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콘솔 전쟁
PTW는 콘솔 게이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게임 개발사이면서, 안타깝게도 동시에 가장 욕을 먹는 개발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PTW를 그렇게 격렬히 비난하는 주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PTW의 팬들이었다.
[제발 콘솔 하나만 찍어서 발매해주세요. GOS 때문에 PS3산 저희는 뭐가 됩니까? 저희도 MYOM하고 싶다고요!]
[SANY는 무슨 병신 짓을 했기에 PTW를 놓친 것인가.]
[GOS 때문에 PS3를 샀는데, MYOM을 하고 싶으면 X-BOX를 사라고? 지금 장난 하냐?]
물론 옹호글도 있었지만 그 유저들의 대부분은 MYOM을 플레이하고 있는 X-BOX유저들이었다.
[후후후 X신들···. 너희가 지금 느끼는 기분이 GOS가 PS3선독점 발매되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때 놀리던 걸 피눈물 흘리며 반성하도록.]
[PS진영 유저들은 솔직히 PTW 깔 자격 없다. 우리가 GOS때 PTW 비난하자 너희가 했던 말을 떠올려봐라.]
[GOS때는 ‘그럼 너도 PS3사던가?’라고 하던 유저들은 다 어디 갔냐?]
[코넥트가 한 대 팔릴 때마다 MS가 감수해야하는 적자폭을 고려하면 MYOM의 X-BOX독점 발매는 당연한 것.
그리고 그 손해를 메우기 위해선 나머지 2개의 신작도 X-BOX독점이어야 한다.]
MYOM과 코넥트의 역대급 흥행 뒤에는 그렇게 차마 게임 콘솔 2대를 동시에 살 수는 없었던 유저들의 피눈물과 소리 없는 아우성이 함께 깔려 있었다.
[저기 우리 넌텐도 유저들도 좀.]
[너희는 콘솔 성능부터 올리고 와라.]
그 뒤에 조그맣게 깔려있는, 넌텐도 콘솔유저들의 목소리와 함께.
***
“오랜만이네요.”
일본 도쿄에 있는 사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저팬 아시아(SIEJA) 본사에서, 상혁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을 반기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인사를 GOS의 발매 이후 직급이 올라간 나츠 유미코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줌으로써 두 회사 간의 미팅이 시작되었다.
“보낸 메일을 보니 직급이 또 오르셨더군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상혁 씨는 여전하시네요.”
“칭찬입니까?”
“칭찬이죠. 당연히.”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웃는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지만 나츠의 속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본적으로 게임 개발에 있어서는 한없이 온화한 스탠스를 취하는 눈앞의 젊은 청년이, 비즈니스 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자신이 철저히 을(乙)의 입장에 서야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하나.’
부하 직원이 건네다 준 커피를 홀짝이던 나츠는 각오를 다지며 입을 열었다.
“상혁 씨. 그리고 현주 씨.”
“예.”
“혹시 저희 SANY가 귀사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나요?”
“그게 무슨 말이죠?”
“이번 NE컨벤션에서 공개하신 게임들의 출시 플랫폼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아···. 그거요···.”
“저희 측에서는 나름 GOS발매 때 최선의 지원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차기작을 MS진영에서 발표하신 이유가 있나 해서요.”
“그것 때문에 곤란하신 겁니까?”
상혁이 묻자 나츠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예. 위에서는 제가 서드파티 관리를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아니냐 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건 곤란하시겠네요.”
“뭐, 저야 PTW가 서운하다거나 더 좋은 조건 때문에 옮겨 다니는 회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분명 이번에도 뭔가 이유가 있으셨겠지만 그래도 이유라도 알고 털리면 좋겠다 싶네요.”
“흠···.”
“말하기 곤란하신 이유인가요?”
조심스런 표정으로 묻는 나츠를 보며 상혁은 곤란함을 느꼈다.
자신이 회귀자이며, 회귀 전 타임라인에서 ‘코넥트’의 원형인 동작 인식 장치가 MS측의 것이었기 때문에 MS와 협업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말해도 믿지도 않을 거고.’
결국 상혁은 적당히 떠오르는 다른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코넥트 자체가 개발 단계에서부터 MS와 협력하여 양산을 준비하던 제품이었기 때문에 발매는 X-BOX쪽으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MYOM도 게임 개발 시점부터 완벽하게 코넥트에 맞춰져 만든 게임이라 타 플랫폼으로 출시가 불가능했던 거고요.”
“그럼 아직 완전히 저희 SANY측과 결별하려고 하시는 건 아니라는 거네요?”
“PTW는 딱히 특정 콘솔을 집어서 밀어주려는 의도가 없으니까요. 저희가 만들려는 게임에 적합한 플랫폼을, 그때그때 게임에 맞춰서 선택하는 것뿐이죠.”
“휴.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 혹시 저희가 모르는 곳에서 MS와 사전 조율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말한 나츠는 준비한 노트북을 펴고 PT를 세팅했다.
PTW의 차기작을, PS3진영에서 발매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
“준비 많이 하셨군요?”
“준비하느라 일주일 넘게 걸렸으니까요. 물론 쇼케이스의 제왕이라 불리는 상혁 씨가 보시면 좀 부족하실지 모르지만, 나름 열심히 했으니 잘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시작된 나츠의 프레젠테이션은, GOS의 발매 이후 PS3 콘솔 판매량의 성장세와 보급률.
그리고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포진한 PS3진영의 시장 트랜드에 대한 설명이 설득력 있는 흐름으로 담겨 있었다.
그 발표를 보고 있던 상혁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엄청나게 노력해서 준비한 티가 나는 발표였다.
“이 자료들을 토대로, 저희 SANY측에서는 PTW의 신작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에게 맞는 최적의 콘솔 플랫폼이 바로 PS3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츠의 설명이 끝나자, 상혁이 미소 지으며 작게 박수를 쳤다.
그러자 조금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 앉은 나츠가 상혁을 향해 물었다.
“괜찮았나요?”
“예. 설득력 있네요.”
“그럼 다음 출시작은 저희 독점으로 어떻게···.”
-우우우우웅-
상혁이 대답하려는 순간,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조용한 방에 울려 퍼졌다. 상혁은 발신인을 확인하지 않고 바로 휴대폰의 전원을 끄며 나츠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잠시 꺼둘걸 그랬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회사에서 온 중요한 전화일지도 모르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전화 한통 안 받아서 위기에 빠질 회사라면, 그건 문제가 있는 회사겠죠.”
“그···그건 그렇네요. 그럼 방금 전 의제로 돌아가서, 다음 출시작은 부디 저희 SANY와···.”
-우우우우웅-
그러자 이번엔, 상혁과 함께 미팅에 참여한 현주의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상혁과 다르게 발신인을 확인한 현주는, 안색을 굳히며 상혁에게 다가와 조용히 귓속말을 날렸다.
“나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중요한 거예요?”
“그건 받아봐야 알 것 같지만, 느낌상.”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주는 전화를 받으며 회의실을 나섰고, 회의실엔 이제 나츠와 상혁, 둘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완전 독점 발매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제발 선독점만이라도.’
간절하게 마음속으로 빌면서, 나츠가 상혁에게 미소 지었다.
“바쁘시네요.”
“PTW도 꽤 성장했으니까요. 개발에만 집중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죠. 회의에 방해를 끼친 점 사과드립니다.”
“아뇨, 일부러 여기까지 오셔서 만나주신 것만으로도 저희는 엄청나게 감사하고 있으니까요. 원래라면 저희가 한국에 갔어야하는데.”
사실 나츠는 자신이 한국에 방문하여 미팅을 진행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었다.
그러나 상혁은 겸사겸사 볼일도 처리할 겸 자신이 방문하겠다고 이야기했고 오늘 미팅도 그래서 일본의 SANY본사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차피 일본에 볼일이 있어서 온 거기도 하니까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볼일이라면?”
“겜돌이가 일본에 볼일이 뭐가 있겠어요. 온 김에 덕질 좀 하다 가려는 거지.”
“아···. 아하하···. 좋네요. 즐겁게 지내다 가시기를 바랄게요. 그럼 아까 이야기를 이어서···.”
“상혁아?”
다시 안건을 진행시키려는 나츠를 막은 것은, 방금 전화를 받겠다고 나간 현주의 복귀였다.
그리고 다시 회의실로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켜져 있는 전화기가 잡혀 있었다.
“잠깐 시간 좀 내줄래?”
“흠···. 중요한 게 아니라면···. 지금 비즈니스 미팅중인데···.”
“그게···. 다른 전화면 나도 나중에 받으려고 했는데···.”
그때 수화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현주가 급하게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혹시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예. 예? 스피커폰으로요? 예? 일단 물어는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현주는 스마트폰의 마이크 부분을 가리며 나츠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쪽에서 SANY담당자도 참여한 상태로 통화를 했으면 하는데···.”
“저쪽이요?”
“MS입니다.”
현주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나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주에게 말했다.
“뭐, 아마도 MS측에서 지금 상황이 저희가 MS에서 PTW를 빼 오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나보네요. 그럼 좋습니다. 차라리 3자가 참여한 상태에서 통화를 하시죠.”
“괜찮겠어요?”
“MS담당자라면 전에도 이야기 해 본적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일단 오프더 레코드로 진행하면서 MS측 의견도 들어보는 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상혁 씨, 괜찮을까요?”
“저는 괜찮습니다. 선생님? 스피커폰으로 돌려주세요.”
“어?! 진짜? 근데 문제가···.”
“뭐가 있겠어요?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MS담당자인 크리스씨와 아는 사이인데. 좀 편한 분위기에서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상혁의 말을 들은 현주는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의 스피커폰 버튼을 눌러 통화 모드를 바꾸었다.
-Hello! Everyone!-
“윌?!”
스피커폰에서 울려 퍼지는 친숙한 목소리.
그것은 MS의 담당자인 크리스의 목소리가 아니라, CEO 윌 게이트의 목소리였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 MS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코넥트의 출시가를 낮춘 건, 함께 개발 중인 신작의 출시 플랫폼에 대한 고려도 함께 진행된 것이란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게이트 씨. 제가 알기로 그 부분에 대한 대가는 NE컨벤션에서 발표자 역할을 넘겨받은 대가로 치렀다고 알고 있는데요?”
-젠장, 그것도 들으셨습니까? 생각보다 상혁 씨랑 친한가보군요. 예. 맞습니다. 사실 이후 출시작에 대한 계약은 상혁 씨의 거부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X-BOX로 출시한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보장 받았죠.-
“그럼 독점만 아니라면 저희가 내거는 조건에 따라서 PTW에서 선독점 발매를 저희 PS3로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상혁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수화기에 대고 소리치는 나츠를 보고 있었다.
옆에서 난처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현주를 놓고서.
“상혁아, 어쩔 거야?”
현주는 회사 내의 경영 문제라던가 인력 관리, 외부 협력 등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CEO였지만, 출시 콘솔에 관련된 문제 같은 ‘게임’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판단보다 상혁의 판단을 더 신뢰하고 있었다.
“잠깐 지켜보고요.”
“어?”
“나츠 씨를 위해서예요. 저 정도 거물이랑 협상할 기회는, SANY안에서도 흔하지 않을 테니까.”
상혁은 이전에 자신이 윌 게이트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아마 그 전에 삼정에서 이주용 씨를 만나지 않았으면, 많이 쫄았었겠지.’
그날 이후로 ‘노는 물이 다르다’라는 말처럼, 사람이 만나는 인물이 그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상혁은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빌을 만났을 때의 자신은, 이주용을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서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으니까.
상혁은 이번 기회에 나츠에게 그런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윌은, 그런 상혁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능숙하게 예리한 질문을 던져가며 나츠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고.
그러나 상혁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 자체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PTW의 게임의 발매 플랫폼에 대한 원칙은, 아주 오래 전부터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다.’
그리고 잠시 후, 나츠가 당황하지 않고 윌과 통화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안정을 되찾자, 상혁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흠, 일단 두 분? 서로 기세 좋게 조건을 토론하시는 건 좋은데 당사자인 저희 의견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죠. 제가 잠시 너무 흥분했네요.”
-저도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가 되어서 잠시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방금 들으신 것처럼 MS쪽에서 차기작의 선독점 발매를 해 주신다면, 저희는 해당 작품에 대한 플랫폼 라이센스비를 완전히 포기할 의사가 있습니다.-
“저희는 거기 얹어서 광고비도 지불할 의사가 있습니다. 6개월 선독점을 조건으로요.”
사실 다른 회사 같으면 진즉에 선금을 약속하고 계약을 걸었겠지만, PTW는 그런 부분에서는 절대 외부 자금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협력은 하되 투자는 받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까지 PTW가 엄격하게 지켜온 모토였고, 게임업계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유명한 고집이었다.
“양측 다 콘솔 게임 업계의 주도권을 잡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간과하고 계시는 게 있어요.”
“그게 뭔가요?”
-그게 뭐죠?-
“게이머입니다.”
상혁이 말했다.
“플랫폼 입장에서야 매력적인 게임을 독점 발매해서 상대 플랫폼의 우위에 서는 것을 선호하겠죠. 괜히 지금의 서드파티 확보 경쟁을 ‘콘솔 전쟁’이라고 부르는 게 아닌 것처럼. 전 그것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사업적으로 기업이 이윤 추구를 위해서 정당한 범위 안에서 욕심을 부리는 행위는 악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유저들은 그런 독점벽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되죠.”
“설마 지금 유저들을 위해서 이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선독점을 포기하시겠다는···.”
“예.”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표정은, 확고한 고집을 담고 있었다.
“나츠 씨가 자신이 있는 회사의 플랫폼인 PS3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그리고 게이트 씨가 X-BOX를 통해서 게이머를 아우르는 원대한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저희는 모두 목표를 가지고 이 업계를 해쳐나가고 있죠. 그리고 여러분의 목적이 콘솔 전쟁의 승리라고 한다면, 저희 PTW의 목적은 ‘유저를 즐겁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기작은 양사 콘솔로 동시 발매를 할 겁니다. 라이센스비 할인도, 마케팅 지원도 필요 없어요. 저희는 게임을 팔아서 돈을 벌 겁니다.”
그러자 상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츠가 조금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상혁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전까지 GOS는 PS3 선행 발매를 했었고 MYOM은 아예 X-BOX독점으로 발매하지 않으셨나요? 저희는 다음 작품도 우선하는 콘솔을 정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MYOM의 경우는 전용 기기가 필요한 특성 상 X-BOX독점으로 발매가 불가피했습니다. 하드웨어 발매도 동시에 이루어져야하니까. 코넥트는 산업용 기기로서의 포텐셜도 가지고 있는 장비로 설계 되었기에, 이쪽 분야에 좀 더 노하우를 가진 MS를 선택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GOS는, 단순히 로봇물 팬이 일본에 더 많기 때문에 일본에서 강세인 PS3로 선행 발매를 결정한 거고요.”
그리고, 상혁은 잘라 말했다.
“이번엔 상황이 다릅니다. 양사 콘솔 모두 충분한 양의 유저를 확보하고 있고, 저희 팬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이죠. 그 팬들을 위해서, 저희는 차기작을 양대 콘솔에 동시 발매로 추진할 예정입니다. 어느 한쪽이 우선이다 이런 건 없어요. SANY와 MS는 지금까지처럼 서로 최선을 다해서 콘솔계의 패자 자리를 놓고 싸우시면 됩니다. 단.”
상혁이 미소 지었다.
“그 전쟁에 PTW는 끼우지 마시고요. 저희는 저희가 만드는 게임에 적절한 플랫폼이라면, 그게 PS던 X-BOX던 넌텐도던 스마트폰이던 상관없이 최적의 플랫폼에 맞춰서 게임을 개발할 테니까.”
상혁의 말에 나츠는 입을 다물었다.
결국 상혁이 하는 말은, 너희들의 싸움에 PTW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이야기였기에.
그것은 심플하면서도 공정한 이야기였다.
-풉···. 으하하하하!!-
수화기 건너편에서 윌 게이트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속이 시원해진 듯한 목소리로 떠드는 윌의 말이 울려 퍼졌다.
-명쾌한 결론이네요. 결국 너희가 우리 게임에 맞는 콘솔을 만들어라 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차기작은 둘 다 비슷한 수준이니 동시 발매를 하겠다는 말이고요?-
“이해가 빠르시네요.”
-좋습니다. 저희 MS에서는 당분간 PTW관련해서 독점 관련 제안을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라이센스비도 타사의 절반으로 할인해드리죠.-
“독점이 아니라도요?”
-선물입니다.-
“뭔가 보답을 바라고 주시는 게 아니라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그러자 나츠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저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MS와 같은 조건으로요.”
“좋아요. 그럼 이걸로 정리 된 거네요?”
-기분 좋은 회의였습니다. 상혁 씨는 조만간 한번 다시 뵙죠.-
“언제든지요.”
그렇게 통화를 마친 윌이 회의에서 빠지자, 나츠는 약간 지친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걸터앉았다.
MS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 라이센스비 할인을 조건으로 걸긴 했지만 결국 선독점 발매 권한을 따내는데 실패한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싶어서.
그런 나츠를 바라보던 상혁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나츠 씨.”
“예?”
“게이트 씨에겐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는 배려라서 주지 않았지만, 나츠 씨에겐 선물을 하나 드리죠.”
“선물이요? 독점 발매가 아니라면···. 혹시 완전 신작?!”
“아뇨. 그건 아니고요. 지금 회의 결과 보고 때문에 고민이신 거잖아요?”
“그렇죠.”
“위에는 이렇게 보고하세요. 원래 MS선독점으로 결정되어있던걸, 라이센스비 할인을 조건으로 동시발매 조건으로 변경했다고요.”
“예?! 그건 거짓말이···.”
“뭐 어때요? 저희 측에 물어보면, 저희가 그렇게 말해드리면 되는 건데.”
그러자 나츠의 얼굴이 확 밝아지며, 그녀가 벌떡 일어나 상혁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고마우면 콘솔 개발팀한테 말 하나만 전달해주세요.”
“예! 뭐라고 하면 될까요?”
“패드에 들어가는 아날로그 스틱 부품 좀 좋은 거 쓰라고.”
“예?!”
그녀는 당황했지만 상혁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사용하던 패드가 박살나서 매우 화가 난 상태였기 때문에.
“아니, 진심으로. SANY에서 내구도 개선 안하면 PTW에서 패드 개발에 들어갈 테니까. 앞으로 듀얼쇼크 1개도 더 못 파는 꼬라지 보고 싶지 않으면, 부품 좋은 거 쓰라고 경고해달라고요.”
“풉.”
그런 상혁의 말을 들으며, 나츠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고등학생 개발자 상혁은, 세계적인 게임 개발자가 되었어도 전혀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도 지금도, 오직 유저들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 차 있는 ‘미친 개발자’.
그것이 그녀가 보고 있는 상혁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PTW’ 차기작이 양대 콘솔의 동시발매로 결정되던 그 시각.
한국에 있는 그 ‘차기작’을 개발 중인 개발팀에서는 핵심 인력들이 모여 모니터를 앞에 두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 봐도, MYOM이 준 임펙트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그 멤버의 한 가운데는,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의 메인 기획을 담당중인 어린 천재 기획자.
미야모토 카렌이 있었다.
“안 되겠어요. 여러분.”
그때, 릴레이 회의 끝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그녀의 입에서 결국 항복 선언이 터져 나왔다.
“CCO 이상혁님에게 헬프를 칩시다.”
그것은 한국에 오자마자 상혁이 처리해야할, 또 하나의 ‘중대 사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