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세상에 단 한 번뿐인 이벤트
민준이 머리를 부여잡고 굴러다니던 장소가 부실이었기에, 옆에서 작업하고 있던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민준이 네가 그러는 건 처음 본다? 뭔 일이야?”
“젠장, 내가 짠 코드인데 내가 이해를 못하겠다고.”
“그게 가능해?”
“몰라 코딩할 때 무아지경으로 해서 그런가 아니면 코드 로직의 핵심 파트를 내가 설계한 게 아니라 물리학 교수님이 설계한 공식 따라서 구현한 거라 그런가 왜 이렇게 되는지 이해가 안 돼.”
“흠···.”
이야기를 들은 상혁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민준이 상혁을 안심시켰다.
“걱정마라. 출시된 게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
“어. 구동은 완벽하게 되고 있어. 단지 내가 납득을 못할 뿐이지.”
“흠···. 교수님한테 물어보면 어때? 애당초 기본 물리 법칙은 죄다 에릭 풀먼 교수님이 짠 거라며?”
“물어봤지. 이미.”
“그런데?”
“자기도 모른다던데? 그러니까 이런 거야. 내가 모르는 부분이 기본 공식에 걸쳐있다면, 그분이 모르는 건 코드쪽에 걸쳐 있는 거지. 며칠 동안 기본 로직 수정이 가능한지 검토해보려고 이것저것 손대봤는데 건들면 건드는 대로 미친 듯이 버그가 터져서 수정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쉽게 설명하자면 그런 느낌인거지.”
“그런데 실제로 유저들은 주문을 만들기도 하고 아티펙트 가지고 주문 효과에 개입도 하잖아.”
“그게 기본 공식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거든.”
민준이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설명을 시작하려 하자, 지수가 쪼르르 달려와 상혁의 옆에 앉았다.
“넌 왜?”
“아니, 저도 저 게임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궁금해서···.”
지수의 말에 상혁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야, 그럼 지금 MYOM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아는 사람이 개발팀에 하나도 없다는 소리야?”
“아니···. 뭔가 필요해서 만들어달라고 하면 민준 오빠가 항상 다 구현해줬으니까요.”
“그런데 그 당사자는 자기가 짠 코드가 왜 굴러가는지 이해를 못한다잖아. 그런데 버그가 안 터졌다고?”
상혁이 기억하기로 MYOM은 ‘마나 엔진’의 완성 이후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거치면서도 큰 버그 없이 무난하게 개발이 완료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그 게임의 가장 기반이 되는 핵심 코드가 그 코드를 설계한 사람도 이해 못하는 코드로 짜여있다는 것이, 상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 솔직히 서로 간섭하는 코드가 너무 많아서, 이건 어디선가 중간에 분명 터졌어야 되는 코드거든?”
“그런 코드면 네가 완성이라고 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그때는 반쯤 미쳐있었으니까. 뭐랄까,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 속에서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는 직감으로 코드를 짰는데, 그게 용케 버그 없이 잘 굴러가는 상태라고 해야하나···.”
“그럼 지금 2천만 카피 넘게 나간 게임의 핵심 코드에, 우리가 알 수 없는 거대한 버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야?”
“아니 그건 아냐. 지금도 코드 자체는 완벽하고 아름답게 굴러가고 있으니까.”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지?”
“그걸 내 머리로 다시 구현하려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내 코드인데 내가 이 코드를 왜 이렇게 짰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흠···. 그게 지금 계획 중인 월드 이벤트에 치명적인 문제가 되나?”
“뭐, 예측하지 못한 모종의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지. 실제로 최종장에 진입하는 유저들은, 자기 콘솔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서 렌더링 센터와 다이렉트로 연결된 상태에서 게임을 진행하게 될 거잖아?”
“그렇겠지.”
“그럼 100명이 각자 시전 하는 주문이 한 번에 발동될 때 거기 섞인 주문의 조합이 어떠냐에 따라서 우리가 예측하지 못할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 긴급한 상황에서 창조주문을 발동시킬 유저가 있다고?”
“그럴 수도 있다는 거야.”
상혁은 상황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집단 지성을 통해서 문제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획 파트와는 다르게, 민준이 구축한 ‘마나 엔진’관련 문제는 능력자가 즐비한 PTW내에서도 오직 민준만이 해결 가능한 문제였기 때문에.
“좋아. 그럼 일단 민준이 네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최대한 파악해봐. 그리고 지수 너는 탑주들을 모아주고.”
“탑주들을요?”
“어. 만약 변수가 문제가 된다면, 최대한 배제하는 게 맞겠지. 현재 MYOM의 유저 중에 가장 많은 주문을 마스터하고 있는 게 우리 회사의 탑주들이잖아.”
“그렇죠.”
“오늘부터 너는 렌더링 센터에 연결된 상태의 코넥트를 가지고 탑주 들하고 1:8로 전투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1:8로요? 1:2만 해도 버거운데?”
“그건 괜찮아.”
상혁이 미소 지었다.
“시스템 버프를 줄 거니까.”
***
“저건 대체 뭐하는 걸까?”
3일 전쯤부터 PTW직원들이 일과가 끝날 때마다 시어터 룸에 모이는 것을 보고 호기심을 느낀 토미가, 자신의 앞에 있는 거대한 화면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함께 온 직원인 제레미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영혼이 나간 표정으로 답했다.
“뭐라고는 못하겠지만 끝내주는 장면이긴 하네요.”
극장 스크린 수준의 거대한 화면 속에서, 지수의 캐릭터인 ‘스타 스트림’이 오색 창연한 기운을 마구 뿜어내며 8명의 탑주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토미가 알고 있는 7세대 콘솔의 성능 한계를 아득히 넘어가는 전투 장면이었다.
“X-BOX 360 성능이 저렇게 좋았다고? 저 그래픽으로 저 프레임에 9명이 한 화면에서 싸울 정도로?”
“절대 안 되죠. 뭔가 테스트를 위해 전투를 하는 것 같긴 한데···. 젠장. 저 정도 성능을 내는 게임기라면 얼마를 주더라도 사고 싶을 정도네요.”
화면 속에서, 청탑주 멀린이 소환한 보라색 용의 등 위에 철탑주 시 메이좐이 소환한 강철의 기사가 올라 탄 채로 지수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대체 몇 서클 마법인지 짐작도 안갈 정도의 화려한 주문 다발이 줄기줄기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 모든 공격을 맞아야 하는 지수의 캐릭터는, 주문의 스케일 덕에 거의 작은 인형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작은 인형이 팔을 휘두르자, 가녀린 손끝에서 수백 개의 나무줄기들이 뻗어 나와 자신에게 쇄도하는 주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렌더링 센터 부하는 어때요?”
그 모습을 선글라스를 낀 채 팝콘을 먹으며 구경하던 상혁이 묻자, 옆에 앉아 있던 직원이 노트북 화면을 보며 답했다.
“35%정도 되네요. 실시간 연산이라 9명이 싸우는 건데도 부하가 장난 아닌데요?”
“그것보다는 고 서클 마법이 난무하는 전투라서 부하가 큰 거겠죠. 서클이 올라갈수록, 이펙트가 더 화려해지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그럼 실제 월드 이벤트 때는···”
“지금 유저의 성장 수준을 감안하면 5서클에서 최대 6서클 정도의 유저들이 참여하겠죠.
아티펙트 스코어는 5400점 정도일거고.”
그 순간, 멀린이 손을 휘젓자 렌더링 센터의 부하율을 표시하는 그래프가 높게 치솟기 시작했다.
그 말은, 멀린이 지금 시전 하는 주문이 이미 연산이 끝나서 데이터로 저장되어있는 주문이 아니라, 아예 새로 이 자리에서 돌리고 있는 ‘창조 주문’이라는 의미였다.
“45%. 한명 정도는 괜찮을지도..”
그러나 그 순간 적탑주 나나미 루카 역시 주문 창조 단계에 들어갔고, 그래프가 치솟아 오르며 노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67%. 지금 뭘 하려는 걸까요?”
“부하 테스트.”
3일전부터 끝없이 이어진 테스트 과정에서, 상혁은 기존 마법의 조합에 대한 테스트를 끊임없이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원래 상쇄되어야 할 주문이 버그를 유발한다던가, 공식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2000개가 넘는 주문의 모든 조합을 테스트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아마도 이 조합은 문제가 있겠지’라고 생각되는 조합을 설정해서 테스트 하는 것은 가능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러한 하드한 테스트에도 불구하고 민준이 ‘자신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한 마나 엔진은 그 모든 조합에 대한 답을 내 놓으며 상혁을 감탄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상에 버그 없는 코드는 없다던데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결국 상혁은 3일 만에 버그가 나오는 조합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렌더링 센터가 감당할 수 있는 부하를 확인하려 시도했다.
물론 그것도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마법 중에 가장 이펙트가 화려한 마법들을 미친 듯이 퍼부어도 렌더링 센터는 그 모든 부하를 제대로 버텨내고 있었다.
“이 방법으로는 안 되겠습니다. 새 주문을 처음 발동할 때 발생하는 부하를 합쳐서 테스트 해 봅시다.”
상혁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MYOM은 게임 특성상 새 주문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해서 그게 툭툭 튀어나오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공식으로 주문을 만들지 않으면, 주문이 성립하기 전에 유도하던 마나가 다 흩어져 버리거나 폭주하여 폭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애당초 2천만 카피가 넘게 팔렸음에도 아직까지 주문 창조로 저 서클 주문을 창조한 시도가 5건밖에 없다는 것이, 각 탑주들이 마나엔진의 포텐셜을 얼마나 극한까지 끌어다 주문 체계를 테스트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었다.
‘하긴 2년 동안 진짜 미친 듯이 주문 공식만 팠으니···.’
MYOM에서, 고서클의 주문은 창조할 때 촉매도 요구한다.
물론 내부 테스트 계정을 사용할 때는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을 마음껏 가져다 쓸 수 있긴 하지만, 존재하는 주문의 공식을 해석해 새 주문의 위치를 찾아내고, 해당 주문을 시전 하는데 필요한 서클 회로를 강화하고, 주문의 조합을 보조할 아티펙트를 세팅하고, 거기에 적합한 촉매를 찾아서 새 주문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MYOM의 고서클 주문이란, 판타지의 마법사가 그런 것처럼 진짜로 혼신의 연구 끝에 완성해야하는 ‘필살기’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결국 상혁은 탑주들에게 새 주문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을 포기해야했다.
그러나 상혁은, 안도의 한숨을 쉬는 탑주들에게 새 주문의 제작 대신 다른 것을 요구했다.
“그래도 테스트는 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기존에 탑주들이 만들어 놓았던 최고 수준의 고서클 주문 데이터를 과감하게 삭제했다.
“아, 젠장. 컨트롤 실패다!”
폭음과 함께 손앞에 모여 있는 마나 덩어리가 폭발하자, 적탑주 나나미 루카의 체력 게이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원래라면 즉사 판정이지만 현재는 테스트를 위해 체력이 30배쯤 올라가 있기에 사망하지는 않았고, 줄어든 체력은 그 즉시 보충되었다.
그러자 루카가 이를 악물며 허리춤에 손을 대 촉매가 될 아이템을 다시 허공에 세팅했다.
“아 씨! 다른 주문도 많은데 왜 하필 연옥팔주(燃獄八柱)를 삭제해가지고!”
공교롭게도 상혁이 삭제한 주문은 그녀가 만든 주문중에 가장 조정이 힘든 주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투덜거림을 들었음에도, 다른 탑주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햇다.
본인들이 삭제당한 주문들도 그녀가 실패한 주문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난이도의 주문들이었으니까.
‘전투 중에 창조 주문이라니 이런 개 같은···.’
게임 안에 구현되어있는, 주문 셋팅을 위해 준비된 방에서 주문을 연구하는 것과, 전투 필드에서 라이브로 주문을 준비하는 것은 난이도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당장 옆에 있는 다른 탑주가 마나를 컨트롤 하면서 생기는 미묘한 흐름이, 자신의 주문 생성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조용한 방 안에서 성냥으로 초를 키던 사람이, 폭풍 속에서 같은 행동을 시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혁이 옆에 앉은 직원에게 물었다.
“부하는 어때요?”
“동시 시전이 5명인데 지금 거의 90%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흠···. 역시 고 서클 주문창조를 동시에 8명이 돌리는 건 렌더링 센터를 써도 무리인가···.”
발동이 아니라 마나를 컨트롤 하는 시전 단계임에도 부하가 엄청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토미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손에 온갖 색의 불꽃을 띄우며 눈 앞의 구슬을 컨트롤 하고 있는 탑주들의 모습이, 지금 그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진짜 미친것들인가 이거?’
지금부터 MYOM이 하나도 안 팔린다고 가정해도 유저수가 2천만이 넘는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저수준의 주문 창조를 시전 할 능력이 될 유저는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누가 만든 주문을 그대로 따라서 배우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마나 엔진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식에 맞춰서 새 주문을 창조하는 것은, 말 그대로 ‘말이 안 되는’난이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PTW는 지금 전 세계 유저 중에 10명 남짓한 사람이 혹시나 ‘쓸지도 모를’ 기능 때문에 수천억 원짜리 렌더링 센터를 3개나 건설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상혁이 하는 말은, 어처구니 없어하는 토미의 황당함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흠. 부하가 생각보다 심한데, 설비를 더 늘려야하나?”
‘진짜 돌았나?’
토미는 차마 자신의 노골적인 생각이 육성으로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토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상혁은 언제나처럼 자신만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좋습니다. 일단 오늘 테스트는 여기까지 하죠. 더 하면 렌더링 센터가 못 버틸 것 같으니까.”
상혁이 마이크를 들어 말하자 화면 안의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지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 부하 테스트한다고 안했어요?-
“이거 생각보다 부하가 심하네. 그래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긴 하니까 이 부분까지 신경 쓸건 아닌 것 같다. 유저들의 서클이 좀 더 올라가면 설비 증설은 고려해봐야겠지만.”
이미 6서클 수준의 주문 8개의 동시 창조는 렌더링 센터가 버티는 것을 확인했기에, 상혁은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을 뒤로 미뤘다.
혹시라도 지수 수준의 미친 중2병력을 가진 유저가 9서클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1명의 유저가 할 수 있는 수준의 부하는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니까.
그리고 그 숫자가 절대2명은 넘지 않을 거라고, 상혁은 예측하고 있었다.
“컴퓨터 부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삼각이 적용되니까 지나치게 미리 대비해두면 쓰지도 못하고 버리는 수가 있어요. 일단 다음 장비 증설까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하죠.”
뒤에서 듣고 있던 토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진짜로 미친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그것은 토미의 착각이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는 테스트’이후에, 상혁이 바로 이어서 하려는 테스트는 ‘무조건 발생할 부하에 대한 테스트’였기 때문에.
“좋아요. 그럼 이제 월드 이벤트 관련 최종 부하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삭제한 주문 데이터는 다시 되돌려 놓을게요. 그리고 이번 테스트는 테스트 세팅이 아닌 최종전 페이즈를 고려한 전투 세팅으로 진행합니다.”
그러자 화면에 있는 지수의 캐릭터의 크기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치 마왕과 같은 느낌으로, 온 몸에서 검은 연기를 피어 올리며 화면위로 붕 떠올랐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긴장한 듯한 직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준비 됐어요.-
“좋아. 탑주들은?”
-저희도 준비 됐습니다.-
탑주들의 몸에서 각자의 색에 맞춘 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상혁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쓰고 있던 썬글라스를 벗어 옆에 내려놓고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민준아. 시작하자.”
-OK-
“그럼 지금부터 MYOM의 월드 이벤트 최종장. ‘마왕 강림’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뭘 시작 한다는 거지?’
상혁의 말에 의문을 품던 토미는, 화면을 보는 순간 입을 쩍하고 벌릴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말을 마치는 순간, 탑주들의 뒤로 수백 명의 캐릭터가 빛과 함께 등장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혁의 옆에 있던 직원이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부하율 30%입니다.”
“주문 시전도 안 했는데 역시 한번에 200명은 좀 무리였나···. 일단 해봅시다.”
그렇게 말한 상혁이 왼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딱’하고 손가락을 튕기며,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GO!”
그 순간,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저마다 다른 수많은 주문을 캐스팅하기 위해 팔을 휘젓는 모습을 보면서, 토미는 생각했다.
이 월드 이벤트가 저 모습 그대로 진행되는 순간, 전 세계의 모든 온라인 게임 이벤트는 평생 저 이벤트와 비교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그것은 마치 ‘월드 오브 전쟁크래프트’의 등장 이후에, 세상의 모든 MMORPG의 기준이 자신들의 게임이 된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 게임은 언젠가 따라잡힐 게임이고, 저 이벤트는 앞으로도 영원히 누구도 시도 못하는 이벤트가 된다는 것.’
자신의 눈앞에서 PTW가 하려고 하는 것.
그것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에서는 절대로 시도하지 못할, 오로지 전 세계에서 PTW만이 시도할 수 있는, 비효율의 극치라고 할 만한 ‘미친 짓의 정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