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00화 (201/485)

200. 트라우마 스위치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3개의 프로젝트를 동시 진행하면서, 상혁은 본인이 담당한 프로젝트의 리드 기획 업무도 담당해야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고증 업무를 위해 뻔질나게 미국과 한국 사이를 왕복해야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혁은 장거리 출장 사이에 생기는 업무 공백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생각하는 게임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현장’ 곳곳에 퍼져있는 현역 미군들의 고증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히 펜타곤이 위치한 버지니아 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혁이 만들려고 하는 ‘EOD(폭발물 해체반)’의 병사들은 미국이 아니라, 전 세계의 다른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

[만우절 이후로, PTW가 굉장히 조용하게 침묵 중입니다.]

[그렇죠. 마치 그때의 영상 유출이 실수라고 어필하는 것 같아서, 점점 더 해당 영상이 진짜로 느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유저들이 아니죠. 벌써 여기저기서 유출된 정보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허먼씨. 어떤 정보가 있나요?]

[기본적으로 현재 PTW내부 직원들이 정보를 유출할 확률은 0%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PTW는 원래 개발 단계에서 회사가 존재하는 천하대학교 교수진을 고증에 참여시킬 만큼 디테일에 집착하는 면이 있기에, 개발에 참여하는 외부 인력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됩니다.

그리고 현재, 떠도는 루머들은 만우절 공개 영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떠돌고 있죠.]

[어떤 이야기인가요?]

[정확히는, 미 국방성이 PTW의 신작과 연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국방성이요?]

[예. 이라크 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테스트 플레이에 참가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고, 일부 참가자들이 올린 후기가 올라왔다가 삭제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PTW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미군 부대에 방문해 장비를 촬영하고 있는 사진들이 커뮤니티에 떠돌고 있죠.]

[하지만 만우절에 공개된 영상으로는···.]

[PTW는 이전 NE컨벤션 때도 동시에 3개의 게임을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만들었던 게임은 지난번 만우절 영상과 비슷한 느낌의 카툰렌더링 오픈월드 게임과, 실사풍 3D 그래픽을 사용한 SF컨셉의 FPS, 그리고 코넥트를 사용한 동작인식 게임이었죠.

만드는 장르를 지나치게 변경하면 개발진이 쌓아온 노하우가 다 사라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차기작도 비슷한 게임을 개발 중이라고 추정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비슷한 게임이라면···. 속편인가요?]

[하하하! PTW에 있어서 속편이란 있을 수 없죠. 그들은 2라는 숫자를 모르는 개발자들이니까요.

미군 장비를 촬영하고, 군인들에게 테스트를 맡겼다는 이야기는 차기작 중 1개의 게임은 적어도 현대전 배경의 FPS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만우절에 공개한 학원 배경의 오픈월드 게임이 두 번째 작품, 마지막으로 정보가 아예 없지만 MYOM의 전 개발팀이 코넥트 전용 게임을 만들고 있겠죠.

현재까지 얻을 수 있는 정보로는 그 정도가 유추 가능하겠네요.]

[오, PTW에서 만드는 현대전 FPS라. 이미 시장에 ‘모든 워페어’와 ‘배○필드’라는 걸출한 시리즈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떤 면을 보여줄지 기대가됩니다.]

“저 정도면 거의 스토커네.”

노트북으로 방송을 듣던 상혁이 말하자, 옆에 서 있던 제임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허먼이 출연하는 TV쇼를 상혁이 보는 것은 그리 보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있는 장소가 그 상황을 매우 특이하게 느껴지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은, 건조한 모래바람이 피어오르는 군 막사 근처에서 군용 노트북으로 보이는 투박한 노트북을 통해 방송을 보고 있었으니까.

“움직임이 크면, 노출도 클 수밖에 없으니까요. 고증 때문에 외부 인력을 많이 투입하는 만큼, 정보 유출에 대한 리스크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천하대 교수님들이야 연구비를 저희가 대니까 비밀 유지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는 편이고, 직원들도 마찬가지지만 생각보다 미군 쪽 보안이 허술하네요.”

상혁은 말을 하며 제임스를 보지 않고 일부러 옆에 서있는 바네사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상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네사가 미간을 좁히며 상혁에게 항의했다.

“저희 쪽은 아닙니다. 테스트에 참가한 군인들은 전부 계약서를 쓰지 않았습니까?”

“아, 테스터들이 유출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쪽에서 지금도 저희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비 참가 인원들이 정보를 유출했을 거라 의심 하는 거죠.”

“그럼 부대 전체에 정보 유출 방지 서약이라도 걸까요?”

바네사가 투덜거리자 상혁이 미소 지었다.

구체적인 게임의 내용만 유출되지 않는다면, 현재 풀리고 있는 정보는 충분히 통제의 영역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테스터들은 확실하게 입단속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PTW에서도 요청한 부분은 들어주시는 겁니까?”

“예. 요청하신대로 군 사양 전용의 테스트 버전도 따로 개발하고 있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통제된 테스터들만이 들어가서 게임을 플레이 중인 막사를 바라보았다.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실제 군인들의 플레이 체험을 통해서, 이번에 개선한 부분이 의도대로 동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진행하는 테스트였다.

그것을 위해 일부러 이라크까지 날아와서 현역 군인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상혁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네사는 상혁의 그런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니까.

그녀가 보기엔 현장에서 뛰는 군인들에게 게임을 통해 ‘리얼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상혁의 목표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번 버전에서는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엔 자신만만한 표정이시네요?”

“이번엔 자신 있으니까요.”

“글쎄요, 전 어렵다고 보는데요?”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 상혁은 EOD대원들이 게임플레이를 하면서 PTSD를 일으킬 정도면 테스트가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단순히 모니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것으로 PTSD가 자극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군인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임무의 프로입니다. 눈앞에 있는 폭탄이 화면 속에 있다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거죠.”

“그래요?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바넷사 씨가, 오히려 게임이란 매체의 전달력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이죠.”

상혁이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보고 있어라’라고 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군인 집안에서 자라 군인이 된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게임 개발자 중 한명이라 평가받고 있다는 이 젊은 동양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상혁이 짓고 있는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베테랑 병사가 짓는 표정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슬슬 때가 됐네요.”

상혁은 대략적인 플레이 타임을 머릿속으로 계산한 뒤, 손에 차고 있는 싸구려 전자식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때, 막사 문이 열리며 한명의 병사가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막사 밖으로 나온 그 병사는, 허리를 깊게 숙이더니 그 자리에서 토를 하기 시작했다.

“우웨에에에엑!!!”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나온 다른 병사들이 토하고 있는 병사의 등을 두드리며 병사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것은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 바네사에게 말했던 희망사항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이었기에,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상혁에게 물었다.

“뭘 바꾸신 거죠?”

“폭탄 해체 파트만, 실제 해체 작업과 동일한 동작을 취하게 바꾼 것뿐입니다.”

“그런 걸로 PTSD가 유발된다고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심장을 가진 EOD대원이?”

“아마 EOD 대원만 가능하겠죠. ‘겨우 게임’을 하면서 저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건.”

“무슨 뜻이죠?”

“트라우마라는 건 진짜 공포를 겪은 사람의 안에서만 끄집어 낼 수 있는 거니까요.”

우물에 빠져 박쥐에게 공격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배트맨이 박쥐를 볼 때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제 폭탄을 해체할 때 느껴지는 공포도, 아마 일반 유저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일 것이고.

바네사는 그런 상혁의 설명을 들으며 의문을 느꼈다.

애당초 EOD대원들만 그 공포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다면, 이 테스트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그러나 그 질문을 하기도 전에,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숨을 고르고 있는 병사의 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차가운 생수를 건네주며, 병사를 향해 물었다.

“어땠습니까? 개선된 버전은?”

“상태 보면 몰라요? X발,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 따위 물건을 만든 건지 모르겠네!”

“최고의 칭찬이네요.”

“당신은 악마고. 젠장, 게임을 하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하나하나 떠오를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단지 하필 해체해야 하는 폭탄이 내 동료가 해체하다 죽은 그 폭탄하고 너무 닮아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뿐입니다. 그때 그 녀석이 어떤 기분이었을지가 떠오르니, 구역질이 났을 뿐이고.”

거의 욕설을 토하듯 병사는 말을 덧붙였다.

“게임은 잘 만들었어요. 빌어먹을 정도로 리얼하게. 만약 당신의 목적이 저 게임을 하는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는 거라면, 그건 확실하게 성공할 거라 장담할 수 있겠군요.”

그러자 어느새 옆에 다가온 바네사가 병사에게 물었다.

방금 전까지 구역질을 하던 병사는, 지난번 테스트 버전을 할 때만해도 웃으면서 평가점수에 B+를 주었던 병사였기 때문에.

“지난번하고 반응이 너무 다르신데요? 대체 이번 버전에서 뭐가 바뀐 거죠?”

“후, 저한테 듣는 것보단, 직접 해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그렇게 말한 병사는 손에 낀 장갑을 벗어 바네사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그가 손에 끼운 채 폭탄을 해체할 때 썼던 핸드 트래커였다.

그 핸드 트래커는, 병사가 손에서 벗은 이후에도, 마치 피로 물든 것처럼 불길한 느낌의 붉은 색 LED로 빛나고 있었다.

***

“손을 움직여 보세요.”

옆에 서 있는 병사의 목소리를 따라 바네사가 손에 끼운 핸드 트래커를 움직였다.

그러자 대형 티비 화면 안쪽에 있는 육중한 방호복을 입은 손이, 바네사의 동작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티비가 크네요.”

“PTW에서 테스트를 위해 미군에 기증해준 장비입니다.”

코넥트 유저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 PTW의 게임은 큰 화면으로 즐겨야한다는 것이었기에, 상혁은 테스트를 위해 대형 TV 몇 대를 미군 부대에 기증했다.

지금도 웃돈을 얹어야 겨우 구할 수 있다는, 코넥트 기기와 함께.

그러나 코넥트에 연결되어있는 테스트 머신은 MYOM을 플레이할 때 쓰는 X-BOX가 아니었다.

상혁이 개발 중인 EOD의 프로토 타입은, 기본적으로 내년인 2013년 11월에 발매될, 8세대 콘솔의 사양에 맞추어 개발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현재 그들이 하고 있는 프로토 타입은, 시대를 1년 반 정도 앞서있는 그래픽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것은 바네사에게 마치 실사 화면을 보는 듯한 감각을 전해주고 있었다.

“요즘 게임기는 그래픽이 이정도인가요?”

“아뇨, 원래는 훨씬 안 좋죠. 그런데 다음 세대 게임기에 맞춰서 개발한다고 그래픽 수준을 거기 맞게 올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물론 4K를 넘어 8K를 넘보는 그래픽 해상도에 익숙한 상혁이 보기엔 한없이 부족한 그래픽이었지만, 그런 ‘미래의 그래픽’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8세대 콘솔이 주는 그래픽 경험은 말 그대로 실사를 그대로 옮긴 듯한 감각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바네사는 이정도로 리얼한 그래픽이라면, 병사가 구토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손을 움직였다.

“앞으로 이동하시려면, 왼쪽 손을 이동 방향으로 가리킨 상태로 오른쪽 손으로 주먹을 쥐시면 됩니다.”

병사의 말대로 하자, 후욱후욱하는 숨소리와 함께 육중한 방호복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PTW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SFX전문가 클라라 케이시가 만든 사운드 이펙트는, 티비 주변에 설치된 5채널 스피커로 바네사에게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주었다.

“멈추세요.”

바네사가 목소리를 듣고 멈춘 곳은, 방금 전까지 EOD소속의 폭탄 해체를 담당하는 병사가 해제하다 멈춘 폭탄이 놓여있는 곳이었다.

먼지 쌓인 바닥에, 진짜처럼 보이는 고폭탄이 8개.

그중에 3개는 뇌관이 뽑혀 전선과 분리 되어있었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해체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충격이 가지 않도록, 손을 뻗어서 뇌관을 끄집어내고, 다 끄집어낸 상태에서 전선을 니퍼로 자르면 됩니다.”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요.”

“해보시면 알겠죠.”

바네사는 그가 말한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금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빠르게 팔을 움직이려 하자마자, 장갑의 색이 붉게 물들었기 때문에.

“정확히 맞는 위치에서 맞는 속도로 팔을 움직여야 폭발하지 않습니다. 장갑의 색으로 위험 여부를 판단하는 거고요.”

“그게 맞는 위치인지는 어떻게 알죠?”

“장갑 색이 변하는 걸 보고 감각적으로 판단해야죠.”

단순한 폭탄 해체 작업에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상혁이 넣은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었다.

손끝의 움직임을 따라서, 장갑에 경고색이 표시되도록 만든 것.

게임 안에서 붙어있는 뇌관을 무리하게 떼어내려 하거나, 어딘가에 걸려있는 전선을 무리하게 잡아당기면 핸드 트래커의 색이 붉게 달아오르게 되어 있었다.

“Shit!”

다급한 목소리는 바네사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긴장감을 유도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울려 퍼지는 플레이어 보이스였다.

-헤이! 병장님! 긴장 풀어요! 아직 해체해야할 뇌관이 많으니까!-

-이 빌어먹게 조악한 기폭장치 상태를 보면, 그 입을 닥치게 될 걸?-

-어차피 터지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적어도 저기 수상하게 돌아다니는 놈들도 같이 죽을 거라는 게 유일한 위안이군요.

이 미친 자식들은 눈앞에 총을 들이미는데 왜 안 꺼지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네도 어느 날 갑자기 러시아 군이 나라를 점령하고 눈앞에 AK를 들이밀면서 동네 마트에서 꺼지라고 외치면 쉽게 물러나지는 못하겠지.-

-빌어먹게 이해 잘되는 설명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지금 길 한가운데서 폭탄이 터지면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있는 거잖아요.-

-애당초 그 폭탄이 우리를 노리고 만들어진 거란 생각도 해야지.

3시 방향. 건물 옥상. 반사체를 가진 거수자 2명 발견.

잡담은 그만두고 그쪽이나 주시해.-

-Roger that.-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동료 NPC들의 무전은 진짜 병사가 녹음한것처럼 현장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더운 벙커 안에서 묵직한 핸드 트래커를 휘두르며 대형 모니터 앞에 서 있는 바네사에게 끔찍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6번째 고폭탄에 연결된 뇌관을, 아주 살짝 건드릴때마다 장갑이 불타오를 것처럼 붉게 물들고 있었으니까.

“후우···.”

당시의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차세대기 수준의 리얼한 그래픽 때문인지, 아니면 더럽게 더운데다 먼지 냄새까지 나는 이 벙커 때문인지, 혹은 분명 비쌀 게 분명한데도 아낌없이 부대원들을 위해 PTW가 기증한 대형 TV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네사는 실제로 자신이 폭탄을 해체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잘못 건드리면 폭발한다.’라는 단순한 개념을, 핸드 트래커에 달린 LED가 너무나도 직관적인 방법으로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All right···.”

바네사가 중얼거리는 순간, 그녀를 고생시키던 6번째 뇌관이 툭 하고 고폭탄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그녀는 아까 병사에게 배운대로, 왼손으로 뇌관을 잡은채로 오른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다시 손을 올리자, 그녀의 벌려진 손에는 전선을 자르기 위한 니퍼가 들려 있었다.

딜레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코넥트의 뛰어난 성능 덕분에, 그녀는 화면에 나온 캐릭터의 손과 자신의 손이 완전히 하나처럼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그 감각으로 눈앞의 전선을 딸깍 소리와 함께 성공적으로 자를 수 있었다.

“Next!”

어느새 바네사는 자신이 EOD대원이라도 된 것처럼 힘차게 소리 질렀고, 상혁은 그 모습을 보며 뒤에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조금 부럽네.”

사실, 회귀 이후 상혁이 가장 괴로워하던 점이, 어떻게 만들던 게임 그래픽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회귀 전의 자신이야 매 콘솔이 나올 때마다 발전한 그래픽을 보면서 ‘진짜 같아!’라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받은 기억이 있지만, 회귀 전에 8k해상도부터 실시간 레이트레이싱 같은 최신형 그래픽 기술에 익숙해진 눈은 지금까지의 게임을 같은 감정으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바네사가 대형 앞에서 감탄하며 즐기고 있는 ‘차세대’ 그래픽도, 사실 상혁 입장에서는 한참 모자란 그래픽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혁과는 다르게 실제로 이 시간대를 살아가는 유저들에게는, 아마 저 정도 그래픽도 엄청나게 보일게 틀림없었기에, 상혁은 그런 감동을 느끼고 있을 바네사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네사는, 조잡한 품질의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폭탄과의 사투 끝에, 마지막에 자신을 엄호하던 다른 병사의 실수로 기폭 장치해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녀는 뒤뚱거리며 폭탄에서 도망치다 폭발과 함께 장렬히 고깃덩이로 산화하는 게임오버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땠어요?”

수건을 건네며 묻는 상혁의 말에 그녀가 이마의 땀을 슥 닦았다.

그러자 살짝 번들거리는 그녀의 갈색 피부가 햇볕 아래 반짝거렸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전 게임에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처음 그녀가 꺼낸 감상은 ‘잘 모르겠다.’라며 한발 물러서는 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상혁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EOD대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다면, 리얼하다고 말할 정도의 체험이긴 하네요. 핸드 트래커 색으로 위험도를 전달하게 만든 건 정말 기발했어요. 예전에 버튼만 타이밍 맞춰서 누르면 알아서 해체되던 것보다, 지금 버전이 훨씬 긴장감이 손에 잡히는 느낌이네요.”

“그 말씀은?”

상혁의 질문에 바네사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미군에서 훈련 시뮬레이터로 쓸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라고 판단됩니다.”

그것은 상혁이 그녀에게 바라던 평가 그 자체였기에, 상혁은 안심하고 추가 테스트를 마칠 수 있었다.

“한국으로 바로 가시나요? 미국으로 가실 거면 같이 가셔도 될 텐데요?”

짐을 챙겨 험비에 오르려는 상혁을 보며 바네사가 물었다.

물론 공항에서 훈련장까지의 이동이야 편의 제공 측면에서 군용 험비에 탑승할 수 있게 배려해주고 있었지만, 군용기의 탑승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에, 상혁은 이곳에 올 때 민항기를 수배해서 찾아온 상태였다.

그녀는 그런 상혁에게 군용기로 미국에 같이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은 것이었고,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가는 길에 오스트리아에 들릴 생각입니다.”

“오스트리아요?”

“저는 지금 프로젝트 하나만 진행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쪽에서 스튜디오 녹음 작업이 있어서 잠시 들러야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여기서 인사드리죠.”

“펜타곤 납품 관련 문제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어쩌면 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몇몇 군사 훈련용 시뮬레이터의 제작을 요청드릴지도 모르겠어요.”

“글쎄요. 아무리 미군에서 요청한다고 해도, 저희는 게임회사니까요. 재미있을 것 같은 게 아니면 저흰 안 만듭니다.”

“돈을 준다고 해도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요.”

“알겠습니다. 그럼 재미있을 것 같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부탁드리죠.”

그녀는 그렇게 미소로 상혁을 배웅했다.

그리고 상혁은, 그 길로 간이 공항으로 이동해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향했다.

교향악의 본가(本家).

클래식 음악의 성지인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제 3프로젝트의 리드 프로듀서, 남성연을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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