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진심은 통한다
원래부터 그리 최적화에 좋은 언어가 아닌 java언어를 기반으로 개발된 광산 크래프트는, 그 그래픽에 비해 사양을 많이 타는 게임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OGC에 딱 맞는 게임이 광산 크래프트라도 믿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사양 때문에 눈물을 포기하고 도입을 포기했던 상혁은, 민준이 만든 STC의 성능을 보자마자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거 광산 크래프트 넣고 돌리면 최적화 된 광산 크래프트가 나오지 않을까?’
거의 기계어 레벨에서 최적화를 수행하는 STC라면, 광산 크래프트의 지랄 맞은 CPU 사용량을 줄이고, 어쩌면 OGC에 탑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혁의 그런 예상은 적중했다.
“어?! 미친?! PC보다 부드럽게 돌아가네?”
원본 소스의 최적화가 너무 개판이었기에, STC에서 지뢰크래프트의 소스 코드를 돌리는 과정은 엄청난 시뮬레이터 자원을 필요로 했다.
한국에 있는 STC센터의 장비는 당시 완성되기 전이라, 상혁은 해당 작업을 위해 유럽에 있는 센터의 작업을 통째로 정지시키고 광산 크래프트의 소스 코드 최적화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말 그대로 ‘억 소리 나게’ 대단한 결과를 낳았다.
OGC의 AI 연산을 무리 없이 처리하면서도, 그 악명높은 ‘광산 크래프트’를 무리 없이 돌리는 8세대 콘솔을 보며, 상혁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정말로 꿈같은 광경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PTW의 모든 개발팀은 비상 체제에 돌입해서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게임 AI가 광산 크래프트를 플레이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데 힘썼다.
“AI 성향마다 선호하는 건축 양식이 있어야 해요. 상황에 따라서 비 선호하는 재료로 완성할 때도 있지만, 나중에 자원이 모이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형태로 가꿔갈 수 있게요.”
“이 성격은 수중 저택에 집착하는 게 좋겠네요. 게임 실력 설정에 따라서 어설픈 구조물에서 대단한 구조물로 다양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상혁은 OGC에 적용된 AI들이 자신들의 성격에 맞는 광산 크래프트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AI를 개선하는 한편, 모드 없이 플레이하기엔 조금 심심한 광산 크래프트의 바닐라 모드의 개선에 들어갔다.
그래서 지금, 샌프란시스코 행사장에서 공개된 버전은 상혁이 개조한 ‘광산 크래프트 for PTW.Ver’이었기에, 광산 크래프트를 아는 게임 관련 기자들은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며 무엇이 다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거 일반적인 ‘광산 크래프트’랑은 조금 다르지 않아?”
한눈에 보아도 기존의 광산 크래프트에는 없는 거대 몹을 화면 가운데 두고, 영상 속의 AI캐릭터들은 마치 ‘몬스터 훈타’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PTW가 광산 크래프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화면 속의 플레이어 캐릭터가, AI 캐릭터들과 함께 그 거대한 몬스터를 사냥하기 시작했기에.
“와, 광산 크래프트에 저런 걸 넣었다고!?”
기본적인 파티 사냥 자체는 파티로 거대 몬스터를 사냥하는 몬스터 훈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 안엔 광산 크래프트 특유의 재미가 들어가 있었다.
바로 지형지물의 건설을 이용한 플레이.
미리 플레이어와 AI가 짜둔 작전을 토대로, 무너지는 함정부터 TNT를 이용한 함정.
발판을 밟으면 무너지는 절벽까지 유저가 AI와 재료를 모아 ‘건설’한 수많은 함정으로 몬스터를 유인하여 사냥하는 플레이는, 만들어진 함정의 크기만큼이나 박진감 넘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미리 파둔 거대한 협곡으로 고질라 형태의 몬스터를 유인한 플레이어가 기폭장치를 동작하자, 거대한 폭음과 함께 양쪽 절벽이 무너져 내리며 바위 더미가 몬스터를 덮쳤다.
그러자 한 기자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해치웠나?!”
그리고 마치 약속처럼, 돌무더기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그 안에서 몬스터가 고개를 내밀어 소리쳤다.
-크롸라라라라라!!!!-
“Oh, Shit!”
-꺄아아아악!! 살려줘어어!! 죽여!! 죽이라고!! 내가 이래서 미끼 역할은 하기 싫다고 했잖아아아아!!!-
-으하하하! 역시 안죽었구나! 저래야 재미있지!
와라! 내가 1주일 동안 만든 TNT를 네놈한테 먹여주마!
예술은 폭발이다! 으하하하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AI의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나머지 AI들과 플레이어가 각자의 성격에 맞게 몬스터를 향해 무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상에서 나오던 소리가 조금 줄어들며 화면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하얀색 글자가 화면 위에 떠 오르자 상혁은 마이크를 들어 입을 열었다.
긴장감 넘치는 플레이 영상과 음악을 배경으로, 상혁이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OGC에 탑재된 광산 크래프트의 추가 요소에 관한 것이었다.
“AI와의 협동 플레이가 메인인 OGC의 특성 상, 저희는 광산 크래프트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인 다양한 모드들과 게임 플레이를 전부 지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AI들과 대화를 통해서 다이아 먼저 찾기라던가 술래잡기 게임 같은 바닐라에서 가능한 기본 게임들은 가능하도록 AI를 개선하긴 했지만, 그래도 단순히 곡괭이질 하며 건물만 짓기엔 게임이 가진 가능성이 너무 안타까웠죠.
그래서 저희는 기존의 광산 크래프트에 거대 몬스터를 추가하고 특정한 형태의 지형지물을 만들었을 경우 그것이 함정으로 자동 변환되는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운데가 비어있는 거대한 아치 형태의 건축물을 만들고 양쪽에 TNT를 설치했을 경우, OGC에 탑재된 ‘광산 크래프트’는 그 건축물을 ‘아치형 함정’으로 인식합니다.
거기에 레드 스톤으로 회로를 설치하여 스위치를 달면, 먼 거리에서 몬스터가 지나갈 때 기폭 시켜 낙하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무너지는 함정’이 되죠.
거대한 구덩이를 파고 아래쪽에 강철 가시를 잔뜩 박아넣는다던가, 혹은 발판을 밟는 순간 수천 발의 화살이 동시에 발사되는 함정 등을 AI와 재료를 모아서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설계된 함정을 통해서,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주고 사냥을 하여 건축 재료와 무기 재료를 얻을 수 있죠.
그것이 이번에 OGC안에 들어간 ‘광산 크래프트’에 추가된 핵심 플레이 요소인 ‘레이드 시스템’입니다.”
건축과 사냥의 개념을 절묘하게 조합시켜 만든 플레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넘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기자들이 화면에 나온 수많은 함정을 AI와 함께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상상을 하며 주먹을 쥐고 있었을 정도로.
‘만약 광산 크래프트에 레이드 모드가 들어간다면 이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겠지. PTW가 제대로 만들었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IT전문 기자인 메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화면속에서 ‘게임 플레이’를 진행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음성이, 왠지 귀에 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영어로 말하고 있어서 헷갈리긴 하지만 왠지 목소리가 낯이 익은데? 어디서 들었지?’
그런 그녀의 기시감을 무시한 채, 상혁은 계속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나갔다.
오늘 발표할 수많은 공개 사항 중에, 지금 공개한 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으니까.
“MS에서 ‘광산 크래프트’의 라이선스를 받아오긴 했지만, 게임 가격은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될 겁니다. 여러분은 기존 풀 패키지 게임과 동일한 가격에 광산 크래프트가 추가된 OGC를 플레이하실 수 있겠죠.”
“가격이 그대로라고요? 라이선스 비가 장난이 아닐 텐데요!?”
상혁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기자가 소리치자 상혁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이후에 자신이 하려던 설명도, 그것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물론 일반적으로는 MS에서 2조 5천억이나 주고 인수한 광산 크래프트를 OGC에 탑재하는 데는 엄청난 라이선스비를 지급해야 했겠죠.
하지만 저희는, MS측과 협의를 통해서 OGC에 광산 크래프트를 무료로 탑재하는 대신, PC버전과 나머지 콘솔 버전의 광산 크래프트의 소스 코드를 STC로 최적화한 버전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으로 라이선스비를 대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코드는 이미 MS측에 제공된 상태죠.
아마 조만간 기존의 광산 크래프트 유저들은 완전히 최적화된 새로운 버전의 광산 크래프트를 플레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새 버전의 광산 크래프트에도 PTW가 설계한 레이드 시스템이 탑재됩니까?”
“예. 대신 OGC의 AI는 안 들어가지만, 기존 광산 크래프트 유저분들도 PC 서버에서 친구들과 함정을 만들며 거대 몬스터를 사냥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오오오!!?!!”
MS에서 수백억이 넘어갈 라이선스비를 선뜻 포기한 배경에는, 기존의 광산 크래프트 유저들과 OGC에 탑재될 광산 크래프트 유저들의 풀이 겹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광산 크래프트는 대부분이 유저가 PC 플렛폼에 몰려 있었고, OGC가 모드와 멀티를 지원하지 않는 만큼 PC게이머들은 OGC를 보며 PC버전의 광산 크래프트를 하고 싶어 할 것이란 계산 때문이었다.
그래서 MS는 수백억이 될지 수천억이 될지 모르는 광산 크래프트의 라이선스비를 요구하는 대신, PTW에서 개발한 레이드 모드에 들어가 있는 1500개가 넘는 신규 장비 아이템과 200개가 넘는 트랩 건축물들에 대한 권리를 넘겨받고, 대신 OGC에 자신들이 보유한 ‘광산 크래프트’를 탑재한다는 계약에 동의했다.
기존에 악명 높았던 PC버전 광산 크래프트의 코드를, STC로 최적화시킨 ‘개선된’ 코드를 함께 받는 조건으로.
MS는 그것이 수천억의 라이선스비보다 더 가치 있는 물건이라 믿었다.
무려 2초 5천억짜리 IP가 OGC에 탑재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IP의 제공자인 MS가 라이선스비를 받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
거기에 PTW에서 광산 크래프트의 바닐라 버전에 추가한, 한눈에 보기에도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아지는 재미있는 신규 모드까지.
행사가 시작한 지 20분도 되지 않았지만, PTW의 오프닝으로 시작한 행사는 ‘쇼 케이스의 제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충격적인 소식을 연달아 쏟아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기자들이, 그 짧은 시간에서도 자신들이 작성할 기사의 헤드라인을 수없이 수정하게 할 정도로.
‘도대체 기사 제목을 뭘로 해야하지?’
기자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에 기자들이 생각했던 헤드라인은 ‘PTW의 스컹크 웍스.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다.’였다.
상혁이 처음에 설명했던 STC에 대한 설명이나 그것이 가진 능력은, 그 엄청난 가능성만으로도 기사의 1면을 차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상혁이 그렇게 개선된 프로그램의 성능을 이용하여 OGC에 광산 크래프트를 탑재한다는 발표를 하자, 그들이 생각하던 헤드라인은 바로 수정되었다.
‘공개된 순간부터 콘솔 기대작 1위를 지키고 있던 OGC. 현재도 완벽한 게임이 MS의 광산 크래프트와 만나다!’
그것도 괜찮은 머리기사였지만 상혁은 거기에 덧붙여 PTW에서 개발한 신규 모드가 모든 광산 크래프트 유저들에게 제공될 것이란 발표까지 해 버렸다.
거기에 기존에 발적화로 악명 높았던 광산 크래프트의 성능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개선될 것이란 내용과 함께.
그 중의 어느 것 하나 1면 기삿거리로 손색이 없는 충격적인 정보의 연속이었지만, 문제는 행사는 아직 한참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오늘 행사의 메인은, 역시나 삼정의 이주용이 맡기로 한 신형 모바일 기기의 발표일 테니까.
PTW는 항상 후반에 메인 특종을 배치한다.
그 사실은 기자들이 이 엄청난 소식 뒤에 그것보다 더 대단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 믿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마침내 OGC에 대한 발표를 마치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별거 아닌 소식을 제가 너무 거창하게 떠든 것 아닌가 싶네요. 오늘의 메인은 OGC발표가 아닌데 말이죠. 저도 게이머다 보니 게임 이야기만 하게 되면 흥분하는 성격이라서······.”
‘저게 별거 아닌 소식이라고!?’
상혁이 태연한 목소리로 내뱉는 말을 들은 기자들이 속으로 경악하는 사이, 상혁은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발표는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콘솔 게임 전문 제작사인 PTW와, 세계 최고의 모바일 기기 제작사인 삼정이 손을 잡고 만든 새로운 모바일 기기의 발표가 메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들 예상하시는 대로 삼정의 신형 갤럭틱 폰이 되겠죠. 그러나 지금 여기 모인 기자분들을 보니 대부분이 콘솔 게임 관련 기자분들이네요?”
상혁이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죠. 오늘은 그 와플의 와이폰 6S가 발표되는 날이니까요. 콘솔 게임 판에서 PTW가 가지는 영향력 이상으로, 전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 업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와플의 발표와 같은 날 발표를 잡았으니, IT전문 기자분들이 저희 행사 말고 그쪽으로 가기로 한 것도 이해는 갑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후회하게 되겠죠. 오늘 삼정과 PTW의 신형 모바일 기기 공개를 포기하고, 와플의 행사에 간 것을. 얼마 되지는 않아도 와플 행사 대신 저희 행사에 오신 IT전문 기자분들께 제가 한가지 약속드리겠습니다.”
대놓고 노골적으로 와플에 대해 언급하는 상혁의 발표를 들으며,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기자들을 보며 미소지은 채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오늘 여러분께, 삼정과 PTW는 오직 게이머의 멋진 삶을 위해 만들어진 최고의 휴대폰을 공개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와이폰 6S의 발표 따위는 발아래로 밟아 버릴 정도로 엄청난 것일 거고요. 오늘 발표가 끝나고, 여러분들이 올린 기사는 와플 행사의 기사의 조회수를 아득하게 눌러버릴 것입니다.”
“엄청난 자신감이신데, 대체 뭘 준비하셨길래 그런 자신감을 보이시는 겁니까?”
한 기자가 대표하여 상혁에게 질문하자 상혁이 웃으며 답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해야 할 것 같군요. 이제 PTW의 차례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의 본 무대가 막을 올릴 차례죠. 여러분! 여러분께 올해 최고의 특종을 선물해주실 삼정의 부회장, 이주용 부회장님을 박수로 맞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속에서, 주용이 걸어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주용은, 상혁을 향해 다가와 귓속말로 원망의 말을 전했다.
“너무 띄워놓은 거 아닙니까? 기자들을 실망하게 하면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절대 실망 안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주용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이번에 주용 씨가 발표하실 신형 갤럭틱 폰은, 세상 그 누구도 실망 못 하게 만든 물건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마이크를 건네자, 주용이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건네받았다.
원래부터 무대 체질이 아니었던 그로서는, 이런 자리는 긴장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즐기세요.”
그때,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주용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은, 주용 씨가 세상의 주인입니다. 세상 모든 유저가 당신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당신의 발표에 열광할 겁니다. 이번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삼정이 포기해야 했던 막대한 이윤을 떠올리세요. 오로지 고객을 위해서 선택하신 그 결정을.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입니다.
인생 최고의 휴대폰을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부회장님의 결심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갈지 지켜보시라고요.”
상혁이 가진 특유의 카리스마가 주용의 긴장감을 부드럽게 매만지자, 주용은 미소를 지으며 상혁에게 말할 수 있었다.
“예.”
확신에 찬 눈빛으로.
“믿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설로 남을 그날의 프레젠테이션이, 본격적인 2부의 개막을 알렸다.
“반갑습니다! 삼정의 부회장을 맡은 이주용입니다!”
한참 동안 상혁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주용이 힘차게 외치자, 객석에서 다시 한번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주용은, 침착하게 상혁의 지시대로 수없이 연습한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딱딱한 포즈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그 발표엔 이제까지 삼정의 제품발표와는 다른,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저희가 주요 AP인 엑시노트의 개발팀을 PTW에 넘기면서, 저희는 파운드리 공정의 효율화와 수율 확대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그렇게 ‘생산’에 집중하는 동안, PTW의 괴물 집단 스컹크 웍스에서는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모바일 AP를 개발하겠다는 각오로 칩셋 설계에 집중했죠.
그 덕에 이번 신형 갤럭틱 폰에 들어가는 AP는, 기존에 탑재되었던 스탭 드래곤 칩셋이나 엑시노트보다 무려 2.5배 이상 향상된 성능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공정 단위가 바뀐 것도 아닌데,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수치입니까?”
“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PTW에서 그렇게 만들어주시더군요.”
주용이 말했다.
“스컹크 웍스에서는 기존에 반도체 설계에 쓰이던 프로그램에 STC기술의 일부를 적용했습니다.
그 덕에 사용하는 운영 체제 언어에 따라 가장 많이 요구되는 연산을 바탕으로 AI가 칩의 설계를 완전히 새로 설계했죠.
그것은 기존에 인간이 설계하던 모바일 AP의 설계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말도 안 되는 성능 향상을 저희에게 선물해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주용은 거의 ‘퍼주다시피’ 만든 신형 갤럭틱 폰의 사양에 대해 설명했다.
적어도 그 스펙만 보아도, 이번엔 삼정에서 진짜로 와플을 발라버리려고 각오하고 만들었다는 패기가 느껴지는 수준일 정도로.
하지만 그 내용은 기대가 되는 내용은 분명했지만 앞서 상혁이 진행했던 발표 정도의 임팩트는 없었다.
휴대폰의 성능이 얼마나 개선되었든, 중요한 것은 그 개선된 성능을 활용해서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주용의 발표는 그것이 빠져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점은, 주용이 발표를 하는 사이 백 스크린에서는 상혁이 발표할 때 사용했던 게임화면이 계속 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게임화면은, 플레이어가 빠지면서 몬스터가 미친 듯이 함정을 때려 부수며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기자들은 시선을 돌려 모바일 발표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게임에 대해서라면 나중에 질문할 시간이 있을 테니까.
“좋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스펙이 역대 최고급인 모바일 기기가 될 것 같은데, 와플에서 강조하는 ‘경험’은 보이지가 않네요.
PTW에서 제공한 기술은 단순히 모바일 장비의 스펙을 올리기 위한 기술이 전부였나요? 혹시 전용 게임이라던가 그런 게 있는 건 아니고요?”
질문을 던진 것은, IT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와플의 발표 대신 PTW의 발표를 선택한 IT 전문기자, 메리였다.
그리고 주용은, 그런 그녀의 질문을 받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전 세계에서 오직 갤럭틱 유저들만이 즐길 수 있는 엄청난 경험이 제공됩니다.”
“그게 뭐죠?”
“저, 그게···.”
주용은 대답 대신 자신의 뒤에 있는 백스크린의 게임 화면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지금 타이밍에 ‘그것’이 시작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냥 고정된 타이밍에 전화가 걸리게 해주지···.’
상혁은 조작된 기능이 아니라 원래의 기능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주용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기에 주용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주용의 간절함을 느꼈는지, 순간 주용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이겁니다! 새 기능! 갤럭틱 폰에서만 즐길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
순간 원래 계획된 대사도 까먹은 주용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스피커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 순간, 주용의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있는 대형 스피커를 통해 엄청나게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이주용!-
그 목소리의 주인은.
-너 이 자식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쩌자는 거야!? 파티 죽어 나가는 거 안 보여!??!-
바로 조금 전까지 상혁이 보여주었던 게임 실황에서 플레이어와 함께 거대 몬스터를 사냥하던 AI의 목소리였다.
-지금 당장 접속 안 해!? 너 다음 레이드는 안 끼워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게임 속의 존재임에도 현실에 있는 주용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게임 플레이에 합류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주용은 그런 그녀의 간절한 외침을 간단히 무시하고는, 충격에 빠진 기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셨죠?”
방금 전까지 덜덜 떨고 있던, 자신감 없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진 모습으로.
“이제 갤럭틱 폰 유저들은 OGC의 AI친구들과 문자나 전화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Really? 방금 그거 게임 안에서 나왔던 AI 여자애 목소리 맞지?!
진짜로 AI가 전화 건 거야?! 게임 하다 잠수 탔다고 게이머를 부르려고 전화를 걸었다고?!
OGC의 AI가?!!?”
“미친! 제정신인가?!”
“Holy Shit!!!!!”
“Fuck the hell Yeeeeeeeaaah!!!!”
“X발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상혁이 약속한 대로, 와이폰 6S의 신규 기능 발표를 가볍게 박살 내버리기에 충분한 삼정의 새로운 ‘혁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