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돈의 가치, 사람의 가치
23조나 되는 거금을 거절하겠다는 현주의 대답에 망화텅은 이유를 물어보았고, 현주는 그런 그에게 간단히 자신이 생각하는 거부의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라도 거금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회사 경영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함께, PTW가 딱히 십센트의 자금이 필요한 만큼 안정감이 없는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현주의 설명을 들은 망화텅은 현주가 어떤 의도로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주가 보이는 것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군.’
망화텅이 인수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주는 그 뒤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보았다.
23조 원이란 거금을 제시하면서까지, 십센트란 회사가 PTW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마도 십센트에서 진짜로 원하는 것은, PTW의 중국 판매 권한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아니라, PTW가 보유하고 있는 IP가치와 기술력이겠지.’
업계에서 PTW라는 회사를 고평가 하는 이유.
그리고 PTW가 매출 규모나 순이익률이 낮음에도 엄청난 기업가치를 인정받게 만드는 힘.
그것은 PTW가 보유한 다양한 원천 특허와 전 세계의 기업들이 사용 중인 워크 패스트란 업무 솔루션, 그리고 지금까지 후속작은 내지 않으면서 계속 새 IP만을 만들며 쌓아온 강력한 IP파워에 있었다.
‘조금 더 설득해볼까?’
고민하던 망화텅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저었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만 매진하는 사람은 오히려 돈으로 쉽게 매수할 수 있다.
돈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 일깨워주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까지 신경쓰는 사람은 설득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기 때문에.
결국, 망화텅은 PTW라는 특이한 회사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회사의 가치를 어필하는 것에 만족하고 오늘의 미팅을 마무리했다.
헤어지기 위해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상대의 가슴에 박아둘 마지막 한마디는 남겨두면서.
“언젠가 이루시려는 목표에 도달하는 길이,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다면 꼭 저희 십센트를 떠올려주십시오. 지금이 아니라도 저희는 언제나 PTW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두고 있을 테니까.”
“감사하지만 그럴 염려는 없을 겁니다. 저희 직원들은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자들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현주는 실례가 되지 않도록 망화텅이 건넨 명함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그리고 떠나는 그를 미소로 배웅하고는 잠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아아아아···..”
명함을 쥔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바라보던 그녀는 순간 다리에 힘이라도 풀린 것처럼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방 뒤편의 문을 향해 소리쳤다.
“듣고 있었지? 이제 나와줄래?”
그러자 문이 살짝 열리며 상혁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있는 거 알았어요?”
“너라면 궁금해서라도 숨어서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딱히 선생님을 못 믿어서 그런게 아니라···.”
“나도 알아. 잠깐 얘기 좀 할까?”
그녀가 상혁을 부르자, 상혁은 조용히 그녀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러자 현주가 상혁에게 망화텅이 준 명함을 건네주며 질문했다.
“들어서 알겠지만, 제안은 거절했어.”
“잘 하셨어요.”
“내 독단적 판단으로 23조를 얻을 기회가 날아간건데?”
“그 판단의 이유가 저희를 위한 거였다고 믿으니까. 금액의 규모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죠.”
“고마워.”
“오히려 좀 놀랐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십센트랑 거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23조라는 금액을 들었을 때는 좀 많이 혹하긴 했었거든요. 재벌 가문에서 자라서 그런가? 돈에 대한 내성이 좀 있으신가 봐요?”
“상혁아, 우리 집안 재산 다 합쳐도 그거의 발끝도 못 따라가거든? 아마 우리 아버님이 들으시면 엄청 뭐라 했을 거야.”
“그 사업의 천재라는 삼촌 분은요?”
“그분도 평소엔 중국이랑은 거래할 때 조심해야 한다고 하실 분이지만, 금액이 23조 정도 되면 다르겠지. 그건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는 금액이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거절하셨고요?”
“노림수가 보였거든.”
“그렇죠. 저희가 가진 IP 가치는 계속 성장하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근에 혁신적으로 늘어난 건 아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공식 발표한 게임이 OGC였고, 그 게임의 내용 대부분은 베타 테스트 때 이미 공개되어 있었죠. 그러니까 사실 저희 회사가 상장되어 있었다면 주가는 OGC 발표 이후에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했을 거예요. 그때 제안을 하지 않고 지금 제안을 넣었다는 건···.”
“상대방이 가지고 싶어 하는 진짜 ‘물건’이 우리가 최근 발표한 내용에 있다는 거겠지.”
“STC겠군요.”
“난 문과라 잘 몰라. 그거 민준이네 팀에서 만든 프로그램 같은 거지?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현주가 묻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엄청나죠.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저희가 내부 테스트로 검증했을 땐, 지금 버전의 STC로도 현존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버그 없이 최적화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실제로 이번에 발표한 갤럭틱 M이 칩셋 성능의 향상보다 더 높은 성능을 보이는 것도, STC로 최적화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덕분이기도 하고요.”
“흠···. 최적화 안해도 원래 돌아가던 프로그램이라면 딱히 해도 메리트는 없지 않을까?”
“그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원래 100정도의 성능을 가진 머신에 100의 효율로 돌아가던 프로그램을 80의 성능만 가지고도 돌아가게 하면 20의 여유가 남잖아요?
그럼 거기에 다른 무언가를 더 더할 수 있죠.
솔직히 말하면 민준이가 지금까지 워낙에 말도 안되는 물건을 연속으로 만들어서 임펙트가 적어보이는거지, 효용성으로는 STC만큼 대단한 물건이 없어요.
지금까지 만든 물건이 특정 게임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었다면, STC는 민준이가 만든 물건 최초로 어느 프로그램에나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춘 오파츠니까요.”
“하지만 그게 돈이 되는 건 아니잖아? 단지 만들고 있는 게임을 좀 더 쾌적하게 굴러가게 할 뿐이니까.”
“그야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시장에서는 그렇겠죠.”
사실 고객, 그러니까 유저 입장에서는 STC란 제품은 자신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적용되면 좋고 적용되지 않아도 딱히 문제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STC가 가진 진짜 가치는, 게이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B2B(business-to-business, 기업과 기업 간 거래)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상혁은, 아마도 망화텅 역시 그 점에 주목하고 있으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
스컹크 웍스에서 개발한 STC란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돌리려는 하드웨어 스펙에 맞춰 코드를 최적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윈도우를 만든다 하더라도, 컴퓨터의 램 클럭이나 그래픽 카드 메모리의 용량 같은, 사용 가능한 모든 시스템 스펙을 파악하여 해당 프로그램을 최적화하는 것이 STC란 프로그램이었다.
문제는 STC의 버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사용되는 코드의 내용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지금은 전설의 프로그래머인 존 스캇도 STC가 만들어낸 코드를 보면서 코드 짜는 법을 연구하고 있을 정도로, STC가 만들어 내는 코드들은 최적화를 위해 지나치게 난해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코드 자체는 최적의 효율로 굴러갈지 몰라도, 유지보수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애당초 프로그래머도 이해할 수 없는 코드를 가지고 문제를 수정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현재의 STC의 작업 프로세스는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우선 사람이 코드를 작성하고, 그것을 STC를 가지고 컴파일한 뒤, 문제가 생기면 사람이 작성한 원본 코드에 수정을 한 뒤 STC에 다시 넣고 돌리는 식으로.
그러니까 현재의 STC는, 민준의 원래 개발 의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완벽하게 ‘컴파일러’처럼 동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STC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니라 STC라는 프로그램 자체를 사용하는 ‘고객’에게 매우 곤란한 문제를 안겨주게 되었다.
바로 개발 과정에서 STC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진다는 것.
그래서 구골도 갤럭틱 M에 적용된 STC버젼의 안드로이드를 자사의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모든 휴대폰에 적용하려고 했다가 몇 번 테스트를 해보고는 바로 계획을 취소한 상태였다.
매번 STC를 이용할 때마다 PTW에게 조금이라도 이용료를 지급하게 된다면, 아마 안드로이드를 버전업 할 때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망화텅은 바로 그런 STC의 특징에 주목하고 있었다.
만일 STC란 프로그램을 대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통해 매번 버전 업 할 때마다 사용료를 받는다면?
PTW는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처럼 전세계 기업을 상대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상혁의 설명을 들은 현주는 흥분한 표정으로 상혁에게 물었다.
정말로 상혁의 설명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앞으로 돈 걱정할 일은 영원히 없을 테니까.
“그게 진짜야? 정말로 그렇게 된다고?”
“아뇨. 그건 진짜 악랄하게 돈을 뜯어내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세상에 버그 하나 수정하려고 컴파일할 때마다 돈을 내야 한다면 어느 누가 그 컴파일러를 사용하겠어요?”
“아···.”
“하지만 아마존 클라우드처럼 사용량에 따라 돈을 받거나 기간제 계약으로 돈을 받을 수는 있겠죠. 상대 기업에도 지나치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저희도 수익을 받는 방식으로요.”
“그건 새로운 PTW의 캐시카우가 될지도 모르겠네?”
“그렇겠죠.”
“다행이다.”
“돈 걱정 때문에요?”
상혁이 묻자 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야 현주에게 CEO를 맡기고 나서부터 회사의 자금 출납 문제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매일 숫자와 씨름해야 하는 그녀는 그것에 대해 꽤나 압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OGC 판매량이 장난이 아닌데, 걱정할 게 있나?”
“그거야 지금은 그렇지만 네가 차기작은 3년 넘게 걸릴 거라고 했으니까. 3년은 긴 시간이야. 우리 회사는 유지비가 엄청나게 많이 드는 회사고.”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STC센터를 짓는데도 수천억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되었는데, 해당 시설은 지금 STC스스로가 자신의 코드를 수정하게 만드는 괴상한 실험을 하는 데 쓰이고 있어서 돈은 무지막지하게 받아먹으면서도 아무 생산성 없는 시설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게다가 PTW에서 하드웨어 개발에 지불하는 대부분의 투자금과, 천하대 교수들에게 지급하는 연구비 또한 일종의 매몰 비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중에 단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그 비용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두 사람 모두, 결국 그런 투자가 되돌아와 게임의 퀄리티로 이어지게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PTW에서 ‘원가 절감’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지 돈이 필요하면, 더 벌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
“이전에는 평균 1년 주기로 게임이 출시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느 정도 자금이 원활하게 굴러갔지만 3년 동안 밑도 끝도 없이 돈만 쓰게 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어.
난 그게 좀 걱정이야. 그리고 네가 그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 좀 이상하기도 하고.”
상혁은 그제야 그녀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정말로, PTW가 3년간 새 제품을 하나도 내놓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잠깐만요. 선생님.”
“응?”
“뭔가 까먹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어? 뭘?”
“제가 3년이 걸릴 거라고 말한 건, Project Hero 하나에요.”
“하지만 지금 진행 중인 게임 개발 프로젝트도 그거 하나잖아. OGC가 마지막이었고.”
“아니, 그건 지금 들어간 프로젝트가 그렇다는 거지, 그렇다고 3년 동안 게임 하나만 만들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요. 그리고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SANY랑 같이 개발 중인 VR기기요.”
“어. 그게 왜?”
“그게 아마 앞으로 1년이면 출시 가능한 상태가 될거란 말이죠.”
잠시 상혁의 말의 의미를 생각하던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어? 그럼 네 말은···.”
“맞아요. 코넥트 때 MYOM을 내놓았던 것처럼, 이제 VR기기 전용 게임도 만들어야죠.”
“그런데 그거 시신경 손상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야 SANY의 광학 장치 개발팀에서 해결해줬죠.”
“그거 사양도 무지막지하게 많이 먹고 크기도 엄청 크지 않았나?”
“그건 스컹크 웍스랑 STC가 해결해줬고요.”
그렇게 말한 상혁은,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말이 나온 김에 PTW의 새 VR기기, 보러 가지 않으실래요?”
그런 상혁을 보며, 현주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자신의 영악한 제자가, 3년 동안 게임 하나만 붙잡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져서.
아마도 상혁은, Project Hero를 시작한 시점에서도 이미 VR기기의 출시 시기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보가 있었기에, 자신 있게 프로젝트 진행을 밀어붙인 것일테고.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모든 상황을 파악한 채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타입의 개발자.
그리고 자신이 그런 직원이 있는 회사의 CEO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부담감을 한순간에 날리게 하고 있었다.
“좋아.”
현주가 상혁의 손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상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상혁아.”
“네?”
“생각해보니, 우리 회사엔 23조 같은 건 필요 없을 것 같아.”
“왜요?”
“23조보다 더 능력 있는 개발자들이, 회사에 넘쳐나니까.”
상혁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VR기기의 개발이 진행 중인 PTW 지하의 연구동으로 향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도, 23조보다 더 든든한 CEO가 선생님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행복한 기분에 감싸여 연구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코넥트에 이어 게이머들에게 두 번째 최애템이 될, PTW의 새로운 오파츠를 테스트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