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신작의 씨앗
[혹시 PTW게임의 공통된 특징이 뭔지 알아?]
드디어 올라온 유저의 리뷰는 자신이 기억하는 PTW게임의 공통점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게임의 첫 인상을 보고 올린 다른 유저들의 리뷰와는 조금 다른 성향의 리뷰였기에, 상혁은 흥미를 가지고 그 유저의 리뷰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PTW의 게임이란, 기본적으로 게임을 하면서 외울게 엄청나게 많은 게임이라는 거야.
이건 인디시절 그들의 첫 작품인 익스트림 발리볼 때부터 전통적이었어.
나는 그래서 항상 게임을 하면서 무슨 능력치가 좋은지, 어떤 조건을 맞춰야 특전이 해금되는지, 특정 스킬엔 어떤 스킬로 맞받아 쳐야 하는지 게임을 하면서 익혀야하는 게 PTW게임의 특징이라고 생각해.
뭐랄까, 게임을 떠올리면, 그때 발견했던 수많은 공략법과 플레이 방법이 떠오르는 그런 게임이랄까?
그건 나이츠 어셈블에서 히든 동료를 얻으러 학교를 이 잡듯이 뒤지거나 히든 아이템을 얻으러 돌아다닌 유저라면 다들 공감할거야.
그리고 그 전통은 이후 게임에서도 계속 이어졌었지.]
그 유저는 자신이 아는 GOS나 MYOM, TAW에서의 팁도 털어놓았다.
[남들이 보면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 왜 그런 불편한 게임을 하느냐고.
게임을 하기 위해서 공략 집을 옆에 펼쳐두고 해야 하는 게임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그런데 솔직히 내 생각엔 그래. 오히려 그런 점이 게임다워서 나는 좋았다고.
PTW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런 거였어.
내가 찾아 헤매야 할 모험으로 가득한, 그런 세계로 가는 티켓을 손에 쥔 느낌.
그 PTW의 게임이란 건, 몇 십번을 플레이해도 매번 트라이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그 특유의 방대한 자유도가 특징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번 신작인 TOW를 처음 플레이 했을 때,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어.
지금도 게시판에 올라오는 리뷰가 대부분 그런 이야기로 가득 차있는걸 보면, 내 이야기가 틀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 이렇게 생각하겠지.
‘이건 FPS로는 엄청나게 잘 만든 게임이지만, PTW게임 같은 느낌이 안 들어.’
‘대체 내게 약속된 모험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원작을 중시하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너무 원작만 남아있는 느낌의 게임이 된 기분이라 난 매우 슬펐다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이어지던 리뷰는 리뷰라기보다는 거의 수기에 가까운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느낀 점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한 유저의 감상.
그리고 그 감상은, 바로 다음 단락부터 반전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착각이라는 게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더라고.]
일반적으로, 게임회사나 스튜디오마다, 혹은 리드 개발자의 성향에 따라 발매되는 게임은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다.
게임을 플레이 하는 순간, ‘아, 이건 xxx회사의 게임이구나.’, 혹은 ‘아, 이건 xxx개발자가 만든 게임이구나.’하고 바로 알 수 있도록.
그건 회사나 스튜디오, 개발자가 가진 재미에 대한 주관에 의해 결정되는 성향이 강한데, PTW의 게임은 기본적으로 최종 검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상혁이 생각하는 재미있는 게임을 기준으로 게임 시스템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기본적으로 게임이 주는 재미를 ‘탐구’의 재미로 보고 있었다.
회귀 전 자신이 즐겨 하던 게임들을 떠올리면, 그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은 수많은 지식이 주르륵 떠오르는 그런 재미를.
막혀있어 갈 수 없는 곳을 뚫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며칠을 고심한다던가, 어느 맵 어느 곳에 중요한 아이템이 있는지, 어느 보스에게 스틸을 써야 숨겨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런 여러 가지 요소들을 익혀가고 학습하는 과정 자체를 상혁은 일종의 재미라고 느끼고 있었고, 그렇기에 PTW의 게임들은 그런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짜여 있었다.
그리고 리뷰를 작성한 그 유저는, 기나긴 플레이 끝에 이번 게임에서 PTW가 준비해놓은 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냥 화려한 액션에 홀렸지. 옆에 있는 시체를 집어 던져서 총알을 막는다던가, 건물을 무너트려서 엄폐물을 만든다던가.
확실히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니까 그런 부분을 엄청나게 잘 구현해 놓았기 때문에 처음엔 그런 부분들에 혹 했었거든.
그런데 좀 더 하다보니까 게임이 가지고 있는 다른 부분들이 눈에 보이더라고.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전장 1개당 목숨은 1개>라는 부분이었어.
봐봐.
일반적으로 대규모 전장 형 FPS에서는, 깃발 탈취 횟수라던가 특정 오브젝트를 보호하던가 아니면 한 진영이 일정 킬수를 딸 때까지 멤버가 변하질 않잖아?
예를 들어 엄청나게 강한 유저가 상대 진영에 있다면, 모두가 힘을 합쳐서 그 녀석을 죽이더라도 금새 리젠되서 다시 무쌍을 찍기 시작한다고.
그런데 TOW는 그런 개념이 없어.
강한 녀석을 죽이면, 그녀석은 다른 전장에 투입되지 그 맵에 리젠되지 않아.
그리고 아군도, 죽어 나가는 순간 새 보충병이 오는 거지 기존 유저가 그 맵에서 리젠되는 형태가 아냐.
난 이게 굉장히 강력한 재미를 준다고 생각해.
수없이 반복 전투를 하는데도, 목숨은 한 개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거든.
맵에 투입되기 전부터 드랍포드에서 뜨는 미션 브리핑.
거기서 뜨는 미션은 되게 사소한 거야.
특정 지역에 있는 누구를 제거하라든가, 아니면 어디 서 어디로 이동하라든가, 어느 지역의 무슨 장비를 동작시키라든가.
TOW는 전투 전체를 승리하라고 요구하지 않아.
그냥 작은 미션 하나를 그 맵에서 달성하라고 하지.
그걸 달성하면 바로 다음 미션이 나오고.
이건 실제로 멀티플레이를 하고 있는데도 마치 싱글플레이의 미니 미션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줘.
나는 그 미니 미션을 성공한 시점에서 그 맵에서 역할을 다 한 거지.
다른 게임처럼 한 전투에서 몇 십번씩 뒤지면서 민폐덩어리 같은 느낌을 안 느껴도 된다고.
그리고 그로 인해 착실히 쌓인 포인트로, 전투 중에 보급을 요청한다던가 아니면 다음 미션에 투입될 때 더 좋은 병과와 장비를 가지고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끊임없이 계속 플레이를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어.
그것도 좋은 요소였지만 내가 이 게임이 PTW스럽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 부분이 아냐.
다들 놓치고 있는 거지만, 이 게임이 가진 진짜 재미는···<워기어 미션>에 있다고 본다.]
워기어 미션은 기본적으로 ‘배○필드’에 있는 ‘피스키퍼’같은 이스터 에그 무기를 퀘스트 형태로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TOW의 워기어는 다양한 맵에서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얻을 수 있는 특수 장비로, 일반 장비보다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일부 워기어의 경우 전용 병과를 해금시켜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강력한 보상이었다.
TOW를 개발할 때, 상혁은 PTW스럽게 ‘많이 아는 유저가 많이 유리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고 그런 자신의 욕망을 워기어 미션이란 형태로 구현했다.
유저들이 게임을 하면서 자신이 서 있는 필드가 단순한 전투 맵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와 역사를 품고 있는 게임안의 세계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그렇기에 TOW의 전장에는 이전에 죽었던 영웅의 시체가 파묻혀 있거나, 과거에 그 무기를 가지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 끝에 적에게 무기를 넘기지 않기 위해 봉인한 그런 장비들이 사방에 퍼트려져 있었다.
워함마라는 역사가 깊은 IP의 힘을 100%활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그로 하여금 그 방대한 세계관과 설정이 살아 숨 쉬는 세계에서 자신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화려한 그래픽과 액션이 유저의 발걸음을 붙잡으면, 시스템과 전략적인 요소들이 유저가 게임에 빠지게 만들고, 세계관이 유저를 미치게 만든다.
거기까지 도달한 유저들에게, TOW는 단순한 SF 대전장 FPS게임이 아니었다.
이미 자신이 뛰어다닐 수 있는 새로운 하나의 세계였을 뿐.
리뷰를 올린 유저는 그 거대한 세계의 편린을 맛본 소감을 올린 것이었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게임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숨겨진 요소들이 있을지 두근거린다.
당장 로비를 뒤지면서 NPC에게 말을 걸고, 거대한 AI들이 어째서 맵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지 이유를 알아내고 싶고.
그러니까 감상은 여기까지만 할게.
그리고 이게 다른 FPS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생각하는 녀석들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좀더, 이 게임이 어떤 것을 품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고.]
리뷰를 본 상혁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결국 자신이 준비한 재미를, 유저가 제대로 이해해준 것 같아서.
그것은 개발자로써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혁에게는, 유저가 제대로 게임을 100%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GOTY를 수상하는 것보다도, 그리고 게임이 발매 첫날 3천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했다.
즐기고 싶어 하는 유저에게 즐길만한 게임을 제공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상혁이 게임 개발자를 하고 있는 이유였으니까.
***
그날 이후로 PTW의 TOW게시판은,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수많은 유저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게시글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의 높은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PTW게임스러운 신선함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70점 후반 대까지 떨어졌던 유저 평점이, 다시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PTW에 기대하고 있던 모험과 탐구라는 요소가, FPS라는 장르 안에서도 제대로 살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그리고 결국, 게임이 출시된 지 한 달이 넘은 시점에, 떨어진 평점이 다시 올라가면서 TOW의 평균 유저 평점은 90점대가 되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커다란 이슈를 낳았는데, 한 게임회사가 동시에 발표한 3개의 게임이 모두 메타 평점 90점을 넘긴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미디어에서는 연신 이 기록적인 사태를 가지고 전문가들을 초대하여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문가들 중엔, 언제나처럼 PTW 전문 리뷰어라 불리는 허먼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고.
[아, 이번 작품도 역시나 명불허전이었죠. 결국 TOW의 유저 스코어가 90점대를 회복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으니 그리 충격적인 건 아니네요. 어차피 초반에 낮은 평점을 주었던 유저들의 대부분이, 앞서 발매된 두 게임의 임펙트 때문에 평점을 낮게 준 것이었으니까요.]
[허먼 씨 말대로, 앞의 두 게임이 압도적인 신선함과 완성도로 충격을 주긴 했죠.
허나 초반 평점이 낮은 이유가 장르도 관계없는 전작의 완성도라고 보는 건 무리한 해석이 아닐까요?]
[다른 회사라면 아니겠지만 PTW의 경우는 좀 특별하니까요.]
[어떤 점이 그러합니까?]
[재미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PTW의 게임들은 항상 유저가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게 해 줍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화재가 되고 있는 그 유저의 리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PTW의 게임은 그 자체가 게이머로 하여금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티켓같은 존재인거죠.
그게 어떤 장르건, 어떤 시대건 간에, PTW의 팬들은 게임삽에서 게임을 품에 안는 순간 꿈을 꿉니다.
‘이 멋진 게임이 분명 나를 수천 시간 이상 놀 수 있는 멋진 꿈나라로 데려가주겠지.’하고요.
그러나 이번 작품의 경우는 첫인상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느낌의 임펙트는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평점이 낮았던 거고요.]
[그럼 허먼 씨, 평점이 회복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기 때문이겠죠. 잘 만들어진 성장 라인. 에임을 크게 타지 않은 FPS라는 놀라운 시스템.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올려진 워함마라는 IP를 그대로 옮긴 듯한 완성도.
수십 미터 크기의 타이탄을 타고 전장을 휩쓸 때의 카타르시스.
그 모든 요소들이 모여 TOW라는 게임에 유저를 붙잡아 두게 합니다.
아마도 FPS라는 장르로써의 완성도 자체는, TOW가 나머지 두 게임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죠.
TOW의 리드기획자인 상혁이, 나머지 두 게임의 리드 기획자들보다 경험이나 실력이 더 뛰어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평점은 나머지 두 게임들에 비해 낮게 나올 겁니다.]
[신선하지 않아서?]
[그렇죠. 완전히 새로운 경험.
이 장르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라고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그런 감정적 충격.
TOW에 부족한 2%가 바로 그 신선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 신선함이 없어도 다른 회사 게임은 가볍게 짓눌러버릴 만한 재미를, TOW가 가지고 있긴 하지만요.]
[그렇군요.]
[그렇기에 PTW의 게임을 가장 사랑하는 팬으로써, 저는 지금이 PTW의 분기점이 될 거라고 봅니다.]
[분기점이요?]
[지금까지 주었던 그 신선한 충격을 지속적으로 유저에게 제시할 수 있는지, 아니면 커진 규모만큼 완성도로 승부하는 그런 게임 개발사가 될지 말이죠.]
그렇게 말하며, 허먼은 쓴 웃음을 지었다.
물론 팬으로써의 개인적인 바램으로써는, 당연히 전자가 이상적이다.
매번 자신들이 상상도 못한 그런 게임을 쏟아내는, 그래서 제2, 제3의 MYOM같은 게임들을 제공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게이머로써 더 바랄게 없을 테니까.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아는 허먼은 사랑하는 개발사가 그 가시밭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점점 높아지는 기대치의 절벽에서, PTW가 굴러 떨어지는 순간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허먼 씨?]
허먼이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있자 호스트가 그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허먼이 깜짝 놀라며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결국 3편의 게임을 연속으로 성공하면서 PTW는 엄청난 자금을 손에 넣었을 겁니다.
게임 개발에서 자금력은 일종의 무기죠.
이제 그 무기를 어떻게 휘두를지에 대한 선택권은 PTW의 손에 있고요.]
[그 말씀은 다음에 나오는 차기작이 PTW의 성향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거란 말씀이시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허먼 씨는 가끔 보면 엄청 예리할 때가 있네?”
티비쇼를 보고 있던 상혁이 중얼거리자,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사실 작년이 회사 규모를 확장하면서 손발을 맞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제 그 숙련된 인력을 가지고 뭘 만들지를 고민해야할 때긴 하지.”
“그렇겠지.”
“아직도 결정 못했어? 이제 게임 3개 전부 발매됐잖아.”
콘테스트를 폐지하면서, PTW의 신작 개발 프로세스는 조금 다른 형태가 되어 있었다.
개발팀에서 짬을 내어 알파 버전을 만들고 다듬으면서, 상시적으로 회사 홈페이지에 중간 결과물을 올려놓는 방식으로.
현재도 진즉에 출시가 완료된 개발 1팀과 3팀의 멤버들이 삼삼오오 팀을 모아서 끊임없이 게임을 올리고 있었다.
PTW의 차기작이,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게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상혁은, 나머지 프로젝트들을 개발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신규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때로는 조언을 하기도 하면서 차기작으로 선정할 만한 프로젝트를 고르고 있었다.
신중하게.
어떤 게임이, NE컨벤션 때 발표한 3개의 게임으로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유저들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려하면서.
상혁에게 게임이나 아이디어의 완성도 자체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게임은 언제나 개발하는 과정에서 진화하는 것이고 부족한 재미는 강화시키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신선함’은, 아이디어 단계에서 특출한 부분이 있지 않으면 나중에 붙어 넣기 어렵게 되므로, 상혁은 주로 현재 버전이 주는 재미보다는 이 ‘씨앗’을 굴려서 얼마나 큰 재미를 뽑을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씨앗이란 게 정말로 싹이 트기 전엔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데 있었다.
“그래서, 골랐어?”
“고르긴 했는데···.”
“그래? 골랐어?!”
“고르기야 진즉에 골랐지.”
“어?! 오빠?! 신작 뭐 할지 정했어요?! 근데 왜 이야기 안 했어요?!?”
갑자기 옆에서 끼어든 서연의 말에 상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 건 나도 확신이 안서니까.”
“엥?! 오빠가요?”
“고른 게임들이 완전 복불복이야. 잘 만들면 진짜 재밌을 거 같아서 고르긴 했는데···.”
말꼬리를 흐리는 상혁을 보며, 서연이 조용히 물었다.
상혁이 듣고 싶지 않아할, 그런 질문을.
“잘 못 만들면요?”
“잘 못 만들면···.”
그 뒤로 나오는 상혁의 말은, 모여 있는 모든 부원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적어도 그들이 아는 상혁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어쩌면 처음으로, PTW에서 똥겜을 만드는 경우가 생길지도 몰라.”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사 PTW.
그 안에 있는 수백 명의 개발자들이 낸 아이디어 중에서 상혁이 고른 차기작의 아이디어는, 심지어 상혁 본인이 직접 개발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도박’에 가까운 아이디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