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33화 (234/485)

233. Win-Win

“이건···. 엄청나네요.”

상혁이 건넨 기획서를 넘겨보던 재중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상혁에게 말했다.

상혁이 그에게 보여준 기획서.

그 안에는 상혁이 생각하는 온-오프라인을 초월한 유저와 AI간의 ‘커뮤니케이션의 형태’가 온전히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기획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드시 이 폰을 가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매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팅 콜 기능.

OGC내에서 AI들과 함께 다음 게임 할 시간을 특정할 경우, 해당 시간에 게이머가 게임을 구동하지 않을 시 AI가 전화로 게이머를 호출.

▶캐릭터 메시지 기능.

SMS 시스템을 사용하여 OGC내의 AI 친구들이 플레이어에게 자유롭게 메시지를 보냄.

▶워크패스트 채팅방 기능.

같은 동아리 AI들이 만든 워크패스트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으며 플레이어가 대화를 하지 않아도 AI끼리 자유롭게 대화함.

AI는 채팅방에서 유머 글을 공유하거나 너튜브 영상을 추천하기도 하는 등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취함.

그 외에도 초기 제안서에 있었던 알람이나 스케쥴 관리 등의 기능과 일기예보와 연동되어 아침에 그날의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우산을 챙겨가라고 이야기하거나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고 하는 등 진짜 ‘친구’라면 할법한 기능들로 가득 찬 제안서가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왜 BFF엔진이라고 네이밍했는지 이해가 가는 기능이군.’

하지만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와, ‘이런 걸 만들어야 한다’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 할 수 있었기에, 재중은 진지한 표정으로 상혁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 모든 기능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구현하실 겁니까?”

“그건 여기 있는 민준이 설명해줄 겁니다.”

상혁이 말하자 상혁의 뒤쪽에 앉아 있던 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PTW의 CTO를 맡은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이번 협업 관련하여 소프트웨어 분야 쪽 지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아, 그 유명하신···.”

굳이 게임업계가 아니어도, GOS와 MYOM, 코넥트와 워크패스트, 포수 회귀의 텍스트 시뮬레이션 엔진 등 민준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그 예술 같은 코딩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애당초 민준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PTW라는 회사 자체가 존재하지 못했을 거라는 평가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대체 저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코딩 실력을 쌓았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재중은 긴장된 표정으로 민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그리고 그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상혁은 싱긋 웃으며 재중에게 농담을 건넸다.

“지금은 영광이라 하시지만, 협업이 시작되면 아마 악마라고 부르시게 될 겁니다.”

“실력 있는 사람과 일하는 것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즐거운 법이죠. 많이 배울 기회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민준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면서도 극히 저자세를 보이는 재중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 인사는 이쯤 해 두고,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구현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도 될까요?”

“그래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일단 먼저 말해두지만, OGC에 들어가는 커뮤니케이션 엔진과, 갤럭틱 폰에 들어가는 BFF엔진은 다르면서도 같은 엔진이라는 것을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민준은 화이트보드에 3개의 커다란 원을 그렸다.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3개의 메인 프레임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게임 안에서 현재 플레이의 ‘상황’을 코드로 만들어 브레인에 전달하는 ‘상황 분석기’. 그리고 상황 분석기가 보낸 코드를 받아 지정된 성격의 AI가 그 코드에 어떠한 답을 낼지를 지정하는 ‘시냅스 엔진’. 마지막으로 시냅스 엔진에서 최종 결정된 코드를 가지고 해당 코드에 맞는 대사를 찾아서 출력하는 ‘범볼비’. 이렇게 3가지로 구성되어 있죠.”

“범볼비라면 그 로봇이 변신하는 영화에 나오는···.”

“맞습니다. 목을 다친 로봇이 라디오 방송 주파수를 가지고 자신이 의견을 내비칠 수 있는 대사를 출력하듯이,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범볼비는 수천만 개의 대사 속에서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대사를 선택하는 AI 알고리즘입니다.”

“그러니까 입력-판단-출력의 과정을 거친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학습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재중의 질문에 민준이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저희 AI는 학습하지 않습니다.”

“예?!”

“그러니까 지정된 패턴 외에, 새로운 패턴을 학습하여 만들어낸다거나, 유저의 대화를 분석하여 DB에 없는 대사를 출력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냥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의 대사를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적고, 그 상황에 맞는 코드를 출력하는 무식한 방법을 쓰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학습 없이 그 정도 수준의 AI를 완성했다는 겁니까?”

“예.”

민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순전히 노가다죠.”

“충격적이네요.”

“오히려 사람이 만들었기에 더 사람다운 점이 강조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때, 민준의 이야기를 듣던 재중이 뭔가를 떠올린 듯 민준에게 물었다.

“방금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학습 기능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 OGC 베타버전에서 나온 인공지능의 성장은 어떻게 구현된 건지 물어도 될까요?”

OGC 베타버전에서 유저들이 가장 감탄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성장하는 AI’였기에, 재중은 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민준은 그런 재중의 질문을 받고는 화이트 보드의 옆에 새로운 동그라미를 그리며, OGC의 AI가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AI 성장은 성장이 아니라 ‘기억’이 늘어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대화 도중에 유저가 어릴 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는 사실을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했다고 치죠. 그래서 자신은 부모님 관련 주제가 거북하다고 AI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럼 AI는 이런 식으로 토픽을 연관 짓습니다.”

민준은 동그라미 안에 글자를 적어 선으로 연결했다.

[플레이어]-[싫어하는 것]-[대화 주제]-[부모님]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화 상황 자체를 분석해서 구조를 생성하기 때문에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런 느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해당 대화를 진행한 AI의 시냅스에 저장되죠. 그리고 대화 중에 범블비가 최종적으로 대사를 결정할 때, 해당 AI가 보유 중인 시냅스를 체크해서 해당 주제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막는 거죠.”

“그럼 그 ‘시냅스’라는 건 성격별로 따로 존재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해당 내용을 듣지 못한 AI는 대화를 할 때 해당 주제를 피하지 않게 되고, 그럼 다른 AI가 플레이어가 그 주제를 불편해한다며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식입니다.”

“사람 같네요.”

“사람같이 만들려고 한 거니까요.”

민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저희가 패치를 하지 않는 이상은,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배우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이미 존재하는 단어 시냅스인 ‘냉장고’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우주 냉장고’ 같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패치를 하지 않으면 적용할 수 없죠. 그게 가능하게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수준의 AI가 필요할 테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게임 전용으로 만드신 거군요.”

“그렇죠. 게임이란 건 애당초 대화의 범주가 고정되어있으니까, 플레이 관련 대화만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두면 대부분이 대화 패턴은 커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거기까지 들은 재중이 뭔가를 깨달은 듯 민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말은 BFF엔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황에 맞는 모든 대사를 전부 작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게다가 상황도 게임에 한정되는 게 아니니 대사량도 엄청나게 늘어날 거고요.”

“맞습니다.”

“그럼, 사람이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게 될 것 같은데요.”

“뭐, 그래서 좀 보정을 하긴 해야겠죠.”

민준이 웃으며 말했다.

“방금 전 이야기 했었죠?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모든 대화’를 지원하지는 않는다고요.”

“게임 관련 상황에 대한 대사만 지원하는 거죠. 기억하고 있습니다.”

“BFF엔진도 같은 방식으로 구현할 겁니다. 정확하게 저희가 구현하려는 상황에서 발생 가능한 대부분의 대화를 구현해놓고, 나머지 대화는 무시하게 하는 거죠.”

“어색하지 않을까요?”

“그야 유저가 어색할 수밖에 없는 패턴의 대사를 던지면 어색하겠죠. 그건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구조상 어쩔 수 없어요.”

“유저들이 그런 AI에 만족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족할 겁니다.”

민준이 확신을 담아서 말하자, 재중이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유저들은 당연히 완전히 인간 같은 AI와 대화하길 원할 텐데요.”

“그럼 왜 하지 않으시나요?”

“예?”

뜬금없는 민준의 말에 재중이 되묻자, 민준이 다시 말했다.

“지금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던, 대답이 가능한 AI보다 뛰어난 상대와 대화 중이시잖아요? 그런데 왜 다른 주제를 꺼내지 않으시냐고 묻는 겁니다.”

“그야 당연히 지금 대화하는 주제가 커뮤니케이션 엔진 관련···. 아!”

“이해되시죠? 기본적으로 SARI같은 AI비서는 유저의 호출을 받아서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유저가 뭔가 이야기를 꺼내면, 그에 반응해야 하는 거죠. 그건 마치 둘이 게임을 시작해야 하는데 무슨 게임을 시작할지 상대가 고르게 하는 것과 같죠. 상대가 틱택토를 고를지, 바둑을 고를지, 체스를 고를지, 장기를 고를지 모르는 상태에서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그걸 AI가 선택하는 겁니다. ‘이번엔 바둑을 둘 거야. 니가 흑 돌을 잡아’라고요. 적어도 그렇게 함으로써, 주제를 컨트롤하여 해당 주제에 필요한 대화량을 한정 지을 수 있죠.”

“그렇군요.”

“다시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기본적으로 AI가 사람에게 말을 거는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는 겁니다. 대화 주제도, 상황도, 대화 내용도 AI가 가이드하죠. AI가 물으면, 유저가 대답하는 겁니다. 그 상황에서 뜬금없이 황당한 주제로 이야기를 돌리려 할 수도 있지만, 그걸 무시한다고 해서 그게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유저는 없습니다. 그냥 자신이 무리하게 주제를 돌리려고 했나보다 생각하는 거죠. 실제 친구랑 대화할 때도 그런 식으로 자기 멋대로 대화 주제를 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SARI를 ‘대답하는 AI’라고 한다면,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말을 거는 AI’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이 대사를 일일이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질감 없이 진짜 사람과 비슷한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고.

민준의 설명은 그런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동작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좋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네요.”

“가능합니다. 실제로 돌아가는 샘플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건 거치형 콘솔에서 돌아가는 거고, 아예 전용 칩셋으로 AI연산을 보조하면서 구현한 것이지 않습니까? 모바일 플랫폼의 성능으로는 한계가 있겠죠.”

“맞습니다. 필요한 대사 전체를 기기안에 다 쑤셔 박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앱을 설치할 내부 용량도 부족해지겠죠.”

“그래서 클라우드를?”

“맞습니다. 대용량의 데이터 서버와 AI연산 장비가 갖추어진 전용 설비를 이용하면, 수많은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보내는 패킷에 대응해서 적절한 대사를 출력해낼 수 있겠죠. 모바일 본체에는, 음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TTS엔진과 시그니쳐 더빙 데이터만 들어가면 될 거고요. 물론 그것도 용량은 클 겁니다. 그러니 해당 기능을 지원하는 스마트폰은 그 모든 데이터가 들어갈 수 있도록 용량을 넉넉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최우선으로 고려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은 구체적으로 데이터 센터의 위치와 설비에 관해서인데······.”

어느새 두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두 엔지니어를 보면서,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혁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선택한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에 대해 생각했다.

답은?

상혁도 모른다.

민준도 자신도 회귀자였지만, 지금 PTW가 걸어가는 길은 회귀 이전에도 없었던 길이었으니까.

매번 게임을 출시할 때마다, 그것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자신이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

그 수많은 시도 중의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아마도 PTW는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파산했을 수도 있지.’

MYOM이든 TAW든, 심지어 마리의 눈물이나 나이츠 어셈블 때도, 매번 게임이 나올 때마다 회사의 기둥뿌리를 걸고 게임을 만들었던 것을 떠올릴 때마다, 상혁은 마치 지뢰밭을 걸어온 듯한 살벌함을 느꼈다.

그 지뢰밭은, 지금도 PTW가 한창 걷고 있는 중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절대 삼정을 위해서 선택한 길이 아니었다.

상혁이 삼정과 협력하여 갤럭틱 폰 전용 기능을 구현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민준은 상혁에게 이렇게 물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딱히 그런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도, 모바일 연동 같은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아도, OGC는 지금 그대로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그런 민준을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 버전이 재미있다고 그냥 내놓을 거면 해외판 성우도 굳이 구할 필요는 없었지. 만약 삼정과 협력해서 유저들이 게임기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OGC의 AI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정말 멋질 거 같지 않아?’

‘그거야 당연히 멋지긴 하겠지. 유저들도 좋아할 거고. 그런데 그렇게 해서 들어가는 노력에 비하면 얻는 게 너무 작잖아.’

민준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그 기능이 없어서 욕을 먹을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굳이 유저들이 상상도 하고 있지 않은 기능을 억지로 구현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상혁은 회귀하면서 스스로 정한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싶었다.

‘만약 우리가 어떤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린 그 모든 것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막상 까보니 속은 텅텅 비어있는 게임.

멋진 컨셉을 가지고도 만들다 만 버전을 출시해버리는 게임.

유저의 믿음을 가지고, 게임이 출시되기도 전에 온갖 기부는 다 받아놓고 막상 유저에게는 쓰레기 더미 한 뭉치를 안겨주는 게임.

상혁은 현실이란 벽 때문에 더 나아질 수 있는 게임이 망가진 상태로 출시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기에, PTW의 게임만큼은 그런 식으로 개발되지 않기를 바랐다.

적어도 PTW의 게임을 하는 유저들만큼은, 그 게임을 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 게임은 이것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

‘이것보다 더 나은 형태의 이 게임을 상상할 수 없다.’

‘이 게임은 이대로 완벽하다.’

유저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길이 없으면 모르되 길이 보이는 순간은 보이는 모든 길을 전부 개척해야 한다는 게 상혁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아예 존재하지 않던 길에 대한 힌트를 삼정이 보여준 것이었고.

그래서 상혁은 개인적으로 삼정에게 고마웠다.

안 그래도 재미있는 게임을, 정말로 더 멋진 게임으로 만들 기회를 주었으니까.

‘그리고 거기 들어가는 돈도 다 대준다고 하시니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상혁이라도 BFF엔진의 구현을 위해 필요한 클라우드 센터의 건립비용을 전부 PTW가 부담해야 했다면, 아마 절대로 이 계획을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PTW가 자금에 여유가 있는 편이긴 했지만 하나 만드는 데만 수천억이 드는 클라우드 센터를 전 세계에 지을 자금력까지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남의 돈으로’ PTW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상혁은 주용의 배려를 100%활용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좋아. 뜯어먹을 만큼 뜯어먹어 주지. 대신 답례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만한 그런 물건을 줄 테니까.’

그것은 돈이 얼마가 들던, 삼정의 부회장인 이주용이 간절히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

“MOU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도 파악이 안됐나?”

“예. 죄송하지만,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아니, 보통 MOU를 한다고 하면 어떤 내용으로 협력하는 건지 발표하는 게 관례 아닌가?”

탐 쿡은 내용이 하나도 적혀있지 않은 보고서를 보며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삼정과 PTW가 MOU를 발표한 지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와플이 가진 모든 정보망을 동원했음에도 해당 협약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그를 엄청나게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혹시 TV나 가전 관련 MOU가 아닐까요?”

보고서를 가져온 직원이 조심스레 묻자 탐 쿡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야 이 자식아! 삼정은 PTW 게임 전용 가전을 예전부터 내놓고 있었다고! 그럼 그전엔 왜 MOU발표를 안 했겠나?”

“하, 하지만 한국에서 새로운 콘솔 게임기를 개발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스마트폰 관련해서는 워크패스트 서비스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PTW에서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확률은 매우 낮···.”

“그 매우 낮은 확률이 현실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는 거다! SANY의 PS4가 벌써 실패작 소리 듣는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냐!?닥치고 무슨 수를 써서든 해당 MOU의 내용을 파악해오라고! 삼정이나 PTW에서 새로 등록한 특허를 뒤지던, 아니면 산업스파이를 넣어서라도 반드시 알아내란 말이다!”

그렇게 와플 본사에서 탐 쿡이 부하직원에게 소리 지르는 동안, 상혁은 주용과 전화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상혁이 예측해서 알려준, 와플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상혁 씨 말대로 와플에서는 MOU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라고 발표한 MOU니까요.-

-하하하! 이래서 내용 없는 MOU 발표를 그렇게 크게 떠드신 거였군요?!-

원래 주용은 상혁에게 MOU에 대해 발표를 하지 말자고 이야기했었다.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다가, 준비되었을 때 상대를 치기 위해서.

그리고 상혁은, 그런 주용의 제안을 받는 대신, 내용 없는 발표를 통해 상대를 움직이게 하자고 제안했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양사의 진정한 업무 협력에 대한 보안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쇼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와플에서도 경쟁사의 움직임은 전부 파악하고 있을 테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내용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만들어내겠죠. 하지만 이렇게 뭔가 숨기는 척하면서 내부에 가짜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면, 상대는 자신이 찾아낸 비밀이 진짜라고 믿게 될 겁니다.-

상혁이 준비한 ‘미끼’는, PTW가 삼정과 협력하여 최신 갤럭시 스마트폰에 ‘코넥트’의 일부 기능을 이식한다는 내용의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주용은, 그 프로젝트가 미끼가 아니라 실제로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 가짜 프로젝트도 괜찮아 보여서 실제로 진행했으면 하는데요.-

-돈만 주시면 그것도 해 드리죠. 근데 코넥트는 애당초 8세대 콘솔 성능을 고려해서 만든 주변기기라 스마트폰에 이식할 정도로 소형화하는 건 아직 어려울 겁니다. 한 5년 후면 몰라도.-

-그럼 저희 쪽에서 한번 검토해보고 스마트폰에 탑재할 수 있는지 한번 검토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아, 그리고 저희 쪽 엔지니어가 올린 보고서를 봤습니다. 엄청나더군요. 정말로 그런 스마트폰이 있다면, 그게 경쟁사 스마트폰이라도 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원하신 게 그거 같아서 그대로 해 드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희도 덕분에 더 재미있는 게임을 발매할 수 있게 됐고요. 결과적으론 Win-Win이라고 봐야죠.-

-Win-Win이라.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보기 힘든 단어군요. 상혁 씨 말대로, 이번 협력이 Win-Win 관계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서로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미소 짓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8세대 콘솔 시장과 스마트폰 시장을 앞에 두고, 두 개의 전혀 다른 대기업이 벌이는 본격적인 점령전이 지금 막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러나 상혁에게는 와플과의 전쟁이 될지도 모르는 삼정과의 협업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VR기기 개발부터 코넥트에 갤럭틱폰 개발까지, 게임회사답지 않게 온갖 프로젝트에 손을 대는 PTW였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콘솔 게임 전문 제작사였으니까.

‘본업을 소홀히 하면 안 되지.’

상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삼정과의 협업이 아니라 당장 5월 발매를 앞둔 RFU의 개발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OGC의 베타테스트를 즐기고 있는 유저들을 제외하면, RFU야 말로 유저들이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접하게 되는 첫 번째 게임이 될 것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OGC에만 탑재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줄 때가 다가오는군.’

이미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상혁은 최종 테스트를 위해 테스트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멋진 게임이 출시되고 나서 유저들이 보여줄, 뜨거운 반응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빨리 발매일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철야 중인 직원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만한 생각을 하며, 상혁은 테스트 룸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제 겨우 4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은, RFU의 최종 버전의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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