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PTW 프레젠테이션
2015년 9월 9일.
세계는 와이폰 6S의 발표에 대한 기대감으로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2010년부터 와플 본사나 예르바 부에나 극장, 플린트 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와플의 신제품 발표회와는 다르게, 이번 6S의 행사는 이벤트 장소가 빌 그라햄 시민 오디토리엄(Bill Graham Civic Auditorium)으로 변경되면서, 이전에 진행하던 이벤트의 2400좌석보다 많이 늘어난 7000명의 이벤트 인원을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엄청난 것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인원수를 늘린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 이용자가 와이폰의 SARI에게 ‘사리야 힌트 좀 줘’라고 물어보면 ‘9월 9일에 엄청난 이벤트가 있다’고 하거나 ‘알고 싶어하는 이용자가 귀엽다’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이벤트에 대한 기대감이 물씬 달아오른 상태였다.
종전보다 참여할 수 있는 기자들의 수를 3배로 늘릴 정도로, 와플의 새 CEO 탐 쿡은 새 제품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와이폰 6 때와는 다르지.”
와이폰 5때 와는 다르게, 와이폰 6는 둥근 마감의 얇은 알루미늄 바디를 사용하면서 초반에 압력으로 하드웨어가 휘어버리는 ‘밴드 게이트’ 논란에 휩싸였다.
5 때보다 더 얇은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더 커지면서, 중앙이 받는 힘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였다.
와플 개발팀은 6S에 이르러 해당 문제를 기존의 통짜 알루미늄에서 항공기에 사용되는 알루미늄으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게다가 6S에 탑재한 A9칩은 기존 칩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아직 활용도는 낮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3D 터치 등의 신기술도 탑재했다.
특히 와이폰 6S에 탑재된 A9칩의 성능에 대한 탐 쿡의 자부심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단순 수치로 봐도 이전 버전보다 70% 이상 성장했고, 그것을 체감할 수 있게 4K 비디오도 처리 가능하지. 우린 언제나 최고의 모바일 폰 개발사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야. 경쟁사는 우리가 제공할 성능의 발끝도 따라오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이번에 삼정과 PTW에서 신형 모바일 기기의 출시를 우리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한다고 하던데요?”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이전에야 잠깐 우려한 적이 있었지만, PTW라는 회사는 어디까지나 게임회사지. 결국, 노력해봐야 게이밍 최적화 폰 정도에 PTW에서 안드로이드 전용 모바일 게임 하나 출시하는 거로 끝날걸? 게다가 전에도 알아보았듯, 그쪽에서 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모바일에 코넥트 기능을 삽입하는 건데, 우리 엔지니어들은 코넥트의 성능을 모바일에 이식하는데 앞으로 3년은 더 걸릴 거라고 보았지. 지금은 둘이 손을 잡은 지 2년이 살짝 넘었을 뿐이야. 그리고 2년은 무언가 엄청난 성과를 내기엔, 한참 부족한 시간이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A9칩이 있어. 그게 모든 상황을 압도하게 해 주겠지.”
이전에 그에게 우려를 주었던 삼정과 PTW의 협업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심지어 둘이 손을 잡고 무언가 수작을 부린다고 해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지금 그의 손에 들려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무기는, 앞으로 1년 가까이 와플에게 왕좌의 자리를 방어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줄 것이다.
탐 쿡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되었군.”
그리고는 직원을 보며 말했다.
“가지. 챔피언의 발표가 무엇인지, 세상에 보여주자고.”
***
-옳은 선택이었을까?-
PTW와 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와플의 본 고장, 샌프란시스코에서 신제품의 발표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PTW는 OGC에 대한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업계에서 경쟁자로 불리는 두 업체가 같은 날 비슷한 장소에서 발표한다는 사실은, 기자들에겐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적어도 한곳의 발표에 참석하려면, 다른 곳의 발표는 포기해야 했기에.
게임을 좋아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PTW가 있는 삼정의 발표회에 참석하고 싶어 했고, 모바일 IT기기쪽에 관심있는 기자들은 와플의 발표회에 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지원자를 모아 기자들의 그룹을 나누어 파견 보내거나 제비뽑기를 통해 각 행사에 갈 사람을 선정했다.
그리고 오늘, 삼정의 신제품 발표회에 기자로 참석한 기자 메리 트렌트는 자신이 선택해서 이쪽을 선택한 기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그녀는 모바일 기기 전문 기자이긴 했지만, PTW의 팬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나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발표회에는, 평소에 그녀가 와플의 발표회마다 보았던 얼굴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행사전에 만나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신제품에 대한 예상 정보를 이야기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녀가 아는 타 언론사 기자들이 행사장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콘솔 게임 업계 기자들만 잔뜩 모여 있었을 뿐.
그녀는 새삼스럽게 PTW가 콘솔 게임 업계의 와플이라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
와플의 신작 발표회에 나가 있는, 자신의 다른 동료에게.
-여보세요?-
-어? 나 메리.“
-오, 거긴 어때?-
-모바일 기자들은 별로 없고 죄다 게임기자들만 있네.-
-게임 기자들인건 어떻게 알아?-
-왠지 그럴 것 같이 생겼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다니.-
-빔이라도 나올 것 같은 거대한 카메라에, 체크무늬 남방, 두꺼운 플라스틱 뿔테 안경을 한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만 12명은 보이는데?-
-아, 그건 왠지 LA의 게임업계 기자들 같은 느낌이긴 하군.-
-그리고 이건 PTW가 참여하는 발표회잖아. 다들 OGC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삼정의 모바일 기기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안하고.-
-네가 선택한 발표회잖아. 난 충분히 경고 했어.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아, 나도 알아. 그래도 PTW인데, 뭔가 있겠지. 그 이상혁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삼정과 공동 발표를 하려고 했을 리가 없잖아.-
-혹시 전에 코넥트 발표 때 윌 게이트가 나왔던 것처럼 엄청난 장면이라도 나오길 기대하는 거야? 그런 일은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고? 게다가 오늘 발표되는 건 모바일 신제품이잖아? 어차피 다 똑같은 내용이겠지. 이전 버전보다 성능이 얼마 올라갔습니다. 카메라 성능이 개선되었습니다 화면이 더 커졌습니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전반적으로 제품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다들 비슷해졌으니까, 아무리 PTW가 참여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특이한 뭔가는 보여주기 힘들겠지.-
-그래도 PTW인데? 코넥트와 MYOM, OGC의 개발사라고? 그들이 참여한 휴대폰이라면, 무언가 엄청난 게 나오지 않을까?-
- 휴대폰이라서 나오는 게 불가능한 거야. 애당초 PTW에서 만드는 물건들은 항상 성능을 무지막지하게 끌어 쓰는 물건들이었으니까. 휴대폰이란 물건은 배터리와 발열 때문에 성능이 제한된다고. 그 안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애당초 8세대 콘솔에서도, 성능이 딸려서 OGC는 그래픽을 희생해야 했었는데? 결국 게이밍 성능이 강화된 폰입니다! 하고 적당한 안드로이드 폰이나 내놓겠지. 그리고 그래 봤자 그건 와플의 신형 와이폰 6S보다 별로 일거고.-
계속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상대를 보며, 메리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메리의 표정을 볼 수 없었던 동료는 그런 메리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녀를 계속 약 올렸다.
-혹시 알아? PTW 발표에서 좋은 게 나와서 게임 기삿거리라도 쓸 수 있을지? 아, 맞다. 우린 IT기기 전문 언론사지?-
-약 올리는 거야?-
-무슨 소리? 와플 발표회를 포기하고 삼정 발표회에 가겠다고 선택한 건 너라고?-
-시끄러. 끊어.-
통화를 종료한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진짜로 PTW와 삼정에서 발표하려는 것이 동료의 말처럼 단순한 게이밍 핸드폰이라면, 그건 그녀에게 최악의 하루를 안겨주게 될 것이었기에.
‘잠시 후면 알게 되겠지.’
그녀는 자신의 배팅을 믿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언제나 충격과 행복을 안겨주었던, PTW의 존재도.
***
“역시, 대리인을 시킬 걸 그랬나?”
긴장된 표정으로 무대 앞의 기자들을 살펴보는 주용이 중얼거리자, 상혁이 주용을 안심시켰다.
“CEO가 발표회에 나오는 것은 자신의 제품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충분히 좋은 제품을 개발했어요. 자신이 회사가 만든 제품을 믿으세요.”
“하지만 와이폰에서 어떤 발표가 나올지 모르지 않습니까? 만약 거기서 엄청난 발표가 나와서 저희가 묻힌다면, 저흰 광대가 되고 말겁니다.”
“그쪽에서 뭘 발표할지는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뭐,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른 내용이 발표될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상대의 움직임을 보면 그런 느낌은 없더군요. 아까 말한 대로 와플에서는 성능이 개선된 신형 A9칩과 4K비디오, 그리고 3D터치 등을 메인 개선사항으로 공개하겠죠. 저희가 이깁니다. 애당초 이번 제품의 이익률을 크게 낮추면서까지 제품에 힘을 실어주셨잖아요.”
“그렇군요. 맞습니다. 정말로 그들이 발표하는 내용이 상혁 씨의 말 그대로라면, 저희가 이기겠죠.”
“그럴 겁니다. 적어도 저희가 공개할 내용은, 게이머라면 미치고 환장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니까.”
그렇게 말한 상혁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용을 보며 말했다.
“그럼 미리 짠 시나리오대로 제가 먼저 시작하죠.”
“모바일 신제품 발표회인데 게임 소개가 먼저 들어가는 건 괜찮을까요?”
“뭐, 와플과 같은 날 발표를 잡은 이상 대부분의 IT기자들은 와플 발표회에 가는 걸 선택했을 겁니다. 그러니 저 수많은 인파는 게임 관련 언론인들이겠죠. 애당초 그럴 거라 예상하고 잡은 행사니까요.”
“그게 좋은 결과로 돌아올까요?”
“돌아올 겁니다. 아마도. 믿음을 가지세요. 그 발표고자 아저씨 윌 게이트도 지금까지 최고의 기억으로 꼽는 게 코넥트 발표회였습니다. 그냥 제 가이드만 그대로 따라오세요. 그럼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드릴 테니까.”
“부탁합니다.”
간절한 주용의 눈빛을 보며, 상혁이 씨익 웃었다.
“맡겨두시죠.”
그리고는 무대를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상혁이다!”
“오프닝은 PTW가 시작하나!?”
“Waaaaaaaaaaaaaaaaah!!!”
“1년 만에 드디어 PTW 가 움직였다!!!”
행사장에 모여 있는 콘솔 게임 관련 기자들이 열렬한 박수와 함께 소리치는 모습을 보며, 메리는 미소를 지었다.
혹시 오늘 삼정의 발표 내용이 별로더라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PTW으 발표는 언제나 자신같은 게이머들을 흥분시키는 빅 이벤트였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경쾌한 걸음으로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와서는 단상에 놓여있는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기자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Welcome to San Francisco!”
“Yeeeeeeeeeeeeah!!!!”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기자 분들과 테크 리뷰어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프닝을 맡은 PTW의 CCO이상혁입니다. 마지막으로 공개 발표를 한 게 2014년 5월 5일이니, 1년이 넘었군요?”
상혁이 말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상혁의 말에 빠져들어갔다.
상혁은 특유의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로 마치 대화를 하는 듯한 PT를 진행하며, 그간의 경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1년간 참 많은 일이 있었죠. 다들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회사 CTO인 민준이 팀 스컹크 웍스를 만들겠다고 전 세계 대기업에서 인재를 스카웃하기도 했고, OGC의 베타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많은 비난도 들었습니다. 2차 NE컨벤션에서 공개한 마지막 게임, OGC의 발매가 늦춰지면서 원망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저는 그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기다리게 만든 만큼, 더 개선된 버전의 게임을 공개하게 되었으니까요. 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1년 반이란 시간 동안, PTW는 정말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상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진짜로, ‘뒤질 만큼’ 열심히 일했죠.”
그리고 그 순간, 상혁의 뒤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서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처음 발을 내딛는 장면이 나타났다.
“1969년 7월 20일 오후 8시 17분 40초. 인류가 스스로를 달에 보내는데 사용한 컴퓨팅 성능은 다 합쳐도 겨우 패미컴 수준의 성능이 전부였습니다. 마리오나 돌릴 수 있는 컴퓨터를 가지고, 그들은 인간을 달로 보냈었죠. 저는 그때 태어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장면을 본 인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우주를 정복한 인류의 미래는 밝아 보였을 겁니다. 게다가 그 이후로 컴퓨팅 성능은 정말이지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으니까요. 그 덕에 저희는 지금 그때보다 몇 천 배는 뛰어난 기기를 손에 들고 돼지를 향해 새를 날리고 있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유명 게임 ‘열받은 참새들’의 화면을 보며,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리자 상혁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퇴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컴퓨터라는 기계가 태어난 이유는 전쟁을 위해서였지만, 태어난 목적과는 다르게 지금은 수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 하기도 하는 주요 오락거리가 되었으니까요. 과거의 엔지니어들이 달을 정복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했다면, 지금의 엔지니어들은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뿐이죠. 그리고 두 목적 모두 숭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PTW에서 만든 팀 스컹크 웍스역시 그러한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상혁은 설명을 이었다.
“원래의 록히드 사에 있었던 전설적인 엔지니어 팀은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한 팀이었지만, 지금 PTW에 있는 스컹크 웍스는 인류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죠. 과거 사람들을 달에 보내기 위해 했던 노력과 동등한 수준의 노력을, 스컹크 웍스는 오로지 인류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더 즐겁고, 더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목적을 가지고 모인 그들은 하나의 프로그램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Standard Template Compiler. 줄여서 STC라고 하는 물건입니다.”
상혁은 STC의 기본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코드를 자동으로 최적화 해주는 프로그램.
안에 소스코드를 넣고 돌리면 그 프로그램이 무엇이든 돌리는 플랫폼의 한계 성능 100%를 활용하게 해주는 프로그램.
그리고 상혁이 보여주는 벤치마크 결과는,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의 먼치킨 같은 능력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보시는 것처럼 STC에 OGC의 소스코드를 넣고 돌린 결과, 기존에 저희가 구현한 OGC의 처리 효율이 30% 이상 증가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거의 기계어 레벨에서 AI가 수천 종류의 최적화 작업을 코드 전체에 적용한 결과죠. 사실 이건 엄청난 겁니다. 원래부터 OGC라는 게임은, 거의 인간이 할 수 있는 극한까지 최적화를 해 놓은 게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상혁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STC는 그런 ‘인간’의 한계를 넘어,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대 수준까지 프로그램의 최적화를 진행합니다. 그 코드들은, 같은 프로그래머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코드들로 가득하지만 어쨌든 최적의 효율을 내는 코드들이었죠. 여기서 저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래 AI의 대사 처리에 엄청난 시스템 자원을 소모하기에 그래픽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OGC라는 게임에, 이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요. 그 남아 있는 여유 자원으로, PTW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러자 화면에 기존에 OGC에 적용되어 있던 3가지 미니 게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것은 8세대 콘솔용 게임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레트로 한 느낌의 저 사양 그래픽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픽의 향상?”
그리고 상혁이 프레젠터의 버튼을 누르자, 베타 버전에서 선보였던 미니 게임들의 그래픽이, 조금 향상된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원본 게임들이 PS1 수준의 그래픽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PS2 수준까지는 쳐줄 수 있을 만한 모습으로.
하지만 상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겨우 저정도 그래픽의 향상으로, 흥분할 게이머는 없을 것이니까.
“물론 그래픽 수준을 올릴 순 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올릴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PS1수준의 그래픽을 PS2수준으로 올렸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라고 발표를 마친다면, 그건 유저들에 대한 배신이겠죠. 저흰 일본에 있는 어디 회사처럼 10년만에 게임에 대각선 이동 넣었다고 자랑하는 그런 회사가 아니니까요.”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대신 저희는 남은 컴퓨팅 성능을 가지고, 원래부터 가장 적용하고 싶었지만, 성능 때문에 넣지 못했던 게임을 OGC 안에 넣기로 했습니다. 베타에 참여한 유저들이 베타 기간 중 수백만 판을 플레이했던 기존의 3 게임 대신, 추가로 한 개의 게임을 더 추가하기로 한 거죠.
하지만 이제는 거의 영혼의 소울메이트가 되어버린 OGC의 AI들과 유저들이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OGC의 4번째 게임은, 안타깝게도 저희가 개발한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희가 개발해서 넣을 수도 있지만, 이미 훌륭하게 만들어진 게임이 있는데 그걸 저희가 베껴서 만드는 것도 유저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희는, 해당 게임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 찾아가 해당 게임을 OGC에 넣을 수 있는 라이선스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행히, 그 게임의 라이선스를 저희와 매우 친한 파트너사에서 가지고 있었기에, 허가를 받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죠.”
그러자 상혁의 뒤에 있는 화면에 모든 이들에게 익숙한 회사의 로고가 떠올랐다.
그것은 게임회사보다는 운영체제 개발사로 더 유명한 회사.
PTW의 오랜 동반자로 알려진 MS의 로고였다.
‘OGC에 들어갈 만한 MS의 게임? 그런게 있었나?’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짓는 기자들을 보며, 상혁이 미소 지었다.
물론, 이 결정으로 인해 게임 판매 수익의 엄청난 부분을 MS에 떼주기로 하긴 했지만, PTW의 직원모두가 한 마음으로 결정한 이 게임이야 말로, OGC에서 플레이하기 최적의 게임인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유저들의 마음도 똑같을 것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상혁은 프레젠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말 그대로 ‘엄청나게 눈에 익은’ 게임의 화면이, 하단에 귀여운 느낌의 Live2D 캐릭터들과 함께 등장했다.
굳이 소개가 필요 없는 게임.
그것을 본 한 기자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뭐야!?! x발?! 저거 ‘광산 크래프트 아냐?!”
“맞다! 저거 광산 크래프트다!”
“저게 OGC에서 돌아간다고?! 최적화가 개판이라 PC에서도 버벅대는 저게?!”
상혁이 발매 직전에 마침내 공개한 OGC의 4번째 게임.
게이머들이 앞으로 수십 년간 AI들과 수없이 플레이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느낌을 주게 될 그 ‘4번째 게임’의 정체는, 작년에 MS가 2조 5천억 주고 인수했던 게임.
자동 생성되는 무한한 대지 속에서, 자원을 채취하고 건물을 짓고 몬스터를 사냥하며 생활할 수 있는 자유도 최강의 오픈 월드 샌드박스 게임이자 Nojang Studios의 단 하나뿐인 월드 클래스 히트작.
‘광산 크래프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