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프로젝트 스컹크 웍스
상혁과 새로운 팀의 구성에 대해 논의한 민준은 리스트의 첫 번째 인물인 구골의 엔지니어, 존 스캇을 영입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민준에게 회사의 CEO인 현주를 붙여주었다.
적어도 앞으로 회사의 핵심 개발자로 영입하려는 인물을 설득하려는 것이라면, CEO가 직접 가는 것이 이쪽의 진심을 보여줄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한국의 PTW본사에 남아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출장 나가 있을 때 현주와 민준이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회사에 남아 일을 해야 했기에.
“진짜로, 잠깐만 눈을 돌리면 업무가 무시무시하게 쌓이는군.”
회사에 남은 상혁이 가장 먼저 처리한 일은, 얼마 전 OGC 콘테스트 파이널에서 뽑은 ‘AI 원본’들의 인사에 관한 건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물론 공개 모집을 한 만큼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했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사정이 전부 달랐기에, 일부 인원들은 결정이 나자마자 PTW에서 파견한 직원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와서 일을 시작했지만, 일부 인원들은 고국에 남아서 원격으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
뽑힌 사람 중에는, 아직 한창 학교에 다녀야 할 학생 신분의 여고생이나 이미 해당 국가에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인수인계라던가 일이 마무리를 위해서 아직 팀에 합류하지 않은 인원들이나,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갑작스레 한국으로 불러오기 곤란한 인력을 제외하고, 5개 언어권에서 뽑은 90여 명의 인력은 이미 작업을 시작한 상태였다.
그 모든 직원이 한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거주지를 마련해 주는 것도 PTW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였다.
“말씀하신 대로 부지는 이미 확보했습니다만, 지금 타이밍이 괜찮을지는 의문이군요.”
진행 상황 보고를 위해 상혁을 찾아온 법무팀 직원이 상혁에게 이야기하자, 상혁이 말했다.
“무슨 말이죠?”
“작년만 해도 ‘하우스 푸어’같은 단어가 횡횡하지 않았습니까? 좀 더 시기를 기다려 부지 확보에 들어갔어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2013년은 국내 부동산 시세가 최저점을 찍은 시기이기도 했다.
상혁도 그것을 알기에, 미리 직원들이 입주할 수 있는 회사 근처의 직원 아파트 부지를 확보하라고 법무팀에 지시한 것이었고.
그리고 법무팀은, 미친 듯이 내려간 부동산 가격 덕분에 천하대 근처라는 입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판매를 고려하는 집 주인에게는, 시세보다 더 높은 웃돈까지 제시하면서.
하지만 좀 더 기다렸으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법무팀 직원의 의견에 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제 말을 믿으세요. 2013년이 최 저점이었고, 이제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갈 겁니다.”
“그럴까요?”
“그렇게 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막상 이유를 묻는 직원에게 상혁은 따로 대답할만한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회귀자라서 잘 알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상혁은 그래서 설명을 포기했다.
“그냥, 감입니다.”
“감이라···. 뭐, 상혁 씨의 감이면 그게 맞겠죠. 무엇보다 내놓는 게임마다 히트작을 만드시는 히트작 메이커시니까.”
상혁은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부지 확보량은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네요. 건축 허가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나요?”
“구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중입니다. 사실 이 근처가 천하대 말고는 그렇다 할 만한 사업권이 조성이 안 되어 있는 상태니까요. 안 그래도 지금 여러 자치구에서 서로 IT기업을 자기네 지역구에 유치하려고 하는 마당에, PTW정도 되는 회사에서 지역에 알 박는다고 하는 걸 거절할만한 의원은 없겠죠. 덩달아서 저희의 부지 확보 덕에 지역 지가도 많이 오른 상태라 주민들도 좋아하는 편이었고요. 괜찮은 용적률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나?”
“사실 허가 받을 수 있는 것만 따지면 350%는 넘을 겁니다. 하지만 단지 안에 주거 공간 외의 시설이 워낙 많아서 실제 용적률은 훨씬 낮게 나오겠죠. 한 200% 내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원 때문인가요?”
“그렇죠. 타 브랜드 아파트보다 훨씬 더 넓은 공원 부지를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말씀하신 시설을 제외하면 훨씬 높일 수 있긴 하지만···.”
상혁은 직원 아파트 건축 계획에 유치원, 초, 중, 고 및 병원과 요양원, 상가, 공원 등을 포함한 종합 생활 공간의 추가를 지시했다.
PTW의 직원들이, 게임 개발 이외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덕분에 부지 크기가 엄청나게 늘어나긴 했지만, 상혁은 어차피 땅값이 저점을 찍은 2013~2014년 사이에 회사에서 확보할 수 있는 최대한의 땅을 매입할 생각이었기에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저희는 아파트 지어서 장사하려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편하게 출퇴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겁니다. 함께 건축되는 학교는 천하대 부속 학교로 기획되어 천하대에서 관리를 맡아주실 거고, 저희는 돈만 대면 되죠. 병원도 천하대학병원의 부속 건물이 들어갈 거고요. 관리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래도 아파트 단지에 워터파크는 좀···.”
“직원 복지라고 생각하세요.”
“그래도 아파트 단지 하나를 통째로 건설하겠다는 건 PTW의 직원 수를 고려할 때 그리 현명한 처사는 아니죠. 지금까지 투입된 자금도 장난이 아니지만, 앞으로 더 커질 겁니다.”
“필요한 투자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 투자금은 금세 회수할 수 있어요. 현재 사내 유보금으로도 충분히 처리 가능한 수준이고, OGC가 발매되면 그런 대단지 아파트 몇 개는 쉽게 만들 수 있을 수익이 들어올 테니까요. 그리고 계속 말하지만, 지금 짓는 게 가장 쌉니다.”
“알겠습니다. 구청장과 시장은 좋아 죽는다고 하겠군요. 지역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회사가 학교에 병원에 공원까지 지어준다고 하니까.”
“뭐, 지역 주민들도 좋아하겠죠. 이 건은 이걸로 됐습니다. 계획대로 추진해주세요.”
상혁이 사인을 해서 보고서를 넘기자, 직원이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부실을 나섰다.
상혁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지출이 좀 세긴 하다.”
사실 현재까지의 PTW는, 게임 개발을 위한 투자 외에는 인건비로 나가는 복지를 제외한 부분의 투자를 그리 본격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았다.
회사 본사 건물마저도 천하대의 부속 건물을 통째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 외에 가장 큰 지출이라고 한다면, 전 세계에 있는 렌더링 센터의 운영비용이나 데이터 센터의 건축비.
그리고 최근의 Live2D 인수건 정도가 큰 투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을 위한 아파트 단지를, 그것도 서울의 명문대인 천하대 근처에 만든다는 것은 가볍게 조 단위를 넘어가는 투자를 요구하는 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그것도 필요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활에 고민이 있는 사람은, 창의력을 발휘하기 힘든 법이니까.’
가족 중에 환자가 있던, 부양할 부모가 있던, 아니면 한창 크는 중의 자식이 있던.
어느 쪽이건 회사가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지원해 준다면, 그것은 반드시 더 좋은 게임의 퀄리티로 돌아올 것이라고, 상혁은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요양원이나 유치원, 학교나 공원 등의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까지 감행한 것이니까.
완성될 아파트의 조감도를 떠올리며, 상혁은 작게 미소 지었다.
“좋아, 그럼 다음 안건을 처리해볼까.”
상혁이 처리해야할 밀린 작업은, 아직도 수없이 쌓여 있었다.
***
“정말로 당신이 ‘그 프로그래머’, 김민준입니까?”
놀란 표정으로 자신에게 묻는 존 스캇을 향해,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민준의 곁에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맵시 있는 복장을 한 현주가 앉아 있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콘솔 게임 개발사인 PTW의 두 임원.
그리고 그 중에 한명이, ‘오파츠 공장’이란 별명을 가진 괴물 프로그래머 김민준이란 사실은 존 스캇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개발자···.’
물론 존 스캇 역시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탑재된 RFU를 플레이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8천달러에 달하는 웃돈을 주고 OGC의 베타키 역시 구매해서 플레이 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가 게이머이기 이전에 AI 업계에서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본 커뮤니케이션 엔진이라는 물건의 본질은, 다른 사람들이 극찬하는 부분과는 전혀 다른 부분에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멍청이들아! 이건 수천만 개에 달하는 대사가 대단한 물건이 아니라고!’
단순히 무한정 늘어나는 상황에 맞는 대사를 무식하게 집어넣는 것은, 그런 대사를 쓸 수 있는 능력자를 수없이 고용해서 시간을 들이면 어느 회사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상황’에 대한 행동을 결정하는 ‘사고 방식’에 대해, 현재의 커뮤니케이션 엔진 수준으로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판단이 가능한 AI 엔진은, 적어도 존 스캇이 알고 있는 AI엔진 중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유일했다.
내부에 들어간 소스 코드가 진심으로 궁금해질 정도로, 자신 정도의 프로그래머도 로직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그 물건은 엄청난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애써 흥분을 억누르며 한국이라는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찾아온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자신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물었다.
적어도 게임업계와는 완전히 관련이 없는 자신을 찾아올 정도라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의 청년은, 그런 스캇의 질문에 대해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뭐, 미팅을 요청한 시점에서 이미 알고 계셨겠지만, 뻔하죠. 게임회사에서 프로그래머에게 왜 접근하겠습니까?”
“스카우트 제안입니까?”
“맞습니다.”
존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커피잔을 들었다.
그리고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고는 민준을 보며 말했다.
“조금 전, 제가 나온 건물이 구골의 런던지사 건물이란 건 아시죠?”
“압니다.”
“그럼 제가 구골 직원이라는 것도 잘 아시겠네요?”
“알죠.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아마 스톡옵션도 괜찮은 조건으로 받고 입사하셨을 테니까요.”
“좋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구골은 세계적인 대기업이고, 앞으로도 세계를 지배할 기업이죠. 그리고 전 거기서 꽤 괜찮은 대우를 받고 있고요. 물론 PTW라는 회사가 현재 콘솔 게임이나 AI 업계에서 가장 핫한 회사라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만, 구골같은 초거대 글로벌 기업에 비하면 규모가 좀 작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저흰 단지 게임 회사일 뿐이고, 그나마도 EA같은 회사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회사죠.”
“그럼 제가 어째서 지금의 업계 최상위 티어의 회사에서 PTW라는 회사에 입사해야 하는지, 저를 설득해주실 근거가 있나요? 게다가 제가 입사를 하게 되면 한국에 이민해야 할 텐데, 그것도 저에겐 큰 부담입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타국이니까요.”
그러자 민준은, 자신이 대답하는 대신 현주에게 바톤을 넘겼다.
“선생님?”
그러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주가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기 때문에.
“PTW의 CEO를 맡고있는 이현주라고 합니다.”
“존함은 많이 들어 알고 있습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다우시네요.”
“어머, 고마워요. 호호호.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입사조건에 관한 이야기니 그 부분을 먼저 이야기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생활이나 언어에 대한 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PTW는 글로벌 기업이라 일부 직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이 영어로 소통하고 있고, 생활에 관해서는 직원들의 주거부터 육아까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니까요.”
“주거도요?”
“예. 입사하시는 순간, 일단 회사 근처의 출퇴근이 편한 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회사에서 임대해 드립니다.”
“뭐 그건 해외에서 이민 온 직원이 있는 회사는 많이들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저희는, 순서가 조금 다릅니다.”
“순서라뇨?”
“복지 퍼스트, 이윤 세컨드라는 개념인거죠.”
현주가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는 회사 규모가 작았던 시절부터, 회사의 이윤 대부분을 직원의 인건비와 보너스, 복지에 지출하던 회사입니다. 직원들이 편한 환경에서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 어떤 기업보다 직원들의 복지에 비용을 아끼지 않았죠. 현재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아파트는 회사에서 구매하여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현재는 그것을 넘어서 회사 차원에서 본사 근처에 별도의 아파트 단지를 건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원한다면, 직원이 원하는 지역에 별도의 주거 지원을 해드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희가 존 스캇 씨를 PTW의 마스터급 직원 대우로 영입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건 저희에게 있어서 스캇 씨의 존재가 좀 더 특별하다는 의미가 되죠.”
“PTW의 내부 직급 체계에 대한 이야기는 기사를 통해서 많이 보았습니다. 특이한 구조를 취하고 있더군요.”
“예.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회사에서 마스터 급 직원에 대한 의미는 매우 특별합니다. 단순히 복지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과 회사의 미래를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죠.”
“구체적으로 말해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우선 존 스캇 씨가 원한다는 전제로 이지만, 원하시면 저희는 마스터 급 직원의 영입을 위해 영입 대상이 거주하고 있는 국가에 대해 지사를 설립해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잠깐만요, 지금 지사라고 하셨습니까?”
“예.”
“사람 한 명을 고용하려고 해외에 지사를 설립한다고요?”
“예.”
“그럼 제가 런던에 남아있고 싶다고 하면, 저를 위해 PTW 영국지사가 생기는 겁니까?”
“원하신다면요.”
“직원들은요?”
“회사 운영에 필요한 회계, 법무등의 관리 인력과 작업에 필요한 팀 구성에 대한 자금도 지원해드립니다.”
“일은 원격으로 진행하고요?”
“인터넷이 빨라진 시대니까요.”
직원 한명이 편하게 일하게 하려고, 아예 그 지역에 회사를 차려주겠다는 조건은 확실히 파격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회사에서 채우는 족쇄가 될 수도 있기에, 존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현주에게 말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한 조건이네요. 편하긴 하겠지만.”
“적어도 회사에서 그 직원을 얼마나 영입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의지의 표현 정도는 될 테니까요.”
“그럼 실제 그 조건으로 입사한 마스터 급 직원이 있습니까?”
“몇 명 있었습니다.”
“있었다고요?”
“대부분은 지사를 설립해드리더라도 얼마 안 있어서 한국으로의 이민을 선택하시더군요. 그게 일이 더 편하다면서요. 사실 지사의 설립이란 지원은 단지 그 직원에 대한 회사의 성의를 보여주려는 겁니다. 우린 당신을 위해서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거죠. 당사자가 그런 회사의 대우보다 일의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연스레 그 직원은 한국으로의 이민을 결정할 테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적어도 성의 표시로는 최상급이군요. 좋습니다. 그럼 일단 PTW에서는 제가 런던에 남기를 원한다면 런던지사의 설립까지 추진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예.”
“그럼 다음으로 스톡옵션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PTW는 지분의 100%를 이상혁이라는 CCO가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장예정이 없다고 들었고요. 그럼 지분을 나눠주시지는 않을 텐데, 성공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선 지분에 관한 것은 대원칙이기 때문에 아쉽게도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저희 임원들도 지분을 가진 사람은 없고요. 여기 있는 민준 씨도 지분은 1%도 가지고 있지 않죠.”
“임원인데도요?”
“모두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쓸데없는 분쟁의 씨앗을 낳기보다는, 서로 가려는 방향을 향해 힘을 합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지분을 가진 사람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위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이상혁이라는 분이, 제가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무언가의 프로젝트를 강제로 저에게 진행하실 수도 있고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죠.”
“반대라면?”
그러자 이번엔 민준이 스캇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런 구조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말한 민준은 종이를 한 장 내밀었고, 스캇은 그 종이를 받아 내용을 보았다.
거기엔 ‘프로젝트 스컹크 웍스(Project Skunk Works)’라 쓰인 제목 아래, 민준이 구성하려는 팀의 멤버와, 프로젝트에 할당하려는 예산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리스트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은, 프로그래머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4천억이요?!?”
“필요하면 더 쓸 용의도 있습니다.”
민준의 대답에 존 스캇은 강한 흥미를 느꼈다.
이 괴짜 집단이, 대체 이정도의 인물들을 모아서 무엇을 하려는 지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었다.
“확실히 이 리스트에 들어간 사람들을 모두 모으려면 그 정도 비용이 들어갈 것 같기는 합니다만, 이 리스트에는 목적이 적혀 있지 않군요. 대체 이 사람들을 모아서 뭘 만들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그런 그의 질문에 대한 민준의 대답은, 그를 황당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모릅니다.”
“몰라요!?”
“그거야 그 멤버 중에 실제로 저희가 몇 명을 모을 수 있을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테니까요. 전부 영입에 성공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럼 목적도 없는, 단순히 이정도 실력자들로 이뤄진 팀을 구성하겠다는 계획만 가지고 회사에서 4천억이란 예산을 투입한다는 겁니까? 당신들, 제정신입니까?”
소리치는 존 스캇을 보며, 민준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제정신이 아니죠. 아마 다른 회사 같으면 절대 승인 나지 않았을 계획일 겁니다.”
“맞습니다! 세상에 어떤 정신 나간 회사가 목표도 없는 프로젝트에 이정도 금액을 쓴답니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민준이 말했다.
“단순히 ‘이런 걸 해보자.’라는 제안에 이정도 예산을 할당해주는 기업에서, 존 스캇 씨 정도의 개발자라면 도대체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를 말이죠.”
기본적으로 주식회사란,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원칙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그러나 PTW는 그런 것이 없었기에, 말 그대로 다른 회사라면 절대 하지 않을 ‘미친 짓들’에 대한 시도가 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은, 존에게 있어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신 역시 구골에서 일하면서, 몇 가지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이 몇 번이고 임원 회의에서 부결되는 상황을 만났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존은, 갑자기 자신이 가진 구골이란 대기업의 지분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정신나간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미친’ 생각도.
존은 손에 든 리스트를 다시 보았다.
자신의 바로 밑에 적혀있는, 또 하나의 ‘슈퍼 프로그래머’의 이름을.
“좋습니다. 당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정말입니까?!”
“저도 이게 미친 판단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 프로젝트의 끝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네요. 만약에 당신들이 여기 있는 인물들을 모아서 굉장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그 자리에 제가 없다는 건 저에게 엄청난 후회를 남기게 될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이대로는 좀 그렇군요. 제가 받은 제안에 비해, 제 능력을 아직 보여드리지는 못했으니까요. 저는 민준 씨가 대단한 프로그래머라는 것을 잘 알지만, 민준 씨는 제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잘 모르시죠.”
“아뇨, 딱히 그런 건···.”
세상에 그 ‘존 스캇’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에, 당황하며 대답하려는 민준에게 스캇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합시다.”
존 스캇은 앞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리스트에 이름을 추가하고는 민준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프로젝트에 한 명을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그가 리스트에 추가한 이름.
그것은 사실 존 스캇의 이름을 떠올리기 전에 민준이 가장 먼저 떠올렸지만, 너무 현실 가능성이 없어 지워버린 이름이었다.
“제프리 딘?”
그는 구골의 25번째 입사자이자 구골에서도 단 두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어찌 보면 존 스캇보다 더 상위 직급인 ‘시니어 펠로우’를 맡고 있는 천재 프로그래머였다.
그리고 그의 실력을 잘 아는 민준이 그 이름을 리스트에 넣지 않은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그는 구골의 엔지니어 중 최상위 직급인 시니어 펠로우이면서도, 구글의 부사장이기도 했으니까.
“지금 구골의 부사장을 스카웃 시도하시겠다고요?”
“뭐 어떻습니까? 찔러나 보죠.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그렇게 말하며 미소짓는 존 스캇을 보며, 민준은 단순히 실력만 보고 스카우트하려고 한 이 프로그래머가, 자신의 생각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돌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