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튜링 테스트
카렌이 제안한 테스트는, 엄밀히 말하면 진정한 의미의 튜링 테스트는 아니었다.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사용할 수 있는 대화 스크립트는, 게임 플레이 도중에 사용할 수 있는 가능한 최대한의 가짓수를 자랑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플레이어 개인의 사적인 대화까지 전부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의 AI는 아니었기 때문에.
오로지 ‘게임 플레이’에만 특화된 AI.
그것이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정체였다.
그렇기에 카렌은,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 상혁에게 테스트 중 지켜야할 주의사항에 대해 환기 시켰다.
맘먹고 AI가 대답할 수 없는 종류의 질문만 하면, 누가 성우이고 누가 AI인지 금방 맞출 수 있을 테니까.
오로지 게임 플레이 관련 대화에 한정 지어서 플레이를 했을 때, AI와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이번 테스트의 목적이었다.
“주의 사항은 잘 아시죠?”
카렌이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내적인 이야기만 하면 되는 거지?”
“예. 그것만 지켜주시면 되요.”
민준이 개발한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로 하여금 AI가 사람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성능의 원천이 스크립트 팀의 노가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절대 완성된 AI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애당초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를 전부 고려하여 만든 방대한 대화집 속에서, 상황에 맞는 대화를 AI가 선택하여 출력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마피아 게임 도중에 갑자기 ‘지구온난화’같은 토픽을 꺼내면 ‘왜 뜬금없이 그런 소리를 해?’라던가 ‘지금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같은 식으로 반응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생긴 테스트 규칙이 ‘AI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지 말 것’.
사람이라면 자신이 모르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도 그 자리에서 생각해서 대응할 수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기능으로는 아예 새로운 개념을 학습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혁이나 민준이나, 현재 게임에서는 지금의 방식이 더 알맞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려는 것은 함께 ‘게임’을 할 친구를 유저에게 제공하는 것이지 유저의 잡담까지 들어주며 심리상담을 해주는 슈퍼 AI가 아니었으니까.
그 사실을 잘 아는 상혁은 자신이 고의적으로 AI가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을 하면 금세 누가 성우이고 누가 AI인지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하던 것처럼 정상적으로 테스트에 임했다.
애당초 지금 자신에게 테스트를 요청한 목적 자체가, ‘제대로’ 플레이를 했을 때 AI와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해달라는 목적임을 잘 알고 있기도 했고.
“그럼 시작합니다.”
빠른 테스트를 위해, 게임은 이미 기동되어 돌아가고 있었다.
방과 후처럼 보이는 부실의 컴퓨터 앞에 캐릭터가 있는 상태로.
상혁이 패드를 조작해 컴퓨터 앞에 앉자, 캐릭터가 헤드셋을 쓰는 애니메이션을 나왔다.
그리고 노트북 화면에 게임 캐릭터가 로그인 하는 연출과 함께, 대화방에서 대기하고 있단 다른 AI들의 인사말이 동시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인공님이 입장하셨습니다>
-헤위헤위~-
-아, 2분 지각. 벌금 10마넌!-
-주인공씨가 늦기에 방은 제가 팠어요. 오늘 할 게임이 더 인스펙터 맞죠?-
‘이거 TTS맞아?’
상혁은 내심 놀라움을 느꼈다.
이전에 초기버전을 테스트했을 때보다, 재생되는 음성의 자연스러움이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에.
민준이 전 세계에서 수집되는 음성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시킨 보이스 엔진은 적어도 일반적인 대화만 가지고는 AI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음성 재생을 구현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매번 버전 업을 진행할수록 점점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상혁은 헤드셋에 달린 마이크를 통해 음성으로 AI들에게 인사했다.
“다들 하이~”
그러자 상혁이 밝은 목소리를 알아들은 AI들이 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대화들은 상혁이 조종하고 있는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AI끼리의 대화도 섞여 있었다.
-이번에도 지난번 게임처럼 나 왕따 시키면 게임 안 해.-
-그때 내가 너 믿고 편들어줬는데 감염자였잖아! 여기서 제일 거짓말 잘하는 게 너니까 네 말은 안 믿는다!-여러분 제가 죽으면 무조건 빨간색이 범인입니다! 기억하세요! 제가 죽으면 빨간색이 범인입니다.-
-아니, 왜 그렇게 되는데? 그럼 나 죽으면 검정색이 범인!-
-주인공 오빠 혹시 감염자 걸리면 저는 마지막까지 살려주세요! 나머지는 다 죽여도 되니까!-
-정수우우우우우우우욱!-
사방에서 떠들어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상혁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사 자체를 사람이 쓴 것이기 때문에, 대화 내용으로 AI를 판단하는데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발음으로 판단해야하는데, 아무래도 컴퓨터로 합성한 목소리는 어조가 어색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나, 어색함 기준으로 성우를 고르려던 상혁은 첫 번째 게임이 끝날 때까지 누가 성우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민준이 만든 보이스 엔진의 성능은, 단순히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는 AI와 인간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설마 비명 지르는 거랑 우는 것까지 완벽하게 재현했을 줄은···.’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 상혁은 일부러 특정 상황을 반복해서 수행함으로써 AI를 특정 지으려 했다.
일반적인 AI라면, 같은 입력 값에 같은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니까.
“내 생각엔 빨강이 범인 같아.”
3번째로 상혁이 자신을 지목하자 붉은색 옷을 입은 캐릭터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 나? 나 아닌데? 왜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해?-
“내 생각엔 빨강이 범인 같아.”
-주인공! 왜 계속 같은 말만 하는데?! 봐! 몰아가는 거 보니까 100% 주인공이 범인이네!-
그러자 전 게임에서 억울하게 죽은 파랑이 빨강의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X색기네!-
순간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AI의 대사에 반응했다.
“넌 그냥 나 욕하고 싶었던 거 아니냐?”
-어? 아닌데? 아까 억울하게 몰려서 죽은 원한 같은 건 없거든?-
그러자 상혁은, 이번엔 논리적인 거짓말을 통해 AI의 패턴을 파악하려 했다.
“내가 아까 빨강이 파랑 죽이는 거 봤다.”
-넌 아까 전 게임에서도 내가 노랑 죽였다고 우겨서 나 죽였잖아! 얘들아, 알지? 인스펙터에서 누군가가 한명을 집요하게 몰아가면, 90%확율로 그놈이 범인인거?-
“빨강이 범인이라고!”
-와, 주인공. 말 빨에서 밀리니까 소리 지르네?-
-주인공 오늘 어디 아프냐? 왜 계속 같은 말만 해? 컨디션 안 좋으면 게임 그만하고 쉬는 게 어때? 내가 간호해줄게. 일단 자신이 감염자라는 걸 인정하고 죽으면 나중에 내가 호-해줄지도 몰라?-
“아 꺼져 이것들아.”
-우와아···. 심한 말···.-
인조학원 내부에 삽입된 마피아 게임인 ‘더 인스펙터’를 개발하면서, 상혁은 혁찬에게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마피아게임에서 발생할 법한 기믹을 모두 알려주었다.
이미 감염자임을 속일 수 없는 상황에서, 한번만 봐달라며 눈물의 똥꼬쇼를 펼치는 상황이라던가, 애교를 부려서 위기를 회피하려는 상황이라던가.
혹은 몇 명이 작당하고 한명을 고의적으로 묻어버리는 상황부터 이미 감염자임이 확정된 캐릭터를 두고 결백한 캐릭터를 공격하며, 실제 투표는 감염자를 찍는 상황까지.
그리고 혁찬은, 상혁이 알려준 기본 상황에 각 성격별 조합에 따른 바리에이션까지 구현하여 수많은 대사들을 만들어냈다.
이 모든 대화가, 비록 성우가 한명 섞여있다고는 하지만 구분이 되지 않는 연기로 AI가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혁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건 마치 게이머의 꿈같은 거였으니까.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게임’이 줄 수 있는 경험의 범주를 아득하게 벗어난 게임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어느새 상혁은 테스트는 뒤로 미루고 즐겁게 AI들과 소통하며 게임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몰입하고 싶어서 몰입한 것이 아니라, 이 게임 자체가 사람을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티밍(Teaming : 시스템 상으로 지원하지 않는 팀 플레이를 고의적으로 하는 행위)부터 몰아가기, 정치질, 국밥 플레이(든든하다는 의미로 일부러 감염자의 편을 들어 게임을 망치는 행위)등의 인간만이 할 법한 다양한 패턴을 시험했다.
그리고 그런 온갖 플레이 끝에, 상혁이 내린 결론은 의심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확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상혁은 백기를 들고 말았다.
‘아, 이거 연기나 대화 내용 가지고는 도저히 파악 못하겠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추가된 성격과 게임으로 현재 600만개 넘게 작업된 스크립트는, 도저히 인간과 AI를 별도로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의 정교함을 가지고 있었다.
남은 것은 목소리 정도인데, 상혁은 그 목소리를 가지고서도 도저히 누가 성우고 AI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비명소리 같은 건 좀 어색하게 들릴 법도 한데,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이게 기계적으로 가능할리 없는데?’
그리고 민준은, 그렇게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상혁의 뒤에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어려울 거다, 이 자식아.’
상혁이 목소리로 AI를 구분하지 못하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실제로 어색함이 발생할 만한 대사들은, 전부 성우가 따로 더빙한 목소리였으니까.
민준은 AI로 보정 가능한 연기 영역의 한계를 파악한 뒤 어색함이 발생하는 나머지 대사들은 전부 성격별 ‘시그니쳐 보이스(signature voice)’라는 형식으로 별도로 더빙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것을 컴퓨터가 생성한 연기 음성과 절묘하게 섞이도록 조정했다.
그 덕에 현재 버전의 보이스 엔진은 어디까지가 컴퓨터가 AI에 의존해 연기하고 있는 부분이고, 어디까지가 성우가 실제로 연기를 한 부분인지 파악하지 못할만한 퀄리티로 성우들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상혁을 더욱 감탄하게 만들고 있던 것은, 단순히 AI가 만들어내는 음성의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점이 아니었다.
자신이 테스트 중이라는 것을 자꾸 잊어버릴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적절하고 센스 넘치는 대사로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의 대사들이, 상혁에게 마치 친한 친구들과 함께 방과 후의 교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결국, 3회의 마피아 게임 플레이를 상혁이 마치고 나서, 상혁은 자신이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보이스 엔진의 퀄리티가 높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와, 진짜 모르겠네.”
“그래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묻는 카렌에게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적어도 연기를 보고 이게 AI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애당초 대사야 전부 사람이 썼으니 사람 같은 건 당연하고.”
그러자 카렌이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상혁에게 물었다.
“그래서, 누가 AI 같아요?”
“아마도···. 검정?”
상혁은 순간 카렌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쳐지나간걸 보았다.
아마도 자신이 정답을 맞춘 모양이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옆에서 볼 때는 거의 완벽했는데?”
“딱히 보이스 엔진이나 커뮤니케이션 엔진에 문제가 있어서 맞춘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나머지가 다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으면, 부자연스러운 쪽이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한명만 대답할 때 딜레이가 있더군요. 나머지는 오히려 사람보다 더 사람다웠어요.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오히려 어색했기 때문에 성우가 누구인지 맞출 수 있었다는 자신의 칭찬에 카렌의 표정이 풀리는 것을 보며, 상혁은 민준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아무리 딥 러닝을 썼다고 해도, 아예 기대할 수 없는 패턴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던데?”
“섞었어. 특정 부분은 성우가 직접 더빙한 거고, 나머지는 AI.”
“오, 기발한데?”
AI가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은 AI가 처리하고, 나머지는 사람의 힘으로 구현했다는 민준의 말에 상혁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들어갔을 개발 2팀의 노력에 대해서도.
‘진짜로, 상상 이상의 것을 만들어 냈네.’
이 정도로 TTS의 연기 퀄리티가 높으면, 이 게임을 하는 유저들도 조금 전 자신이 테스트를 하며 느낀 것처럼 게임에 미친 듯이 몰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만족한 표정으로 개발2팀을 바라보는 상혁에게 민준이 다가와 물었다.
“어땠냐?”
“어떤 거? 게임? 아니면 커뮤니케이션 엔진? 아니면 보이스 엔진?”
“종합적으로.”
“어느 하나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네.”
“흥할까?”
“뭔 소리야? 이미 이건 흥함을 논할 레벨의 물건이 아닌데?”
“개발비가 엄청 들어갔잖아.”
“그거 다 회수하고도 더 벌걸? 게다가 이건 코넥트 전용 게임도 아니니 양대 콘솔로 동시 발매할 수 있을 거고.”
“그래? 확실해?”
“150%확신한다. 무려 유저에게 ‘게임 친구’를 만들어주는 게임이야. 절대 실패할 수가 없지 이건.”
“나머지는?”
“재미만 놓고 보면 이것보단 떨어지겠지만 둘 다 좋은 게임이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어.”
“좋네.”
민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2차 NE컨벤션이 기대되네.”
그러자 상혁도 고개를 돌리며 민준의 말에 동의했다.
“나도.”
적어도 현재까지는 개발 중인 3개의 게임 모두, 상혁이 기대하던 것 이상의 퀄리티로 완벽하게 개발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개발이, 개발자의 애정과 열정 속에서 점점 ‘완벽함’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거쳐서.
오로지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집념으로, 개발자가 고난을 감수하고 노력을 쏟아 부어 결과물을 만드는 것.
그것은 상혁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개발과정 그 차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상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공개를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유저들이 그토록 궁금해 하는 PTW의 신작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 앞에 공개하는 것 뿐.
PTW는 지금, 2차 NE컨벤션까지 말 그대로 ‘한 스텝’만을 남겨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