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42화 (243/485)

242. 뜻밖의 조건

결론만 말하자면, 제프리 딘을 영입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간 존 스캇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게 개발살이 나서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민준을 보면서 욕을 퍼부었다.

“젠장! 망할 자식! 그냥 제안인데 그렇게 면박 줄 필요는 없잖아!”

그러자 민준이 차가운 탄산수를 건네며 그를 위로했다.

“아니, 애당초 멀쩡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기업의 부사장을 스카웃 하겠다는 미친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니었을까요?”

“젠장, 민준 씨. PWT에 돈 더 없어요? 한 500조쯤 부어서 구골을 통째로 사버리죠?”

“줘도 팔지도 않을뿐더러 그 정도 돈은 없습니다.”

“젠장. 그냥 해본 말입니다. 그래도 너무하네요. 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라 생각해서 제안한 건데.”

“제프리 딘 씨 정도면 굳이 저희같이 스컹크 웍스를 구성할 필요가 없죠. 그가 가진 구골 브레인이 이미 그가 가진 스컹크 웍스니까요.”

“마치 제가 실패할 것을 알고 계셨다는 듯한 말투군요?”

“딱히 제가 선구안이 없더라도 존 스캇 씨가 하려는 짓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일이란 사실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좀 말리시지 그랬어요.”

“말려요?”

민준이 웃었다.

“PTW가 개발자가 하고 싶어하는 미친 짓을 말리는 회사라면, 지금의 PTW는 없었을 겁니다.”

“젠장. 그것도 맞는 말이네. 하지만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뭐가요?”

“제가 제프리 딘 부사장에게 PTW의 인재 영입프로젝트에 대해 말하는 바람에, 제 워크 패스트 계정의 구골 사내 그룹 접근 권한이 차단 되었어요. 게다가 만약 인재를 빼가려고 접촉하면 소송까지 걸겠다고 협박받았습니다.”

“뭐, 그럼 리스트에서 구골 출신은 지워야겠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전부 영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제프리 딘에게 뒤지지 않는 천재 프로그래머, 존 스캇 씨가 이제 저희 팀이 된 거니까요. 그거면 됩니다.”

민준의 말을 들은 스캇은,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민준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민준은, 그런 스캇을 보며 품 안에서 리스트를 꺼내 구골 출신 엔지니어들의 이름을 지우고는 스캇에게 말했다.

“그럼 다음은 MS군요.”

“MS는 괜찮겠어요?”

“거긴 제가 부르면 따라올 엔지니어들이 꽤 있습니다. 제가 X-BOX Live의 서비스 초기 구축에 참여했기 때문에, 거기 엔지니어들과는 안면이 좀 있거든요. 그리고 MS같은 경우는 저희가 인력을 좀 빼간다고 해서 저희와 척질 입장도 아니고요.”

“PTW가 갑의 입장이라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만 알아주세요. 오늘 리스트에서 지우신 이름들. 그 인력을 모두 합친 것보다 제가 더 엄청나게 멋지게 일을 해낼 테니까.”

의지로 불타오르는 스캇을 보며, 민준이 미소로 답했다.

“기대할게요.”

그 이후로 민준은 윈텔과 MS, IDEA소프트 등을 돌며 여러 인물들과 접촉했다.

때로는 리스트에서 목록을 지우기도 하고, 때로는 동그라미를 치기도 하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존 스캇은 민준이 인재를 영입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마치 구골에서의 자신의 실수를 만회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렇게 미국에서의 팀원 영입을 대충 마친 민준에게, 스캇은 다음 행선지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민준은, 그런 스캇을 보며 리스트를 넘겨주었다.

“독일?”

“예.”

“독일이면 크라잉 텍이겠군요.”

“그렇죠.”

“거기도 만만한 회사는 아닐텐데요?”

“괜찮습니다. 그거 관련해서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민준은 자신이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상혁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크라잉 텍은 의외로 쉬울지도 몰라. 2014년의 그들은 조금 힘든 상황이니까.”

“그래?”

“스페이스 시티즌이 크라잉 엔진으로 개발되면서, 크라잉텍에서 소송을 걸었는데 그게 좋게 풀리지 않고 있거든. 그리고 그들은 소송비용을 지불 할 여력이 없어서 소송을 질질 끄는 중이지. 회사 인수는 어려울지 몰라도, 인재 빼오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몰라.”

“좋은 정보네.”

상혁이 말했던 대로, 크라잉 텍의 내부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2010년대 들어 ‘크라잉시스3’ 와 ‘라이즈: 로마의 아들네미’등의 AAA급 타이틀이 망하면서, 재정적으로 크게 압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회사가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2013년에 파산 절차를 밟고 있던 THQ에게 ‘홈 프론트’의 지적 재산권을 매입하는 오판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후속작은 개발도 하지 못한 채 2014년에 도로 파는 삽질을 반복하고 있었고.

전반적으로 기술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게임 제작사로서의 역량이 많이 떨어진다는 게 크라잉 텍에 대한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망해가는 게임회사가 그렇듯, 독일에 있는 크라잉 텍의 본사에서는 연일 책임 소재에 대한 비난으로 시끄러운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비난의 대상은 기획을 담당한 인원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우린 최선을 다했어. 게임이 망한 건 게임을 재미없게 설계한 기획팀 탓이지!”

“그럼 출시하기 전에 항의하던가, 지금 와서 결과론적으로 비판하는 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리고 게임은 까 봐야 아는 거야! 만든 게임이 흥할지 아닐지는 신도 모르는 거니까!”

“웃기시네. 이미 게임이 나오기 전부터 흥행이 보장된 회사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런 회사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PTW?”

“젠장, 부정은 못하겠군.”

패키지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에게 있어서, PTW가 가지는 네임벨류는 절대적이었다.

항상 참신한 시도를 반복해서 하면서도, 언제나 기술적으로 완벽한 게임을 내놓는 회사.

게임마다 말도 안 되는 상호작용의 수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완벽한 QA로 버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회사.

그리고 지금은, 아예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의 음성 인식 능력을 갖춘 대화형 AI라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을 게임 업계에 던져 놓은 회사.

그런 PTW의 행보는, 콘솔 패키지 개발자들에게는 일종의 이상향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PTW에서 내놓는 게임의 반만큼이라도 참신한 기획을 해 보라고. 그게 얼마나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든, 우리 프로그래밍 팀에서 완벽하게 구현해 내 보일 테니까. 우리가 기술력이 없는 회사는 아니잖아! 상상하는 건 뭐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그런데 왜 우린 유저들에게 욕만 처먹어야 하는거지?”

“그거야 상도덕을 무시하고 혼자서 유저들의 눈높이를 미친 듯이 올려대는 회사가 있기 때문이지.”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한 개발자가 말하자, 시끄럽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실제로 그가 말한 것처럼, 콘솔 유저들이 게임에 대해 요구하는 눈 높이는 PTW라는 이레귤러의 존재로 인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많은 수의 콘솔 개발자들을 힘들게 하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였다.

“젠장, 그래. 과거는 어쩔 수 없다 치자고. 그럼 앞으로는 어찌할 건데. 지금 스페이스 시티즌 개발사인 ‘CIG(Cloud Imperium Games)’에 걸려있는 소송도 우리한테 불리하게 굴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의 자금 여력은 소송비용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잖아. 이 상황에서 차기작을 진행할 수 있을까?”

프로그래머인 마크 헌트가 갑갑한 듯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동료가 말했다.

“하청이나 해야지. 적어도 포 크라이 시리즈는 UDI에서 개발비라도 내줄 테니까.”

“젠장···. 어쩌다 이렇게···. 독일 최고의 개발사인 우리가···.”

AAA급 게임의 개발비는 무지막지하다.

한두 번의 실패로도 회사의 기둥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그것은 거의 살얼음판이나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등신같이 개발해도 매번 확실하게 게임을 구매해주는, 미친 팬층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PTW 같이 매번 새 게임을 내놓으면서도 메가 히트에 성공하는 회사의 존재는 비정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기에, 직원들은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내심 PTW라는 회사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단지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먼 한국까지 가서 PTW에 입사 지원할 정도의 용기가 없었을 뿐.

그렇기에 크라잉 텍의 개발자들은, 마음속으로 뭔가의 기적이 일어나서 회사의 분위기가 반전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정도가 전부였기에.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고도 계속 같은 말만 나오는 투덜거림을 반복하고 있을 때, 민준은 현주와 존 스캇을 데리고 독일에 있는 푸랑크푸르트 암마인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미리 도착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한 젊은 여성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스타샤 킨스키입니다. 프랑크 푸르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금발 머리에 시원한 인상을 가진 그녀가 인사하자, 존 스캇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존 스캇입니다.”

“아, 민준 씨가 말했던 슈퍼 프로그래머···.”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아직 한참 부족하더군요.”

솔직히 프로그래밍 실력이라면 같은 전설의 프로그래머인 제프리 딘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하던 존 스캇은, 민준을 따라 호텔에서 지내면서 엄청난 쇼크를 받은 상태였다.

그에게 민준이 넘겨준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소스 코드는, 슈퍼 프로그래머인 자신이 보아도 욕이 나올 정도로 미친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 코드는 보면 볼수록 ‘이렇게 코딩했는데 돌아간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하거나, ‘혹시 민준은 외계인이 아닐까?’, 아니면 ‘PTW지하에 외계인을 고문하는 방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도 실력에 있어서만큼은 월드 클래스인 것은 분명하기에, 그는 민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코드의 비효율적인 부분이나 개선사항에 대한 의견을 내기도 하면서, 최근 들어 인생에서 가장 즐겁게 지내는 중이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민준의 답변이, 언제나 그를 놀라게 해 주었기 때문에.

“진짜 괴물은 민준 씨더군요.”

“아, 그렇죠. 우리 회사 프로그래머들도 다들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민준 씨 별명이 ‘다스 베이더’잖아요.”

“민준 씨의 코드가 광선검이고 다른 코더들이 제다이라면 적절한 표현이네요. 민준 씨가 코드만 작성하면 다른 프로그래머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질 테니.”

“잡담은 그 정도로 하고, 나스타샤 양? 여긴 웬일이시죠? OGC 작업 때문에 바쁘시지 않아요?”

민준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프로그래머는 아니었지만, PTW 내부에서는 꽤 유명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나스타샤 킨스키.

그녀는 OGC 컨테스트 파이널에서 독일어 버전을 구현하기 위해 모집했던 최후의 50인 중, PTW에 합류를 결정했던 독일인 스트리머였다.

그리고 그녀는, 민준의 질문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혁 씨가 보냈어요. 독일 쪽에서 활동하려면, 독일어 잘하는 사람이 필요할 거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민준을 위해서 영어로 말하고 있었지만 말하는데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영어를 잘 하시네요.”

“아버지가 영국분이라서요. 어머니가 독일인이니 저는 하프라고 봐야죠. 제 푸른 눈은 어머니가, 제 멋진 금발은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거랍니다?”

“아···.”

그래서 억양에 영국 억양이 섞여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민준은 그녀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통역이 필요해서 현지에서 고용할 참이었는데, 나스타샤 씨가 도와주신다면 좋죠. 오신 김에 프랑크푸르트 안내도 해주시겠어요?”

그러자 그녀는 소매를 걷어 알통을 보이며 밝게 외쳤다.

“맡겨만 주세요!”

***

“크라잉 텍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게임 회사니까 민준씨가 더 잘 알텐데요.”

“독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서요.”

민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독일 게이머의 자랑이죠. 독일은 유럽 제1의 게임 소비국이에요. 8천 4백만에 달하는 인구 중에 3400만이나 되는 국민이 PC나 비디오 게임을 즐기죠. 세계 3대 게임 쇼 중 하나인 게임스컴이 독일에서 열리는 건, 괜히 그런 게 아니니까요. 그런 나라이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자부심도 조금 있어요. 유럽의 게임 강국이랄까. 크라잉 텍은 그런 독일의 게임사 중에서도 기술의 정점에 선 회사죠. 독일 게이머의 자존심이라고 봐도 좋고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조금 우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비록 기술만 좋고 요즘 게임은 좀 별로이긴 하지만···.”

“그렇군요.”

“뭐, 그래서 게임을 좋아하는 독일의 젊은이들은 가고 싶은 회사로 손꼽는 회사이기도 해요. 고국에 있기도 하고, 언어도 통하니까. 사실 저도 크라잉 텍에 입사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기도 했고요.”

“PTW는 마음에 안 드시나요?”

“예?! 설마요!”

그녀가 미소지었다.

“요즘은 매일 꿈같은 시간을 보내는 걸요?”

“그건 다행이네요.”

그때, 민준 일행을 태운 택시가 크라잉 텍 본사 앞에 도착했고, 민준은 택시에서 내려 회사를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멀쩡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그 건물엔 잘나가는 회사 특유의 ‘생기’가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혁이 말한 대로,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나 보네.’

그렇게 생각한 민준은, 근처의 카페에서 미리 연락해둔 크라잉 텍의 직원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바키 다브렉···.’

크라잉 텍의 시니어 엔지니어.

민준이 그를 리스트에 넣은 것은, 프로그래머들이 질문과 답변을 올리는 ‘스택 오버플로우’ 사이트에서 그가 올린 답변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때 그가 질문에 달은 답변은, 보는 것만으로도 프로그래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답변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자신이 달려던 답변보다 좋은 형태의 답변을 달아놓은 그에게 흥미를 느낀 민준은, 그가 올린 문답 리스트를 보고 그의 실력을 가늠했다.

결과는 합격.

정석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상식을 깨는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문제 해결법을 찾아내는 재능이 있는 프로그래머라는 것이 민준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준을 따라온 존 스캇도 동의하는 바였다.

“조금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발상 자체가 자유로운 스타일의 코더니까 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스캇 씨는 효율주의자였죠.”

“그렇죠. 외계인이 짠 것 같은 코드는 저랑 안 맞으니까요.”

“그럼 저랑도 안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민준의 질문에 스캇이 양손을 들어 보였다.

“그럴 리가요.”

그리고는 민준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민준씨 코드는, 외계인이 짠 느낌이라기보다는 바이블(bible) 같은 느낌이죠.”

“좋은 의미인가요?”

“좋은 의미입니다. 곱씹을수록 안에서 뭔가 나오는 그런 느낌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존 스캇은 이번엔 민준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최근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한 민준은, 그런 그의 눈빛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건 상혁이가 진짜 잘하는데.’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민준이 그를 향해 말했다.

“존 스캇 씨의 코드는 코덱스(CODEX) 같아요.”

“좋은 의미입니까?”

“좋은 의미입니다. 마치 법전을 보는 것처럼 따라가야 할 것 같은 규칙성이 느껴지니까요.”

“감사합니다!”

밝게 웃는 존을 보며, 민준이 마주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런 민준의 시야에, 크라잉 텍 본사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사람들? 사람이 아니라?’

민준이 영입을 위해 접촉한 인력은, 바키 다브렉 한 명이었다.

그리고 지금 민준을 향해 다가오는 무리의 가장 앞에, 바로 그가 있었고.

그러나 그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민준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 상황이 민준을 당황하게 하고 있었다.

“크라잉 텍의 시니어 프로그래머, 바키 다브렉입니다.”

대화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바키의 말을 나스타샤가 영어로 번역하고, 영어로 대답하는 민준의 말을 나스타샤가 독일어로 번역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민준은, 가장 먼저 자신에 대해 바키에게 소개함으로써 이 미팅을 시작했다.

“PTW의 리드 프로그래머이자 마스터 엔지니어, 김민준입니다.”

“민준 씨의 이름이야 잘 알죠.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존 스캇입니다. 얼마 전까지 구글의 시니어 프로그래머였죠.”

“헉, 진짜로 ‘그’ 존 스캇입니까?”

전설의 개발자 두 명이 자신의 앞에 있다는 사실은 바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존재는, 바키로 하여금 ‘엄청난 무언가’가 시작되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바키는 민준을 향해 말했다.

이미 이 자리에 오기 전부터, 그의 대답은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민준 씨가 워크패스트로 보내주신 제안은 잘 받았습니다. 저로서는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더군요. 오히려 흥분했습니다. 대체 그 멤버로 무엇을 하시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서요.”

“그 말씀은···.”

“기회만 주신다면, 저도 합류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바키 씨는 마스터 직급으로 제안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직을 결정하시면 한국에 이민을 오셔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그 정도 각오는 했으니까요.”

“그럼 좋습니다. PTW에 합류하시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상혁이 말한 대로, 무너져가는 회사에서 엔지니어를 빼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바키의 이직엔 조건이 있었다.

민준이나 상혁이 생각하던 것보다, 크라잉 텍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조건을 걸고 싶습니다.”

“조건이요?”

민준이 묻자, 바키는 그제야 자신의 뒤에 있는 인원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크라잉 텍에서 핵심 개발을 맡은 프로그래머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민준의 간택을 받지는 못한 인원들이었다.

“민준 씨. 여기 있는 5명은, 정말로 크라잉 텍같은 무너져가는 회사에 있기엔 안타까운 실력자들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입사하는 조건으로 이들도 PTW에서 함께일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게 제가 스컹크 웍스에 합류하는 조건입니다.”

그러자 그의 조건을 들은 민준의 미간이, 눈에 띄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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