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왕관의 무게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2011년 8월14일! Game week tonight show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주도 게임 업계 전반에 있는 여러 가지 이슈들을 다룰 텐데요, 오늘은 이쪽 업계에서 요즘 가장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신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바로 PTW 전문 리뷰어! 허먼 넬슨 씨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속에서 허먼이 고개를 숙여 카메라를 보고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허먼 넬슨입니다.]
[이야, 안 그래도 여기 저기 고정으로 출연하시는 분이라 섭외하기 어려웠지만, 이번 주는 특히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쇼가 끝나면 바로 다른데 가셔야한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PTW의 게임에 빠지며 시작했던 팬 활동이, 이제는 직업이 되어버렸네요.]
[게다가 이번 주엔 ‘그 발표’도 있었고요.]
[예. 수많은 PTW팬들이, 아니 전 세계 게이머들이 기다리던 PTW의 신작발매일자가 발표되었죠.]
[언제라고요?]
[바로 10월 15일입니다!]
[WOW! 대단한 소식입니다! MYOM의 판매량도 아직 고공행진 중인 가운데, 신작을 바로 발표하는 PTW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아시다시피, 지금 MYOM의 판매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MS에서 열심히 생산중이긴 하지만 코넥트의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지금은 두 배 이상의 웃돈을 줘야 코넥트를 겨우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죠. 이런 상황에서, PTW의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유저들을 위한 PTW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배려라, 그러고 보니 이번엔 MS와 SANY. 양대 진영 콘솔로 동시발매 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그것도 배려의 일환일까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양사에서 엄청난 조건을 걸면서 독점을 걸려고 했겠지만, PTW에서 거절했겠죠. GOS로 급격히 증가한 팬들이 SANY진영의 PS를 가지고 있고, MYOM으로 증가한 팬들이 X-BOX를 구매했으니 양쪽 팬들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하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떠도는 루머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이번 신작이, 기대 이하일 것이다라는 소문 말이죠?]
[예. 오늘 쇼의 주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과연 PTW의 다음 신작이 유저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의 확실한 견해를 시청자 분들께 전달 드리기 위해, 저희가 또 한명의 전문가를 초대했습니다! 게임 전문 기자! 폴 뱅크만 씨를 환영해 주십시오!]
다시 한 번 터지는 박수소리와 함께, 턱에 수염이 수북이 난 체크남방을 입은 남자가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허먼은,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요즘 자주 만나네.’
‘PTW전도사’를 자칭하는 자신과 다르게, PTW게임을 비난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얻은 게임 전문 기자.
방송사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의 견해를 펼치는 것 자체가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대결 구도를 이루기에 허먼과 자주 매치를 시키고 있었다.
[허먼 씨. 다시 뵙네요.]
PTW팬들에게는 공적이나 다름없는 뱅크먼의 인사를 받은 허먼은, 그를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려 진행자를 보며 말했다.
[뱅크먼 씨가 나올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방금 나온다고 한 전문가는 언제 나오는 거죠?]
그러자 객석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고, 뱅크먼은 그 소리를 들으며 태연하게 허먼에게 말했다.
[허먼 씨, 제가 그 전문가입니다.]
[아, 그런가요? 제 국어사전이 너무 낡았나보네요. 언제부터 전문가란 단어의 정의가 바뀌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어요.]
[글쎄요. 단순 팬에서 시작한 리뷰어 보다는, 오랜 세월 게임판에서 기자로 활동한 제가 더 전문가란 단어의 정의에 맞지 않을까요?]
[오, 시작부터 팽팽한 건 좋지만 오늘 주제는 두 분의 경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PTW의 신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분, 일단 혀끝에 달린 칼은 내려놓으시고 자리에 앉아주시죠.]
-좋아. 시청율 잘 오르고 있어.-
귀에 끼워둔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프로듀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호스트가 두 사람을 앉히자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먼저 공격의 포문을 연 쪽은, PTW의 게임이 나올 때마다 매번 부정적인 리뷰를 쏟아내던 뱅크먼이었다.
[팬심은 접어두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또 저 소리.’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뱅크먼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버릇이었다.
물론 PTW팬들은 전혀 그의 의견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아무리 대단한 게임 회사라도 그렇게 동시에 개발하던 게임이 모두 ‘갓겜’일 확률은 제로에 수렴합니다. 갓 겜을 만드는 건, 통찰력과 기발함을 겸비한 소수의 천재들의 노력이니까요.
그리고 게임 개발은 거대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죠. 심지어 그 PTW에서도, 지난번 콘벤션 이전까지는 한 번에 하나의 게임만 개발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 회사에서 게임 개발을 이끌 역량이 있는 ‘개발 리더’의 숫자에 한계가 있는 뜻이겠죠.
그리고 물론 그 개발 리더는, CCO 이상혁 씨일 테고요.]
그러자 허먼이, 즉각 반격에 나섰다.
[MYOM이전에도, PTW는 ‘포수 회귀’와 ‘GOS’를 동시에 개발한 전적이 있다는 건 왜 빼먹으시는 건가요?]
[애당초 ‘포수회귀’는 텍스트 게임입니다. 그만큼 손 봐야 하는 부분이 적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번엔 어떻습니까? NE컨벤션에서 공개한 3개의 신작이, 전부 AAA급 스케일을 가진 게임들입니다.
그 정도 스케일의 게임을, 하나의 회사에서 동시에 개발하면서, 전부 퀄리티 높게 개발한다고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절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죠.]
[왜 일반적인 게임회사를 보는 기준으로 PTW를 평가하시면서 그게 ‘객관적이다’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어디, 세상 어느 게임 회사가 유저들에게 ‘이런 것도 가능하다’라는거 하나 보여주려고 수천억을 들여서 렌더링 센터를 돌립니까?
세상 어느 게임회사가 지금 당장 돈 받고 팔아도 손색없을 업무 솔루션을 무료로 배포하면서 ‘읽은 만큼만’ 돈을 받나요?
세상 어느 게임회사가 테마파크 수준의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손해 보면서 유저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하죠?
PTW는 다릅니다.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완전히 다른 회사에요.]
[오히려 그 점이 PTW의 약점이 되는 겁니다.]
[무슨 뜻인가요?]
[차기작에 써야할 자금과 여력을, 그런 이상한데 쓰니까 문제가 된다는 거죠. 만약 NE컨벤션이나 이번 월드이벤트에 사용한 자금을 차기작에 돌렸다면, 더 엄청난 게임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애당초 NE컨벤션의 메인도 MYOM이었지 나머지 부스들의 규모는 그것보다 크지 않았어요.
그건 나머지 게임들이 버리는 카드라는 이야기죠.
적당히 퀄리티 맞춰서 적당히 재미있는 게임을 내 줘도, 유저들은 만족할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PTW의 게임은 항상 ‘인지를 넘어’유저에게 충격을 주는 게임들이었어요. 이번의 게임도 그러할 거라 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에 대한 근거는 있으신지? 적어도 NE콘벤션에서 공개된 내용만 보면, 그냥 세계관이 자세하게 설정되어있는 평범한 게임에 불과합니다.
아, 물론 의사와 수술이라는 소재의 느낌을 잘 살린 게임이라는 데는 저도 이견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GOS때나 MYOM같은 임펙트를 주기에는 게임 자체가 가진 포텐셜이 너무 평범한 게임이었어요.
항상 놀라움을 줄 수 있는 게임회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람의 상상력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요. 이번에야말로 PTW가 그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최악의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그러자 호스트가 뱅크먼에게 물었다.
[더 최악의 경우라면?]
[다른 대형 게임회사들의 패턴을 따라가는 거죠.
게임 하나 히트하고, 하나 말아먹은 다음, 욕을 바가지로 처먹고 ‘원점으로 회귀 했다’ ‘초심을 따라가겠다.’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차기작 파는 거요.]
그러자 허먼이 반박했다.
[그건 개발자 대우를 제대로 안 해주는 회사에서 초기 개발자가 떠나고, 어디서 등신같은 개발자 하나가 들어와서 책임자랍시고 프로젝트 말아먹은 다음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패턴이죠.
PTW는 퇴사율이 거의 제로에 수렴할 정도로 낮은 회사입니다. 개발자 대우도 최상급이고, 무엇보다 그 회사엔 ‘분위기’가 있어요.]
[분위기?]
[일부 천재 개발자 한명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개발 환경이 아니라, 선임부터 신입까지 한 방향을 바라보며 최고의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PTW만의 사내 분위기 말입니다.]
[좋아요. 허먼 씨 말대로 그런 분위기가 존재 한다 칩시다. 그리고 이상혁 외에도 여러 천재들이 PTW에 존재한다고 가정하자고요.
이미 7세대 콘솔이 가진 그래픽 포텐셜의 끝은 GOS에서, 그리고 코넥트가 가진 성능의 한계는 MYOM에서 선보인 PTW가, 앞으로 유저들에게 뭘 보여줄 수 있다는 거죠?
이미 다 공개된 수술 시뮬레이터에 오픈월드 RPG라는 장르까지 다 공개된 마당에, 거기서 뭘 더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뱅크먼의 말에 허먼은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그의 말대로, 7세대 콘솔에서 PTW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죄다 쓴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기에.
허먼이 생각하기에도 PTW의 차기작은 ‘수작’은 될 수 있겠지만 ‘걸작’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니, 언제나 그렇듯 걸작의 재미를 가지고 있겠지만 임펙트는 전작에 비해 떨어지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허먼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PTW팬들의 예상도, 그런 허먼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예상 속에서,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를 개발 중인 PTW의 개발 1팀은, 개발 중인 게임의 최종 테스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상혁의 도움으로 선임 개발팀이 ‘개발 방향’에 눈뜨고 난 이후로, 이전과 완전히 분위기가 변해버린 개발 팀 안에서.
***
“카렌 씨. 지난번 요청하신 QA 결과 공유 드렸습니다.”
“아, 그런가요? 지금 바로 확인할게요.”
카렌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워크패스트를 열어 자신에게 도착한 QA리포트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카렌을 찾아온 PTW의 QA팀장 차유라는 그런 그녀의 옆에서 조용히 그녀의 검토를 기다렸다.
주로 버그 검수를 메인 업무로 하고 있는 여타 한국 게임사들의 QA부서와 다르게, PTW의 QA 부서는 주로 개발자의 개발의도가 게임 안에서 얼마나 잘 구현 되었는가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역할을 메인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버그테스트 관련 업무도 하고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PTW의 모든 코더들이 민준이 만든 가이드를 따라 공통된 스타일로 코드를 작업하고 있었고, 기획파트에서도 대부분의 기획자들이 사수에게 특정 시스템을 개발할 때 발생하는 예외사항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철저히 교육받는 체계덕분에, PTW의 게임은 비슷한 규모의 타사 게임에 비해 버그가 매우 적은 편이었다.
애당초 버그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전부 고려해서 개발을 진행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사람이 하는 작업인 이상 버그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었고, ‘잘 발생할만한 버그는 개발 과정에서 잡아낸다.’라는 말은 반대로 그 과정을 거친 버그가 죄다 ‘찾기 어려운 버그’만 남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했기에, PTW의 QA직원들은 버그를 잡는데 있어서는 다들 엄청난 실력자만 모여 있는 집단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버그는 중요한 게 아니지.’
자신이 받은 보고서에서, 버그 리포트 부분을 빠르게 훑어 넘긴 카렌은 개발의도 평가 부분에 대한 QA테스터들의 리포트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QA 팀장을 향해 말했다.
“평가가 좋네요.”
“그 ‘여행’이후로, 다들 올라오는 테스트 버전의 질 자체가 달라졌다고 이야기 할 정도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그 전의 게임과 지금의 게임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고 판단됩니다.”
평가가 짜기로 유명한 PTW의 QA팀장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본 카렌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좋은 의미에서 다르다고 하시는 거죠?”
“물론이죠. 리포트에 쓰여 있잖아요?”
카렌이 고개를 돌려 모니터에 띄워둔 리포트를 보았다.
거기엔 여러 직원들이 테스트를 하며 적어둔 현재 버전에 대한 평가가 적혀 있었다.
<생활감.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압도적인 생활감이 체감 됨. NPC의 집이라도 각 NPC의 성향에 맞춰 집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보임.
마치 실제 사람이 살아있는 집에 방문한 느낌이 압도적.
집에 들어가자마자 이집의 NPC는 설거지를 싫어하는 성격이구나, 혹은 집안 청소를 안 하는구나, 또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구나 하는 점을 NPC와의 대화 없이 집안 내의 오브젝트만으로 파악이 가능하게 구현한 점은 고평가가 필요함.>
<역사 관련 유물의 디자인에서, 단순히 거대한 돌 유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과거의 선조들이 어떤 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어떤 제물을 어떤 신에게 무슨 마음으로 바쳤는지를 게임 안에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음.
이전 버전이 ‘잘 만들어진 세계’의 느낌이라면 이번 버전은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는 하나의 ‘이세계’라고 평가해도 무리가 아닐 듯.>
<유저의 행동으로 인한 NPC반응 피드백이 매우 현실적임.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면 ‘내가 이렇게 세계를 바꾸어 놓았구나.’하는 체감을 느낄 수 있음.
개인적으로 수십 회차를 플레이하더라도 질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함.>
<저에겐 GOS나 MYOM보다 이 게임이 더 ‘게임다운’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
단 한 줄의 혹평도 없는 리포트를 보며 미소 짓는 카렌에게, 유라가 질문을 던졌다.
“만족 하세요?”
“만족하죠.”
“MYOM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카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마 저희가 이 게임을 출시하더라도 MYOM 수준의 임펙트는 주지 못하겠죠. 실망이라는 반응도 있을 거고, 평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치고는 담담하시네요. 예전엔 엄청 의식하고 계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
“뭘요?”
“저희는 MYOM을 이기려고 게임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요.”
카렌이 말했다.
“저희는 그냥 저희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100%만족할 수 있으면 족해요.”
“좋은 마인드네요.”
작게 미소 지은 유라가 물었다
.
“그래서, 리드 개발자로써 지금 게임은 그렇게 잘 개발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커뮤니티를 가득 채우며 온갖 추측을 날려대는 팬들에게, ‘이것이 PTW의 게임이다!’하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 거 같아요?”
카렌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의 최종 버전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유라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엄지를 세우며 힘차게 외쳤다.
“100%! 확실하게!”
카렌은 생각했다.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압박감 같은건 느끼지 않을 거라고.
자신이 팀원들과 완성한 게임은, 적어도 그런 압박감 따위는 날려버릴 정도의 자신작이었기 때문에.
최종 빌드 버전을 상혁에게 내놓으며 외친 카렌의 말은, 그런 그녀의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 여기! 100명이 플레이하면 98명이 재미있다고 할 게임입니다!”
“2명은 뭔데?”
“1명은 장님이고 1명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상혁이 미소로 질문했다.
“엄청난 자신감이네. 카렌 씨한테는 첫 게임인데, 정말 자신 있어요?”
“물론이죠!”
카렌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 치며 외쳤다.
“이건 ‘갓겜’이니까!”
그리고 마침내, 10월 15일이 되었다.
그녀가 그렇게 ‘100% 확실하게 재미있다.’라고 호언장담한 게임의 출시일이.
그리고 그 정식 출시 일에, 자신만만하게 최종 결과물을 내밀었던 카렌은, 부실에서 휴지통을 붙잡고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우웨에에에엑!”
“괜찮아요?”
옆에서 그녀의 등을 두드리고 있는 지수의 옆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혁이 물었다.
“아니, 자신 있다더니?”
“그치만! 저 줄을 보시라고요!”
무려 이틀 전부터 게임을 구매하기 위해 게임샵 앞에 진을 친 유저들의 모습은 그녀에게 엄청난 압박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저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사실도.
막상 자신만만하게 내 놓은 게임이었지만, PTW의 신작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그런 그녀의 자신감을 짓눌러버릴 정도로 ‘거대한’크기로 자라나 있었다.
“으···. 상혁 씨가 엠바고(embargo:특정 시기까지 해당 기사 공개를 제한하는 것)만 안 걸었어도···.”
일반적으로 게임이 나오기 전에, 대부분의 게임 회사에서는 기자들에게 해당 게임에 대한 기사 작성을 위한 게임을 발매일보다 먼저 제공한다.
리뷰어들이 게이머들보다 먼저 게임을 플레이하고, 해당 게임에 대한 기사를 발매 일에 맞춰 제공할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기자들은 ‘정확히 게임에 대해 밝힐 순 없지만 내가 해보니 대충 이런 느낌이다.’ 하고 스리슬쩍 정보를 흘리곤 했다.
그러나 상혁은 이번 신작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사전에 유출되지 않도록 강하게 제한을 걸어두었고, 그 덕에 현재 리뷰를 위한 사전 플레이 버전을 받은 어떤 기자도 게임에 대한 정보를 올려두지 않은 상태였다.
‘특종 제조기’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이슈를 몰고 다니는 PTW와 척을 져 봐야, 좋은 꼴을 보지 못할게 뻔 했기에.
그래서 카렌은 신작에 대한 기자들의 리뷰를 전혀 보지 못한 상태였고, 자신이 느낀 부담감에 대한 원망을 애꿎은 상혁의 엠바고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게 부당한 비난이란 건 알아도, 딱히 풀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뭐, 어차피 해보면 알게될 거.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라고.”
“으···. 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글쎄?”
그때, 부실에 놓인 컴퓨터에서 일제히 알람이 울렸다.
엠바고가 풀리자마자 올라올 기사를 보기 위해서, 워크패스트와 연동해 놓은 RSS피드(홈페이지에 새 글이 올라오면 알람이 울리게 만드는 기능)이 동작하는 소리였다.
“올라왔다! 카렌 씨! 첫 리뷰 기사가 올라왔어요!”
지수의 호들갑스런 외침에 카렌이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지수의 옆으로 달려가 모니터에 부딪힐 기세로 거칠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내용을 읽자마자 허리를 펴고 주먹을 쥐어 두 눈을 비볐다.
“잠깐만.”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는 카렌.
“에···. 어? 이거···. 진짜?”
“진짜겠죠?”
“정말로? 기자가 실수한 게 아니고?”
“전화로 확인해드려요?”
카렌을 당황하게 만든 기사.
거기엔 커다란 숫자로 기자가 게임에 매긴 평점이 적혀 있었다.
[평가점수 : 99점]
그것은 이전에 PTW에서 발매했던 모든 게임의 평점보다, 아니, 기존에 발매된 거의 대부분의 게임의 점수를 압도하는 평가 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