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76화 (177/485)

176. 절망 앞에서

‘탑주님들은 이번 이벤트의 페이즈마다 유저들이 느껴야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지하고 유도를 부탁드립니다.’

온갖 마법이 난무하는 전장 위에서, 탑주들은 지수가 이야기한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연기에 임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즐거움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온갖 마법을 총 동원해서, 렌더링 센터의 성능을 100%활용한 전투가 어떤 것인지 유저들에게 보여주세요. 그 모습을 본 유저들이, 언젠가 자신들이 도달할 ‘MYOM’의 끝에 대해 상상하고 동경할 수 있게요.’

탑주들은 그렇게 했다.

유저들의 입이 떡 벌어져, 주문을 시전하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의 화려한 주문을 시전하는 것으로.

이 게임에서 언젠가 유저들이 도달하게 될 ‘마법의 끝’이 어디 있는지, 최선을 다해 전달해 주었다.

‘다음은 역할의 즐거움입니다. 저희가 어째서 여기 400명의 유저들을 참여시킨 것인지, 유저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탑주들은 그것도 충실히 수행하였다.

유저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유저들이 상황에 맞는 적절한 주문을 시전할 수 있도록 소리를 질러, 유저들을 지휘했다.

덕분에 유저들은 자신들의 마법으로 인해 마왕을 몰아붙이고, ‘메인 퀘스트’의 클리어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제프가 심장방에 들어가고, 메인 퀘스트가 시작된 지 무려 30분이 지나는 동안, 유저들은 화려한 불꽃놀이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전투에 참여하여 최선을 다해 주문을 시전 했다.

마치 자신이 진짜 마법사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그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했지만, 무지막지하게 체력을 소모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허억!허억!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거야!?!”

참가중인 마법사들 중 나이가 있는 유저들부터 숨소리가 가빠지기 시작하더니, 기세등등한 초반과 다르게 주문에 대응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월드 이벤트의 공대장을 맡고 있는 실비아에겐 예상하지 못한 사태라 할 수 있었다.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MYOM을 붙잡고 살다시피 하는 유저들만 모여 있다고 생각했기에, 실비아는 30분 만에 일부 유저들의 체력이 방전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사실 그것은 의도된 것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유저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주문을 알고 있는 지수가, 일부러 유저들이 카운터 할 수 있을 정도의 주문들만 골라서 시전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슬슬 힘에 부치는가보지?]

분명 전투의 시작 때만 해도 마왕조차 씹어 먹을 기세를 내뿜던 유저들이 조금씩 지친 기색을 내비치자, 지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내려 보며 미소 짓는 지수를 보면서, 실비아는 이 싸움이 결코 쉽지 않게 흘러갈 것이라는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

‘밖’에서 400명이 넘는 유저와 마왕이 즐겁게 전투를 즐기고 있는 사이, 이번 이벤트에서 ‘전투’대신 다른 역할을 맡은 제프는 상아탑의 가장 깊은 곳에서 열심히 최종 마도를 해석하고 있었다.

평범한 상아탑의 여느 공방처럼 보이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공간속에서.

온갖 기이한 색의 촉매, 벽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서적들, 마법 도구들과 연금 테이블.

그리고 제프는 방안에 배치된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 퍼즐.

MYOM의 개발진들이, 수많은 함정이 있는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 하여 최종장소에 도달한 ‘주인공’유저를 위해 준비한 ‘벽’.

그것을 보며, 제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참 일관성 있는 이벤트란 말이지.’

지금까지 월드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제프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전투를 경험하지 못했다.

퍼즐, 수수께끼, 그리고 또 다른 퍼즐.

다른 유저들이 새로 해금된 몬스터를 잡고 서클을 올리며 새 주문을 익힐 때, MYOM은 자신에게 정 반대의 행동을 요구했다.

더 많은 비밀.

그리고 더 많은 수수께끼.

마치 전혀 다른 장르를 플레이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메인 퀘스트는 제프에게 이 멋진 세계의 비밀을 잔뜩 선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제프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하여 수천 권의 ‘이야기 책’을 읽고, 상아탑 곳곳을 돌아다니며 ‘비밀 장소’를 찾아다니는 경험 자체가, 제프에게 마법 같은 시간을 선사해 주었으니까.

‘설마 이건 아니겠지’하던 것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몇 번이고 지나쳤던 사소한 문장이 핵심 퍼즐의 열쇠라는 사실을 몇 번이고 깨우치는 경험은 마치 자신이 진짜 마법사의 탑의 수습 마법사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물론 몇 번이고 좌절할 만큼 난이도가 높은 퍼즐도 있었고, 힌트를 잘못 해석하여 몇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황당한 수수께끼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제프는 묵묵히 해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화를 내며 핸드 트래커를 집어던지면서도, 결국엔 다시 집어 들고 TV화면 앞에 섰다.

“주인공이 포기할 순 없으니까.”

퀘스트를 하는 내내, 마치 오래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멋진 모험을 즐기면서, 이제는 현실보다 MYOM의 세계가 자신의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된 ‘주인공’.

제프는 자신이야 말로 이 ‘최종마도’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유저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좋아.”

시전자세를 취한 제프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가볼까?”

그러나 제프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런 ‘찐’에게도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지수가 준비한 ‘최종 마도’는 말도 안 되는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이것도 아니라고?”

주문 시전에 5번째로 실패하며 투덜거리던 제프는 다시 자세를 잡으며 방 중앙에 섰다.

그리고 팔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포기하지 말자. 지금도 나를 기다리면서 지금 밖에서 싸우고 있는 마법사들을 생각해.”

다가오는 중압감을 털어버리며,  제프는 최선을 다해 ‘최종 마도’의 해석에 다시 도전했다.

서클과 아이템, 게임이 제공하는 시스템에 의존할 수 있는 ‘전투’와는 다르게, 자신들이 풀어야 하는 ‘퍼즐’은 온전히 도전하는 자의 능력만으로 풀어야하는 것이었기에.

***

“근데 말이야.”

대형 스크린으로 전투 상황을 보고 있는 상혁과 다르게, 무릎위에 올려놓은 노트북으로 ‘심장방’의 모습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민준이 상혁에게 물었다.

“지수가 만든 최종마도 말인데.”

“어.”

“그거 탑주 8명이 달려들어도 못 풀지 않았나?”

“맞아.”

“2년 동안 이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도 못 푸는 문제를 유저한테 내도 괜찮았던 거야?”

민준의 질문에 상혁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민준을 보며 말했다.

“어.”

“무슨 믿음이냐?”

“지수가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으니까.”

상혁은 다시 스크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수백 명의 ‘진지한’마법사유저들을 상대로 주문을 날리며, ‘주인공’이 최종마도를 사용하기를 기다리는 지수의 모습이 있었다.

“내가 최종 마도의 난이도가 너무 어렵다고 이야기 했을 때 지수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적어도 ‘주인공’이라면, 그가 없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을 해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2천만 명의 MYOM유저 중에 누군가는 분명 이 퍼즐을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근데 그 퍼즐을 풀 수 있는 유저와, 그 퍼즐에 도달하는 유저가 같은 유저라는 보장은 없잖아?”

“없지.”

“그럼 못 풀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렇지. 근데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아마도 상아탑에 가 있는 그 ‘주인공’유저는, 아마 이 세상에서 지수를 제외하고 지수가 창조한 최종 마도를 시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일 테니까.”

상혁이 미소 지었다.

“애당초 ‘주인공’이 아니면 심장방에 접근도 할 수 없게 설계된 게, 지수가 만든 월드 이벤트거든.”

지수의 의도대로, 월드이벤트의 시작 전부터 이어진 거대한 연계 퀘스트는 MYOM의 수많은 유저들 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인 유저들을 선정하는 일종의 ‘필터’역할을 하도록 설계 되어 있었다.

전장에는 가장 전투에 열정적이며 임기응변에 강한 유저들만이 참여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심장방에는 가장 세계관에 깊이 몰입하며 진지하게 마법에 대해 연구하는 유저들만이 도달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MYOM의 유저들이 이 세계 안에서 보고 싶어 했던 재미를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렌더링 센터를 동원해도 모든 유저가 참여할 수 없었던 건 아쉽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가 유저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니까.’

심지어 기획안을 상혁에게 가져갔을 때에도, 지수는 이 터무니없는 기획이 통과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들고 갔을 뿐.

반복도 되지 않을 단 한 번의 이벤트를 위해서 그 많은 컨텐츠를 제작해야한다는 건, 아무리 PTW라는 회사의 가치관을 고려하더라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상혁은 이렇게 답해주었다.

“좋네. 해보자.”

“어?! 진짜로요?”

“좋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기획한 거 아냐?”

“그건 그렇지만···.”

“그럼 그대로 가자고.”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지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게임 개발자로써, 지수 네가 유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재미가 이거라면, 게임 회사는 그걸 만들어 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는 게 맞는 거니까.”

“괜찮을까요?”

“뭐가 걱정인데?”

“제 욕심을 위해서, 제가 팀원들을 희생시키는 게 아닐까 무서워요. 제가 생각한 이상적인 이벤트 하나를 구현하기 위해서, 거기 들어가야 할 수많은 작업량이 부담스럽고···. 이게 진짜로 성공할지도 의문이고···.”

지수의 말대로, 아무리 연계 퀘스트를 통해 ‘자격 있는’유저들을 끌어 모은다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이벤트는 변수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서, 리스크가 엄청나게 큰 상황.

조금이라도 의도와 틀어진 상황이 발생하면 이벤트 전체가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기획 앞에서, 지수는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러자 상혁은 고개 숙인 지수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서워?”

지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개발자로써 리스크를 고민하는 건 좋은 사고방식이니까. 난 무대뽀로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

그러자 지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상혁을 보며 말했다.

“오빠는 무대뽀의 화신이잖아요.”

“그렇게 보여?”

“항상 아무도 개발하지 않는 게임만 골라서 도전하니까요. 그것도 회사의 기둥뿌리를 건 도박성 게임을 만들면서.”

“아냐, 내가 그렇게 보여도 난 항상 확신이 있었거든.”

“어? 그래요?”

“좋아. 그럼 병아리 마스터인 서지수에게, 내가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 개발자가 엄청나게 리스크가 큰 도전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비밀을?”

“오! 알고 싶어요!”

“좋아. 그럼 눈을 감고, 지수 네가 하려는 도전에 대해 떠올린 다음, 스스로에게 물어봐.”

“뭘 물어보면 될까요?”

“이것이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기획인지를. 개발자인 너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유저의 기억에 평생 남을 즐거움을 주고 싶어서 그런 건지. 그리고 그게 후자라면, 거기 들어가는 대가가 무엇이든 고민할 필요 없어. 애당초 PTW라는 회사는, 개발자의 그런 진심을 유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회사니까.”

지수는 고민했다.

그리고 답을 내린 듯, 고개를 들어 맑은 눈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결론은 내렸어?”

“네.”

“어느 쪽이야?”

상혁의 질문에 지수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힘차게 외쳤다.

“유저를 위해서요!”

***

정작 상혁에게 그렇게 말한 지수는, 말 그대로 ‘무자비하게’ 유저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50분도 안되어 탑주 4명과 유저 절반을 리타이어 시킬 정도로.

그리고 지수는, 그런 피해를 입은 유저들 위에 고고히 떠다니며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표정으로 유저들을 비웃고 있었다.

[어떤가? 내가 너희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들을 놀리듯이 이야기하는 마왕을 보며, 실비아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젠장, 이게 말이 되냐고!!”

그런 그녀의 곁에는, 푹 파인 크레이터들 사이로 사방에 흩어진 유저들의 시체가 있었다.

방금 전까지 비등비등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탑주들의 시체와 함께.

“몇 명 남았어?!”

“절반···정도···.”

옆에서 들려오는 부 공대장의 목소리를 들은 실비아의 이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마왕’이란 존재의 강력함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드레이븐은···.’

더 버티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 실비아는 드레이븐에게 원거리 통신을 걸었고, 곧 지금 그녀가 가장 듣고 싶어 하던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실비아?-

-드레이븐! 지금 거기 상황은 어때요?-

-8단계 중에 마지막 빼고 다 성공했어.-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30분? 1시간? 몰라. 퍼즐이란 게 풀면 푸는 거고 못 풀면 끝도 없이 오래 걸리는 거니까.-

-Shit. 그 정도는 못 버틸 거 같은데?-

-거기 상황은 어떤데?-

-청탑, 자탑, 풍탑, 녹탑주가 사망했어요. 나머지 탑주들도 상태가 좋지는 않고요.-

-젠장. 이쪽은 힘낸다고 속도를 올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하나라도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단 말이야!-

-그럼 실수를 하지 말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실비아는 통신을 종료했다.

그리고는 작게 중얼거리며, 마왕을 노려보았다.

“어떻게든 당신이 올 때까지는 버텨낼 테니까.”

그리고 마치 그 혼잣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수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졌다.

[버틴다? 버틴다라. 좋지. 어디 얼마나 버티나 다시 한 번 시험해보자.

너희에게 과연, 상아탑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지를!]

다시 손을 뻗는 마왕을 보면서, 실비아는 이를 악 물 수밖에 없었다.

애꿎게도 현재 그녀를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가, 전투의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 체력문제였기 때문에.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실비아는 그제야 초반에 마왕이 시간을 끌면서 계속 주문을 날렸던 이유를 깨달았다.

대놓고 유저들을 순식간에 전멸 시킬 수 있는 주문을 알고 있으면서도, 유저들이 막을 수 있는 주문만 날려댄 이유에 대해서도.

그것은 이 전장이 유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주문에 대한 실력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문을 시전할 수 있는 ‘의지’를 요구하는 전장이기 때문이었다.

‘핸드 트래커가 무겁게 느껴져.’

애당초 적절한 자세와 타이밍을 요구하는 MYOM의 시스템 자체가, 주문을 연속으로 사용하는데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수는, 그 특성을 사용해서 전장의 싸움을 능력이 아닌 의지의 장으로 만들었고.

그 덕에 현재 리타이어한 유저들의 대부분은, 주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팔이 안 올라가서 주문을 막지 못해 전멸한 인원들이었다.

그러나 이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실비아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승리를 위해서 유저들에게 마왕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명백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먼저 포기하는 쪽이 진다 이거지?.’

‘주인공’이 오기 전에 유저들이 지쳐 떨어져 나가던, 마왕의 체력이 떨어져 공격을 포기하게 되던.

먼저 포기하는 쪽이 지는 싸움이었다.

400명이나 모아놓고 펼쳐진 화려한 대규모 전투의 결론치고는 너무나 허탈할 정도로 담백한 요구였기에 실비아는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 옆에 서있을 체력이 있는 대부분의 유저들도, 실비아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 서 있는 이곳은, 애당초 공략법 따위가 존재하는 전장이 아니었으니까.

‘주인공’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강철 같은 체력과 의지로 버텨내기를 요구하는 전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게이머의 자존심을 걸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승부라고 할 수 있었다.

‘컨트롤도, 지식도 아니고, 무식하게 근성 승부라니.’

핸드 트래커를 끼고 있는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유저들은 필사적으로 주문을 시전해 마왕이 쏘아낸 주문을 막아내었다.

-콰아아앙!!!-

다시 몇십명의 유저가 컨트롤의 통제를 잃고 쓰러지는 것이 보였지만, 남은 유저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왕을 향해 소리 질렀다.

마치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소용없다! 드레이븐이 올 때까지! 우린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서클이면 몰라도 근성 승부라면 절대 밀릴 수 없다아악!!!”

“마법사들의 의지를 무시하지 마라!!!”

수세에 몰리자 오히려 악에 받혀 소리 지르는 유저들의 모습은, 이 모든 상황을 의도한 지수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지수 역시, 이미 한참 전부터 체력의 한계를 넘어 주문을 쏘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좋다. 너희들의 멋진 의지. 마왕의 이름으로 기억하도록 하지.

하지만 이걸로 끝이다.

결국 너흰 실패했고, 내가 승리하게 될 테니까!

이제 그 의지와 함께 역사가 되어 사라져라!]

그렇게 말하는 마왕의 뒤에, 지금까지 본 기운 가운데 가장 거대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마치 이제 끝을 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유저들은 생각했다.

저 주문은, 아마도 8명의 탑주들과 400명의 유저가 만전의 상태였어도 막을 수 없는 기술일 거라고.

[암전세계(暗箭世界)!!]

마왕의 몸에서 폭사되어 나온 검은 빛에 닿은 모든 것이 스러지기 시작했다.

바닥도, 공간도, 세계도.

그것은 마치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듯 탐욕스럽게 공간을 삼키며 유저들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끝인가?’

이제 단 10명 남짓 남은 동료들을 지키기 위하여, 실비아는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끌어올려 방어주문을 시전했다.

너무 힘을 주어 부들부들 거려 코넥트가 인식할지도 의문인 동작을 취하면서.

“제발···.”

이걸로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 발악 정도는 하고 싶었을 뿐.

최소한 나중에 드레이븐을 만났을 때, ‘나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라고 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그녀의 기대를 무참하게 배신하듯이, 그녀의 핸드 트래커는 시전 실패를 알리는 환한 빛을 내더니 그대로 빛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화면에 비치는 그녀의 캐릭터의 팔을 감싸던 마나의 불빛도, 핸드 트래커의 LED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결국, 마지막 저항을 포기한 실비아는 눈을 감고 조용히 ‘그’를 떠올렸다.

처음엔 게임하는 이상한 아저씨로 생각했던 사람을.

자신보다 서클이 낮음에도 항상 자신을 찾아와 도전하고는 공략에도 없는 이상한 주문을 시도하다 수없이 패배하던 사람을.

MYOM을 단지 ‘게임’으로 생각하던 자신에게, 이 세계에 더 많은 재미가 있다고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몇 시간이고 게임 세계의 이야기를 하던 사람을.

그리고 기어이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여, 2천만 명의 유저들을 제치고 최종 마도를 해제하기 위한 ‘주인공’으로의 역할을 자처한 사람을.

“드레이븐.”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마왕이 쏘아낸 거대한 암흑이 그녀를 덮쳐나갔다.

이 이벤트에 참여한, 모든 유저들의 흔적을 공간채로 지우려는 것처럼.

마치 검은 장막을 쳐 놓은 것처럼, 모든 유저의 화면이 검게 물들자, 유저들은 이번 이벤트가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투에 참여했던 유저들도, 그리고 관람하던 유저들도.

그리고 그런 유저들을 조롱하기라도 하는 듯한, 마왕의 목소리가 검은 화면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하하하! 결국 너희들의 알량한 도전도 이걸로 끝이구나! 오지 않을 희망을 기다리면서!]

모습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목소리만 들려오는 ‘마왕’의 목소리는, 체력이 방전 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한 플레이어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그런 마왕의 말에 대답하는 듯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 까지는.

“야. 마왕,”

실비아가 그토록 전장에서 기다리던 그 목소리가, 검은 화면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치 암흑을 걷어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화면 중앙에서 무지갯빛 광휘가 환하게 어둠을 지워내기 시작했다.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 중앙에서, 마치 영웅처럼 서 있는 한명의 마법사를 비추면서.

그리고 그 마법사는, 마치 영웅처럼 서서 마왕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구 맘대로 끝이래?”

전 세계 유저들의 눈에, 그것은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전설의 영웅 같은 모습처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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