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게임 개발자 회의(GDC)
1988년 게임 개발자 크리스 크로포드가 자신의 집 거실에서 다른 27명의 개발자와 함께 시작한 컴퓨터 게임 개발자 회의(Computer Game Developers Conference; CGDC)는, 1999년에 PC게임 뿐만 아니라 콘솔 게임과 휴대용 게임의 개발 관련 포럼을 흡수하면서 게임 개발자 회의(GDC)가 되었다.
게임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개발 조직이 거대화 되면서, 점점 참가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GDC는 어느새 2만 명 가까운 참가자가 참가하며 SANY나 MS같은 거대 콘솔 기업에서도 강연을 오는 대형 행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거기엔, 매년 최고의 게임을 개발자의 손으로 뽑는 게임 개발자 선정 어워드 (Game Developers Choice Awards) 행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GOTY와는 다르게, 3월에 열리는 행사 특성상 작년 게임을 개발자들와 기자들이 선정해서 뽑는 상이기에 수상 시기는 ‘그해 최고의 게임’을 뽑는 타 어워드에 비해 살짝 늦게 진행된다.
그래도 그것은 개발자들에겐 GOTY만큼이나 의미 있는 상이었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다른 개발자들에게, ‘그래 너희가 짱이다.’라고 인정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올해의 GDCA선정을 위해 올라온 후보작 중에, 가장 압도적인 우승후보는 당연하게도 MYOM이었다.
모인 기자들 역시 대부분 이 게임을 2009년 최고의 게임으로 꼽는 걸 주저 하지 않았으며, 개발자들도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기발하고 완성도 높은 게임이었기 때문에.
상혁과 민준이 회귀하기 전, 2009년의 개발자 어워드는 업차티드2가 휩쓸었다.
최고의 오디오 상.
최고의 내러티브 상.
최고의 기술 상.
최고의 비쥬얼 아트 상.
올해의 게임 상.
무려 5개 부분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으니까.
그러나 회귀자인 두 사람이 세운 PTW는 2009년에 2020년에도 존재하지 않던 개념의 게임을 내버렸고, 그것이 주는 임펙트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업차티드2가 원래 받아야할 상의 목록엔 MYOM의 이름이 들어갔다.
최고의 오디오 상 - 업차티드2
최고의 내러티브 상 - MYOM
최고의 기술 상 - MYOM
최고의 디자인 상 - MYOM
최고의 비쥬얼 아트 상 - MYOM
올해의 게임 상 - MYOM
개척자 상 - 서지수(PTW)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해리포터의 극장판 퀄리티를 압도하는 ‘상아탑’의 비주얼과 디자인.
‘모션 인식’이라는 입력 체계를 극한까지 사용하여 아예 게임을 키는 순간 끄지를 못하게 만드는 화려한 네러티브.
그리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실제 마법의 구현’이라는 벽을 넘어버린 창조적인 발상까지.
‘게임’이란 장르의 벽을 가볍게 넘어버린 MYOM이 올해 어워드를 휩쓰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작년 GOTY역시 비슷하게 PTW가 다 쓸어가 버렸고.
그것은 지금 행사장에 나와 있는 윌 드랙만을 매우 분노하게 하는 일이었다.
“젠장, 그놈 면상에 대고 한마디 해 줘야겠어.”
“뭐라고 하시게요?”
“몰라, X발. 뭔가 면상 보면 생각나겠지.”
“무례한 짓은 하시면 안 됩니다. 회사 평판도 있잖아요. 지금 그쪽은 우리 더티독과는 비교도 안 되는 회사라고요.”
“실력은 내가 더 위라고! 결국 이번 작품도 서지수인가 뭔가 하는 여자 개발자가 다 만든 거라고 하잖아! 이상혁 그놈은 허당이라니까?”
드랙만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미 TV쇼를 통해 얼굴도 알고 있었고, 개발자로써의 역량은 자신이 더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욕은 안하더라도 눈도장은 좀 찍어놔야지.’
두리번거리던 드랙만은 자신이 찾던 인물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자신을 그렇게 빡치게 했던 라이벌(?)이, 마치 악귀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이 개 호로 썅 드랙만 너 [email protected]#!!!%!%”
상혁이 한국어로 퍼붓는 욕설을, 드랙만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단지 방금 전까지 자신이 불합리하게 상혁을 욕하고 있던 사실은 싹 잊은 채로, 왜 저 재수 없는 인간이 자신을 향해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치는 것인가를 고민했을 뿐.
그러나 드랙만이 자신이 욕먹는 이유에 대해 찾기도 전에,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상혁이 드랙만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만해 임마! 지수야! 말려! 붙잡아!”
“오빠! 미쳤어요!? 오늘 처음 보는 사람한테 뭐하는거에요?!”
“놔! 이거 안 놔?! 내가 오늘 저놈 머리통을 골프채로 날려버리겠어! 놔! 놓으라고!”
번개같이 달려온 민준과 지수가 상혁을 붙잡았기에, 드랙만은 처음만나는 개발자에게 핵펀치를 맞는 봉변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로 맞는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바닥에 쪼그려 앉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달려오던 상혁의 눈빛은, 진짜로 부모님의 원수라도 보는 듯한 무시무시한 눈빛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상혁은 붙잡힌 지금도 자신에게 다가오려고 발버둥 치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너 드랙만 이 개 호로 색기야! 넌 내손에 골프채만 있었으면 뒤졌어 진짜! 너 이 새끼 내가 어? 아오! 생각하니 빡치네?! 야! 너 뒤통수 조심해라! 어디 컨퍼런스 같은데서 나랑 둘이 만나면 죽는다 너!?”
흥분한 상혁이 내뱉은 말이 전부 한국어였기에, 드랙만은 뭔가 상혁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엄청난 잘못을 했는데 잊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게임업계에 돌아다니는, 한없이 인자하며 부하 직원에게 존경을 사는 개발자라는 상혁의 이미지가, 죄다 날조된 사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성격 좋은 사람이라면, 이유도 없이 무례하게 어떻게든 자신을 발로 차려고 허공에 발차기를 날려대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결국 상혁보다 키가 큰 민준이 상혁의 어깨 밑에 팔을 걸치고 상혁을 번쩍 들어 올리자, 상혁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로 드랙만을 향해 폭언을 날리는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드랙만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보다 훨씬 키가 작은 동양인 남성이지만, 지금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대상은 세계에서 가장 게임을 잘 만든다고 평가받는 기업의 CCO였으니까.
‘여기선 일단 숙이자. 이유는 나중에 듣더라도.’
원래부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간신 타입의 인간이었던 드랙만은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상혁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영어로 상혁에게 사과를 건넸다.
“솔직히 제가 무슨 원한을 샀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제가 잘못했다면 그것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주변시선도 있으니 잠시 고정하시고 화를 내신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드랙만의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순간적으로 상혁의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네가 미래에 팬들이 사랑하는 게임을 뭐같이 망쳐버렸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상혁도 드랙만을 공격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단지 그 수염 난 얼굴을 보자마자, 예전에 유저들을 대놓고 조롱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서 빡쳐서 달려들었을 뿐이었다.
회귀전의 상혁은, 드랙만이 망쳐놓은 ‘러스트 오브 어스2’의, 무려 콜렉터즈 에디션을 구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희 CCO와 예전에 악연이 있었던 사람과 드랙만 씨가 엄청나게 닮아서 착각한 것 같습니다. 무례에 대해 사과드리죠.”
할 말이 없어진 상혁을 구원해준 것은, 언제나 상혁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준 민준이었다.
그리고 드랙만은, 민준의 그런 말을 듣고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감정으로 대처하기엔, 상대가 가지는 존재감이 너무 거대했으니까.
PTW의 존재감은 콘솔 게임계에 그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GOS’의 선 독점 발매로 PS3를 유리한 고지에 올려놓고, ‘MYOM’의 X-BOX독점으로 아예 죽여 버린 회사였으니.
자신이 다니는 회사인 더티독의 스폰서인 SANY에서는, PS4의 런칭을 위해서는 반드시 잡아야할 회사로 PTW를 언급할 정도였다.
항상 SANY진영에 충성을 다하며, 위대한 게임인 ‘업차티드2’를 만들어낸 자신들보다도.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저는 상혁 씨를 처음 보니까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자마자 달려드는 모습을 보니 부모님의 원수라도 되는가 보네요.”
드랙만이 이를 악물며 말하자, 상혁이 분노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제가 죄송합니다. 사람을 착각한 모양이네요. 그래도 행사 중에는 주의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철천지원수와 너무 닮으셔서, 아마 행사장에서 뒷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공격할지도 몰라서요.”
‘미친놈인가?’
상혁이 영어로 말하는 내용을 들으며, 드랙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말은 해석하자면 ‘나는 널 여전히 조져버릴 것이다. 내 원수와 닮았기 때문에.’라는 의미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드랙만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상혁은 자신을 들고 있는 민준에게 ‘가자’라고 이야기했고, 민준은 그런 상혁을 든 채로 그대로 몸을 돌려 드랙만에게서 멀어져갔다.
뒤에서 두 사람을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오빠, 진짜 미쳤어요?’라고 묻는 지수를 데리고.
“괜찮아요?”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 동료직원에게 손을 들어 제스쳐를 취한 드랙만은, 조용히 복도옆의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안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역시 넌 개새끼야아아!! 언젠가 죽인다!! 이상혁 개놈아아아!!”
그렇게 두 사람의 개발자는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에게 말하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을, 전설적인 일화를 남긴 채.
올해의 GDC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었다.
***
“그렇게 저희는 플랫폼이 가진 성능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만큼의 성능을 가진 클라우드 설비와, 그 설비의 성능을 사용할 유저수를 적절한 레벨디자인으로 통제함으로서.”
“개발자 여러분, PTW의 CTO, 민준씨의 강연이었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진행자가 힘차게 외쳤지만, 회장에서는 기대하던 만큼의 환호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행사장에 모인 인원의 상당수가, 턱에 손을 괴고 뭔가 심각한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애당초 민준이 이야기한 내용의 태반이, 이런 짧은 강연에서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미 그런 반응을 예상한 민준은 박수소리가 작은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은 오히려 저런 반응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민준에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보다, 다른 프로그래머들에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어지는 주제를 던지는 것이 더 만족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이미 회장에 있는 개발자 중 상당수가, 민준이 말한 구조를 실제로 어떻게 구현할지 머릿속으로 열심히 견적을 짜고 있었다.
‘차라리 이게 좀 더 알찬 강연이지.’
그리고 그런 민준의 미소를 뒤로 하고, 이번엔 지수가 걸어 나왔다.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개발자들 앞에, ‘개발자 서지수’로서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는···.”
말을 하려던 지수는 민준의 키에 맞춰 높이 올라가 있는 마이크를 조작해서 자신의 키에 맞추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
“상혁오빠, 진짜로 안 봐줄 거예요?”
“말했잖아. 네가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하라고.”
“그래도 전 세계의 개발자들이 모이는 곳인데, 제가 이상한 말이라도 하면 어떡해요?”
키노트 연설을 위해 준비한 대본을 봐주지 않겠다는 상혁의 선언에, 지수가 불안해하며 말했다.
그녀의 생각에, 자신은 아직 부족한 개발자였으니까.
MYOM의 개발도, 단지 자신은 중간에서 다른 팀원들이 개발을 할 수 있게 조율을 했을 뿐이었다.
주요 공식은 물리학 교수인 클라우드 바커와 화학 교수인 에릭 풀먼씨가 작업했고, 코드는 민준이 거의 대부분을 작업했으며, 이펙트와 그래픽은 릭과 마셜이 작업했다.
물론 핵심 인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 작업에 참여한 인원은 더 많았다.
다들 열심히 만들었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코드를 짜고, UI를 그리고, 공식을 만들고, 버그를 잡고, 모델링을 만들고 이펙트를 씌우고 애니메이션을 잡고, 음악을 넣고 건물을 모델링하고 레벨 밸런스를 잡았다.
다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 그녀가 따로 손댈 부분도 없었다.
단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게임의 형태가 나올 수 있도록, 중간에서 결과물을 확인하고 개발 방향을 지시했을 뿐.
심지어 그녀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마나 엔진조차, 그녀 외에 8명의 탑주가 공동으로 노력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그런 이유로, 지수는 MYOM에서 자신이 개입한 부분을 크게 보고 있지 않았다.
“···라는 거네.”
“네. 미안해요. 오빠.”
연설 내용을 안 듣겠다고 하는 상혁을 쫒아 다니며 억지로 지수가 내용을 읊어대자, 상혁은 도주를 포기하고 지수의 생각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는 웃으며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그렇게 말해.”
“예?!”
“그러니까, 다들 노력해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되면, 그렇게 말하면 된다고.”
“어···. 거기 모인 사람들은 ‘다들 열심히 해서 게임이 나왔어요.’라는 내용을 듣고 싶어서 모인 게 아닐 텐데요? 개발 과정의 노하우라던가, 아니면 기획자로써의 경험이라던가···. 그런 게 필요한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근데 이렇게 생각해봐. ‘그렇게 다들 열심히 하게하기 위해서’ 지수 네가 뭘 했는지. 개발과정에서, 수백 명의 팀원이 한 방향을 열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건, 절대 쉬운 게 아냐. 유명한 개발자도 능숙하게 통제 못하는 게 열정이니까. 그리고 지수 네가 기획자로서 가진 최대의 강점은, 중2병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하고 싶게 만드는 재능이라고.”
커다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수에게, 상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건 충분히 가치 있는 강연 내용이 될 거야.”
***
연단에 선 지수가 입을 떼지 않고 있자, 청중석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지수는, 한국에서 상혁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깊게 심호흡 했다.
“제 강연 주제는, ‘131명의 개발자가 나란히 걸어가는 방법’입니다.”
작지만 또렷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강연을 시작했다.
모두의 마음속에 같은 열망을 심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게임의 방향성과 다른 것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 개발자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그것은 일종의 개발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느낌의 이야기였지만, 듣고 있는 청중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이야기 하는 건, 기획자가 다른 팀원들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꿈을 꾸게 하도록 ‘공감’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기에.
그리고 그것은, PTW의 게임이 타사의 게임과 근원적으로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에 대한 해답이기도 했다.