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깜짝 선물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늦가을 비가 유리벽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상혁이 중얼거렸다.
보통 PTW처럼 연차를 무지막지하게 퍼주는 데다 쉰다고 눈치도 주지 않는 회사에서, 이런 날은 아침부터 연차 쓰고 싶다는 전화가 회사로 몰려오곤 한다.
그래서 상혁은 아예 연차 사용 전용 에드온을 워크 패스트에 추가해서, 쉬고 싶으면 그냥 워크패스트로 회사에 알림만 보고하면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전화로 연차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것은 보내는 사람도 귀찮고 받는 사람도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그냥 쉬고 싶으면 쉬라고.
날씨가 우중충해진 만큼, 개발자들의 텐션도 내려가게 되어 있고, 게다가 얼마 전까지 2차 NE컨벤션의 공개 준비를 위해 엄청나게 달려왔기도 했기 때문에, 상혁은 오늘 만큼은 회사가 꽤 조용할 것으로 생각했다.
‘평소대로’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 프로젝트로 상혁의 지시를 받아 별도 작업을 하는 몇 명의 직원들을 제외하면, 개발 1, 2, 3팀의 모든 직원이 택시를 타고 출근하여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다.
오히려 2차 NE 컨벤션 전보다 더 열정과 즐거움에 넘치는 표정으로.
억수처럼 퍼붓는 가을비는, 그들의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뭐,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어느새 커피잔을 들고 옆에 다가온 민준이 말을 걸었다.
그리고 상혁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의도한 거잖아?”
상혁도 민준을 보며 웃었다.
민준의 말대로, 상혁이 2차 NE컨벤션의 4번째 이벤트 존을 유저와 개발자가 만나는 소통의 장으로 만든 것은, 개발자들에게 개발의욕을 북돋아 주기 위한 이유가 가장 컸다.
자신이 만든 게임을 사랑해주는 유저들과 직접 만나서, 자신이 작업한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자랑하게 하고, 유저들이 그것을 들으며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며 느껴지는 특유의 감각은, 개발자로써 가장 보람찬 느낌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것은 승진보다도, 막대한 보너스보다도 오로지 게임만을 사랑하는 개발자에겐 더 값진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충분히 보너스와 잔업 수당을 지불받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단순히 보람만을 외치며 열정을 강요하는 것은 악독한 행위다.
회귀 전 그것을 수도 없이 겪었던 상혁은, 철저하게 계산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에누리 없이 직원들에게 그들이 받아야 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지급하고 있었다.
물론, 그 덕에 회사에 돈이 쌓일래야 쌓일 수가 없는 구조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나름대로 세금 절약이 되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번 돈’에 대해서 매겨지는 것이 세금이니까.
돈을 버는 족족 죄다 랜더링 센터니 데이터센터니 직원 보너스니 하는 명목을 붙여서 전부 뿌려버리는 PTW는, 매출 규모보다 법인세 지출이 극악하게 낮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도 회사 운영에 지장이 없는 것은, 아직도 PTW의 거의 모든 게임에서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현재의 PTW는, ‘버는 족족’ 게임에 전부 투자하는 기묘한 구조의 회사였다.
그리고 직원들은, 그렇게 지급 받은 막대한 보너스와 더불어 이번 행사에서 받은 적절한 자극으로 엄청나게 부스팅된 기분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게임 리뷰 사이트에 올라오는 2차 NE컨벤션의 후기 리뷰가, 그런 그들의 의욕을 더욱 부추기고 있기도 했고.
[완벽(完璧):흠이 없고 완전함.]
[10/10. 공개행사의 제왕. 여전한 신선함으로 건재함을 과시하다.]
[게이머를 위해 하늘이 내려준 선물 같은 존재.]
[디즈니랜드 입장권 100장과 NE컨벤션 입장권 1장 중에 고르라면, 게이머는 후자를 골라야 한다.]
[GOTY를 받고 싶은가? 그럼 먼저 PTW의 게임 발매일을 체크 하라.]
유저들은 상혁이 우려했던 것처럼, 4번째 이벤트 존을 ‘공치사’라던가 ‘생색내기’ 같은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게임을 넘어 그 뒤쪽의 개발자를 직접 만나 평소에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물어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마음껏 제시할 수 있었던 4번째 이벤트 존에서의 시간이 극히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실제로 공개되는 기사들의 대부분이 극도로 2차 NE컨벤션에 대한 호평으로 가득 차 있었고.
기자들은 오히려 이번에 진행한 형태의 이벤트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질문하는 대로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기자마다 가진 정보가 다 다르다는 이야기였고, 그렇기에 일방적으로 같은 정보를 전달하던 기존의 쇼 케이스와 달리 기자마다 전부 다른 기사를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A 언론사의 기자가 EOD에 관한 새로운 기사를 싣는 동안 B 언론사의 기자는 인조학원의 스케일에 관한 미공개 정보를 올렸다.
자연스레 기사마다 특종거리가 넘쳐나고 있었고 능력 있는 기자가 예리한 질문으로 얻어낸 정보들은 발 빠른 PTW팬들의 도움으로 업로드되는 사이트와 관계없이 엄청난 조회 수를 올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기자, 게이머, 개발자가 한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된 모습이었다.
덕분에 PTW의 팬들은 메이저 게임 언론의 기사뿐만이 아니라 마이너 게임 언론의 기사와 블로거, 무명 리뷰어의 후기까지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라면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홈페이지에 퍼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파악한 게임의 스케일은, 그들이 상상하는 게임이란 개념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것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수준까지 ‘EOD’의 삶 자체를 리얼하게 구현하기 위해 만든 FPS게임 ‘EOD’.
섬마을의 학교에서 실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음악이 주는 즐거움과 성장의 기쁨을 보여준 ‘RFU’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순한 고전 레트로 게임을 AI와 플레이한다는 게임의 컨셉에도 불구하고, 그 AI의 압도적인 퀄리티가 아예 다른 차원의 게임성을 제공하는 ‘인조학원’까지.
당연하게도, PTW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게시판은 연일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시글로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역시나 가장 화제의 중심을 차지 한 것은, 플레이한 모든 관객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던 ‘커뮤니케이션 엔진’과 ‘보이스 엔진’,그리고 Live2D기술이 보여준 삼위일체의 시너지였다.
PTW 홈페이지의 게시판이, 행사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계속 그 주제로 불타오르고 있었을 정도로, 인조학원이 게이머들에게 안겨준 충격은 거대한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거짓말 안하고 인간하고 구별 불가능. 진짜, 지이이인짜 자세히 들어보면 사아아알짝 가능할지도?]
↳ 동감. 줄 계속 서서 3번 테스트해봤는데 못 알아듣는 말이 없었음.
↳ 그럼 당연히 스크립트 수가 천만 개가 넘는다는데 웬만한 대화는 다 커버 되지 않겠냐?
↳ 아 난 행사 참여는 못 했는데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웅장해진다. 발매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 젠장, NE컨벤션에 못간 네가 부럽다. 그 멋진 게임을 플레이하고도 지금 못하는 나는 완전히 게임 불감증이라고. 무슨 게임을 해도 즐겁지가 않아.
계속 거기서 플레이했던 게임만 눈앞에 아른거려.
발매일 발표가 안 났지만, 만약에 8세대 콘솔 발표와 동시에 발매되는 게 아니라면 진짜로 죽고 싶은 기분이 들지도 몰라.
↳ 나도 동감. 솔직히 NE컨벤션은 2회를 마지막으로 중단해야 해. 매번 발표 때마다 발표 이후에 게임 나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미라가 되어버릴 것 같으니까.
↳ 이색기 자기가 못 갔다고 선넘네. 다음 행사를 노려라. 자기가 못갔다고 그런 개소리 하지 말고.
↳ 맞다. 그리고 어차피 행사 내용은 전부 영상으로 홈페이지에 올라오잖아. 난 그거 기대 중.
전엔 행사 첫째 날에 바로 올라오던데, 이번엔 좀 늦게 올라오네?
PTW에 올라온 카운트 다운이 행사 영상 공개까지 남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고,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수많은 유저들은 애타는 마음으로 영상 공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수없이 올라오는 사진과 영상만으로도 2차 NE컨벤션이 얼마나 끝내주는 행사였는지 잘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공식 영상이 주는 임펙트는 또 다른 맛이 있을테니까.
게다가 행사에서 밝히지 않은 ‘추가 정보’가 있다는 홈페이지의 메시지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PTW의 2번째 게임 컨벤션이 3일간의 일정을 마친 지 5일째 되는 날.
PTW 홈페이지에 2차 NE컨벤션의 영상이 공개될 시간이 되었다.
-드디어 그 시간이 왔네요.-
-그러게요. 심장이 두근두근합니다.-
-허먼 씨는 행사에 이미 다녀오지 않으셨나요? 행사 영상에 나오는 내용은 대부분 아는 내용일 텐데요?-
-글쎄요. 일단 PTW에서 밝힌 ‘추가 정보’가 기대되는 것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PTW에서 뭔가 더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으니까요.-
영상 공개 시각에 맞춰 방송 시간을 옮긴 TV 특별 생방송의 게스트로 참여한 허먼이, 눈을 반짝이며 진행자에게 말했다.
-물론 지금까지 4번 에리어에서 공개된 정보도 엄청난 수준이긴 하지만, 저는 저희가 모르는 정보가 아직도 남아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PTW의 이번 게임들은,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그 깊이의 끝을 알 수 없는 게임들이었으니까요.-
-그럼 영상 공개에 앞서, 인터넷에 풀린 정보들을 정리해놓으신 것에 대해 풀어주시겠어요?-
-좋습니다. 우선 공개 순서대로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먼저 EOD의 경우는...-
허먼은 오늘의 쇼 진행을 위해 그동안 하루에도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수많은 게시글을 전부 읽어가며 6만명의 관객들이 개발자들에게 물어보고 파악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오늘 시청자들 앞에서 풀어놓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단순히 폭탄 해체와 그것을 엄호하는게 메인인 게임이 아니라는 건가요?-
-예. 오히려 그것은 EOD의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동료의 죽음, 그리고 대체되어 들어오는 또 다른 신병.
EOD 부대의 멤버로 들어가 부대의 일원이 되는 과정.
민간인, 혹은 테러리스트들을 살상하고 나서 느껴지는 생명의 무게.
그것으로 점점 짓뭉개져 가는 병사들의 심리적 변화들.
소중한 동료의 죽음 앞에서 멘탈이 부서지기 시작한 다른 동료들을 어떻게 케어해 나갈 것인가.
그런 ‘FPS’외적인 부분에서의 플레이가 게임의 메인이라고 개발자가 답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적절한 대응이 반복되면서 시민들이 부대를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을 거라고 했고요.
그런 정보를 종합해서 추측한 EOD라는 게임은, 단순히 폭탄을 해체하는 FPS장르의 게임이라기보다는, ‘한 EOD대원’의 전쟁 경험담을 리얼하게 풀어낸 일종의 드라마틱 시뮬레이션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청나네요.-
-더 엄청난 것은, 그 정도 스케일을 가진 EOD가, 이번에 공개된 게임 중에서는 가장 스케일이 작은 편에 속한다는 거죠.-
-아, 드디어 그 소문의 ‘커뮤니케이션 엔진’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예. 순서대로 세션을 돌아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1번 세션에서 그 리얼한 전장의 모습을 체험하고 2번 세션으로 이동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갑자기 한적한 시골 섬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가운데 서 있는 낡은 학교.
그 안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커다란 티비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학생 연주자들의 모습이었죠.-
-전에 올리셨던 리뷰에서 RFU를 위해서라도 대형 TV를 꼭 사라고 하셨는데요.-
-맞습니다. MYOM도 그랬지만, 이번 게임은 한번에 많은 캐릭터가 시야에 등장하고, 그 캐릭터들을 보면서 음악을 지휘하는 게임인 만큼 커다란 TV의 존재가 필수라고 생각되더군요.-
아예 주식 시장에 상장되지 않아 주가의 영향을 받지 않는 PTW와는 다르게 2차 NE컨벤션이 열리자마자 바로 일제히 상승한 ‘PTW 테마주’ 중 하나가 대형 TV 제작사인 RG와 삼정일 정도로, GOS시절부터 PTW의 게임들은 대형 TV와 압도적으로 상성이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삼정의 경우는 아예 PTW와 손잡고 PTW의 전문가가 파견되어 TV의 색감이나 사운드 세팅에 관여하고, TV상단에 코넥트 고정을 위한 전용 슬롯을 판 ‘MYOM TV’를 출시하는 등 ‘PTW 마케팅’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삼정은 PTW와의 콜라보를 통해 기존 TV보다 더 큰 사이즈를 제공하면서도 가격대를 낮춘 보급형 대형 TV의 출시를 예고한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상표사용료를 제시한 삼정측에 상혁이 대신 TV의 가격을 할인해달라고 요구했고, 그 덕에 ‘PTW할인’이라는 개념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이미 게이머들 사이에 유명한 이야기였다.
삼정의 부회장인 이주용은, 해당 할인 행사에 관해 이야기하며 상혁이 그를 만나 했던 이야기를 언론에 그대로 전달했다.
“그가 말하더군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게이머가 좋은 환경에서 PTW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신이 협조하는 이유라고요. 오직 게이머만을 생각하는 PTW의 정신에 저도 감동하여, PTW의 상표사용료에 해당하는 할인 비율에 더해, 저희 삼정의 이익률을 낮춤으로써 기존에 도저히 제공해드릴 수 없었던 놀라운 수준의 할인을 게이머 여러분께 제공해 드릴 수 있는 점을 기쁘게 발표하는 바입니다.”
덕분에 허먼도 이번 행사에 맞춰서 삼정의 최신 대형 TV를 싸게 예약한 상태였다.
그것을 떠올린 허먼은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재미있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성능이 뛰어난 게임일수록 그래픽 수준이 낮아진다는 겁니다.
그만큼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하드웨어 리소스에서 차지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거겠죠.
그래서 실제 테러리스트 NPC들의 섬세한 반응을 눈으로 전달해야하는 EOD에서는 아예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빠졌고, RFU에서는 연주 도중에 극히 일부의 대화만을 지원하면서 성능을 최적화한 것일 겁니다.
인조학원에 달린 커뮤니케이션 엔진과는 다르게, RFU에서 연주 파트에 돌입하면 연주에 관한 이야기만 제대로 반응하게 되어 있거든요.-
-아항. 그럼 인조학원의 경우에는 다르다는 건가요?-
-다릅니다. 일단 안에서 AI들과 할 수 있는 게임 자체가, 지금 시대로 보면 ‘고전 게임’이라 불릴만한 낮은 그래픽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바로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성능을 위해 그래픽 자원까지 모두 끌어다 쓰고 있다는 방증이겠죠.
대화 파트에서 나오는, 인게임 그래픽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고퀄리티의 Live2D 캐릭터 이미지들도 사양을 꽤 먹을 거고요.
안타깝게도, RFU는 그래픽 퀄리티때문인지 아니면 한번에 대화가 가능한 캐릭터가 수십명이라 그런지 Live2D는 적용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런 점이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게 합니다.
하드웨어 퀄리티가 올라갈수록, PTW가 만든 게임의 성능이 올라가는 것을 보는 건, 제 삶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그 후로도 허먼은 시청자들이 쇼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인조학원에 대한 다른 정보들을 맛깔나게 풀며 쇼를 진행해 나갔다.
단지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쇼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자연스레 게임의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도록.
그리고 곧이어 방송될 공식 영상을 통해서, 허먼의 말을 떠올리며 그 기대감이 폭발할 수 있도록.
잠시 후, 적절한 타이밍에 설명을 끊은 허먼이 스튜디오에 달린 시계를 보며 호스트에게 말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고.
-이제 영상이 공개될 시간이군요.-
-그렇습니다! 저희 위클리 게임 투나잇에서는 오늘 영상 공개를 맞이하여 PTW에서 공개한 영상을 고화질로 직접 송출할 수 있는 스트리밍 주소를 받아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보는 것과 같은 화질로 저희 쇼에서도 영상을 보실 수 있으니!
채널 고정 부탁드립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드디어 영상이 시작되는군요!-
스튜디오를 비추던 화면이 갑자기 검게 전환되며 PTW에서 공개한 2차 NE컨벤션의 영상으로 바뀌었다.
성연이 작곡한 멜로디를 따라 움직이는 PTW의 로고와 함께.
그리고 상혁이 이번 행사의 테마로 결정한 ‘소통’이라는 주제에 맞게 마치 추억을 모아놓은 비디오 앨범 같은 느낌으로 절묘하게 편집된 행사 영상이, 전 세계의 시청자와 게이머에게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아, 저기 저도 나오네요.-
행사장 곳곳을 비추며 행복한 표정으로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과 그들이 플레이하는, 당장이라도 옆에서 뺏어서 하고 싶은 멋진 게임들의 영상을 보면서, 허먼은 영상만으로는 전달 될 수 없는 참가자로서의 코멘트를 곁들여 나갔다.
영상에 나오는 음료는 맛이 어땠다던가, EOD대원이 입는 방호 슈트는 착용감이 어떻다던가, 넉살 좋아 보이는 근육질의 미군이 해주는 치즈 샌드위치의 맛이 어땠다던가.
그것은 단순히 내가 갈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면 그리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영상 안에는 ‘앞으로 자신이 하게 될’ 게임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고 그 게임이 어떤 재미를 가졌는지가 담겨 있었기에, 영상이 시작되면서 쇼의 시청율은 미친 듯이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홈페이지로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허먼의 코멘트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TV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허먼은, 영상 속에서 나오는 4번 에리어의 한 관객이 PTW의 직원과 무언가를 교환하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아! 저거!-
-허먼 씨?!-
-저거에 대한 설명을 잊고 있었네요! 이번 행사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것이 바로 저겁니다!-
-저게 뭐죠?-
-명함이요. 연락처는 적혀있지 않지만.-
PTW에서는 이번 2차 NE 컨벤션에서 행사에 입장하는 관객에게 알 수 없는 용도의 티켓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리고 4번 에리어에서, 관객은 자신이 원하는 개발자의 명함과 티켓을 교환할 수 있었다.
연락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알수 없는 16자리의 영문과 숫자 조합 코드가 들어있는 명함을.
지금까지, 누구도 그 명함의 용도를 알지 못했는데, 그 명함이 화면에 잡힌 것이었다.
-어쩌면 오늘의 추가 정보가 저 명함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제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젠장! 발매 전 베타 테스트 접근 권한 같은 거면 전 아마 기뻐서 졸도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잔뜩 흥분한 허먼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영상 속의 분위기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행복을 다 가진듯한 게이머들이,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개발자와 웃고, 울고, 기뻐하는 모습은 보는 이도 자연스레 미소짓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Thanks to all gamers in the world.(세상의 모든 게이머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영상의 1부가 끝났다.
그리고 음악의 템포가 바뀌며, 마치 장난처럼 보이는 작은 텍스트가 검은 화면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Waiting makes people tired, right?(기다림은 사람을 미치게 하죠. 안 그래요?)]
허먼은 자신도 모르게 텍스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 속에 나온 한 줄의 문장이, 지금 그의 기분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역시 알고 있구나.’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에 대답하듯, 화면 속의 텍스트가 다른 문장을 출력했다.
[So we prepared.
For perfection, while we do our best, the best gift to reward your waiting.(그래서 우리는 준비했습니다.
완벽함을 위해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동안, 여러분의 기다림을 달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설마!?! 진짜로!?-
그 ‘선물’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허먼은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예상이 맞기를 빌었다.
제발, 게임이 발매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신을 그토록 즐겁게 해 주었던 AI들과 다시 만날 기회를 달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텍스트는, 허먼의 기대를 완벽하게 만족하게 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Have you noticed already?
What does the 16 digit code mean?
It starts at PTW's homepage.
Beta testing of the communication engine with streaming.
Right now.
(이미 눈치 채셨죠?
16자리 코드가 뭘 의미하는지.
PTW의 홈페이지에서 시작됩니다.
스트리밍으로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베타 테스트가.
바로 지금부터.)]
그렇게 PTW는 2부 영상의 시작을, NE컨벤션 참가자들이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간절히 원하던 선물을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30분이란 시간 동안 전 세계 게이머들과 게임 업계 종사자들을 충격과 경악에 빠트릴 충격적인 발표 행렬의 시작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