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08화 (209/485)

208. 목소리 찾기

PTW의 게임 중 최초로 음성지원이 들어가기 시작한 ‘배틀로얄’이후로, 본격적으로 음성 더빙이 들어가기 시작한 GOS때부터, PTW는 성우 기용에 있어서 특이한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게임회사에서 해당 작품의 성우를 구인할 때 담당자가 배역에 어울리는 성우의 리스트업을 하거나, 오디션을 통해 모인 지원자들을 중심으로 배역을 결정하는 것과는 달랐다.

PTW에서는, 개발팀에서 직접 해당 대사와 캐릭터에 어울리는 성우를 추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단순히 추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추천한 배우나 성우가 작품의 배역을 맡았을 경우에는 그 성우를 추천한 직원을 불러 별도로 기념사진 촬영도 진행하고, ‘이 직원이 당신을 이 배역에 추천하여 선정했습니다.’라는 식으로 소개도 해 주었다.

팬으로써, 그보다 기쁜 덕업일치는 없다고 느낄 수 있도록.

그렇기에 PTW의 성우 기용은, PTW직원들에겐 일종의 축제의 장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고, 직원들은 여느 때처럼 열렬히 자신이 해당 배역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성우들을 마구 추천해서 올렸다.

물론 외부에 공개해서 지원형태로 받는 오디션도 통상대로 진행하지만, 그 경우 내부 게시판에 해당 성우의 포트폴리오를 올려놓고 직원들이 추천으로 결정하게 한다.

그 결과물이, 회사의 성우 공고 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직원들의 추천 게시물과 상혁의 앞에 쌓여있는 소속사에서 보낸 지원 서류들이었다.

“아, 좀. 이제 지원 서류 올 때마다 내 책상에 쌓아놓는 전통은 없애면 안 되나?”

물론 그것을 검토하고 직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서버에 업로드 하는 것은 상혁의 업무가 아니었지만, PTW에는 대규모 구인 시즌이나 성우 지원 때마다 외부에서 온 서류를 상혁의 책상에 쌓아놓는 전통이 있었다.

물론 그 전통은 상혁이 그런 이벤트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이벤트였고.

“넌 좋아하잖아.”

“좋기야 하지. 이런 거 볼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니까. 고등학교 부실에서 게임 패키지 박스 접던 시절이 떠올라서 즐거운 기분이 되니까. 그래도 굳이 워크 패스트로 보내도 되는 문서까지 억지로 서류로 만들어서 보내는 건 종이낭비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서류더미를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한 뭉치씩 집어 들어 한눈에 보기에 대놓고 말도 안 되는 건의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그건 왜 안 돼?”

“성우로 로다주 써 달래.”

“미친.”

“마음은 이해하지만, 진짜로 목소리가 잘 어울리면 몰라도, 단순히 로다주랑 사진 찍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캐스팅하기엔 너무 비싸지. 안 그래도 작년에 업벤저스 히트하고 몸값이 천장을 뚫으려 하던데.”

“이슈는 될 수도 있잖아. 좀 더 고민해보는 게 어때?”

마치 강요하듯 집요하게 캐묻는 민준을 보던 상혁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너···. 너 이 색기···. 설마 이 로다주, 너냐?”

“야, 돈도 많은데 그 정도는 해도···.”

“야, 이노무 쉐키야! 지금 인조학원 개발할 하면서 들어간 돈이 얼만 줄 아냐! 라투디 산다고 3천억 쓰고 네가 TTS개발하는데 필요하다고 데이터센터 만드는데 또 8천억 들어갔어! 임마! 근데 이번엔 성우로 로다주를 쓰자고? 너 정신 나갔니?”

“안되냐?”

“안 돼.”

“하지만 아무리 비싸더라도 잘 어울리면 쓸 거잖아?”

“뭐, 아예 풀 더빙하는 건 아니니까. TTS로 자연스럽게 구현 가능한 수준의 녹음만 진행하면 되는 거고, 그 부분에서는 단가를 좀 협상할 수 있겠지. 나도 유명 배우나 성우들을 기용하는데 완전히 반대하는 건 아니야. 단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캐스팅하는 걸 막으려는 거지. 그리고 지금 설정된 성격 중에 로다주랑 어울리는 목소리는 단언컨대 없다.”

사실 로다주를 성우로 캐스팅하자는 제안은 민준도 장난 식으로 끼워 넣은 것이었기에 민준은 깔끔하게 자신의 제안을 철회했다.

그리고는 새 아이디어를 던졌다.

“그럼 아예 원본 목소리를 사용하는 건 어때? 원본으로 잡은 스트리머들이 있을 거 아냐.”

“올해는 2013년이잖아. 성격 원본이 되는 스트리머 중에 현재 방송하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걸?”

“아, 그런 문제도 있겠구나.”

“그렇지. 각 성격의 모델이 된 원본 스트리머들을 캐스팅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중에 몇 명은 지금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일수도 있다고.”

“그럼 어쩌려고?”

“최대한 잘 어울리는,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캐스팅해봐야지.”

계속해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상혁을 보며 민준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Live2D 도입은 어때?”

“최고지. 아무래도 원본 개발사 직원들이 참여하니까 그래픽 팀에서 수월하게 작업에 적응하기도 쉬웠고, 툴 업그레이드도 어렵지 않게 지원할 수 있었으니까.”

원래 초창기의 Live2D기술은, 수십 개의 레이어로 분할된 캐릭터의 이미지 파츠를 일일이 세팅하여 움직임을 주는 방식이었다.

민준은 거기에 코넥트를 연동하여 움직임을 재생할 수 있도록 툴을 개선했고, 덕분에 지금의 작업 툴은 초반에 세팅만 해두면 단순히 작업자가 코넥트 앞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높은 수준의 움직이는 2D캐릭터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민준의 질문은 Live2D의 기술적 도입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개발적인 부분 말고, 재미적인 부분 말이야.”

“아, 그것도 좋고. 역시 움직이는 2D 캐릭터는 좋더라. 게임 중에는 구석에 작게 뜨는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인방 느낌이 강하게 나서 재밌더라고. 직원들 평도 좋고. 커스터마이징 부분이 좀 더 어려워진 것만 빼면 거의 완벽해.”

원래 3D 카툰렌더링을 기반으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는 게임이라, Live2D의 도입은 매우 어려운 문제라 할 수 있었다.

3D로 만든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Live2D용 2D 파트로 생성하는 기술은, 아직 없었으니까.

그래서 현재의 버전은 3D 파츠 에서 선택한 헤어나 악세서리 파츠와 동일한 구성의 파츠를, Live2D캐릭터의 지정된 위치에 호출하도록 구현해 놓은 상태였다.

물론 정교하게 만들려면 매우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이긴 했지만, 일단 기본 캐릭터로 게임을 진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기에 해 놓은 조치였다.

“결국 유저가 모드 적용하고 게임 캐릭터의 외형을 손대면 손댈수록, Live2D 캐릭터에 적용하는 리소스도 유저가 따로 만들어서 넣어야 할 거야. 그건 어쩔 수 없을 거 같아.”

“확실히, 그건 불편하긴 하지. 그럼 공개 때도 그대로 갈 거야?”

“아니. 일단은 최대한 기본 캐릭터의 외형 옵션을 다양하게 줘서 지정된 프리셋을 조합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게 하려고. 그것 때문에 지금 2D 파츠 작업이 엄청나게 늘어나서 서연이가 고생중이긴 하지만.”

“결과가 좋을 것 같으니, 감수하겠다는 거지?”

그렇게 말한 민준이 잠시 생각하다 상혁에게 물었다.

“아마 지금 버전의 툴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이전보다는 빠른 시점에 버튜버 같이 라투디를 이용한 온라인 스트리머들이 등장하겠지?”

민준의 말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롤 모델이 있으면, 따라가는 사람들이야 금방 늘어나니까. 아마 그렇겠지.”

“그럼 그 툴의 공개는 언제 할 예정이야? 안 그래도 라이선스 판매 중지 때문에 말이 좀 나오던데.”

디지털노이즈의 인수 발표 이후로, 상혁은 Live2D의 모든 버전에 대한 라이센스 판매를 중지했다.

기존에 공급하고 있던, 프리라이센스 사용에 대한 권한만을 허용 한 채로.

그 덕에 현재의 PTW는 Live2D 기술의 보급에 기대를 걸고 있던 일부 오타쿠 유저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대기업이,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해 돈으로 회사를 인수하고, 전도  유망한 기술을 독점하려 한다.’라는 식으로.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에서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상혁이 라이선스 판매를 중지한 것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공짜로 풀 물건을 지금 파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까.

단지 기존의 작업 툴인 Cubizm의 현재 버전의 작업 난이도가 심각하게 높았기에, 훨씬 쉽게 작업할 수 있는 새 Live2D 작업 툴인 ‘Prism’을 공개하는 시점에 오픈 라이선스 발표를 하기 위해 미뤘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 공개 시점을 ‘인조학원’의 발매가 된 이후 시점으로 잡고 있었다.

“적어도 NE컨벤션 이후에 인조학원이 공개되고 나서 오픈 라이선스로 전환해야겠지.”

“차라리 바로 공개하는 편이 낫지 않아?”

민준의 질문에 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Live2D라는 기술 자체는 우리가 회귀하기 전에 꽤 오래 존재했잖아. 하지만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건 좀 더 뒤의 일이고.”

“그렇지.”

“회귀 전의 Live2D가 오랜 시간동안 의외로 인지도가 적었던 이유는 첫째로 얼굴이 마우스를 따라간다던지 하는 게 아니라면 움직이는 2D 캐릭터 이미지 자체는 애프터 이펙트로 재현하는 게 더 쉽기 때문이고, 둘째로 툴 난이도가 너무 복잡한데다, 마지막으로 그 개쩌는 기술을 가지고도 사람들이 뭘 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거였지. 일부 모바일 게임에서 사용되긴 했지만, 그 기술이 가진 포텐셜 자체는 모션 트래킹 기술하고 결합되면서 폭발한 거니까.”

“그래서, 먼저 어떻게 쓰는 게 좋은지 유저들에게 보여주고, 수요가 생긴 이후에 오픈 하겠다?”

“그렇지. 나는 원조학원에 탑재된 AI들이 Live2D로 움직이는 캐릭터 일러스트로 다양한 움직임과 표정을 보여주고, TTS로 재생되는 음성을 들으면서 ‘아, 재미있다. 저런 걸로 스트리밍 방송하면 재미있겠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다음, 본격적으로 오픈하는 게 전파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순간 홍수처럼 수요가 몰려들 테니까. 이제 남은 건, 만들어둔 성격에 맞는 성우를 캐스팅해서, 민준이 네가 개발한 TTS로 적합한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하고, 게임을 발매하는 것뿐이고.”

“괜찮을까?”

“글쎄?”

상혁이 말했다.

“적어도 내부 테스트는 지금까지 만든 게임 중에 가장 좋았으니까. 심지어 지수도, 게임성만 놓고 보면 MYOM보다 인조학원이 더 재미있다고 인정하고 있고. 나머지 작품들도 다 개성 있는 게임들이라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플레이하면 극도로 즐거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야. 3작품 전부 흥행엔 문제가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

“게임 말고, 공개 쪽을 물은 거야. 공개행사인 2차 NE컨벤션에서, 거의 전설수준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1차 NE컨벤션의 명성을 이어가면서,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신작에 대한 엄청난 기대를 품게 해야 하는 거잖아. 어때, 자신 있어?”

“자신?”

상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지금 누구한테 묻는 거지? 두고 보라고. 이번 행사 때도 관객 모두가 마법에 빠진 것처럼 멋진 시간을 보내게 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눈은, 2차 행사 때 자신이 준비한 것을 보고 유저들이 보여줄 반응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

허먼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직업을 버리고 PTW전문 리뷰어로 전향한 이후로,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만족하고 있는 부분은 게임 언론인으로써 누릴 수 있는 보너스적인 부분에 있었다.

예를 들어 남들이 다 ‘어떻게 티켓을 예약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괴로워할 때, 때가 되면 알아서 배송되는 PTW의 초대장을 들고 행사에 참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한 번에 단 3일.

그것도 매년 열리는 것이 아니라 비 주기적으로 열리는 행사에서 제한된 인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을 주최 측의 배려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허먼이 자신의 직업에 가장 만족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2013년.

2차 NE컨벤션이 열릴 거라 확정된 연도에, 자신의 집에 배송되어 온 익숙한 봉투를 받은 허먼은 심장이 두근거려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Mr. Herman. We invite you to the 2nd NE Convention.

(Mr.허먼. 당신을 2차 NE컨벤션에 초대합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단어가 적힌 고급스러운 봉투에, 허먼과 그의 가족이 출입할 수 있도록 PTW에서 발송한 입장 패스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PTW와 좋은 관계를 쌓고 있는 다른 게임업계 기자들도 같은 봉투를 받았다.

아직까지도 온라인에서 소문만 무성히 낳고 있는, PTW의 신작이 무엇인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티켓을.

받은 사람 대부분이 PTW가 만드는 게임의 열렬한 팬인 상황에서, 봉투 안에 있는 입장 티켓은 받은 사람에게 마치 웡카의 초콜릿 공장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골든 티켓처럼 보이고 있었다.

[오늘 초대장이 도착. 게임 기자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이걸 보니 진짜로 2차 NE컨벤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실감이 든다. PTW! 사랑해요! 행사 때 뵙겠습니다!]

↳ 와 진짜 개 부럽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게임기자할 걸.

기쁜 마음으로 일부 기자들이 PTW홈페이지 게시판에 자신이 받은 입장 패스를 공개하자, 팬들은 자신도 받고 싶다는 부러움에 가득 찬 글로 게시판을 도배했다.

[올해 예약 구매는 더 지옥이겠지. 지난번 1차 행사때 그렇게 평가가 좋았으니.]

↳ 난 그것 때문에 인터넷 회선 속도 업그레이드도 했다.

↳ 난 노력은 해보겠는데 정 안되면 암표라도 사야지.

↳ 암표도 가격이 장난 아닐걸?

↳ 적금을 깨서라도 갈 테다!

사실 입장권의 낮은 가격에 비해서, PTW가 행사에 들이는 비용을 감안하면 입장 티켓 자체는 못해도 30~40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게임을 잘 만든다고 평가받는 회사가, 자신의 팬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돈을 풀어 만드는 행사였으니까.

그리고 그 행사는, 어느새 2회 차로 접어들면서 눈보라사가 주최하는 독립 컨벤션 ‘눈보라 컨’과 비견되는 행사로 평가받고 있었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눈보라컨은 좀 더 게임사의 홍보용 전시회 같은 느낌으로 진행되며, 눈보라사의 새 확장팩이나 게임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행사라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참여하면 멋진 굿즈와 코스프레를 한 팬들, 남들보다 조금 먼저 게임에 대한 정보를 개발자의 발표와 함께 볼 수 있는 그런 행사가 눈보라 컨이었기에.

물론 그것도 유저 입장에서는 충분히 즐거운 행사라 할 수 있었지만,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 PTW의 NE컨벤션은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나는 눈보라컨만 가봐서 잘 모르는데, 1차 NE 컨벤션 가본사람 있어? 그것도 비슷해?]

↳ 완전 달라. 별개의 행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 어떻게 다른데?

↳ 일단 1차를 기준으로 하면 1차 컨벤션의 1번 섹션은 공개될 게임에 대한 수수께끼를 행사장 곳곳에 뿌려놓고 유저들이 이런 게임을 발매하는구나 하고 추측하게 만드는 수수께끼 같은 기믹이 있었어.

NPC역할을 맡은 매점 주인이나 안내원, 경비병한테 말을 걸면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걸로 대충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있었지.

그 게임이 바로 TAW였고.

2번 세션은 우주 해병의 복장을 한 안내원의 명령을 따라서 드랍포트에 타고 TOW를 플레이하는 공간이었지.

근처에 SF분위기의 바가 있어서 형광색으로 빛나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1차 세션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하지만 가장 백미는 3번 세션이었지. 그건 진짜···. 멋졌어.

적어도 게이머인 나에겐 디즈니랜드보다 더 멋진 공간이었다고.

↳ 3번은 어땠기에?

↳ 들어봐. 1번 세선에서 TAW, 2번 세션 에서 TOW를 체험했잖아? 남은 게임은 MYOM하나고, 그건 마법사가 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게임이지.

3번 세션에서 나는 입구에서 나눠준 핸드 트래커를 끼고 행사장 입구로 들어갔고, 안내에 따라 수속성 마법을 배우기 위한 공간으로 향했어.

그리고 그 입구엔, 도저히 사람이 지나갈 수 없는 폭포 같은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때, 핸드 트래커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 거지.

↳ 그게 그 유명한 ‘갈라지는 폭포’이야기구만?

↳ 맞아! 빛나는 장갑을 끼고 팔을 양쪽으로 벌리는데, 그 동작에 맞춰서 물줄기가 갈라지며 폭포 너머에 보이는 환상적인 세트장이 눈에 들어오는 거지.

그 때의 감동은, 진짜로 온라인으로 행사를 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을 경험이라고.

손을 뻗으면 음료 잔이 날아와 손에 잡히고, 벽에 걸린 책은 마법 잠금이라도 걸린 것처럼 수인을 맺어야 책장에서 뽑혀 나와.

그건 진짜로 내가 마법사가 되어 마탑에 들어간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고.

↳ 끝내줬겠네! 나도 가고 싶다!

↳ 그러니까 이번에도 난 이 빌어먹을 티켓 예약을 해야겠단 말이다! 젠장! 빨리 예약 페이지를 열란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흥분해 있는 가운데, 상혁은 카렌의 요청으로 PTW본사에 있는 테스트 룸에 와 있었다.

원래는 공개 행사 때 적용 여부가 미지수였던 민준의 TTS기반 음성 재생 시스템의 테스트 버전이,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랐네?”

“아무래도 음성이 있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그쪽을 우선적으로 처리했거든. 뭐, 결과는 지금부터 네가 알아서 판단하고.”

민준의 말에 상혁이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자, 카렌이 상혁에게 다가와 말했다.

“뭐, 인조학원이야 지금까지 여러번 테스트 하셨겠지만 이번의 테스트는 조금 다른 형태로 준비해 봤어요. 개발 2팀의 전원 동의로, 상혁 씨에게 이 테스트를 시켜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무슨 형태 이길래요?”

“지금 테스트하는 버전은, 임시로 AI가 아닌 사람하고 함께 플레이 할 수 있도록 개조한 버전입니다. 그러니까 플레이어인 상혁 씨를 제외한 4명의 AI중에, 몇 명은 AI가 아니라 실제 사람일수도 있다는 거죠. 테스트를 위해서, 해당 성격의 AI더빙을 진행한 성우분이 직접 테스트에 참가할 겁니다. 물론 그게 누군지는 말해드리지 않을 거고요.”

“그러니까, 민준이 만든 TTS로 재생된 성우 음성이랑, 커뮤니케이션 엔진으로 조합된 대사를 하는 AI속에서, 누가 인간인지 구분 가능한지 나보고 찾으라고요?”

“맞아요.”

“그 말은···.”

“예.”

카렌이 씨익 웃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상혁 씨는 이제부터 저희 개발 2팀에서 만든 AI를 가지고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해주시면 됩니다.”

카렌이 말한 테스트.

그것은 1950년 앨런 튜링이 제안한, AI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상대가 AI인지 인간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의 AI여부를 판단하는,  ‘AI가 얼마나 인간에 닮아 있는가’에 대해 측정하는 시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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