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마이너와 재미의 너머
“이거 화면 보호기 아니었어?!”
민준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상혁이 보여준 모니터에 떠 있는 화면은, 왠지 멋스러운 화면 보호기를 연상하게 하는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화면을 다시 자세히 본 민준은 가까스로 그것이 게임화면임을 어필하는 몇몇 UI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그 UI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대체 무슨 게임인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흠···. 그래픽은 예쁜 것 같기는 한데······. 무슨 게임이야?”
민준의 말대로, 잘 관리된 연못 안에는 색색의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연못 주위에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긴 했다.
그리고 상혁은, 화면을 아무리 보아도 게임의 장르를 파악하지 못하는 민준을 보며,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건 정원 만드는 게임이야.”
“뭐?”
“말 그대로, 이 화면 보호기 같이 생긴 게 플레이어가 꾸민 정원이라고.”
“정원 꾸미는 게임이라고?”
“어.”
“놀러 와요. 짐승의 숲 같은 거?”
“그거보다 훨씬 하드한 버전.”
“설명해줘봐.”
민준의 말에 상혁이 설명을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짐승의 숲은 마을을 꾸미는 거고, 심즈는 집을 꾸미는 게임이고, 지뢰 크래프트는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임이지?”
“그렇지.”
“거기서 착안해서 만든 게임인데, 그중에 정원 꾸미기 관련 파트만 엄청나게 깊이 있게 만들어놓은 게임이라고 보면 돼.”
“정원 꾸미기에 깊이를 줄 만한 요소가 있나?”
민준이 물었다.
하우징 자체는 게임의 재미요소 중 하나이다.
유저들은 집 꾸미기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조경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집 꾸미기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그것만으로는 게임이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
심즈에 생활파트를 때 내고 건설 파트만 남겨둔다면, 심즈는 절대 히트하지 못했을 테니까.
민준은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뭐, 돌이라던가 물고기를 푼다던가, 나무나 꽃을 심는다던가. 분명 ‘조경’이란 요소만 가지고도 어느정도의 재미는 줄 수 있겠지만, 그건 한번 만들면 끝이잖아. 이게 PTW내부에서 인기 1위를 차지할 요소는 전혀 안 보이는데?”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거든.”
상혁이 웃었다.
“이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렇게 말한 상혁은, 자신이 이 ‘해괴한 게임’을 하며 놀랐던 경험에 대해 민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게임에 내가 만들어둔 연못을 봐봐. 어떤 것 같아?”
“맑은 물속에 물고기 있는 게 연못이지 특별할 건 없어 보이는데?”
“포인트는 그 ‘맑은’ 물이지. 내가 처음 이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난 나름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바위를 배치한 뒤 연못에 물을 넣고 바로 물고기를 풀었어. 그리고 주변에 식재를 심으면서 조경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그 다음 어떻게 됐는지 알아?”
“어떻게 됐는데?”
“물이 녹색으로 흐려지면서 물고기가 뒤지더라고.”
“어?”
“그러니까 이 게임은, 조경을 ‘건설’하는 게임이 아니야. 자기가 원하는 연못과 정원의 생태계를 ‘육성’하는 게임이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봐.”
민준이 흥미를 느끼자, 상혁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선 그렇게 해서 한 번의 실패를 겪은 나는, 이 게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물이 오염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물고기의 배변이나 먹지 않고 남은 사료 같은 게 물속에서 썩게 되는 거야. 그래서 이번엔 여과기라는 걸 설치했어. 그러자 물은 썩지 않았지만, 이번엔 바닥이 녹색으로 가득 차더라고.”
“물이끼 같은 거?”
“어 맞아.”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물이끼를 청소하려고 물을 빼고 안에 있는 녹조를 고압수로 밀어버렸지. 그리고 여과기를 다시 깨끗이 빨아서 새 물을 다시 넣었어.”
“그게 지금의 연못이다?”
“아니, 다시 또 다 뒤지더라고.”
“어? 이번엔 왜?”
“이게 물갈이를 너무 심하게 하면 물고기가 스트레스를 받아. 개발한 직원한테 물어보니까 연못에 여과 박테리아 수준을 일정 이상 유지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녹조를 잡아먹는 새우를 대량으로 연못에 투입했지.”
“어떻게 됐어?”
“물고기한테 다 잡아먹혔어. 알고 보니 내가 키우는 품종은 새우를 먹더라고. 그래서 그다음엔 다슬기를 투입해서 녹조를 잡는 데 성공했고. 그다음엔 봄이 왔는데, 물에 꽃가루가 덮여서 또 물이 흐려진 거야.”
“그건 여과기로 못 걸러?”
“그걸 거르는 여과기는 따로 만들어야 해. 그래서 그것도 배치했지.”
“흠···. 말 그대로 ‘건축’이 아니라 ‘육성’이네.”
상혁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준은 이 화면보호기같이 생긴 게임이 어쩌면 정상적인 게임으로써의 재미를 유저에게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로 내부 기준이 무지막지하게 높기로 유명한 PTW 직원들에게 고평가를 받을만한 게임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게임적인 재미는 성립하는 것 같긴 한데, 고평가받을 만한 수준의 게임은 아닌 것 같아. 어떤 점이 이 게임에서 유저에게 만족감을 주는 거야?”
그러자 상혁이 갑자기 무릎을 치며 민준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자신이 이 게임이 가진 ‘진짜 재미’를 알았을 때 했던 동작과 똑같은 행동이었다.
“그렇지! 맞아! 그거만 가지고는 안 되지!”
“아이 썅 깜짝이야!”
“아, 미안. 아무튼 나도 민준이 너랑 똑같이 생각했어. 이게 소소한 재미는 있는데, 뭐랄까, 엄청난 만족감? 성취감? 그런게 좀 부족하게 느껴지더라고. 이 게임의 버전이 0.5였을 때, 개발자들도 같은 피드백을 동료 직원들에게 받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들은 그 문제를 0.68 릴리즈에서 해결했어.”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자신의 연못 주변에 있는, 마치 연꽃처럼 생긴 바위를 민준에게 보여주었다.
“이 바위를 봐줘. 어떻게 생각해?”
“크고 아름답네.”
“아니, 모양을 봐달라고.”
“비싸보이네. 모양도 특이하고.”
“그렇지?”
이번에 상혁은 캐릭터를 움직여 연못 근처로 가서 연못을 클릭했다.
그러자 화면에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의 리스트가 떴고, 상혁은 그중 하나를 보여주며 민준에게 물었다.
“이건 어때?”
“어? 다른 것보다 조금 모양이 이쁜 것 같기는 한데.”
“그렇지? 그러니까 이 게임에서는 기본적으로 식물이나 생물이 유저가 조성한 환경에 따라서 성장하거나 교배할 때 모양이 변해. 그리고 그렇게 나온 예쁜 개체는 높은 포인트를 받고 팔 수 있고. 그 포인트로 조경물 랜덤 박스를 까서, 좋은 조경물을 얻을 수 있어. 그건 조경물 구성에 따라서 환경을 변화시키고, 몇몇 아이템들은 특수 효과가 있지.”
“흠···. 그러니까 유저가 육성한 정원에서 포인트를 벌고, 그 포인트로 더 좋은 정원을 만드는 거야?”
“어. 그리고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느냐가 중요한데, 예를 들어 새집을 만들어서 좋고 희귀한 새가 자리를 잡게 하면 그 새가 정원에 사는 동안 버프를 받아.”
“그런 부분은 묘하게 게임적이네.”
“그리고 그런 부분이 중독성을 만들지.”
민준은 그제야 이 스크린세이버를 닮은 게임이 내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게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일단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었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게임을 메인 프로젝트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흠. 일단 어떤 재미가 있는지는 잘 알겠어. 그리고 내부 평가 점수가 높은 이유에 대해서도. 확실히 그런 보상체계라던가 육성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확실히 전달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걸 PTW의 메인 프로젝트로 잡기에는 뭔가 부족하지 않아? 우린 이제 타이틀마다 기본 천만 장 이상 팔아치우는 메이저 게임사라고. 분명 지금 그 정원 키우기 게임도 누군가는 즐겁게 하겠지만, 그렇다고 수천만의 PTW팬들이 즐거워할 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데.”
“그런데 민준아.”
“어.”
“그건 우리 게임들이 가진 공통점 아냐?”
“어떤 거?”
“초기 아이디어가 마이너 그 자체인 거.”
상혁이 말했다.
“지금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OGC도, 원래 기획은 에로 게임의 전연령 버전을 만들어보자는 게 원래 기획이었고, 발매 첫날 1200만 장 넘게 팔린 RFU도 사실 초기 기획은 그냥 지휘를 게임으로 구현해보자 하는 데서 시작한 거지. 난, 초기 아이디어가 좋냐 안 좋냐는 딱히 상관없다고 봐. 물론 이 게임을 이대로 출시하면 팬들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능력이라면 분명히 이 극 마이너한 게임도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을 살 수 있는 게임으로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난 믿고 있으니까.”
상혁의 지적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PTW의 게임들은, 개발 과정에서 개발자들의 애정과 노력이 더해져 지금의 게임이 된 것들이었기에.
그리고 상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게임을 플레이해 본 상혁의 머릿속에 게임을 개선할 방안도 있어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맞는 말이네. 완벽하지 않으면 완벽할 때까지 다듬으면 되는거니까. 그리고 적어도 네 머릿속에는 지금 저 게임을 가지고 어떻게 유저들을 열광하게 할지에 대한 계산도 있는 것 같고. 맞지?”
“뭐, 그렇지. 하지만 난 PTW의 게임이 무조건 수천만 카피가 팔리는 빅히트 게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원래 우리의 모토는, 100만명이 즐거워할 수 있는 게임보다 100명이라도 누군가의 인생 게임이 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거니까.”
“하지만 회사의 커진 규모를 운영하려면 어느정도의 성공도 필수적이지.”
“그것도 맞는 말이고. 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만든 게임을 ‘이건 안 팔릴 것 같으니까 이건 접어라’라고 말하는 회사는 되지 말자고.”
“그건 나도 동의해.”
“뭐, 그리고 사실 몇 개 정도는 마이너한 게임이 나와도 괜찮을 정도로 재미있는 기획도 나오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해. 이제는 게임 하나만 성공해도, 적어도 3~5개의 안 팔리는 게임의 제작비를 충분히 건질 정도로 콘솔 시장의 규모가 성장했으니까.”
“그렇다고 어중간하거나 재미없는 게임을 내놓을 생각은 아니잖아? 난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
“그렇지. 난 오히려 기쁘다고. 우리 직원들이 이제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게. 이렇게 해괴한 게임도 만들어서 선보이고 말이지.”
민준은 상혁의 말에 동의했다.
이런 인디게임다운 아이디어를 주저 없이 개발하여 사내 게시판에 업로드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이제 PTW의 직원들이 PTW라는 회사의 성향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뭐, 그런 직원들로 인해서 톡톡 튀는 게임이 우리 회사에서 계속 나올 수 있으면 그건 좋은 일이겠지. 하지만 그런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도록 지원해주려면 돈이 필요해. 우린 게임회사니까, 돈은 게임 팔아서 벌어야 하고. 기발한 것도 좋지만, 적어도 다음 3차 NE컨벤션에서 발표할 게임 중의 하나는 1차 때의 MYOM이나 2차 때의 OGC처럼 게이머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그런 게임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지. 이 열정 있는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려면, 그리고 PTW팬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기대감을 만족하게 하려면. 하지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이미 그것에 대한 준비는, MYOM 출시 이후로 계속하고 있었으니까.”
상혁의 말에 민준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상혁이 방금 말한 것은, 현재 PTW에 무려 몇 년에 걸쳐 준비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가 또 하나 존재한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MYOM때부터? 별도로 준비하고 있었던 장기 프로젝트가 있어? 난 VR프로젝트 말고는 다른 건 없는 줄 알았는데?”
“공식적으로 월드 이벤트 이후로 MYOM는 일부 업데이트를 제외하고는 대규모 개발이 진행 중이지 않은 상태잖아.”
“어.”
“그럼 애당초 마스터 급의 대우를 약속하고 고용한 탑주가 8명인데, 그들이 지금 어느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민준은 그제야 MYOM의 개발 이후로 8명의 탑주들이 다른 프로젝트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직접 ‘마법 이론’을 창조할 정도로 설정 작업에 미친 세계 최강의 중2병 8명을 데리고, 상혁이 몇 년에 걸쳐서 무언가를 기획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것은 민준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8명의 월드 클래스 설덕이라···. 상혁아.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야?”
그러자 상혁은, 자신의 오랜 친구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커뮤니케이션 엔진’이라는, 회귀 전에도 듣도 보도 못한 말도 안 되는 치트를 만들어낸 자신의 친구에게, 이번엔 자신이 반격할 차례라는 것을 깨달으며.
“뭐, 솔직히 RFU는 조금 특이한 리듬 게임이 될 예정이었고, OGC는 원래는 오덕이나 좋아할 법한 미소녀가 넘치는 평범한 학원 시뮬레이터가 될 예정이었지. 그걸 바꿔서 전 세계 유저들이 기대하는 갓겜으로 만든 건, 솔직히 민준이 네 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두 게임 모두,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없었으면 지금의 성적은 절대 기록하지 못했을 게임이라는 것도 인정하고.”
“아는구나. 자식.”
“하지만 기술에만 의존하는 게임이란 건, 기획자에겐 조금 슬픈 존재인 거야. 나 같은 기획자는 게임의 시스템과 플레이, 컨셉과 레벨 디자인 같은 ‘게임적 요소’들로 유저를 감동하게 하고 싶은 법이거든.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들이 모두 지금 같이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회사를 위해서는 MYOM에 이은 거대 히트작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래서 MYOM의 월드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탑주들하고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거지.”
상혁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선행 기획 기간만 몇 년씩 잡아가면서,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기획을 갈고 닦았어. 내가 전에 말했지? 민준이 네가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너무 사기라서, 똥겜도 갓겜이 되어버린다고. 민준이 네가 기술로 똥겜마저 갓겜으로 만드는 AI를 만들었다면, 나는 탑주들과 함께 지금까지 기획만 가지고도 엄청나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오호라. 그러니까 네 말은 이번엔 기술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이 아니라 순수하게 기획적으로 재미있는 갓겜을 만들려고 했고, 그게 지금 완성단계라는 거지?”
“그렇지.”
“그럼 지금까지 기획한 것 좀 볼 수 있을까?”
상혁은 휴대폰 고리에 달린 작은 열쇠로 책상 서랍의 잠긴 부분을 열었다.
그리고는 한 부의 기획서를 꺼내 민준에게 넘겨주었다.
민준은 그 기획서의 페이지를 넘겨보면서 때로는 눈동자를 크게 뜨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하면서 다양한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기획서의 검토를 끝낸 민준은 한숨을 쉬면서 기획서를 덮고는 상혁을 바라보았다.
상혁은 그런 민준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게임을 보는 눈에 있어서 상혁이 자기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신뢰하는 유일한 인간이, 바로 자신의 소꿉친구 민준이었으니까.
“어땠어?”
그러자 상혁의 질문을 받은 민준은 잠시 뜸을 들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상혁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가지는 말할 수 있겠다.”
“뭐?”
“이 기획을 만드는데, 어째서 그 인간들을 데리고도 2년 넘게 들어갔는지.”
“2년이 걸린 게 납득이 갈 정도로 재미있다는 거야? 아니면 2년이 걸릴 만큼 복잡한 기획이라는 거야?”
“재미? 재미라···.”
민준이 손에 들고 있던 기획서를 상혁의 책상에 집어 던지자 무거운 종이뭉치가 유리판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PROJECT HERO ]
기획서의 표지에 적혀있는 굵은 글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 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처음 결정되었을 때, 상혁이 그 프로젝트의 제목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민준은, 긴장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혁에게 말했다.
“이게 재미없다고 하면 그 새끼는 게임 고자지. X발. 내가 만든 AI가 기술적 혁명이면 이건 기획적 혁명이다. 이 자식아.”
그렇게 말하는 민준의 얼굴은, 지금껏 상혁이 본적 없던 환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