 정도의 디자인을 하고 있는 물건이 놓여있었다.
케이스가 씌워져 있지 않은, 부속으로 이루어진 기능 테스트 용 제품이라는 것이 확 느껴지는 디자인의 물건이.
현주는 조금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흠흠’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목 업 제품을 내려놓고 개발 버전의 VR기기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번엔 바로 물건을 쓰지 않고, 상혁을 보며 질문했다.
“이건 좀 더 크고 무거워 보이네?”
“양산이랑 경량화를 위해서 조금 더 개발이 필요한 상태니까요. 그래도 기본 동작 방식은 꽤 많이 달라졌어요.”
“설명해줄래?”
“저보단 이번 개발 협력 책임자이신 스즈키 씨가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기술적인 이야기라서. 스즈키 씨?”
상혁이 부르자 저편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두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영어로 인사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SANY α카메라 광학 렌즈 개발 담당 부서에서 일하는 스즈키 잇테이라고 합니다. 상혁 씨와는 구면이고, 현주 씨와는 처음 뵙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현주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를 하자, 상혁이 스즈키에게 말했다.
“스즈키 씨, 이전에 PTW에서 개발했던 프로토타입과, 지금의 개선 버전의 차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시겠어요?”
“얼마나 쉽게요?”
“딱히 광학장비 오타쿠가 아니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저희가 가장 중점을 두어 개선하려고 했던 부분은, 기존에 해당 기기가 가지고 있던 12개의 우스꽝스러운 프리즘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지금 달려 있는 두꺼운 보안경 형태의 유리판이죠.”
스즈키가 프로토타입을 들어 올려 해당 부품을 보여주며 말했다.
“단순하게 VR기기의 기능을 수행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런 종류의 장비보다는 암실 형태로 눈 주변을 가리고 앞에 영상이 나오는 디스플레이를 배치하는 게 2만 배는 더 개발이 편했겠지만, 애당초 이 장비의 핵심은 ‘VR 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유저가 편하게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신호 강도를 조정함에 따라서, 필요하면 가상현실(VR)기기에서 증강현실(AR)기기로의 전환이 자유롭게 되는 장비가 되어야 한다고요.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들어간 막대기 모양의 프리즘은, 반대로 화질을 높이기 위해 6개로 숫자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광학 팀에서는 그 프리즘을 제거하는 것을 제 1 목표로 삼았고요.”
“어라? 그럼 지금 기기는 이 유리판에 화상이 투영되는 형태의 장비인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이 두꺼운 유리의 안쪽에는, 장비를 쓴 상태에서는 거의 시야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내부에 굴절률이 다른 여러 개의 투명한 프리즘이 수백 개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옆에서 볼 때는 보이지 않는 가시광선이 사용자의 망막에 직접 투사되게 되죠.
기존에 6개의 프리즘으로 처리하던 고강도의 신호를 수백 개로 나눠서 처리함으로써, 광선이 망막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가장 적절한 수준의 시각 신호만을 뇌가 인식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이번 개선의 핵심이었습니다. 물론 문제는 있었지만.”
“어떤 문제인가요?”
스즈키의 설명에 현주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하자, 스즈키가 신이 난 듯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가 이 컨셉을 처음 설명했을 때, 하드웨어 개발팀에서는 난색을 보였습니다.
목표로 하는 해상도는 양쪽 눈 당 2K(2048x1080)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것을 6개 단위로 쪼개서 투사하는 것과 수백 개의 신호를 합쳐서 하나의 영상을 만들게 하는 건 연산량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고요.
그래도 이게 망막의 부담을 줄이면서 기존의 우스꽝스러운 디자인을 개선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저희는 일단 개발을 진행했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영상을 처리할 수준의 부품을 인간의 경추가 지탱할 수 있는 무게로 구현할 수가 없었죠.
기기에서 쓸 영상을 쪼개서 만드는데도, 현존하는 데스크탑 이상의 성능을 요구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결국 사용자가 미식축구 선수 수준으로 목이 두꺼워야 사용 가능한 물건이 되어버렸죠.
그 이후엔, ‘그럼 연산 장비를 밖으로 빼버리자’라는 결론으로 가게 되었습니다만, 그것도 답은 아니었습니다.
콘솔 장비 본체보다 더 큰 보조 장치에 VR기기까지 주렁주렁 달고 게임을 하는 모습은 적어도 PTW에서 원하는 이상적인 주변기기의 모습은 아닐 거란 판단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개발팀에서 ‘현존하는 기술로는 원하는 수준의 장비를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개발팀을 구원한 것이 바로 민준의 스컹크 웍스였다.
“스컹크 웍스 멤버들은 저희도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대단한 멤버들이었고 저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혹시 원본 영상 소스를 저희 기기에 맞게 재처리하는데 특화된 칩셋과 후처리 프로그램을 제작해주실 수 있는지 물었고, 스컹크 웍스의 도움으로 현재 수준의 물건이 만들어질 수 있었죠.”
“그 수준이 어느정도의 수준을 말하는 건가요?”
현주가 묻자 스즈키가 VR기기의 프로토타입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내밀며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적어도 저희가 보기엔, 오파츠 소리 듣기 충분한 수준의 물건이라는 소리죠.”
***
상혁이 말한 대로, 개선된 VR장비는 외관만 조금 달랐을 뿐 무게 자체는 처음에 그녀가 썼던 목 업 버전의 제품과 동일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외장인 플라스틱 껍데기가 없는 만큼 조금 가벼운 느낌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써본 그녀가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장비를 머리에 쓰자마자 자동으로 전원이 들어오며 그녀의 앞에 펼쳐진, 메인 UI의 모습이었다.
디스플레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두꺼운 유리만 앞에 있는 장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허공에 홀로그램 이미지가 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영상처리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VR같은 느낌보다는 AR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확실히 주위 사물이 다 보이는데도 허공에 이미지가 자연스레 출력되는 게 굉장하네요! 예전처럼 프리즘 때문에 시야가 거슬리지도 않고!”
“그렇죠? 진짜 미래에 온 기분 아닙니까?”
스즈키가 가슴을 펴며 자랑스레 말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건 정말로 멋진 기술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VR기기는 주변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VR기기를 벗고 대화를 해야 했지만, 이 기기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잠시 VR모드에서 AR모드로 전환해서 대화하고, 그다음 다시 VR모드로 들어가면 되니까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일단 테스트 삼아 시네마 모드로 변환해보시죠. 아이들(Idle) 상태에서 허공에 손을 뻗고, 손바닥을 펴서 아래로 내려보세요.”
현주가 그렇게 하자, 그녀의 손끝이 위치한 곳에 PTW VR의 메인 UI가 출력되었다.
그리고 현주는 스즈키의 지시를 따라 기본 앱 중 하나인 VR 시네마 앱을 실행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헉?! 허?!!?”
순간적으로 주변이 완전히 차단되며 마치 텔레포트라도 한 것처럼 극장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VR 화면이라는 것을 깜빡할 뻔했다.
PTW의 신형 VR기기에서 쏘아진 화상 정보가, 그녀의 망막을 빈틈없이 가득 채웠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경이로울 정도의 현장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지, 진짜 극장에 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처음엔 저도 상혁씨가 왜 그렇게 시야각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만, 경계선이 없는 VR이라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물건이더군요.”
기본적으로 기존의 VR기기는 눈 정면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영상 정보를 사용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시야 변경을 위해서는, 눈동자가 아니라 고개 자체를 돌려야 하고.
그러나 PTW의 VR은 고개를 돌리는 것 만이 아니라, 아예 시야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화상 신호를 인체의 망막에 맺히게 만드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눈동자를 옆으로 돌려도 그에 맞는 화상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애당초 눈의 동작 범위 전체를 커버할 수 있도록 프리즘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현주가 느끼는 경이로운 감각은 스즈키도 테스트를 하며 수없이 느꼈던 것이었다.
스즈키는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며 PTW의 CEO가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는,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뭐 지금 당장 영화 한 편을 보여드릴 수도 있겠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아셨을 테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VR모드에서 AR모드의 전환에 관해서만 설명하겠습니다.
이 상태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 VR을 종료해야 할 때, 기존의 VR기기는 장비를 잠시 벗어 상대를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PTW VR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머리에 쓰고 계신 장비의 오른쪽 정면, 그러니까 오른쪽 눈썹이 위치한 부분에 손을 대 보시겠어요?”
현주는 그렇게 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주변이 밝아지며 극장에 있던 자신의 주변 모습이 다시 PTW지하의 연구동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그 연구동의 정면에는, 어느새 자리를 옮겨 현주의 앞으로 이동한 스즈키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이건···..”
“엄청나죠?”
그런 스즈키의 질문에, 현주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제가 가상공간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드네요. 그게 전부 시야각이란 것 때문인가요?”
“그렇죠. 사실 이론상으론 원래부터 기존 기술로도 가능은 했습니다.
엄청나게 커다란 디스플레이를 써서, 시야가 닿는 모든 부분에 영상을 보여주면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죠.
하지만 그러면 영상의 해상도가 엄청나게 커져야 하고, 기기의 무게도 너무 무거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존 VR기기는 눈의 정면에만 디스플레이를 배치하고, 머리를 돌려서 주변을 둘러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죠.”
“저희 기기는 다르고요?”
“PTW VR은 동공의 위치를 파악해서 사용자의 눈동자가 바라보고 있는 부분만 보여줍니다.
대신 안구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가기 위해서 그에 맞는 연산 처리 능력이 필요했고, 해당 기술을 스컹크 웍스에서 제공함으로써 현재의 VR기기가 완성된 거죠.”
“STC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스즈키가 인정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그 STC란 물건은 괴물 그 자체더군요.
허락만 해 주신다면 나중에 SANY에서 α카메라를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받고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기기에 최적화된 칩셋을 설계해주신 것도 있긴 하지만, 엔지니어 입장에서 현재의 기술로 구현 가능한 성능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물건이란 건 성배나 다름없거든요.”
만일 STC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어쩌면 역대 최고급 성능의 카메라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즈키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리고 현주는 그런 스즈키를 보며 머리에 쓰고 있던 장비를 벗어 스즈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SANY와는 협력사니까, 어쩌면 STC의 사용에 대해서 지원을 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SANY측에서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신다는 전제 하에서.”
그러자 스즈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 비용이 얼마든, STC란 물건은 사용한 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물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건 제가 책임지고 윗선을 설득하겠습니다! 이번 협업이 끝나면, 이후엔 어떻게든!”
“예. 저희도 협력사에게 지나치게 높은 비용을 요구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현주는, 상혁을 데리고 연구동에 달려있는 작은 회의실로 이동했다.
방금 전 자신이 경험한, 경이적인 체험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리고 회의실에서 그녀가 꺼낸 첫 번째 질문은, 새 기기에 대한 경악에 가까운 감정이 실려있었다.
“나, 방금까지 꿈꾸던 거 아니지?”
“마음에 드셨어요?”
“당연하지! 아깐 진짜로 내가 극장으로 텔레포트라도 한 줄 알았다고! 출시 가격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저 정도 체험이 가능한 기기라면 진짜로 오파츠 취급받을걸?
저게 공개되는 순간 망화텅 CEO는 이렇게 생각할거야.
‘아, 23조가 아니라 100조를 불렀어야 했어.’라고.
저건 그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잖아!?”
“그렇긴 하죠.”
“근데 저게 출시까지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럼 자금 문제는 해결된 거나 다름없네. 저건 써보면 누구라도 가치를 알 수 있는 물건이니까.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은 무조건 살 수밖에 없을 거야.
진짜로. 난 극장으로 들어간 순간 그렇게 생각했어.
‘이거 100만 원이든 200만 원이든 무조건 사야겠다’라고.
방금 들었어? 내가 나도 모르게 극장으로 ‘들어갔다’라고 표현한 거?
솔직히 코넥트 건이 있으니까 예전 프로토타입보다 발전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저건 진짜 기대 이상이네.”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기대감을 표현하는 현주를 보면서, 상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건 게임을 하기 위한 주변기기고 아직 게임은 개발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성능이 너무 압도적이잖아!”
“하지만 저것도 VR기기의 태생적 문제는 가지고 있죠.”
“어? 뭐?”
저토록 완벽한 물건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현주가 묻자, 상혁이 말했다.
“VR기기는 써보기 전엔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 어려워요.”
“하지만 써보면 알 수 있을 거 아니냐.”
“그렇다고 저희가 시제품 들고 다니면서 고객들한테 일일이 다 써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건 뭐랄까, TV 광고의 딜레마 같은 거예요.”
“TV 광고의 딜레마?”
“쉽게 설명하면, 흑백 TV를 통해서 컬러TV를 광고하는 거랑 같은 거죠.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선명한 컬러!’라고 뜨는데 정작 송출되는 디스플레이가 흑백이라 컬러의 강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광고 같은 거요.”
“아···.”
“TV라면 그래도 괜찮아요. 매장에 펼쳐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한눈에 봐도 그게 엄청난 걸 알 수 있으니까. 하지만 VR기기는 그것보단 진입장벽이 높잖아요?
해당 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고요. 전달하려는 체험은 입체적인데,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평면적이죠.
특히 기존 VR기기와 비교해서 저희 장비가 가진, 마치 내가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그 특유의 감각.
VR을 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기 어려울 거에요.”
상혁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자신도, 기기를 눈앞에 보고서도 그것을 실제로 써 보기 전엔 그게 얼마나 굉장한 느낌을 줄 것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입소문이야 퍼지겠죠. 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칭찬할테니까요.
‘그건 진짜 엄청나!’라던가,
‘진짜로 개 쩌는 경험이었다고!’ 같은 식으로요.
하지만 고래를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이 설명만 듣고 고래를 눈앞에서 본 감동을 체험할 수 있겠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서 필요한 게 게임이죠.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MYOM을 보고 코넥트를 구매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처럼요.”
“그렇네···. 맞는 말이야.”
“게다가 저희가 시야각 문제를 개선하면서 몰입감 측면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더 심해진 문제도 있거든요.”
“뭐?”
“VR멀미요.”
상혁이 말했다.
“PTW VR은 몰입감이 개선된 만큼 캐릭터가 이동할 때 멀미가 정말로 심하게 나요.”
“3D 멀미 같은 거 말하는 거야?”
“비슷한 원리이긴 한데, 기본적으로 VR 멀미는 시야는 이동하는데 몸이 이동하지 않을 때 뇌가 제대로 정보를 인식하지 못해서 생기는 멀미예요.
그러니까 시야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으니 뇌는 몸이 이동하는 걸 가정해서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데, 실제로 몸은 이동하지 않으니까 멀미가 발생하는 거죠.
이건 몰입감이 심할수록 뇌가 착각을 더 심하게 해서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어? 근데 그건 운전도 마찬가지 아냐? 운전도 몸은 가만있는데 시야는 이동하잖아.”
“그때는 뇌가 몸이 ‘운전’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VR로 레이싱이나 플라이트 시뮬레이션을 할 때는 또 이상하게 멀미가 줄어든단 말이죠.
결국엔 뇌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럼 만약 PTW VR 전용의 게임을 만든다고 한다면···.”
“플레이어 캐릭터의 이동이 없는 게임을 가정해서 만드는게 가장 멀미를 줄일 수 있겠죠.
앉아서 플레이할 수 있지만, 내가 지금 특정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체감을 멋지게 전달할 수 있는 게임.
그리고 되도록, 앉아서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일 중에 가장 멋진 일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인 게 좋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앉아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
한참을 고민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현주가 상혁을 보며 물었다.
상혁이라면 뭔가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상혁아. 넌 앉아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멋진 일이 뭐라고 생각해?”
“저요?”
“응. 너라면 뭔가 이미 괜찮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두지 않았을까 싶어서.”
“뭐, 있긴 한데···.”
“뭐야?”
그녀의 질문을 들은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유리로 된 회의실 벽 앞에서 뒷짐을 지며 유리 벽 너머의 VR기기를 바라보았다.
마치 완성된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선생님.”
“응?”
“혹시 우주 전함 함장 같은 거에 관심 있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유리창에 비치는 상혁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게임을 상상하고 있는 개발자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