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We are PTW
“이거, 뭐에요? 대체?”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을 흉내 내서 필요한 대화 스크립트를 호출하는 엔진.”
“아니, 설명은 아까 들었고요. 대체 이걸로 뭘 하려는 거냐는 거죠.”
“유저에게 ‘게임 친구’ 만들어주기.”
태연하게 대답하는 상혁의 말투에 혁찬은 갑갑함을 느끼며 물었다.
“하···.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둘째로 지금도 저 화면에서 계속 뜨고 있는 괴상한 숫자, 저게 전부 스크립트라는 거죠? 거기 맞게 텍스트 다 채워 달라는 거고.”
“맞아.”
“설정된 성격에 맞는 대사들로?”
“어.”
“경우의 수가 몇 가지나 되는지 짐작도 안 가는데···.”
“민준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의 복잡도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버전으로 최소 20만이야.”
“어? 생각보다 그 정도면 충분히···.”
“성격 하나당.”
상혁의 말에 혁찬의 입이 떡 벌어졌다.
현재 개발 중인 인조학원에 기본 성격으로 잡혀있는 성격이 20종류인 것을, 혁찬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럼, 그냥 함께 게임하면서 대화 성립하게 하는데 들어가는 스크립트 수가, 400만?”
그 이후에 이어진 혁찬의 말은, 약간의 원망까지 담겨 있을 정도였다.
“올드 스크롤 하늘림 대사량이 6만 라인인데?”
“아, 게임 종류가 늘면 더 늘어날 거야.”
“아니, 거기서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요?”
“하늘림에서의 대사는, 단순히 스토리를 전달하는 도구고, 사람이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상황별 대사가 필요하니까.”
“적어도 대사량 순위로는 기네스북 달성할 수 있겠네요.”
“무슨 소리야 이미 TAW때 달성한지 오래인데.”
단순 텍스트의 양만 치면, 사실 ‘포수 회귀’의 양이 가장 많았다.
그건 아예 텍스트로 야구 시뮬레이션의 모든 상황묘사를 처리하는 게임이었으니까.
그러나 묘사를 제외하고 대사량만 따지면 자유도를 중시한 TAW의 대사량이 포수 회귀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늘림의 6만 라인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20만 라인의 대사량을 자랑하는 게임이 TAW였으니까.
그러나 상혁이 지금 스크립트 팀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런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단순 계산해도 400만개의 대사는 TAW의 대사보다 작업량이 20배는 많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거기에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업자들이 질린 표정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상혁은, 이것은 작업량에 상관없이 무조건 PTW가 뚫고 나가야 할 벽이라고 판단했다.
만약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이 장담한 성능의 반만 되더라도, 그것은 게임계의 판도를 바꾸기에 충분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자신의 판단과는 다르게, 이상적인 결과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제 작업을 하며 고생해야할 인원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멋진 게임을 만드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은, 함께 개발하는 개발자들이 모두 그 게임의 아이디어에 미쳐서 흥분하는 것뿐이었기에.
그리고 자신이 기획자로써 할 수 있는 것은, 작업자들에게 자신들의 노력으로 완성될 비전이 얼마나 값진 결과를 낳을지를 보여주는 것 뿐이었다.
“흠. 여러분.”
상혁이 입을 열자, 모여 있는 개발자들이 일제히 상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혁은, 민준이 만든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흔히들 PTW의 팬들이 하는 말이, PTW의 게임은 ‘갓겜’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아직 그런 이름을 붙이기엔 부끄럽긴 하지만.”
“그렇죠.”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을 출시할 때마다, 적어도 그 시대에 그 게임이 가질 수 있는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올려 완성도의 정점을 찍는 PTW의 개발 철학엔, 게임을 하는 이를 언제나 감탄하게 만드는 특유의 매력이 있었으니까.
“근데 갓겜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면 어쩌시겠어요? 그 어떤 똥겜이라도, 엄청나게 재밌어서 매일 하고 싶고, 미친 듯이 즐거워지는 마법 같은 방법이 있다면?”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한 직원의 질문에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있죠. 바로 친구랑 게임을 하는 겁니다.”
상혁이 말했다.
“웬만한 똥겜도, 친한 친구랑 하면 그럭저럭 즐거울 수 있어요. 게다가 그 친구가 엄청나게 재미있는 녀석이라면,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거고요.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유저에게 그런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마법 같은 물건입니다. 아마 제대로 동작한다면, 그 안에 든 게임이 뭐든, 혼자 플레이하는 것보다 10배 20배로 즐겁게 놀 수 있는 좋은 물건이 되겠죠.”
상혁은 열띤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물론 완벽하지 않을 겁니다. 유저의 말을 100%이해하는 그런 AI의 구현은 현재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니까. 완벽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어느 정도’ 그 꿈에 근접하는 것만으로도, 거기엔 엄청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정도’에 근접하기 위해선, 여러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민준이 뚫어주었다면, 그 이후의 일은, 역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상혁의 목소리엔, 어느새 감정이 실려 있었다.
민준이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들인 노력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그 고생을 해서라도 만들어내고자 했던 집념에 대한 애틋함이.
“작업량이 많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험난할 것도 알고 있고요. 그러나 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지금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와 함께, 게이머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해줄 새로운 도전을 함께 해 달라고.”
그리고 상혁은, 허리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회사의 전(前)CEO이자, PTW에서개발 되는 모든 게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현(現)CCO가, 파다완 급 직원들이 대부분인 스크립터 팀에게 허리를 숙여 부탁하고 있었다.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 밑을 시큰하게 만드는, 호소력이 담긴 모습이었다.
한명의 개발자가 다른 개발자에게 진심을 담아, 오로지 유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
혁찬은 그런 상혁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진짜 이 사람은 게임밖에 모르네.’
‘한결같다’라는 단어가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아마 눈앞에 있는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혁찬은 상혁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요. 형.”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말했다.
“무려 CCO님이 직접 그렇게 부탁하시는데, 넘어야 할 벽이 뭐든 직원으로써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죠. 아마 다른 분들 생각도 마찬가지일거고요.”
텍스트 시뮬레이터 개발팀의 리더인 혁찬 그렇게 말하자, 모여 있는 개발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이 정도까지 부탁하는데,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상혁은 개발자들을 돌아보았다.
그중에 어느 한명도 상혁이 직접 뽑지 않은 직원이 없었다.
상혁이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접에 참여해서, 진정으로 게임과 유저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만 뽑아놓은 ‘정예 개발자’들.
어느새 진지한 눈빛으로,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개발자들을 보며, 상혁은 자신이 제대로 된 개발팀을 만들었구나 하는 감동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상혁이 건네는 말이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힘들 겁니다.”
상혁이 말하자,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량도 많을 거고요.”
“그건 저희도 압니다. 지금 이해한 개념만 해도, 작업 난이도가 아득하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조금은 먹먹해 보이는 목소리로, 혁찬이 말했다.
“그래도 이게 완성되어야, 그것도 높은 퀄리티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시는 거죠?”
“맞아.”
“그럼 합시다. 결과물이 좋기만 하다면,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뚫고 나가는 게, PTW의 정신이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최고니까!”
“다른 회사 같으면 절대 못하는 일이라도! 저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린 PTW니까!”
“맞아!”
웅성대며 여기저기서 터지는 함성에, 상혁은 단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고맙다.”
그리고 그렇게 감동에 젖은 상혁을 보며, 혁찬은 조용히 상혁에게 말했다.
의욕은 의욕이고, 문제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문제?”
“솔직히 지금 설명을 들어도 저희가 어디부터 작업을 시작해야할지 감도 안 오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민준이 만든 프로그램의 개념은, 스크립트 작업에만 익숙한 스토리팀에게는 이해하기 복잡한 개념인 듯싶었다.
그래서 상혁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물을 목표로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그 이후로 5시간을 넘게 설명하며 모두를 완벽하게 이해시켰다.
‘게임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라는 개념을, 그들이 완벽하게 완성해 낼 수 있도록.
***
[결국, 2012년의 GOTY는 하늘림의 것이었네요.]
[와일드한 분위기를 워낙 완벽하게 표현하기도 했고, 워낙에 인기시리즈이기도 했으니까요. TOW는 장르 특성 상 한계가 있기도 했고요.
토도 하와도가 현명하게 판단했다고 봅니다.
아마 작년에 나왔다면 MYOM이나 TAW와 좋은 경쟁을 펼쳤겠지만, 그만큼 GOTY에서 멀어졌을 테니까요.]
[하지만 TOW도 여전히 FPS장르에서는 굳건하게 동접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니, 오히려 계속 동접이 오르고 있는 추세죠?]
[PTW게임의 특징이죠. 한번 잡으면 푹 빠지게 만드는 것.
비록 최다 GOTY는 놓쳤지만, 그래도 잘 만든 FPS 게임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겠죠. 안 그래도 워함마 팬덤은 매일매일 행복해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수준이니까요.
상상 속에서만 보던 워함마의 전장을 가로지르며, 온갖 탈것들을 타고 미칠 듯한 살육을 벌이는 쾌감은 확실히 팬들에겐 꿈같은 광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목이 마른 상태입니다.
지난번 만우절 때 깜짝 공개된 영상 이후로, PTW에서 아무런 정보도 풀고 있지 않으니까요.]
[예. 카툰렌더링에, 학원에서 돌아다니는 모습 빼고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벌써 10개월 가까이 지났어요.
해를 이제는 PTW에서도 뭔가를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는 연도를 넘어 맞이한 새해. 2013년이니까요!]
[그렇기에 많은 유저들이 두 달전 PS미팅 2013에서 PS4가 발표될 때, 목이 빠져라 PTW게임에 대한 소식이 들리길 기대했었죠.
PTW의 게임은, 항상 새 콘솔이 등장할 때 런칭작 타이틀 자리를 차지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PTW의 신작 관련 소식은 없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말할 수 없지만, 엄청난 걸 준비중이다.’ 라고만 했고요.]
[자연스럽게 X-BOX 진영의 8세대 콘솔 발표가 기다려지는 순간입니다. 아무래도 들리는 소문에는 PTW는 SANY보다는 MS와 친하다는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그건 어떻게 될지 모르죠. 물론 MS진영에서는 완전히 성공으로 장식된 7세대 콘솔 전쟁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후속기 발매를 이어가고 싶을 테니, PTW를 끌어들이고 싶겠지만, 역전을 노리는 SANY측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
[아, 그렇게 되면 저희 시청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결론으로 끝나게 되는 건가요? 결국 다음 콘솔 대전에서, ‘PTW의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어떤 콘솔을 사야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라는 결론이요.]
[지난주에 방송에 그런 결론을 내렸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엔 따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이요?]
[무료 SANY의 콘솔 개발 담당자한테 얻어온, 따끈따끈한 정보죠.]
[오! PTW와 관련이 있는 정보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말을 꺼내지 않았겠죠?]
[엄청나군요! 대체 그 정보가 무엇인지! 광고를 보신 후에 확인해보시죠!]
“와, 이걸 여기서 끊네? 악마 같은 놈들.”
허먼이 나온 티비 쇼에서 PTW관련 정보가 유출됐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을 보고 있던 상혁은 진행자가 광고를 내보내는 타이밍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행자의 그런 노력은 상혁에게 통하지 않았는데, 애당초 지금 보고 있는 영상은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방송이었기 때문이었다.
상혁은 광고 부분을 빠르게 스킵한 후, 자신이 원하는 정보가 나오는 부분을 재생시켰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자, 오늘의 주제는 SANY와 MS, 8차 콘솔 대전의 승자는 과연? 이라는 주제로 진행 중 인데요.
많은 콘솔 유저 분들이 아마도 PTW가 붙는 쪽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허먼 씨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도 공감합니다. 지난번 7차 콘솔 대전에서 MS의 완벽한 승리는, 무엇보다 ‘코넥트’의 힘이 컸으니까요. 물론 PS3자체의 개발 난이도가 높다는 점도 한 몫 했지만요.]
[그럼 8세대 콘솔도 MS가 코넥트를 바탕으로 치고 올라가게 될까요?]
[그건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 어째서죠?]
[SANY의 엔지니어에게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 8세대 콘솔에 SANY에서 오직 PTW의 게임만을 위하여 추가한 기능이 있다고 하니까요.]
[오오옷?!!? 콘솔 개발사가 오직 한 개의 게임회사를 위해서 전용 기능을 개발했다는 이야기입니까?]
[정확히는 조금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이번에 추가되었다는 부품은, 특정 AI의 연산을 돕기 위한 연산 보조장치 입니다.
기본적으로 평소엔 CPU연산을 보조하다가, 필요할 때 AI전용 연산을 지원하는 칩셋이죠.
엔지니어의 설명으로는, 다른 게임에서도 충분히 퍼포먼스 향상에 도움이 될 거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힘은, PTW에서 개발 중인 신작 게임을 돌릴 때 체감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아마 PTW의 차기작은, AI와 관련된 무엇인가일 가능성이 높군요!]
[그렇죠!]
[그럼 그게 뭘까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엄청난 거겠죠! 왜냐하면···.]
[PTW의 게임이니까!]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상혁은 영상을 종료시켰다.
“뭐야, 그거였어?”
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신작 게임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었다기에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별것 아닌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해당 기능은 현재 X-BOX진영에서도 집어넣은 기능이었다.
아직 공개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상혁은 자신이 ‘인조학원’에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베타판이 적용된 버전을 콘솔 개발사에 들고 갔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8세대 콘솔의 성능 한계 때문에, 원하는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추진한 미팅을.
그리고 그 자리에서 테스트 버전을 플레이 해본 양사의 담당자들은, 즉시 전화를 하여 상부에 보고한 뒤 해당 기능을 원활하게 구동시키기 위한 전용 칩셋의 삽입을 약속했다.
“그렇다고 단가가 올라가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전용 칩셋을 달아줄 거라고는 생각 안했는데 말이지.”
“그만큼 우리가 보여준 물건이 엄청났다는 거지. 그리고 끔찍하기도 했을 거고.”
“끔찍해?”
“만약에 지원 안 해준다고 했다가 상대 콘솔에서만 쌩쌩 굴러가는 게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겠어?”
“지옥이겠네. 코넥트의 전철을 밟는 기분도 들 거고.”
“이제는 SANY나 MS도 인정하는 거지. 우리가 가진 영향력이 그 정도는 된다는 것을.”
당당하게 개발 중인 콘솔에 자사 게임을 위한 사양 변경을 요청할 수 있는 정도.
사실 그 정도 힘이 있는 업체가 PTW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SANY같은 경우는 몬스터 훈타 시리즈를 위해서 차세대 휴대기기인 PS VITA를 몬스터 훈타에 최적화된 형태로 내 놓은 적도 있었으니까.
‘정작 훈타 시리즈는 넌텐도 진영으로 런하긴 했지만···.’
현재 콘솔 업계에서 PTW가 가진 위상 역시,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유출 건, SANY측에 항의 할 거야?”
민준이 묻자 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들이 이런 기능을 넣었다는 이야기니까. 굳이 뭐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 대신 공평할 필요는 있으니까 MS쪽에도 X-BOX 신형 발표할 때 같은 정보를 공개해도 좋다고 이야기 해줘야겠지.”
“게임 정보는 공개 안하고?”
“그건 아직.”
상혁은 작업 스케쥴이 적혀있는 차트를 열었다.
이미 개발 중인 세 게임 모두 공개가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이 진행되어 있긴 했지만, 조금 더 이대로 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상혁이 원래 잡았던 마케팅 계획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물론 민준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역할이 매우 컸다.
처음 지수가 ‘원조 학원’의 기획을 들고 왔을 때만 해도, 상혁은 일반 유저들 대상으로 판매할 만한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은?
상혁의 원하는 수준보다, 혁찬이 작업을 너무 잘 해 놓은 상태였다.
초반에 민준이 만든 코드가 사정없이 뽑아대는 스크립트 코드 해석에 어려움을 겪던 혁찬은, 상혁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자 해당 기능이 가진 포텐셜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유저에게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가도.
그 이후엔 혁찬이 더 적극적으로 스크립트 개선에 개입했고, 거기에 민준도 코드 개선에 합류하면서 지금은 초기에 이해했던 것보다 훨씬 방대한 형태의 대화지원이 가능하게 된 상태였다.
같은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지 않으면,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 상대가 AI인지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상혁이 판단하기에 일반인도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게 하는 물건이 되어 있었다.
“코넥트에 달려있는 음성인식 교정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지만.”
굉장히 오래전에 만들었기에 잊고 있던 기능이었지만, 코넥트엔 중2병 배틀러 개발 시기부터 들어 있었던 기능이 있었다.
음성 발음과 모션 양쪽을 인식해서 서로의 인식율을 높이는 기능이.
원래 용도는 발음이 애매할 경우 동작을 보고 입력값을 판단하고, 동작이 애매할 경우 음성을 듣고 입력값을 판단하는 용도였지만 민준은 그로 인해 쌓인 방대한 음성 교정 데이터를 ‘원조 학원’의 음성 인식 시스템에 활용했다.
덕분에 현재 인조학원의 음성 인식 프로그램은 영어/한국어/일본어/포르투갈어/프랑스어의 5개 언어는 사투리까지 전부 인식이 가능할 정도의 인식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나마 유일한 단점이라면, 상혁조차도 차마 성격에 따른 대사 더빙까지는 하지 못했다는 정도.
스크립트의 종류와 양이 워낙 방대했기에, 더빙을 하면 개발기간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게임에서 가장 큰 용량을 차지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음성이기도 했고.
“아마 풀 더빙 진행하면 게임 용량이 200기가는 넘어갈 걸.”
아직도 더빙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상혁을 보며,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상혁은, 민준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더빙 자체는 진행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몹시 아쉽기는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더빙이 없는 편이 나은 점도 있었으니까.
오히려 음성 더빙이 없는 편이, 유저들이 자유롭게 새 성격을 생성하거나 기존 성격이나 대사를 수정하기 편리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진짜로 이거 오픈한다고 해서 유저들이 직접 성격을 만들거나 할까? 전문가들이 떼로 몰려들어 작업해도 성격하나 작업하는데 몇 달 걸리던데?”
“할거야.”
상혁의 목소리에는 믿음이 실려 있었다.
“우리 개발자들이 유저의 즐거움을 위해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처럼, 게이머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위해서는 그 정도 노력은 얼마든지 할 테니까.”
그렇게 대답한 상혁은 다시 모니터를 향해 몸을 돌리고 하던 작업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혁이 작업하고 있는 파일의 표지에는, 현재 모든 PTW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그것’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제 2차 NE(Next Experience)컨벤션 개최 계획서.-
상혁이 작성중인 기획서.
그것은 아마 허먼 뿐만 아니라 PTW팬이라면 누구라도 광인처럼 달려들어 뺏으려고 할 ‘2차 NE컨벤션’에 대한 기획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