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공개의 여파
경제지인 포보스에 실린 상혁의 기사는, 게임업계에 즉각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게이머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타 업체도 자유롭게 쓰게 하겠다는 상혁의 발표가 그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었다.
AI연산 전용 칩셋이 없는 PC진영은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콘솔 게임 개발 업체들이 군침을 흘리며 부럽게 바라보던 ‘그 기능’을, 이제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것이니까.
물론 PC게임 개발자들도 커뮤니케이션 엔진에 대해서는 주목하고 있었다.
CPU에서 모든 연산 부하를 감당하긴 해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언리얼 엔진과 유니티 엔진, 크라이 엔진과 소스 엔진, 게임 브리오 등 대부분의 메이저 게임 엔진에서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PC게임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기사가 함께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포보스 6월호가 발매된 당일부터, PTW홈페이지에서 배포를 시작한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프레임 워크와 작업툴은, 독립적인 게임 엔진이 아닌 게임 엔진에 추가하여 사용하는 애드온으로써는 이례적으로 하루 만에 12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그 폭발적인 관심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받은 개발자들의 대부분은, 작업 툴의 내용을 보자마자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PTW를 저주했다.
PTW에서 배포한 ‘그것’은, 정상적인 개발 방식으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이거 구현하느니 기계어로 애니메이션 한편 만드는게 더 편하겠다.]
[무슨 설명서가 항공기 운항 설명서보다 두껍냐?]
[OGC에 들어간 대사 DB가 없으면 이건 못 써먹는 물건임.
애당초 캐릭터 성격에 맞춰서 대사량만 수백만 개 넘게 작업해야 하는데, 그걸 성격별로 작업해야 하는 미친 짓거리를 대체 어떤 미친놈이 하는데?]
↳ 그 미친 짓거리 할 만한 놈이 한 놈 있지.
↳ 누구?
↳ 그 미친 짓거리를 하게 만든 놈.
↳ 아······.
[X발 우리 회사 홈페이지에는 벌써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차기작에 적용해달라는 요청 글이 빗발치는데, 이 못 써먹을 물건을 가지고 뭘 어쩌라는 건데?
당장 50명쯤 고용해서 2년 넘게 대사만 죽어라 쓰라고?
그 대사 중의 태반은 쓰일지 안 쓰일지도 모르는 대사들인데?]
전반적으로 개발자들의 커뮤니케이션 엔진 공개에 대한 반응은, 그런 식으로 대충 ‘PTW가 게임 업계에 독을 풀었다!’라는 반응이었다.
그들로서는 굳이 지금까지도 잘 해오고 있던 개발 과정에 갑자기 유저들의 쓸데없는 니즈를 PTW가 강요하게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공개된 커뮤니케이션 엔진에 대한 불평이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일부 인디 개발자는 오히려 그에 대한 호평을 내놓기도 했다.
[난 오히려 지금 공개된 버전이 낫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OGC의 대화 DB는 오직 OGC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능이라, 일상 대화 빼고는 쓸 수도 없고, 문제 생기는 대사를 일일이 찾는 것도 불가능해.
반면에 지금 공개된 버전은 처음부터 구축해야 하는 대신 잘 갖추어진 설명서, 시간만 들이면 무한대로 올라가는 퀄리티, 그리고 엔진 자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물론 혼자 개발하면 AI 성격 하나 만드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감도 안 잡히지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훌륭함 그 자체일 것 같다.]
사실 그것은 의도된 논란이라 할 수 있었다.
애당초 상혁과 민준은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툴과 프레임워크만을 공개하고 OGC의 대사 DB는 함께 공개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식으로 개발자들의 논란이 벌어질 것을 이미 예상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엔 단순히 다른 회사에서 편하게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적용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AI 성격의 저작권 문제.
기본적으로 OGC나 RFU에 탑재된 AI 성격은, 일부는 스토리팀에서 만들어낸 성격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만, 상당수의 성격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의 성격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었다.
그것을 그대로 타 회사에서 마음대로 쓸 수 있게 공개할 경우, 예를 들면 해당 성격의 성우나 AI 성격의 원본 인격을 가진 인물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를 허가받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에로 게임에 탑재돼서 수많은 유저들의 성적 망상의 도구가 된다던가, 아니면 원하지 않는 역할을 강요당한다던가.
그렇기에 상혁은 PTW에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AI 성격을 구현하려 할 경우, 해당 성격의 개발자들이 직접 바닥부터 대사 하나하나를 구현하게 함으로써 PTW에서 만든 오리지널 성격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결국, 우린 기회만 제공하는 거지,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 노력을 할지 말지는 개발사의 의지에 달린 거고.”
상혁은 이렇게 말했지만, 개발자들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기술력이 모자라서, 혹은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라이선스를 구할 수 없어서 해당 기능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이면 몰라도, PTW에서 엔진을 공개한 순간 모든 게임은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적용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적어도 유저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결국,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몇몇 메이저 게임 개발사에서는 해당 기능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그 입장을 발표한 것은, 한국 게임업계에서 가장 큰 이윤을 얻고 있는 거대 개발사, NANCY SOFT 였다.
[공식적으로 저희는 저희가 개발하는 게임에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해당 기술은 일견 혁신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내용은 단순히 개발자의 끊임없는 입력 작업을 통해 만든 거대한 대화 DB가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하고, 무엇보다 MMORPG에서는 해당 기능이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AI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함께 게임하는 다른 유저와 대화하는 것보다 인간다운 대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능숙하게 게임의 장르를 지적하며 해당 논란을 회피하는 개발사가 있는가 하면, 대놓고 PTW를 비난하는 개발사도 있었다.
애당초 쓸 수도 없는 엔진을 공개해놓고 생색낸다는 식으로.
[제정신이 박혀있는 개발사라면, 이런 비효율의 정점에 도달해있는 물건에 개발비와 인력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이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어째서 그것을 공개하여 다른 게임회사들이 고난의 길을 걷기를 강요하는 것인가?]
[PTW에서 진정으로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보급을 원한다면, 기본적인 대사 스크립트가 탑재된 OGC의 대사 DB도 함께 제공해야 할 것.]
그리고 상혁은 그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당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신을 찾아온 MS의 담당자 크리스와 SANY의 담당자 나츠와 함께 OGC의 대사 DB 공개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저희를 찾아와서 8세대 콘솔에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위한 연산 칩셋을 넣어달라고 요구하셨을 때, 상혁 씨는 말씀하셨죠. 그렇게 개발한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다른 개발사에서도 쓸 수 있게 공개하시겠다고요. 저희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먼저 크리스가 말하자, 상혁이 태연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
“약속대로 공개해드렸잖아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사 DB는 빠져있지 않습니까?”
“먼저, 정정해드릴 게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엔진에서 가장 개발하기 어렵고 핵심적인 기능은, 저희 스토리 팀이 만든 수천만 개 분량의 대사 DB가 아닙니다. 그건 그냥 진짜로 노력만 있으면 어느 회사나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오히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 그 자체죠. AI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정보와 현재 상황에 따라 어떤 대사를 해야 할지 결정하는 그 로직 자체가 만들기 어려운 겁니다. 그리고 그 가장 어렵고 핵심적인 부분을, 저희는 약속대로 공개한거고요.”
“하지만 그 핵심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PTW에서 OGC의 대사 DB를 구축하기 위해 만든 것과 비슷한 수준의 노력을 다른 회사에서도 해야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죠.”
“그렇게 할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왜 못해요?”
상혁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표정으로 크리스를 향해 묻자, 크리스가 역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상혁은 그런 크리스를 보며 한숨을 쉬고는, 자신이 생각하는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역할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PTW의 존재로 인해 게임업계의 고질적 관행이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라는, 상혁의 희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시겠지만 OGC라는 게임 자체는 그리 대단할게 없는 게임입니다. 안에 탑재된 게임들의 그래픽은 PS2 수준보다 떨어지는 레트로 게임들이고, 내용도 단순하며, 엄청나게 신선한 게임들도 아니죠. 단순한 마피아류 게임과 협동 생존 게임, 그리고 공성전 류 게임이 들어있을 뿐입니다. 그 심플한 게임들이 유저들에게 그토록 인기와 주목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커뮤니케이션 엔진 때문이겠죠.”
“맞습니다. OGC라는 게임의 본질은, 유저에게 그것이 아무리 단순한 게임이라도 함께 하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유쾌한 AI 친구들을 제공하는 데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다른 회사에도 마찬가지 조건으로 제공됩니다. 만약 그 회사의 게임이 아무리 단순하고 밋밋한 게임이라도,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잘 이용하면 현재의 OGC와 비슷한 수준의 재미를 줄 수 있겠죠.”
“그럼 좀 더 많은 회사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건 안 되죠. 애당초 OGC에 탑재된 AI DB는, 오로지 OGC의 플레이를 위해서 설계된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당장 테트리스를 만들어서 OGC에 탑재한다고 해도, AI는 정상적인 대사를 출력하지 못합니다. 애당초 지금 DB 안에 테트리스라는 게임의 플레이를 가정한 대사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OGC의 DB를 그대로 가져다 쓴다고 가정하더라도 정상적인 AI대사가 출력되는 게임은 오직 3가지밖에 없는 거죠. 마피아류, 협력 생존 게임, 그리고 공성 액션 게임. 그 외의 대사는 전부 새로 짜야합니다. 그리고 최적화를 위해서는 나올 확률이 없는 기존 대사를 다 찾아서 일일이 제거해야할 거고요. 그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겁니다.”
“그럼 공개해도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요? 아무리 대단한 성능의 엔진이라도, 그걸 쓸 수 있는 개발자가 없다면 그건 그냥 장식품 같은거잖아요?”
이번에 질문한 것은 SANY의 담당자, 나츠였다.
그러나 상혁은 나츠의 의견에도 고개를 저으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
“아뇨, 개발자들은 쓸 겁니다.”
“그 많은 대사를 작업해야하는 데도요?”
“애당초 커뮤니케이션 엔진이란 물건은, 게임이 단순하면 대사량이 극도로 줄어들게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테트리스 같은 게임을 작업하는데 성격을 하나만 구현한다고 하면, 많아 봐야 대사 2천 개 정도면 충분히 친구랑 대화하는 느낌을 줄 수 있죠. OGC의 대사가 그렇게 많은 이유는, 안에 들어가 있는 성격을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게 해야 했고, 유저가 설정한 게임 실력에 따라 같은 성격이라도 대사가 달라지는 바리에이션이 있으며, 각 AI 캐릭터들의 관계에 따라 상호작용하는 대사를 저희가 모두 구현하려고 했기 때문에 대사량이 엄청나게 늘어난 겁니다. 저희가 무식하게 복잡하게 만든 거지 단순하게 만들면 충분히 소규모 개발사에서도 적용 가능한 엔진이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정체입니다. 그리고 그건, 오히려 복잡하고 거대한 게임을 개발하는 대형 개발사보다는 단순한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인디 개발사 쪽에 힘을 실어주는 엔진이 되겠죠.”
“아···. 그래서 인디 쪽 개발자들이 호의적인 의견을 내놓은 거군요?”
“그렇죠. 대형 개발사의 개발자들은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설명서를 보는 순간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X발 이걸 대체 우리 게임에 어떻게 집어넣지?’
애당초 그들이 만드는 AAA급 게임엔 적용할 수 없는 엔진이에요. 심지어 거의 220명 규모의 스크립터를 운용 중인 저희 PTW에서도 게임이 더 복잡해지면 AI구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돼서 안에 들어가는 게임의 장르를 극도로 제한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OGC 안에 들어가는 게임들은 전부 인디 게임 수준의 단순함을 보유하고 있는 겁니다. 그거보다 복잡해지면 상호작용의 수가 한계를 벗어나서 대사량이 작업 불가능한 영역에 도달하니까요.”
“애당초 인디 게임 수준의 단순한 게임에만 적용 가능한 엔진이었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래서 OGC도 AAA게임이 아닌 거고요.”
“하지만 OGC에는 게임 파트 말고 학교생활 파트도 있지 않습니까? 데이트라던가, 노래방을 간다던가, 농구 게임을 한다던가.”
“그렇죠. 하지만 그건 쪼개보면 전부 단순한 상호작용의 모음집 같은 겁니다. 노래방 대화를 위한 대사 DB가 따로 있는 거고, 농구 코트의 대화를 위한 대사 DB가 따로 있는 거죠. 작은 게 모여서 커다란 집합체를 이룬 거지 그 모든 게 커다란 하나의 체계 아래서 굴러가는 게 아니니까요.”
“이해했습니다. 그럼 실제로 대형 개발사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엔진 적용은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뭐 불가능한 건 아니죠. 저희처럼 개발 기간을 몇 년 잡고 수백 명을 고용해서 미친 듯이 대사 작업만 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요.”
“대기업에서는 꺼릴 겁니다.”
“하지만 유저들은 좋아하겠죠. 게임업계만큼 제품 하나로 이익률을 높게 잡을 수 있는 업계는 별로 없습니다. 천억을 부어서 수조를 거둬들이는 케이스도 존재하는 업계니까요. 적어도 유저들이 쓰는 만큼은, 대기업에서도 게임에 아낌없이 투자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럴 여력이 없는 인디 개발사라면요?”
“그렇다면 그들에겐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겠죠. 적어도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노력과 시간만 투자하면 퀄리티가 무한정 올라가는 물건이니까요. 실제로 게임 그래픽이 좋지 않거나 게임의 스케일이 작을수록 더 빛나는 게 커뮤니케이션 엔진이니까, 인디 개발자들이 사용하면 대기업의 AAA급 게임과 맞설 수 있는 좋은 물건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 문의하는 퍼스트 파티에도 그렇게 이야기해야겠네요.”
상혁이 저렇게 말하는 이상, 더 추궁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나츠도 일부 AAA급 게임에만 매출이 집중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게임에서 히트작이 발생하는 것이 콘솔 생태계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녀는 만족한 표정으로 대화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녀와 같은 날 한국을 찾아와 상혁과의 미팅을 가진 크리스도, 그런 상혁의 설명에 어느정도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족한 표정의 두 사람을 고국으로 돌려보낸 상혁은 마침내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공개로 일어난 이슈에서 눈을 돌려 잠깐의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유명하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더니, 공짜로 줘도 욕먹는 이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상혁이 투덜거리자, 애당초 이 사태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민준이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뭐, 예상했던 논란이잖아. 애당초 대기업에서는 심하게 반발할 거라고 생각도 했었고.”
“그게 나는 좀 양심이 없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게임 하나 만들어서 수백억 수천억씩 벌면서, 유저가 좋아하는 거 하나 구현해주려고 직원 수십 명 뽑는 건 경기를 일으키면서 싫어하니까. 적어도 번 돈의 절반이라도 자기들 게임에 투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 몇 년 투자해서 개발한 게임이 망해서 개발비도 못 건지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그거야 그래픽이 아무리 좋고 액션이 화려해도 게임 보는 순간 게임 화면에서 ‘난 무조건 네 돈을 월 수백만 원씩 뜯어낼 것이다’라고 써놓는 그런 게임들을 만드니까 그렇지. 입구부터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어서 오십시오!’ 하는데 누가 선뜻 거기 들어가나. 먼저 애정을 가질만한 물건을 보여주고 돈을 쓰고 싶게 만들어야지. 커뮤니케이션 엔진도 그래. 진짜로 마음먹고 수백 명 고용해서 대사 수천만 개 써서 ‘우리 게임은 OGC보다 더 대단합니다!’라고 말해주는 회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냐고. 그거 하는데 몇조가 드는 것도 아닐 텐데.”
“그건 그냥 네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냐?”
민준의 질문에 상혁이 씩 웃었다.
“뭐, 그렇지. 누누이 말하지만, 게임은 남이 만든 게임이 더 재미있으니까.”
“그렇게 될 거야. 아마도 대기업은 아니겠지만, 인디 쪽에서는 벌써 기술 지원 요청도 꽤 오고 있는 편이고, 몇몇 개발자는 트위터로 자기 게임에 커뮤니케이션 엔진 적용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으니까.”
“좋네. 그럼 그걸로 민준이 네 계획에 한 발 더 접근하게 되는 건가?”
“그렇지. 이제 다음번 대규모 패치 때 커뮤니케이션 엔진 업데이트 내용이 발표되면, 좀 더 가까워질거고. 그런 의미에서 상혁아, 나 인력 좀 빌려 쓰자.”
“어?”
“팀 하나 꾸려달라고.”
“꾸리면 되잖아.”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PTW 내부 인력으로는 부족해. 솔직히 지난번 커뮤니케이션 엔진이나 마나 엔진 개발할 때도 너무 나 혼자 개발하는 경향이 강했고.”
“그거야 지금 네 실력을 따라갈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거지. 민솔이나 범배 씨 빼면 거의 없지 않나?”
“우리 회사엔 없지.”
민준이 말했다.
“외부엔 있잖아.”
“스카웃을 하겠다고?”
“어. 팀이 필요해. 시대의 벽이 막고 있는,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전문가들의 팀이.”
“말만 들어도 비싸 보이는데.”
“내가 지금까지 돈값 못한 적이 있냐?”
민준의 말에 상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없지. 얼마나 필요한데?”
“4천억. 그걸로 업계에서 가장 실력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팀을 꾸려볼 거야.”
“인재 빼간다고 난리가 나겠군.”
“그건 네가 막아줘야지. 그래서 너한테 스타 개발자가 되어달라고 말한 건데. 적어도 ‘게이머를 위해 내려온 천사’라면, 인재 빼간다고 욕먹어도 팬들이 보완해주지 않겠어?”
그러자 상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민준을 보며 물었다.
“그것도 다 계산해둔 거였냐?”
“너만큼은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민준은 자신이 생각하는 ‘영입하고 싶은 인재’의 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상혁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그 인력을 본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 리스트의 최상단에 구골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전설적인 프로그래머, 존 스캇(Jon Scat)의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에.
그 밑에 적힌 나머지 이름들도, 절대 평범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민준이 영입 비용으로만 4천억을 생각하고 있는 이유가 이해가 갈 정도로.
상혁은 그 엄청난 리스트를 보며, 민준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정도 천재들을 모아서 뭘 하려는 건지.
“미친, 무슨 프로그래머 버전 업벤저스라도 만들 생각이야?”
그러자 민준은, 상혁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업벤저스? 그런 건 아니고.”
그리고는 씩 웃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스컹크 웍스(Skunk Works : 미국 록히드사의 전설적인 개발부서)정도는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