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06화 (207/485)

206. 새로운 미래를 위해

사이버노이드(Cybernoids)는 일본의 게임 컨퍼런스인 CEDEC 2012에서 2d캐릭터를 마치 3d카툰렌더링 캐릭터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기술인 Live2D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인 Cubizm을 공개한 회사였다.

그런 사이버노이드의 대표 나카노 테즈야는 오타쿠 기반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의 대표답게 각종 서브컬쳐 문화에 정통한 진성 오타쿠라고 할 수 있었다.

2006년 회사 설립 이후, 2008년에 Live2D Vector 버전을 발표, 2010년에 Live2D Cubizm의 베타 버전을 발표하면서 오로지 가상 세계에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2D 미소녀 캐릭터를 구현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세워진 회사가 바로 사이버노이드였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Live2D 기술이 유니티와 PS3, PS VITA와 넌텐도 3DS, 윈도우 대응을 시작하면서 그 노력은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회사로 걸려오는 수십 건의 라이선스 문의를 받으며, 나카노 사장은 행복에 잠겨 있었다.

자신의 비전이, 드디어 보상을 받는 기분이라서.

‘하지만 아직 멀었지. 우린 더 앞을 봐야해.’

자신이 생각하는, Live2D의 포텐셜은 지금의 수준이 아니었다.

적어도 앞으로 미래의 오타쿠들을 포용하게 될 가장 핵심적인 기술 중의 하나가 자신의 Live2D가 될 것이라고, 나카노 사장은 진심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오타쿠가 세상을 바꾸는 법이지.’

몇 년의 고생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느낌을 받으며, 나카노 사장은 행복에 잠겨 있었다.

경리 업무와 전화 응대를 동시에 맡고 있는, 여직원 사쿠야가 자신에게 곤란한 표정으로 찾아오기 전 까지는.

“무슨 일이지?”

“사장님. 전화가 왔는데요.”

“라이선스 문의라면 영업팀에 돌리면 되잖아?”

“그런 전화가 아닙니다. 사장님과 직접 통화 가능하냐고 묻는 전화라 서요.”

“나를? 무슨 일이기에?”

“그건 밝히지 않았지만 상대가 좀···.”

“뭐야, 스쿠에니에서 연락이라도 온건건가?”

“아뇨, 다른 회사입니다. 한국에서 온 전화라서요.”

“한국?”

한국은 요즘 모바일 게임 시장이  한창 성장 중이며, 온라인 게임에 있어서는 비중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게임 강국이었다.

그리고 전설의 콘솔 제작사, PTW가 위치한 나라이기도 했고.

하지만 나카노는 설마 자신에게 전화를 건 대상이 PTW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전 세계 게임 업체와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다 털어 봐도, 3D 카툰렌더링 기술에 있어서 독보적인 기술을 자랑하는 것이 PTW였기 때문에.

연산처리 때문에 그래픽 퀄리티를 희생한 MYOM은 몰라도, TAW같은 경우는 카툰렌더링 수준이 너무 높아서 어설픈 Live2D보다 훨씬 보기 좋은 수준이었다.

나카노 사장의 안에서는, 아마 기술력이 계속 발전한다는 가정 하에 향후 사이버노이드의 가장 강력한 경쟁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기업이 PTW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쿠야의 입에서 PTW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나카노 사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화 통화 이후 상혁과 현주가 일본까지 찾아와서 자신을 만나 이야기를 꺼낸 이후엔, 자신의 뇌를 씻어서 꺼내보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뜬금없이 자신을 찾아와 그들이 제안한 내용은,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내용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인수합병이라고 하셨습니까?”

아직도 20대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여성 CEO, 현주를 보며 나카노가 묻자, 현주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저희 PTW에서는 사이버노이드가 가진 원천기술과 라이선스, 그리고 직원들의 완전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인수합병을 제안하려 합니다.”

“너무 갑작스럽군요.”

“저희가 좀 급한 상황이라 서요. 인수 비용은 이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현주가 내민 종이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30,000,000,00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고, 나카노는 현주의 쪽지를 보며 살짝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300억 원이요? 엔화로 환산하면 30억 엔이지 않습니까? 너무 싼 가격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그쪽이 압도적으로 큰 대기업이라고 하지만, 너무 후려치시는 감이 있군요.”

“아, 실례. 통화 표시를 빼먹었군요.”

현주가 숫자만 적혀있는 메모지 뒤에 글자를 적어놓았다.

그리고 그 금액은, 나카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300억 엔이요?!”

“예. 물론 저희는 100% 지분 보유를 원칙으로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PTW지분으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지불합니다. 일시불로 전액 한 번에 지불해드리죠.”

당시 Live2D를 사용하기 위한 라이선스 비용은 500만원 정도였다.

그리고 아직은 사용하겠다는 업체도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었고.

물론 나카노 사장이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Live2D의 시장 가치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2013년의 사이버노이드는 빈말로 말하더라도 현주가 제시한 금액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미래는 미래고, 현재는 현재니까.

일반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좋은 제안을 받게 되면, 사람은 그 제안에 무언가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나카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금액을 제시한 현주를 보며 따지듯이 물었다.

“PTW에서요? 이미 카툰렌더링 기술만으로 Live2D수준은 충분히 구현 가능한 회사에서, 굳이 저희 회사를 인수하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그의 질문을 받은 현주는 미소 지으며 상혁을 바라보았고, 지금까지 조용히 뒤에 앉아있던 상혁이 앞으로 나서며 나카노에게 말했다.

“나카노 사장님.”

“예.”

“아마 저희가 사이버노이드를 인수하려는 이유는, 나카노 사장님의 비전을 저희도 믿기 때문일 겁니다.”

“저희의 비전이요?”

“사랑스러운 2D캐릭터들이, 게임과 인터넷 세상에 가득한, 그런 오타쿠토피아를 말하는 거죠.”

이상혁이란 이름은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의 입에서, 대놓고 자신의 비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나카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었다.

‘PTW의 CCO가 오타쿠였나?’

지금까지의 PTW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게임 안에서 철저하게 연애요소를 배제한 것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게임에서 딱히 오타쿠를 노리는 요소들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나카노는 눈앞의 젊은 청년의 속마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진심이십니까?”

“진심입니다.”

“지금까지의 PTW의 행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네요. 그럼 지금까지 만든 비 오타쿠 성향의 게임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만든 것들입니까?”

“아뇨, 그것들도 전부 진심으로 만든 게임들이죠. 사람의 취향이 하나만으로 귀결되지는 않지 않습니까? 세상에 유저들의 성향이 다양한 만큼, 저희가 개발하는 게임의 성향도 다양한 것이 당연하겠죠.”

“시장 저변의 확대입니까? 이해했습니다. 그럼 하나 더 묻겠습니다. 적어도 3D카툰렌더링 부분에서는 이미 저희의 Live2D에 버금가는 퀄리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PTW에서, 굳이 그 정도의 거액을 제시하고 저희 회사를 인수하고자 하시는 저의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나카노 씨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경쟁작의 제거. 저희의 Live2D를 다른 업체나 회사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도라면 3백억 엔은 과하겠죠.”

상혁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단순히 경쟁사에서 Live2D기술을 쓰지 못하게 하는 비용으로는, 3백억 엔이란 금액은 과한 면이 있었으니까.

나카노는 고개를 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도저히 짐작 가는 것이 없는데요?”

“처음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나카노 사장님의 비전에 공감한다고요.”

상혁이 말했다.

“기본적으로 사이버로이드의 BM은, Live2D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해당 프레임워크를 다양한 게임엔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제작툴과 라이선스를 다른 게임회사에 팔아서 수익을 얻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결국 그건 영리활동입니다. 회사는 이윤 추구를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고, 라이선스 비는 올라가겠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프레임워크와 툴을 개선하고 새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결국은 돈이 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수익은, 오로지 현재 50만엔 수준으로 판매하고 있는 라이선스에 의존하게 될 거고요.”

“PTW에서 인수한다면? 그게 달라진다는 겁니까? 3백억 엔이라는 돈은 농담이 아닙니다.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더 높은 가격에 라이선스비용을 책정해야 할 거고, 사용자 수는 급감하겠죠. 결국 묻히는 기술이 되어버릴 거고요. 그건, 상혁 씨가 말했던 오타쿠토피아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제품에 애정이 많으시군요.”

“오로지 이 목표 하나만을 위해서 달려온 회사니까요.”

상혁이 미소 지었다.

자신이 바다건너 이곳에 온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이번 신작의 메인 타겟층을 오타쿠 성향이 강한 유저들로 잡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최적의 프레임워크가 Live2D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카노 사장님께서 생각하신 것처럼, Live2D기술이 더 발전하면 게이머들의 삶이 더 풍족해 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고요. 저는 그런 미래를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PTW에서 저희 회사를 인수한 뒤에도, 타사에서 여전히 Live2D를 사용할 수 있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저에겐 중요합니다.”

나카노는 적어도, 자신이 만든 기술은 거대 기업에게 팔려 경쟁작 제거라는 이유로 묻혀버려서는 안 되는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비록 그 대가가 아무리 거대하다 하더라도 나카노는 거절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긴 하겠지만, 자신과 직원들이 만든 Live2D라는 기술은 언젠가 분명 그 정도의 수익은 벌 수 있는 기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나카노를 보던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맞습니다. 때론 돈이 중요한 게 아니죠. 돈이 목적이라면, 좀 더 편하게 벌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거금을 마다하시는 신념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군요. 하지만 나카노 사장님. 저는 여기에 나카노 사장님께 인수합병에 대한 거래를 제안 드리러 온 게 아닙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합병을 제안한 시점에서, 이미 이 미팅의 결과는 정해져있었다는 이야기죠.”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가방을 열어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 민준이 자신에게 만들어 준 프로그램을 기동시켜 나카노에게 보여주었다.

“Live2D로 만든 캐릭터군요? 지

금 이걸 보여주시는 이유가···.”

말을 하던 나카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리고는 노트북 화면을 보며, 이리저리 머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거 지금, 제 동작을 따라하는 거 맞습니까? ···맞군요.”

나카노도 비슷한 아이디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수동으로 일일이 애니메이션을 제어하는 대신, 카메라로 사람의 표정과 동작을 인식시켜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테니까.

하지만 아직 2013년의 사이버로이드가 그런 기술을 개발하기엔 개발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나카노 앞에서 그가 언젠가 개발하려던 게임을 ‘먼저’ 만들어 보여준 것이고.

“Live2D 캐릭터를 카메라 앞의 사람의 표정과 동작을 인식하여 움직이게 만든 기술 샘플입니다. ‘브이튜브 스튜디오(vtube studio)’라는 기술이죠.”

어쩌면 기술의 일부가 Live2D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잠시 프로그램 안에서 움직이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나카노는 절망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쪽에서 가져온 기술이, 지금 사이버로이드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보다 훨씬 상위의 기술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이건 저희 프로그램으로 만든 결과물이 아니군요?”

“맞습니다. 적용된 기술도 다르고, 툴도 저희 오리지널이죠. 적어도 그쪽에서 만든 툴보다는 사용하기 쉬울 겁니다.”

“그럼 만약 저희가 인수제의를 거부하면···.”

“저희가 만든 기술로 나카노 씨의 회사와 경쟁을 시도하겠죠. 저희는 제작 툴을 아파치 라이선스로 풀 생각입니다. 저희 쪽 툴도, 기술도, 제작난이도도, 어느 하나 그쪽보다 뒤쳐진 부분이 없으니 아마 Live2D는 저희 프로그램에 묻히겠죠.”

애당초 상혁의 도움을 받아 민준이 만든 것은, 막 개화하기 시작한 시점의 Live2D 기술이 아닌, 2020년대에 사용되던 훨씬 고차원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혁은 그 프로그램을 가지고 나카노를 협박하고 있었고.

자신이 현재 가진 어떤 인프라와 힘을 투입해도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카노는 결국 어깨를 늘어트리며 상혁에게 물었다.

“저희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도, 툴도, 결과물도 가지고 있으면서 3백억 엔이란 인수조건을 제시하신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지금 봐서는 그냥 그대로 런칭하셔도 저희가 밀릴 것 같은데요?”

“우선 저희와 합병하시면 고용승계를 통해 그쪽의 열의 넘치는 직원들을 데려올 수 있겠죠. 저희 PTW의 개발자 대우는 업계 최상위급입니다. 적어도 현재의 회사에서 개발하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좋은 대우와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할 수 있을 겁니다.”

상혁은 손가락을 하나 더 꼽으며 말을 이었다.

“둘째로 저희 기술이 귀사의 특허를 우회해서 만든 기술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 자체는 Live2D 기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사이버노이드에서 Live2D라는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저희 프로그램은 탄생하지 않았겠죠. 3백억 엔이란 인수 제시금은 그에 따른 금액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베껴서 만들었다, 라는 구설수를 없애기 위한 금액이다? 그런 금액으로 3백억 엔은 좀 과하지 않습니까?”

“미련을 버리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평가하는 Live2D 기술의 객관적 미래가치가 그정도라고 보셔도 좋고요. 게다가 아무래도 저희가 별도의 기술을 써서 구현했다고 이야기하더라도, 결과물 자체는 Live2D를 베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차라리 돈을 주고 인수합병 하는 게 깔끔하겠죠.”

사장인 자신보다 Live2D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상혁의 말에, 나카노는 한숨을 쉬었다.

애당초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저쪽은 돈도, 기술도, 인지도도 아득한 측면에서 자신의 회사를 압도하고 있었고, 게다가 정당한 수준의, 아니, 오히려 과하다 할 수 있는 금액을 제시하며 자신에게 회사를 넘기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보여준 셈플을 볼 때, Live2D라는 기술도, 자신의 회사의 직원들도 PTW라는 회사에 인수되는 편이 압도적으로 밝은 미래를 맞이할 것 같았다.

비록 전 세계에 수많은 게임 제작사들이 Live2D 기술을 사용하지는 못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세상에 한 회사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된다면, 그 회사가 PTW라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외통수라는 걸 인정하겠습니다. 이미 저를 찾아온 시점부터. 아니, 인수제의를 위해 연락한 시점에서 당신은 저에게서 회사를 빼앗을 생각이었던 거군요?”

나카노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던 Live2D의 미래는, 지금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냥 예쁜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걸 구현하고 싶었을 뿐인데···.’

나카노로 하여금 오로지 오타쿠적 열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수년 넘게 기술 개발에 매진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비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비전이, 지금 저 웃는 미소의 청년 때문에 처참하게 부서지려 하고 있었다.

앞으로 오타쿠를 위해 만든 Live2D기술은 대기업인 PTW의 손아귀에서 도저히 손댈 수 없는 비싼 가격에 서비스 될 것이다.

자신에게 제시한 3백억 엔의 인수 자금을 회수하려면, 부지런히 뽕을 뽑으려 노력해야 할 테니까.

‘잠깐만, 그 PTW가?’

나카노는 자신의 생각에서 뭔가의 위화감을 발견했다.

적어도 지금 상혁이 자신에게 제시하고 있는 거래 조건은, 자신이 알고 있는 PTW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오죽하면 ‘게이머 최후의 보루’ ‘게임업계에 남은 마지막 양심’이라 불리는 기업이 PTW일까.

PTW의 개발 방식은 그 정도로 유저 친화적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유료화 선언을 하기만 하면 세계 10대 대기업에 당당하게 자리할 수 있을만한 업무 보조프로그램인 ‘워크 패스트’를, 단순히 회사에서 일하면서 몰래 게임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공짜로 뿌리는 회사가 PTW였으니까.

그런 회사가 단지 자사의 이윤을 위해서 다른 기업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생각은, 적어도 나카노에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제발 자신의 생각이 맞기를 바라며, 나카노가 상혁에게 물었다.

“저희 회사를 인수하고 나서, Live2D의 미래는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상혁은, 나카노가 가장 바라던 대답을 해 주었다.

그가 ‘혹시나’하고 기대하던, Live2D가 맞이할 수 있는 가장 밝은 미래를.

“PTW가 사이버로이드를 인수한 뒤에, Live2D는 공식적으로 아파치 라이선스가 적용된 오픈 소스 프로젝트로 전환됩니다. 그와 동시에 저희가 만든 브이튜버 스튜디오도 함께 서비스 될 거고, 수많은 게임회사와 인디 개발자들은 무료로 PTW가 제공하는 Live2D의 개발 툴 및 프레임워크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3백억 엔을 투자해서 회사를 인수한 뒤에 하려는 게, 그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을 무료로 푸는 거라고요? 그게 진심입니까? 3백억 엔을 길에 버리는 꼴이 될 텐데요?”

“그리고 그렇게 3백억 엔이 버려진 길에선, 정말로 아름다운 꽃이 피겠죠.”

자신의 힘으로 가능하다면, 유저가 좀 더 멋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상혁의 바램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생각은, 나카노의 마음에 있던 마지막 미련을 깔끔하게 포기하도록 하고 있었다.

나카노가 바라는 세상 역시, 부드럽게 움직이는 2D미소녀가 가득한  오타쿠토피아 같은 세상이었기 때문에.

나카노와 이상혁.

두 사람에게 돈이란 단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수단에 불과 했다.

그리고 상혁은, 이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 충분한 수단을 지니고 있었고.

지금, 그 수단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상혁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내었다.

민준이 요청한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사이버노이드를 인수하며 이루려고 한 장대한 목표를.

‘이제 이걸 오픈라이선스로 풀면 이후에 나오는 게임들의 퀄리티가 폭발적으로 좋아지겠지?’

어쩌면 2018년 이후에나 부각되기 시작하는 버튜버 시대가 일찍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상혁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는 나카노의 손을 마주잡았다.

“Live2D와 사이버노이드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상 모든 오타쿠들이 행복해하는 미래를 맞이하게 해 드리죠.”

그리고는 남은 계약 진행을 현주에게 맡긴 채, 한국으로 돌아와 회사로 향했다.

자신에게 사이버로이드의 인수를 부탁한 민준에게, 계획의 성공을 알리기 위해서.

“요청한대로 처리했다.”

“그래? 그럼 이제···.”

“어. Live2D는 이제 PTW게 될 거야. 그리고 얼마 후에는, 세상 모든 게이머의 것이 될 거고.”

그렇게 말한 상혁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민준에게 말했다.

“그리고 라이센스 프리가 되면서 이제부터 나오는 염가형 에로게임도 죄다 Live2D가 탑재되서 나오겠지. 후후후···. 변화한 미래가 기대되는구나···.”

“너 이자식···. 설마 그것 때문에?”

“닥쳐! 날 그런 눈으로 보지마! 남자가 변태인 게 뭐가 나빠! 그리고 겸사겸사 달성되는 목표지 딱히 그것만을 위해서 오픈 라이선스로 푸는 게 아니라고!”

변명하는 상혁을 보며, 민준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상혁의 계획이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든, 상혁의 결정으로 인해 게임 업계의 흐름이 크게 바뀔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혁이 자신이 원하는 2번째 퍼즐조각을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인조학원의 개편된 기획을 상혁이 가져왔을 때, 민준이 계획한 3개의 퍼즐조각 중 이제 2개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곧 마지막 퍼즐 조각도 준비가 완료될 것이었다.

세상에 없던 게임을 만들기 위한, 그리고 그 게임이 구동되게 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

민준은 기쁜 마음으로 그 소식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

다음날, 게임 정보를 다루는 모든 매체엔 같은 주제를 담은 여러 개의 기사가 올라왔다.

[PTW, Live2D의 개발사 사이버로이드 인수. 인수 금액은 3천억 규묘로 알려져]

[AI인가 Live2D인가,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PTW의 신작의 정체는?]

[하루아침에 재벌이 된 오타쿠. 나카노 테츠야. PTW의 인수 합병 목적에 대한 질문에 ‘세상의 모든 오타쿠를 위한 가장 옳은 결정’이라 답하다.]

그렇게, 간헐적으로 퍼져가는 정보 안에서, PTW는 2차 NE컨벤션으로 향하는 길을 한걸음씩 걸어가고 있었다.

부풀어 오르는 세계의 게이머들의 가슴속에, 시한폭탄 같은 기대감을 안겨 주면서.

그리고 그렇게 난무하는 추측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들의 기대감이 폭발적으로 과열되는 가운데,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가(Wall Street)에서는 한 남자가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유럽의 지역 신문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것도 메이저 언론이 아니라, 월가의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유럽 지방 신문의 기사를.

[스웨덴 루레아 마을에 건설 중이던 대형 데이터 센터. 드디어 완공되다.]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기사였겠지만, 그 작은 신문에 실려 있는 사진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남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TW와 데이터 센터라···. 재미있겠군.”

남자가 알고 있는 인물이 담겨있는 사진.

그것은 언론에 주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대형 투자를 감행한, PTW에서 건설해 놓은 데이터 센터의 완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민준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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