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27화 (228/485)

227. 뇌물의 의미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인력의 신규 고용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괜히 대기업 정규직의 문턱이 그리 높은 것이 아니니까.

단순히 그 개인의 연봉을 지급하는 문제로 끝난다면 간단하겠지만, 정규직이라는 존재는 회사에 연봉 외에도 다양한 추가 지출을 요구하는 법이다.

기본적으로 나가는 연봉 외에도, 인력 한 명을 고용하는데 들어가는 기본 장비, 세금, 각종 복지비용, 해당 인력을 교육하는데 들어가는 기존 인력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필연적으로 필요해지는 추가적인 인력과 서비스 소요 등이 기본적으로 대기업에서 인력 고용에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만드는 주요 요인들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혁에게 그런 ‘고려 사항’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전부터 PTW는, 단지 게임에 들어가는 동영상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 렌더링 센터를 건설해서 돌릴 정도로 이윤추구와는 거리가 먼 운영 방침을 고수하고 있었으니까.

뽑아야 할 인력이 100명이든 200명이든 그로 인해 뽑아낼 수 있는 재미와 퀄리티만 보장된다면 상혁은 주저 없이 그 방향을 택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단순히 퀄리티의 측면에서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OGC의 커뮤니케이션 엔진에 들어가는 스크립트는, 일반인이 쉽게 작업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사람을 뽑아서 해결 되는 거면 100명이든 200명이든 뽑겠는데 말이지.”

인력의 숫자와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 육성해온 전문인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각 언어권의 오리지널 성격 AI 스크립트를 구현하는 것은 후자에 해당했고.

그것이 상혁을 고민에 빠지게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가르치면 되지 않나?”

“글쎄, 우리 스토리 팀은 애당초 포수 회귀 때부터 호출 코드만 보고 문장 작업하는데 이골이 난 전 문 인력들이잖아. 그나마도 적응시키는 데 꽤 걸렸고. 그리고 그 이후에도 축구 게임도 만들고 대사량이 무지막지하게 많은 TAW도 작업하면서 진짜 스크립트 작업 하나는 거의 베테랑 수준으로 작업하는 전문인력이란 말이지.”

상혁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전문인력이 모자라서 추가 인력을 투입해서 아직도 개발 중일 정도로, OGC의 스크립트 양과 요구되는 숙련도는 차원이 달라. 근데 그걸 갑자기 뽑은 인력으로 지금부터 숙련도를 올리면서 적용한다? 무리가 있지.”

“그것도 말은 되네. 그럼 포기하고 그냥 번역해서 내는 건? 지금 이대로도 재미있잖아?”

“그건 싫어.”

“유저 평가 때문에?”

“아니. 이건 개발자들이 요청한 거니까.”

상혁이 말했다.

“번역팀도 지금 자신들이 번역해야 하는 스크립트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야.  리고 그걸 자기들이 직접 짜서 넣는다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 될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런데도 나한테 제안서를 작성해서 보낼 만큼, 번역팀이 이 안건에 대해서 꼭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상혁이 싱긋 웃어 보였다.

“나는 개발자들이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을 막는 CCO는 되고 싶지 않거든.”

“그럼, 이미 결정은 내린 거네?”

“그렇지. 지금 고민하는 건, 대량의 신규 인력을 뽑으면서도 어떻게 작업 퀄리티를 유지하고 숙련도를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니까.”

“답은 나왔어?”

“어렵네.”

어려운 문제였다.

이미 몇 편의 게임을 작업한 베테랑 작업자들이 눈에 다크서클을 띄워가면서 미친 듯이 작업해도 아직 완성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방대하고 어려운 작업을, 신규 인력을 데리고 작업하는 것은 분명 리스크가 있는 판단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허먼의 방송을 들으며 그날 계속 고민을 이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혁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문제에 대해, 상혁은 대부분 빠르게 해결책을 내놓곤 했었으니까.

“오늘은 퇴근해야겠다.”

“가봐. 난 좀 더 작업하다 갈게.”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상혁의 뒷모습을 보며, 민준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저렇게 보여도, 자신이 오랜 친구가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혁이 민준을 믿는 만큼, 민준 역시 상혁을 믿고 있었다.

“저기, 혹시 이상혁 님 계신가요?”

부실의 문이 열리며 한 명의 남자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민준은 모니터에 집중하던 시선을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번역팀?’

늦은 시간, 부실을 찾아온 남자의 정체는 번역팀을 이끄는 번역팀 팀장, 로널드 콜먼이었다.

미국인인 그는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면서 거의 한국인 수준의 한국어 실력자이기도 했다.

“상혁이라면 퇴근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번역팀 제안 때문에 그러십니까?”

“예. 제안서를 보낸 지 며칠 됐는데, 아직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서요.”

“어려운 문제라 고민 중이라 그럴 겁니다. 조만간에 답을 내겠죠.”

“혹시 아는 정보 없으세요?”

콜먼의 말에 민준은 잠시 고민했다.

상혁이 이미 결정을 내렸으며,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어도 좋을지에 대해서.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민준은 고개를 저으며 결론을 내렸다.

‘에이씨, 난 이런 건 잘 모른다고.’

직원들의 동기부여나 고민 상담에 익숙한 상혁과는 다르게, 민준은 프로그래밍 이슈로 대화하는 것은 편했지만 이런 종류의 대화를 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준은, 역으로 질문을 던짐으로써 콜먼의 대답을 회피했다.

“콜먼 씨.”

“예.”

“콜먼 씨는 번역팀 팀장이시죠?”

“예. 부족합니다만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번역이 아니라 직접 스크립트 작업을 하겠다고 제안을 올린 거고요.”

“그렇죠.”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잠시 고민하던 콜먼은 민준의 질문에 답했다.

“그냥 번역하면서 아쉬운 느낌이 들었어요.”

“아쉬운?”

“예. 제안서에도 적었지만, 기본적으로 지금 구현된 성격은 한국인의 성격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사고방식이나 리액션에서 꽤 많은 차이가 납니다. 물론 캐릭터의 생김새는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기에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의 캐릭터가 이야기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위화감이 드는 거죠.”

어깨를 으쓱 하며 콜먼은 말을 이었다.

“분명 나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영어를 쓰는 캐릭터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왠지 한국인이 사용하는 아바타와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 늬앙스의 문제입니다. 인종차별 같은 게 아니라요.”

잘못 해석하면 오해를 살수도 있는 말이었기에, 콜먼이 사족을 붙이자 민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똑같은 ‘귀엽다’라는 느낌이라도 미국에서 말하는 ‘귀여운 소녀’의 느낌과 한국에서 말하는 ‘귀여운 소녀’, 그리고 일본에서 말하는 ‘귀여운 소녀’는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죠. 그걸 구현하면 더 좋은 게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번역을 하는 내내 들었어요.”

“하지만 그게 문제라면 이전에 TAW때도 문제가 되었어야 하지 않습니까?”

“TAW때는 배경이 이세계였죠. 그러니까 거기 주민들은, 딱히 한국인처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세계의 주민처럼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번역만 잘 하면, 그런 부분은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죠. 하지만 OGC의 AI는,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며 학교생활을 즐기는 ‘친구’이지 않습니까? 그 친구가 한국인처럼 사고하면서 영어로 말하고 있다면, 그건 위화감이 날 수밖에 없죠. 쉽게 표현하면, 영어로 더빙된 일본 애니 속에서 나오는 미국인 캐릭터를 볼 때 느껴지는 위화감과 비슷합니다.”

“아, 그렇게 말하니 한 번에 이해가 가는군요.”

아마도 상혁 역시 그것을 느꼈기에 작업을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생각하는 민준에게, 콜먼이 말했다.

“그래서 이번 제안은 반드시 통과되었으면 하는데요.”

“상혁이는 작업량이 너무 방대하고 어렵다고 걱정하더군요. 인원을 늘려주더라도, 그 인력을 가르치고 호흡을 맞추는데 들어가는 번역팀의 부담이 엄청날 거라고요.”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꼭 하고 싶으신 겁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개발이 전부 완료된 상황에서 단순히 번역팀에서 스크립트 작업하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발매 연기를 몇 년씩 할 수는 없어요. 당연히 업무 부담이 심해질 테고, 엄청나게 고생하셔야 할 텐데요?”

“저희 번역팀은 그 길이 지옥문을 열고 들어가는 가시밭길이라도 전원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콜먼의 눈빛은, 마치 자신이 넘어가려는 지옥 너머에 천국이 있다는 믿음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민준은 그런 콜먼을 보며 작게 미소짓더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조언을 해 주었다.

상혁과 오랜 시간 함께 한 자신만이 해 줄 수 있는 조언을.

“좋습니다. 그럼 번역팀에 제안 성사를 위한 작은 팁을 드리죠.”

“팁이요?”

“예. 상혁이 한 방에 오케이를 날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팁이죠.”

그리고 민준은, 눈을 반짝이는 콜먼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었다.

***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상혁은 자신의 책상에 쌓여있는 수많은 박스들을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민준에게 물었다.

“이거 뭐야?”

“뇌물입니다.”

그러나 상혁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민준이 아니라 상혁의 책상 옆에 서 있던 콜먼이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상혁의 당황함을 전혀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뇌물이요?”

“예. 뇌물.”

“어째서?”

“제안서 통과시켜 달라고요.”

콜먼의 말에 상혁이 민준을 흘겨보자, 민준은 휘파람을 불며 시선을 모니터로 돌렸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민준을 보며 한숨을 쉬더니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콜먼에게 말했다.

“민준이 알려줬겠군요?”

“예.”

“뭐라고 하던가요?”

“평소에 상혁 씨가 저희에게 하던걸, 그대로 돌려주라고요.”

“풉!”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지수가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하하! 그러고 보니 진짜 오빠가 하는거랑 똑같은 짓이긴 하네요?”

뇌물.

그것은 상혁이 자주 하는 괴상한 습관 중의 하나였다.

콜먼은 상혁이 이전에 자신에게 그 ‘뇌물’을 내밀었을 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TAW때도 그렇고, 이번에 OGC의 발매언어가 결정되었을 때도 그랬지만, 상혁 씨는 번역팀에 찾아와서 그 말도 안 되는 양의 스크립트를 보여주면서 저에게 말했죠. ‘이번에 작업해야 하는 번역량은 아마 다른 게임 4~5개의 번역량을 가볍게 넘어가는 분량일 겁니다. 분명 힘든 작업이 되겠지만, 저희 번역팀의 실력을 믿으니 꼭 좋은 퀄리티의 번역을 부탁드립니다.’ 라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내민 게 이거였습니다.”

콜먼이 주머니에서 꺼내 내민 것은, 이미 비어있는 작은 초콜릿 상자였다.

“그때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상혁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죠. ‘뇌물입니다.’라고.”

“아···.”

“웃기지 않습니까? 이 거대한 회사의 임원급인 분께서, 직원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번역 잘 부탁한다면서 초콜릿을 내미는 거라는 게. 그냥 작업 해. 라고 말해도 다들 열심히 일했을 텐데 말이죠.”

“그건 좀 오래된 습관 같은 거라서···.”

“하지만 저는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순히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를 넘어서,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정중하게 부탁받는 느낌이라서요. 그 뇌물이라는 게 겨우 초콜릿 몇 조각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콜먼이 말을 이어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혁 씨는 업무 지시를 내릴 때 항상 그런 식으로 뭔가 먹을거나 열쇠고리 같은 것을 건네주고 간다고 하더군요. QA팀엔 아예 그거 보관하는 찬장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상냥한 성격이라고요?”

“아뇨. 우리 CCO는 좀 바보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이해가 가더군요. 상혁 씨가 왜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요.”

“그냥 습관입니다. 큰 의미는 없어요.”

“아뇨. 아마 상혁 씨가 건넨 선물의 의미는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이 작업에 조금 더 신경 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의미라고요. 단순히 QA테스트를 요청하더라도, 그래픽 작업을 요청하더라도, 그런 작은 행동으로 진심을 표현하는 거죠”

“그러면 저한테 지금 초콜렛을 주시는 건···.”

“예.”

콜먼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번역팀은 이 빌어먹을 정도로 멋진 게임을 끝내주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방법을 찾아주세요. 이건 PTW직원으로써 CCO에게 하는 요청이 아닙니다. 같은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로서 ‘부탁’드리는 거죠.”

“그로 인해 미친 듯이 작업량이 늘더라도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겠습니다. 고생은 저희가 할 테니, 상혁씨는 방법을 찾아주십시오.”

갑자기 불가에서 말하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도리를 말하는 콜먼을 보며, 상혁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교 경전도 읽어보시나요?”

“최고의 번역을 위해서는, 원어의 밑에 깔린 문화와 사상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개발자가 이렇게 말하는데, 상혁이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방금 콜먼이 보여준 태도는, 상혁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게임 개발자의 태도였으니까.

그리고 상혁은 절대로 그것을 현실적인 이유로 가로막는 경영진이 되고 싶지 않았다.

PTW는, 개발자가 멋진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면 전력으로 그것을 돕는 회사여야 했기에.

상혁은 감동받은 표정으로, 콜먼에게 소리쳤다.

“젠장! 그래요! 그럼 까짓 거 한번 해 봅시다!”

“드디어 말이 통하는군요!”

“예! 제가 직원 하나는 더럽게 잘 뽑은 것 같네요!”

“저도 회사 하나는 더럽게 잘 고른 것 같습니다!”

“가즈아!!!”

“가즈아!!!”

갑자기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두사람을 보며, 민준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제 포옹까지 하며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단순한 의욕만으로는, 어제까지 상혁이 고민하던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니까.

“좋아. 두 분 다 의욕으로 불타오르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그렇다고 열정만 가지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해당 언어에 관련돼서 전문성을 갖춘 스크립터를 어떻게 빠르게 확보하고 육성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잖아요?”

“아, 그랬군요. 솔직히 노력만 가지고 해결되는 문제였으면 좋겠지만, 저희도 현재 번역팀 인력으로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혁 씨의 도움이 필요한 거고요. 상혁 씨. 뭔가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솔직히, 조금 전까진 없었습니다.”

“흠···. 그럼 일단 한국어에 능통한 번역 인력을 더 고용해서 작업을 시작해 볼까요?”

“지금 들어가 있는 AI 대사 수준은 콜먼씨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스토리 팀은 전원 작가 출신 아니면 전부 대사처리나 문장력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 모아놓은 전문가 집단입니다. 단순히 한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대사를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건 아니죠.”

상혁의 지적은 정확했다.

당사자인 콜먼조차도, 현재 스토리팀이 구현한 수준의 감각 있고 개성 넘치는 대사를 작업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콜먼은 상혁의 말을 해당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좀 더 기다려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의미로 그에게 방법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없었다는 말은, ‘지금은’ 방법을 찾았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문제는 그거죠. 콜먼 씨는 번역 팀의 관점에서 스크립트 작업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PTW의 스토리팀이 만든 대사의 양식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작업하려고 말이죠.”

“하지만 가이드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번역팀은 한국어 대사가 없으면 해당 스크립트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알 수 없는데요.”

“예. 맞아요. 하지만 가이드 역할을 하는 작업자만 한국어를 잘 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해당 국가의 오리지널 성격을 구현한다는 건, 해당 성격의 대사를 전부 새로 쓴다는 거니까요.”

“그 말씀은···.”

“제 말은 이런 뜻입니다. OGC의 독특한 AI 성격들은 미리 스토리 팀과 기획팀이 협의하여 작업한 개성을 바탕으로 해당 성격이 할 법한 대사들을 구현한 거죠. 이런 상황에서 이런 성격은 이런 대사를 한다. 라는 식으로. 그건 작가가 작업하는 방식이에요. 그런 식의 작업을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쌓고, 작업 숙련도를 올려서 자신의 성격이 아니더라도 가상의 성격이 할 법한 대사를 재치있게 구현하는 방법이죠.”

손바닥을 살짝 마주하며 상혁은 말을 이었다.

“말하자면 연기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연기의 달인이, 어떤 배역을 맡든 간에 그 배역이 해야 할 연기를 해내는 것 같은 느낌인 거죠. 하지만 그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방법을 쓸 겁니다.”

“다른 방법이라 하시면?”

“간단합니다. 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애당초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배역을 맡기면 됩니다.”

상혁이 말한 방식은, 만들고자 하는 성격의 대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애당초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대사를 쓰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냥 상황만 던져줘도 ‘특정 성격에 맞춰서’ 능숙하게 대사를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면, 애당초 스토리 퀄리티를 맞추기 위해 숙련도를 올리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콜먼 씨.”

상혁이 말했다.

“우린 이제부터, 언어권별로 진짜로 만들어진 AI수준의 개성을 가진 ‘돌아이’를 찾아서 회사로 데려와야 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