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모바일 패권 경쟁
“SARI와 커뮤니케이션 엔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SARI는 진화한 차세대 AI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만들어진 AI이고, PTW의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사람이 대화상대가 AI임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엔진이죠.”
와플에서 AI 개발 총괄을 맡은 로먼 위지스키가 입을 열었다.
그는 SARI의 원래 개발사였던 SRI시절부터 SRI가 와플에 인수된 이후까지 계속 SARI의 AI 개발 관련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AI 전문가였다.
그런 그는 두 AI의 탄생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자신의 설명을 시작했다.
“SARI는 애당초 학습하는 AI비서라는 것을 컨셉으로 만들어진 AI프로그램입니다. 그것은 전화로 택시를 잡고, 미용실을 예약하고, 알람을 설정하고, 스케쥴을 관리하는 AI비서를 컨셉으로 개발되었죠. 현존하는 AI중 가장 강력한 AI이며, 가장 사람을 닮은 AI를 목표로 말이죠.”
그의 설명을 듣던 탐 쿡이 그에게 물었다.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다르다는 건가?”
“그렇죠. 그건 정확히 말하면 AI가 아니라 유사 AI입니다. SARI가 인간의 언어체계를 이해하여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형태의 AI라면,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단순히 특정 상황에서 어떤 대사를 호출할 것인가만을 AI가 결정하고 그 대사 자체는 인간이 전부 작성하는 방식이죠. 정확히는 프로그램을 까 봐야 알겠지만, 현재 공개된 정보로 볼 때 적어도 수백만에서 수천만의 대사 데이터를 사람이 수동으로 작성했을 겁니다. 그건 미친 짓이죠. 적어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온갖 상황에 맞춰서 그 많은 대사를 전부 작성하고, 대사마다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대사인지 일일이 설정해줬어야 할 테니까.”
“우리는 그렇게 못하나?”
“못하죠?”
“우리도 수백 명을 고용해서 그런 작업을 시키면 되지 않나?”
“아뇨, 그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누군가 당신에게 막대한 연봉을 주면서 수십만 줄의 대사를 만들라고 하면, 그걸 단순히 돈을 위해서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하십니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요.”
“PTW는 해 내지 않았나?”
“그거야 애당초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간들이 전부 미친놈들이니까 가능한 거겠죠. 게임업계엔, 사소한 거 하나의 완성도를 올리려고 목숨을 거는 개발자들이 많으니까. 물론 그중에서도 PTW는 좀 특별한 케이스지만.”
탐 쿡의 안색이 어두워지기 전에, 로먼은 추가 설명을 덧붙여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애당초 SARI에서 가능한 대부분의 기능은 OGC에서 돌아가지 않고, OGC에서 보여주는 사람같은 AI는 단순히 같이 게임을 하는 것 외에는 완전히 쓸모가 없는 존재니까요. 서로 시장이 겹치지 않으니 문제가 될 것도 없죠. 애당초 PTW에서 보여준 AI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게이머들이 그걸 저희 SARI와 같은 AI계열로 취급할지도 의문이고요.”
“만약 그들이 다른 회사에 그 AI기술을 판다면?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PTW가 위치한 한국에는 그 삼정이 있어. 우리 와이폰의 유일한 대항마라 할수 있는 갤럭틱 폰의 개발사, 삼정 말이네.”
“애당초 8세대 콘솔의 강력한 성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AI처리 능력이 모자라서 콘솔 개발사에 전용 칩셋 설치까지 요구해야했던 기능입니다. 현존하는 모바일 성능으로 절대 구현 가능한 수준이 아니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혹시 클라우드로 구현하면 몰라도.”
“클라우드라면···.”
“AI연산을 처리할 별도의 거대한 연산 설비를 마련하고, 스마트폰은 단순히 수신기와 발신기 역할만 하게 하는 거죠. 애당초 코넥트에 있는 음성 인식기술과 OGC에 있는 TTS 엔진만 스마트폰에서 처리하게 하고, AI의 대사 자체는 패킷으로 클라우드 센터에서 처리하게 하면 현존하는 스마트폰으로도 구현은 가능할 테니까요.”
“그럼 그걸 걱정해야 하지 않겠나?”
“뭣 하러요?”
로먼이 말했다.
“PTW는 게임회사입니다. 그들에겐 굳이 스마트폰 시장에 대화 가능한 AI 엔진을 따로 출시할 이유가 없고, 패키지 콘솔 게임 전문 제작사가 갑자기 스마트폰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나설 이유도 없겠죠. 그리고 만약 그들이 스마트폰으로 커뮤니케이션 엔진을 이용한 게임을 낸다 하더라도, 그건 와플과 안드로이드, 양대 진영에 동시 발매될 겁니다. 저희의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압도적이고, PTW가 게임을 만든다면 굳이 시장 절반을 포기하면서 한쪽 마켓에만 낼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만약 스마트폰 시장에 그들이 진출한다 하더라도, 점유율 때문에 와플 스토어에 진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죠.”
로먼이 미소지었다.
아무리 돈을 추구하지 않는 회사라 하더라도,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마켓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PTW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어떤 회사가 어떤 약속을 하던 그들이 보기엔 와플 스토어에서 앱을 출시해서 벌 수익보다 많아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쪽에서 무슨 비즈니스 모델을 쓰던 수수료 30%만 받아먹으면 됩니다. 전 오히려 PTW가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했으면 좋겠네요. PTW의 스마트폰 게임 출시는 아마도 콘솔 유저들을 스마트폰 게임 시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미끼가 될 테니까.”
탐 쿡의 입가에 마침내 미소가 떠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와이폰 전용 게임을 내 주었으면 더 좋겠군.”
“그건 어려울 겁니다. 삼정이나 구글에서 와플 스토어 진출을 포기하게 하기 어려운 만큼, 저희도 PTW에게 안드로이드 진영 포기를 강요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 테니까요.”
“아예 인수를 고려해보는 건 어떤가?”
“거긴 콘솔 게임 개발업체인데요?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업체죠.”
“하지만 PTW에는 콘솔 게임만 있는 건 아니지. 워크 패스트는? 현재 모바일 메신저 점유율에서 독보적인 1위이지 않나? 양대 진영 모두 포함해서. 그 정도면 인수할 가치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실 탐 쿡은 워크패스트의 존재가 거북했다.
PC 점유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 괴상한 프로그램은, 어느새 와이폰과 안드로이드에도 출시되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광고 없는 완전 무료.
메신저 기능과 음성 통화, 영상통화와 바코드 리더, 각종 오피스 뷰어 등 온갖 플러그인으로 무장한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설치하는 플러그인에 따라 스마트폰을 바코드 리더기로, 매출 관리 기기로, 물류 관리 기기로 바꾸기도 하는 등 이미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그 모든 기능이 무료라는 이유로, 타 스타트업이 새로운 BM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위협으로 워크패스트를 꼽을 정도였다.
‘하긴 우리 회사에서도 업무 프로그램은 워크패스트를 쓰니까.’
몇 개 업체에서 독과점 법 위반으로 법정 소송을 걸기도 했지만 애당초 약관에 ‘영원히 무료’라고 박혀있는 깡패 같은 프로그램에 독점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는 없어서 소송은 전부 PTW의 승리로 돌아갔다.
애당초 전 세계 법원에서도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워크패스트였기 때문에.
그리고 탐 쿡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는 순간 엄청나게 벌 수 있을 텐데 왜 약관에 영구히 무료라는 조건을 달았을까?’
애당초 유지보수에만도 막대한 비용이 들 텐데, 탐 쿡은 어째서 게임회사에서 업무 솔루션을 붙잡고 전 세계에 공짜로 뿌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의도로 그토록 강력한 무기를 쥐고 있는 상대는, 생각하면 할수록 뒤통수를 찝찝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차라리 품 안에 넣고 통제하고 싶어질 정도로.
그러나 로먼은 그런 탐쿡의 의견에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인수의 ‘인’자만 꺼내도 MS에서 미친 듯이 달려들 텐데, 안 그래도 비츠 인수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PTW를 품는 건 부담이 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을 좀 다르게 해보자고. PTW에서 워크패스트의 유지보수를 위해 쓰는 돈을 생각해보게. 그건 게임회사가 지불하기엔 막대한 비용이지. 이미 약관에 영구히 무료라고 적어놨으니 유료화도 불가능하고. PTW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계륵 같은 존재라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PTW를 통째로 인수하는 게 아니라, 워크패스트 사업부만 인수하는 걸 말씀하시는 거군요?”
“바로 그거야. 기존 고객을 우리가 그대로 승계받는 조건으로, PTW가 워크패스트의 텍스트 게임으로 내는 매출은 수수료 없이 그대로 보장해주고, 영구 무료로 서비스 중인 부분도 보장하는 거지. PTW입장에서는 수익도 되지 않는데 막대한 노동력과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워크패스트를 손절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그 부담은 저희가 지게 되지 않습니까?”
“위협이 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파악할 수 없는 상대가 쥐고 휘두르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돈이 들더라도 우리 손에 넣고 컨트롤 하는 게 낫지. 어차피 수익을 아예 낼 수 없는 워크패스트의 존재는, 게임회사엔 돈 잡아먹는 괴물 그 이상 이하도 아닐 테니까.”
“그들이 받아들일까요?”
“받아들일 겁니다.”
탐 쿡이 말했다.
“백번 생각해봐도, 워크패스트를 그들이 가지고 있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그리 크지 않으니까요. 안 그래도 워크패스트의 존재는 타 사업자들이 메신저나 업무솔루션 시장에 진출하는데 커다란 장벽이 되어버리기도 했죠. 로먼 씨는 최근 5년 사이에 나온 신규 메신저나 업무 솔루션 앱을 본 적이 있습니까?”
탐 쿡의 질문에 로먼은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없네요. 애당초 그쪽 시장은 워크패스트가 일반화되고 나서 전멸했으니까요.”
“그렇지. 사실 광고 없는 완전 무료 서비스라는 게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세상에 손해 보기 위해서 운영하는 서비스라는 건 존재할 수 없어요.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건 말 그대로 협박용으로 운영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선의로 서비스 중일 수도 있지요.”
한 임원의 말에 탐 쿡이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선의?”
그리고 그는, 적어도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확고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은 절대 선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게 사업가라면.”
“그럼 PTW에서 워크패스트를 운영하는 의도가 협박용이라는 가정 하에, 저희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마케팅을 담당하는 한 임원의 말에 탐 쿡이 답했다.
“그렇게 강력한 무기를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상대가 휘두르게 둘 수 없죠. 먼저 PTW가 와플과 같은 편에 설 의향이 있는지를 파악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거라면 명확하게 밝혀진 것 같군요.”
그때, 와이폰을 만지작거리던 한 임원이 탐 쿡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PTW가 어느쪽 사이드에 서 있는지, 이제 명확해졌다는 뜻이죠.”
그렇게 말한 임원은 자신의 와이폰을 탐쿡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넘겨준 스마트폰의 화면에 떠 있는 것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된 한국 언론에서 발표된 인터넷 기사였다.
그러나 탐 쿡은 한글을 한글자도 읽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사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기사에 실린 사진 속엔, 환한 미소로 웃으며 악수하는 현주와 주용의 모습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뒤에 달린 현수막에는, 한글을 모르는 탐 쿡도 읽을 수 있는 영어 약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SAMJUNG’
‘PTW’
‘MOU’
그것은 한글을 모르는 그라도 한눈에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 것인지 파악하기에 충분한 정보가 담긴 사진이었다.
***
“진짜로 차기 갤럭틱 폰에 이런 기능이 들어갔으면 한다고요?”
탐 쿡이 이끄는 와플이 PTW에 대한 대응 여부로 고민하는 사이, 상혁은 삼정에서 보낸 스마트폰 개발 책임자들과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상혁이 제안한 컨셉은, 피쳐폰 시절부터 ‘캠코더 폰’ ‘매직 홀 폰’ ‘가로본능 폰’등 온갖 기괴한 컨셉의 휴대폰을 만들어온 그들에게도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 컨셉을 가지고 있었다.
“예. 저는 적어도 이 정도는 지원되어야 와이폰 유저들이 눈물을 머금고 갤럭틱 폰으로 전향할 거로 생각합니다.”
“콘솔 게이머야 그렇겠죠…. 하지만 이건 너무 극단적인 게임 지향 컨셉입니다.”
처음 이주용의 지시를 받아 갑자기 ‘게임회사’에 기술 협력을 위한 파견을 지시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대표가 PTW의 이름을 빌려 삼정에서 게이밍 전용 폰을 하나 개발하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적당히 좋은 성능에 패드나 좀 달아주고, 고성능 칩셋의 발열을 제어할 수 있는 냉각시스템 정도나 달아주면 끝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상혁이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게이밍 폰하면 으레 생각나는 그런 컨셉의 폰이 아니었다.
상혁은 PTW의 주 고객인 ‘콘솔 게이머’들이 확실하게 메리트를 느낄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차세대 스마트폰을 원했기 때문에.
콘솔 게임기 제작사이면서 스마트폰 제조사이기도 한 SANY는 그에 대한 해답으로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가진 콘솔과 원격으로 연결하여 클라우드 게이밍을 할 수 있게 만든 ‘리모트 컨트롤’이란 기능을 내 놓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과도기에 ‘PSP 폰’같은 괴작을 내기도 했었고.
그러나 그런 시도가 전부 망했다는 사실을 회귀자인 상혁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조금 다른 시점에서 갤럭틱 폰의 메리트를 제공하려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에 윤재중씨가 X-BOX나 PS를 가지고 있고, 갤럭틱 폰이 이런 기능을 지원한다면, 재중씨는 와이폰을 사시겠어요? 아니면 갤럭틱 폰을 사시겠어요?”
재중은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상혁이 말한 기능이 제대로 구현되어 있다면, 자신 역시 갤럭틱 폰에 강한 메리트를 느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로컬 클라우드라.’
상혁이 ‘로컬 클라우드’라 이름 붙인 기능은, 말 그대로 근거리에 있는 유저의 콘솔 게임기와 갤럭틱 폰을, 클라우드로 연결하는 기능이었다.
100만원에 육박하는 비싼 가격에 온갖 고성능 부품이 달린 스마트폰이란 기기를, 콘솔의 보조 연산 장비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보조 기기를 사용해서 장비 성능을 높인다는 개념은 사실 코넥트에서 한번 적용한 적이 있었기에, 상혁은 갤럭틱 폰 개발팀에 같은 기능의 적용을 요청했다.
“이전에 X-BOX 360시절에 코넥트와 연결된 X-BOX는 코넥트를 사용하지 않을 때도 코넥트 안에 있는 고성능 칩셋을 사용해서 성능 보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프로그램 단에서 지원해야 하긴 했지만, 해당 기능이 적용된 게임의 경우 프레임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만약에 갤럭틱 폰의 성능이 올라감에 따라 콘솔 게임기의 성능도 함께 올라가게 할 수 있다면, 콘솔 게임 유저는 무조건 갤럭틱 폰을 선택할 겁니다. 유저는 로딩속도나 그래픽, 프레임에 엄청 민감하니까요.”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가능할지 의문이네요. 쉽게 말하면, 유선, 혹은 무선으로 콘솔 게임기와 스마트폰을 연결 했을 때, 콘솔 게임기의 기기성능을 높일 수 있게 하는 기능이라는 거죠?”
“맞습니다.”
“흠···. 하지만 저희 개발진은 콘솔 게임기라는 하드웨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요.”
“그 부분은 만약 프로젝트 진행을 하겠다고 결정이 되면 제가 MS와 SANY측을 설득하겠습니다. 양사의 하드웨어 개발에 참여한 핵심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될 거고요.”
“흠, 저희는 패드가 달린 게이밍 폰 같은 걸 생각했는데, PTW에서는 전혀 다른 걸 생각하고 계셨군요.”
삼성의 스마트폰 엔지니어.
윤재중은 상혁이 보여준 제안서를 검토하며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만약 이 기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
‘제안서에 따르면 이번 8세대 콘솔의 예상 수명은 7년. 그 사이에 컴퓨팅 성능이 발전하면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콘솔의 성능을 2년 주기로 교체되는 삼정의 스마트폰으로 지원한다라···.’
상혁은 지금은 어렵더라도, 나중엔 PS4에서 스마트폰의 성능 보조를 받아 4K 해상도의 화면을 출력하며 유저가 게임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유저들을 강제로 갤럭틱 폰에 묶어놓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기에, 재중은 어째서 자신들의 경영진이 자신들을 스마트폰과는 전혀 관계없는 PTW라는 회사로 보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기술적 문제가 그의 심기를 거슬리고 있었다.
상혁이 지금 말하는 개념은, 적어도 그가 알기엔 단순히 스마트폰에서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기능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저희가 지원하려는 8세대 콘솔의 경우 이미 출시가 되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게임기들은 이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출시되었을 테고요. 저희가 지금부터 개발에 들어간다 해도 1,2년은 넘는 시간이 걸릴 텐데, 이 기능은 단순히 스마트폰에서만 지원하는 것으로는 구현할 수 없습니다. 콘솔 게임기에도 그 기능을 위한 부속이 들어가야 하죠. 이미 출시된 게임기에 어떻게 새 기능을 집어넣으실 생각입니까?”
재중의 지적은 정확했다.
애당초 이런 형태의 기능은, 지원하는 쪽뿐만 아니라 지원받는 쪽에서도 연산을 지원받기 위한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와서 그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하기엔, 이미 게임기가 출시되어버린 상황이라 상혁이 구현하고자 하는 기능은 ‘현재 콘솔에서는 지원 불가능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혁의 말대로 9세대 콘솔이 7년 후에나 나온다면, 말 그대로 앞으로 7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술이 될 것이고.
재중은 이주용이 ‘희대의 천재, 아니면 돌아이’라고 평가한 이 젊은 남자가 이 불가능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인가에 대한 강한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그의 지적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덤덤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굳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콘솔에 그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으면 지원할 수 없습니다.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별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의 미미한 성능 향상이 가능하겠죠.”
“아니, 제 말은, 그 기능이 필요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굳이 8세대 콘솔에 개발해서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미 추가되어있으니까요.”
“예?!”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재중에게, 상혁은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PTW가 초기 개발에 참여한 8세대 콘솔인 PS4와 X-BOX ONE의 입력 단자들의 사진이 있었다.
“여기 보시면 파란색으로 표시된 USB슬롯이 보이시죠?”
“예.”
“이건 작년 7월에 발표됐던 USB 3.1 단자입니다. 그리고 이 단자를 컨트롤하는 입출력 파트는, 저희 PTW에서 사용하기 위해 추가한 AI 칩셋의 연산부와 다이렉트로 연결되어 있죠. 그리고 저희가 설계한 AI칩셋은, 애당초 그 기능을 산정해서 개발된 칩셋이고요.”
“예?! 그게 가능합니까?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도 아니실 텐데요?”
“아, 물론 원래 이 기능은 스마트폰 연동을 위해 만들어진 기능이 아닙니다. 한 5년쯤 후에 PC 에 비해서 8세대 콘솔의 성능이 지나치게 떨어졌을 때, 외부 기기를 부착해서 콘솔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해보자는 컨셉에서 만들어진 기능이죠. 들어가는 보조 장비엔 5년 후 가격이 내려갔을 SSD나 대용량 메모리, 고성능 CPU와 GPU등을 달아서 넣을 생각이었고요. 그걸 통해서 콘솔 개발사들은 차세대 기기의 출시 없이도 게임의 그래픽 수준을 크게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겠죠. 원래 저 USB 3.1슬롯은 그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달아놓은 슬롯입니다.”
회귀자인 상혁은 같은 이유로 2016년 11월에 8.5세대 콘솔인 PS4-PRO와 2017년 11월에 Xbox One X가 발매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콘솔 유저들이 눈물을 흘렸는지도.
상혁이 발매 얼마 전 발표된 USB 3.1을 굳이 가져다 적용하겠다고 양사 개발팀에 땡깡을 부린 이유는, 바로 그런 유저들을 위해서였다.
물론 그것이 이런 상황에서 쓰이리라고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주워 쓸 수 있는 것은 죄다 주워 쓰는 게 상혁의 모토였기에.
“아, 물론 갤럭틱 폰이 그 기능을 가져간다고 해서 콘솔 개발사에서 보조 장비를 출시하는 걸 막을 순 없습니다. 애당초 그런 약속으로 넣은 장비가 아니니까. 그러니 와이폰 유저들은 보조 장비를 사서 갤럭틱 폰을 대신할 수 있겠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거의 콘솔 한 대 값에 육박하는 비용을 내고 자신의 콘솔을 ‘업그레이드’하는 것과 단순히 휴대폰을 사기만 했는데 그 기능을 ‘공짜로’ 누리는 것. 그 둘 중 과연 어느 쪽이 메리트 있을지를 말이죠.”
“그런 상황이라면, 저희는 전력을 다해서 이 기능의 개발에 매달려야겠군요. 어차피 연산 보조만 하는 것이라면 스마트폰의 성능을 빌려주는 것이니 기본 성능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고요. 차세대 스마트폰이 나올수록, 사용자는 그 폰의 성능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유한 게임기의 성능 향상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테니까.”
“바로 그겁니다. 뭐, 사실 그건 덤 같은 거고, 진짜는 이쪽이지만요.”
상혁이 웃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제안서를 꺼내 재중에게 내밀며 말했다.
거기엔 굵은 글씨로, 제안서의 내용이 담겨 있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Communication Engine for Galactic Phone
(갤럭틱 폰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엔진)]
“이게···.”
“맞습니다. 이번 MOU의 핵심이자, 8세대 콘솔 최고 기대작인 OGC의 AI 친구들을, 말 그대로 ‘현실’로 끌고 나올 수 있게 하려고 만든 제안서죠.”
손에 든 서류에 힘을 주는 재중을 보며,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