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54화 (255/485)

254. 시간과 예산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먼저 여러분께 전달 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상혁은 Project Hero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프로젝트의 발안자로서 프로젝트에 대한 핵심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혁의 말을 들은 직원들에게는 핵폭탄이나 다름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Project Hero에는 OGC에 들어간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기능이 탑재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PTW에서 만든 게임들에는 당분간 지금 버전의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탑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현재 PTW에서 가진 기술적 자산 중 가장 고평가받는 시스템을 차기작에서 빼버리겠다는 상혁의 선언은 모두를 충격에 빠트리게 하고 있었다.

“질문해도 됩니까?”

한 직원이 손을 들며 말하자, 상혁이 그 직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 하십시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PTW에서 기존 작품의 차기작을 만들지 않는 이유와 같은 이유입니다. ‘경험’에 먹히지 않으려는 거죠.”

상혁이 설명했다.

“많은 회사가 자신들이 성공했던 ‘경험’에 집착하곤 합니다. 이전에 그것으로 성공했으니, 그것만 계속 유지하면 계속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죠.

마치 그 안에 성공의 공식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그런 ‘성공했던 경험’에 대한 집착은, 도전을 두려워하게 하고 현재에 안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혁이 프레젠터의 버튼을 몇 번 누르자 화면이 몇 개 지나가며 통계 페이지가 출력되었다.

거기엔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개발 이전과 이후에 PTW에서 직원들이 등록한 신규 프로젝트의 통계가 적혀 있었다.

“OGC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여러분들이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성능을 접하고 나서, 기존에 등록되고 있던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프로젝트들이 죄다 등록취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체 등록 프로젝트의 80% 이상이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기반으로 한 아이디어로 새로 등록되었죠.

게다가 그 태반은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기존 게임에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얹은 게임들이었습니다.

자신이 평소에 즐기던 게임을, 커뮤니케이션 엔진 속 AI와 즐기고 싶다, 뭐 그런 아이디어들이었죠.”

그렇게 말한 상혁은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PTW가 커뮤니케이션 엔진 전문 개발사입니까? 한두 번이야 괜찮죠. 그런데 갓겜이라는 슈퍼 뫄리오도 똑같은 게임을 10년 동안 하면 질리는 법입니다.

저는 PTW가 유저들의 마음속에 ‘커뮤니케이션 엔진까지 개발한 회사’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엔진밖에 없는 회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OGC는 역대 PTW 게임 중 가장 평가가 좋은 게임이지 않습니까?”

“저희는 매번 그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갱신해 왔습니다. 저희가 전작의 성공에 안주하는 개발사였다면, 애당초 그 전에 역대급으로 평가받던 MYOM의 속편이나 만들지 어째서 OGC를 개발했겠습니까?”

질문을 던진 직원이 입을 다물자 상혁은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런 상혁의 타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엔 조금의 비난도 담겨 있지 않았다.

“다들 개발자이기 이전에 게이머시니, 이제까지 해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플레이하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이전에 플레이했던 게임의 후속작이 아니라, 이 게임이 무슨 게임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플레이를요.

평소라면 그냥 무시해버릴 튜토리얼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 처음 보는 것들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재미에 감탄하는 그 감성을.

PTW의 게임들이 가진. 아니, 가져야 할 감성들은 바로 그런 감성입니다. ‘신선함’ 자체가 PTW게임들의 아이덴티티가 되어야 하죠.

그렇게 되도록, 저희는 후속작을 만들지 않는 겁니다.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 게임을 개발할 때는, 개발자의 입에서 ‘아, 그거 전에 해봤는데 별로였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만약 저희가 그런 마인드를 버리고 개발을 한다면, 게임회사에 어쩌면 가장 치명적일지도 모르는 이미지가 저희가 힘들게 쌓아온 이미지에 독처럼 박혀들 겁니다.”

“그게 뭡니까?”

“‘식상함’입니다.”

상혁은 참신함을 선사하며 등장했지만 그런 식으로 침몰한 IP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저 게임은 기존 게임에서 스킨만 바꾼 게임이야. 어차피 내용은 다 똑같아. 그런 이야기를 들을 거라면, 그걸로 벌 수 있는 돈이 얼마든 차라리 게임 안 만들고 말겠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개발자로서의 자부심을 버리는 것보다는 돈을 포기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이야기가 무거워지자 상혁은 웃으며 크게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했다.

그리고는 싱긋 웃는 표정으로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지금 만들려는 게임을 어떻게 최고의 게임으로 만들지만 고민하도록 합시다.”

***

상혁이 잡은 Project Hero의 기본적인 플로우는, 어찌 보면 전설의 명작 RPG, 올드스크롤 시리즈의 5번째 작품인 ‘하늘 림’을 닮아 있었다.

자신이 습득한 능력에 따라 탈 수 있는 스토리 라인이 달라지고, 그것에 의해 플레이가 결정되는 부분이 특히 그러했는데, 그것은 마치 도둑 길드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은신과 소매치기를 훈련하는 ‘하늘림’의 서브 퀘스트를 연상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하늘림의 도둑 길드 퀘스트는 서브 퀘스트라인 수준의 볼륨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혁이 생각하는 Project Hero의 분기 별 스토리 볼륨은 타사 게임의 메인 스토리 수준의 볼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으로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방식이기에 다른 회사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방법이었다.

유저가 어느 하나의 능력을 습득해서 해당 스토리 라인을 플레이하는 순간, 나머지 스토리 라인은 다 버려지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메인 퀘스트 수준의 퀘스트 볼륨을 유저가 얻게 되는 능력의 계열별로 만들려면 엄청난 개발력의 투입이 필요했다.

그리고 여기 모인 개발자 중에 기획안을 보고 그것에 대해 파악하지 못할 만한 레벨의 개발자는 한 명도 없었다.

“차라리 ‘용의 시대 1편’처럼 초반부만 나눠서 능력 습득에 대한 느낌만 제대로 전달하고 중반 이후는 통합 루트로 진입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한 개발자가 그것에 대해 지적하며 이야기하자,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도 이런 형태의 게임을 구현하는 일반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그런 방식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배경부터 종족까지 전부 다 다르게 설정할 수 있게 해놓고, 초반 스토리는 완전히 갈라져 있어서 완전히 캐릭터마다 다른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이 보여주고서는, 결과적으로 초반부 넘어가고 나서는 다 똑같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으니까요.

적어도 그건 이 게임에서 저희가 유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혁의 말에 제안을 던졌던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자, 상혁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물론 현재 잡혀있는 능력 계열만 수십 종이고, 그럼 다른 게임의 메인 퀘스트 수준의 볼륨을 거기 맞춰서 제작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것을 위해서 Project Hero는 조금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려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른 게임 수십 개를 만들 노력을 무한정 붓는 것도 좋은 방식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동안 유저들이 목 빠지게 신작을 기다릴 것도 고려해야겠죠.”

“맞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형태로 개발하려면, 설사 PTW라 하더라도 3년 안에 개발이 끝날 수 있을지 의문이니까요.”

“그래서 Project Hero는 이런 방식으로 구현하려 합니다.”

상혁이 프레젠터의 버튼을 누르자, 서연이 그린 Project Hero의 배경 도시, ‘시타델(Citadel)’의 도시 지도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그리고 도시 곳곳에 빌런 캐릭터와 NPC의 얼굴이 박혀있는 동그라미가 함께 등장했다.

“기본적으로 도시 안에서 빌런들이 활동하는 구역은 정해져 있고, 게임 안에서 빌런들의 기본 행동도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유저의 선택이나 행동, 진입하는 퀘스트의 루트에 따라 해당 NPC나 빌런들의 행동이 변화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건···.”

“맞아요. TAW에서 한번 했었던 방식이죠.”

상혁의 말대로, PTW에서는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 게임인 TAW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시스템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는 NPC들의 행동 양식이, 유저의 플레이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시스템을.

“하지만 그때보단 좀 많이 개선된 버전이 들어갈 겁니다. 그때는 NPC들의 행동이 변한다고 해봐야 대사나 연기가 조금 변하는 정도고, 단란했던 가정이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풍비박산 나는 모습을 그렸었지만, 이번에 변화하는 것들은 주민들이 아니라 빌런들의 행동이니까요.

전투라는 개념이 없었던 TAW와는 다르게, Project Hero에서는 조금 더 많은 변화를 플레이어가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상혁은 준비한 PT를 한 장씩 넘겨 가며, 자신이 구상한 Project Hero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한 설명에 들어갔다.

“다들 기획서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Project Hero의 가장 핵심적인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히어로 활동이 원활하게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어로마다 시민들의 위기를 감지하는 방식이 다 다르겠죠.

만일 플레이어의 캐릭터에게 초인적인 감각이 있다면 도시를 순회하면서 그 감각 능력을 활용해 빌런의 출현과 시민들의 위기를 알아차리게 될 겁니다.

엔지니어 계열의 슈퍼 히어로라면 경찰 통신망을 해킹해서 빌런의 출현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고요.

만약 마법 계열의 히어로라면 미래의 위기를 보여주는 수정구 같은 아티펙트를 통해서 범죄를 미리 예견하고 현장에서 기다리는 방식도 있겠죠.

혹은 경찰 소속의 파트너와 듀오를 맺고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히어로 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동료들과 통신할 수 있는 베이스 캠프를 구축하고, 믿을만한 동료들을 선정하여 정체를 밝히고 아군으로 끌어들이며, 그렇게 구축한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고 도시의 시민들을 구하는 것이 Project Hero의 메인 플레이입니다. 그러니까 유저가 어떤 능력을 얻게 되고 어떤 식의 활동 시스템을 구축하느냐에 따라서, 빌런의 출현과 시민의 위기를 파악하는 방식이나 형태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뜻이죠. 능력에 따라 UI부터 업그레이드 트리까지, 모든 것이 완전히 새 게임처럼 달라지는 것이 Project Hero의 특징입니다.”

상혁은 설명을 하며 계열별로 달라지는 스킬트리의 모양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어떤 것은 유전자형태를 모방한 나선형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것은 기계 장치의 설계도 같은 느낌의 블루 프린트 형태로 되어있었으며, 어떤 것은 낡은 양피지로 된 마법서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또한, 가지고 있는 능력에 따라 플레이어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자’들의 존재도 바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 계열의 능력을 갖춘 플레이어에게, 마법사 계열의 조언자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죠.

반대로 초인계의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엔지니어 계의 NPC들에게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장비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원래는 신체 강화 능력 정도만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가, 엔지니어 계열의 멘토에게 신규 장비를 얻어 거미줄을 쏘는 장비를 얻는 등의 활동이 가능하죠.

전반적으로 엔지니어 계열은 정보 습득이나 장비 해킹 등 유틸성에서 매우 뛰어난 강점을 가지고, 초인 계열은 전투에 강점이 있으며, 마법 계열은 적응성이 뛰어나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초인 계열의 플레이어가 엔지니어 계열의 멘토를 만나 유틸성을 확보하면서도 전투력을 보강할 수도 있고, 엔지니어 계열의 플레이어가 마법 계열의 멘토를 만나 아티펙트등을 지원받고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는 것도 가능하죠.

하지만 각 능력의 특징은 명확하게 살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 계열은 그 높은 유틸성으로 ‘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전투’에 대한 대응 능력은 떨어지죠.

지금 개발한 장비가 전무 물리 계열 데미지 장비인데, 상대가 물리공격을 모두 흡수하는 독구름 계열의 빌런이라면 유효한 데미지를 주지 못합니다.

이때는 무조건 후퇴해서 해당 빌런을 잡을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힌트를 찾아서 신 장비를 개발해서 다시 맞서 싸워야 하죠.

그에 반해 마법 계열의 히어로는 상대가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일 경우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특징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의 경우 상성은 타더라도 데미지는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역상성의 빌런만 등장하는 것은 유저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에, 기본적으로 유저가 능력을 갖추게 되면 시스템이 해당 유저의 능력을 바탕으로 적절한 빌런을 매칭해 지역의 배치를 재정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컴퓨터 역시 유저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을 구축하려 시도하죠.”

“컴퓨터의 시스템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겁니까?”

“유저가 갖추는 시스템이 파트너나 멘토를 구해 영웅 활동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면, Project Hero의 AI가 구축하는 시스템은 슈퍼 파워를 가진 유저를 자신이 가진 빌런들로 잡기 위한 시스템을 말하는 겁니다.

마치 슈퍼 히어로가 나오는 드라마에서처럼, 매 세션마다 플레이어를 상대할 빌런을 AI가 선정하고 적기에 사건을 발생시켜 유저가 개입하게 하죠.

그것은 유저가 구축한 관계나 성장시킨 능력, 가지고 있는 정보에 따라 매번 유동적으로 변할 겁니다.”

상혁이 프레젠터를 눌러 이미지를 한 장 띄웠다.

거기엔 마치 안경을 쓴 수염 난 박사가, 악당처럼 보이는 등장인물에게 변명을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에게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이라는 문구와 함께.

그 이미지를 본 개발자들은 상혁이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바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고전 애니메이션 몬타나 존스에서, 니트로 박사는 악역인 제로 경에게 항상 다양한 발명품들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주인공을 잡기 위한 장비들이지만 매번 뭔가의 이유로 실패하게 되죠.

그리고 항상 같은 변명을 하게 됩니다.

‘저에게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이라고 하면서.

Project Hero의 AI도 비슷한 임무를 수행할 겁니다.

매번 정해진 포인트를 가지고 플레이어를 상대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게 하죠.

플레이어가 자신의 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멘토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Project Hero의 빌런들 역시 파트너 쉽을 구축하고 새 장비를 만들어 주인공을 상대하려 할 겁니다.

결국 Project Hero가 지향하는 이상향은, 액션 게임의 화려함을 가지고 있지만, 시뮬레이션의 변동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그런 게임이 되겠죠.

정해진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그런 게임이 아니라, 매번 스토리의 상황을 보면서 유저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그런 게임 말입니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로 하여금,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거죠.

‘와, X발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하고요.”

“꿈같은 이야기네요.”

“그렇죠?”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분명 만들기 힘든 건 사실이겠죠. 능력과 연출이 정해져 있는 특정 히어로 하나를 가지고 액션 게임을 만드는 것도 엄청난 작업인데, 그걸 능력별로 전부 구현하고, 또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변화하게 만든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바로 저희가 이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요?”

“너무 미친 짓이라서 다른 개발사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을 테니까.”

상혁이 말했다.

“아마도 이 게임 하나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노동력과 비용이면, 다른 AAA급 게임 몇 개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저희가 구현한 태반의 이벤트들은, 1회차 플레이를 가지고는 구경도 못 하는 이벤트가 될 거고요.

하지만 이런 게임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유저들은 매번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생각하게 될 겁니다.

‘아, 이번엔 어떤 능력을 갖춘 히어로를 만들어서 누구랑 파트너를 맺어볼까?’

그건 상상만으로도 두근대는 일이 아닌가요?

단순히 슈퍼 히어로가 된 느낌만을 주는 것이 Project Hero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 히어로가 어떤 히어로인지, 어떤 방식으로 히어로 활동을 하고 어떤 동료를 데리고 어떤 빌런을 막는지를 유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죠.”

그러자 한 개발자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 개발자는, 이전에 다른 게임회사의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PTW에 입사한 개발자 중 한 명이었다.

“이상은 좋습니다. 정말로요. 개발자이기 전에 게이머이자 히어로물의 팬으로서, 상혁 씨가 말한 게임이 슈퍼 히어로 게임이 추구할 수 있는 궁극의 이상향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나치게 높은 이상을 추구하다 엎어진 프로젝트를 자주 경험했습니다.

개발자들이 원하는 대로 게임을 만들라고 하다가도, 개발 기간의 연장이나 예산의 부족 등을 핑계로 대며 원래 만들던 것과는 다른 결과물을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도 자주 보았고요.

PTW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지 않았나요?”

“지금까지는 게임들의 개발텀이 짧았고, 회사의 수익도 안정적이었죠.

하지만 지금 PTW는 VR기기의 개발과 프로젝트 스컹크 웍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OGC가 역대급 판매량을 보이고는 있지만, DLC가 없는 게임이니 판매량이 줄어드는 순간 매상은 급감하겠죠.

지금 진행하시려고 하는 것은 저희로서는 초장기 프로젝트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긴 기간 동안, PTW에서는 지금 말씀하신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개발자들을 지원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묻고 싶은 겁니다.

만약 제 질문이 무례했다고 느껴지셨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다른 게임회사에서 본게 많아서 질문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개발자의 말을 들은 상혁은 웃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대답해드리죠.

지금 여기 모이신 개발자분들 중에는, 방금 질문하신 분처럼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 오신 경력자분들도 계시고, PTW가 첫 직장인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 모든 분에게, PTW의 지분 100%를 소유한 오너이자 저희 회사에서 개발하는 모든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CCO로서 말씀드립니다.

적어도 여러분이 포기하기 전에는, PTW에서는 절대 개발자의 꿈을 꺾지 않을 겁니다.

만들려는 것이 망상이라면 망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PTW는 언제나 개발자들의 망상을 위해 전력을 다해 지원하는 회사일 테니.

애당초 저희 회사는 그런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니까요.”

“회사 기둥뿌리가 흔들리는 한이 있어도요?”

“개발자들이 튼튼한 기둥 밑에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PTW 임원진의 역할입니다.”

상혁의 호언장담을 들은 개발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새삼스레 자신들이 다니고 있는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상혁의 목소리를 통해 깨달은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그것은 압도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목표 앞에서, 도전 의식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좋은 자극이 되고 있었다.

“정확히 3년 후에 반쯤 완성된 결과물 앞에서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아아!!’하고 소리 지르는 미래가 떠오르긴 하지만.”

조금 전 상혁에게 질문했던 개발자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정말로 비효율의 극치인 기획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입가엔 긴 미소가 걸려있었다.

“애당초 돈 벌려고 게임 만드는 게 아니라고 하는 회사에 입사한 저도 정상인은 아니죠.

병신같지만 참 마음에 드는 기획입니다. 당장 합시다.”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OGC개발팀 소속 아니셨나요?”

“맞습니다.”

“거긴 공식적으로 지금 휴가 기간인데요?”

“지금 휴가가 중요합니까?”

상혁의 질문에 그가 상혁의 뒤에 있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 빌어먹을 정도로 멋진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는 경영진이 있는데요?”

“좋습니다. 뭐 그래도 컨디션 관리는 프로시니까 알아서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저희가 연차 쓰는데 눈치 주는 그런 회사도 아니고요. 무리만 하지 마세요.”

“옙.”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 설명한 대로, 엄청난 작업이 될 것이고 빡세기 그지없는 작업이 될 겁니다. 빠지실 분들은 지금 빠지셔도 좋습니다. 다른 프로젝트에 할당해드릴 수도 있고요.

혹시 빠지실 분?”

상혁이 질문했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상혁은 그런 개발자들을 보며 씩 웃었다.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화면을 넘겨 구체적인 마일스톤(개발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사건을 말하는 이정표)이 적혀있는 페이지를 호출했다.

“그럼 지금부터 PTW의 개발 1,2,3팀을 모두 투입하여 진행될 Project Hero의 구체적인 팀 구성에 대해 논의해봅시다.”

그것은 PTW가 규모를 확장한 이후 처음으로, 회사 내의 개발자들이 모두 참여한 초거대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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