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94화 (195/485)

194. 전투 리얼리티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The rush of battle is a potent and often lethal addiction, for war is a drug).”

-영화 허트로커(Hurt Locker)中-

일반적으로 게이머들이 게임을 통해 접하는 전쟁이란, 대규모 전장에서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적을 쏴 죽이며, 임무를 달성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형태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리얼함의 극한을 추구하는 게임사의 게임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캐릭터의 모션, 총기의 디테일, 복장의 현실성.

총에 맞아 부서진 차량과 너덜너덜해진 기둥.

고막을 멀게 할 것 같은 폭발음과 사방으로 튀는 파편들.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만들어진 ‘현대전’을 모티브로 한 수많은 게임들은, 화려한 그래픽을 매개체로 삼아 게이머에게 전장의 흥분을 다이렉트로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좀 더 리얼하게, 그리고 좀 더 화려하게.’

장르가 주는 고유적인 재미를 위해, FPS라는 장르는 점점 그런 화려함의 극단에 도달하기 위한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러나 전직 파병 군인 출신인 제임스의 기획은, 그런 ‘현대 트렌드’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상혁이 흥미를 느낀 부분도 바로 그런 부분이고.

일반적인 FPS에서 패드에 달린 4개의 버튼은 게임마다 다르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범주의 기능을 제공한다.

점프와 뛰어넘기 / 설치와 해체,탑승과 하차 / 재장전 및 총 줍기 / 주무기와 보조무기의 변경 / 앉기와 눕기 / 사격방식 전환 / 라이트 켜기와 끄기···.

모든 버튼들은 전투와 관련된 기능 버튼들이 차지하고 그것은 긴박한 전장 속에서 다양한 액션을 유저의 판단에 따라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임스의 기획에서는, 그런 다양한 액션이 아닌, 좀 더 다른 기능을 제공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총을 NPC에게 겨눈 상태에서 각 버튼이 위협/설득/발포/사격로 나뉜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한 발포와 사격은 뭐가 다르죠?”

“발포는 일부러 허공이나 바닥에 총을 쏴서 상대를 위협하는 겁니다. 위협보다 더 상위 개념이죠.”

“사격은요?”

“말 그대로 상대가 대항군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상대를 쏘아 맞추는 걸 말합니다.”

“흠···.”

상혁은 부실한 제임스의 기획에서 표현되지 않은 부분들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끼워 맞췄다.

완성된 형태로 게임이 완성되었을 때,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인가를 시뮬레이트 하기 위해서.

***

서있는 것만으로도 입술이 갈라질 것 같은 메마른 도시 한가운데서, 맹렬한 햇볕을 받으며 긴장된 표정으로 3명의 플레이어가 서 있었다.

한명은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채 천천히 길 한가운데의 승용차를 향해 이동 중이고, 나머지 두 명의 유저는 주변에 서 있는 NPC를 경계하며 폭탄을 해체하러 이동하는 유저를 보호하고 있었다.

멀리 있는 NPC두 명이 서로 속삭이는 게 보였지만 그것이 기폭장치를 동작하기 위한 타이밍을 교환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오늘 저녁 메뉴를 뭐로 할지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모두가 대항군 소속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고, 모두가 그냥 구경꾼일 수도 있다.

잠시 NPC들을 둘러보던 상혁은 조준 버튼을 눌러 총을 겨누며 구경꾼들을 해산시키기로 결정했다.

“Hey! Get out of here!(어이! 여기서 꺼져!)”

조준 상태에서 위협 버튼을 누르자 캐릭터가 고함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자 NPC가 손을 들며 알 수 없는 언어로 뭐라고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

“What?! I only speak English! Just turn it off!(뭐?! 난 영어밖에 못한다고! 그냥 꺼져!)”

“!%^#^^!!^”

NPC가 떠들며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자, 상혁은 위협 버튼을 연타했다.

그러자 상황에 맞춘 캐릭터의 위협 멘트가 나오며, 잠시 후 손을 머리 뒤로 올린 NPC가 천천히 뒷걸음질 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부하 병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위님? 3시 방향에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원들이 있습니다.-

“계속 주시하고 위험하다 판단되면 주저 없이 발포하도록.”

이렇게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두터운 방호복을 입은 병사는 폭탄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승용차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타이어가 모두 펑크난 차량의 뒷 트렁크를 연 병사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Holy crap···.-

“상황 보고하라.”

-이 근방을 전부 날릴 수 있을 정도의 고폭탄입니다. 터지면 저흰 다 죽어요.-

“해체할 수 있겠어?”

-놓고 튀면 안 될까요?-

“그럼 이 근처 주민들은 다 죽어. 보고서를 네가 작성하겠다면 그렇게 해도 좋지만.”

“젠장, 해보죠.”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함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폭탄을 해체 중이리라.

사제폭탄(IDE : Improvised Explosive Device)의 기폭장치는 다양하다.

지금 자신이 총으로 겨누고 있는 NPC가 휴대폰으로 원격 기폭을 시도할 수도 있고, 타이머로 터지는 형태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터지면 전부 골로 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호위 팀의 임무는 단순하다.

혹시 모를 거수자가 상황을 보고 폭탄을 터트리지 못하도록, 주변을 감시하며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

그러나 그 판단은 한없이 신중해야한다.

눈앞의 구경꾼이 시민인지, 아니면 기폭장치를 품에 안고 있는 테러리스트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병사의 직감에 의존해야했기 때문에.

-젠장, 대위님! 아까부터 저 자식이 계속 노려봐요!-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하라.-

-그냥 쏴버리자고요! 다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괜히 자극했다가 기폭장치를 가진 녀석이 폭탄을 터트릴 수도 있어! 100% 확신이 들지 않으면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다급한 음성 통신이 긴장감을 더하는 가운데, 폭탄을 해제하던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기폭장치가 원격 동작 방식입니다.-

-그럼 어쩌죠?-

“젠장, 지금부터 근방에 있는 모든 시민들을 쫒아내!”

근처에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테러리스트가 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기에, 상혁은 재빨리 사방에 있는 NPC들을 위협하며 되돌려 보내기 시작했다.

총은 한발도 쏘지 않고, 오로지 소리만 지르면서.

“주머니에서 손빼! 빌어먹을 자식아!”

“대가리에 총맞고 싶지 않으면 꺼져!”

“휴대폰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니 손모가지를 날려버릴 테다! 폰 버려!”

“[email protected]$!%!%!%!%!”

“폰! 버리라고! 손에 든거! 버려!”

휴대폰을 든 NPC가 억울한 듯 떠들며 손짓을 하자 상혁이 발포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즉시 근처에 위협사격이 가해지며 놀란 NPC가 휴대폰을 놓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아마 저항군이 있다면, 폭탄 근처에 더 이상의 미군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한명이라도 죽일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이라는 것도.

긴장감 속에서, 상혁은 한 NPC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손가락을 움찔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빌어먹을 손을 당장 주머니에서 꺼내!”

위협 한번.

-투타타타-

발포 한번.

그러나 상혁은 짧은 순간에도 그 NPC의 눈이 공포보다 의지로 물드는 것을 직감했다.

즉시 조준한 상태로 사격버튼을 누르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NPC가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저항군으로 예측되는 거수자 사살. 지금부터 확인에 들어가겠다.”

무전으로 외치며 상혁은 NPC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시체에 가까이 가서 아직도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손을 발로 차자, 휴대폰을 쥐고 있는 NPC의 손이 튀어나왔다.

-맞습니까?-

“맞겠지. 어딘가로 전화를 걸 목적이라면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 버튼을 누를 필요는 없을 테니까.”

-유휴! 저도 방금 끝냈습니다!-

“좋아. 폭발물을 회수해서 기지로 돌아간다.”

긴장감 속에서, 그들은 성공적으로 미션을 마치고 오늘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이, 아무도 죽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를 기대하면서.

“대충 이런 느낌일까요?”

상혁이 자신이 상상하는 게임의 모습을 묘사하는 동안, 제임스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리얼하게, 자신이 표현하려는 재미를 상혁이 잘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군대 다녀오셨어요?”

“아뇨. 이번 생엔 안 갔습니다.”

‘회귀 전엔 군필이었지만.’

상혁이 속으로 중얼거리자, 제임스가 감탄한 듯 말했다.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자세하시네요. 마치 제가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본적이 있어서요.”

“아, 허트로커(Hurt Locker)말씀이신가요?”

“예. 기획안을 보는 순간 그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실제 전투와는 조금 괴리가 있지만, 긴장감 넘치는 좋은 영화죠.”

제임스의 말을 들은 상혁이 물었다.

“그래서, 그런 긴장감을 게임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예.”

“다른 FPS게임이 추구하는 재미와는 좀 많이 동떨어져 있지 않아요?”

“오히려 그 점이 더 긴장감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가 말했다.

“제가 이라크에 있을 때, 전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아야했어요. 주변에 있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죠. 그렇다고 다 쏴 죽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동료가 IDE에 당해 고기조각이 되는 경험은 지금도 잊고 싶은 경험중의 하나입니다.”

“그런 고통스러운 경험을 왜 굳이 나누려고 하시죠? 혹시 나 혼자 X될 수 없다 이런 감정 같은 건가?”

“하핫, 그건 아닙니다. 다만 이런 건 있죠. 저도 FPS를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FPS가 리얼함을 표방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종류의 리얼함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돼서요.”

“흠···.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 폭발물 제거반)라···.”

단순히 NPC와 대치하며 폭발물을 제거하는 형태의 게임이라면 지나치게 단조로울 위험이 있었다.

유저가 게임을 붙잡게 하는 컨셉의 신선함은 가지고 있었지만, 게임에 푹 빠지게 만드는 요소가 현재의 기획엔 빠져 있었기 때문에.

물론 그 사실은 제임스도 알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기획이 어떠한 수준의 기획인지.

그리고 이 기획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서 어떤 수준의 투자가 필요한지도.

“만약 이 게임을 제작해야한다면, 정말 제대로 제작해야합니다. NPC들의 반응이나 표정이 실제 이라크 주민들처럼 생생해야하고, 성우들의 연기도 진짜 미군 같은 느낌을 줘야겠죠. 장비나 폭발 피해에 대한 고증도 잘 되어 있어야할 겁니다. 플레이하는 유저로 하여금, 거의 PTSD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리얼하게 만들어야 이 기획의 긴장감을 제대로 살릴 수 있어요.”

“그렇겠죠.”

“거기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클지, 그리고 그 비용대비 저희가 얻을 수 있는 메리트가 얼마나 작은지, 그건 제임스 씨도 잘 알고 계시죠?”

“압니다. 이건 지금 유행하는 게임들하고는 정 반대의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이니까요.”

“그래도 꼭 만들고 싶어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상혁이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자 제임스가 눈에 힘을 주며 상혁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진짜 군인이 된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그리고 방아쇠를 당길 때의 무게감이 어떤 것인지를, 군인이 아닌 사람도 체험하게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건 고통인가요?”

제임스가 고개를 저었다.

“재미입니다.”

슬프게도, 떠올리면 토가 나올 것 같은 전투의 긴장감은 사람을 중독 시키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독성은 제임스가 알고 있는 다른 FPS가 주지 못하는 재미라고 할 수 있었다.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고 하죠? 안타깝게도 다른 게임을 하면서 저는 한 번도 그런 감각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마치 공기에서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런 긴장감.

손에 쥔 총의 방아쇠가 무겁게 느껴지는 고통. 내 동료의 목숨을 내가 짊어지고 있다는 책임감. 단순히 화려한 전장에서 미친 듯이 총알을 갈기는 전쟁보다, 저는 이런 전쟁을 게임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게 현대의 전쟁이고, 이게 현대의 군인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임스는 크게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이 만들자고 내민 기획이 얼마나 마이너 한 취향인지는, 기획을 작성한 본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제임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혁의 표정도, 그리 희망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이미 수 조원 규모의 수익을 굴리는 회사의 CCO로써, 이런 리스크 있는 게임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판단이 아니었기에.

그러나 제임스의 예상과는 다르게 상혁은 기획의 마이너함이라던가 시장 트렌드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상혁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 마이너 한 기획의 재미를 어떻게 극대화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상혁은 지금 이 기획에서 몇 가지를 추가하면 굉장히 신선한 FPS의 경험을 유저들에게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견적이 아니라, 일종의 가능성에 가까운 아이디어였지만, 상혁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제임스 씨.”

“예.”

“해봅시다. 이거.”

“예?! 정말입니까?!”

“전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혁의 말에 제임스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예산과 인력이 어마어마하게 들 텐데요?”

“그 정도 여유는 있겠죠.”

“아직 부족한 게 많은 기획인데도 말입니까?”

“그걸 채워주기 위해서, 회사가 존재하는 겁니다.”

“아예 망할 수도 있는 데도요?”

“적어도 누군가에겐 진짜 긴장감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이 되겠죠.”

상혁이 말했다.

“최근에 연속 히트를 달성해서 다들 잊으신 모양인데, 저희 회사는 PTW입니다. 100만 명이 적당히 좋아할 게임보다, 천명이 갓겜이라고 생각할 만한 그런 게임을 만드는 회사요. 누군가가 ‘대체 이런 게임에 돈을 왜 쏟아 붓는 거야?’라고 할 만한 게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세상에 ‘오직 PTW니까 이런 미친 게임에 미친 듯이 개발력을 쏟아 부을 수 있구나’라는 평가를 받는 것. 그게 제가 원하는 PTW의 제대로 된 방향성이니까요.”

제임스는 고개를 들어 상혁을 보았다.

거기엔 자신이 생각하는 게임을 완벽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개발자가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해봅시다. 제임스 씨. 이 빌어먹을 똥겜을 한번 만들어보자고요.”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목소리엔, 망할지도 모르는 기획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앞으로 하게 될 ‘전혀 새로운 기획’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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