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PTW 기자회견
비록 PTW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글로벌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사회적 영향력은 다른 대기업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2011년의 대한민국은, 일개 게임사가 기자회견을 연다고 해서 갑자기 긴급 뉴스가 편성될 정도로 게임에 미친 사회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기자회견을 열면 기본적으로 저녁 뉴스에 방영되긴 하기 때문에, 상혁은 현주에게 공문을 받은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기로 결정하고 아는 기자들을 초청했다.
그리고 PTW홈페이지에 게임 관련 내용을 공개한다고 알린 뒤, 인터넷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기자회견 내용을 송출했다.
[혹시 업데이트?!]
[신작 발매일 정보?!]
[MYOM의 2차 월드 이벤트!?]
[워함마! FPS! 워함마! FPS! 워함마! FPS!]
게시판이 뒤집어지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상혁이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은, 그런 팬들의 기대를 크게 실망시키는 내용이었다.
애당초 셧다운 관련 내용에 해당되는 유저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오늘 이렇게 기자회견을 요청한 것은, 저희가 정부에서 셧다운 법안 관련하여 협조 공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상혁이 손에 든 공문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따라서 상기 법안에 의거하여 PTW에서 서비스 중인 게임에 대한 청소년의 이용시간을 제한할 수 있는 시스템의 적용을 요청 드립니다. 그와 더불어, 현재 귀사의 게임이 서비스되고 있는 네트워크 서비스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일괄적인 셧다운 적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대충 몇 가지 더 있지만 주요 내용은 이겁니다.”
기자들은 어째서 상혁이 저 공문을 읽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이미 통과된 법이고, 모든 대한민국 기업은 대한민국의 법을 따라야하기에.
감방이라도 갈 생각이 아닌 바에야 일개 개발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순히 불만을 표하는 것 외에는.
‘그것도 현명한 처사는 아니지.’
2011년의 대한민국에서, 정부에 거스른 기업이 어떻게 될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혁의 행동은, 그런 기자들을 충격에 빠트리는 행동이었다.
“이건.”
상혁이 집어든 공문을 양손으로 들더니.
“쓰레깁니다.”
반으로 죽 찢어버렸다.
종이가 찢어질 때 나는 특유의 소리와 함께.
그리고 그 순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미친 듯한 플래시 세례가 상혁을 덮쳤다.
‘저 새끼 미쳤나?’
원래부터 상혁을 돌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원준은 상혁의 과감한 행동을 보고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준보다 더 충격을 받은 것은, 콘솔 업계에 영향력이 강한 PTW를 이용해서 SANY와 MS를 압박하려고 했던 장본인이자 저 공문을 작성해서 보낸 당사자.
영미였다.
“허?!뭐?!저딴 미친놈이 다 있어?!”
황당해하는 영미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모니터 속에서는 여전히 반으로 찢어진 종이를 들고 있는 상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상혁은, 찢은 종이를 내려놓고는 카메라를 향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들이 뭔데 무슨 권한으로 남이 즐길 거리를 해라 마라 할 자격이 있습니까? 지들이 뭔데 전 국민 중 일정 나이 이하의 사람들에게 ‘너흰 이 시간에 게임 하지 마.’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까? 국민이 그거 하라고 뽑은 겁니까? 아니면 그렇게 하겠다고 공약이라도 걸고 당선 됐습니까?”
상혁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죠. 아이들의 수면권 보장은, 그냥 핑계일 뿐입니다. 셧다운제의 이면에는, 커져가는 게임 산업계에서 대놓고 삥을 뜯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숨어있습니다. 3월에 중독기금으로 매출 10%를 내놓으라고 강요하다가 무산되니까 보복성으로 통과시킨 게 너무 뻔히 보이지 않나요? 역겹고, 더럽습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국민에게 해로운 것을 통제해야한다는 논리로 마약이나 도박도 통제하지 않습니까? 게임도 청소년들의 수면권 보장을 위해서 통제하는 거라는 법안의 의도가 거짓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국가가 통제해야하는 부분이 있고, 개인에게 맡겨야하는 부분이 있고, 부모에게 맡겨야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에게 부모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 시간을 법으로 통제할 권한이 있습니까? 그런 논리로 따지면 국회의원들이 음주운전해서 사고 내는 게 국민 들의 혈압을 올리니, 앞으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은 술 못 마시게 법으로 막아야하지 않을까요?”
“그건 억지라고 할 텐데요?”
“셧다운도 충분히 억지입니다. 찬성파 자녀들만 나라의 자식입니까? 자기 아이들과 대화로 충분히 게임 시간을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권리는 왜 빼앗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일괄 적용하기 위해서 성인들이 해외의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발생하는 피해를, 나라가 보전해주나요? 수면권 보장이 중요하면, 야근은 왜 있습니까? 어른의 수면권은 덜 중요합니까? 애당초 형평성 측면에서 말이 안되는 법안입니다. 이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상혁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기준도 순 개 억지고요. TAW같은 경우 PSN에서는 셧다운 대상이 아니고, X-BOX LIVE유저들은 대상이 됩니다. 게임기가 바뀌면, 갑자기 밤에 해선 안 되는 게임이, 해도 되는 게임으로 바뀌기라도 하는 겁니까? 저는 이 따위로 하자 있는 법안을 왜 통과 시킨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상혁의 입에서 욕까지 튀어나오자
기자들이 미친 듯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상혁은 그중 한명을 지목해 질문을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기자는 호흡을 다듬으며 상혁에게 침착하게 질문했다.
“그럼, PTW는 공식적으로 셧다운제 적용을 보이콧한다고 봐도 될까요?”
상혁의 지금까지의 발언은, 정부를 욕하며 셧다운제를 거부하는 의사를 온몸으로 밝히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기자는 PTW가 셧다운제를 놓고 정부와 힘다리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기자의 질문에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예?! 반대하신다고 말씀하신 거 아닌가요?”
“그건 그냥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PTW와는 관계없어요. 저희 PTW는 철저하게 국내법을 준수하는 대한민국 기업입니다. 단지 이딴 엉터리 법안을 통과시킨 입법부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 것뿐입니다. 멍청한 법이니까요.”
개탄스럽다는 듯이 상혁은 말을 이었다.
“전 세계에서 게임을 우리나라만 서비스 합니까? 해외 게임업체들이 굳이 우리나라 하나만을 위해서 셧다운 시스템을 구축해야합니까? 왜 해외 대기업에게 국내법 적용을 위해서 국내 게임사에 협조를 요청합니까? 병신 같은 발상이죠
이 법대로라면, 나중에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아동용 게임이 국내에서만 18세로 유통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셧다운제를 피하기 위해서요.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만든 게임을, 정작 아이들은 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딴 개 쓰레기 같은 법안 때문에. 아, 다시 말하지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좋습니다. 어디까지나 지금 하신 말씀은 PTW로써가 아니라 이상혁이라는 개발자 개인의 의견이다 이 말씀이죠?”
“맞습니다.”
“그럼 이상혁 씨의 개인적인 견해는 뒤로 미루고, 오늘 발표할 공식적인 내용이 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아, 잠시 만요. 오해하시는 게 있는데, 오늘의 발표자는 제가 아닙니다. 오늘 발표는, CEO 이현주님이 발표할겁니다.”
“엥? 그럼 상혁 씨는 왜 나오신 거죠?”
“아, 그걸 깜빡했네요. 이 뭐같은 법안을 보니까 화가 치밀어 올라서. 전 그냥 공식 발표 전에 저희 발표자를 소개하기 위해서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방금 한 말은, 그냥 개인적인 넋두리 같은 거죠. 자, 저희 PTW의 CEO 이현주 씨를 박수로 환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온갖 악다구니는 다 퍼부어놓고 뻔뻔한 표정으로 ‘개인적 의견이다’와 ‘공식 발표가 아니라’라는 스탠스를 취하는 상혁을 보며, 영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찌되었건 국가에 무례했다는 죄 같은걸 뒤집어 씌울 수는 없으니까, 결국 PTW가 정부 지침에 잘 따른다면 방금 발언에 죄를 물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혁이 뒤로 물러서자 뒤에 서 있던 현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상혁이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 PTW는, 이번 정부 권고를 받아들여 자사에서 서비스하는 모든 콘솔 패키지 게임에 셧다운제 법안을 적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멀티플레이에 추가 과금이 필요하지 않아 셧다운제 적용 범위 대상이 아닌 TAW의 PS버젼 외에, 필수적으로 온라인 플레이에 결제가 필요한 X-BOX에서 서비스 중인 3개의 게임이 그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 게임의 목록은, 나이츠 어셈블, MYOM, TAW입니다. GOS는 멀티플레이 기능이 없는 관계로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대부분이 게임업계 기자들로 채워진 기자단은 침묵에 빠졌다.
현주가 내뱉은 발언은, 단순히 법을 지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글로벌 게임업체가 대한민국 정부에 백기를 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했기에.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PTW가 보여준 과감하고 파격적인 행보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결국 받아들이네요. 그 PTW도 말이죠.”
“그래봐야 대한민국 게임 업체니까요. 게임 회사가 대한민국 법 위에 있을 순 없죠.”
조금 풀어진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하는 영미에게, 원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마음도 씁쓸한 건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게임 업계에 몸담은 사람 으로써, 이 법이 얼마나 어이없는 법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적어도 PTW는 뭔가 보여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토록 복수하고 싶었던 강대한 상대가 권력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은, 원준에게 시원함과 동시에 뭔지 모를 아쉬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한 기자가 손을 들며 현주에게 질문하는 모습이 보였다.
“PS버젼은 제외라고 하셨는데, 그럼 PS3로 TAW를 즐기는 유저들은 여전히 12시 이후에도 게임을 할 수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PSN이 현재 멀티플레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고, 저희 게임의 멀티플레이는 과금 모델이 없기 때문에 셧다운제 적용의 대상이 아닙니다. PS유저들은 셧다운제 적용 이후에도 여전히 자유롭게 플레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X-BOX유저들은 셧다운제의 적용을 받는다는 겁니까? 이제부터 12시부터 6시까지, 16세 미만 유저들은 게임을 못하는 방식으로요. 아니면 아예 X-BOX 유저는 한국에서만 해당 시간에 콘솔 게임의 멀티플레이가 금지되는 건가요?”
그러나 현주는, 그런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예?! 아니라고요?”
“예. 아닙니다. 저희가 변경한 것은, 16세 이하의 X-BOX유저들이 12시 이후에도 여전히 게임을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변경이었습니다.”
“그럼 법을 보이콧하는 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말씀드렸지만 저희 PTW는 법을 준수하는 대한민국의 게임 기업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간단합니다.”
현주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X-BOX LIVE의 서비스가 유료라서 셧다운제한에 걸리는 거라면, 그걸 무료로 바꾸면 되니까요.”
상혁이 크리스를 통해 진행한 ‘거래’.
그것은 현재 유료로만 제공되는 X-BOX LIVE의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PTW의 게임에 한해서 PSN과 같은 무료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
[정부 정책에 대한 PTW의 반항. 서비스 기존대로 유지 확정.]
[PC 온라인 기반인 ‘배틀로얄’을 제외한 모든 게임에 셧다운제 미적용 선언.]
[예외 사항 적용으로 셧다운제 적용을 피해간 PTW. 기자 회견장에서 정부와 국회를 향해 맹비난을 퍼붓다.]
일제히 뜨는 기사들을 보며, 16세 미만의 많은 콘솔 유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론 그 중에 실제로 심야에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주로 아이들 방에 설치하는 개인 PC와 다르게, 대부분의 콘솔 게임기는 거실에 설치되어있으니까.
밤 12시가 넘어서 거실에서 게임을 대놓고 즐길만한 학생유저들은 거의 없었기에, 실제로 셧다운제의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TW의 이런 행보는 정부의 강압적인 셧다운 정책에 반발하는 반항의 기수로써 국내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영미는, PTW의 발표를 보자마자 키보드를 붙잡고 자판이 튀어나갈 정도로 책상을 두드리며 미친 듯이 화를 내었다.
감히 게임회사 주제에, 자신을 엿 먹인 PTW에 대한 강한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괜찮을까?”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현주가 상혁에게 물었지만, 상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현주에게 답했다.
“뭘 걱정해요? 저흰 정당하게 법에 따라 셧다운제를 우회한 건데요?”
“그래도 그 셧다운제를 적용하려던 당사자들이 뭔가 보복하려 하지 않을까 하는 거지.”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는 여행자는 무언가를 빼앗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죠. 저흰 털어도 먼지하나 안나올 기업이니까 괜찮아요.”
실제로 게임 업계중에 매출 규모 대비 엄청나게 적은 법인세를 내고 있었지만, PTW는 탈세와는 거리가 먼 기업이었다.
PTW의 세무팀은, 나가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야할 세금이 빠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주 업무였기 때문에.
법인세가 적은 것은, 버는 족족 전부 보너스로 지급하거나 게임 제작에 재투자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혁은 정부에서 세무조사를 통해 PTW를 압박한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은 실제로도 그러했다.
어차피 법적으로 자신들을 규제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상혁에게 한방 먹은 여성가족부 청소년 정책과에서는, 안 그래도 부정적인 여론이 강한 셧다운제에 치명적인 한방을 먹인 PTW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담당자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건 대놓고 정부 부처이자 이번 법안을 입안한 저희 여성가족부를 대놓고 무시한 처사입니다. 반드시 응징해야합니다.”
“선미 씨. 지금 여기 모인 사람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문제는 규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요!”
“명예 훼손 법은 어떨까요?”
“알아봤는데 교묘하게 입안자들을 모독한 게 아니라 법안만 모독해서 명예 훼손의 조건이 안 맞아요.”
“세무조사로 압박하는 건?”
“그것도 어려워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국세청에서 세무조사 끝 낸지 얼마 안 돼서.”
“거기 세무조사는 왜 했대요?”
“매출 규모에 비해서 법인세 내는 게 너무 적어서 확인 차 했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번 돈을 전부 다 투자하는 형태의 회사라 딱 벌린 만큼 맞게 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게등위를 압박해서 심의를 못 보게 할까요?”
“청소년 대상 게임을 주로 만드는 회사고, 사행성 요소도 아예 없는 게임만 만들기 때문에 그것도 어렵죠.”
“안 된다 안 된다 하지 말고 될 방법을 생각해보자고요! 뭐든 털면 나올 테니까!”
그렇게 여러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사이, 상혁은 미국 본사에서 추가 협의를 향해 한국을 찾아온 크리스와 미팅을 진행했다.
사안이 급하기에 구두로 계약을 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PTW게임에 대한 무료 멀티 플레이 서비스 제공에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이건, 아마도 제가 한국 정부에 감사해야할 일 같군요.”
크리스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도 그럴게, 상혁이 이번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MS에 내건 조건이 크리스로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저희 MS측에서 X-BOX LIVE게임 중 PTW게임을 유료결제 없이 무료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PTW에서 1개의 코넥트용 신작을 새로 개발해주신다는 조건이었죠?”
“맞습니다.”
사실 무료 제공 자체가 MS에서는 큰 출혈을 감수해야하는 것이었기에, 상혁은 그 이하의 조건을 걸 수가 없었다.
어쨌건 코넥트는 순전히 MYOM 때문에 팔린 전용기기 취급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MS가 자랑하는 다른 서드 파티들은 현재 제대로된 코넥트 게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MYOM 때문에 비싼 코넥트를 구매한 유저들에 대한 애프터케어 측면에서 코넥트 용 신작의 발매를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임이 될지 물어봐도 될까요?”
“뭐,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봐야겠죠. 물론 MYOM으로 눈이 높아진 코넥트 유저들을 위한 게임이니, 재미없는 경험을 주는 게임을 만들지는 않을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개발자의 약속이라니 감개가 무량하네요. 이걸로 PTW게임중 MS독점 게임이 두 개가 되는 거기도 하고요. 윌 게이트 씨가 매우 기뻐할 겁니다.”
“매출에서 손해가 크실 텐데요?”
X-BOX LIVE결제유저의 상당수가, 오직 PTW의 게임을 즐기기 위한 용도로 서비스를 결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MS측에서 이번에 지불해야하는 비용은 상당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매출보다, MS 진영이 PTW의 독점 게임을 하나 더 확보하는 것의 의미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MYOM밖에 할 게임이 없는 기기와, MYOM도 할 수 있는 기기는 늬앙스가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리고 앞으로 나올 차세대 콘솔에서도, PTW와는 긴밀한 협력관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내리는 투자입니다. 적어도 SANY는 저희처럼 후하게 PTW에 베풀지는 못하겠죠?”
“뭐, 그렇죠. MS측에는 나이츠 어셈블때부터 받은 도움이 많으니까요.”
“그럼 이번 기회에 아예 저희 서드파티를 하시는게···.”
“크리스 씨?”
상혁이 미소 지으며 말하자 크리스가 흠칫 물러섰다.
“농담입니다. 게이머를 위해서, 가능하면 독점 발매를 안 한다는 게 PTW의 원칙이었죠?”
“알아주시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번 셧다운 관련 이슈도 게이머를 위한 판단이셨겠군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온라인으로 저도 기자회견을 지켜봤는데, 앞에서 시원하게 욕하는 거 보고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저희도 셧다운 관련 협조요청을 받았을 때, 황당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거든요. 갑자기 한국 콘솔게임과 관련하여 다른 나라에 없는 특별한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꼬장을 부려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어쩌실 생각이었나요?”
“아예 한국은 청소년 계정을 안 받으려고 했죠.”
“서비스 종료가 아니라요?”
“PTW가 있는 나라의 콘솔 게이머들을 무시하기엔 한국도 크기가 작지 않은 시장이라 서요. 한국 정부의 높으신 분들은 전혀 이해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군요···.”
잠시 생각을 하던 상혁이 말했다.
일단 유저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급한 불은 껐지만, 이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크리스 씨?”
“예.”
“혹시 추가적인 협조를 요청할 수 있을까요?”
“어떤 거죠? 저희 측에서 지원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필요한 협력은 아닙니다. 다만···.”
“다만?”
“어쩌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서 상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여성가족부에서 PTW의 보복을 준비하는 사이, 상혁은 크리스를 상대로 자신이 쓸 수 있는 ‘두 번째 카드’를 확보하려 하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쓸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왠지 필요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그것은 오랫동안 온갖 규제와 싸우며 한국 정부의 게임에 대한 삐뚤어진 상혁이 가지고 있는, ‘한국의 게임 개발자로써의 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