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14화 (215/485)

214. 악단 지휘의 감동

허먼은 우선 화면에 뜬 말풍선의 내용을 따라 방금 전 연주에 있었던 틀린 부분을 지적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오자마자 바로 연주가 시작 되었고 자신은 현재 캐릭터들의 이름을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아까 호른 불던 학생, 이름이···.”

그러자 방금 전 칠판지우개를 맞았을 때 허먼에게 다가와 인사했던 캐릭터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자기소개가 아직 이었네요?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먼저 선생님의 이름을 알려주시겠어요?”

“허먼. 허먼이라고 불러.”

“허먼 선생님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저는 콘서트 마스터를 맡고 있는 애벌린 글레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금발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웃으며 인사를 하자, 그녀를 따라 한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허먼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마르코 워든, 첼로입니다.”

“죠셉 필리프, 비올라입니다.”

“시드니 달튼, 클라리넷이에요! 허먼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캐릭터의 이름을 플레이어가 외워도 되지 않도록 캐릭터의 머리위에 마치 MMORPG에서 닉네임을 표시하는 텍스트처럼 각 캐릭터의 이름과 담당하는 악기가 표시되었다.

‘이런 배려는 굉장히 PTW스럽네.’

아마 캐릭터 이름에 유저가 익숙해지면 이름을 끄는 옵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허먼은 캐릭터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소개했다.

“좋아. 방금 그걸로 마지막이지? 난 너희들의 연주를 지휘할 음악 선생님. 허먼 밀러다. 음악에 대해서 엄청나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즐겁게 연주해보자.”

“네!!!!”

허먼은 아직도 화면 여기 저기 떠 있는 말풍선을 바라보면서, 방금 전 첫 번째 합주에서 있었던 문제점을 하나 둘씩 지적하기 시작했다.

[오보에가 좀 더 과감하게 들어오는 게 좋을지도?]

“오보에! 진입할 때 조금 더 과감하게 들어와 줄래?”

“네! 선생님!”

[호른은 숨을 더 깊게 들이쉬고 연주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중간에 호흡이 달리는 것 같으니까.]

“호른은 숨을 좀 더 깊게 들이쉬어 볼래? 숨이 차지 않도록.”

“아, 제가 폐활량이 조금 약한 편이라···지금도 최대한 들이 쉬는 건데.”

[그럴 땐 불어 넣는 힘을 조금 약하게 조절해서 페이스를 잡아야지.]

“너무 세게 불어넣으려 하지 말고, 연주 길이를 생각하면서 이어지듯 불어봐.”

“앗! 넵!”

허먼을 놀라게 하는 점은, 일부러 메시지를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으로 어레인지 해서 지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말을 마치 진짜 사람처럼 다 알아듣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언컨대 적어도 이 게임에 적용된 음성 인식 기술 수준만큼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RFU의 뛰어난 성능은, 허먼의 속에 있는 장난기를 자극 하고 있었다.

‘조금 꼬아볼까.’

[비올라는 2악장을 약간 빠르게(Allegretto)대신 보통(Moderato)으로 연주하고 있어.]

허먼은 메시지를 무시하고 일부러 다른 지시를 내렸다.

자신의 명령에, 게임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기 때문에.

만약 미리 지정된 수정 사항을 플레이어가 따라하는 것이 게임의 시스템이라면, 일부러 반대되는 지시를 내렸을 때 그것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허먼은 그런 계산에서 원래대로라면 약간 빠르게 연주해야하는 파트를 더 빠르게 연주하도록 지시를 임의대로 바꾸어 말했다.

“비올라···. 캐서린? 너는 조금 느린 것 같아. 지금보다 더 빠르게 연주해줄래?”

“지금보다 더 빠르게요?”

“응. Allegro(빠르게) 정도로.”

“넵!”

그렇게 트랩을 하나 숨겨 놓은 허먼은 나머지 연주자들에 대한 지시사항을 메시지를 따라 조정해 나갔다.

개개인의 연주 템포나 미스에 대한 지적부터, 현재 연주하려 하는 곡에 대한 해석에 대한 내용까지.

‘가이드가 잘 짜여 있어서 쉽다.’

처음엔 아는 곡이라 하더라도 전문 지휘자가 아닌 자신이 어떻게 악단을 가르쳐야 하나 걱정했지만, RFU의 말풍선 시스템은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라도 연주자들이 어느 부분을 잘못 연주하고 있는지, 어떻게 수정 지시를 내려야하는지를 충실히 가이드하고 있었기에, 허먼은 즐거운 기분으로 ‘음악 교사’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것은 비록 음악을 잘 모르기에 메시지를 보고 그것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느낌만큼은 자신이 정말로 음악 선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학생들의 연주를 메시지에 따라 지도하면서, 허먼은 자연스레 이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할 때의 모습도 상상할 수 있었다.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게임이 주는 재미가 변화하는 건, PTW의 게임들이 가진 공통된 특징이었기 때문에.

‘분명 이런 형태면 나중에 익숙해졌을 때 말풍선 끄고 유저가 알고 있는 게임 지식만으로 지휘하고 가르치는 것도 가능하겠지? 정식 발매 이후에 익숙해져서 메시지 기능 끄고 플레이하면 진짜 지휘자가 된 기분이겠다!’

그렇게 즐겁게 연주에 대한 지도를 하는 내내 허먼을 감탄하게 만들고 있던 것은, 메시지를 그대로 읽지 않고 온갖 바리에이션을 주어서 대화를 시도해도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 적당한 반응을 보이는 AI의 성능에 대한 것이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꺼낼 때마다, 허먼이 마음속으로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 DOS시절부터, ‘인간처럼 대화하는 AI’에 대한 로망은 늘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도도 늘 있어왔고.

그렇기에 허먼은 대화를 시도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AI’특유의 대화 패턴을 뽑아내려 애썼지만, 그 모든 패턴의 대화 방식에 일일이 대응하는 게임을 보면서,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PTW가 구현한 이 결과물이, 자신의 예상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훌륭하다는 사실을.

‘뭐지? 이 미친 개발자들이 드디어 특이점을 돌파했나?’

대화를 진행하면서 잠시 그런 생각에 빠질 정도로, 허먼이 테스트 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완성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났다.

허먼이 몇 번이고 자신이 테스트플레이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화면속의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정도로.

그리고 그 사실은 노골적으로 이번 세션에서 공개된 게임이 게이머에게 주고자 하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소통? 육성? 성장? 정확히 정의하기는 힘들어도 지금까지 다른 리듬게임이 주던 재미와는 결이 다르다는 건 확실하군.’

이전 이벤트 세션에서 허먼이 느꼈던 감각이 ‘완전히 새로운 FPS’에 대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세션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마치 게임이 아닌 무언가’를 즐기는 듯한 감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짧은 시간임에도 허먼에게 미칠 듯이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정말로 음악 선생님이 되어서, 학생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을.

그때, 대충 파악한 부분의 문제점이 모두 수정되었는지 화면에 메시지가 출력되는 것이 보였다.

[좋아. 그럼 다시 해볼까.]

이제 다시 연주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면서, 허먼은 자신도 모르게 메시지를 따라 지휘봉을 들어 올리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자, 그럼.”

방금 전의 엉망이었던 연주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기대하며, 입가에 커다란 미소를 띠면서.

“다시 해볼까?”

일제히 악기를 들어 올리는 학생들을 보면서, 허먼이 다시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곡을 떠올리면서 힘차게 다시 손을 내렸다.

‘다르다. 이게 아까 그 곡인가?’

2번째 연주를 시작한 허먼이 머릿속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지금 자신의 귀에 들리는 소리가 첫 번째 연주와 완전히 다른 소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차이는, 허먼의 머릿속에 단어 하나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Harmony(조화).

잘한다? 능숙하다?

절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NPC들의 연주는 여전히 아마추어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고, 일반적인 클래식 콘서트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연주를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은 제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 연주를 하고 있는 NPC들이 방금 허먼이 지적한 부분을 틀리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도.

완전히 능숙하지는 않지만 첫 번째 연주보다 훨씬 퀄리티가 올라간 느낌으로, 화면속의 캐릭터들이 각자가 들고 있는 악기를 열심히 조작하고 있었다.

분명 그 모습은 능숙함이라는 단어보다는 열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세상 어느 누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서투른 연주에 불평할 수 있을까.

악보와 지휘봉으로 열심히 시선을 교차해 가면서, 혹시나 실수가 나올까 싶어 전전 긍긍해하는 연주자의 모습을 보며, 허먼은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포근함이 몰려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앞에서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는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겨우 방금 전에 만났을 뿐인데도, 당장 게임을 구매해서 이 아이들과 함께 ‘완성된’ 합주를 해 내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진짜, 이 회사는 예측할 수가 없네.’

PTW의 게임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전문가라 할 수 있는 허먼 조차도, 극한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FPS를 만들기 위해 실제 미군부대를 동원한 PTW가 다음 세션에선 갑자기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치유계 리듬 게임을 내놓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예측을 할 수 있었든 없었든 간에,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플레이하고 있는 이 게임이 ‘즐겁다’는 것이었다.

손끝의 움직임을 따라 소리가 자연스레 따라오는 독특한 감각은, 마치 손으로 음악을 직접 컨트롤 하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방금 전에 자신이 지적했던 부분을 어색하게나마 열심히 고치려 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은 그들이 음악에 가지고 있는 애정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거장의 음악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감동.

손을 빠르게 휘저을수록 점점 고조되어가는 현악기의 리듬.

손을 아래로 세차게 내리칠 때마다 격하게 울리는 팀파니의 고동.

눈을 감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지휘봉의 움직임을 따라 지저귀듯 퍼져나가는 관악기의 소리.

그것들이 합쳐져, 마치 자신이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감각을 주는 리듬게임.

그것이 허먼이 플레이하고 있는 RFU라는 게임이었다.

‘게다가 예상대로 지시가 바뀌면 연주도 바뀌는 게임이고.’

2악장에서 자신이 일부러 잘못된 지시를 내린 것을, 비올라 연주자는 제대로 연주에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혼자만 연주 템포가 달라져 어색한 느낌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허먼에게 그것은 오히려 즐거운 소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듣고 있는 어색한 연주가, 이 게임의 정식 버전을 플레이할 때,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게임은 말 그대로, ‘유저가 이 게임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을 완벽에 가깝게 모두 제공하는 게임이었다.

‘아, 진짜로, 진심으로 이 게임이 오늘 발매였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눈물이 날거 같다.’

허먼은 마음속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연주하는 음악이 점점 고조되어 갈수록, 이 게임의 매력에 푹 빠질 것 같았기 때문에.

그 순간 허먼은 마음속으로 이번 컨벤션의 1순위 게임의 순위를 변경했다.

물론 앞서 했던 FPS도 정말 몰입감 부분에서는 끝내주긴 했었지만, 거기엔 이 정도로 미친 AI가 달려있지는 않았으니까.

미친 게임.

그리고 아마도 이번 컨벤션에서 공개될 게임 중 최고의 게임이 될 것이 확실한 게임.

그것이 허먼이 이 게임에 내린 평가였다.

이 게임은 1번 세션에서 갑자기 보호복을 입고 폭탄을 해체해야 했을 때 허먼이 느꼈던 감각처럼, 몰입하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몰입이 될 수밖에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즐거워.’

격해지는 리듬에 맞춰 팔을 흔들면서, 허먼은 자신도 모르게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 파트에 맞춰 양팔을 휘저으면서, 어설프지만 열성을 다해 연주 중인 캐릭터들의 앞에서 ‘지휘자’로써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아니, 강제로 그렇게 되도록, 게임이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격렬한 연주가 끝나고 허먼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멋진 연주였어요.”

환하게 웃는 안내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허먼은 그제야 안내원의 얼굴이 게임 안에서 봤던 캐릭터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게임 안의 캐릭터가 훨씬 미화 되어서 표현되어 있긴 했지만.

“아! 혹시 당신이 콘서트마스터 애벌린의 원래 모델입니까?!”

허먼의 질문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예. 맞아요. 물론 게임 속에 재현된 캐릭터가 훨씬 예쁘지만요.”

“연주도 직접 하신 겁니까?”

“예. 게임 안에 있는 모든 캐릭터는 실제 연주자를 베이스로 제작된 캐릭터니까요.”

“외람된 말씀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많이 어설프던데요?”

“처음부터 잘할 수 있다면, 선생님의 존재가 의미가 없겠죠?”

“그럼 게임을 하면서 성장한다는 의미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허먼은 자신도 모르고 속으로 ‘제발’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정말로 이 게임에서 선생님의 역할을 맡아서, 성장한 제자들과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허먼의 간절한 바램에, 애벌린은 환하게 웃으며 그가 바라던 대답을 해 주었다.

“물론이죠.”

그리고는 손목에 찬 시계를 쳐다보고는 허먼에게 말했다.

“테스트 시간이 종료되었네요. 아쉽지만 선생님, 다음엔 게임 안에서 만나길 기대하겠습니다.”

“어쩌면 기다리다 미쳐버릴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꼭 그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안내를 받아 허먼은 테스트룸을 나섰다.

그리고 방문을 나서기 전, 자신이 있던 음악실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허먼과 마찬가지로 방금 전의 연주로 피부에 송글송글 땀방울을 맺고 있는 자신의 ‘제자들’이, 화면을 통해 허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허먼은, 그런 제자들을 바라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허용된 시간은, 방금 전 끝났으니까.

‘Next time, baby.’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허먼은 자신이 방금 전까지 플레이 했던 것이 ‘게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섬마을 학교의 음악선생이 되어, 제자들을 처음 만나 함께 호흡을 맞추며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한 것이 아니라, 단지 ‘게임’을 플레이 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잠시 잊고 있었다는 것은 허먼에게 소름끼치는 사실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게 그걸 잠시 잊을 정도로 대단한 게임이라는 거. 진짜로 정식 발매까지 어떻게 기다려야할지 모르겠군. 차라리 이 게임을 하지 않은 뇌를 사고 싶은 심정이야.’

울상을 지으며 학교 밖으로 나간 허먼은, 다음 세션으로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크게 기대감을 품지는 않으면서.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이 겨우 2차 컨벤션이고, 메인 게임이 3번 세션에 있었던 건 단 한번이잖아. 그리고 방금 전 게임은 정말 엄청났었고. 그럼 어쩌면 이번 행사는 2번 세션이 메인 세션일지도 모르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3번 세션에 가는 것이었다.

아니면 자신과 다르게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3번 세션으로 바로 이동한 리차드에게 연락을 하던가.

허먼은 후자의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만약 자신의 예상대로 3번 세션의 게임이 메인이 아니라면, 리차드는 땅을 치고 후회할 테니까.

‘같은 PTW의 팬으로써 그럴 수는 없지. 여기서는 리차드 씨에게 호의를 베풀자.’

그렇게 확신한 허먼은 휴대폰을 들어 리차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리차드 씨, 방금 2번 세션의 공개 플레이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리차드의 답장이 도착했다.

[지금 4번째로 체험존에 다시 입장하느라 메시지에 대답을 못했습니다. 다시 줄서는 중이에요. 허먼 씨는 어땠습니까?]

[엄청났죠. 1번 세션의 게임도 엄청났지만, 2번이 특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컨벤션의 메인 게임은 2번이 확실하다고 판단이 되네요.]

[설마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아뇨. 들어보세요. 이번이 2회 행사고, 무조건 3번 세션이 메인이라는 보장은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2회 행사에서만이라도 2번 세션이 메인 게임일 가능성도 있는 거죠.]

허먼은 자신의 지적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PTW에서 ‘우린 무조건 3번 세션의 게임이 메인입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돌아온 리차드의 대답은, 허먼의 기분을 살짝 상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재미를 기준으로, 허먼 씨가 앞에서 무슨 게임을 했던 간에 3번 세션 게임이 무조건 메인입니다.]

[아니, 리차드 씨는 1 2번 세션에서 공개된 게임을 해보지도 않으셨지 않습니까? 게임 기자라는 분이 보지도 않은 게임을 가지고 무조건 자기가 본 게 최고다. 라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고 보는데요?]

[아뇨. 이번 경우는 그래도 된다고 봅니다. 진짜로요. 내기하셔도 좋습니다. PTW에서 공개한 다른 게임이 뭐든 간에, 무조건 제가 지금 6번째 플레이 하려고 줄서고 있는 이 게임이 메인입니다.]

거기가지 이야기하는 리차드를 보며,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한 기분을 느낀 허먼은 휴대폰 자판을 격하게 두드리며 리차드의 도발에 응했다.

[젠장, 좋습니다. 내기 하시죠. 2천달러 걸죠. 2번 세션 게임이 무조건 메인입니다. 제가 보고 겪은 게 무엇인지 리차드 씨는 상상도 못할 거라고요! 그리고 2번 세션의 게임을, 아니 1번 세션 게임도 다 플레이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좋습니다. 내기하시죠. 그리고 전 후회 안 할 겁니다. 적어도 지금 제가 해보고, 또 하려고 줄 서고 있는 이 게임을 이길 게임은,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답장을 보낸 리차드는, 허먼이 답장을 보내기도 전에 [다시 게임하러 옵니다. 인생 최대의 후회를 하기 전에 빨리 3번 세션으로 오시죠.]라고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허먼을 매우 빡치게 만들었다.

허먼 답지 않게, 그로 하여금 어떻게든 3번 세션의 게임에 ‘트집’을 잡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그래서 허먼은 2변 세션 부스의 나머지 이벤트 존을 돌아보겠다는 계획을 완전히 수정했다.

지금 당장, 리차드가 있는 3번 세션으로 가서 PTW의 3번째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방금 플레이한 RFU가 이번 컨벤션의 메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허먼은 3번 세션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은, 잔뜩 전투의지를 다지던 허먼의 머릿속을 황당하게 만드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 학교? 왜?!”

PTW의 3번째 게임의 이벤트 세션.

그곳의 세트는 2번 세션과 마찬가지로 ‘학교’를 테마로 한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2번 세션의 학교가 시골 학교의 모습이라면, 이번 세션의 학교는 현대적인 모습의 학교라는 점뿐이었다.

그리고 그 학교의 모습은, 묘하게 자신이 만우절에 보았던 PTW의 유출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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