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69화 (170/485)

169. 고인물이 즐거운 게임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는, 이미 유저에게 공개된 시연 버전도 수술의 긴장감이나 의사의 멋진 모습을 잘 살렸다는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 게임의 매력은 공개된 부분보다도 완벽하게 구축되어가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든 오픈 월드가 더 매력적인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GOS개발 때 확보한 카툰렌더링 기술을 극한까지 활용하여 만들어진 오픈월드가, 단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눈이 돌아가게 만드는 세부적인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것이 마치 플레이어가 실제로 존재하는 친숙하지만 이질적인 이세계의 거리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상혁은 그렇게 구축된 또 하나의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살아가는 ‘생활감’을 그대로 구현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장소나 계절에 따라 낚이는 물고기가 다르고, 여름엔 여름 과일을 따서 즙을 파는 길거리 좌판이, 가을엔 월동기가 오기 전 보존이 용이한 염장 고기를 사려는 가족들이 장터에 모이는 풍경을 원했다.

그런 NPC들이 바로 플레이어가 구해야 할 환자들이고 플레이어에게 감사를 전할 매개체였기 때문에.

그리고 다수의 교수 및 대학원생이 참여한 개발 1팀 인력들은, 그런 상혁의 요구를 완벽하게 구현한 세계를 완성해냈다.

주사위로 플레이하는 독특한 느낌의 전통 게임부터, 계절마다 나오는 지방의 전통 주.

딸이 태어나면 딸의 결혼식에 주기 위해 과실주를 담가 나무 밑에 파묻고, 딸이 커서 결혼할 때가 되면 자란 나무로 아기 침대를 만들어 숙성된 과실주와 함께 선물하는 풍습.

아이가 7살이 되면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벌이는 마을 축제인 ‘건강절’.

17세가 된 아이들에게 예쁜 옷을 입혀 마을을 순회하는 ‘성인식’.

매년 가을 월동을 위해 살을 찌운 곰처럼 생긴 거대한 짐승을 마을 청년들이 사냥하여 신께 감사를 올리는 ‘가을 감사제’.

그 가을 감사제에서, 모두가 산과 들을 누비며 귀한 재료를 모아 솥에 넣고 끓여 음식을 나눠먹는 전통 풍습.

씨름과 스모를 반씩 섞은 대전 형식 스포츠라던가, 눈이 녹은 것을 기념하여 흐르기 시작한 계곡물로 머리를 감는 전통 같은, 마치 진짜로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의 마을을 그대로 구축한 듯한 디테일.

무엇보다 멋진 것은, 그 모든 디테일에 유저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게임 내 있는 모든 오브젝트나 컨텐츠는 단순히 볼거리가 아니라 유저와 상호 작용 가능한 물건이어야 합니다.”

“딱히 수술이 아니어도 그냥 세계속의 인물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 들 수 있게 해주세요.”

“잊지 마세요. 저희 게임의 핵심은 ‘의사 시뮬레이터’이기도 하지만, ‘이세계’역시 또 하나의 축이라는 것을.”

눈보라 사에서 온 토미 칠튼은, 상혁의 깐깐한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는 걸로도 모자라 본인들이 알아서 디테일을 추가하고 있는 개발 1팀의 모습을 보면서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보안 서약을 하고 플레이 해본 게임의 개발 버전을 보면서, ‘미친 개발팀이 만들고 있으니 미친 결과물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구축하고 있는 ‘이세계’가, 단순한 중세 판타지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게임 시스템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언덕 경사가 미끄러지기 좋은 느낌이네. 겨울에 눈썰매 타면 즐겁겠는데?”

“엇? 선생님. 눈썰매가 뭐죠?”

“납작한 바가지 같이 생긴 나무판을 바닥에 놓고 눈 위를 쭉 미끄러지는 거야. 애들이 엄청 좋아하고, 어른이 해도 즐겁지.”

“오! 겨울이 오면 해보고 싶어요!”

“좋아. 눈이 올 때 쯤 베른 아저씨에게 여러 개 만들어달라고 하자. 마을 아이들이 탈 수 있도록.”

[<키워드 : 눈썰매>를 획득하였습니다.]

마을 뒤편의 완만한 경사를 지닌 언덕을 돌아다니던 토미가 옆에서 자신을 보고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이 키워드라는 건 뭐죠?”

“이벤트 트리거 같은 건데, 이 이벤트가 있으면 나중에 가을 시즌에 토미에게 눈썰매 제작 퀘스트를 받을 수 있어요. 그럼 플레이어가 눈썰매를 타는 이벤트가 생기고, 그 이후로 아이들이 겨울마다 눈썰매를 타고 놀죠. 관련 부상자 이벤트도 발생하고요.”

“아···. 이런 이벤트가 많나요?”

“주인공은 현실에서 이세계로 전이된 인물이니까요. 현실 지식을 통해서 조금씩 세상을 바꿔 나가는 거죠. 새로운 음식의 조리법을 전파한다던가, 오셀로나 체스 같은 게임을 만들어서 유행시킨다던가, 아니면 아침마다 건강 체조를 하게 만들어서 병자 수를 줄인다던가, 약초를 향신료로 만들어서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한다던가 하는 겁니다. 게임 초기 플레이가 유저가 세계를 파악하는 과정이라면, 중반 이후 플레이는 유저로 인해서 세계가 변화하는 모습을 즐기는 과정이죠.”

“작업량이 엄청날 텐데요.”

“그야 그렇지만, 그편이 훨씬 즐겁잖아요. 진짜로 이세계에 간 기분도 들고.”

“MMORPG에서는 불가능한 시도군요. 조금은 부럽습니다. 싱글 게임에서만 가능한 부분을 100%활용하는 느낌이라.”

“어라? 저희 게임엔 멀티도 있어요.”

“예!?”

“제가 플레이중인 월드에, 파견 의사 형태로 차원문을 타고 다른 플레이어가 찾아올 수 있어요. 물론 그 플레이어는 제 월드에서 키워드를 얻거나 세계관에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타 플레이어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축제를 즐긴다던가, 아니면 혼자서 수술하기 힘든 환자를 협력 플레이로 동시 수술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저도 볼 수 있나요?”

“아, 그건 ‘차원 의사 네트워크 접속기’라는 가구를 먼저 개발 하셔야해요. 원래는 직접 이벤트 겪으면서 만드는 물건이지만, 지금은 아마 테스트용으로 필드 어디에 지금 한 개 짱 박아놨을 거예요. 이디야의 숲으로 가보실래요?”

맵 에서 직원이 가리키는 곳으로 보니, 과연 그곳에 커다란 수정구가 달린 탁자가 보였다.

“이거 정식 버전에서는 삭제될 거긴 하지만 일단 지금은 이걸로 테스트하시면 될 것 같네요.”

“UI가 MYOM에 있는 퀘스트 시스템이랑 비슷하네요?”

MYOM은 기본적으로 싱글게임을 표방하지만, 그것은 각 마탑의 자신의 방에 있을 때만 그러한 것이고 5인 이하 플레이어가 참여할 수 있는 레이드나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해야 하는 파밍을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토미가 보고 있는 화면은, 전체적인 구성이 MYOM의 그것과 닮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쪽에서 만든 게 좋아 보이기에 소스채로 달라고 해서 붙인 다음 뜯어고친 거라 서요.”

“흠. 그럼 멀티 수술은 어떻게 하는 거죠?”

“해보실래요? 마침 제 테스트 계정에 멀티 수술이 필요한 난이도의 환자가 있으니 제 쪽으로 헬프 오셔서 테스트 해보시면 되겠네요.”

토미는 개발 1팀 직원의 안내에 따라 팀 수술 모드에 접속했다.

탁자위에 놓인 수술에 대한 브리핑 내용과 함께, 환자 상태에 대한 소개가 적힌 차트를 확인한 토미는 자신이 플레이 중인 테스트 계정과는 다르게, 수술 설비부터 차원이 다른 직원의 수술실을 보며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온갖 마도구가 공간을 메우고 있는 수술실에서, 자신에게 협력플레이를 권유한 개발자의 캐릭터가 양손을 위로 한 채로 서 있었다.

“오셨군요. 차트는 보셨어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토미가 대답했다.

“예. 분명 간이식과 신장의 동시 이식 수술이었죠?”

“제가 간쪽을 맡을 테니 신장 쪽을 맡아주시면 됩니다. 수술 순서는 먼저 이식을 할 환자의 간을 적출하시는 동안, 제가 이식 받을 환자의 간을 적출하고, 제가 간 이식을 하는 동안 신장을 적출하고 신장 이식 수술을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예?! 난이도가 너무 높지 않아요?!”

해봐야 초반부에서 칼에 베인 상처나 봉합하던 토미가 기겁하며 말하자, 스피커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모든 과정은 기본하고 같으니까요. 단지 판정이 좀 더 엄해지고 노트 실수 시에 리스크가 좀 더 큰 것뿐이에요. 환자가 사망하면 세이브 날리면 되니까 너무 부담은 갖지 마시고요.”

“요컨대 복잡한건 없고 노트만 잘 보면 된다는 거죠?”

“예. 혹시 지금 수술 지식 레벨 몇이세요?”

“3입니다.”

“포인트 있어요?”

“좀 있습니다.”

“그럼 전부 수술 레벨에 찍으세요.”

“봉합 찍으려고 놔둔 건데···.”

“이거 수술 난이도가 올라가면 수술 지식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는 아예 화면에 노트가 안 떠요.”

“헐···.어라? 근데 카렌 씨는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수술 지식 레벨이 1이신데요?”

“저는 포인트 아까워서 노트 나오는 걸 전부 외워버렸습니다. 게임 안에 나오는 교과서에 상황이나 수술 별 노트순서가 있으니까요. 다 외워버리면 수술지식을 올릴 필요가 없죠. 이 게임에서의 ‘고인물’은 그런 의미인 겁니다. 봉합 속도 같은 건 스킬레벨에 좌우되니까, 무조건 올려야하지만 노트나 상황별 선택지 같은 건 공부로 커버 가능하니까요.”

“Oh, shit···. 제 캐릭터는 봉합이나 박리(수술 부위의 유착을 제거하는 스킬)레벨도 낮은데···.”

“잠깐만요, 그러면···.”

카렌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는 개발자 한명을 더 데려왔다.

“저희 개발1팀 최고 마취의 선생님. 이범배 씨입니다.”

“뭐에요, 이 환자 무조건 살린다고 카렌 씨가 아끼던 환자 아니에요?”

“멀티 테스트하려면 좀 난이도가 있는 편이 긴장감 있잖아요.”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토미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잠깐만요, 이 게임에 마취의는 NPC가 하는 거 아니었어요?”

“멀티 플레이시에만 간호사부터 마취의나 MD까지 전부 플레이어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스토리 진행하면 NPC한테 수술 맡기고 플레이어가 직접 간호사 같은 타 포지션에 설수도 있고요.”

“절 믿으시죠. 제가 의사 면허만 없지 이 게임에서 환자 케어는 괴물 수준으로 잘한답니다.”

토미는 깨달았다.

공개 행사 때 유저들이 보았던 이 게임의 수술 시뮬레이터는, 정말로 게임 전체에서 극히 일부만을 보여준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개발 중인 이 게임의 볼륨이, 자신이 상상하던 볼륨을 초월한 거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거대하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 것이다.

이건 깊은 거니까.

온갖 컨텐츠에 접근이 가능한 방대한 세계 위에서, 핵심 플레이가 되어야할 수술 시뮬레이터 부분이 엄청난 깊이로 구현 되어 있었다.

정말로 대놓고 유저가 의사가 된 느낌을 느끼게 하려고.

‘아니 애당초 수술 이야기 하는 시점에서 반쯤 의사가 된 기분인데 이거···.’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토미는 카렌이 알려준 대로 남은 포인트를 전부 ‘수술지식’스킬에 몰빵 했다.

“13레벨이네요.”

“그 정도면 짧게나마 타점 직전에 노트가 뜨겠네요. 리듬게임은 좀 잘 하세요?”

“그럭저럭··· 근데 이건 기존 리듬게임이랑 좀 흐름이 너무 달라서.”

“그래도 봉합이나 박리 레벨이 낮으니까 노트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을 거예요. 물론 환자 상태는 더 빠르게 나빠지겠지만. 하나만 기억하시면 되요. 기본 흐름은 실-봉합-컷입니다. 그 흐름이 제일 많고 메스 들고 박리 모드 들어갈 때 뜨는 노트만 제대로 캐치하면 문제는 없을 거예요.”

“예? 예···.”

“목소리가 작아요! 더 크게! 환자의 목숨이 걸려있다고요!”

“예!”

“그럼 갑시다. 범배 씨?”

“오케이. 준비 됐어요.”

3명의 플레이어가 각자의 자리에서 패드를 잡고 준비에 들어가자 집도의를 맡고 있는 카렌의 캐릭터가 양손을 들어 올린 채로 입을 열어 스토리를 풀기 시작 했다.

“지금부터, 간과 신장의 동시 이식 수술에 들어갑니다. 이식 받을 환자는 장기 제공자의 딸입니다. 안타깝지만 두 환자를 모두 살릴 수 없는 관계로,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기증자의 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목숨이,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모두 최선을 다 해 주십시오.”

범배가 버튼을 눌러 약물을 조절하자 범배의 캐릭터가 음성을 출력했다.

“두 환자 모두 상태 양호합니다. 수술, 진행해주십시오.”

그러자 범배의 캐릭터의 말을 받아 카렌의 캐릭터가 대사를 뱉었다.

“그럼 지금부터 기증 받을 환자의 손상된 간을 적출하는 수술을 시작한다. 메스!”

그렇게 협력 수술을 시작한 그들의 주위로, 개발 1팀 인원들이 하나 둘씩 모여 그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

“선생님! 출혈입니다!”

봉합사를 너무 당겼는지 혈관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는 연출이 나왔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내려오던 노트들이 일제히 출혈 수습을 위한 노트로 변경되었다.

‘젠장! 겁나게 정신없다!’

토미가 곁눈질로 옆을 바라보자, 거기엔 카렌이 진행하고 있는 수술의 노트가 보였다.

아예 무슨 도구가 필요한지 마크조차 안 보이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내려오는 노트들을, 그녀는 한 번의 미스 없이 죄다 퍼펙트 판정으로 클리어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질 때마다, 범배의 적절한 조치로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토미의 실수를 카렌이 커버하면서 수술은 무사히 종료.

토미는 게임 화면에서 간호사 NPC들이 보내는 박수소리를 들으면서, 숨을 내쉬며 패드를 내려놓았다.

어느새 꽉 쥔 패드는 땀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뭔가 엄청난 과정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부러움.

노트를 맞추는 것에도 버거워하던 자신과 다르게, 아예 노트를 보지 않아도 완벽하게 수술을 할 수 있었던 카렌을 보며 토미는 멋지다는 감정과 부럽다는 감정을 함께 느꼈다.

마치 의학 드라마에서 천재 의사가 나올 때 다른 의사들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역시, 이 게임은 그런 감정까지 느낄 수 있게 설계된 게임이라는 거겠지.’

처음 멀티플레이의 존재를 들었을 때 만해도 ‘대체 여기 왜 멀티 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거지?’라는 느낌이었지만 한번 팀 수술에 참여한 지금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이 게임의 꽃은 멀티 플레이다.’

게임의 고인물은, 자신이 고인물인 것을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는 법이다.

내가 이만큼 노력해서 이런 실력을 얻었다고.

그래서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고.

그리고 이 게임의 멀티플레이는 그런 고인물 유저의 ‘멋짐’을 완벽하게 다른 유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소감이 어때요?”

웃으며 묻는 카렌을 향해서, 토미는 대답대신 피식 웃어보였다.

그녀가 묻는 질문이, ‘팀 수술’에 대한 소감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를 묻는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에.

토미는 싱글 모드를 플레이할 때만 해도, 자신이 꽤 게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플레이를 보면서 자신은 입문 단계도 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게임의 진정한 재미가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애당초 고인물이 됐을 때 최고로 즐거운 게임이네.’

1회차 플레이를 하는 유저는, 아무리 포인트를 잘 분배해도 게임의 재미를 100%느낄 수 없다.

자신의 레벨로 치료할 수 있는 수준보다 안 좋은 상태의 환자가 죽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던가, 레벨을 올리기 위해 환자 치료에만 집중하느라 세계에 구현되어있는 수많은 이벤트들을 놓치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온갖 병에 대한 처방과 각 수술에서 요구되는 노트의 출현 순서 등을 지식으로 쌓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이 게임은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 된다.

마치 진짜 능력 있는 의사가 이세계에 간 것처럼, 스킬 포인트를 봉합이나 박리 같은 ‘기술 스킬’에 효율 좋게 투자하게 됨으로써, 플레이가 풍요로워지고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느끼게 되니까.

그리고 토미는, 이것과 비슷한 재미의 로직을 가진 게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 바다 시대···.’

고인물이 되면서 세계 곳곳의 특산물과 무역루트를 줄줄 꿰고, 발견물의 위치를 다 외우게 되는 게임.

아마 그 게임의 유저들은 나폴리 항구에서 새벽 2시에 아이템 상점에 가면 야시장에서 [성검사의 갑옷]을 살 수 있다던가, 초반 무역 루트는 이스탄불에서 융단을 사서 아테네에서 판 뒤, 바로 미술품을 사서 이스탄불에서 파는 간단 무역루트 등은 줄줄이 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은 그러한 과정에서 고인물이 되는 순간 게임의 난이도가 내려가며 유저가 게임에 질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세계 최고의 MMORPG라고 불리는 눈보라 사의 ‘월드 오브 전쟁 크래프트’도 가지고 있는 문제였다.

레이드를 편하게 뛰기 위하여 레이드를 돌수록, 레이드 보상아이템을 받으면서 레이드가 시시해진다.

초반에 엄청난 긴장감과 함께 달성감도 함께 주던 강력한 보스들은, 유저의 스탯이 올라가면서 그럭저럭 편하게 잡을 수 있는 보스가 되어버린다.

그 ‘편한 사냥’을 위해서 유저들이 파밍을 하는 것이지만, 역으로 파밍이 끝난 순간 끝없이 새로운 도전거리를 던져 줘야하는 것이 MMORPG의 숙명이었다.

‘그걸 의사 시뮬과 이세계 주민 루트, 2개로 분할해서 해결하다니···.’

의사 시뮬레이터에서 유저의 실력이 좋아지면서 남는 여유를, 유저가 세계를 탐험하고 변화시키는데 쏟도록 설계된 게임.

고인물이 될수록, 유저가 남는 여유를 투자하여 NPC들과 소통하고 축제에 참가하기도 하며 연애도 결혼도 하면서 이세계의 진정한 주민이 될 수 있는 게임.

상혁이 만든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의 정체는, 단순히 환자를 살리는 의사라는 직업을 체험하는 게임이 아니라, 유저가 완성된 가상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의사로서 본분에 충실하면서, 이세계의 주민으로서 점차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그리고 토미가 보기에, 그것은 현재 엄청난 완성도로 유저들 사이에서 경악을 불러일으킨 MYOM에 절대 밀리지 않는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MYOM이 유저를 ‘마법사’로 만들어주는 게임이라면, 이 게임은 유저를 완전히 ‘이세계의 주민’으로 만들어줄 게임이었기에.

‘이것도 출시하면 난리 나겠군.’

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렌을 보며 말했다.

그녀가 물었던 게임에 대한 소감을 말해주기 위하여.

“솔직히, 인상적입니다. 저는 MYOM이 이번에 공개된 3개의 게임 중 최고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밀리지 않네요.”

“그렇죠?”

카렌이 웃으며 답했다.

“게임이 나오면, 유저들은 알게 될 겁니다. 저희 프로젝트가, 이번에 공개된 3개의 게임 중 가장 뛰어난 게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리고?”

“MYOM은 예고편에 불과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겠죠.”

그런 그녀의 표정에는, 개발 2팀의 리드 기획자로서 자신의 프로젝트에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무한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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