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34화 (235/485)

234. 우리 음악 선생님

아직 발매일까지 몇 달 남은 상황이었지만, RFU(Rhythm For Us)의 개발 진척도는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애당초 이미 게임의 시스템 자체는 2차 NE컨벤션 때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시스템부터 스토리 모드, 음원 제공사에서 제공하는 음원을 리듬 게임 모드로 제작하여 유저들이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게임 내 상점까지.

그런데도 상혁이 발매일을 5월로 잡은 것은, 오로지 RFU에 탑재된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성능은, 엔진에서 쓸 수 있는 대사량이 얼마나 풍부하게 준비되어 있느냐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출시를 위해 게임 데이터를 공장에 넘기고 패키지를 전 세계에 유통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면 남은 시간은 3개월 정도인가.’

남은 시간을 계산하며, 테스트 룸에 들어간 상혁은 안에서 테스트를 빙자한 게임 플레이를 하는 수많은 직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직원들의 대부분은, 지금 프로젝트가 끝나서 공식적으로 휴가 기간을 맞이한 EOD 개발팀이었다.

“오, 상혁 씨 오셨습니까?”

“아니, 휴가 기간인데 휴가는 안 가고 다들 여기서 뭐 해요?”

“집에서는 OGC나 RFU 플레이를 못 하니까요. 게다가, 테스트 룸에 있는 코넥트는 산업용 코넥트라 훨씬 좋은 거잖아요.”

“물론 산업용 코넥트가 비싼 만큼 감도는 좋지만 그래도 일반 코넥트도 게임하는 데 지장은 전혀 없을 텐데?”

“기분이죠. 기분. 하하하!”

“뭐, 편할 대로 하세요. 대신 자리 하나만 비워주시죠.”

“RFU로요? 아니면 OGC?”

“오늘은 RFU 테스트하러 왔습니다.”

“오, 마지막 테스트 언제 하셨어요?”

“2차 NE컨벤션 전에 했던 게 마지막인데···.”

“그렇습니까?”

상혁의 말에 팀원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엄청 놀라시겠네요.”

***

결론만 말하자면, RFU의 기본 시스템 자체는 NE컨벤션 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테스트 하는 내내 익숙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의 익숙함과는 반대로, 게임 플레이 자체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어서, 상혁은 속으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2차 NE컨벤션 이후 지금까지 단 몇 달의 시간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완성도가 올라가면서 게임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 미친 인간들이 대사를 얼마나 추가한 거지?’

성연은 자신이 이끄는 40명이 넘는 연주자들과 함께, RFU에 탑재된 커뮤니케이션 엔진에 들어가는 대화의 볼륨과 바리에이션을 대폭 강화했고, 그 결과 적어도 RFU는 캐릭터 성은 OGC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대화의 깊이나 리얼함은 더 강해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혁이 RFU에서 가장 고평가하고 있는 점은 수십명의 제자들과 스승이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성장 스토리도,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소통감도 아니었다.

“7번 테스트 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대기하고 있던 상혁에게 한 직원이 와서 말하자, 상혁은 No.7이라 적힌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두꺼운 방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RFU의 테스트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테스트 룸.

바로 옆에서 테스트 하는 직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거실만한 크기의 공간을 방음 설비로 뒤덮어 만들어진 테스트 룸은 거대한 TV 좌우로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스피커가 배치되어 있었다.

상혁은 걸음을 옮겨 발바닥 표시가 있는 방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사운드 엔지니어가 직접 세팅한, 이 방에서 소리가 가장 잘 집중되어 들리는 자리를 표시해 둔 곳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본인의 세이브를 로드한 교실에 들어가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인사하는 제자들을 보며, 상혁은 작게 미소 지었다.

“좋아. 오늘은 전에 말했던 곡을 연주해볼까? 다들 연습은 해왔지?”

[넵!]

대답하는 아이들을 보며, 상혁은 빠르게 화면을 훑었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아이가 누구고, 소심하게 움츠러드는 아이가 누구인지.

기본적으로 캐릭터 육성의 수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RFU의 연주 시스템은 곡 자체를 캐릭터가 얼마나 연습했는가가 연주에 영향을 끼치도록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연습도 없이 갑자기 처음 하는 곡의 연주를 시작하면 캐릭터들은 악보를 보는 데 급급하여 연주를 제대로 못 하고 실수를 남발하는 식으로.

그래서 보통은 미리 다음 연습 때 연주할 곡을 지정해준 후 시간을 주어 각각의 연주자가 연습할 시간을 준다.

그럼 보통 해당 캐릭터에 설정된 곡 취향이나 본인의 안 좋은 습관, 혹은 성실도에 따라 연습 기간이 끝난 후의 연주능력에 차이가 발생한다.

조금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곡이 취향이면 열심히 연습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곡이더라도 난이도가 본인 실력보다 높거나 지나치기 어려운 연주법이 요구되는 경우 그 부분에서 실수가 발생하는 식으로.

그런 식으로 캐릭터의 개인차가 반영되어있는 게임이기에, 상혁은 RFU라는 게임이 마음에 들었다.

이 게임을 할 때만큼은, TV앞의 게이머가 아니라 시골 학교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음악선생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 그게 게임의 본질이긴 하지.’

짧은 인생에서, 때로는 염소가 되는 경험을, 때로는 지구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경험을, 때로는 퇴마사가 되는 경험을, 때로는 마피아나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상혁이 생각하는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렇기에 PTW의 게임들이 그토록 ‘새로운 경험’에 집착하는 것이기도 했고.

그리고 RFU는, 그런 PTW의 게임 중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된다’는 컨셉에 매우 충실한 게임이었다.

PTW에서 내놓은 또 하나의 코넥트 전용 게임.

MYOM처럼.

상혁은 중앙에 준비된 지휘봉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상혁의 움직임을 따라 화면 속의 제자들이 일제히 악기를 들어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상혁이 양손을 들어 올려 연주 준비 자세를 취하자, 화면에 흰색 텍스트로 상혁이 미리 연습을 지시한 곡의 제목이 출력되었다.

[W. A. Mozart Oboe Concerto in C major, K.314

모차르트 오보에 협주곡 C장조 K.314]

유려한 현악기들의 협주로 시작된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오보에를 맡은 학생이 평소 자리와 다르게 앞으로 나와 자신이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오보에의 연주가 시작되기 전, 연주 소리에 맞춰 주인공 캐릭터의 독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독백 재생을 켜놨었나 보네.’

옵션에서 ‘독백 재생’을 키면, 말풍선 외에 더빙된 음성이 곡에 대한 해석을 마치 드라마 주인공이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처럼 읽어주는 기능이었다.

[모차르트가 남긴 유일한 오보에 협주곡.

목관 악기의 왕좌라 불리는 오보에의 관통력 있는 음색을 십분 활용한 명곡.]

[오보에는 재미있는 악기지.

색채감 있는 음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십 개의 다른 악기의 소리에 묻히지 않는 특색이 있고.]

[연주자가 리드 관리를 잘 했구나. 이전 연주보다 소리가 좋아졌어.]

더빙된 목소리는 연주를 듣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절묘한 음량으로 조정되어 있었기에, 상혁은 마치 자신이 생각을 귀로 듣는 듣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연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리듬 게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오직 RFU만이 유저에게 선사할 수 있는 ‘음악의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었다.

‘소리가 기분 좋다.’

기본적으로 리듬 게임은, 재생되는 음악과 별개로 게이머의 리듬 판정을 알려주는 별도의 ‘소리’가 들어간다.

심벌즈 소리나 드럼 소리, 혹은 전자음 같은.

그것은 적절한 타이밍에 노트를 쳤을 때 음악에 박자감을 더하는 중요한 게임적 요소라고 할 수 있었지만, 반면에 음악적 몰입보다 게임 노트에 집중하게 되는 방해요소이기도 했다.

오락실에서 리듬 게임을 하는 유저를 생각해보자.

누군가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음악 소리보다 손가락이 패드를 두들기는 소음이 더 크게 들리는 상황을.

그것은 게임의 난도가 올라갈수록 더 시끄러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RFU에는 그런 요소가 없었다.

플레이어가 하는 것은, 오직 허공에 손을 휘두르는 것뿐이었으니까.

기존의 리듬 게임이 이미 정해진 ‘음악’에 ‘박자’를 더하는 게임이라면, RFU는 말 그대로 ‘음악을 만드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손의 템포를 늦추면 연주자들의 연주 템포도 느려지고, 중요한 순간에 동작을 멈추면 한순간 교실이 정적에 휩싸인다.

마치 손끝으로 음악을 ‘만져서’ 만들어내는 것 같은 독특한 감각은, 다른 리듬 게임이 아닌 오직 RFU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만의 곡을 만들 수도 있고.’

과격한 느낌의 모차르트.

부드러운 느낌의 베토벤.

청초한 느낌의 라흐마니노프.

RFU에는 다른 리듬 게임에 있는 ‘완벽한 판정’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천천히 쌓아 올린 ‘우리들의 연주’를 하는 것이, RFU가 추구하는 게임성이었기에.

그렇기에 RFU에서는, 리듬 게임 치고는 특이하게 ‘다채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다.

몇십 번을, 몇백 번을 플레이하더라도 매번 다른 형태로 같은 곡을 다른 스타일로 바꿔가며, 다양한 느낌의 연주를 해 나갈 수 있는 게임이 RFU라는 게임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자신이 플레이하고 있는 이 세이브 파일에서 지금 연주하는 곡의 성향을 ‘파격’으로 바꾸어 연주시키는 중이었다.

[부드러운 꽃잎이 아니라 한겨울의 고드름 같은 느낌의 오보에 연주. 모차르트답지 않은 분위기. 다들 힘이 너무 들어갔어.]

독백은 곡의 분위기가 원곡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상혁은 개의치 않았다.

애당초 그렇게 연주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바로 본인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상관없었다.

RFU의 연주 판정은 ‘얼마나 원곡에 가깝게 플레이했는가’를 따지지 않으니까.

RFU의 시스템이 연주가 좋은지 안 좋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플레이어가 의도한 대로’ 연주가 잘 이루어지고 있느냐가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모인 상혁의 제자들은, 그런 상혁의 괴팍한 요구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고.

지휘봉을 휘두르는 상혁의 손의 움직임이, 마치 자신이 표현하려는 음악처럼 과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독백도, 마치 고조되는 클라이막스에 맞춘 것처럼 감정적인 내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쪽도 즐거워.]

[다들 즐거워하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들의 모차르트겠지.]

이 게임의 이름을 상혁이 ‘Rhythm For Us’로 정한 이유.

그것은 말 그대로 게임 자체가 ‘유저와 제자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게임이기 때문이었다.

“후우···.”

모차르트 오보에 협주곡 C장조의 1악장을 연주하는 데는, 대략 7분 35초 내외의 시간을 요구한다.

그러나 상혁이 제자들과 만들어낸 ‘모차르트 오보에 협주곡 C장조.K.314 1 악장’은, 정규 연주 시간보다 약 20초가 짧은 길이로 마무리 되게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전반적인 연주의 템포에 힘을 주면서, 곡의 속도도 빨라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상혁은 원곡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자신의 연주’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연주했던 제자들의 표정도, 그런 상혁의 기쁨을 함께 느끼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마치 자신들이 이 연주를 제대로 해낸 것이 믿기지 않는 듯 서로를 이리저리 돌아보는 제자들을 보면서, 상혁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좋아. 멋져. 완벽한 연주였어.”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지만 말이죠.]

기본적으로 원곡 재현을 중시하는 성격으로 잡혀있는 콘서트 마스터 캐릭터가 말했다.

그러자 상혁은 조금 상기되어있는 표정의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즐겁잖아?”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그 오랜 시간을 연습하면서, ‘모차르트가 아닌 모차르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함께 고생한 친구들을.

그 친구들의 표정은 깊은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

그녀가 말했다.

[즐거워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밝게 빛나는 것을 보며, 상혁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멋진 게임이 되었네.’

취향? 당연히 탈 것이다.

기존의 리듬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던 재미와, RFU가 추구하는 재미는, 아예 본질적인 부분에서 완전히 다른 재미라 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모션 인식을 이용한 지휘를 소재로 한 게임이란 것도 게임을 마이너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고, 안에 들어가 있는 곡들이 주로 클래식 곡이라는 것도 게임을 더 호불호가 갈리게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마음속으로 확신했다.

분명 이 게임 역시,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의 마음속엔 갓겜이 될 수 있는 게임이 확실하다고.

상혁이 원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자, 그럼 다른 곡을 연주해볼까?”

상혁이 손을 뻗어 화면 중앙 하단에 가져다 대자, 1인칭 화면으로 카메라가 전환되며 총보(지휘자가 쓰는 악보)를 비추어주었다.

그리고 상혁은, 마치 종이를 넘기듯 화면을 보며 손을 움직여 총보를 덮었다.

그러자 게임에 탑재된 다른 곡들의 리스트가 화면에 출력되기 시작했다.

[Beethoven :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II.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작품 92, 2악장]

[Schubert-Symphony No.8 in B minor “Unfinished”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MAHLER Symphony No.5 “Adagietto”

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

이윽고 안에 들어있는 약 50종의 유명한 교향곡들의 리스트를 빠르게 넘긴 상혁의 시야에, 상혁이 찾던 곡들의 리스트가 들어왔다.

[구매] [Space Wars ep3. OST “Dual of fate”

우주 전쟁 에피소드 3 OST “운명의 대결”]

[구매] [Howl's Moving House OST “Merry Go Round of Death”

하울의 움직이는 집 OST “죽음의 회전목마”]

일반적인 교향곡이 아닌, 음원 제작사와 제휴하여 만든 유명 OST들.

유저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직접 구매하여 게임 안에서 제자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게 만든 구매 페이지.

그것은 2차 NE 컨벤션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RFU의 또 다른 핵심 기능이었다.

***

약 두 시간에 걸쳐 상혁은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고, 기존에 있는 곡의 이미지를 바꿔서 연주하고, 제자들과 섬마을을 벗어나 도시의 연주회장에서 콘서트를 하기도 하면서, RFU라는 게임이 전달해 주는 재미에 흠뻑 젖은 채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테스트를 마치고 7번 테스트 룸의 밖으로 나온 상혁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 게임의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PTW의 작곡가이자 음악 전문가.

남성연이었다.

“어땠어?”

초조한 표정으로, 남성연은 상혁을 향해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상혁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고네요. 이 정도라면 DLC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인게임에서 추가 결제를 통해 악곡을 구매하게 하고 싶다는 성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혁은 성연의 의견을 단칼에 잘라냈었다.

적어도 PTW게임에 있어서만큼은, DLC를 넣고 싶지 않다는 게 상혁의 생각이었기에.

그러나 성연은 DLC를 넣더라도 원하는 곡을 게임 안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쪽이, 유저들에게 훨씬 즐거울 것이란 논리로 상혁을 설득했고, 그 증거로 상혁에게 미리 물어봐서 게임에 집어넣어 놓은 애니메이션 OST를 상혁이 직접 연주하게 했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곡을 직접 연주한 이후에도,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성연에게 말했다.

“멋지긴 한데, 그래도 제 대답은 No입니다.”

“어째서?”

“이거, 녹음할 때 어떻게 하셨어요?”

“그야 평소에 클래식 녹음하듯이 연주자들 연주를 하나하나···. 아···!”

“그렇죠? 이게 다른 리듬 게임같이 라이선스 따서 MP3 넣으면 돌아가는 그런 게임이었으면 모르겠는데, RFU는 곡 하나 집어넣으려면 손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가요.”

기본적으로 RFU에서 재생되는 음악은, 연주자들이 개별적으로 녹음해서 만든 소리를 동시에 재생하여 개별적으로 컨트롤 하는 형태로 삽입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스토리 모드에서 동작하게 하기 위해서는, 각 연주자의 습관이나 실수까지 캐릭터에 맞춰서 전부 구현하여 녹음할 필요가 있었고.

RFU는 첫 연주부터 숙련된 수준까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게임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마스터 연주자가 연주한 독립된 녹음 파일을 적용하는 것으로는 쓸 수가 없었다.

상혁은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었다.

“곡 하나 넣으려면 저희 연주자들이 그 곡의 초보 수준 연주부터 숙련 수준 연주까지 전부 녹음해야 해요. 그건 아예 실제 공연을 위해서 곡을 연습하는 거랑 비슷한 시간과 노력이 들 거고요. 게다가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원곡 제작자와 연주자들의 가이드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곡 하나 추가하는데 그렇게 큰 노력이 들어가는데, 라이선스 비를 제외하고 나면 한 곡 당 얼마를 받던 적자를 감수해야겠죠.”

“그래도 하나 구현하고 나면 그 이후는 순이익이니까 많이 팔면 보전되지 않을까?”

“가능할 수도 있죠. 그리고 사실 적자는 문제가 아니긴 해요. 문제는 그런 식으로 업데이트를 하려면, 계속 지금의 연주자분들이 회사에 남아 계셔주셔야 하는데, 앞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건 괜찮습니다.”

그때, 상혁의 이야기를 듣던 연주자 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녀는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서 지휘의 보조를 맞추는 역할을 하는, 콘서트 마스터 캐릭터의 역할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저희는 만약 PTW에서 저희를 자르지 않는다면 앞으로 몇 년이 되던 이 게임에 들어가는 OST의 녹음 작업을 맡아서 하는 것에 전원이 합의했습니다. 돈 문제야 어쩔 수 없지만, PTW에서 필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 단순히 저희의 노력이라면, 저희가 그것을 제공해 드릴 각오가 되어 있어요.”

“게임 수명이 늘어날수록, 들어가는 곡이 수십 수백곡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쉬지 않고 계속 새 곡을 연습하며 미친 듯이 녹음 작업에 참여해야 할 거고요. 이미 RFU의 기본 곡들을 녹음하는 데도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고생을 다시 감수하시겠다는 겁니까?”

“예.”

“어째서요?”

상혁이 묻자 뒤쪽에 모여있던 연주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RFU를 플레이할 때, 게임 속 제자들이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게임 안에서 그녀가 맡은 캐릭터가 그랬던 것처럼, 맑은 눈을 반짝이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상혁을 향해 말했다.

“저희가 이 게임을 사랑하니까요.”

적어도 상혁에겐, 이 안건을 추진해야 할 더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었다.

“좋습니다. 개발자들이 유저들을 위해서 지옥 길을 마다하겠다는데, CCO인 제가 막을 순 없죠. 전력으로 밀어드리겠습니다. 현주 선생님. 일본행 비행기 표 좀 구해주세요. 내일 출발하는 거로요.”

“일본?”

“예.”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음원 라이선스 영업 좀 하러 가야 할 것 같으니까.”

RFU의 OST 구매 기능은,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쳐서 구현된 기능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DLC 없이 가고 싶긴 한데, 곡의 100% 재현을 위해서는 음반사 측에서도 꽤 부담을 많이 져야 하니까, 그건 어쩔 수 없죠. 6만 5천 원짜리 게임 팔아서 매출 전부를 라이선스비에 꼬라박을 수도 없을 거고요.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하고 곡을 추가하려면, DLC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까.”

“그래. 그래도 유저들은 좋아할 거야.”

웃으며 말하는 성연에게 상혁도 미소로 답했다.

“그렇겠죠. 저도 좋아하는 곡을 RFU로 플레이하니 소름이 돋더라고요.”

“그럼 하나만 더 물을게. 이번에 발매되는 3개의 게임 중에 EOD는 이미 발매가 됐잖아. 그럼 상혁이 네가 생각하는 RFU의 평점은 얼마 정도 돼?”

“100점 만점으로요?”

“어.”

“99점 정도 되겠네요.”

“100점은 아닌 건가? 1점이 모자란 이유가 뭔데?”

“딱히 RFU에 문제가 있어서 1점을 안 준 건 아닙니다. 다만 100점을 받아야 할 게임이 따로 있으니까 99점을 드린 거지.”

“그 게임이···.”

“예. 맞습니다.”

상혁이 말했다.

“OGC. RFU도 잘 만든 게임이긴 하지만, OGC는 진짜 높은 장벽이니까요.”

상혁이 말한 대로, 이미 완성단계에 도달한 RFU조차 한참 개발 중인 OGC의 재미에는 도달하지 못할 정도로, OGC의 게임성은 압도적인 상태였다.

“뭐, 그래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실제로 유저들이 처음 접하는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놀라움은, OGC가 아닌 RFU가 주게 될 테니까.”

“그럴까?”

“내기해도 좋아요. RFU가 발매되는 날, 게임업계가 뒤집힐 거라는 데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눈은, 곧 다가올 RFU 출시의 성공에 대한 확신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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