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게임 동아리의 일상
‘아마도 이게 만우절 영상의 정체인 모양이네.’
허먼은 작게 중얼거리며 이벤트 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목에 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며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아 체험존으로 이동했다.
“혹시 개발자십니까?”
허먼의 질문에 안내원이 웃으며 유창한 영어로 대답했다.
“예. 그래픽 팀 소속 박영일입니다.”
“영어를 잘하시네요.”
“PTW 자체가 원래부터 글로벌 기업이라 영어 실력을 요구하는 면도 입고, 입사하면 바로 영어 교육 지원도 해주는데다, 이번에 행사 도우미로 자원하면서 별도로 공부도 했으니까요.”
그런 영일의 이야기를 들으며, 허먼은 이번 행사의 특이한 점을 깨달았다.
1번 세션에서도 개발에 참여한 미군들이 행사 도우미를 맡고 있었고, 2번 세션에서도 개발에 참여한 연주자들이 도우미를 하고 있었으며, 마지막인 3번 세션에서도 개발자들이 직접 유저들을 체험존으로 안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혹시 인건비를 아끼려고? 아냐, 적어도 그게 PTW스타일은 아니지.’
허먼이 알기로, PTW는 지난 번 행사에서 연극배우들이나 전문 성우에게 도우미를 맡겼었다.
특히 지난번 1차 NE컨벤션의 투기장 같은 경우도 전문 스턴트맨이 연기를 맡았다고 들었고.
그러나 이번 행사에서는, 전문가의 지도를 받은 ‘개발자들’이 직접 유저와 만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허먼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대체 이번 세션에서 공개한 게임이 무엇이기에, 리차드가 다른 세션의 게임을 보지도 않고 3번 세션의 게임이 메인이라고 호언장담했는지, 허먼은 그것을 알아내고 싶었다.
“미스터 영일?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이번 세션에서 공개된 게임의 장르가 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설마 만우절에 공개된 학원 생활 시뮬레이터 같은 컨셉으로 리차드가 그 정도 확신을 보일 리는 없었기에, 허먼은 안내원에게 게임의 장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안내하던 안내원은, 웃으며 허먼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글쎄요?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기존 장르로 정의하기 어려운 게임이라는 겁니까?”
“아뇨. 그보다는 매번 장르가 변하는 게임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때는 마피아 장르의 파티 게임이고, 어떤 때는 생존 컨셉의 기지 방어 게임이고. 유저가 무슨 게임을 할지 선택할 때마다 장르가 바뀌는 게임이랄까요?”
“게임을, 골라요?”
“뭐, 어떤 건지는 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개발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다란 학교의 복도를 지나, 문 앞에 선 안내원이 미소 지었다.
“엄청나게 재미있을 거라는 것 밖에 없네요.”
그렇게 허먼은, 드디어 2차 NE컨벤션의 3번째 공개 게임의 테스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치 교실을 축소해서 만든 것 같은, 저녁놀이 비치는 테스트 룸에서.
***
‘자세히 보니 교실이 아니라 동아리 방 같은 모양이네.’
교실을 테마로 만들었다면 이것보다는 넓은 세트를 썼을 것이지만, 장소의 효율성 때문인지 세트 내부는 동아리 부실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생활감이 있는 철제 선반들과, 구석에 놓여있는 옷걸이, 그리고 한쪽이 찌그러져 있는 철제 라커를 배경으로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책상이 허먼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책상들에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여러 대의 노트북과 모니터들이 놓여 있었다.
허먼은 조용히 중앙의 책상으로 다가가, 유일하게 전원이 들어와 있는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책상 옆에 있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패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자, 대기 모드로 있던 모니터가 켜지며 본격적인 게임화면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행사장 입구?’
자신이 입장한 현재 세션의 형태와 동일하게, 학교처럼 보이는 건물에 수많은 NPC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학교 축제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화면 저편에 서 있던 한 캐릭터가 달려와 주인공 캐릭터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혹시 신입생?-
-저기, 무시하는 거야? 사람이 말을 걸면 대답을 해야지!?-
-혹시 말 못 하는 거야? 아니면 일부러 무시? 이렇게 귀여운 선배가 말을 걸어주는데 너무하지 않아?-
갑자기 다가와서 따발총처럼 말을 건네는 그녀를 보며, 허먼은 당황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버튼을 마구 누르고 있는데도 대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마구 버튼을 누르는 통에 캐릭터가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을 보면서, 화면 속 여자아이가 물었다.
-어? 혹시 어디 아파? 왜 대답은 안하고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는 거야? 양호실로 데려가줄까?-
‘나도 X발 대답하고 싶다고! 조작법을 모르겠단 말이다!’
속으로 절규하던 허먼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면서도, ‘설마?’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생각이.
허먼은 패드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조용히 들어 올려 헤드셋에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있어야할 자리에 있어야할 물건이 달려있는지 확인했다.
‘있다.’
허먼의 손에 잡히는 기다란 플라스틱 막대기.
그것은 헤드셋에 달려있는 ‘마이크’가 분명했다.
“저기···.”
만약 자신의 짐작이 틀리다면, 약간 바보같아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허먼은 화면속의 캐릭터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희망대로, 허먼의 목소리를 들은 화면 속 여자아이가 손뼉을 치면서 기뻐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 뭐야! 말 할 줄 알잖아! 왜 그렇게 이상하게 반응한 거야?-
“좀 당황해서···.”
-뭐, 처음 보는 학교에 오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그녀가 말했다.
-너, 혹시 게임 좋아해?-
아마 세상 누가 물어봤더라도 긍정할 수밖에 없을 질문을 던지며, 소녀는 아름다운 미소로 허먼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차드 씨가 그렇게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네. 이것도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적용되어 있었을 줄이야.’
그녀를 따라 부실로 이동한 허먼은 AI들이 허먼을 보며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름을 물어보던, 아니면 좋아하는 과목을 물어보던, 심지어 오늘 먹은 점심 메뉴를 물어봐도 전부 능숙하게 대답하는 AI의 성능이 그를 경악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어째서 SANY의 개발자가 유출한 8세대 콘솔에, 오직 PTW를 위한 AI연산 칩이 추가된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보여 주고 있었다.
-자! 그럼 새로 온 부원도 있고, 다들 자기 소개도 했으니 가볍게 한판 돌려볼까? 어떤 게임을 할지는 너한테 정하게 해줄게! 신입!-
“어떤 게임이 있나요?”
사실 이대로 계속 대화만 해도 충분히 갓겜 소리 들을 정도로 즐거운 경험이라 할 수 있었지만 안에 있는 게임의 정체도 확인해야했던 허먼은 ‘부장’이라 자신을 소개한 소녀에게 게임의 종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녀는 웃는 얼굴로 허먼에게 이 게임 안에 탑재된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주로 플레이하는 게임은 더 인스펙터(The Inspector), 어나더 데이(Another Day), 울프 캐슬(Wolfcastle)이야.
인스펙터는 여러 명의 파티원 중에 감염자가 누군지 찾는 마피아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어나더 데이는 좀비가 몰려오는 도시에서 파티원들과 같이 자원을 수집하고 방어기지를 건설하는 디펜스 슈팅 게임이고.
마지막으로 울프 캐슬은 파티원과 같이 협력해서 중세시대 공성전을 하는 액션 게임이야.-
“지금 전부 해볼 수 있나요?”
-물론이지. 어떤 게임을 하고 싶어?-
“추천 부탁드립니다.”
-역시 서로 파악하면서 친해지기는 마피아 게임류가 좋지 않을까? 여기 모인 부원들과 함께라면 엄청나게 즐거울 거고!-
“그럼 그걸로 하겠습니다.”
-좋아! 이제부터 저기가 신입 네 자리니까 거기 있는 게임기를 사용해! 그럼 다들 같이 즐겁게 게임 한판 해 보자고!-
-아자아자!-
그런 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허먼은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 자신을 안내한 안내원이 ‘장르가 바뀐다’라고 설명했는지에 대해서도.
‘그야 게임 안에 게임을 골라서 하는 게임이니 무슨 게임을 고르냐에 따라서 장르가 바뀔 만도 하지.’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느끼며, 자신의 자리 앞에서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회전하며 허먼이 앉아 있는 자리에 있는 모니터를 줌업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니터 안의 화면이 자연스레 게임 화면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면서, 허먼은 PTW가 항상 보여주는 뛰어난 연출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진짜 게임화면 보는 기분이네.’
조금 거슬리는 점은, 앞서 보았던 두 게임에 비해 인 게임에 들어있는 게임의 그래픽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점이었지만, 그리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학원 파트에서의 그래픽은 여전히 ‘역시 PTW’라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그래픽을 보여주고 있었고, 안에 있는 게임의 모습도 ‘레트로 스타일’이란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좋은 느낌으로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좀 더 그래픽이 좋은 게임을 탑재했으면 좋았을지도.’
허먼은 아주 잠깐 동안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아쉬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내가 어째서 감염자인데! 너 아까부터 계속 나만 지적하는데 지금 게임 끄고 한판 뜨자는 거냐!-
-만약에 이번에 루이스를 투표해서 루이스가 감염자가 아니면 날 죽이면 되잖아! 신입! 넌 나 믿지!? 아까 둘이 있었을 때 내가 너 안 죽이고 앞에서 엉덩이 춤 춘거 기억하지?!-
일반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모여서 마피아 장르의 게임을 하면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억울함을 어필하기 위해,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큰 소리로 외치거나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부모님의 명예부터 무덤에 있는 할머니의 이름까지 팔아넘기게 만드는 게, ‘마피아 게임’이 가진 특징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정신 나간 멤버들은, 마피아 게임을 하는 허먼에게 자신이 게임 안의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보이스 채팅을 통해서 멀티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입! 말해봐! 내가 감염자 같아?! 이 순진무구한 내가 거짓말을 할 것 같아 보이냐고!-
그렇게 말하는 캐릭터의 목소리는 목소리 톤 자체가 억울해 보이는 스타일의 억양을 가지고 있어서, 진짜로 억울하게 들리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호소가 들리자마자, 다른 AI가 즉시 그 의견에 반박했다.
-야! 수 쓰지 마! 넌 목소리가 억울함 그 자체라서 마피아게임 치트나 다름없잖아! 신입! 속지 마! 쟤는 감염자여도 저 목소리로 사람 속인다니까?!-
“저는···.”
-저는?!-
“진짜 모르겠네요. 패스할게요!”
-그래! 좋은 선택이야! 신입!-
-안 돼! 이번엔 진짜 위험하다고!-
“하하하하하하!!!”
-아니 웃지말고! 진짜로 패스는 위험하다니까?-
허먼은 커다란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끔 친구들과 몇 번 정도 해 보았던 마피아 게임이지만, 지금 자신과 플레이 하고 있는 AI들의 행동이 진짜로 미친 듯이 자신을 즐겁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기뻐서 웃음이 터질 정도로, 지금 그가 하고 있는 게임은 ‘압도적인’ 즐거움을 그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와, 씨. 이건 진짜로 2천 달러 빼앗겨도 할 말이 없겠는데.’
오늘 지갑에 얼마를 가져왔었는지를 떠올리면서, 허먼은 유쾌한 기분으로 게임을 즐겼다.
-아아악! 내가 뭐랬어! 루이스가 감염자라고 했잖아! 쟨 목소리가 치트라고!-
-하하하! 신입! 고마워! 덕분에 이겼네! 다음 판에 신입이 의심받으면 무조건 한번은 편 들어줄게!-
-그.렇.게! 앞 게임을 뒤쪽으로 끌고 가려고 하지 말라고!-
-싫은데? 이것도 전략이거든?-
“아, 진짜 즐거웠습니다. 바로 한판 더 하시죠. 다른 게임도 궁금하니까 이번엔 울프 캐슬 어때요.”
-오! 좋아! 울프 캐슬 재밌지! 그럼 인스펙터 종료하고 울프캐슬로 이동하자.
X버튼을 눌러서 취소하고 게임 리스트에서 울프캐슬을 골라.
성 모양 아이콘이 있으니까 찾기 쉬울 거야!-
허먼은 바로 다음 게임을 확인하기 위한 제안을 던졌고 AI들이 그것을 받자 바로 다음 게임을 시작하려 했다.
그리고 그때, 뒤쪽에 있던 문이 열리며 아까 허먼을 안내했던 안내원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오 안돼요.”
“다음 분들 때문에···.”
“오 젠장, 안 된다고! 조금만 더!”
“다시 줄을 서셔야···.”
“이런 젠장!”
허먼은 어째서 3번 세션으로 바로 들어간 리차드가 다른 게임은 확인도 하지 않고 계속 같은 게임만 반복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오늘 공개된 버전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단 하나였다 하더라도, 계속 반복해서 플레이 하고 싶을 정도로 ‘미친 듯이’즐거운 시간이었기에.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다.
허먼은 영원히 붙잡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게임 패드를 얌전히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터벅거리는 발걸음으로 안내원을 따라 테스트 룸을 나섰다.
그리고 그런 허먼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얄궂게도 7번째 플레이를 마치고 8번째 플레이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리처드의 모습이었다.
“어때요?”
리처드가 웃으며 말했다.
“미칠 듯이 즐겁죠?”
허먼은 대답 대신, 지갑을 꺼내 조용히 100달러짜리 20장을 꺼냈다.
그리고 리차드에게 지폐를 내밀며 절규하듯 말했다.
“젠장! 지금 당장 2천 달러 줄 테니까 나랑 바꿉시다!”
“안됩니다. 이제 앞 세션에서 관람 마친 관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해서 줄이 미친 듯이 길어지고 있다고요.”
“나도 아니까 바꾸자는 거 아닙니까! 리차드 씨는 이미 3개 다 해봤을 거고! 저는 아직 하나밖에 못해봤다고요!”
“아, 그래요?”
리차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리고는 허먼을 두고 방 안으로 슥 들어가 버렸다.
허먼이 내밀고 있는 2천달러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그리고 허먼은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 자신이 플레이 했던 PTW의 ‘3번째 신작’이, 리차드로 하여금 자신을 배신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젠장. 이 정도로 재미있으면 솔직히 원망도 못하겠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한판 더 하기 위해서 출구로 뛰어가며, 허먼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이벤트 종료까지 남은 시간 동안, 제발 저 멋진 게임을 좀 더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은 행사 종료가 한 시간 정도 남을 때까지, 계속 돌아가며 줄을 서서 게임을 플레이 했다.
리뷰나 기사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게임이 너무 즐거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지만 점점 3번 세션으로 몰리기 시작한 관객들 덕분에 줄이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허먼과 리차드는 이제 다시 줄을 서도 한판 더 플레이하기 어려울 것이란 사실을 깨닿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학교 축제의 좌판처럼 꾸며진 부스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배고픈 위장을 채우며, 근처에 있는 파라솔에 모여 오늘 얻은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대화의 포문을 먼저 연 것은 허먼에게 지은 죄가 막심한 리차드의 사과였다.
“허먼 씨,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됐습니다. 저는 리차드 씨의 제안을 받고 1번과 2번 세션을 취재한 건데, 리차드 씨는 순전히 즐기기 위해서 절 배신한 거 아닙니까? 기사거리는 꿈도 꾸지 마십쇼.”
“하아···. 내기에 걸었던 2천 달러는 취소 해드릴 테니 용서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리차드의 말에 허먼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자신이 리차드의 입장이었으면, 아마 자신은 리차드를 대놓고 약 올리면서 배신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3번 세션의 신작이 그들에게 주었던 충격은, 그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좋습니다. 사실 게이머가 게임 앞에서 눈 뒤집히는 거야 당연한 거니까요. 리차드 씨가 절 배신하고 플레이를 하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게임이 재미있었으니 그 부분은 용서해드리죠.”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2천 달러는 드리지 않을 겁니다. 괘씸하니까.”
“달라고 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리차드가 웃으며 나쵸를 건네자, 허먼이 조용히 그것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오늘의 수확에 대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제가 취재한 정보가 1번째와 2번째 게임에 대한 정보고, 리차드씨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3번 째 게임에 대한 정보죠?”
“그렇죠.”
“사실 그 이후로 줄을 계속 섰지만 저는 전부 테스트를 해보진 못했습니다. 리차드 씨는 3개 전부 해보셨나요?”
“그렇죠. 저는 8번 이상 플레이 해 봤으니까요. 하지만 단순히 그게 재미있어서 플레이한 것만은 아닙니다. 확실하게, 기사거리가 될 만한 것도 찾아냈죠.”
“기사거리? 3번째 신작은 사람처럼 대화하는 AI와 함께 학교 동아리에서 게임을 하는 내용이 전부 아닌가요?”
허먼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자신이 보았던 대화의 바리에이션을 감안하면, 부실에 모여 있는 인원들의 성격을 구현하는 데만도 엄청난 용량과 노동력을 투입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자신이 본 것이 그 게임의 전부라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허먼의 질문에 대한 리차드의 답은, 허먼이 생각하고 있는 ‘이 게임’의 스케일을, 아득히 초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허먼 씨는, 처음에 주인공에게 말 걸어서 끌려간 부실에서 게임을 하셨죠?”
“그렇죠.”
“그럼 허먼 씨가 알고 있는 동아리 멤버는 에일라, 아이리, 허쉬, 클로넷, 티미, 이렇게 5명이겠군요?”
“그런데요?”
“사실, 이 게임엔 플레이어가 같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의 숫자는, 제가 확인한 것만 20명이 넘죠.”
“20명이요?! 자유롭게 대화 가능한 캐릭터의 숫자가 20명이 넘는다고요?”
“예.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어쩌면 이 게임이 가진 포텐셜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스케일을 아득하게 넘어서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죠.”
그렇게 말한 리차드가 자신의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허먼의 눈앞에 액정화면을 보여주었다.
카메라의 메모리 안에 담겨 있는 사진.
그것은 허먼이 두 번의 플레이로는 볼 수 없었던, ‘인조학원’의 캐릭터 생성 화면이 찍혀 있는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