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내가 여기 있다
야리코미(やり込み:파고들기)라는 용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닌, 게임 하나를 파고들 듯이 플레이 하는 것.
보통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는 유저는 한 개의 게임을 미친 듯이 플레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플레이는, 유저에 따라 각양각색의 다양한 성향으로 표현된다.
어떤 유저는 모든 도감을 100%채우지 않으면 엔딩을 보지 않는 집착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유저는 수십 회차를 플레이하면서 최소 레벨 클리어를 목적으로 한다던가, 어떤 유저는 대놓고 개발사에서 유저 패배 이벤트로 잡아놓은 스테이지를 강제로 클리어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PTW의 게임들은, 그런 파고들기 플레이를 즐기는 유저들에게 대체로 호평 받는 게임들이 많았다.
가장 초기 작품인 ‘익스트림 발리볼’마저도 대전 스포츠 게임 치고는 특이하게 달려있는 육성 시스템 탓에 ‘올 스탯 1로 엔딩보기’ ‘가장 약한 캐릭터 끝까지 키우기’ 같은 괴상한 플레이가 유행했었고, 마리의 눈물은 특유의 ‘측근 조합 시스템’ 덕분에 배신자 측근만 가지고 엔딩보기라던가 영지 육성 안하고 정치질만 해서 엔딩보기 같은 컨셉플레이가 넘쳐났었다.
그것은 이후에 발매된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이츠 어셈블은 애당초 멀티 플레이 공간에서 친구들끼리 자유롭게 ORPG를 즐길 수 있도록 개발된 게임이었기에 당연히 자유도가 높은 게임에 속한다 할 수 있었지만, 심지어 싱글플레이에서도 수많은 등장 NPC중에 자신이 원하는 파티를 구성할 수 있게 하는 자유도를 가진 게임이었다.
유저들도 ‘운동부 애들만 모아서 클리어 하기’나 ‘나빼고 전원 여성인 하렘파티’ 같은 조합으로 자유롭게 파티 조합을 짜는 재미가 있는 게임이었으니까.
이후에 나온 배틀로얄은 온라인 AOS게임 특성 상 마스터와 서번트 조합이 자유로웠고 각 서번트의 스킬 조합에 따른 콤비 플레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게임이었다.
GOS역시 어떤 로봇을 중점적으로 키우느냐에 대한 선택의 권한은 유저에게 있었고, 그 자유도는 MYOM에서 정점을 찍었다 할 수 있었다.
포수회귀?
그건 애당초 그 회차 플레이에 얻을 수 있는 스킬에 따라 플레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게임이다.
운이 좋아 S급 스킬로 떡칠할 수 있다면, 리그를 휩쓰는 괴물 포수가 되어 온갖 메이저 기록을 박살내는 레전드가 될 수 있는 게임이지만, 운이 나빠 낮은 스킬만 얻게 된다면 완벽하게 상대의 투구를 읽었어도 구위에서 밀려서 안타도 못치는 포수가 될 수도 있었다.
애당초 아예 원하는 루트의 마법이 창조 가능한 MYOM의 시스템은 말 그대로 온갖 변태 같은 서클 트리육성이 가능하게 해 주었고, 유저들은 그에 맞춰 자신만의 캐릭터를 육성해가며 마법에 대한 재미를 즐길 수 있었고.
일본의 작은 게임 회사에 다니는 나카타니 쇼헤이는 그런 이유로 PTW의 게임을 즐기는 하드코어 유저 중의 한명이었다.
매번 할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게임이, 바로 PTW의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TAW가 주는 재미라는 것은, 매우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게임이 이래도 되나?’라는 느낌으로.
TAW는 게임에 익숙한 쇼헤이가 당황할 정도로, 대형 게임사의 게임 치고는 매우 특이한 플레이 플로우(Play flow)를 가지고 있었다.
‘뭐, 그건 PTW게임 대부분이 그러니까 넘어가자.’
사실 현재 존재하는 대형 게임사 중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던 장르에 대규모 투자를 서슴지 않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쇼헤이가 PTW의 게임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기발한 게임을 만드는 동인팀은 많지만, 기발한 게임에 퀄리티까지 갖추어 발매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개발사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뭐, 세상에 의사가 주인공인 이세계 게임을 만들려고 이정도 수준의 오픈월드를 구현하는 미친 회사가 어디 있겠어? 덕분에 나야 즐겁지만.”
쇼헤이는 초반 스토리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야리코미를 위한 견적을 짜기 시작했다.
‘흠, 우선 노트가 빠르게 표시되게 만드는 의학지식 레벨을 1렙으로 유지하고 필요한 노트를 전부 외우는 게 포인트겠네.’
일반적으로 필수 스킬의 레벨을 낮추고 플레이 하는 것은 파고들기 플레이의 기본이었지만, 묘하게도 TAW는 그런 플레이를 기본으로 전제하고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노트에 의존하지 마라.
안에 주어지는 책을 보고, 수술 과정을 익히고, 시뮬레이션 모드를 통해서 연습해라.
네가 외운 지식을 활용해서, 너의 손으로 직접 환자를 구해라.
게임은 시스템적으로 그런 식의 플레이를 자연스레 유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쇼헤이는 주저 없이 ‘의학 지식’의 스킬 레벨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어차피 진정한 파고들기는, 2회차 플레이부터 시작이니까.
‘최대한 빠르게 엔딩을 보자.’
그렇게 빠르게 최단 루트로 진행한 쇼헤이는, TAW가 생각보다 하드코어한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키워드를 입수해 이세계를 발전시키는 것도,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살리지도 않고 흘러가는 대로 플레이해도 엔딩은 볼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주어지는 피드백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염병의 치료약을 찾지 못해 주민들이 대량으로 죽는다던가, 가을에 쇼헤이에게 안겨 재롱을 부리던 귀여운 아이가 겨울 사이에 굶어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다던가.
TAW가 보여주는 세계는, 소름끼칠 정도로 중세 암흑기의 시대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휴, 어떻게든 엔딩은 봤네.”
마침내 맞이한 엔딩 크레딧의 화면에서는, 플레이 최종 단계에 생존한 주민들의 엔딩 이후 전개를 흑백의 스케치와 함께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민들의 대부분은, 그리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게 이 게임의 ‘배드 엔딩’인가?”
마치 어째서 이 세계를 구하지 못했느냐고 비난하는 듯한 엔딩을 보며, 쇼헤이가 미소 지었다.
파고들기 플레이를 좋아하는 그에게 있어서, 이런 식으로 플레이가 반영되는 멀티 엔딩은 그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쇼헤이는 즉시 2회차 플레이에 들어갔다.
이번엔 제대로, 자신이 1회차에서 기억하고 있는,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구하는 전개를 타면서.
“이번엔 의학 지식 레벨1로 간다.”
사실 수술 과정 자체만 익숙해진다면, TAW의 노트 체계는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고정된 패턴이 반복 되서 출현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혈관을 봉합하기 위해서는, 가느다란 바늘을 집기 위해 포셉이란 도구를 사용한다.
그리고 포셉을 건네받은 이후에는, 실이 달려있는 바늘을 요청할 필요가 있고, 봉합이 끝나면 가위를 건네받아 남은 실을 자르면 된다.
포셉-니들-시저의 3패턴으로 이루어진 고정 패턴은 매 과정에 필요한 봉합사 번호만 알고 있으면 매우 익숙해지기 쉬운 패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겨운 느낌이 들지 않는 건, 그 단순한 도구에도 엄청나게 많은 조합이 필요할 만큼 수술 도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메스, 클램프, 하모닉, 클립, 큐렛, 석션, 엘리베이터, 다일레이터, 포셉, 헤모스텟, 말렛, 니들 홀더, 리트랙터, 론저, 후크, 스캐플, 시저, 스페츌럼, 스테이플러···.
버튼을 누를 때마다 들리는 주인공의 음성은 마치 쇼헤이로 하여금 의사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학지식에 따라 등장하는 노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기억하는 수술 과정에 따라 직접 요청하는 느낌이, 리듬게임처럼 플레이하던 1회차 와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플레이해야 진짜 의사 같은 기분이라서, 포인트를 높게 할당해 패널티를 준거구나.’
의사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대에서 의학지식을 배울 때 느끼는 어려움과 고통을, 놀랍게도 비슷한 느낌이면서 유저가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 레벨로 절묘하게 조정한 듯한 시스템에 쇼헤이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쇼헤이를 이 게임에 푹 빠지게 만든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살려낸 NPC들이 보여주는 ‘리액션’이었다.
일반적인 RPG게임이었다면, 어려운 임무에 대한 성과로 강력한 아이템이 지급될 것이었겠지만 이 게임엔 그런 게 없었다.
전설의 성검도, 번쩍이는 갑옷도 없고, 오로지 NPC들과 소통하며 이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게임의 전부.
물론 아픈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소정의 치료비가 나오긴 했지만, 그나마도 다음 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대장간에 수술도구를 주문하고 나면 항상 돈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즐거워.’
매년 벌어지는 마을 축제에서,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과 즐겁게 춤을 추고,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것은 쇼헤이로 하여금 특이한 감성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매번 같은 말만 반복하는, 무지성인 NPC사이를 돌아다니며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는 기존의 RPG가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비록 파밍과 전투의 재미는 없었지만 다른 형태의 육성의 재미가 TAW에는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스케일.
1회차때는 몰랐지만, 사람을 구하며 명성이 올라가자 주인공의 행동 반경이 크게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주의 초대를 받아 영주성에 가서 환자를 보기도 하고, 기사단의 훈련에 참가하여 다친 병사들을 돌보기도 하고, 역병이 창궐한 마을에 들어가기 두려워하는 다른 의사들을 놓고 혼자 들어가 환자를 돌보는 이벤트도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감정 가득한 연기로 잘 표현된 ‘이세계 주민’들의 감사 인사가 있었다.
조건 트리거는 알 수 없었지만, 거의 메인이벤트 급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드라마틱한 이벤트들도 쇼헤이에겐 재미요소 중 하나였다.
주인공의 실력에 질투를 느낀 다른 의사가 주인공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려, 왕실에서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병사들을 파견하는 이벤트에서, 쇼헤이는 자신이 살려준 기사단원들이 주인공을 위해 왕실 병사들과 싸우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왕이 무엇을 해주었느냐. 죽어가는 사람들을 놓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게 왕이라면, 그리고 남은 하나의 희망마저 가져가려는 게 그 잘난 왕이라는 존재라면, 나는 왕보다 희망을 선택하겠다.
그의 목숨이야말로, 앞으로 더 많은 목숨을 살릴, 이 시대의 희망이니까.]
“크흐으으읍!!!”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기사가, 몸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꽂은 채 적 병사에게 소리치는 장면을 보던 쇼헤이는 들고 있던 패드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넘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드라마틱한 대사 때문일까?
그건 아니었다.
저 정도 대사나 연출이 있는 게임은, 요즘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음악이 감동적이라서?
그것도 아니었다.
음악이 좋기는 하지만, 단순히 그런 것만으로 눈물을 흘릴 만큼 쇼헤이는 감정적인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메말라버린 그의 감정을 촉촉이 적실 정도로, TAW의 이벤트들은 쇼헤이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쇼헤이는, 자신이 어째서 이런 감성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내가 구한 사람이니까.’
RPG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아이템을 파밍하고, 좀 더 강한 적을 잡고, 좀 더 화려한 장비를 갖추어 최종 보스를 잡는 것이 그 본질일까?
상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회귀 전 가장 좋아했던 게임 중 하나인 ‘와쳐 3’를 할 때도, 얻기 어려운 아이템을 얻었을 때보다 상혁을 감동 시킨 것은 ‘그 엔딩’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했었던 선택을 플래시 백 시키고, 그 추억을 기억하며 엔딩 분기가 바뀌는 연출은 당시 상혁이 보았을 때도 매우 충격적인 연출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그 게임의 엔딩이 주는 감성을 좋아했다.
‘결국 유저의 선택에 의한 결과가 반영될 수 있기에, 게임은 무엇보다 위대한 엔터테인먼트 매체가 될 수 있는 거겠지.’
전반적으로 TAW의 게임 플레이는, ‘와쳐3’의 엔딩이 주는 감동을 게임 전체에서 전달할 수 있도록 구현되어있다고 볼 수 있었다.
영화보다 화려하지 않아도, 소설보다 유려하지 않아도, 주인공의 행동을 플레이어가 정할 수 있다는 ‘인터렉티브’적 측면에서, 게임이 가진 압도적인 감정 전달 능력을 100%활용하는 게임.
그것이 TAW의 본질이었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내내, 유저에게 끊임없이 선택과 행동을 요구하는 게임.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동적인 이벤트와 NPC들의 반응으로 계속 체감하게 하는 게임.
그로인해, 결국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로 하여금, 변화한 세계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만들었구나.’라는 감성에 빠지게 만드는 게임.
그 감성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유저에게 ‘노력’을 요구할 필요가 있었다.
마치 ‘소울 시리즈’가, 그 악명 높은 난이도를 뚫어낸 유저들에게만, 진정한 재미를 허락하는 것처럼.
결국, 이 게임은 2회차 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노트 패턴과 수술 내용에 익숙해진 유저만이 ‘내가 잘해서 환자가 살았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벽을 뚫을 수만 있다면, 상혁은 그게 누구 던 이 게임을 갓겜이라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인터렉티브의 정점.
그곳에 근접하게 도달해 있는 게임이 바로 TAW였기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플레이 내내 한 가지만 느낄 수 있게 하면 됩니다. 그걸 위해서 이벤트가 짜여야하고, 그걸 위해서 디자인이 잡혀야하고, 그걸 위해서 음악이 들어가야 하는 거고요.”
개발팀을 모아놓고 상혁이 말했을 때, 한 직원이 손을 들어 물었다.
“그게 뭔가요?”
상혁은 대답대신 마커를 들었다.
그리고 화이트보드에 하나의 문장을 적었다.
모든 직원들이 볼 수 있도록, 영어로 된 문장을.
-I AM HERE(내가 여기 있다)-
“정해진 세계와 스토리 위를 단순히 걸어가는 주인공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인해서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100% 살릴 수 있도록 개발했으면 합니다. 내가 여기 있기에 저 눈앞의 아이가 웃을 수 있는 거고, 내가 여기 있기에 주민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는 거고, 내가 여기 있기에 아이가 아플 때 주민들이 가장 먼저 내 얼굴을 떠올리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TAW를 개발한 개발 1팀은 그런 상혁의 요구를 150%완수했고, 그 게임이 지금 쇼헤이의 손에서 플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쇼헤이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상혁의 개발 의도대로 정확하게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 세계에 있었다’라는 그 감정을.
그것은 그로 하여금 기존의 게임에서 느끼지 못한 거대한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우린, 어쩌면 TAW라는 게임에 대해 전혀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쇼헤이의 리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게임이라고.
‘이건 파고들기 플레이를 하는 게임이 아냐. 파고들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게임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쇼헤이는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리뷰에 적었다.
자신이 보았던 수많은 이벤트들과, 자신이 결정한 수많은 선택들, 그리고 그로 인해 TAW의 세계가 어떻게 변했으며,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를 적었다.
[처음 무명 시절에 진료를 받은 환자가, 날 보고 돌팔이, 사기꾼이라고 했던 이벤트가 생각난다.
그때 그 NPC의 표정은 불신과 경멸에 차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딸이 아팠을 때 내가 그의 집에 도착하자, 그 NPC가 보인 표정은 ‘살았다’라고 하는 표정이었다.
이 게임은 그런 게임이다.
길을 갈 때 마다, 내가 돌봐준 환자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선물을 주는 게임.
무뚝뚝한 아저씨가 넌지시 찾아와 ‘오다 주웠다’라고 말하며 붉어진 얼굴로 귀한 약초를 가져다주는 게임.
이 세계에 내가 존재하고, 나로 인해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게임.
‘의학 지식’에 들어가는 포인트가 높다고 투덜거리는 유저들에게,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냥 닥치고 외우라고.
애당초 그리 외우기 어렵지 않은 패턴하나가 익히기 싫어서 징징대지 말고, 게임 안에서 상냥하게 가르쳐주는 매뉴얼을 보고 내가 고쳐야 하는 병을 보고 어떻게 수술해야하는지 익히라고.
마치 의사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렇다고 내가 의사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의사가 된 기분은 미칠 듯이 체감할 수 있는 게 이 게임이니까.
일반적인 오픈월드 RPG를 하는 시각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 이 게임은 최악의 게임일 수 있다.
사냥도 없고 몬스터도 없고, 보스도 없고 파밍도 없는 게임에서, 마왕은커녕 토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는 평화로운 게임.
그러나 그 안엔, 내 캐릭터가 입을 삐까뻔쩍한 갑옷이나 무기보다 훨씬 깊이 있는 육성요소와 파고들만한 시스템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밋밋하다고 TAW의 평점 낮게 주고 있는 병신들은 보도록.
적어도 2회 차는 플레이 해보고 평가해라.
그렇게 하고도 낮은 평점을 유지한다면, 난 그게 취향문제라고 깔끔하게 인정할 테니까.]
언제나 그렇듯, 쇼헤이의 이런 도발적인 게시글은 500개가 넘는 댓글을 받으며 뜨거운 키보드 배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쇼헤이의 리뷰는 게임에 실망하고 낮은 평점을 매긴 뒤 MYOM을 플레이하기 위해 떠난 유저들의 발을 다시 돌려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신비한 현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어라?”
발매 이후로 매일같이 유저 평점을 체크하던 카렌이, 당황하며 리뷰 글을 체크해볼 정도로.
“평점이···. 왜 오르지?”
초반에 GOS와 MYOM을 언급하며 TAW에 낮은 평점을 부여한 유저들이, 자신들의 리뷰를 수정하며 평가 점수를 올리고 있었다.
그것도 50점에서 100점 수준으로 바뀌는 극단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면서.
그리고 개중엔, 게임 리뷰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낮은 평점을 부여했던, 전문 리뷰어의 평점도 있었다.
[이전에 TAW의 리뷰에 부여했던 평점을 수정합니다. 그리고 인정하겠습니다. 이 게임의 진정한 가치를, 첫 리뷰 때 제가 미처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물론, 좋은 방향으로 평점이 오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반전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히려 낮았던 평점을 주었던 기사들의 평점이 훨씬 높게 부여되는 일도, TAW만을 놓고 보면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카렌이 기뻐하며 매일같이 리뷰 사이트만 붙잡고 있는 것도,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99점으로 시작된 TAW의 평점이 90점대까지 추락하다 다시 95점을 넘기고 있는 지금의 사태는, 한사람의 마음을 매우 심란하게 하고 있었다.
“민준아.”
“어?”
“나 어쩌지?”
“어쩌긴 어째. X된 거지.”
그 한사람은, 지수가 리드 기획을 맡은 MYOM과, 카렌이 리드 기획을 맡은 TAW의 성공적 런칭을 앞에 두고, PTW의 CCO이자 ‘요다’로써, 자신의 직책을 걸고 3번째 작품을 성공적으로 발매할 의무가 생겨버린 마지막 게임의 리드 기획자.
이상혁이었다.
“내가,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그리고 그 이상혁은, 지금 개발 마무리 단계인 ‘워함마 FPS’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CCO존심이 있는데, 앞서 발매된 두 게임에 밀리는 게임을 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제자격인 두 사람이 발매한 게임이 갓겜 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상혁은 스승의 위엄을 보여줄 필요를 격하게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