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66화 (167/485)

166. 게임을 만드는 이유

“그래서 저는, 개발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개발자들과 프로젝트 리더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는 청중들을 보며, 지수가 미소 지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눈높이란, 개념적인 의미의 눈높이가 아니라, 물리적인 의미의 눈높이를 말하는 겁니다. 프로젝트 리더로서 팀원들과 상의해야할 일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팀원의 자리에 찾아가 선채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저희 PTW의 방식은 조금 다르죠. 팀원이 자리에 앉아있으면, 팀장이 가서 무릎을 꿇거나 작은 의자에 앉아 상대에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팀원의 시선보다, 자신의 시선이 아래로 갈 수 있도록."

가볍게 한 숨을 쉰 지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배려가 좀 더 대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상대로 하여금 이쪽의 지위나 권한에 겁먹지 않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상대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 거죠. ‘아, 이 사람은 나와 같이 게임을 만들어가는 동료구나.’ 라고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저를 가르친 CCO 이상혁 개발자님은 저에게 기획을 가르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획자는 개발팀에서 가장 앞에서 서서 가장 낮은 자세로 개발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131명의 프로젝트 팀원 한명 한명이 게임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어 개발하게 하는 방법이, 저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서서 자신의 앞을 가리는 커다란 리더의 존재 대신, 모든 팀원들이 저 멀리 있는 골대를 바라보기 쉽도록 낮은 자세로 앞에서 팀원들을 이끄는 팀장의 존재 말이죠.”

“헛소리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저런 식으로 하면 개나 소나 자기 의견을 강조하다가 프로젝트가 산으로 갈 거라고. 저건 기획자의 가장 근본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개념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말이야.”

다리를 꼰 채로 지수의 강연을 듣고 있던 윌 드랙만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조금 전 상혁과의 불편한 만남 이후로, 드랙만은 그 자리에서 상혁에게 대놓고 쏘아붙이지 못한 것에 대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삐딱한 시선은, 오프닝 강연이 시작된 이후로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엔 지수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한없이 ‘아마추어나 할만한 발상’으로 보였기 때문에.

프로젝트 리더가 그리고 있는 정확한 그림을, 팀원들이 따라가게 만드는 것이 그가 아는 ‘커뮤니케이션’의 개념이었으니까.

기획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력’과 ‘전달력’이지 공감능력이 아니다.

그런 드랙만의 투덜거림을 들은 동료는 기겁하며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작게 소리질러 주의를 주었다.

“드랙만 씨! 옆에서 듣고 있어요!”

“아···.”

앞에서 진행된 민준의 강연이 프로그래머들에게 도전할 거리를 던져주는 내용이었다면, 지수의 강연은 호불호가 갈리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불호의 반응을 보이는 쪽은, 대부분 연차가 꽤 되는 기획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프로젝트에서 팀원들의 자유로운 개입을 방치했다가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는 경험은, 연차가 좀 있는 기획자라면 얼마든지 겪는 일이었으니까.

반대로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음악 쪽 파트를 맡은 개발자들은 지수의 말에 엄청난 호감을 보였다.

‘우리 팀장도 저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이야기였기에.

저렇게 귀여운 팀장이, 자신이 일하는 자리에 다가와서 옆에 앉은 채 눈을 반짝이며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매우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드랙만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들려왔으니, 주변 시선이 확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쳇.”

드랙만은 팔짱을 낀 상태로 입을 다물고 정면을 응시했다.

거기엔 강연을 마무리하고 자리로 들어가려는 지수의 모습이 있었다.

“···그것이 저희 MYOM 개발팀원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짝이는 꿈을 꾸는 개발자들이 모여서 만든 게임이, 유저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주지 못할 리 없으니까요.”

말을 마무리한 지수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민준이 강연을 마쳤을 때보다 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지수의 강연 내용이 프로젝트 리더들을 위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환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프로젝트 리더나 기획자가 아닌, 타 파트 작업자들이었다는 점에서 특이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잘했어.”

상혁이 자리로 돌아오는 지수를 칭찬하자, 지수가 기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지수를 향해서, 상혁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수의 방금 강연 내용은, 유저가 아닌 개발자들의 사이에서 PTW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할 만한 내용이었기에.

아마도 여기 모인 개발자들의 상당수가, 지수의 이야기를 듣고는 PTW에서의 개발환경에 대한 환상을 마음속에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능력 있는 개발자들을 회사에 끌어오는 동력이 되겠지.’

이번엔, 자신이 나설 차례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상혁이 연단에 서자 이어지던 박수소리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현재 게임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개발자.

PTW의 전 CEO이자, PTW에서 나오는 모든 게임의 책임 총괄을 맡았다는 젊은 개발자.

이상혁의 강연이 시작될 차례였기 때문에.

“안녕하세요. Play to win의 CCO를 맡고 있는, 기획자 이상혁입니다. 먼저 영광스럽게도, 게임 개발자 최고의 축제라는 GDC의 키노트 연설을 맡게 된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상혁이 인사를 마치자, 잦아지던 박수소리가 다시 터져나왔다.

그만큼 PTW가 게임업계에 끼치고 있는 인지도가 막강하다는 증거였기에, 상혁은 미소로 박수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강연 내용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대체 어떤 내용이 나올까.

기본적으로 GDC는 행사 전에 모든 강연자의 강연 제목이 공개된다.

각 분야에 걸친 개발자들이, 자신들이 듣고싶은 강연을 쉽게 찾아서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상혁이 이번에 협회에 제출한 강연의 제목은, [개발자의 마음]이었다.

워낙에 여러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는 제목이었기에 청중들은 드라마틱하기로 유명한 PTW의 개발 스토리, 창업 이래로 그들이 넘어온 벽 등, 각자가 듣고 싶은 주제에 대해 상혁이 이야기 해주길 바라며 상혁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혁이 그런 청중들의 눈을 보며 시작한 이야기는, PTW에서의 자신이 아닌, 회귀전의 개발자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국 과로사 엔딩을 맞이했던, 대한민국의 마이너 개발자 시절에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

그 아픈 과거의 이야기를, 상혁은 개발자A라는 이름으로 청중들에게 풀어내었다.

“A라는 개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름도 유명하지 않고, 연차에 비해 화려한 커리어도 없는 개발자였죠.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제대로 된 자신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계속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던, 아주 평범한 개발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한 번 다니던 프로젝트에서 잘리고 업계에 들어온 이후로 5번째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들어간 것은, 서비스를 시작한지 매우 오래된 한 낡은 온라인 게임의 라이브 서비스팀이었죠.”

상혁이 오늘 한 강연의 내용은 민준도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민준은, 상혁을 따라 관두려다가 회사에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붙잡는 바람에 잠시 상혁과 떨어졌었기 때문이었다.

매번 윗선과 싸우다 잘리기를 반복하던 상혁을 쫒아가는 데 지치기도 했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잠깐이지만 1년 정도 업계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되긴 하지만, 상혁은 그때의 이야기를 민준에게 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이야기는 민준으로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개발자 A라고 하긴 했지만, 민준은 그것이 상혁의 회귀 전 이야기임을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게임의 서비스가 길어지면서, 기존 개발인원들의 퇴사가 반복되고, 숙련된 개발 인력들의 유지가 불가능해지자 회사에서는 업데이트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매달 과금 아이템만을 간간이 업데이트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상태였죠. 마지막 대규모 업데이트가 3년 전이었으니, 게임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예상이 가실 겁니다. 그 상황에서, 새로 합류한 개발자 A는, 아직도 게임에 애정을 가진 유저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짝 미소지으며 상혁은 말을 잇는다.

"마침 회사에서도 버려진 프로젝트취급 받고 있기도 하고, 윗선의 통제도 없었으니 자신이 생각하는 업데이트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개발자A는, 매일 밤을 새가며 전임 개발자들이 만든 툴을 분석하고 게임이 가진 포텐셜을 파악합니다. 어디까지 구현이 가능한지, 이 기능을 돌려서 다른 기능을 구현했을 때 코드의 수정이 필요한지. 10년이 넘게 쌓여있던 개발 툴을 하나씩 테스트하며 만져보고 버그를 잡은 그는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대규모 업데이트를 단행합니다. 신규 필드와 던전, 몬스터를 만들고 보상 아이템을 기획하고 아이템 밸런스를 잡고, 몬스터 스킬을 구현하고, 정상적으로 동작하는지 수없이 데이터를 넣고 테스트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했죠."

손가락 하나씩 꼽으면서 상혁은 계속 말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될 수 있기에, 그는 회사가 요구하는 유료아이템 업데이트에도 충실히 대응합니다. 야근. 철야. 야근. 그리고 또 야근. 마침내 그는 업데이트를 완성하고 유저들에게 선보입니다. 3년 만에 선보이는 대규모 콘텐츠를요.

여기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그 기획자는, 자신의 결과물에 만족 할 수 있었을까요? 만족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상혁이 묻자, 절반이 넘는 청중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상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대답은 NO입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능력 좋은 개발자라도 그 모든 일정을 커버하면서 ‘퀄리티 있는’ 결과물을 뽑아내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사람마다 다르니, 누군가는 그런 결과에 만족할 수 도 있었겠지만, 개발자 A는 자신의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개발자 A가 생각하기에, 3년이나 업데이트도 없는 게임에 매일같이 접속하며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그것보다는 좋은 대접을 받아야할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강연실에 상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유저들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개발사가 게임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며, 개발자A가 힘들여 만든 새로운 기능들을 재미있게 즐기고 플레이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접이 다시 오르고, 접었던 유저들이 복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지금까지 신경도 안 쓰고 있던 프로젝트를 혼자 지탱하던 개발자A에게 갑자기 돈을 뽑아내라고 지시합니다. 개발자 A는 거부했고, 지금 중요한 것은 돈보다 컨텐츠를 보강하는 것이라며 주장하다, 결국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씁쓸한 이야기였다.

게임 업계에 들어와 PTW에 입사하고 다른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는 지수는, 상혁이 말 한 이야기를 들으며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게임 업계에 종사한지 꽤 되었기에, PTW 밖의 게임회사들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개발 환경을 그렇게 신경써주는 건가···.’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상혁이 해온 노력은 PTW직원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상혁이 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은, 억울한 개발자 A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3년 후에, 개발자 A는 우연히 자신이 예전에 작업했던 게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죠. 자신이 손을 떼자마자 업데이트가 중지된 게임에서, 유저들이 자신이 만든 컨텐츠를 아직도 즐기고 있는 모습. 공략을 쓰고, 영상을 올리고, 다른 유저의 버스를 돌아주고, 조언을 하고, 장비를 자랑하면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그 모습은, 개발자 A가 보기에 한없이 가련하고, 슬픈 모습이었습니다.”

감정에 젖은 상혁의 목소리는 호소력 있게 청중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여기 모인 개발자들도, 개발자이기 이전에 한명의 게이머였기 때문에.

“게이머란 그런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만든 결과물을 사랑하고, 연구하고, 파고들고, 친구에게 추천하는 존재들. 저희가 데이터 시트에 넣는 아이템 수치 5,10에 일희일비하며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게임에 바치는 사람들. 0.1%확율로 ‘희귀’아이템이 나오면 그것을 뽑아서 하루 종일 기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

상혁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게 게이머죠. 게이머는 돈을 주고 저희에게 ‘아이템’이나 ‘게임’을 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구매하는 것은, 자신이 그 게임을 하는 동안 얻을 즐거운 추억과 경험입니다. 우리는 그런 그들에게 인생 최고의 경험과 기억을 제공할 수도, 아니면 최악의 기억을 제공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고요. 어린 시절 생일파티를 위해 찾아간 음식점에서, 가게 주인이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선물하는 서비스 케이크 하나는 아이의 기억에 평생 남을 행복을 선사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 안에서 나온 바퀴벌레 반 마리는 평생 안고 가야할 트라우마를 안겨 줄 수도 있지요."

이윽고, 상혁은 한 순간 숨을 멈추며 말햇다.

"다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파는 게임은, 유저에게 ‘즐거운 추억’입니까? 아니면 ‘최악의 경험’ 입니까?”

청중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게임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혁의 유저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에.

연봉, 승진, 직장에서의 성취.

유명해지는 것, 은퇴 자금을 버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것, 게이머에게 환호 받는 것.

어떤 기업은 회사의 목적이 세계 정복이고 어떤 기업은 ‘부와 명예’를 목적이라고 적어 놓았다.

회사의 목적도 저마다 다를 진데, 개발자 개개인의 목적이라면 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이머를 위해 게임을 만든다고 생각했던 개발자들도, 상혁처럼 ‘게이머가 응당 받아야 할 것을 주기 위해’ 게임을 만들지는 않았다.

상혁의 마음은, 게이머에게 개발자가 무슨 빚이라도 진 것 같은 기분으로 게임을 만든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기에.

책임감.

자신의 게임을 기대하는 게이머들에게, 반드시 최고의 추억을 안겨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상혁은 매 게임을 만들때마다 느끼고 있엇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객석의 분위기를 보더니 싱긋 웃으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굴지의 개발자들이 모인 GDC에서, 아직 30살도 되지 않은 개발자가 하기엔 너무나도 광오한 도발을.

“아, 참고로 저흰 당연히 전자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뭐, 자신 있으면 언제든지 덤비셔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게임이 저희 게임보다 더 유저를 위해 열심히 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죠. 적어도 PTW는, 순이익이나 매출은 질지 몰라도 거기서는 절대 밀리지 않을 회사니까요. 강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억울하면 개인적으로 찾아오세요. 그럼 즐거운 GDC 되시길.”

상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충격에 휩싸인 관객을 뒤로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하고 있는 지수와 민준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가자. 우리 순서는 끝났으니까.”

침묵하던 객석에서 목소리가 나온 것은, 상혁이 일행을 데리고 퇴장하려 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뭐, 맞는 말이긴 하지. 저게 개발자의 이상적인 마인드긴 해.”

그렇게 입을 연 것은, 이번 GDC에서 상혁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눈보라사의 CEO. 마이클 모헤임이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자 청중들 사이에서 빠르게 수긍하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개발자로서 자존심 상하는 도발이긴 했지만, 게이머로서는 저런 마인드의 개발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마음속에 투지가 불타올랐다.

자신들도 게이머를 위한 마음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과 함께.

비록 현실이나 수직적인 회사 구조, 개발 비용이나 구현 난이도등에 가로막혀 PTW수준의 대범한 게임은 만들지 못했더라도, 그들 역시 게임을 좋아해서 업계에 투신한 개발자들이었기 때문에.

“Fu○k! 뭐 합니까! 여러분? 최고의 강연이었는데? 박수 안쳐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한 개발자가 소리치자 사방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좋은 게임 감사합니다! 강연도 좋았어요!”

“열 받지만 맞는 말이다! 개발자는 저래야지!”

등 뒤에서 터지기 시작한 박수소리를 들으며, 상혁은 객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업계를 지탱해온 선배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더 큰 환호가,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Waaaaaaaaaaaah!!”

“강연 수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다니는 회사로 유명한 PTW.

그들이 처음으로 참여한 GDC의 기조연설은, 그렇게 게임 업계 전체를 향한 상혁의 광역도발로 마무리되었다.

개발자의 마음이란, 잊기 쉬운 주제에 감동한 수백 명의 청중들이 쏟아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눈보라사의 CEO, 마이클 모헤임은 퇴장하는 상혁 일행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저 젊은 개발자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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