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74화 (175/485)

174. 마왕강림

2010년 5월 16일. GDC 이후로 두 달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PTW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적인 이벤트 날짜가 발표되자, 게임 커뮤니티는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

공식적인 키넥트의 현재 판매 수량은 2132만대 수준이었지만, 실제 유저 수는 훨씬 많았으니까.

마치 1998년 ‘우주 크래프트’의 발매 후에 한국에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과 같이, 웬만한 번화가에는 ‘코넥트 룸’이라는 특이한 시설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거의 구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으로 어려워진 게임용 코넥트 대신, MS에서 산업용으로 발매한 더 고급 사양의 코넥트를 대량으로 발주하여 방마다 설치해놓고 시간당 이용비를 받는 방식이었는데,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심야까지 비는 방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폭주하는 신 오락 산업이었다.

당연히 이벤트 날짜가 발표되자마자 예약 전화가 폭주했고, 최근 뉴욕 한복판에 코넥트 룸을 오픈한 레슬리 닐슨은 쏟아지는 예약 요청에 행복한 미소를 금치 못했다.

이벤트 날짜가 정해지자마자, 그날 하루 룸 대여비를 3배로 올렸으니까.

그렇다고 슈퍼볼 경기처럼 딱 그 경기 시간 동안만 사람이 몰리는 것도 아니었다.

이벤트의 시작 시간은 공개되어있긴 했지만, 이벤트의 종료 시간까지는 공개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리만 있다면 24시간 비용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었다.

그리고 닐슨은, 마지막 방 하나의 예약자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고는 만족스런 미소를 띠며 알바 생에게 말했다.

“좋아. 이제 이벤트 예약은 끝이야. 그날 손님들이 많이 오겠지만, 잘 해보자고. 식재료도 전부 넉넉하게 주문해놨고, 음료 냉장고도 전부 채워놨으니까. 이벤트 중에는 날 귀찮게 하지 마.  건물에 불이 나도 날 방해하지 말라고.”

“마지막 방은 직접 쓰시게요? 그 방 설비가 제일 좋고 가격도 비싸잖아요.”

“이런, 에슐리. 이건 PTW의 월드 이벤트라고. 겨우 몇 백 달러 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단 말이야.”

오픈 때부터 알바생으로 일하고 있는 애슐리는 그런 사장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돈보다 중요하다니.

‘겨우 게임가지고···.’

그래도 시급은 센 편이고 보통 룸에 들어간 손님들은 게임 끝날 때까지 간간이 음료 주문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편이었기에, 에슐리는 이 알바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비록 매일같이 와서 돈과 시간을 날리면서 빛나는 장갑을 끼고 허공에 손을 휘두르는 게이머들의 마음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후. ···알겠어요. 그래도 그날 시급은 두 배로 주시는 거죠?”

“두 배? 무슨 소리야. 요금이 3배니까 시급도 3배로 주지.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날 방해하지 않고 알아서 모든 손님 접대를 한다는 조건 하에서.”

닐슨의 말에 에슐리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약속 잊지 마세요. 사장님.”

그러자 닐슨이 씨익 웃으며 에슐리에게 말했다.

“사장? 날 그렇게 부르지 마라.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난 6서클의 대마법사 가렌드 님이시다!”

그렇게 말하는 닐슨을 보며, 에슐리는 사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뭐, 이벤트라고 해 봐야 그냥 다들 들어가서 게임만 붙잡고 있을 테니, 내가 할 일은 크게 없겠지?”

MYOM을 플레이하기 위해 닐슨이 가장 좋은 방으로 들어가자, 혼자 남은 에슐리가 중얼거렸다.

아마도 이벤트 시작하기 몇 시간 전에 예약을 마친 손님들이 우르르 몰아닥칠 것이고, 그들을 룸에 안내하면 그날 자신의 업무는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며칠 후, 에슐리는 방에서 단체로 뛰쳐나와 ‘접속이 끊겼다’라고 항의하는 손님들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이 커다란 착각임을 깨닫게 되었다.

***

“미친! 이건 뭔데?!!”

“인터넷 오류?!”

“아아아악!! 조금 있으면 이벤트 시작인데!!!”

“오늘 이벤트 못 보면 요금은 전부 환불해줘야겠어! 아니, 손해배상을 청구할 테다! 난 집에 코넥트가 있는데도 여기 TV가 훨씬 커서 일부러 여기 온 거라고!”

잠깐이나마, 에슐리는 사장 방으로 뛰어 들어가 도움을 청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시급 3배가 걸려있었기에, 에슐리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침착하게 접속 종료의 원인이 인터넷 불량이 아니라는 부분을 설명했다.

“인터넷 문제는 아니에요. 여기 데스크에 있는 인터넷은 잘 연결 되어 있잖아요?”

“그럼 방에만 끊겼다는 거 아냐?”

“공유기랑 허브도 정상이고, 뭣보다 저길 보시라 구요.”

에슐리가 가리킨 곳에는, 룸이 비기를 대기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설치된 대형 TV가 있었다.

그리고 그 TV는, 사장인 닐슨이 보고 있는 게임 화면을 똑같이 볼 수 있도록 ‘스페셜 룸’의 TV와 다이렉트로 연결 되어 있는 TV였다.

“에러 메시지가 다르잖아요. 인터넷 접속 문제면 ‘X-BOX LIVE와 접속이 끊어졌습니다. 인터넷 연결을 확인해 주세요.’라고 떴어야죠. 저긴 지금 ‘상아탑과 연결된 마력 접속이 끊겼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라고 적혀 있잖아요!”

에슐리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에이, 이벤트 시작연출이었나?”

“사람 심장 떨어지게 만들고 있어!”

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그리고 잠시 후, 에슐리가 이야기 한대로 메시지만을 띄우며 검은 색으로 변했던 화면이, MYOM특유의 마나가 소용돌이치는 듯한 접속 연출로 바뀌면서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 모든 유저가 기대감 속에서 거의 동시에 그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유저들을 맞이한 PTW의 월드 이벤트는, 마치 버그와 같은 화면을 보여주며 시작되었다.

“버근가?”

계산대에서 TV화면을 보고 있던 애슐리가 무심코 말할 정도로, 화면 안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마나같은 느낌의 알록달록한 빛이 터널을 이루며 소용돌이 치고, 카메라가 그 안을 통과하면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공간을 휘저으며 사물로 변해야했다.

파란색은 책장으로, 노란색은 양피지 거치대로, 붉은 색은 연금술 실험대로.

그러나 지금 화면에 보이는 모습은, 분명 로딩이 끝났음에도 제대로 된 공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물체를 구성하려던 마나 자체가 허물어지려고 하는 듯한 느낌의 방을 보면서, 에슐리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만약 저게 개발사에서 의도하지 않은 버그라면, 자신은 오늘 하루종일 손님들의 항의에 시달려야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황한 손님들이 에슐리를 찾아가 따지기도 전에, 화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유저들을 붙잡았기 때문에.

[잠깐! 이건 오류가 아니에요!]

그 목소리는 MYOM을 하는 유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접수원’의 목소리였다.

상아탑에서 처음 마법사 등록을 할 때 돕는 접수원이자, 퀘스트 등록을 하거나 등급 심사를 볼 때도 항상 듣는 목소리였다.

그때 카메라가 회전하며, 실험실 왼쪽에 서 있는 접수원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화면에 나타난 그녀는 감탄사가 나오는 카툰렌더링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방안에 있는 가구들처럼 형태가 무너지려고 하는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한 겨울에 운동을 한 사람의 몸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무지개색의 빛이 접수원의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잘 들어요. 마법사님. 지금 상아탑에 중대한 이변이 발생했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한 접수원이 말하는 내용은, 지금까지 게임에서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던 MYOM의 로딩 연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접수원의 설명을 들으며, 게임 화면은 넌지시 자주 보았지만 스토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에슐리가 감탄한 듯 이야기했다.

“오, 그러니까 저 로딩 연출 자체가 일종의 마력으로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연출이었구나.”

접수원의 설명에 따르면, ‘상아탑’이라 불리는 공간자체가 마나로 이루어진 하나의 허구공간이며, 유저가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마나의 흐름으로 방 자체를 생성하여 유저에게 보여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접수원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지금까지 유저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이템처럼 보이는’ 일종의 마나의 덩어리이며, 현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무너지듯 보이는 것이 상아탑에 이상이 생겨서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대부분의 유저들은 그 원인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거의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게임 안에서 주구장창 NPC와 퀘스트를 통해 전달했던 내용이 바로 그 원흉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10서클 대 마법사 스타스트림.’

그녀가 11서클에 도달하기 위해 모으기 시작한 마력의 흐름이, 결국 세계를 구성하는 상아탑의 마력까지 빨아들이고 있다는 설명은 모든 유저들에게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설명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 납득 갈 수 밖에 없는 연출이었다.

단순이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접수원이 이야기를 하는 지금도 뒤쪽의 책장에 구멍이 뚫리며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차원 구멍이 마구 생겨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입니다. 저희 상아탑의 여덟 탑주들은 조금 전, 마탑주이자 10서클 마법사인 스타스트림을 ‘마왕’으로 선언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상아탑에 소속된 모든 마법사들의 공적이며, 제거해야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감히 마법의 어머니인 나에게 대항하겠다는 말이지? 가소롭기 그지없구나.]

순간, 굉음과 함께 벽 한부분이 날아가며 지수의 캐릭터인 스타 스트림이 등장했다.

위압감을 주는 음악과 함께, 온몸에서 검은 오오라를 풍겨내는 스타스트림의 얼굴엔 마치 무언가에 감염된 것 같은 검은 핏줄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나타났구나! 마왕!]

순간 접수원이 손을 휘두르며 한눈에 보기에도 고 서클로 보이는 강력한 주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타스트림은, 무심한 눈으로 그런 접수원을 바라보며 손을 뻗어 손가락을 튕겼다.

[꺄아아악!!]

그러자 점수원의 양 손이 있던 자리에서 폭음이 터져 나오며 접수원 캐릭터가 벽 쪽으로 날아가 강하게 쳐 박혔다.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주문을 해제시켜버린 ‘마왕’은, 이제 플레이어 쪽을 향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버러지 같은 애송이야. 어디 너도 덤벼 볼 테냐? 그 알량한 주문으로?]

같은 시나리오였지만 사람들이 보는 화면은 전부 달랐다.

상혁이 기본적으로 3가지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벤트를 짰기 때문에.

“난 이 이벤트가 고정연출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상혁은 그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MYOM은 로딩을 제외하면 동영상 연출이라 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대신 플레이어가 아무데서나 NPC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특정 지역에서는 주문을 시전해도 전부 흩어지게 해 놓았을 뿐.

그것은 다른 플레이어의 방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해당 유저가 ‘마나 변환기’를 동작시킨 상태라면, 타 플레이어는 그 유저의 방에서 주문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주문 사용이 자유인 플레이어의 개인 방에서 이루어지는 이벤트였기에, 로딩이 끝난 시점부터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주문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악의를 가지고 있다면 접수원 NPC가 등장하자마자 면상에 주문을 휘갈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런 미친 짓을 시도할 유저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상혁은, 플레이어가 접수원을 공격하는 경우, 그리고 ‘마왕’이 등장하자마자 공격하는 경우, 그리고 이벤트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경우의 3가지 시나리오를 산정하여 이벤트 시나리오를 설계했다.

접수원을 공격하면 접수원이 주문을 해제하며 플레이어에게 집중하라 외치는 이벤트가 나오도록.

그리고 마왕을 공격하려 하면 마왕이 눈빛만으로 주문을 해제 시킬 수 있도록.

그리고 이벤트를 끝까지 지켜보는 경우, 마왕이 플레이어에게 주문 시전을 권유하는 시나리오로.

그리고 닐슨은, 마지막 타입의 플레이어였다.

괜한 짓을 해서 PTW에서 의도한 이벤트가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뭘 하고 있지? 주문은 언제든지 쓸 수 있다. 내게 주문을 써 보라니까?]

닐슨은 그제 서야 공격주문을 시전 해 마왕에게 날렸다.

그러자 아까 접수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왕은 손짓 하나만으로 닐슨의 주문을 한 번에 분해시켜버렸다.

[말을 잘 듣는 버러지구나. 그럼 이제 죽을 때인가? 감히 마법을 빌려 쓰는 이방인 주제에, 마탑의 주인인 이 몸에게 거스른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닐슨은 PTW에서 했던 NE컨벤션엔 참가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홈페이지의 영상이나 참가자들의 말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 올려놓은 6서클과, 그때 공개된 10서클의 벽은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지수가 보여주는 마나의 흐름은, 닐슨이 보기에 확실히 그 벽을 체감할 수 잇는 강함을 품고 있었다.

[안돼!!!]

-콰아앙!-

[큭! 건방진 버러지가!]

순간 접수원이 날아간 방향에서 한줄기의 주문이 벼락처럼 마왕을 덮쳤다.

그리고 폭음과 함께 비춰진 그녀의 모습은, 보는 사람이 안타까워질 절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접수원은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마치 원수를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왕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역시, 분신이라 아직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가 보군요.

저따위 ‘버러지’에게 주문시전을 방해당하시고.]

[이···. 더러운 빚쟁이가아!!!]

분노하는 마왕의 목소리와 동시에, 플레이어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마치 귓속말처럼, 한없이 상냥한 음성으로.

[‘마법사님.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그녀를 막는 동안, 최대한 빨리 상아탑 밖으로 도망쳐주세요.’]

[공간채로 소멸시켜주마!]

화를 내는 마왕을 바라보던 접수원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플레이어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저 표정.’

플레이어 대부분은, 접수원의 그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마법사 등록을 마치고 처음으로 상아탑의 일원이 되었을 때, 그리고 첫 퀘스트를 마쳤을 때, 아주 가끔 퀘스트 보상 외에 랜덤으로 추가 보상을 주거나 할 때마다, 접수원 캐릭터가 항상 짓는 표정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때의 표정이 한없이 발랄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표정은 같은 표정임에도 매우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리고 접수원은, 다시 마왕을 바라보면서 허리춤에 손을 대 아티펙트를 소환하여 손을 뻗었다.

마왕을 향해서가 아니라, 옆에 서 있는 플레이어를 향해서.

[건방진 짓을!]

순간 마왕의 몸에서 거대한 어둠이 터져 나오고, 마치 블랙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아티펙트는 플레이어의 몸에 닿아 환하게 빛난 후였다.

카메라가 빠르게 멀어지면서, 붕괴되는 공간 안의 두 사람을 비추었다.

그리고 또한번의, 익숙하지만 어딘가 다른 로딩 연출과 함께, 닐슨은 자신이 다른 공간으로 차원 이동을 했음을 깨달았다.

“여긴??!?!”

닐슨은 자신이 다른 플레이어 수백 명과 함께 상아탑 바깥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게임이, 놀랍게도 그 수백 명의 플레이어를 동시에 화면에 송출하면서도 용케 자신의 게임기를 불태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그러나 그런 사실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전에 동영상으로만 보았던 탑주들이 자신들의 앞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8개의 거대한 기둥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멀리 있는 상아탑을 바라보며 등을 보이고 있는 탑주들을 보며, 닐슨은 이 이벤트의 엄청난 스케일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커뮤니티에서 이미 뿌려진 이야기를 통해서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400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전장을 X-BOX 360정도의 성능으로 구현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설마’와 ‘혹시’가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역사적인 이벤트의 일원으로 참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닐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다른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미 이 안에 있는 400명의 마법사들 전부가, 이 이벤트의 시작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자신들의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애당초 커뮤니티를 통해서 ‘연구파’유저들과 퀘스트 내용을 공유하고, 정확히 오늘 이 시간에 그들로 하여금 월드 이벤트의 트리거를 동작하게 한 것이 자신들이었기에.

그렇기에 연차를 내고, 병가를 내고, 아니면 무단결근까지 감수하면서 이 자리에 모인 400명의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속으로 떠올리며 긴장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대표자로 선출한, ‘리더’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아직 인가?’

그때, 확성 마법을 사용한 한 여성 마법사의 음성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전장의 한가운데서, 마치 지휘관 같은 포스를 풍기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마법사는, 여기 모여 있는 마법사들과 미리 약속한 시간에 이벤트의 최종 트리거를 동작시킨 마법사 실비아였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금부터 최종이벤트가 시작됩니다! 다들 잊지 마세요! 우린 오늘을 위해서 서클을 올렸고 모든 유저들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걸!”

실비아의 외침을 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들 각자의 계열에 맞는 준비 자세를 취하며 긴장된 표정으로 마왕의 등장을 기다렸다.

커뮤니티를 통해서 미리 전달받은, 이번 이벤트의 공략 방법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닐슨은, 최종 이벤트에 대한 내용을 보며 대화했던 채팅방의 내용을 떠올렸다.

-이거 완전 ‘커플링의 제왕’이네-

-어? 어디가요?-

-맞잖아. 반지를 파괴하러 적의 심장부에 들어가는 난쟁이들. 그리고 그 동안 마왕이 눈치 채지 못하게 밖에서 시선을 끄는 용사들. 그거 완전 ‘커플링의 제왕’그 자체 아냐?-

-어? 맞네.-

-그러고 보니 좀 같은 듯?-

-그러니까 우리 6서클 마법사들의 역할은, 결국 ‘주인공’역할의 마법사 1명이 심장방에 들어가서 최종마도의 봉인을 풀 때 까지 시간을 버는 거라는 거죠?-

-퀘스트의 내용만 보면 맞습니다 그 안에서 ‘주인공’이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는 모르지만요.-

-좋아요. 뭘 해야 하는지는 알겠고, 누굴 상대하는지도 알겠습니다. 그런데 하나 질문할게 있는데요.-

닐슨의 회상은 거기에서 끝났다.

뒤에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기 전에, 저 멀리 허공에서 검은 구름을 피워 올리며 ‘그녀’가 등장했기 때문에.

[안녕? 버러지들? 그리고 우리 귀여운 탑주님들?]

스타스트림이 말했다.

[너희들이 ‘빌려 쓰던’ 것을 돌려받으러 내가 돌아왔다.

바로 오늘, 상아탑은 마나의 주인의 손에 돌아가리라.]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연기라고 생각하기엔 소름이 끼칠 만큼 진심이 실려 있었다.

마치 진짜로, 자신이 마왕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닐슨은, 그런 마왕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채팅방에서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6서클 400명이 모인다고 10서클 마왕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 이후에 이어진 격렬한 토론에서도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던, 이 이벤트의 유일한 ‘변수’에 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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