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마음에 전하는 메시지
“아, 역시. 부실이 최고야.”
하루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실에 돌아와서야, 상혁은 마음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부재중일 동안 상혁이 타주는 커피를 그리워하는 팀원들을 위해 새 원두의 로스팅 상태를 확인하고, 분쇄도를 조정한 뒤 커피를 뽑아 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커피를 한잔 뽑고는 공항에서 서연에게 넘겨받은 기획안을 다시 집어 들었다.
“진짜로, 이걸 만들고 싶다고?”
상혁의 질문에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브리핑은 누가 할 거야?”
“제가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지수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스크린 모니터 앞에서 제 2 메인 프로젝트로 선정하려 하는 기획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상혁 오빠도 아시다시피, 지금 PTW는 오픈 월드 RPG 게임인 TAW를 개발한 개발 1팀, SF FPS인 TOW를 개발한 개발 2팀, 그리고 코넥트용 모션인식 게임인 MYOM을 개발한 개발 3팀으로 구성되어 있죠.”
“그렇지.”
“그리고 상혁 오빠가 고른 제 1프로젝트는 밀리터리 FPS가 될 예정이고요. 아마 FPS 개발에 익숙한 개발 2팀에서 많이들 자원하겠죠?”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 오빠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저희는 내부에 올라와 있는 수십 개가 넘는 기획안을 모두 검토하고 최종 후보를 골라서 지금의 기획을 선정했어요. 오픈월드 RPG 개발에 익숙한 개발 1팀이 차기 프로젝트로 선정할 만한 게임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골라낸 게 이거인거죠.”
“말하자면 1차로 너희끼리 후보를 추린 후 2차로 내부 인기투표 같은 걸로 차기작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기획을 골랐다는 거지?”
“정답.”
그렇게 말한 지수가 PPT 파일을 열자, 왠지 굉장히 익숙해 보이는 표지 타이틀이 나타났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올법한, 학교의 정문을 카툰렌더링으로 구현한 타이틀이.
그리고 상혁은, 그 타이틀 화면이 어느 게임에서 따온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혁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 게임이었다.
‘아니 X발 저거 인공○원···.’
그것은 바로 작년에, 일본 성인 게임 제작사에서 내 놓은 게임이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등장인물들을 커스터마이징 하고, 그 캐릭터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일어나는 다양한 이벤트를 즐기며 연애를 하는 게임.
유저는 게임 내 등장할 다양한 캐릭터들에 성향과 취향을 부여하고, 그것으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그 게임의 특징이었다.
물론, 19금 게임답게 그 모든 결론은 에로씬으로 연결되긴 하지만.
지수가 브리핑하고 있는 기획은 19금 컨텐츠가 메인인 원본 게임에서, 19금을 걷어내고 커뮤니케이션 부분을 대폭 강화해서 ‘가상의 학교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기획이었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다양한 성격을 부여하고, 캐릭터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색, 운동이나 특기인 과목 같은 걸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게 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들 간의 조합으로 이벤트를 볼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그걸 통해서 뭘 즐길 수 있는데?”
상혁의 질문에 지수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오타쿠의 이상향이요.”
지수가 슬라이드를 넘기자, 여러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다양한 이미지가 화면을 스쳐지나갔다.
“반에서 친한 친구가 동경하는 사람과 서로 사귈 수 있도록 사랑의 큐피트 역할도 하고, 연애 상담도 하고, 여름 축제 때 기모노 입고 친구들이랑 축제에 가서 불꽃놀이도 즐기고요, 설날에 첫 해돋이도 보고, 수영장에 가서 좋아하는 캐릭터의 수영복 모습을 보고 두근거린다던가, 상대방 캐릭터가 좋아할 만한 수영복을 사기 위해서 친구들과 함께 백화점도 가고, 운동부에서 전국대회에 나가기 위해 열심히 훈련도 하는 거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삐지기도 하지만, 학교 축제를 위해서 메이드 복을 만들기도 하고 유령의 집을 만들겠다고 밤새 못질도 하면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즐길법한 그런 삶을 유저들이 체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열성적인 어조로 지수는 말을 이었다.
“이전에 TAW가 이 세계에서의 삶을 완벽하게 전달하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이 게임은 오타쿠가 꿈꾸는 이상적인 학교생활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이 되는 거죠!”
‘오타쿠의 이상향 같은거네.’
아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오타쿠라면, 누구나 ‘이런 게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상상할 법한 기획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구현하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얼마나 거대할지 상혁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고.
“지수야.”
“네!”
“넌 이 기획 원본이 되는 게임 혹시 해봤어?”
상혁의 질문에 지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방금 상혁이 던진 질문은, 돌려 말하면 ‘너 혹시 에로게임 해봤니?’라는, 잘못하면 성희롱처럼 들릴 수 있는 질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지수는 상혁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상혁이 프로 기획자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해봤어요. 오빠는요?”
“나도 해봤지. 그래서 어떤 걸 만들고 싶어 하는 지는 잘 알거 같은데, 지수 네가 보기에 이 기획의 원전이 되는 ‘인공○원’의 볼륨은 어땠어?”
등장하는 성격만 50개가 넘는 19금 게임 치고는 엄청나게 큰 볼륨을 자랑하는 게임이었지만, 거기 만족할 수 있었다면 애당초 나오지 않았을 기획이었다.
그래서 지수는, 고개를 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부족해요.”
“그럼 비슷한 감성을 가진 다른 게임을 예로 들게.
‘페○소나4’랑 비교하면?”
“그것도 부족해요.”
“좋아. 그럼 GTA4랑 비교하면?”
“그건 학교가 배경이 아닌데요?”
“볼륨만 놓고 비슷한 볼륨으로 변환한다고 가정해서 답변해봐.”
잠시 고민하던 지수가 대답했다.
“그거보다 좀 더 디테일했으면 좋겠어요.”
“거기까지 이해했으면 너도 이해할 수 있겠지. 이 단순해 보이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엄청난 개발력을 요구하는 기획인지?”
단순히 ‘그럴싸한 느낌’만을 주는 것이라면 개발하기 그리 어렵지 않을지 몰라도, ‘제대로’개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개발력을 요구하는 기획이었다.
‘높은 자유도와 다양한 상호작용’만큼 개발 기간과 개발비를 잡아먹는 요소는 없었으니까.
“동아리 하나를 구현하려고 해도 그 동아리에 관련된 수많은 이벤트와 상호작용을 구현해야해. 거의 다른 게임의 메인 퀘스트급의 즐길 거리를 제공해야 할 거고. 게다가 만든 이벤트의 80%이상은 회차 플레이에서 접근도 못하게 될 거야. 운동부 퀘스트 라인을 타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바둑부 퀘스트 라인을 동시에 탈 수는 없을 거 아냐?”
“그렇, 겠죠?”
“게다가 시험, 보충학습, 학교 축제, 지역 축제, 설 맞이, 크리스마스 이벤트, 학생회장 선거,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각종 아르바이트까지. 늘리려면 끝도 없이 볼륨이 늘어날 수도 있는 게임이야. 기본적으로 자유도가 높아도 어느 정도 선형적인 전개가 잡혀 있던 TAW보다 이쪽이 훨씬 제대로 만들기 힘들 거라고. 만드는데 몇 년이 소모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이 기획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네.”
자신에게 대답하는 지수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상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어.”
“어?! 진짜요?”
“솔직히 오타쿠 치고 ‘그런 게임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 안한 녀석은 없을 거고, 단지 리스크가 너무 크고 투자 대비 효율이 안 좋을 테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거지. 제대로 만들면, 좋아할 유저는 분명 있을 거야.”
상혁의 말에 지수의 표정이 확하고 밝아졌다.
마치 꼬리가 있다면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지수를 뒤로하고, 상혁은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좋은 기획안을 골랐네요. 발상이 좀 어이없긴 하지만.”
그러자 카렌이 손을 들며 상혁에게 물었다.
“진짜로 저 기획안대로 가신다고요?”
“어? 그런데요?”
그러자 카렌은,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는 민준의 손에 넘겨주었다.
“혹시 두 사람 내가 기획 찬성하나 반대하나 가지고 내기한 거예요?”
“예. 저는 반대하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째서요?”
“뭐랄까, 지금까지의 PTW게임하고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요컨대 너무 오타쿠스럽지 않느냐, 이 말인가요?”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GOS때부터 카툰렌더링을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PTW였지만, 연출 방식이나 스토리 전개는 애니메이션의 그것보다는 영화의 그것에 가까운 것들이 많았기에.
게다가 역대 시리즈에서, 심지어 TAW에서도 연애 관련 내용은 한 번도 다룬 적이 없었던 PTW였기에 갑자기 ‘카툰렌더링 기반 오픈월드 학원 생활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지수의 계획을 상혁이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TAW는 연애 요소 넣어도 충분히 잘 될 것 같은 게임이었는데 굳이 안 넣기에 그쪽 계열 스토리는 싫어하시는 줄 알았어요.”
“단순히 포커스를 맞추는 걸 좋아하는 것뿐입니다.”
“PTW팬들 중에 아무도 그쪽 장르의 게임을 PTW가 만들어 주길 바라는 유저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저희가 그런 걸 신경 쓰는 회사였으면 저희는 속편을 만들고 있었겠죠.”
상혁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저희는 한 번도 연속으로 비슷한 재미를 주는 게임을 만든 적이 없어요. 물론 매 게임마다 즐겁게 플레이 해 주시는 유저 분들도 있지만, 저희 게임의 많은 유저들은 아마 본인이 하고 있는 게임이 PTW의 첫 게임인 유저들이 많을 겁니다. 세상에 많은 게임 회사들이 본인들이 잘 만들 수 있는 게임을 더 잘 만들려고 노력할 때, 저희는 아무도 만들어보지 않은 게임을 최선을 다해서 만들려고 노력하는 회사죠.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손해 보는 부분들도 있지만, 분명 저희의 이런 특이한 방식이 언젠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메시지를 심어줄 거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그 메시지가 뭐죠?”
“좋아하는 것 하나만 즐기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
길어봐야 100년 쯤 살 수 있는 인간의 삶 속에서, 상혁은 유저들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때로는 마법사가, 때로는 군인이, 때로는 우주 해병이, 때로는 로봇의 지휘관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오로지 게임 속에서 유저가, 진정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었으니까.
상혁은 어떤 재미를 줄지 뻔히 보이는, 항상 기대하던 재미를 만족시켜주는 그런 게임회사가 아니라, 항상 두근대는 마음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완전히 새로운 자신이 될 때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경험을 반복해서 제공할 수 있는 개발사가, PTW가 추구해야하는 방향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상혁의 그런 계획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PTW에서 자신이 해보지 않았던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서 내 놓아도, 혹은 자신이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서 내 놓아도, 지금의 팬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PTW의 게임을 구매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상혁은, 지수가 가져온 이번 기획도 굉장히 PTW스러운 기획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는, 이런 장르의 게임에 PTW가 투입할 만큼의 개발력을 투입할 회사는 절대 없었으니까.
“아무도 도전 안하니까 저희가 하려는 겁니다. 물론 몇몇 유저들은 미연시 장르가 마이너하고 오타쿠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근데 그런 유저들조차도, 진짜로 각 잡고 만들었을 때 어떤 게임이 나올지는 모르잖아요?”
상혁은 즐겁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전 기대가 됩니다. TAW에서 완전한 이세계를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저희 PTW 개발자들이, 미연시라는 장르에서 도대체 어떤 학교의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지가요.”
그렇게 말한 상혁은, 이번엔 팀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메인 프로젝트의 1번과 2번이 결정된 것 같네요. 밀리터리 FPS장르인 1번 프로젝트는 지금부터 ‘EOD’로 명명하겠습니다. 개발팀은 FPS를 개발했던 개발 2팀 인력 중 지원자를 중심으로 편성하고, 메인 기획은 제가 맡습니다. 이제부터 EOD 개발팀이 개발 1팀입니다. 그리고 ‘카툰렌더링 기반 오픈월드 학원 생활 시뮬레이션’의 프로젝트 이름은, ‘인조 학원’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조 학원의 개발팀은 TAW와 MYOM의 개발자를 중심으로 편성하겠습니다.”
상혁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개발 2팀의 리드 기획은, TAW의 기획을 담당한 카렌 씨가 맡을 겁니다. 지수는 카렌 씨를 서포트 해주고. 강제는 아니에요. 각 마스터급 직원들은 개발자의 희망에 따라서 적절하게 팀 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별 면담을 실시해 주세요.”
“넵!”
“어.”
“알았어.”
“그리고 일단 개발자들은 희망하는 게임에 배치하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해당 장르 핵심 개발자가 전부 타 프로젝트로 빠져버리면 기술 공백이 너무 커지니까, 카렌 씨는 빠지면 안 될 것 같은 핵심 개발 인력을 추려서 정리해주세요. 저도 1팀 멤버에 빠지면 안 되는 인력을 추릴 테니까.”
“핵심 개발자인데 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하면 어쩌죠?”
“설득해야죠. 둘 다 매력적인 프로젝트니까, 적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리드기획자라 할 수 있겠죠?”
상혁의 말에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다시 개발 모드로 들어갑시다. 우리가 뭘 만들고 있을지 상상도 못하고 있을 유저들의 입이, 말 그대로 떡 벌어지게 해보자고요!”
“좋아요!”
“예이!”
그렇게, MYOM과 TAW로 2011년 GOTY를 휩쓸고, 2012년에도 강력한 GOTY후보인 TOW를 발매한 PTW의 차기작 개발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 하는 도전에 으레 따르기 마련인 수많은 장벽들을 앞에 두고서.
그러나 상혁은, 아무리 어려운 벽이라도 쉽게 돌파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PTW는, 회귀전의 상혁이 기억하던 어떤 게임 개발사보다 가장 실력과 열정을 개발자들이 무여있는 ‘괴수 집단’이었기에.
그러나 상혁이 보기에, PTW가 넘어야할 벽은 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슈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12년의 게임 시장은, 말 그대로 모바일 게임에서 불어온 가챠 열풍이 본격적으로 세상을 휩쓸게 되는 해였으니까.
‘퍼즐 & 도라곤’, ‘확산성 빌리언 아서’로 대표되는 모바일 가챠게임의 열풍은, 앞으로의 콘솔 게임이 넘어야할 거대한 벽이나 다름없었다.
민준 역시 그것에 대해 우려를 표할 정도로.
두 게임이 게임 판에 끼친 영향은 막대했기 때문에.
“솔직히 퍼즈도라는 사기였지.”
민준의 말에 상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백 명의 개발자가 수천억 들여서 출시한 콘솔게임이 몇 년에 걸쳐서 벌 매출을, 수십 명의 개발자가 순식간에 벌게 해주는 게 가챠 중심 BM이니까.”
그 덕에, 언 중간하게 콘솔 시장에서 버티던 수많은 IP들이 모바일 가챠게임 시장으로 떠난 과거를, 상혁은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쩔 거야? 콘솔 게임 대표 개발사로써, 단순히 마켓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는 큰 변화를 이끌 수 없을 텐데?”
“그렇다고 그 바닥에 뛰어들기도 좀 그렇지. 아직 모바일 기기의 성능이, 제대로 된 게임플레이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그럼 일단은 방치?”
“우선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결국 압도적으로 재미있어 보이는 플레이를 제공할 수 있다면, 유저들이 모바일 게임보다는 콘솔 게임에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지금 중요한 건, 최대한 빠르게 개발 2팀의 인조 학원의 공개버전을 완성하는 거야.”
“2팀만?”
“어. 2팀만.”
상혁의 말에 민준은 의아함을 느꼈다.
현재까지의 PTW의 마케팅 방식은, 게임이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최대한 보안을 유지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지난번 NE콘벤션처럼 한 번에 공개하는 게 아냐?”
“그건 한 번에 공개하지 않으면 대체 무슨 재미를 노리고 만든 게임인지 알 수가 없을 때.”
“그럼 이번엔?”
“인조 학원은 좀 다르지. 그건 오타쿠의 이상향 같은 거니까. 오히려 빠르게 공개하면서 개발과정을 계속 보여주는 편이, ‘기대감’조성에 도움이 될 거라고 봐.”
그렇게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나자, 상혁의 의도대로 개발 2팀은 TAW의 엔진을 바탕으로 공개가 가능한 퀄리티의 게임 버전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상호작용도, 제대로 된 컨텐츠도 돌아가지 않지만, 어떤 게임인지 ‘보여주는’ 역할 만큼은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개발 버전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 버전을 가지고 일반 공개를 위한 영상을 제작한 뒤, 일언반구도 없이 홈페이지 게시판에 영상을 게시했다.
별도의 페이지를 만들지도 않고, 말 그대로 홈페이지에 30분 정도 분량의 개발 버전 영상을 기습적으로 업로드 한 것이다.
그리고 영상이 올라가자마자, 30분 후에 영상이 올라간 게시글을 바로 삭제해버렸다.
마치 개발 팀 중 한명이, 아직 공개되어서는 안 될 영상을 실수로 유출한 것처럼.
그러나 이미 영상을 본 유저들이 몇 명이나 있었고, 영상을 보자마자 뭔가 쌔한 느낌을 느껴 바로 영상을 다운받은 유저들도 있었다.
잘린 영상이 다시 게시판에 업로드 되기 시작하면서, PTW게시판은 말 그대로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영상을 통해 분석한 신작에 대한 정보와, PTW가 이런 게임을 만들 리 없다며 조작이라고 말하는 유저들의 화려한 키보드 배틀로.
그리고 그런 게시 글들을 보던 민준은 상혁의 장난기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실수로 영상을 업로드 한 날짜.
그날이 전 세계가 거짓말로 서로를 놀리는 4월 1일, 만우절이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