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빅 오퍼
상혁이 현주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회귀 전의 미래 정보를 말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코로나 판데믹 같이 현실적으로 2015년 시점에서 아예 예상할 수 없는 정보를 알려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미래 정보를 알려주려 한 것은 현주가 십센트의 CEO, 망화텅과의 대화에서 거래의 키를 잡게 하려는 것이지, 딱히 노스트라다무스 취급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상혁은 중국의 게임 시장과 관련된 흐름 중, ‘어느정도’ 정보를 가지고 유추 가능한 사건만을 나열해서 알려주었다.
2017년 상반기부터 벌어지는 중국 공산당의 한국산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 거부.
게임 개발 기술자를 구한다고 한국에 와서 좋은 조건으로 고연봉과 주택 제공 등을 약속해놓고 개발자들을 토사구팽한 사건들.
그리고 상식이 있는 국가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청소년에 대한 게임 금지령 등.
상혁이 말해준 미래 중국의 게임시장의 변화는 현주가 듣기에 말이 안 될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외국에 자기네 게임은 수출하면서, 외국 게임의 중국 판호 발매는 막을 거라고?”
“중국이니까요.”
“중국에 집도 주고 연봉도 많이 준다고 해서 중국 갔던 한국 개발자들 전부 토사구팽당할 거라고?”
“중국이니까요.”
“그것도 모자라서, 나중엔 아예 중국 청소년들은 게임 자체를 일주일에 3시간밖에 못하게 될 거라고?”
“중국이니까요.”
상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대륙. 그곳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나는 모든 미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죠.”
***
망화텅은 솔직히 이번 거래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자리에서 바로 PTW가 인수건을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개발에 미친 인간들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보기에, 그들은 언제나 비슷한 조건에 열광하곤 했다.
경영에 간섭하지 않겠다.
우리와 손을 잡으면, 더 안정된 환경에서 ‘하고 싶은’ 방식으로 개발을 이어나가며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겠다.
단지 하던 일을 하던 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주겠다는 제안.
그러나 그런 제안엔, 언제나 그렇듯 함정이 숨겨져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십센트 정도의 회사가, 미쳤다고 수조 원이나 되는 인수 자금을 퍼부으면서 상대방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겠는가.
물론 상대가 원하면 계약서상에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조건도 적어주고 있지만, 망화텅은 그 문장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이 아무 의미도 없는 이유는, 생각보다 매우 단순했다.
돈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우니까.
일반적으로 십센트에서 인수제의를 건네는 상대는, PTW처럼 수조 원의 인수 자금을 받지 않아도 이미 경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견실한 회사들이다.
비록 인수 합병에 사인하는 것처럼 단번에 수조 원이란 거금을 얻을 순 없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회사들.
그런 회사들을 상대로, 십센트는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며 수조 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건넸다.
그럼 평생 게임이나 프로그램만 만들다가 부푼 꿈을 안고 회사를 창업한 경영자들은 언제나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우선 의심하겠지.’
“정말로 경영에는 일절 간섭을 하지 않는 조건인가요?”
현주의 질문을 받으며, 망화텅은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한 미소로 답했다.
“이미 여러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언리얼 엔진의 개발사인 에픽의 지분도 40%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저희와 손을 잡은 이후로 변한 것이 있었나요?
저희는 리그 오브 레전설의 개발사 라이언 게임즈의 지분도 100%를 가지고 있죠.
저희가 인수 한 후, 게임이 바뀌었습니까?
원하신다면 계약서에 ‘절대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조건을 넣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의심은 풀리게 마련이다.
계약은 절대적인 것이고, 상대가 그것을 어기면 위약금이 발생하던 계약 파기 사유가 되던 어찌됐건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의심이 풀리고 나면, 상대의 눈동자에는 탐욕이 깃든다.
아무 제약 없이 상대가 주겠다고 하는 막대한 거금.
그리고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들.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 수억 원씩의 보너스를 지급할 수도 있고, 실리콘 밸리의 목 좋은 자리에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사무실을 구할 수도 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벤틀리.
수십억 원짜리 요트와 뉴욕 맨하튼에 있는 수백억짜리 아파트.
오데마 피게, 바쉐론 콘스탄틴, 파텍 필립, 브레게, 필립 듀포같은 고급 시계 브랜드.
세상엔 돈이 많으면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참 많았다.
물론 그것은 어차피 그들이 지금처럼 열심히 성공을 위해 매진한다면, 언젠가 얻을지도 모르는 것들이긴 했다.
그러나 ‘앞으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과,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망화텅은 지금까지 수많은 개발자가 돈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에, 이번에 만난 PTW도 같은 반응을 보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망화텅이 모르고 있던 사실은, 현주가 비록 음악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사업가들이 즐비한 재벌 집 따님이라는 사실이었다.
망화텅은 보고받은 자료를 통해 현주의 전 직업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현주의 집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실제 거래는 상혁이 주도할 것으로 생각했고, 현주는 그냥 바지사장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현주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온 일종의 ‘재벌가 엘리트’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현주는 이미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현주는, ‘절대 경영에 간섭하지 않겠다.’라는 조건을 걸며 미소짓는 망화텅의 얼굴을 보며, 어릴 적 사업가인 삼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항상 상대가 내게 주려는 것보다 그것을 주려는 이유를 보라고 하셨지.’
현주는 생각했다.
왜 상대는 이런 말도 안 되게 ‘후한 조건’을 내거는 것일까.
표면적으로 볼 때, 지금의 제안은 ‘내가 너에게 수조 원의 돈을 주겠지만 너에겐 아무 간섭도 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제안 뒤에 숨겨진 의도를 보면, 앞으로 흘러갈 일에 대한 흐름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잘 풀리면 어차피 간섭할 이유가 없고, 잘 안 풀리면 돈에 쪼들리니 알아서 말을 들을 거라는 계산이겠지.’
현주는 만약 인수한 회사가 십센트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고 가정했다.
그럼 어차피 십센트는 압도적인 주가 상승과 배당금으로 이득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잘 하는 회사는 굳이 건드릴 필요도 없을 것이고.
문제는 거금을 받고서 안좋은 성과를 거뒀을 때다.
만약에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물론 계약서에 명시된 만큼 돈이 벌리지 않는다고 직접 십센트가 경영진을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자금 회수를 압박하면 된다.
돈이란 것은, 가지고 있는 만큼 씀씀이가 커지게 마련이니까.
수조 원의 인수 자금을 받아서 화려한 본사 건물을 세우고, 직원들에게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원하는 만큼 능력 있는 개발자를 잔뜩 고용한 회사에게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빼앗기는 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거래의 키는 완전히 십센트에게 넘어오게 될 것이고.
상혁은 그녀에게 그런 상황에 대해서, 삼국지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전략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과거 주유가 유비에게서 형주를 받아오기 위해, 오나라에 방문한 유비에게 막대한 돈을 퍼부어 사치에 물들게 하려고 했던 그 전략이라고.
비록 소설에서는 그 전략이 먹히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그 전략은 일반인 상대로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兆)라는 단위는, 사람의 신념을 사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금액이었으니까.
현주는 어릴 적부터 평생을 사업가로 살아온 삼촌이 자신에게 자주 해주었던 이야기도 떠올렸다.
사업가로서, 그가 평생을 자신의 격언으로 삼고 살아왔던 그 문장은, 어릴 적 그녀가 들었을 때는 단순히 아저씨의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문장처럼 보였다.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
현주야. 착한 사람은 오지 않고, 오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법이다.
넌 천성이 착하고 순하니 수많은 사람이 널 이용하려 다가오겠지.
하지만 언제나 기억하렴.
선한 자는 동업자에게 절대로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단다.’
어린 시절의 현주가 본 그녀의 집안 사람들은, 죄다 가슴속에 능구렁이를 100마리는 넣고 다니는 듯한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란 직업을 택한 것도 사실은 그런 이유에서였고.
솔직히 말하면, ‘어른’이란 존재에 지쳐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가 보기에 아이들은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도피를 위해 선택한 직장에서, 그녀는 말 그대로 순수함을 넘어서 단순 무식에 가까운 존재들을 만나게 되었다.
‘개발자가 즐거운 회사. 게이머를 즐겁게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전 그냥 코딩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제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선생님이란 직업을 그만두게 만든 사랑스러운 제자들은, 그녀에게 아무 숨김없이 자신들의 의도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말은 지금까지 100% 진실이었고.
그렇기에 항상 자신의 이득을 숨기고 상대의 이득만을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그녀는 오히려 상혁이나 민준 같이 단순한 타입의 사람들 속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추는 것 없이, 부탁할 것은 부탁하고 원하는 것은 원한다고 말하는 아이들.
이따금 빡빡한 일정에 투덜거리면서도 상대의 의도를 너무나 잘 이해하기에 자신이 나서서 상대를 도우려 나서는 아이들.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린 현주는 심호흡하며 망화텅을 바라보았다.
13억 인구가 사는 중국에서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업가.
그리고 전 세계 인터넷 기업 중 시가 총액 5위의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CEO.
처음 그를 보았을 때, 현주는 그가 풍기는 분위기에 압도당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그 역시, 단지 눈앞에서 흔드는 돈의 규모가 천문학적일 뿐이지 탐욕에 물든 인간임엔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고민하십니까? 이것은 PTW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조건입니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게임을 만드는 조건으로 수조 원의 금액이 거저 굴러들어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돈이 있으면, 더 규모 있는 게임의 개발도, 그리고 더 좋은 환경에서의 게임의 개발도 가능하겠죠.
물론 PTW가 지금까지 벌고 있는 수익이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매번 게임을 발매할 때마다 실패하면 위험할 정도의 도박을 반복해서 한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회사를 경영하면서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을수록 좋고, 돈은 그 카드 중 최고의 카드죠.”
“그로 인해서 십센트가 얻게 되는 이익은 뭔가요?”
“말씀드렸다시피 PTW게임의 중국 유통권과 그 이익을 얻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중국 시장은 큽니다. 그리고 급성장하고 있는 시장이죠.
저희가 그것으로 얻을 이익도 천문학적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 콘솔 시장 규모는 1300만 정도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8세대 콘솔이 품귀현상을 일으키는 중이라 급격한 성장도 불가능하겠죠. 콘솔 게임의 유통으로 수익을 내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겁니다.”
“현재보단 미래를 보고 하는 투자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그게 전부인가요? 중국에서의, 그것도 현재로서는 얼마 되지 않을 PTW게임을 유통하는 수익을 가져가는 것만으로 수조 원의 자금을 투자하시겠다고요?”
그녀의 뼈있는 말투에 망화텅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놓인 이득보다, 상대의 의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화텅은 양손을 들어 올리며 현주에게 감탄을 표했다.
“게임업계에서 그토록 폭풍을 몰고 다니던 PTW의 전 CEO가 자신의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CEO자리를 넘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황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이유가 보이는군요.
먼저, 경영자대 경영자의 관계로 현주 씨를 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원하시는 질문에 대한 답도 해 드리죠.
지금 현주 씨는, 저희 십센트가 PTW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려는 그 진의가 궁금하신 겁니까?”
“상대의 의도를 모르고 손을 잡을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희가 필요한 것은 PTW가 가진 게임업계에서의 이미지입니다.”
망화텅이 말했다.
“솔직히 PTW라는 회사는, 상식적으로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 되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경영방식을 가진 회사는, 절대 지금의 PTW처럼 운영되지 않죠.
워크 패스트 같이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업무 솔루션을 개발하고도, 안에서 미니게임 2개 제공해서 버는 수익 말고는 광고 하나도 받지 않고, 거기에 코넥트에 들어간 연구 개발비는 전부 허공으로 날아갔다고 들었습니다.
MS에 기술이전을 하면서, 기술료는 받지 않았다고요.”
“그랬죠.”
“발매될 코넥트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이상하죠. 보통 그런 건 플랫폼 회사들이 하는 일입니다. 해당 플랫폼을 손해를 보면서까지 싼 가격에 보급하고, 그 이후에 보급된 플랫폼에서 수익을 회수하는 거죠.
세상엔 그런 의도로 고객에게 무상의 서비스를 퍼주고 있는 기업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마는, PTW는 그런 의도로 기술료를 포기한 게 아닐 거로 생각합니다.
정말로 유저가 싼 가격에 코넥트를 손에 넣어,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그 순수한 의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판단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거겠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럼 그게 전문 경영인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바보 같은 짓이라고 평가받는 것도 알고 계시겠군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게 변비약을 먹이고 있다는 이야기 말씀이신가요?”
“알고 계시군요?”
“뭐, 제가 당사자이긴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중요시하는 ‘이윤’을 포기한 대신, PTW는 더 중요한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고요.”
“그게 뭐죠?”
“고객의 애정입니다.”
“그 애정이, 수조 원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계신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세상에 게이머를 위한 게임을 만든다고 하는 회사는 많지만, PEW 정도로 극단적인 고객 지향 기업은 흔하지 않죠.
마치 회사가 게이머에게 빚이라도 진 것처럼 행동하는 PTW의 그런 모습은,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있죠.”
“그게 뭔가요?”
“아,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구나, 아시아의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게임회사가, 나를 위해서 이런 것까지 해줄 만큼 ‘게이머인’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망화텅은, 그런 PTW의 이미지를 구매하고 싶다고 말하며, 현주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되었을까요?”
“그러니까, 이 거래가 완전히 십센트에 손해가 되는 거래는 아니라는 걸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죠. 일단 PTW라는 기업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업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는 부분이 있고, 기술적인 면에서 업계 최고를 달리는 기업이니만큼 저희가 부은 투자금 이상의 주가 상승을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거래가 성사된다면, 어쩌면 알리바바가 가지고 있는 IT기업 시총 3위의 자리를 저희 십센트가 차지하게 될 수도 있겠죠.
그것이 저희가 얻는 이득이라면, 적어도 수조 원을 투자하기에 아까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상대가 얻을 이득, 그리고 무상에 가까운 조건.
거기에 자신이 얻을 이득에 대한 설명까지 한 망화텅은 상대가 이 설명으로 100% 설득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논리적으로 해석할 때, 자신의 말은 모두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 회사의 좋은 이미지를 가져옴으로써 자사 주식의 가치를 높이고, 그것을 위해 수조 원을 투자하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경영에도 간섭하지 않겠다.
자신들이 경영에 간섭해서 수조 원을 투자한 기업의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이, 자신들에게는 더 손해일 수 있으니까.
이유와 보상, 결과까지 모두 오픈했으니 상대방이 넘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망화텅이었지만, 그의 말을 들은 현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상대가 오픈하고 있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역시나 그 직감의 열쇠는 상혁이 건네준 ‘중국 게임 시장의 미래’에 있었다.
게임업계 입장에서 보면 절대 밝다고 볼 수는 없는, 암울한 중국 게임 시장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
그것을 떠올린 그녀는 상혁의 말대로 중국의 게임 정책이 굴러가게 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될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했다.
그리고는 소름끼치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들어 망화텅에게 물었다.
“망화텅 씨.”
“예.”
“구체적으로 인수 자금은, 얼마 정도를 생각하고 계시나요?”
“대외비입니다만, 저희는 지금 모바일 게임회사 슈퍼쉘의 인수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수에 잡은 저희의 인수 비용은, 약 10조 원 정도죠.”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망화텅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PTW의 ‘이미지’가 가진 가치의 가격을.
“23조. PTW의 인수에 저희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은 23조 원입니다.”
PTW의 인수 가격에 대해 말하며, 망화텅은 그 금액에 몇 가지 수를 감추어두었다.
굳이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되는 슈퍼쉘의 인수 비용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들이 슈퍼쉘이라는 유명 회사보다 PTW의 가치를 두 배 이상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금액만큼 자신들이 PTW라는 회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23조라는 막대한 제시액은 그런 마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었다.
‘넘어와라.’
망화텅은 그녀가 넘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대화하면서 자신이 깔아둔 모든 카드가, 그녀가 거부할 만한 명분을 없애버리는 카드였기 때문에.
지금껏 이 방법으로 수많은 회사들을 인수해온 그는 자신의 방법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귀사와의 파트너쉽을 기대합니다.’
‘긍정적으로 내부 검토 후 추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우리 회사의 모회사가 되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람마다 하는 말은 다 달랐지만, 안에 담긴 뜻은 모두 같았다.
그렇기에 망화텅은 그녀 역시 같은 의미를 담은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망화텅이 지금까지 보았던 수많은 회사의 CEO가 지은 표정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23조···. 엄청난 금액이네요. 거부할 이유도 전혀 없고요. 말씀하신 대로라면, 이번 인수제의는 마치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 되겠죠. 지금의 자금력으로도 업계 최고 수준의 게임을 만들고 있는 회사가, 십센트라는 막대한 자금줄을 얻게 되는 것일 테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명백하게 단호한 거부의 의사가 담긴 눈빛으로 현주는 망화텅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것은 망화텅이 예상했던 수많은 대답 중,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절’의 의미가 담긴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