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45화 (246/485)

245. 벽을 향한 도전

PTW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직원은 몰라도, 한국인 직원들은 그 삼정의 이주용이 자신들의 CCO를 찾아왔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했다.

사실 상혁이야 이전부터 미팅을 종종 가지곤 했지만, 직원들은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PTW를 찾아온 주용은, 대학교 안에 있는 PTW의 본사를 찾아가기 위해 대학교를 가로지르며,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대학생의 무리를 보아야 했다.

‘역시 삼정에서 보자고 할 걸 그랬나.’

지금까지 매번 상혁을 삼정 본사로 불러서 만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단순히 게임 개발자인 상혁과 다르게 주용 본인이 움직이는 것은 주변의 시선을 너무 많이 끄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상혁이 삼정 본사를 찾아온다는 것은 외부에서 보아도 단순히 협력 관계가 있나 보다 하는 정도의 인상을 주지만, 기업 총수인 자신이 직접 상혁과 만나는 것은 의미가 많이 달라진다.

그러나 주용은 그런 리스크 역시 감수하기로 했다.

어차피 삼정과 PTW는, 이미 한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게 그 유명한 이상혁씨의 커피군요?”

마치 학교 동아리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부실에서, 주용이 상혁이 타준 커피를 받아들며 말했다.

“어? 아세요?”

“파견 간 직원들의 보고에 ‘CCO가 타주는 커피가 매우 맛있다.’라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아니, 엄청 쓸데없는 걸 보고하네요. 그 사람들.”

“제가 그러라고 지시했습니다. 사소한 것도 다 전달해달라고. 그리고 소문대로 맛있네요. 바리스타 수업을 따로 받으셨나요?”

“아뇨. 그냥 그 맛이 나올 때까지 원두 조합과 세팅을 바꿔가면서 무식하게 맞춰낸 겁니다.”

“번거롭지 않아요?”

“이게 제가 커피를 맛있게 탄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니까, 뭔가 기대감 같은 게 생겨서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상혁은 자신도 커피를 한잔 뽑아 주용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럼, 어째서 갑자기 저를 찾아온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늘 단도직입적이시군요.”

“서로 바쁜 사람이니까요.”

“상혁 씨가 바쁜 건 민준 씨가 진행하고 있는 스컹크 웍스 때문입니까?”

주용의 날카로운 질문에 상혁이 씨익 웃었다.

“그것도 역시 보고가 갔군요.”

“이건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온 보고입니다. 민준 씨가 전 세계를 들쑤셔 놓는 중이시더군요.”

“뭐, 그것도 있지만 그건 민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니까요. 그것에 대해서 제가 하는 건 별로 없습니다.”

“그래요?”

“예. 어느 날 갑자기 민준이 저에게 그런 형태의 팀을 구성하고 싶다고 말했고, 저는 동의했을 뿐이죠. 민준이 그걸로 뭘 하려는 지는 저도 모릅니다.”

“듣기로도 쟁쟁한 멤버들만 모아서 구성하는 팀인데, 혹시 영입 예산은 얼마나 잡으셨나요?”

“4천억입니다.”

“4천억을, 목표도 모르는 프로젝트에 쏟아 부었다고요? 모여서 아무것도 못 만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못 만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동의한 거죠.”

“주주들의 반대를 어떻게···. 아, PTW는 주주가 없었죠.”

“유한회사의 장점이죠.”

“주식회사는 주주의 이윤을 위한 결정을 해야 하니까요. 만약에 삼정에서 그런 판단을 내렸다면, 업무상 배임으로 고소당했을 겁니다.”

“뭐 딱히 저희라고 다르진 않습니다. 단지 주주들의 이윤이 목적인 주식회사와는 다르게, PTW의 주주는 게이머들이라는 게 다른 거죠.”

“고객이 주주다?”

“게이머들이 저희 게임을 살 때, 그들은 자신들이 구매한 게임의 가격을 지불했다고도 생각하지만, 차기작의 개발비를 지불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전작이 많이 팔렸는데 후속작이 시원찮게 나오면, 항상 이런 말을 하는 거죠. ‘이 자식들 전작 팔아서 번 돈 다 어디다 썼어!?’라고요.”

상혁이 너스레를 떨자 주용이 씩 웃으며 말했다.

“고객이 주주다. 멋진 마인드네요. PTW가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뭐 권장하고 싶은 경영방침은 아닙니다. 매번 벌고 있는 수준의 금액을 차기작 개발에 쏟아 붓다 보니 회사 운영이 항상 줄타기하는 느낌이라서요. 뭔 사고라도 터지면 수명이 뭉텅이로 깎여나가는 느낌이죠.”

“그럼 그 외줄 타기를 하는 상황에서, 어째서 반도체 설계 전문가들을 비싼 돈 주고 영입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마치 미끼를 무는 물고기처럼, 상혁이 말을 마치자마자 궁금한 것을 묻는 주용에게 상혁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삼정이랑 관계가 있습니까?”

“있죠. 어찌됐건 지금 저희는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관계니까요. 게다가 윈텔에서 데려간 엔지니어 중에 몇 명은 저희 쪽에서 스카우트를 위해 준비하던 인력이었습니다. 나름 피해자이기도 하니 그에 대한 설명 정도는 요구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주용이 딱히 자신에게 따지러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는 상혁은, 삼정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대한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주용에게 말했다.

“아마도 오늘 찾아오신 용건은 그게 목적인 것 같네요. 혹시 파운드리 사업 확장 쪽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자신의 목적을 꿰뚫는 상혁의 말을 들으며 주용이 눈을 빛냈지만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잘 풀리지는 않으실 겁니다.”

“어째서요?”

“파운드리 사업은, 어찌 보면 일종의 하도급이지 않습니까? 설계를 받아서, 대신 생산해주는 거요.”

“그렇죠.”

“그 주문을 하는 ‘고객님들’께서, 경쟁자에게 하청을 맡기는 걸 꺼릴 테니까요.”

상혁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삼정은 모바일 AP인 엑시노트도 만들고 있죠. 그런 기업에 기술 유출이 우려되는 모바일 AP칩셋을 맡기기엔 꺼려질 겁니다. 맡기는 측에서는, 안심하고 설계도를 맡기더라도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없는, 그런 기업에게 일을 맡기고 싶어 할 테니.”

“그 말씀은 파운드리 사업이나 모바일 AP칩셋 개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어느 한쪽을 크게 키우려면 하나에 올인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주용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만약 엑시노트의 개발을 포기한다면, 안드로이드 진영은 퀼컴의 칩셋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지겠죠. 저희는 스마트폰 개발사이기도 합니다. 남에게 목줄을 쥐어줄 순 없습니다.”

“그럼 믿을만한 파트너에게 쥐여주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트너요?”

“엑시노트의 칩셋 개발팀을 저희에게 넘기시죠. 저희가 설계 및 개발을 대신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삼정은, 기존보다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해서 저희 쪽에서 설계한 칩셋을 완성해주는 형태로 일을 진행하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퀼컴이나 와플 같은 AP개발사에서도 파운드리만 하는 삼정 측에 일을 맡기기 쉬워지겠죠.”

원래 주용은 상혁을 만나 PTW에서 모으고 있는 하드웨어 개발팀의 인수를 제안할 생각이었다.

단순히 코넥트 같은 주변기기를 만드는 것과, 반도체 칩의 개발 및 설계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으니까.

실제 제품을 만들어보기 위한 테스트 칩셋을 만드는데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게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이었다.

단순히 반도체에 회로를 새기는 노광 장비 하나도 수천억씩 하는 데다, 그것만 있다고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생산 라인 하나를 만드는 데만 수조원 규모의 비용이 드는 사업을 PTW에서 진행하느니, 차라리 삼정에게 넘기라는 제안을 하는 것이 오늘 만남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반대로 주용에게 삼정에서 AP칩셋 설계에 손을 떼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경쟁사에게 괜한 의심을 사게 만드는, 엑시노트의 개발팀을 PTW에 넘기라고.

그것은 주용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는 제안이었지만, 어찌 보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삼정이 극복해야 할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법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두뇌를 고속으로 회전시킨 주용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상혁에게 말했다.

상혁은 그런 커다란 제안을 던진 직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만약···.”

주용이 말했다.

“만약 그 제안을 받아들여 저희가 삼정의 AP설계 팀을 PTW에 넘긴다면, 인수 비용은 얼마를 지급하시겠습니까?”

“인수비용이요?”

“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공짜로 주셔야죠.”

“예?!”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방금 저의 제안은 순전히 삼정에게 베푸는 호의입니다. 현재 민준이 모으고 있는 스컹크 웍스 멤버들의 실력은, 삼정의 엑시노트 개발팀의 그것을 훨씬 웃돌죠. 저희가 기술을 가져가는 쪽이 아니라 저희가 기술을 가르치는 쪽이 될 겁니다. 그리고 삼정은 이 계약으로 인해 훨씬 많은 파운드리 계약을 따낼 수 있겠죠. 그런데 저희가 돈을 지급해야 합니까? 걱정거리를 덜어드리는 거니 저희가 돈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주용 씨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PTW의 이름은 비쌉니다?”

‘PTW의 이름이 비싸다?’

상혁의 말이 가진 의미를 고민하던 주용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 하하···.”

상혁의 설명을 듣고 있던 주용이 허탈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웃음은, 이윽고 커다란 웃음으로 바뀌어 갔다.

“하하하하! 맞네요! 맞는 말입니다! 저희가 돈을 지급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군요. 무슨 뜻으로 말씀하신 것인지 잘 알겠습니다.”

애당초 상혁은, 엑시노트의 개발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지 설계에서 테스트까지 이어질 수 있는 그 개발 라인이 필요했을 뿐.

그래서 상혁이 제안한 것은 PTW에서 그 테스트 라인을 빌려 쓰는 대신, 삼정에서 가지고 있는 엑시노트 개발팀의 명의를 PTW 소속으로 옮겨주겠다는 제의였다.

그렇게 됨으로써, 적어도 새로 개발될 모바일 AP에 대한 경쟁사들의 견제는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진짜로 팀을 넘기라는 제의는 아니었군요.”

“달라면, 주셨겠습니까?”

“안 줬겠죠. 거기까지 읽고 계셨군요?”

“그런 거죠. 저희한테 넘기시면, 저희가 잘 키워서 대신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언젠가 받아갈 수 있겠죠?”

“원하시는 타이밍에 돌려드리죠.”

“좋은 제안이네요. 좋습니다. 진짜로 삼정에서 돈을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삼정의 설계팀은, 굴리는데도 돈이 많이 들 테니까요.”

“뭐, 그 정도 굴릴 여유는 있을 겁니다. 그냥 테스트 라인 만들 비용을 아끼는 셈 치죠. 그리고 실제 운영비가 삼정에서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 그것도 좋게는 풀리지 않겠죠. 어차피 손을 놓으시려면, 믿고 놓으세요. 나머지는 알아서 잘 해드릴 테니.”

그 자리에, 이전에 삼정의 본사에 찾아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던 젊은 청년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삼정이란 거대 기업의 이름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것을 챙길 수 있는 노련한 사업가만이 남았을 뿐.

그러나 주용은, 오히려 이제야 상혁이 진정으로 사업을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파트너로 성장한 기분을 느꼈다.

이 젊은 회사와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기분과 함께.

주용은 손을 내밀었다.

“이제부터 삼정 산하의 엑시노트 개발팀과 그 설계 라인은 PTW 소속입니다.”

“잘 받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로, 삼정에서는 비 메모리 사업부에서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하여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하겠습니다.”

그것은 회귀 전의 역사보다 3년이 빠른 결정이었지만, 상혁은 괜찮을 것이라 믿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PTW라는 파트너가 붙어있을 테니까.

“행운을 빌겠습니다.”

상혁이 주용이 내미는 손을 잡으며 미소 짓자, 주용도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날, 삼정에서 언론에 뿌린 보도자료는 다음 날 아침 신문 1면을 모조리 도배하며 업계 관계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삼정 이주용. 모바일 AP 칩셋 ‘엑시노트’ 개발 포기 선언. 이후엔 파운드리 사업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혀.]

그것은 그 전까지 파운드리 사업의 일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TSMC에겐, 매우 커다란 위협이 될 결정이었다.

***

-···그렇게 해서 이제 우리 스컹크 웍스는 삼정의 반도체 개발 설비를 그대로 받아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

지난 번 민준이 상혁과 통화 했을 때, 민준은 존 스캇을 위해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며 영어로 말을 걸었었고, 상혁은 민준이 영어로 이야기하기에 영어로 답해주었었다.

그리고 오늘은 상혁이 민준에게 영어로 전화를 걸었고, 상혁의 의도를 알아차린 민준은 전화를 스피커 폰으로 돌린 후 존이 들을 수 있게 해 준 뒤 영어로 상혁과 통화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존을 흥분시키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극적인 이야기네요! 무슨 비즈니스 드라마를 보는 기분입니다!-

-뭐,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스컹크 웍스만 합류하면 바로 ‘아무거나’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뭘 만들려는 지는 몰라도요.-

-흐흐···. 저는 살짝 알고 있지만,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엄청난 물건이라는 것 외에는.-

-아니, 민준아. 나한텐 말 안 해주고 존 씨한텐 말해줬어?-

-너도 같은 호텔 방에서 한 달 내내 시달려봐라. 말 안 해주게 생겼나.-

-그럼 나한테 전화로 먼저 말해주고 존 씨한텐 그다음에 말해줬어야지!-

상혁이 투덜대자 민준이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야, 너도 주용 씨랑 일 멋대로 진행할 때 나랑 상의 없이 진행했잖아. 그걸로 쌤쌤치자. 어차피 한국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텐데, 조바심 갖지 마라.-

-흐음···. 뭐, 그래. 그거 말고도 신경 쓸 일은 많으니까.-

-아무튼, 이번 일은 아주 잘됐네. 안 그래도 예전에 AI칩셋 개발할 때 테스트 설비 없어서 고생했었는데.-

-그렇지. 설계랑 생산은 또 다른 개념이니까.-

-덕분에 일 진행은 좀 더 쉬워지겠어.-

-무슨 일?-

-엑시노트 개발팀이 우리 소속이면 굳이 AP개발을 바닥부터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거지. 스컹크 웍스의 반도체 설계팀을 돌려서 우선은 차세대 갤럭틱 폰에 들어갈 모바일 AP부터 완성하자고.-

-프로그래머들은 뭐 하라고?-

-그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알려줄게.-

-젠장. 알았어.-

-그리고, 좀 다른 문제인데, 그럼 이제 삼정은 모바일 AP 개발을 완전히 포기한거잖아?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그럼 엑시노트 이름도 쓸 수 없는 거 아냐?-

-그렇겠지. 이제부터 삼정에서 쓸 모바일 AP는 PTW의 이름을 달고 나오게 될 테니까.-

-그럼 새 AP의 이름은 뭘로 할거야?-

-그건···.-

잠시 뜸을 들이던 상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민준에게 말했다.

-한국 오면 알려줄게.-

-젠장. 알았다. 한국에서 보자.-

-폴란드 일은 잘 끝났어?-

-어. 네 말대로, CDPR도 좋은 상황은 아니더라고.-

-그렇지. 안 그래도 힘든 개발자들한테 CEO가 채식주의자라고 풀떼기만 먹으라고 강요하는 회사가 정상일 리가 없지.-

-그래도 지금 윗챠3가 출시 전이라 영입은 실패했어. 다들 결과는 보고 싶어 하더라고.-

-괜찮아. 그 이후에 회사 규모가 커지고, 회사 분위기가 바뀌면, 지금 넣어둔 제안은 반드시 가슴속에 비수가 되어서 돌아올 테니까. 나중에 퇴사할까 생각이 났을 때 한국의 PTW라는 회사에서 받았던 입사 제안이 떠오르게 하기만 하면 돼.-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아무튼, 이제 유럽에서의 일정은 대충 마무리되었고, 이제 돌아갈 거야.-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어.-

-그럼 한국에서 보자고.-

-그래. 한국에서 보자.-

그렇게 통화가 종료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존이 민준에게 물었다.

아마도 다음 목적지는 민준이 전화로 이야기한 것처럼 일본이 될 것 같아서.

“민준 씨, 이제 돌아가는 겁니까?”

“예.”

“그럼 드디어 ‘그것’을 만들게 되겠군요.”

“그렇죠.”

“개념은 재미있다는 개념이긴 한데, 과연 그걸 만들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을 겁니다.”

민준이 웃으며 말했다.

“애당초 그럴 수 있는 사람들만 모은 거니까.”

존은 자신이 무려 한 달 내내 민준을 졸라 민준에게 받아낸 종잇조각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함께 식사하는 도중에, 존의 등쌀에 견디지 못한 민준이 식당의 냅킨에 적어준 메모.

민준이 넘겨준 메모엔 단 3줄의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성능의 벽(Wall of performance)>

<데이터의 벽(Wall of data)>

<개발의 벽(Wall of development)>

그것은 민준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스컹크 웍스를 데리고 넘으려 하는 ‘3개의 벽’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후 부연 설명을 들은 존 조차,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기술의 벽’에 대한 내용들.

민준이 하려는 것은 말 그대로 ‘이론적으로 가능할지’도 의문인 문제들에 대한 도전이었다.

처음 민준에게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존은 민준의 계획에 반대했다.

“그게 가능한 거였다면! 누군가가 이미 했겠죠!”

그리고 민준은, 자신에게 반박하는 존에게 이렇게 답했었다.

“그 누군가에겐 스컹크 웍스 같은 팀이 없었잖아요? 인간은 능력자만 모아놓으면 무려 70년대에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는 생물입니다. 그것도 지금 휴대폰 성능에도 못 미치는 컴퓨터를 가지고 말이죠. 적어도 지금 모은 멤버들은 프로그래밍적인 부분에서는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는 멤버들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가다가 다 뒤질지도?”

“그럼 한 가지는 배울 수 있게 되겠죠.”

“뭘 배울 수 있죠?”

“아, 멤버가 더 필요하겠구나.”

애당초 ‘불가능’이란 개념 자체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민준의 황당한 대답에, 존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을 웃은 존은 민준을 보며 말했다.

“젠장, 더럽게 마음에 드네요! 맞아요. 저희가 배울 수 있는 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지금의’ 능력으로는 못 한다는 것뿐이겠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존은 생각했다.

‘뭐, 그게 뚫을 수 있는 벽인지 아닌지는, 해 봐야 알겠지.’

비록 민준이 하려는 것이 수많은 개발자를 좌절시켰던 문제라 하더라도, 민준의 말대로 적어도 지금까진 그 누구도 ‘스컹크 웍스’같은 팀을 꾸려 도전해 본 적은 없는 문제였으니까.

결국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문제인 것이다.

그것이 인류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한계’인지, 아니면 단순히 재능과 예산, 시간의 문제인지.

그리고 그 시각, 존에게 그것을 확인하게 해줄 한국행 비행기는 서서히 민준과 존이 있는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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