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언리미티드 액션
민준이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던 ‘워함마 FPS’의 모습은, 대규모 전장을 배경으로 스쿼드 단위로 유저들이 몰려다니며 전장을 점령하기 위해 싸우는 멀티플레이 FPS게임이었다.
그리고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 민준이 얼핏 본 현재 버전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버전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뭐 일단 해보면 알겠지.’
자리에 앉은 민준은 본인의 테스트 계정으로 로그인하여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전장 진입 파트가 변경되었구나.’
원래 버전에서는, 멀티 플레이 진입 시에 유저가 자동으로 진입 가능한 전장에 랜덤으로 투입되는 구조였지만, 지금 버전은 ‘본부’라고 불리는 접속공간에서 돌아다니며 자신이 투입되길 원하는 전장을 찾아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유저가 스나이퍼 플레이를 하고 싶다면, AI가 스나이퍼가 요구되는 전장에 배치해줄 때까지 신청을 하고 기다리면 되도록.
각 신청 구역의 NPC가 해당 직업에 맞는 장비를 갖추고 진입로에 서 있기 때문에, 민준이 자신이 해보고 싶은 병과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 드레드 너트네?”
로비를 돌아다니던 민준은 단번에 눈길을 끄는 거대한 보행형 병기를 보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거기엔 영웅 유닛에 해당하는 드레드 너트가 육중한 금속 몸체를 자랑하며 진입로에 서 있었다.
[애송이! 네 전과로는 이 위대한 병기를 감당할 수 없다!]
한번 체험삼아 드레드 너트를 조종해보려던 민준은 헤드셋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옆에 서 있는 상혁을 향해 물었다.
“이거 난 못해?”
“병종마다 전과가 정해져 있어서 고위 병종은 아무나 못해.”
“흠, 그래?”
그렇게 말한 민준은 알트 탭으로 게임을 내린 뒤 서버 db를 열어 실시간으로 자신의 계정에 설정되어있는 전과 스테이터스를 10배쯤 뻥튀기한 후, 다시 진입을 시도했다.
“야, 이 씨···.”
“뭐 임마 뭐? 테스트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하아···. 맘대로 해라.”
다시 진입을 시도하자 민준이 전과를 얼마나 부스트했는지 방금전까지 민준을 애송이라고 부르던 드레드 너트가 민준을 향해 경례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위대한 영웅의 참전을 환영합니다.]
“오, 전과 따라 NPC반응이 변하나봐?”
민준은 바로 대기실에 들어갔다.
그러자 마치 로봇에 탄 듯한 UI화 함께, 화면이 육중한 느낌으로 뒤뚱거리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거 탈것마다 화면 모양이 다 달라?”
“어. 같은 탈것도 병과에 따라 다르지.”
“좋아.”
민준은 잠시 자신이 투입될 전장을 AI가 선정할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미션 브리핑 UI가 출력되며 민준에게 임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위대하신 전장의 영웅이시여. 현재 사악한 카오스의 배신자들이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위엄을 더럽히려 하고 있습니다.]
기계음이 섞인 굵은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에 전장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연출이 흘러나왔다.
민준은 자신의 역할이 카오스 진영의 카오스 드레드너트를 상대하는 것이란 것을 파악하고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전장에 투입되기 전에, 해당 병과가 지원하는 다양한 무장을 선택하는 화면에서, 민준은 한쪽손에 화염방사기를, 다른 손에 파워피스트를 장착하려 했다.
그러자 ‘포인트가 부족합니다’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떴고, 민준은 다시 게임을 내린 뒤 서버 DB를 조작하여 자신의 계정에 포인트를 왕창 집어넣기 시작했다.
“하아···. 게임 진짜 프로그래머 스럽게 하네.”
“쉽게 가자고 쉽게. 그래도 무장 선택은 마음에 드네. 포인트는 전장에서 버는 거야?”
“어.”
“좋아. 이제부터 벌어보지 뭐.”
“그러던가.”
그때, 로딩이 끝나며 민준의 캐릭터가 전장에 투입되었다.
거대한 낙하음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 민준의 금속 거체가 무거운 먼지구름을 만들며 화면을 가렸다.
그리고 바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흠, 재미있긴 한데···.”
확실히 재미는 있었다.
수많은 적을 상대로 압도적인 강함을 뽐내며 무쌍을 찍는 재미는 확실히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전장에 한정된 숫자로 투입되는 영웅 유닛 특성상 자연스레 상대 영웅 유닛과 1:1 대결 구도로 전황이 흘러가는 부분도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난잡한 전투의 분위기 속에서 병종에 따른 흐름이 명확하게 구분된 느낌이었지만 민준이 보기에 그것은 상혁이 보인 강한 자신감의 근거까지는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SO SO 한 느낌.
민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앞에 달려온 한 카오스 해병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하는 순간, 그 병사가 옆에 있는 시체를 발로 차서 자신의 공격을 막는 것을 보기 전 까지는.
“어?! 뭐야?!”
뭐라고 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민준의 유닛 가까이 다가온 적 해병은, 등에 달린 로켓 부스터를 켜고 하늘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는 동시에 등에서 체인 엑스를 뽑아내 민준이 타고 있는 기체의 카메라를 노려 공격했다.
-투콰콰콰콰쾅!-
금속이 금속을 찢어발기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민준은 1인칭 시점으로 보고 있는 화면이 마치 모니터가 깨진 것처럼 얼룩으로 가득차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민준이 재빨리 3인칭 화면으로 시점을 변환 했을때에도, 여전히 화면 곳곳이 얼룩으로 보이지 않는 상태는 유지되고 있었다.
“3인칭에서도 안 풀려?”
“카메라가 나간 거니까.”
“부위 파괴가 있어? 그리고 아까 시체 집어던진 건 뭔데?”
“뭐긴 뭐야.”
상혁이 미소 지으며, 민준에게 엄치를 치켜세웠다.
“파쿠르(Parkour)지.”
민준은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민준의 드레드 너트에 체인 액스를 박아 넣은 뒤 얼룩과 노이즈 사이로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카오스 해병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이것 좀 잡고.”
기본적으로 내구도가 말도 안 되게 강한 영웅 유닛이었기 때문에, 민준은 카메라가 나간 상태에서도 금세 멀어지고 있는 해병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민준의 드레드너트를 감싸고 있는 전면 장갑은 볼터의 근거리 연사에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파워 피스트 한방이면 죽을텐데.’
민준은 자신을 놀라게 한 대가로 상대방 유저를 찢어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민준이 뻗은 기계 주먹이 카오스 해병의 몸에 닿기 전에, 민준은 자신의 앞에 있는 땅이 폭발하듯 치솟아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어?! 뭐야?!”
민준도 게임 경험이라면 상혁에게 크게 밀리지는 않는다.
물론 프로그래밍 공부에 집중해야하기에 대부분의 게임을 짤막짤막하게 해서 그렇지, 플레이 한 게임의 수는 상혁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것이 민준이었다.
그러나 민준은, 적어도 자신이 아는 FPS에서, ‘시체를 집어 던진다’거나 ‘땅 속에 숨는다.’라는 해괴한 전략을 본적이 없었다.
그렇게 당황한 민준의 바로 앞에 나타난 ‘카오스 드레드 너트’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주먹을 민준의 기체에 박아 넣었고, 민준은 바로 폭발하는 자신의 기체와 함께 화면에 뜨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조종하던 드레드 너트가 파괴되었습니다. 로비로 돌아갑니다.>
등받이에 등을 기댄 민준은, 상혁이 자신감을 보여준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혁은, 어느새 근처에 있는 음료 냉장고에서 음료수 한 캔을 꺼내 민준에게 건네주며 질문을 던졌다.
“놀랐어?”
“조금. 근데 땅파는건 스킬이야?”
“아니, 조건부 액션.”
“아까 파쿠르라고 말했던 그거?”
“어.”
“나도 할 수있어?”
“단축키는 ‘T’야.”
음료 캔을 따서 단숨에 마신 민준은 다시 로비로 돌아간 자신의 캐릭터를 이동시켰다.
이번엔 영웅 유닛이 아닌, 일반 유닛으로.
그리고 다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파쿠르인가.’
전장에 돌아간 민준이 T버튼을 누르자 전장 곳곳에 파란색 홀로그램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오브젝트에 가까이 다가가자, 민준은 상혁이 말한 ‘파쿠르’가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 바로 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내 근처에 있는 지형이나 사물 오브젝트로 할 수 있는 액션을 골라서 쓸 수 있는 거네.’
민준이 아는 대부분의 FPS에는 벽 뒤에 바짝 붙으면 은폐엄폐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
상혁은 그것의 바리에이션을 ‘은폐엄폐’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엄청나게 확장해 놓은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다른 병사의 어깨를 밟고 높게 뛰어오른다던가, 움푹 파인 곳에 들어가서 흙으로 몸을 덮어 지면처럼 위장한다던가, 아니면 옆에 있는 시체를 집어던져 탄막으로부터 몸을 숨기며 특정 지점으로 이동한다던가.
마치 액션 영화 같은 수많은 연출이 간단한 조작으로 구현 가능하게끔, 그리고 그 액션이 전략적 의미를 지닐 수 있게끔 구현되어 있었다.
유저로 하여금, 전장을 뛰어다니면서 짧은 순간에도 수십 개의 전략을 고민하고 선택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정말로 액션 무비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스타일리시한 전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게임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닌데.’
사실 민준은 재접속하자마자 아까 자신을 죽인 직원을 찾아 죽이기 위해 같은 전장에 투입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 게임은 한 전장에서 지속적으로 리젠되며 한 진영이 지정된 킬 수를 따서 승리를 가르는 그런 게임이 아니었기에, 민준은 같은 전장에 재배치 받지 못하고 다른 전장에 배치되었다.
“이거 내가 원해도 같은 전장엔 다시 못 들어가?”
“어. 공식적으로 넌 거기서 사망처리 된 거고 이 게임에서 사망은 물러주지 않아. 한 전장 당 목숨 한 개. 리젠은 없어.”
“근데 난 중간에 투입됐잖아?”
“그건 증원. 리젠하고는 개념이 다르지. 한 전장에서 수십 번도 리젠이 이루어지고 전황이 계속 바뀌지만, 한 게이머가 그 안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는 한번 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민준은 다시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아예 계정을 리셋 시켰다.
이번엔 처음부터 제대로 게임을 플레이 해 보기 위해서.
그리고 상혁은, 그런 민준을 보며 씨익 웃더니 부실로 돌아가 버렸다.
왠지 이번 테스트는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
<전장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승리 포인트와 전과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시작부터 플레이를 하면서, 민준은 이 게임이 거대한 전장을 구현하기 위해 꽤 많은 부분에서 손을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순히 대규모 전장에서 마구 총을 쏘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게이머 스스로가 견적을 잡고 계정을 육성해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낮은 등급의 병과라도 꾸준히 키움으로써 전장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병과별로 개성이 명확하게 구분 지어져 있기 때문에, 민준은 매번 병과를 바꿀 때마다 다른 게임을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FPS에서 느낄 수 없는, 이 게임만의 독특한 재미에 대해서도.
“민준 씨. 이번에도 같은 병과로 하실 거예요?”
민준의 옆에 있던 젊은 여성이 묻자,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는 전투 중에 우연히 같은 파티가 되어서 호흡을 맞췄는데, 은근 조합이 잘 맞아서 계속 같이 플레이하는 중이었다.
민준이 탱커. 그리고 그녀가 딜러로.
민준이 저격 포인트로 적을 유도하면 그녀가 적을 일격사 시키는 조합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적이 다가간다면, 민준이 재빨리 달라붙어 그녀가 거리를 벌릴 때까지 적을 상대하며 시간을 번다.
클래스에 따른 역할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구축될 수 있게 만든 부분은 민준이 아는 다른 전장형 FPS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를 주고 있었다.
“나, 장비 업그레이드 가능한데.”
“오, 그럼 뭐로 하실 거예요?”
잠시 고민하던 민준은 중앙에 커다란 갈고리가 달려있는 구멍뚫린 방패를 골랐다.
“이거.”
“나이스 초이스. 저 지켜주시려고요?”
민준이 고른 방패.
그것은 멀리 있는 적을 강제로 자신의 앞으로 잡아당기는 기능이 있는 방패였다.
***
부실로 돌아온 상혁은, 서연이 작업해 놓은 FPS게임의 컨셉 아트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FPS게임의 아트라기보다는, ‘데빌 ○이 크라이’ 같은 스타일리시 액션 게임의 컨셉 아트를 연상하게 하는 그림이었다.
‘처음 서연이가 이거 가져왔을 땐 장르를 착각했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전장형 FPS의 컨셉 아트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이미지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저런 게 있으면 재미있겠다.’라는 느낌을 주는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결국, 상혁은 게임 전반의 플레이가 180도 달라지는 것을 각오하고 서연이 잡은 재미를 구현하려 노력했고, 지금의 테스트 버전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단순히 그냥 플레이하기만 해도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임.
에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 있는 오브젝트와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전략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게임.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다른 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력한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는 게임이었다.
그때, 부실의 문이 열리며 민준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온 민준은, 상혁의 옆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상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땠어?”
“어땠냐고?”
민준이 웃었다.
자신의 대답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상혁의 표정이 너무 뻔뻔해보였기 때문에.
“어땠을 것 같은데?”
“말 안 해주냐?”
“너도 알건데 굳이 말해야 되냐? 시계 보면 알잖아?”
민준의 말에 상혁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테스트를 위해서 민준을 테스트실로 데려간 시간이 오후 1시 쯤.
그리고 지금 시계는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재미있었다는 거지?”
“뭐, 입 짧은 내가 처음 하는 게임을 6시간이나 붙잡고 있게 만들었으니, 내 기준으로는 재미있다고 봐야겠지.”
“평가가 박한데.”
“꼭 내 입으로 말해야 되냐?”
민준이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든 게임이잖아. 지수가 만들면 내가 칭찬해주고, 카렌 씨가 만들어도 내가 칭찬해주는데, 난 너 아니면 누구한테 칭찬 듣겠냐?”
상혁의 투덜거림에 민준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고개를 세차게 털며 민준은 상혁에게 짜증내듯 소리를 질렀다.
“그래! 재밌었다! 오지게 재밌었다! 원래 버전에 있던 클래스에 따른 역할 분담도 훨씬 잘 살렸고, 파쿠르 시스템 때문에 내가 뭐 할 때마다 액션 영화같이 연출이 뻥뻥 터지더라! FPS고자라도 이건 재밌어 하겠더라! 됐냐!?”
민준의 말에 상혁은 씩 웃어보였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기에.
“됐다. 네가 재미있다면, 그럼 된 거지.”
“적어도 2012년 기준으로는 압도적일 것 같더라.”
“하늘림이 2012년인데도?”
“그건 장르가 다르잖아. 적어도 대규모 전장이나 전쟁 분위기 자체는 배○필드3보다 이게 재미있었어. 그건 너무 에임 실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게임이니까.”
“그럼 됐다.”
만족할만한 표정을 지으며 천장을 바라보는 상혁을 보며, 민준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20, 아니 30년 넘게 함께 해온 자신의 친구가,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 지가 짐작 갔기 때문에.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좋은 게임이 나왔고, 민준과 상혁은 둘 다 그 결과에 만족할 수 있었다.
천생 개발자인 두 사람에게, 유저들을 즐겁게 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기 때문에.
“아, 그래도 몇 개는 손대야할 것 같긴 하더라.”
“기획적으로?”
“아니, 기술적으로. 범배 씨가 실력이 좋긴 하지만, 아직 나한텐 멀었지.”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해 줄 거잖아?”
“그렇지.”
그렇게 여운을 즐기는 두 사람은, 이제 남은 것은 출시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CEO인 현주가, 굉장히 말하기 곤란한 것을 말하려는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 전 까지는.
“저기, 상혁아? 민준아?”
“오, 선생님. 선생님도 앉아서 좀 쉬실래요?”
“둘 다 기분 좋게 쉬는데 미안하지만, 지금 좀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문제요? 문제 될게 뭐 있겠어요? 앞에 나온 두 게임은 올해 고티 확정이고, 내년에 나올 우리 게임도 유력한 고티 후보일텐데. 지금 우리 행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요?”
“사람이 아니야···.”
“예?”
“우리 앞을 막는 게,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며, 현주가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엔 상혁이 회귀 이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한국 게임업계의 암운이 인쇄되어 있었다.
<청소년 보호법 제26조(심야시간대의 인터넷게임 제공시간 제한)에 따른 유관 기업 업무 협조 요청>
현주가 내민 공문에 적혀 있는 것.
그것은 2011년 11월 20일부터 시행되는, 16세 미만의 12시 이후 게임 금지조치를 담고 있는 법안.
‘셧 다운제’에 대한 업무 협조 요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