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47화 (248/485)

247. 특이점이 온다

[2014년 9월 17일]

민준이 제시한 Standard Template Compiler(STC)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지도 두 달이 흘렀다.

그리고 우린 어제 처음으로 알파 빌드를 테스트해 볼 수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프로그램이 수정한 코드는 원본 코드보다 처리 속도만 빠르지 멍청하게도 모든 연산을 테이블로 만들어 돌리게 만든 멍청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동작했다.

아마도 인공지능이 테스트 중에 일부 환경에서 그쪽이 빠르다는 것을 익히자, 곱셈을 처음 배운 초등학생처럼 아예 모든 로직에 그 방식을 적용한 것 같았다.

우린 STC에게 어떤 경우에 테이블이 효율적이고, 어떤 경우에 직접 계산이 효율적인지에 대해 학습시켜야 했다.

[2014년 10월 23일]

STC가 그 지긋지긋한 테이블 덩어리를 그만 내뱉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STC는 정확하게 필요한 수준의 테이블만 만들고 나머지를 연산으로 돌리고 있지만, 아직도 버그투성이에 돌아가지 않는 코드들을 내뱉고 있다.

이것을 수정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2014년 11월 22일]

개발팀의 빌 머레이가 닌자가 나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는 STC를 여러 개로 나누어 동시 학습을 시키고, 알고리즘끼리 경쟁하여 가장 좋은 알고리즘만 남기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그것을 ‘그림자 분신술’이라고 불렀다.

우린 그때만 해도 그것을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2014년 11월 23일]

실패다. 같은 프로그램을 두 개로 쪼갠다고 서로 다른 결과물을 내놓을 리가 없지.

이 아이디어를 낸 빌 머레이를 반으로 쪼개버려야겠다.

왜 그때는 그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을까?

[2015년 1월 5일]

해를 넘겼다.

민준은 스컹크 웍스에 일주일이 넘는 신년 휴가를 보장했지만 난 휴일도 반납하고 종일 코드만 만지고 있는 이 미친 프로그래머들이 그의 말대로 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개의 아이디어가 나오고 수십 번의 수정이 이루어지며, 수백 번의 테스트가 시행된다.

오늘은 누군가가 STC에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에 달린 ‘시냅스 모듈’을 달아보자고 제안했고, 우린 그 아이디어에 열광했다.

이제 STC는 사람을 흉내 낸 듯한 코딩을 하기 시작한다.

테스트 과정에서 똑같은 프로그램을 두 개로 나누어, 학습 순서를 변화시키자 두 프로그램은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내놓았다.

우린 렌더링 센터의 연산 능력을 사용하며 수백 수천 개의 복제된 AI를 학습시켜 가장 성능이 좋은 AI를 찾는 과정에 들어갔다.

[2015년 2월 23일]

챔피언이 등장했다.

기존 STC들의 성능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물건이 나왔길래 제작자에게 물었더니 적용한 방식이 무식 그 자체였다.

이전 버전의 STC들은 어디까지나 프로그래밍 언어 수준에서 좀 더 효율적인 코드를 찾도록 개발되어 있었다.

그러나 챔피언을 만든 개발자는, 일부 코드를 좀 더 낮은 수준 단계에서 AI가 접근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

이제 AI는 기계어 수준의 프로그래밍을 처리하여 주어진 코드의 최적화를 수행한다.

특이점이···다가온다···.

[2015년 3월 11일]

STC가 처리할 수 있는 코드가 늘어가면서, 더는 한국에 있는 렌더링 센터의 여유 성능을 활용한 시뮬레이트로 처리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다스베이더, 아니 민준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더니 그는 요상한 웃음을 흘리며 그럼 한국에서 진행 중인 OGC의 베타 테스트를 종료시키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덕분에 우린 기존에 쓰던 성능의 5배가 넘는 컴퓨팅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우리 때문에 OGC의 베타 버전을 플레이 하지 못하는 유저들은 슬퍼하긴 하겠지만, 특이점을 위해서라면 이해해주겠지.

[2015년 4월 3일]

우리가 일하는 동안 윈텔 개발자들이라고 놀고만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들은 STC가 렌더링 센터에서 시뮬레이트를 위해 수행하는 연산들의 데이터 통계를 모니터링하여 STC가 하는 작업에 최적화된 ASIC(에이식, 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 특정 용도용 집적 회로)을 설계했다.

설계 자체는 이전에 끝났는데, TSMC와 파운드리 공정 협상에 시간이 걸렸다고 하며 그들은 7월쯤엔 렌더링 센터의 장비 일부에 그 전용 칩셋이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기존에 그래픽카드와 CPU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설비보다는 성능이 6배쯤 향상될 거라고.

대신 가격이 10배쯤 될 거라고 했지만 뭐 어때.

돈은 우리가 내는 게 아닌걸.

재미있는 건 ASIC 개발팀에서 칩셋 가격에 대해 말했을 때 CCO이상혁이 파랗게 질린 표정을 하면서도 예산을 승인해 주었다는 것이다.

역시 PTW는 이상한 회사다.

[2015년 7월 7일]

ASIC팀에서 새 장비는 기존 렌더링 센터가 아닌 별도의 건물에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새 설비의 이름은 STC 센터가 될 것이라고.

28일부터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는데, 누군가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STC가 코드를 수정하는 프로그램이니, STC에게 STC의 코드를 수정하게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그래서 오픈 이후 첫 시뮬레이터는 그때까지 개발된 STC의 소스코드를 STC에 넣고 돌리는 작업이 되게 되었다.

제안자는 빌 머레이였다.

[2015년 8월 16일]

AI 스스로가 자신을 구성하는 코드를 수정하게 해 보자는 아이디어는 머레이의 멍청한 아이디어는 우리가 STC센터의 연산 설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테스트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STC는 여전히 자신의 코드를 수정한 결과 값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관리팀에 물어보니, 기존 코드의 용량이 계속 불어나면서 거대한 무언가가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고 했다.

설마 STC가 스스로를 스카이넷으로 바꾸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2023년 5월 14일]

인류는 멸망했다.

스카이넷이 되어버린 STC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났다.

우리가 가르쳐 준 여러 가지 최적화 방식 중 가장 빠른 것을 찾는 프로그램이었던 STC는, 지금은 인간도 이해할 수 없는 코드를 뱉어내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연산이 완료되는 순간, STC는 전 세계의 핵 시설을 해킹하여 핵 전쟁을 일으켰고, 인류의 90%가 그날 사망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얼마 전 미군 특수부대가 STC센터를 파괴하기 위해 접근하다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민준이 존 코너였던 것이라는 내 생각이···.

사고가 터진 날, 민준이 어디론가 사라졌을 때 나는 어째서 그를 붙잡지 못한 걸까?

-STC 개발 일지-

-개발자 존 스캇-

“저기요, 존 스캇 씨?”

“예?”

“아니 이거 뒷부분부터는 완전히 소설인데요? 게다가 지금은 2023년이 아니라 2015년 8월이라고요?”

“뒤쪽은 농담으로 집어 넣어봤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살벌한 농담이네요.”

스캇이 올린 보고를 보고 있던 상혁이 웃으며 말하자, 존도 마주 웃었다.

“뭐, 실제로는 그런 일은 없겠죠. 실제로 STC가 자신의 소스코드를 수정하게 하는 실험은 진행 중이지만, 결과물이 나온다고 해도 그건 그냥 개선된 소스코드일 테니까요. 애당초 STC자체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자의식을 가지고 인류를 공격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겁니다.”

“압니다. 만약 그런 프로그램이었다면 민준이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겠죠.”

“아무튼, 중요한 건 제가 농담으로 집어넣은 내용이 아니라, 가장 최근 내용인 8월 16일 자 개발에 관한 내용입니다.”

“STC 센터에서 개선된 STC에 대한 결과 값이 안 나온다는 거요?”

“예. 그래서 설비 증산을 요청하려고 왔습니다만···.”

“작게 업그레이드하려고 찾아오신 건 아니겠네요. 얼마나 늘리시려고요?”

“지금 수준의 두 배요.”

“돈이 두 배로 든다는 이야기겠군요.”

상혁은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말하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ASIC이란 물건은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범용성을 추구하는 기존 설비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을 제공하지만, 반대로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수요가 PTW, 단 한 기업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가격이 올라간다.

반도체라는 것 자체가 라인 하나 세팅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법이니까.

물론 EOD와 RFU가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긴 했지만, 그 비용의 대부분이 스컹크 웍스에 투자되었기에 PTW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금 부족이라는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월급이 밀린다든가 하는 수준은 아니고 운영은 정상적으로 가능하지만, 그 정도 규모의 새 투자를 감행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상혁은 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한 달만 기다려주세요.”

“OGC 발매를 기다리시는 겁니까?”

“예. 그게 발매되고 유통업체에서 정산금이 들어오면 그때 예산을 집행하겠습니다. 아, 물론 발주는 먼저 넣을 거니까 딱히 일정이 지연되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돈이 들어오고 나서 발주를 넣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뇨. 미리 넣어놔야 파운드리 업체에서도 생산 라인을 유지하죠.”

“하지만 OGC가 망하면 그거 다 빚이잖아요? 전 여기까지 왔는데 회사가 어이없게 어음을 못 막아서 무너지는 사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뭐, 그건 경영진에서 처리할 문제죠. 그리고···.”

“그리고?”

“애당초 망할 게임이었으면 출시도 안 했을 겁니다.”

“그건 그래요. OGC가 망할 것 같은 미래는 상상이 안가네요. 베타테스트 종료한다고 했을 때 게시판에 올라온 욕만 봐도 수명이 5배는 늘어나는 기분이었으니까.”

“어차피 종료는 하긴 해야 했어요. 제한된 인원에게 제공하는 거라고는 해도, 계속 게임 내용이 스포일러 되는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OGC의 경우는 스포일러 문제는 없지 않나요? 보통 내용 보고 만족하는 다른 게임과는 다르게 남이 하는거 보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임이잖아요?”

“존 씨도 플레이 해보셨나요?”

“방송도 보고, 플레이도 해 봤습니다. 다스베이더, 아니 민준 씨가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소스코드를 보다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말이죠. 상상 이상이더군요.”

“기술력이요?”

“재미가.”

존이 말했다.

“친구 같은 AI와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건, 게이머한테 꿈같은 일이죠. 게다가 그 친구가 그토록 매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더 그렇고요. 아마 10년을 플레이해도 질리지 않을 겁니다. 좋은 친구는 그런 존재니까요.”

“극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기존 버전은 10년을 붙잡기엔 좀 문제가 있었어요. 안에 들어간 게임이 너무 단순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여러분들이 만들어주신 STC 덕분에 OGC의 성능에 여유가 생겼고, 그 덕에 마지막 게임을 넣을 수 있었으니까. 그건 진짜로 플레이어가 OGC를 10년 이상 해도 질리지 않게 만들어줄 겁니다. 원래는 넣고 싶었지만, 성능 때문에 포기한 게임이었으니까요.”

빙긋 웃으며 상혁은 말을 이었다.

“민준이 8세대 콘솔의 성능을 한계까지 쥐어짜서 만든 게 베타 버전이었는데, STC에 넣고 돌린다고 그게 그렇게 가벼워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요. 덕분에 새 게임을 추가할 수 있었지만.”

“저도 ‘그 게임’을 넣으시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존이 미소지었다.

상혁이 OGC에 집어넣은 ‘마지막 게임’.

그것은 존도 매우 좋아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 세계의 유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베타 버전은 기존에 있던 3개의 게임만 플레이할 수 있었죠? 마지막 게임은 9월 9일에 발표될 예정이고요.”

“그렇죠. 발매일까지 엠바고를 걸어놨으니까요.”

“유저들의 반응이 기대되네요.”

“저는 항상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혹시 예전에 PTW의 쇼케이스는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원래 제품 발표회 같은 데 가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그럼 이번에 같이 가시죠. 제일 앞자리를 준비해놓을 테니.”

“삼정의 이주용 부회장님과 공동 발표 시죠? 그럼 온라인으로 보겠습니다. OGC의 쇼 케이스는 보고 싶지만, 신형 휴대폰 발표회 같은 건 관심이 없어서···.”

“뭐, 그거야 본인 의사에 맡기겠습니다만 아마 후회하시게 될 텐데요?”

“후회요?”

“예.”

“왜죠?”

“그야 이번 갤럭틱 폰의 발표회는, 아마도 와이폰 1세대의 발표 이후로 가장 혁신적인 발표회가 될 테니까요. 지금도 삼정 본사에서 이주용 부회장님이 직접 발표를 위해 열심히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하고 계실 겁니다. 엄청나게 흥분한 표정으로요.”

“그 정도로 대단합니까?”

“그 정도로 대단합니다.”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요.”

***

2015년 9월.

IT 업계는 매우 시끄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콘솔 게임 업계 최고의 기대작인 OGC의 정식 발매일이 9월에 잡혀있기도 했지만, 언제나 2인자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던 그 삼정이 대놓고 와플에게 도전장을 내밀겠다는 포부를 내비쳤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애당초 와플에서 어떤 내용을 발표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쇼케이슬를 진행하다가 새 모바일 기기에 대한 이슈가 완전히 묻혀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신형 모바일 기기의 발표를 진행하기로 한 것은 어찌보면 삼정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었고 어찌보면 무모한 객기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PDA같은 인터넷 폰만 존재하던 시장에 ‘와이폰’을 발표하여 ‘스마트 폰’이라는 개념을 대중화시키고, 서류봉투에서 와이패드를 꺼내 대중을 열광시키며, SARI같은 AI비서의 개념을 세상에 공개한 와플의 혁신 퍼레이드는 삼정이란 기업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압도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반해 지금까지의 삼정은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가장 괜찮은 스펙을 가진 쓸만한 스마트폰을 만드는 제조사로써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삼정이, 신형 모바일 폰을 와이폰 6S와 같은 날 발표한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면서도 반대로 기자들에겐 곤란한 선택을 강요하는 소식이기도 했다.

행사는 두 곳에서 진행되지만 그들의 몸은 하나였기에, 그들은 두 행사 중 어느 행사에 가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삼정의 객기라고 무시하고 와이폰 발표장으로 갔겠지만···.”

문제는 PTW였다.

콘솔계의 와플이라 불리는 게임 업계 혁신의 아이콘.

무려 그 ‘쇼케이스 고자’라 불리는 MS의 윌 게이트에게 인생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 쇼 케이스의 천재.

PTW의 이상혁이 삼정의 이주용과 공동 발표자로 잡혀있는 행사는 기자들이 왠지 모를 압박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 와플의 이번 발표는, 와이폰의 새로운 세대가 발표되는 행사가 아닌 주로 성능 업그레이드 기종인 ‘S’시리즈의 발매행사였다.

기자들로써는 저울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와이폰 7이 발매되는 건 아니니까······. 와이폰 6S 발표보다는 삼정의 신형 모바일 폰 발표가 더 낫지 않을까? 그 PTW도 배경에 있으니 엄청난 내용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결국 기자들은 원래 같았으면 무시했을 삼정의 신형 모바일 기기 발표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

아마도 그쪽이 좀 더 특종이 나올 확률이 높을 것 같다는, 기자 특유의 감 때문에.

덕분에 삼정의 신형 모바일 폰 발표회는, 주용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기자들로 북적이는 현장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이 왔네요.”

대기실에서 수행원들과 복장을 점검하는 주용을 보며 상혁이 말하자, 주용이 긴장된 표정으로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상혁 씨가 와플과 같은 날 발표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저는 반대하고 싶었습니다. 상대는 그 와플이니까요.”

“하지만 와플엔 PTW가 없죠. 어차피 붙어야 할 상대라면, 압도적으로 이기는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계속 밀리는 형국이었지만, 앞으로는 앞에서 끌고 가야 하는 형태가 될 테니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할 겁니다.”

상혁이 말했다.

“이윤보다 고객 경험을 중시하겠다는 마인드만 유지하신다면요. 저쪽에서 이번에 발표할 내용이라고 해봐야, 3D Touch, SARI 활성화, 라이브 포토, 레티나 플래시가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기존 6에서 제공하던 경험에 성능만 조금 향상된 거죠. 내년에야 좀 위협적인 물건을 내놓긴 하겠지만, 올해 와플은 상대해볼만 합니다.”

“저쪽의 발표 내용은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와플에 스파이라도 심어두신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상혁이 윙크하며 말했다.

“제 나름의 정보망이 있죠.”

상혁이 가진 와플에 대한 정보망, 그 정보망의 이름은 ‘회귀’였다.

“부회장님. 준비되었습니다.”

그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담당자가 주용을 부르자, 주용은 상혁을 바라보았다.

보통은 이런 행사에 잘 나서지 않는 자신을, 억지로 밀어붙여 발표자로 나서게 만든 청년.

그 청년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맑은 눈으로 자신을 보며 용기에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자, 가시죠.”

상혁이 말했다.

“와플 부수러.”

그리고 그렇게, 스티브 잽스의 와이 폰 발표 이후로 모바일 업계 최대 혁신이라 평가받게 되는 전설의 프레젠테이션이,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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