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그러니까, 네가 제안을 하고 나서 존 스캇 씨가 갑자기 구골 부사장인 제프리 딘 씨를 영입하겠다고 떠났다는 거지? 그것 때문에 구글 쪽 인재들은 전부 영입 불가상태가 된 거고?-
런던을 거쳐 미국으로, 그리고 다시 독일을 거쳐 폴란드로 이동한 민준은 그동안의 성과에 대한 정보 공유를 위해 상혁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물론 국제전화가 아니라 워크패스트를 이용한 화상 통화로.
그리고 상혁은 민준이 지금까지 겪은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배꼽을 잡고 웃는 중이었다.
-푸하하하핫! 야, 그럼 말렸어야지 그걸 그냥 내버려 뒀냐? 세상에 구골 부사장을 스카우트하겠다는 미친 인간을 가만 내버려 두는 사람이 어딨어?-
-난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아니 아무리 믿는 구석이라도 그렇지, 뭐 협박용 비디오 테이프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에야 누가 구골 부사장 자리를 마다하고 일개 게임 회사의 프로그래밍 팀원으로 합류하겠냐고. 그 존 스캇이라는 분 이름이 워낙 유명해서 엄청난 분일 줄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분이시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존이 상혁의 말에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시무시한 사람이라 죄송하네요.-
-헉?! 이거 스피커 폰입니까?-
-예. 민준이 PTW의 CCO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옆에서 들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민준이 들려준 이야기가 워낙 스펙타클하고 놀라워서 말이죠. 하지만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폭주 기관차 같은 면모가, 저희 앞에 있는 모든 벽을 다 부숴줄 것 같아서 기대되네요. 솔직히 말하면, 민준이도 대단한 프로그래머지만 존 씨까지 합류하겠다고 하시니 와룡과 봉추를 얻은 유비의 마음이 이해가 갈 지경입니다.-
-와룡? 봉추?-
의아해하는 존에게 민준은 삼국지에 나오는 와룡과 봉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러자 스캇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스피커폰을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앞으로 저를 그 복추인가 뭔가라고 부르도록 하시죠.-
-복추가 아니라 봉추입니다. 발음이 달라요. 발음이.-
-그냥 존 스캇 씨라고 불러. 이미 그 이름 자체가 프로그래밍 업계에서는 방통보다 유명한데 굳이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붙일 필요가 어디 있어?-
-그건 그렇네. 프로그래머 계의 척 노리스. 스택 오버플로우의 괴수. 불변(immutable). 0으로 나눌 수 있는 남자. null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사나이. 전설의 슈퍼 프로그래머. 회사의 CCO로써, 저 이상혁은 존 스킷 씨의 PTW 입사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민준 씨가 설명한 그대로의 성격을 가진 분이시네요.-
-민준이가요? 저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말발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악마라고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상혁이 웃다가 사레가 들러 기침하는 소리를 듣던 민준은 상혁이 진정되자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이 스컹크 웍스의 진행 상황을 궁금해하는 만큼, 자신 역시 PTW가 돌아가는 부분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에.
-회사는 요즘 어때?-
-뭐, 늘 같지. 직원들은 즐겁게 게임하고 있고, RFU는 미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고, EOD도 잘 팔리고 있고.-
-스컹크 웍스 멤버들은?-
그러자 민준의 질문을 들은 상혁이, 씨익 웃으며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 먼저 합류한 멤버들?-
-어.-
-아주 재미있게 굴러가고 있지.-
***
상혁과 민준이 회귀하여 PTW라는 회사를 천하대에 자리 잡게 한 이후로, 회귀 전과 비교해서 가장 많이 변한 점은 단지 ‘국내’의 명문대 였던 천하대의 랭크가 ‘글로벌’명문대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상혁은 여전히 천하대 이공 계열 학과에 아낌없이 연구비를 퍼붓고 있었고, 그 덕에 현재의 천하대는 연구 성과나 종류와 관계없이 편한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이미지가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대학교 같으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비인기 학과라는 이유로 연구비 지원이 끊기거나 교수 자리가 날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천하대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쇠똥구리를 연구하겠다고 아마존만 12번을 왕복해도 연구비 지원이 나왔고, 예산이 너무 많이 필요한 데 비해 얻어내는 성과가 불명확한 분야에도 연구비 지원이 나왔다.
게다가 현존하는 어떤 대학교의 슈퍼컴퓨터 성능도 발라버리는 ‘대단지’ 규모의 렌더링 센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연산도 요청만 하면 사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의 천하대는 전 세계의 교수들에게 ‘가장 연구 활동하기 좋은 대학교’로 손꼽히는 중이었다.
물론 이공계만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혁은 세계사나 국사, 고고학과 자연 생태 연구 등에도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었고 그 대가로는 단 하나만을 요구했다.
PTW가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지식이 필요한 문제가 발생하면 도움을 주는 것.
단지 조언을 받기 위해서 지출하는 비용치고는 지나치게 거대한 지출이라 할 수 있었지만, 상혁은 이렇게 구축한 대학 네트워크가 반드시 PTW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코넥트나 MYOM, TAW는 실제 게임 개발 과정에서 대학 교수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물건이었고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완성될 수 없는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님, 지난번 임상 실험 결과에 대해서 말인데요?”
현재 VR장비 개발을 위해 SANY의 알파 카메라 개발팀에서 PTW로 파견되어 온 스즈키 지로가 천하대 안과 교수인 김영철에게 물었다.
현재 그들은 상혁이 고안한 VR 장비를 장시간 사용했을 경우 안구에 주는 부담을 줄이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고, 그간의 성과에 힘입어 원래 2시간 이상 연속 사용 시 시신경에 손상이 가던 기존 장비를 12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아, 그거요? 일단 동물 실험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역시 광학기술의 SANY다운 기술력이네요.”
“교수님께서 워낙 가이드를 잘 해주시니까 신호 강도 조절이 편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반드시 완성해야죠. 멋진 기술이니까.”
시신경이 인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을 쏴서 망막에 직접 상을 맺는다는 개념은 적용 자체는 그럭저럭 쉬운 기술이라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외부 신호의 차단이었다.
오픈된 환경에서 외부의 빛을 차단할 정도로 강한 광선을 쏘게 되면 시신경이 손상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그런 종류의 화상을 고정된 위치에 계속 쏘이게 되면 망막 세포에 ‘번인(Burn-in)’현상이 벌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하대 교수진과 SANY의 기술진이 최선을 다해 협력하는 중이었고.
그때,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김영철 교수가 스즈키에게 물었다.
최근에 연구실에서 자주 보이기 시작한, ‘뉴 페이스’들에 대해서.
“그러고 보니 새로 인력이 대규모로 들어오기 시작했던데, 혹시 SANY쪽 개발자들인가요?”
“아닙니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저희 쪽 분들이 아니시네요.”
“대단한 사람들인가요?”
“대단이요? 그런 말로 표현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꼬셔온 것인지는 몰라도, 다들 업계에서 한 가닥 하시는 분들이니까요.”
“그래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전 광학 장비 전문가니까요. 단지 VR 장비에서 연산처리 파트를 담당하는 친구가, 새로 온 사람을 보고는 거의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은 것만 기억하고 있죠.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네 쪽 업계에서는 전설급 개발자라고 하더군요.”
“어라?”
“왜 그러시죠?”
“그 ‘전설급’개발자라는 표현, 다른 사람한테도 들은 적이 있어서요.”
“누구한테요?”
“삼정에서 파견 나온 반도체 설계 전문가요.”
그런 영철의 말은, 스즈키에게 의문을 품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PTW는 왜 지금 타이밍에 어째서 반도체 설계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지?’
런던에서 존 스캇을 픽업한 민준이 미국에서 인재 영입을 위해 접촉한 회사는 총 3곳이었다.
존 스캇 덕분에 나머지 인력의 영입에 실패한 구골과 자신과 안면이 있던 MS, 그리고 윈텔.
그리고 윈텔에서 민준이 영입한 개발자는 일종의 특수한 ‘프로그래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지금이 바로 윈텔의 개발자들을 영입할 적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브라이언 크자르니크.
2013년 전임 CEO였던 폴 오델루니의 뒤를 이어 윈텔의 CEO에 오른 그는 이후 이어지는 윈텔의 암흑기를 연 인물이었다.
‘극도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타입이 CEO였던 그는 이미 경쟁사인 AMD와의 싸움에서 윈텔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영원히, AMD가 윈텔을 따라올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그는 그전까지 ‘무어의 법칙(윈텔의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반도체 칩의 트랜지스터 집적도는 약 2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라고 주장한 이론)을 지키기 위해 R&D에 윈텔이 쏟아붓던 비용을 대폭 축소하고,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설계 팀을 축소했다.
그리고는 미래 먹거리를 위해 웨어러블 기기나 인공지능 반도체, 범용 사물 인터넷 분야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방향성을 180도 변경하는 CEO의 결정은 회사 내부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바꾸는 원인이 되는 법이다.
민준은 그 빈틈을 정확하게 찔러 들어갔고.
“연봉은 기존에 받으시던 연봉의 두 배, 그리고 저희가 요구하는 마일 스톤 달성 시마다 인센티브를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이 개발하는 핵심 기술의 이름에 당신의 이름이 들어갈 것이며, 당신이 개발하는 부품의 이름에도 당신의 이름을 넣겠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퇴직금 외에 별도의 연금을 지급해드릴 것이며, 당신과 동등한 능력을 지닌 후임을 육성해주시면 그것에 대한 대가도 지급해드릴 겁니다. 당신이 일하는데 필요한 어떤 장비도 지원될 것이며 누구도 당신이 일하는 데 방해를 하지 않을 겁니다. 필요하다면 당신을 위한 팀을 하나 새로 꾸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인다.
“PTW라는 회사에서, 마스터라는 직함은 단순히 회사의 상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정점을 찍은 사람에게 존경심을 담아 부르는 명칭이죠. 당신은 마스터급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분이시고, 저희 PTW는 인재에 돈을 아끼는 회사가 아닙니다.”
안 그래도 회사 내부에서의 분위기가 변하면서, 개발자들에 대한 대우가 박해지는 상황에 민준의 제안은 파격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고, 그 덕에 윈텔의 핵심 개발 인력 중의 상당수를 빼내 올 수 있었다.
이후에 이어질 팀 스컹크 웍스의 작업에서, 자신이 만들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ASIC(에이식, 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 특정 용도용 집적 회로)을 설계해 줄 전문 인력들을.
민준이 생각하는 스컹크 웍스는, 단순히 프로그램만을 만드는 프로그래머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민준의 목적에 따라 합류한 스컹크 웍스의 멤버들은, 회사에 오자마자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차피 민준이 팀 구성을 완전히 마치고 복귀하기 전까지는, 딱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그런 행보는, 평화롭게 잘 굴러가던 PTW의 개발팀을 뒤집어놓는 새로운 폭풍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민준이 영입한 멤버들의 행동이 그들의 출신에 따라 두 가지로 갈려있다는 것이었다.
먼저 민준이 영입한 월드클래스 프로그래머들은 역시나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소스 코드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회사에 오자마자 코드부터 살펴보기 시작하더니, 자기들끼리 연일 그것에 관해 토론하고 있을 정도로.
“발상은 심플한데 그 심플함을 구현하기 위해 들어간 알고리즘이 말할 수 없이 복잡하네.”
“진짜 외계인인가?”
“자네라면 비슷한 물건을 만든다고 할 때 이런 식으로 짜겠어?”
“아니, 구현은 할 수 있겠지만 이정도로 효율적으로 만들지는 못하겠지.”
“그래도 구멍이 없는 건 아냐. 극히 일부분이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도 보이긴 했고. 어디까지나 유사 AI를 만들려고 만들어진 소스 코드니 만큼, 진짜로 사람 같은 AI를 만든다고 하면 이 코드는 쓸 수 없겠지.”
“소문대로 민준이 존 코너인 걸까?”
한명이 입을 열자 나머지 멤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소스 코드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민준이 스카이넷을 만든 존 코너이고, 월드 클래스 프로그래머를 모아서 세계를 지배할 강 인공지능을 만들려 한다는 소문.
아마 다른 사람이 그런 농담의 주인공이라면 웃어넘겼겠지만, 그들이 본 민준은 진짜로 그런 시도를 할 것 같은 인물이었기에 그들은 민준의 의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하드웨어 쪽 전문가들은 매일같이 경탄을 금치 못하는 프로그래머 집단들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오파츠 개발팀‘으로 소문난 PTW의 하드웨어 개발팀을 사정없이 갈구고 있었다.
물론 PTW의 전문가들 역시 업무 능력에서 절대 밀리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민준이 영입한 ‘월드 클래스’ 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주 공격 대상은, PTW에서 설계하여 현재 8세대 콘솔에 들어가 있는 AI칩셋의 설계에 대한 것이었다.
“아니, 이런 물건을 만들어놓고 이름을 AI칩셋이라고 지었다고? 얘네들 양심은 어디 둔 거야?”
“뭐, AI연산에 도움이 되긴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 거 아닐까?”
“하지만 난 참을 수 없다고. 이거, 설계만 고쳐도 성능이 50%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8세대 콘솔에 들어간 AI칩셋은 그 칩셋 자체가 AI의 연산을 수행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단순히 엄청나게 많은 대사량을 적은 메모리로 처리하기 위하여, 현재 대화의 흐름에 따라 미리 관련된 대사 DB를 ‘예측하여’ 메모리에 로드하는 기능이 담긴 칩셋이었을 뿐.
그 수많은 대사를 안 그래도 모자란 메모리에 집어넣고 돌릴 수는 없었기에 궁여지책으로 들어간 칩셋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급조해서 만든 물건답게, 그 성능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고.
스컹크 웍스의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그런 ‘불완전함’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었다.
“좋아,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칩 셋 설계나 개선해봅시다.”
“우리가 설계하면, 만드는 건 누가 합니까?”
“모릅니다. 그렇다고 당장 할 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만들면 언젠간 쓰겠죠. 그리고 솔직히 저는 지금 모인 멤버들과 빨리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기분입니다. PTW가 아니라면, 진짜로 이정도 멤버들만 모아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테니까.”
“뭐, 해봅시다. 말 그대로 할 일도 없으니.”
“워밍업으로는 나쁘지 않겠네요.”
PTW의 하드웨어 개발팀이 철야를 감수하며 만들어낸 AI 칩셋.
그것의 개선은 민준이 모은 스컹크 웍스의 멤버들에게는 단순히 ‘워밍업’정도의 물건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
-PTW에서 윈텔 엔지니어들을 데려갔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들어보니 딱 타이밍이라도 맞춘 것처럼, 작년에 교체된 CEO가 R&D투자를 다른 파트로 돌리는 타이밍이었다고 하더군요.-
-운일까? 아니면 정보가 있었나?-
-그거야 알 수 없죠. 다만 다들 고민하고 있던 타이밍에 정확하게 민준씨가 나타나 제안을 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마 작년에 팀 구성을 시도했더라면, 절대 모을 수 없는 멤버들이었겠죠.-
-흠···. 그래서 그 민준은 그 사람들을 모아서 뭘 할 생각이라던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팀 멤버의 총 구성도, 어떤 파트에서 모으고 있는 건지도 불명이니까요. 게임 회사 출신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산업 출신 엔지니어들이었습니다. 대체 이 인원들로 뭘 하려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PTW에 파견 나가 있던 직원의 직접 보고를 전화로 듣고 있던 주용은 입에서 신음을 흘렸다.
이미 SANY와 VR기기의 개발을 진행하고, 삼정과 차세대 모바일 기기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일을 벌리고 있는 PTW의 행보가 불안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것은, 사업을 운영하는 측면에서 좋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반도체라···.’
반도체. 그것도 비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했다는 것은 PTW에서 그것과 관련된 무언가를 개발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주용은, 대한민국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고.
‘양산 설비를 갖추는 데만 몇십조는 우습게 깨지는 산업인데, PTW에 그 정도 역량이 있던가?’
주용은 PTW에서 생산 중인 AI칩셋에 대해 떠올렸다.
현재 PTW에서 설계한 AI칩셋의 생산은 삼정이 35%를, 대만의 TSMC에서 나머지를 맡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나마도 물량이 달려서 공급을 못 하는 상황이었고.
그리고 삼정이 100%를 맡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까지의 삼정은, 파운드리 생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았으니까.
삼정에서 파운드리 산업에 손을 댄 것은 2005년.
사업을 진행하고는 있었지만 2014년의 삼정 파운드리 부서는 삼정전자의 비메모리 사업부 산하에 있는 하위 부서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민준이 기괴한 행보로 주용에게 파운드리 사업부의 규모 확장에 대한 카드를 만지작 거리게 하고 있었고.
‘만약 PTW에서, 민준이 모은 팀이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만든다면, 그것을 TSMC가 만들게 두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주용은 보고하는 직원과의 전화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화에 등록된 상혁의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예. 상혁 씨? 저 삼정의 이주용입니다. 혹시 지금 시간 되십니까?아. 예. 아닙니다. 이번엔 제가 직접 PTW로 가겠습니다. 네. 그럼 잠시 후에 뵙죠.-
상혁과의 통화를 마친 주용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비서에게 차를 대기시키라고 지시했다.
‘어쩌면 수십조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파트너가 PTW라면···.’
주용은 떠올렸다.
언제나 회사의 기둥뿌리를 걸고 도박수만을 반복하는 PTW라는 회사의 행보를.
자신이 알기로 지금도 PTW의 순 이익률은 사업 하나를 진행하기에 턱없이 아슬아슬한 회사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도 그들이 감당하기에 무시무시한 지출이 들었을 것은 확실했다.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딛는 순간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그러나 주용이 본 상혁은 그런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눈을 한 청년이었다.
마치 ‘리스크’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처럼.
그것은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눈빛이었다.
“리스크라.”
엘리베이터에 탄 주용이 중얼거렸다.
“때로는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달려야 할 때도 있는 거지. 위험이 큰 만큼, 얻는 게 클 테니까.”
어쩌면 미친 판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용은 지금까지 미친 판단만 반복하고서도 업계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괴짜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남들이 다 유저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데 돈을 벌고 있는 괴상한 인간을.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주용은 자신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운전수를 향해 말했다.
“천하대로.”
그렇게, 삼정의 시계는 상혁이 기억하고 있는 회귀 전의 흐름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